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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36호 (13건)
No
1

雲林山房 畵脈形成의 起源과 그 美學的 特質

권윤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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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화는 명대의 동기창(董其昌), 막시룡(莫是龍) 등이 당대 禪宗의 南北分派에 착안하여 중국의 산수화를 출신성분과 화풍에 따라 구분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문인화가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남종 문인화라고도 한다. 남종 문인화는 학문과 교양을 갖춘 문인들이 餘技的인 상태에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주로 수묵과 옅은 담채로 그려지며 문인의 내면세계는 詩情的이며 사의적으로 표출되어진다. 운림산방의 화맥은 우리 회화사에서 남종 문인화를 대표하는 물줄기로 여겨지고 있다. 소치 허련을 시조로 하는 운림산방의 화맥은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5대가 이어오게 되어 하나의 화맥을 형성하게 되었다. 운림화맥 형성의 기원은 초의·소치의 佛緣과 초의·추사·酉山의 友緣, 다산·초의의 茶緣, 추사·소치의 學緣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운림화맥 형성의 기원은 다산에 있다. 이는 다산으로 인하여 초의·추사·유산이 교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운림산방의 미학 특질은 여러 가지로 살펴볼 수 있으나 개괄적으로 고찰하여 본다면 感物逸趣의 미학이 가장 큰 타당성이 있다. 이는 광의의 의미에서 미학 특성으로 感物을 통한 逸趣의 드러남이다. 즉, 드러내고자 하는 흉의의 감정을 자연물에 이입하여 逸의 미학으로 드러났음이 특성이다. 또한 取境을 통한 移情의 미학이 운림산방의 특질이다. 이는 운림화맥이 회화에 대한 천부적인 DNA와 철학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운림화맥의 또 다른 미학특질은 通變神遇의 미학이다. 이는 변화를 통한 남종 문인화의 정신경계에 나아가기 위함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운림화맥의 변화지향적 미학특성은 남종 문인화에 대한 외연의 확장이며 神遇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이는 남종문인화 본질의 발견이며 회복이다. 神遇는 여러 예술가의 궁극적 지향점이며 이상향이다. 그러므로 운림산방의 미학특질도 通變神遇에 있다. 따라서 이를 종합하여 보면 운림화맥은 感物逸趣의 미학·取境移情의 미학·通變神遇의 미학이 그 특질로 유추하여 볼 수 있다.
南宗畵從一個來源,明代董其昌和莫是龍以唐代?宗着眼,爲隨出身和風格劃分中國山水畵。因爲文人畵家展開了,這也被稱爲南宗文人畵。南宗文人畵一般具有學識和敎養的文人以業余愛好畵畵的。這主要用水墨和淡彩,而文人內心表現詩情的和思意的。在?畵史里雲林山房的畵脈被當爲南宗文人畵的代表。創始人小痴許練的雲林畵脈以湖南中心爲系五代形成了一個畵脈。雲林畵脈形成起源是艸衣·秋史·酉山的友緣,茶山·艸衣的茶緣, 秋史·小痴的學緣。但是主要形成起源是茶山。因爲茶山的影響艸衣·秋史·酉山的友緣可以交流。雲林山房的審美素質?多,其中感物逸趣美學具有最大可行性。這是廣義美學特性,通過感物表現逸趣。這特点是把想出來的凶義感情在自然物移入爲表現逸的美學。而且雲林山房的特質是通取境移情的美學。這是因爲雲林畵脈對?畵有天賦的DNA和哲學。 雲林畵脈的?一個美學特質是通變神遇的美學。這表明,爲了通過改變推進南宗文人畵的精神境界。因此雲林畵脈向變化審美特征是對南宗文人畵外延擴張,爲了謀取神遇。這是南宗文人畵本質的發現和恢復。神遇是許多藝術家的最終方向和理想。所以雲林山房的美學特質也在通變神遇。總之因此雲林畵脈可以類推感物逸趣美學·取境逸情美學·通變神遇美學的特質。

7,300원

2

포스트모던시대의 ‘書ㆍ如ㆍ其人’ 탐색

김희정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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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書如其人`이라는 일종의 개념을 주제로 `이 시대(Post-modern)의 서예가(其人)`란 어떤 사람인가와 `其人`이 산출하는 양식으로서의 서예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논 하였다. 이 논의를 통해 `其人`은 첫째, 시대의 조류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창의적으로 실천하는 예술가. 둘째, 도덕적 인격과 구별되는 예술적 인격의 소유자. 셋째, 문학가, 문자학자와 구별되는 시각예술가. 넷째, 미술사적 맥락과 서예사의 변천을 이해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서예작품을 창작하는 서예가여야 한다고 제언하였다. Post-modernism시대의 `其人`이 산출하는 작품 양식의 방법으로, 첫째, 시대와 조응할 수 있는 조형언어로서의 필획에 대한 연구. 둘째, 결구의 해체와 재구성. 셋째, 세계의 보편적 쓰기 방식으로 자리 잡은 가로쓰기의 수용과 숙성. 넷째, 고전서예의 묵법의 보완으로써 채색의 수용 등을 강구해야 함을 논술하였다. Post-modern시대의 서예는 수양과 예교로서 기능했던 전근대적인 예술의 기능을 벗어날 뿐 아니라, 예술을 위한 예술, 순수예술을 추구함으로써 소통단절을 야기했던 근대시기의 서예의 기능도 극복해야 한다. 이 두 합목적적 기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근대의 문인정신을 복원함과 동시에 근대예술의 지표인 자율성(무목적성, 즐거움)을 회복하여 동시대의 대중과 소통을 이뤄야 하겠다.
本文“書如其人”某種“書法家的槪念的主題(其人)時代`進行了討論和任何人授權書法作爲計算其形式`其人”。通過這個討論“其人”創造力的藝術家們的第一個時代的鳥類敏感。二, 鮮明的藝術個性和品德的所有者。三,視覺藝術家們杰出的學者和字符詢价開始重点硏究文獻和字母和過渡,本身文字的風格等。第四,建議是,藝術家必鬚能勾了解世界藝術歷史背景和seoyesa和實踐的本質。在計算“其人”作爲一個當代的工作方法的形式,我們需要考慮股票古典書法格式的溶解。 硏究pilhoek作爲能勾與次,解構和使節的重建對應的視覺語言,文章,必鬚采取諸如由世界主要特征寫入方式坐落接受的水平寫入模式和老化接受顔色的,以補充古典書法。

5,200원

3

당(唐) 교방(敎坊)의 성립과 변천에 있어서의 몇 가지 문제점

남종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5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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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방(敎坊)’은 궁중 속악(俗樂)의 교습을 담당하던 악무 기구로, 당나라 초기에 황실의 부속 기구로 처음 설립되어 청나라 때까지 궁중의 연향악무(宴饗樂舞)와 성쇠 를 함께 하였다. 당나라의 교방은 동아시아 속악 기구의 성립과 운영에 제도적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성립과 변천을 면밀하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당나라 교방의 설립과 변천에 대해서는 정사(正史)의 기록에서 그 대략을 알 수 있으나 기록이 소략하고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에 1960년대 초에 일본과 중국에서 현 대적 연구가 시작된 이래로 여러 가지 이설이 나왔는데, 그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방’은 악무 교습 기구를 가리키는 고유한 명칭처럼 사용되었지만 본래 는 각종 ‘교습소’, ‘양성소’를 가리키던 일반적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 교방은 당나라 고조(高祖) 때에 처음 설립되었다고 하지만 수나라 양제 (煬帝) 때에 ‘설방교악(設坊敎樂)’한 일이 사실상 교방의 효시가 된다. 셋째, ‘내교방(內敎坊)’은 그 의미가 시대에 따라 ‘내교지방(內敎之坊)’과 ‘내지교 방(內之敎坊)’을 뜻하는 것으로 서로 다르게 사용되었다. 넷째, 현종(玄宗) 때의 내교방은 고조(高祖) 때의 내교방을 이전한 것인지 아니 면 신설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악(雅樂)의 교습에서 속악의 교습으로 그 직능 이 바뀌었고 또한 편제(編制)가 확대되어, 신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현종이 외교방(外敎坊)을 별도로 설립한 것은 속악에 대한 사회적 수요 의 급증에 따른 대응이자 악무 관리의 전문화를 위한 조처였으나 이는 태상시(太常寺) 가 아악을 전담하고 교방은 속악을 전담하는 이원적 체계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여섯째, 장내교방(仗內敎坊)의 실체에 대해서는 내교방의 후신으로 보는 입장과 고취서(鼓吹署)에 소속된 별도의 기구라는 주장이 맞서고, 여기에 당나라 후기에 외교 방과 통합되었다는 합서설(合署說)도 제기되었다. 1960년대 이래로 제기된 이런 논란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 데에는 관련 기록의 미비가 그 일차적 원인이지만 문화대혁명에 따른 중국학자들의 연구 단절도 한 요인이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敎坊’是過去宮庭裏的主要俗樂培训所, 它從唐朝初期作爲皇室的附屬機構而設立以來, 一 直到淸朝代代相傳的。關於唐敎坊的設立與變遷的大體狀況,可以從正史的有關記載中窺 見到的。但是,1960年代初, 在日本和中國開始研究以來, 已經提出了一些不同意見, 其主 要內容就有如下幾個問題; 一、有關‘敎坊’名義的問題。‘敎坊’原來指的是‘敎習所’、‘養成所’,並不是樂舞敎習機構的 專有名稱。 二、有關敎坊起源的問題。敎坊一開始唐高祖設立的。這是最普遍的見解,但隋煬帝時有 ‘設坊敎樂’的事情,所以還有此爲敎坊起源的觀點。 三、有關‘內敎坊’名義的問題。內敎坊意味著‘內敎之坊’之意的觀點,還有‘內之敎坊’之意的 觀點。 四、有關高祖時期的內敎坊與玄宗時期的內敎坊之間相關性問題。有些學者認爲玄宗時期 的內敎坊是高祖以來的內敎坊移轉而來的。還有一些學者認爲內敎坊是新設的。但是,玄 宗時期的內敎坊從太常寺分離,本來敎習雅樂的機構轉變爲敎習俗樂的機構。還擴大了其 編制等有很多不同之處,所以有可能是新設的。 五、玄宗另設外敎坊的原由。設立外敎坊的主要原因是社會上對俗樂的需求急劇增加,所 以設立外敎坊一方面是其對應策,另一方面是爲了管理樂舞的專門化措施。從而,太常寺 裏專門管理雅樂,敎坊裏專門管理俗樂,而形成了二元的樂舞管理體系。 六、有關仗內敎坊實體的問題。有些學者認爲‘仗內’指的是宮中,所以認爲杖內敎坊可能是 內敎坊的後身;還有些學者認爲‘仗內’是屬於鼓吹署,擔任儀仗和鼓吹樂的另外一個樂舞機 構。還有一些學者提出唐後期杖內敎坊移轉而統合到外敎坊,所以提出‘合署說’。 出現以上多種觀點的第一原因是由於有關記錄的不足。另外的一個原因, 可能就在于1960 年代以來中國學者受到文化大革命的影響, 不能繼續進行硏究。

6,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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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의 ‘생명성’에 관한 서예미학적 고찰

박정이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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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상에서의 ‘氣’는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을 포괄한 우주 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근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명제이다. 「역전」에서 ‘기’의 작용은 곧 음양의 작용 으로, 한 번 음하고 한 번 양하는 것을 가리켜 ‘道’라고 하였다. 이는 우주만물은 상호 대립적, 상대적 개념의 에너지가 서로 어우러지는 가운데 생명의 탄생과 소멸의 순환 을 겪게 된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 생명의 조화 및 변화를 야기하는 이치와 실재를 기 로써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기의 운행 방식으로는 ‘가는 것은 되돌아오지 않음이 없고 〔無往不復〕낳고 기름에 쉼이 없다〔生生不息〕’는 말로 집약하고 있다. 서예란 필묵의 운용을 통한 문자 조형 예술로서 ‘도’의 체현을 목적으로 한다. 서 예에서 필획은 단순한 문자표기를 위함이 아닌 기를 내함한 획으로 생명성을 띠어야 한다. 「역전」에서 밝힌 바와 같은 의미의 ‘無垂不縮’, ‘無往不收’의 필법과 필세를 요 구하는 것이다. 서예작품에서 필세의 흐름과 필획이 갖는 심미적 효과는 도와 기를 떠 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필획과 글자의 결구 및 장법 상에서 ‘한 번 음하면 한 번 양하는’ 음양 이기의 운행법칙을 체현하는 것이 곧 서예의 도이기도 하다. ‘도’는 곧 ‘기’의 운행이며,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주재하듯이 서예의 창작과 감상에 있어서도 마 찬가지인 것이다. 이렇듯 서예란 생명의 근원인 기에 대한 이해와 작가의 성정과 풍취 가 여실히 드러남으로써 일정한 심미형식과 심미정취를 낳게 되고, 감상자는 이를 통 하여 기운 생동한 심미적 감흥과 인격적 향수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한 작가가 기의 운행법칙에 따른 기법 수련과 함께 외재적 측면으로는 운필의 중봉 屈伸활동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형세로 생명성을 드러내고, 내재적 측면 으로는 학식의 쌓음과 도덕적 수양의 진실한 정신 가운데 기품과 인격적 생명성을 드 러낼 때 품격 높은 예술작품으로 나타나게 된다.
In the field of calligraphy, calligrapher’s self recognition of emulating the old and creating the new for establishing his own calligraphic world has been attempted consistently. However, the philosophical comprehension and recognition about the emergence of vitality by the action of ‘chi’, which is ‘dao’ in the middle of the spirit of emulating the old and creating the new, is insufficient to realize the spirit of emulating the old and creating the new. In the East Asian thought, ‘chi’ is the proposition recognized as the source of creating and changing all things in the universe including nature, human, material and spirit. The Book of Changes said the action of ‘chi’ was that of yin and yang, and it also said that the successive movement of yin and yang constituted ‘dao’. It means that all things in the universe experience the circulation of creating and extinguishing lives while mutually opposing and correlative energies mingle in harmony. In addition, it clarifies that the ‘chi’ is the principle and existence that causes the harmony and the changes of lives. Furthermore, it integrates the operation law of ‘chi’ into that nothing would not return if it once goes and that production and reproduction never cease. By the way, calligraphy, as the formative art with wielding brush and using ink, aims at realizing ‘dao’. Not only is the stroke of calligraphy for designating characters, but also it should embody material force and have vitality. Calligraphic law and calligraphic strength for that nothing would not shrink if it once stretches and that nothing would not gather if it once goes with the same meaning as what the Book of Changes said are required. It means the aesthetic effects that the flow of calligraphic strength and strokes take in calligraphic works cannot emerge without ‘dao’ and ‘chi’. Thus, the Way of calligraphy is to realize the operation law of yin and yang and Principle and ‘chi’ that yin and yang move successively in terms of strokes, structure and disposition of characters. ‘dao’ is the operation of ’chi’, and it presides over the creation and appreciation of calligraphy as it creates and extinguishes all things. Like this, calligraphy brings some aesthetic forms and mood by expressing the comprehension about the material force which is the source of life and the calligrapher’s emotion and taste. Through this, the appreciators could receive the aesthetic inspiration with full of vitality and moral nostalgia. Therefore, calligraphers should not only train calligraphic techniques according to the operation law of ‘chi’, but also express vitality through the moving situation by wielding brushes on the extrinsic side and express magnificence and moral vitality by accumulating knowledge and cultivating themselves on the immanent side. Consequently, they can realize the genuine spirit of emulating the old and creating the new in calligraphy that intends to express ‘dao’ through brush and ink.

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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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營繕令을 통해 본 송대 주택의 形制와 審美

백소훈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10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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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98년 발견된 송 영선령(營繕令)의 주택 규정을 송『영조법식(營造法式)』과의 대조를 통해 정밀하게 번역하고, 송대 회화 속 주택들과의 대조를 통해 송대 주택의 일반적 형제를 도출하 였으며,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송대 주택의 형제적 특징과 심미적 특징을 고찰하였다. 송 영선령의 주택규정은 이전인 당대와 달리 주택을 구성하는 건축들 가운데서 가장 등급이 높은 청당의 정면 칸에 대한 규제가 폐지되었고, 청당과 침실의 중앙을 주랑으로 잇는 축심사에 대한 규 제가 폐지되고, 건축 구조와 장식에 관한 일부 규제가 완화되었다. 성시 속 상업지역에 위치한 상점을 겸하는 점택(店宅)들은 건물의 정면 칸 수를 통제할 수 없었고 상점으로 인해 대문 위치 역시 청당의 정면을 고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전인 당대에 비해 자유로 운 주택 배치가 발달하게 되었다. 반면 상업구역을 벗어나 위치해 있던 주택들은 여전히 종방향 중 심축선을 기준으로 좌우대칭의 전통적인 엄격한 배치방식을 선호하였는데, 대문채는 청당에 비해 한 두 등급 낮은 형식과 규모로 만들어져 상하질서를 표현하고, 전당과 후침의 중심을 주랑으로 잇 는 축심사(軸心舍)형식이 송대 성시 주택에서 증가하였다. 이러한 엄정한 배치질서는 택지에 제약 이 없는 소형 교외 주택에서도 보이는데 이는 “누추하나 존귀함을 잃지 않는(卑而不失尊)”선비의 기품을 강조한 사대부 주택의 심미적 특징을 드러낸다. 교외에 위치한 중대형 원택(園宅)들은 배치에 있어서 성시 주택들 보다 자유로 울 수 있었다. 이들 은 대지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개의 종횡 축선을 교차 사용하고 융통성 있는 위합(圍合) 방식을 사용 하여 건축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동시에 각 건축들을 수직으로 배치하여 전방뿐만 아니라 측방 과 후방으로도 경관을 취하여 “굽었으나 바름을 잃지 않는(曲而不失正)” 심미적 특징을 보인다. 또한 당대에는 상참관에게만 허용되던 통복(通?), 유복(乳?), 등의 유려한 구조재와 현어, 대봉, 와 수 등의 정교한 장식에 대한 규제가 송대에 이르러 사라지자, 건축의 규모와 지붕형식 등이 제한된 상황에서 주택들은 구조적 아름다움과 장식의 아름다움을 통해 건축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교(巧)” 의 미(美)를 경주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cisely translate the housing regulations of the Song dynasty found in 1998 and to analysis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and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the houses in the Song Dynasty. Different from the closed city structure of the Tang dynasty, the cities of the Song Dynasty had open structure. Most of houses lent their own boundaries facing the streets to commercial buildings, and the traditional housing layout faced dramatical changes. The front size of the house building could not be regulated by law. But the houses in the residental blocks still had the traditional layout, buildings were arranged by traditional ordonnance. The gate and the main hall were placed on the central axis line, and others were arranged symmetrically to either side. A few small suburban housing free from restricted land condition also had the same layout, to show the aesthetic principle of “humble but not lose dignity”. On the contrary, most suburban housing preferred more free layout. Many suburban houses in the paintings of the Song dynasty arranged their buildings based on two, three or four different central axis lines, different buildings were organically linked, and some of them used the sides or back to get the view of inner courtyard or outer landscape. they showed the aesthetic principle of “change but not lose order”. The Song houses were allowed to use various structure and decoration, so they were more fined and exquisite than the earlier.

7,000원

6

莊子와 백남준의 TV정원에 드러난 시공간적 특성 연구 - 백남준의 비디오설치작품, , <비디오촛불>을 중심으로 -

손형우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13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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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莊子』와 백남준(Paik, Nam-June)의 비디오설치작품(TV정원)에 드러난 時空間的特性에 관한 비교 연구이다. 백남준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다양한 경 험과 활동을 하였으며, 장자철학과 시공간관에도 관심을 가졌다. 백남준 비디오설치 작품의 시공간적 특성에 관한 연구는 장자 예술철학의 정신적 자유로움과 시공간적 특 성과 비교함으로써 오늘날의 새로운 문화예술의 경향성과 현상들을 새롭게 재조명하고 자 했다. 『장자』에 있어서 두드러진 시공간적 특징은 逍遙遊에서 포착되는 精神的自由와 호접지몽(胡蝶之夢)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요유 편에 드러난 정신적 자유는 인간의 시공간적 인식의 경계를 허무는 자유로움에 있다. 또한 胡蝶之夢에서 드러나는 現實性과 假像性의 시공간 특성은 오늘날 다양한 뉴미디어를 사용하는 현대사회의 문 화예술 현상과 시공간적 특성과의 비교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시사 점을 제공한다. 백남준의 비디오설치․조각 작품 중에서, 관람객의 대상에 대한 상호작용과 몰 입을 통해서 전시공간과 현실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시공간적 영역을 확장하는 특성을 보이는 작품으로, 을 들 수 있다. 을 관람하는 관람객은 전 시장 내부를 자유롭게 거닐며 체험하는 逍遙遊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胡蝶之夢의 미적체험이 가능하다. 전시장에 머무르는 동안 관람객은 전시라는 상상공간과 정원이 라는 현실공간을 넘나들며,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다양한 미디어를 매개로 몰입 하고 사유하는 현대인은 장자의 소요유와 호접지몽의 접근방식으로 각자 상상의 나래 를 펼치며 가상의 세계에 진입하기도 한다. 철학적 사유(장자)와 예술작품들(백남준) 은 때로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화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늠자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This research paper will investigate the comparative study about Spatio-Temporal Characteristics of Zhuang-zi and Nam-June Paik`s TV Garden. Paik, Nam-June had diverse experiences and many activities by moving back and forth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and was also interested in Zhuang-zi's philosophy and space-time view. A study on spatial and temporal characteristics of Paik, Nam-June's video installations newly tried to reinterpret tendencies and phenomena of today's new culture and art by comparing with the spiritual freedom and the spatio- temporal characteristics of Zhang 's art philosophy. The remarkable spatio-temporal characteristics of Zhuang-zi can be checked through The Butterfly Dream and spiritual freedom which is appeared in Xiāo-Yáo-Yóu(逍遙遊). The spiritual freedom of Xiāo-Yáo-Yóu is the freedom that tears down the boundary of human spatio-temporal awareness. Also, spatio-temporal characteristics of reality and imagination in the Butterfly Dream offer important and meaningful implications for the comparative study between spatio-temporal characteristics and cultural and artistic phenomena of modern society which use various new media in today. Among Paik’s video installation․sculpture works, TV Garden has a characteristic to extend new spatio-temporal territory and to tear down the boundary between exhibition space and realistic space through immersion and interaction about the object of the audience. Visitors who watch the can experience the aesthetic experience of Xiāo-Yáo-Yóu(逍竜遊), walking around freely in the exhibition hall, and 胡蝶之夢, crossing reality and imagination. While the audience is staying in the exhibition hall, they can enjoy the spiritual freedom by hanging between a realistic space garden and an imaginary space exhibition. Sometimes they are immersed by various media, and they enter the virtual world with deep thoughts and imaginations. Zhuang-zi’s philosophical thought and Paik’s art works can have an important meaning as a sight for understanding complicated cultural phenomena of modern society.

6,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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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도를 모티브로 한 트롱프뢰유(Trompe-I'oeil)기법의 네일아트 연구

신원선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15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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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4차 산업혁명시대의 도래로 혁신적인 기술발달과 함께 고도의 정보, 통신 으로 인한 국경의 의미도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세계시장에서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문화마케팅을 통한 국가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유산 중 건축 과 회화를 동시에 상징하는 고구려 고분벽화는 고구려인의 역동성과 창조성을 담고 있 는 고유문화로 세계무대에 부족함이 없는 소재라 할 수 있다. 동양의 신비로움과 우리 민족의 역량이 잘 드러난 사신도의 상징적 가치를 네일아트 작품으로 재해석함으로써 민족고유의 독창성을 알리고자하였으며, 네일아트기법에 있어 프로트랜스를 이용한 트 롱프뢰유기법(Trompe-I'oeil)으로 새로운 표현방법의 확장과 색다른 흥미를 부여하고 자 총 4개의 작품으로 제작하였다. 그 결과 사신도의 생동감 넘치는 필치와 화려한 채 색효과는 우리만의 독특한 소재의 표현가능성을 나타내는 모티브로 충분하였고, 사신 도를 접목한 네일아트연구로 희소성 가치와 한국적 미를 표현하기에 적합하였다. 작품 표현에 있어서는 트롱프뢰유기법을 토대로 벽화의 오래된 전통미와 고풍스러운 느낌을 그대로 살릴 수 있었으며, 평면위에 네일의 입체적이 부조형태에 의한 시각적인 효과가 더하였다. 이와 같이 민족문화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독특한 개성을 뜻하는 것으로 우 리 전통문화의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토대로 독창적인 문화코드를 형성하여 끈임 없는 노력으로 그 가능성을 제시해야할 것이다.
With the onset of the era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the national border has become less important thanks to advance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along with innovative technology development. Under these circumstances, there have been efforts to build national brands through cultural marketing to stay competitive in the global market. Among many national cultural heritages, the Goguryeo tomb murals, which symbolize both architecture and painting, are a Korean traditional culture artifact that retains the dynamicity and creativity of the Goguryeo people. In fact, they are very competitive objects even in this age. The symbolic value of sasindo (the painting of four guardian gods), which well expresses the mystery of the East and the capability of the Korean people, was reinterpreted in nail art to spread the originality of the Korean people. In terms of nail art techniques, four different styles were created to expand new expression methods and give unusual fun and excitement, using pro-trans-based Trompe-I'oeil. The results found the following: The dynamic touch and fancy color of sasindo were adequate as a motif that represents the possibility of expressing one-of-a-kind materials. In addition, the murals were suitable in expressing the rare values and beauty of Korea. In terms of work expression, it was able to deliver the traditional beauty and antiquity of the murals based on Trompe-I'oeil. The cubic volume of nail on the surface made the relief design visually stand out. In sum, the existence of a national culture itself represents a unique personality. Therefore, there should be continued studies based on the diverse materials and techniques of Korean traditional culture. In addition, it is necessary to suggest possibilities with endless efforts by forming unique cultural codes.

6,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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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園 金弘道의 官僚行蹟과 작품에 나타난 倫理意識에 대한 硏究

이근우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18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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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단원 김홍도 탄신 272년이 되는 해이고 연풍현감에 제수된 지 226년 이 된다. 단원 김홍도는 화원(畵員)과 관료(官僚)라는 양립(兩立)하기 어려운 두 역할 을 이루어낸 보기 드문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관료행적으로는 안동 안기(安奇) 찰방 (察訪)과 충청도(忠淸道) 괴산군(槐山君) 연풍현감(延豊縣監)을 지냈다. 특히 어진도 사(御眞圖師)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조(正祖)는 1791년 12월 22일에 연풍현감에 제수 (除授)하였고 1795년 1월 7일 해임까지 약 3년간 재직하였다. 기존에 발표된 단원 김홍도에 대한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회화작품 연구 위주 이고 그 연구 성과에 비해 단원 김홍도 관료 행적(行蹟)과 치적(治績)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연구자료 출간 및 실증적인 자료 소개 의 측면에서의 검토 또한 미흡하고 그가 공직자로서의 윤리의식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연구도 부재하다. 본 논고는 이러한 맥락에서 그간 단원 김홍도 회화작품 위주의 연구에서 벗어나 연풍현감 단원 김홍도 부임 이후의 관료 행적과 치적 및 공정산(公正山) 상암사 중수 기(上菴寺重修記)를 통해 단원 김홍도의 윤리의식을 논증하고자 한다. 아울러 윤리의 식과 연계해서 볼 수 있는 작품도 살펴보고자 한다.
Year 2017 is Danwaon Kim Hong-Do’s 272th birth year and also 226th year, he had been in Yunpoong- Hyeongam. Danwon Kim Hong- Do is a person who had been both artist and government officer at the same time which is hard to be at that time. As a government officer, he has been Chalbang officer in Ahn-dong city, Ahn-ki area, and Yunpoong-Hyeongam in Chungcheong-do, Goesan-gun. Also, he was rewarded by Great King Jung-Jo, by drawing his portrait, he was assigned to be Yunpoong-Hyeongam in 1791 December 22nd and served until 1795 January 7th, for three years. Formal studies about Danwon Kim Hong- Do is about his artistic skills and his painting, but his history as in government officer and his work during the time are very marginal until now. Also, there are insufficient amount of research data and studies about his ethical consciousness as government officer. This study is not only about his art or his artistic skill, however this study is also about proving his ethical consciousness as in government officer. These are the thee point. First, House fire in Ahn-bu station area after Danwon Kim Hong-Do post as a Yunpoong-Hyeongam. Second, Mt. Gong-Jung Sangam Temple restoration monument Third, King’s portrait, Modang-Pyungsaeng-Do, seodang.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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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시장 구축을 위한 담론생산과 정치세력화에 관한 소고 - 한국서예를 중심으로 -

이종선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21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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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과 ‘창조경제’는 종말을 고했다. 박근혜정부에 의해 주도된 일련의 정책들은 말:잔치로 끝났고, 블랙리스는 배제와 배타주의를 낳으며, 결국 “작가의 창조적 창작활동이 그 작가의 경제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馬)잔치였음이 드러났다. 세금과 불공정 자본을 훔쳐 권력을 불려온 정권은 그렇게 붕괴되어 갔다. 흡사 ‘문화융성’ 슬로건에 취해 그것과 보조를 맞춰가던 한국서단도 더불어 위기가 심화되었다. 서총의 슬로건도 ‘문화융성’이었다. 공교육체계 내에서의 서예학과는 줄지어 폐과되고, 서예작가의 작품이 매매되는 시장은 자본주의 시장경쟁체제 안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제와 형식, 창작방법, 관람자와의 소통 가능성 등 서예문화의 예술적 구성요소들과, 서예의 비예술적 구성요소들, 예컨대 도제식 교육의 팽배, 공모전 중심의 서단 조직 운영 등은 여전히 전(前)근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사회의 서예인구의 감소와 서예활동의 축소, 그리고 영향력 감퇴는 당연하다 하겠다. 특히 시장의 부재와 정책의 부재는 서예의 부재를 낳고 서예의 부재는 시장과 정책의 부재를 낳은 악순환의 고리로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In the reality of Korean culture & art world where artists’ creative work activities are not helpful to their economic life, in order for Korean calligraphy to recover its status of art and also to overcome this crisis, the creation of market is the most essential precondition. The creation of market is possible only when the political empowerment of calligraphy circles and production of discourse are combined with the mid/long-term plan of the governmental law/system/administration/budget. At this time, the basis of the government support is the public convenience of calligraphy. Therefore, Korean calligraphy circles should stimulate the government and local governments through the political empowerment of calligraphy circles, and also lead the solidarity and support by persuading people through the production/distribution of calligraphy discourses. Without support and solidarity with the state and people, it is impossible to create an independent market focusing on calligraphy circles while it is also limited to overcome the current crisis of calligraphy. Moreover, highly-artistic, innovative, and bold works containing the spirit of the times should be created because work is the only prerequisite of market, contents of market, and results of market.

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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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동남아시아 교류사를 통한 궁중춤의 유사성 연구 - 始原思想과 規範美를 중심으로 -

정강우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234-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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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역사적 교류과정에서 생성된 궁중춤의 시원사상과 규범미를 도출하여 궁중춤의 유사한 현상들을 규명하는 것이다. 현재 한-동남아 교류사에 관한 연구동향에 많은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동남아 교류사를 통한 춤 관련 예술사적인 연구 성과는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이에 다변적 접근방식을 재고하여 교류사적 측면의 새로운 학술적 논의를 시도하였다. 한-동남아의 교류사적 측면에서 접근한 궁중춤에 관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동남아는 종교사상적 주제와 철학적 기조의 적극적인 유입과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대상국가의 생소한 예술형태도 동반 수입하여 안착시켰음을 재확인하였다. 둘째, 궁중의 예술소재들을 통해 궁중춤과 관련된 제반사항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즉 한-동남아 궁중춤의 직접적인 교류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 외 문화예술 교류품목들인 도자기의 문양, 복식문양, 궁중의물, 궁중악기 사용 등으로 공유된 궁중 문화예술은 궁중춤에도 적극적으로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한-동남아의 각 국가는 교류로 수입된 예술형체를 근원적 규범을 지키며 자체적인 중심철학과 민중의 기호와 혼합된 궁중예술을 토착화 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궁중춤 또한 적절한 변용을 통한 토착화를 완성하였음을 파악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similarities of the court dances by analyzing the primordial ideologies and normative beauties, which have been formed throughout the process of cultural exchanges between Korea and Southeast Asia. Up until now, there has been much progress in studying the cultural exchanges between Korea and Southeast Asia. However, the artistic research related to the dances has achieved little. Therefore, this study was initiated to academically research this area by taking the multilateral approaches toward the cultural histories, and the study results of the court dances as follows in the aspects of the cultural exchanges between Korea and Southeast Asia. First, Korea and Southeast Asia have also adopted the art forms from the target countries in order to actively introduce as well as to successfully settle the religious ideas and philosophies. Second, this study identified the shared court arts, such as ceramic patterns, clothing patterns, court ceremonial instruments, and court musical instruments among the exchanged artistic items, even though it is unknown whether Korea and Southeast Asia had exchanged their court dances directly. Since those items are related to the court dance, we were able to account for the materials related to the court dances. Third, each country has indigenized the key philosophies and people’s preferences within their frameworks of fundamental norms, and then has remarkably developed those over periods.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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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園 金弘道의 畵中有樂 연구 - 音樂風流를 중심으로 -

조동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264-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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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1745-1806?)는 전통회화의 대화가로 神筆, 破天荒의 솜씨를 지닌 畫仙으로 불리운다. 단원은 그 명성에 걸맞게 늘 새로운 변화와 창작의 과정을 통해 시 대를 이끌어가던 화가였다. 조선의 國是는 성리학이었지만 유·불·선을 포함한 다양한 철학이 공존하고 있었고, 단원은 철학적 사유에 근거한 그만의 審美意識을 이끌어내어 音樂風流를 形象化했다. 志와 情感을 담은 畵와 樂으로 당대의 멋스러운 音樂風流를 표현하고 있는 단원의 畵中有樂에는 心正과 愼獨의 수신을 지향하는 선비가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고, 逍遙遊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神仙이 생황과 피리를 부는 모습이 있다. 그동안 연구자들이 단원에 대한 많은 연구를 시도해왔고, 또 다양한 연구문헌들 이 계속적으로 발표되어 왔음을 볼 수 있으나, 지금까지의 연구가 주로 30대의 작품인 풍속화와 40대의 진경산수화에 편중되어 있었다. 이에 본고는 단원회화에 대한 더욱 세심하고 다각적인 모색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그의 繪畵중 畵中有樂을 통해 당대의 音樂風流와 審美意識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예술은 현실의 다양한 모습과 꿈을 표현한다. 시간예술인 音樂이 사람의 마음에 서 소리를 만들어내듯이 공간예술인 繪畵도 사람의 마음을 통해 形像을 나타낸다. 樂 從和를 추구하는 音樂과 性情을 和樂하게 하는 繪畵는 정서적 삶의 표현이다. 音樂이 담겨있는 단원의 畵中有樂은 당대의 다양한 音樂風流와 더불어 그의 삶과 상응하는 자 전적인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본고는 名敎的효용성을 지향하는 儒家的音樂과, 逍遙遊의 초월적 세계를 추구 하는 仙家的審美意識이 담긴 단원의 畵中有樂을 통해 조선후기의 音樂風流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As a master of traditional painting, Danwon Kim Hongdo (1745-1806?) is called an excellent painter with calligraphic mastery and unprecedented execution. With a good reputation achieved, Danwon was a painter leading the times consistently through changes and creation processes. Though Joseon’s national policy was Neo-Confucianism, various philosophies coexisted and Danwon drew his own aesthetic awareness based on philosophical thinking to embody musical appreciation. Danwon’s joy in painting that expresses the then splendid musical appreciation through painting and music with his will and warmth features a classical scholar playing the geomungo (six-stringed Korean zither) and the Korean mandolin who is seeking for moral training with right mind and by doing what’s right even when being alone (愼獨) and a Taoist hermit playing the reed instrument and the pipe who is pursuing freedom of living free from worldly cares. Although there have been a lot of studies attempted on Danwon and various research literature have been constantly published, studies done so far have been mostly focused on genre paintings and real landscape paintings in his 30s and 40s respectively. Thus, this study regards it necessary to examine Danwon’s painting more in detail and in multiple perspectives so among his various works of painting, it is to discuss the then musical appreciation and aesthetic awareness particularly through joy in painting. Art expresses various forms and dreams of reality. As music makes sounds in human heart as temporal art, painting also shows shapes through human heart as space art. Music pursuing the harmony and painting that makes peace be with each other’s nature are emotional expressions of life. Danwon’s joy in painting with music is full of autobio graphical elements in his life along with the then diverse forms of musical appreciation. This study is to discuss late-Joseon musical appreciation through Danwon’s joy in painting with Confucian music that seeks usefulness for teaching morality and Zen aesthetic awareness that pursues transcendental world of living free from worldly cares.

6,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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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대 미술의 민족주의적 요소와 비판

최병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2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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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미술계에서는 개혁개방이 불과 30여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을 만큼 많은 논의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미술계에서는 여러형태로 ‘민족성’ ‘정체성’에 대하여 매우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형식 또한 논문, 세미나, 칼럼 등을 통한 논쟁과 함께 작가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통하여 자신들의 예술세계를 토로하고, 그 정신성, 방향을 모색해가는 모색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본 논문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당대미술에서 민족주의적 의식이 대두되고 애국주의, 국가주의적인 형태로까지 진전되어 왔던 다양한 관점들을 정리하였다. 최근들어 점진적으로 국수적, 민족주의적 요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글로벌 시대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한 작가, 비평가, 학자들의 논의를 연구, 분석하였다. 용어사용과 범위에 있어서는 가급적 ‘민족주의’라는 말 보다는 ‘민족주의적 요소’를 선택하여 사용하였다. 이를 통하여 중국미술계의 ‘문화적 대국굴기(大國屈起)’의 큰 흐름을 파악하고, 한국미술계와는 갈수록 밀접해지는 동아시아 미술계 상황과 세계적인 미술사조를 가늠해가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在中国艺术世界上,改革开放的时期虽然已经过了30年左右,但是国际上也倾注了大量的辩论。在艺术界对‘民族性’与‘整体性’以多种的方式正在进行一个非常激烈的辩论。通过论文,研讨会,论坛等的形式展开了争论,同时以艺术家的直接参与透露了自己的艺术世界,并且被频繁地进行探索了其精神性和方向性。 在本论文中,改革开放以来中国當代艺术兴起了民族主义意识,以此来审视了以爱国主义与国际主义的状况为推展到的多样的观點。近年来逐步地被提出对于国粹的,民族主义因素的批判。为了获得全球时代的普遍性而研究和分析了作家、评论家、学者的讨论。在这样用语的使用和范围方面尽量被用为‘民族主义’的话,更被用来选择了‘民族主义的要素’。 由此可以把握中国艺术世界‘文化的大国屈起’的大趋势,在与韩国美术界变得越来越密切的东亚美术界的情况下,将成为打造契机而衡量世界美术思潮。

6,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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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풍 한시의 사상적 배경과 성격 연구

한윤숙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6호 2017.08 pp.318-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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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풍’은 기존의 사고의 틀을 벗어나 우리 것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눈앞의 진실을 추구하는 조선후기에 나타난 주체적 문화현상이다. 18세기 조선사회는 다양한 사상이 유입되어 혼재하면서 주자학적 • 중화주의적 세계관이 크게 흔들렸다. 특히 북학파를 중심으로 하여 조선을 열등한 가치로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본래 가치를 깨닫고, 나아가서 중국에서 벗어난 조선의 주체성을 말하였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조선 문화의 재인식이 가능했던 것이 ‘조선풍’ 형성의 주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小中華主義와 華夷論을 극복하고 문화주체의식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는 몇가지 사상적 연원이 있다. 첫째, 탈도덕적 자연적 존재론에 바탕을 둔 相對主義的 사유방식이다. 둘째, 地球說(地圓說)에 근거하여 어디고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보는 多中心說이다. 셋째, 문화적 華夷論에 근거한 華夷均等的 사유이다. ‘조선풍’ 형성의 또다른 배경요인으로 18세기 조선 사회의 심미의식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점차 기질의 情에서 일어나는 본능적 욕구의 자연성과 순수성의 발현을 천기로 이해하고, 개체의 선천적 본성과 자율적 의지가 바로 그 개체의 眞이며 존재의 眞情性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예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관점이 道에서 개인의 정감과 관련된 眞으로 이동하였다. 따라서 인간본성을 긍정하고 그것을 온전히 표현해내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심미관의 변화에 따라 창작 주체의 眞구현은 現在性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여기’의 時空間 인식, 주체적 언어인식, 일상적 소재인식을 통해 조선풍의 양상이 전개된다. 조선후기 문인의 문화주체의식과 변화된 심미관에 기반한 ‘조선풍’은 한시 뿐 아니라 국문시가, 판소리와 書畵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전개되어, 창작에서 貴古賤今의 인습을 반대하고 개혁과 창신을 강조하였으며, 소재에 있어 現在的, 朝鮮的인 것의 채용을 추구하였다.
‘Joseon-esque style’ was a subjective cultural phenomenon that recognized a new value of ours and sought the truth in front of us breaking from conventional thought, and it has emerged in late Joseon dynasty. As various thoughts were introduced and mixed together in the 18th century of Joseon dynasty, Neo-Confucian and Sinocentric worldview has been undermined. Especially the school of northern studies did not regard Joseon as an inferior and realized an original independent value. In addition, they insisted on the subjectivity of Joseon escaping from that of China. A new understanding of Joseon culture breaking from the Sinocentric worldview could have formed Joseon-esque style. There were a few philosophical factors that Joseon attained a subjective cultural consciousness coping with a small Sinocentrism(小中華主義) and a thought of China and the others(華夷論). The first was a relativistic way of thinking based on the natural ontology breaking from moralism. The second was a multicentric theory that thought wherever could be the center of the world based on the idea of spherical earth. The third was a thought of the equality between China and the others based on a cultural idea of China and the others. Another background factors of forming Joseon-esque style was the change of aesthetic consciousness in the 18th century of Joseon dynasty. The scholars who accepted the literary view of Gongan school between late Ming and early Qing regarded an expression of human’s unrestricted emotion, an emphasis on individuality and an unaffected honesty as ‘Genuineness’, and the perspective that evaluated an artistic value has changed from Way to Genuineness, that was related to personal emotion. They have considered the expression of naturalness and purity of instinctive desire arose in emotion of disposition as heaven-gifted nature and thought that an individual’s innate nature and autonomous volition were the individual’s genuineness which was itself as a subject and a genuine existence. Therefore, they have considered that affirming and expressing human nature was a genuine art. As the aesthetic perspective changed, they have started to emphasize a nowness of space and time that an artist encountered. An appearance of Joseon-esque style has been developed through an awareness of present times, a subjective recognition of language and an identification of ordinary subject matters based on the thought that the realization of a creating subject’s genuineness required the nowness of space and time. Joseon-esque style based on the subjective cultural consciousness and the changed aesthetic perspective of literati in Joseon dynasty has been developed extensively in not only a poem but also Korean poetry, Pansori, calligraphy and paintings. It denied the conventionality that put the higher value on the old and the lowers on the present, emphasized reformation and creation, and aimed at accepting a present and Joseon-esque subject matter.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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