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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40호 (14건)
No
1

感性知能을 통한 東洋藝術의 審美的 接近 - 石濤畵論의 ‘資任’을 중심으로 -

권윤희, 김귀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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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이루어진 지각능력이라면 감성지능은 인간의 감성에 의한 지각능력이다. 즉, 인공지능과 감성지능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의한 지각능력임을 알 수 있다. 人工知能은 인간의 마음. 즉 감정이나 감성까지 대체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4차 산업혁명 덕분에 삶의 여유를 통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의 충족과 아울러 발생된 인간소외 현상이 감성지능의 열풍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인간의 삶과 행복은 감성지능의 발견과 확장에 있다. 감성지능은 기계문명에 빼앗길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감성지능의 연구는 주로 감성지능의 증진·감성지능의 계발·감성지능에 영향을 끼치는 인자나 미의식 분야에 주로 이루어져 왔다. 본 연구는 인간의 감성지능을 동양예술에 적용하여 고찰에 있다. 인간의 감성지능은 이상과 가치를 실현시켜 주는 인자이다. 그러므로 예술영역에서 인간의 감성지능은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발견하여 심미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다. 청대의 석도는 ‘資任’이란 동양예술의 심미론은 제기한 바 있다. 이는 동양예술을 감성 지능적으로 접근한 예를 보여준다. ‘資任’의 심미론은 동양예술을 더욱 격조있고 심오하게 하였다. 인간의 감성지능은 개개인의 이상과 행복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가치영역이다. 이는 감성이 가지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If artificial intelligence is defined as the perceptual ability related to human reason, emotional intelligence can be defined as the perceptual ability related to human emotions. In other words, artificial intelligence and emotional intelligence are the perceptual abilities of human reason and emotion. Artificial intelligence cannot replace the human mind, that is, emotions or sensitivity. Thanks to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caused by artificial intelligence, the basic human need for freedom of life met, but the resulting human alienation has become a craze for emotional intelligence. In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human life and happiness focus on the discovery and expansion of emotional intelligence. Emotional intelligence is a unique area of human nature that cannot be replaced by mechanical civilization. The study of emotional intelligence has been mainly conducted in the areas of the development and enhancement of emotional intelligence, the factors that affect emotional intelligence or aesthetic consciousness. The goal of this study is based on the application of human emotional intelligence to oriental art. Human emotional intelligence is a factor that realizes ideals and values. Thus, human emotional intelligence in the art area can value itself and realize the aesthetic ideal by discovering it. Shitao of chung dynasty period has raised the aesthetic theory of oriental art called duty of artist's accumulated talents. This shows an intelligent and emotional approach to oriental art. The aestheticism of duty of artist’s accumulated talents has made Oriental art more refined and profound. Human emotional intelligence is a valuable area that can realize individual ideals and happiness. This is because emotion has such character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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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朝鮮後期 書論의 陰陽對待觀 硏究

김윤주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3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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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서예는 고법과 서예의 본질에 대한 연구를 통해 독자적인 서풍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라 서예에 대한 이론과 비평 등 書論의 집필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이는 서예를 학문적 개념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시기의 書論에는 陰과 陽의 對待관계를 바탕으로 서예를 논한 것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서 陰과 陽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이를 통해 變化를 이루는 작용을 한다. 또한 이와 같은 陰과 陽의 對待관계는 천지만물이 생멸하는 근본 규율로서의 道를 의미하며 動과 靜, 剛과 柔, 正과 反 등으로 무수하게 치환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陰陽對待觀이 조선후기 서론에서는 學과 藝, 古와 新, 書와 人 등의 對待적 특징으로 드러났으며 그 대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문과 예술을 일치시키려는 움직임을 드러냈는데 이러한 學藝一致적 경향은 김정희, 조희룡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음과 양의 造化를 나타내는 ‘神’을 존중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으며 이를 서예에서는 ‘中’을 바탕으로 하여 드러내야 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학문과 예술을 일치시키려는 學藝一致적 경향과 陰陽의 조화인 ‘神’을 존중하고 서예에서 ‘中和’를 실현하고자 하는 造化의 世界觀을 보이고 있다. 둘째, 순환적 시간성과 死生에 대한 인식을 통해 生命을 존중하는 태도를 드러냈다. 또한 太極에서 陰陽으로의 變化와 統一의 원리를 통한 生命的 審美意識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서예에서 살아 움직이는 生動性과 변화와 통일의 通變性을 중시하는 生命의 藝術觀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자연 조화의 원리로서의 法과 古를 존중하는 태도는 古와 今을 상통하는 것으로 보고 옛것을 학습하고 수양하는 인간상을 존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옛것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새로운 것을 이루려 했던 창조의 정신으로 발현되었다. 이와 같은 태도는 書如其人의 정신과 法古創新의 정신을 지향하는 相成의 創作觀으로 드러났다.
The calligraphy in the late Chosun dynasty formed a unique calligraphic style through studies on the old law and the essence of calligraphy. As a result, the writing of calligraphic theory including criticism about calligraphy was actively conducted, which means that calligraphy began to be considered as an academic concept. The calligraphic theory of this period includes many discussions about calligraphy based on the correlation between Yin and Yang. Since Yin and Yang influence each other, they function to change. In addition, such a correlation between Yin and Yang means the Way as the fundamental discipline of the birth and death of all things, and it is possible to extend to the concept of Movement and Stillness, Hardness and Softness, and Rightness and Opposition. From the view of the correlation between Yin and Yang, the characteristics of calligraphic theory in the Late Chosun Dynasty are revealed as the correlative characteristics such as Science and Art, Old and New, and Calligraphy and Calligrapher as below. First, there was a move to unify science and arts, and especially Kim Jeonghui and Jo Huiryong had the tendencies of unifying science and arts. They respected ‘Spirit’ which represented the principle of controlling Yin and Yang, and argued that calligraphy should be expressed based on ‘Equilibrium’. In this regard, they showed the tendencies to unify science and arts and the world view of enlightenment, which aimed at respecting ‘Spirit’ that was the principle of controlling Yin and Yang and realizing ‘Equilibrium-Harmony’ in calligraphy. Second, there was an attitude of respecting life through the perception of cyclical time and birth and death. It also showed the aesthetic consciousness of life through the transformation of the Great Ultimate to Yin and Yang and the principle of unification. Based on this, we can see the artistic view of life that emphasizes the vitality and the change in calligraphy. Third, there was an attitude of respecting the law and the old as the principle of controlling nature, and it has been shown to respect the human image to learn the old and to cultivate himself by considering that there was a thread of connections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Based on this, it was manifested in the spirit of creation, which was constantly exploring the old and trying to achieve new things. Such an attitude was revealed as a creation view of the mutual complement which aimed at the spirit that calligraphy was expressed by the calligrapher’s personality and the spirit of emulating the old and creating the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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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본 에도시대 사무라이 정신과 호랑이 이미지

김지인, 이주은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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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에도시대 우키요에의 ‘호랑이 사냥’ 주제에 나타난 호랑이 이미지에 대해 해석한다. 우키요에는 판화로서 예술의 대중화를 대표하는 매체이다. 대량생산이 가능해 대중들이 접근하기 비교적 쉬워 우키요에에서 다루어진 호랑이 이미지는 당시 대중들이 선호한, 혹은 선호하도록 요구당한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일본의 호랑이 이미지를 외부에서 유입된 시기와 독자적으로 발달한 시기를 나누어 이미지가 변화한 과정을 살피면 우키요에에 나타난 호랑이 이미지가 가진 차별된 문화적 특징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외부에서 전래된 호랑이 그림은 불교와 함께 유입되면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했다. 그러나 송대 화가 목계의 그림이 다수 전래되면서 점차 영모화로서 이미지가 정착하였다. 그러나 호랑이가 식생하지 않는 일본의 환경적 특성상 호랑이는 일종의 상서로운 동물로서 벽사적・길상적 의미는 변하지 않고 계승되었다. 이미지의 의미가 변화한 것은 에도시대에 이르러서다. 우키요에의 발달과 함께 일본만의 독자적인 호랑이 이미지가 형성되는데, 차별화된 이미지가 발생한 것에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호랑이가 식생하지 않는 환경에서 화가들의 사생 열망이 이미지를 왜곡하는 결과를 야기하였다. 둘째, 우키요에에서 사람과 호랑이의 1대1 대결 구도의 그림이 성행하면서 주인공의 무용을 강조하기 위해 호랑이가 벽사적 존재가 아닌 ‘외부의 적’이자 ‘안타고니스트’의 역할로 기능하며 호랑이의 외형이 흉맹하고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과장되었다. 셋째, 에도 막부에서 실존인물을 대상으로 그리는 것을 검열하면서 호랑이가 호랑이 사냥 일화의 대표적 주인공인 가토 기요마사를 대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에도 말기 우키요에 그려진 호랑이 이미지는 일본 ‘외부의 적’이라는 의미와 함께 가토 기요마사를 상징하는 이중 의미를 획득하고 나아가 사무라이의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발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안타고니스트 호랑이 이미지는 중국과 한국에서는 성행하지 않은 일본만의 독자적인 이미지였다.
This study analyzes the image of a tiger which appears in ‘tiger hunt’ theme in the Ukiyo-e during the Edo period. Ukiyo-e is a type of engraving which represents the popularization of Art. Since Ukiyo-e was mass produced, it was approachable to the public. So, it is likely that the image of a tiger in Ukiyo-e was preferred by the public at that time. Therefore, by comparing the difference between the period when the tiger image was imported from other countries and the period when the tiger image is independently developed in Japan, this study can draw out the culturally distinctive feature of tiger image in Ukiyo-e engraving. The image of a tiger which was brought into Japan with Buddhism had highly religious features. However, as the Muxi’s painting from the Song dynasty is introduced to Japan, the image of the tiger settled as animal painting. On the other hand, due to Japan’s natural environment where the tiger cannot inhabit, the image of a tiger as an auspicious species and its significance has remained to be succeeded. The meaning of tiger image changed during the Edo period. With the development of Ukiyo-e, the distinctive, Japanese image of tiger formed. This distinction is based on the following three factors: First, painter’s desire to draw a tiger in uninhabitable environment caused a distortion in image. Second, as one-to-one confrontation composition in Ukiyo-e became prevalent, to emphasize the hero’s bravery, the tiger image was not treated as auspicious species but mere enemy and antagonist. This led the tiger's appearance to be exaggerated in a grotesque manner. Third, as Tokugawa shogunate censored the painting of real people, the tiger is substituted its role as a Kato Kiyomasa , a hero of the ‘tiger hunt’. In conclusion, Edo period’s tiger image in Ukiyo-e has contrasting double meaning; the ‘external enemy’ of Japan and the symbol of Kato Kiyomasa. Moreover, the tiger becomes a symbol of the Samurai spirit. This image of the tiger as an antagonist was a unique feature of Japan, which was not prevalent in China and Korea.

6,400원

4

동양문화에서 노경(老境)의 미 - 긴바라 세이고의 노(老) 개념을 실마리로 -

민주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8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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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노년에 대한 부정적 관념과 시선을 새로이 교정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동양의 지혜에서 찾아볼 것이다. 동양의 사상과 예술에서는 오랜 동안 ‘노(老)’의 가치를 존중해 왔다. 노 개념의 논리적 구조를 고찰하는 가운데, 동양예술 속에 이른바 ‘노경(老境)의 미학’이 내재되어 있음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긴바라 세이고가 동양미론에서 언급한 노(老)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아 노 개념의 의미체계를 고찰해 보았다. 비록 그가 노를 논한 장은 아주 짤막했지만, 필자는 그가 산발적으로 언급한 노에 관련된 의미를 구조화 해 봄으로써, 이 개념의 확장성이 매우 컸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의 다양한 측면들, 이를테면 생리, 철리, 심리, 형태, 심미의 차원을 살펴보는 가운데, 동양의 사상과 예술에서 커다란 줄기를 형성하는 정신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노는 총명(聰明), 무(無), 관조(觀照), 골법(骨法), 심간(深簡)의 원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노는 육체를 자연 속으로 환원하는 가운데 기욕(嗜慾)이 식어 사라져 총명(聰明)이 생기게 된 경지이다. 돌덩어리 하나에서 천지의 다함이 없는 정취를 맛보고, 스쳐가는 한 순간에서 무궁한 취미를 얻는 태도, 진실로 이것이 노경의 미이다. 서양이 영구한 젊음을 존중하는데 대하여 동양은 영구한 늙음을 존중하고, 서양이 기욕을 존중하는데 대하여 동양은 염담(恬淡)을 존중한다. 이러한 특징은 동서양 문화의 상위인 동시에 동서양 미술의 상위이기도 하다. 동양화의 으뜸 원리인 기운(氣韻)과 골법(骨法)도 노의 경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평담(平淡)과 간소(簡素)의 아름다움도 노의 경지에서 성취된다. 노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In this paper, I would like to look for reasons in the wisdom of the East to support the value of "the aged" in the light of a new correction to the negative perception of old age. In Eastern thought and art, people have respected the value of the aged for a long time. While considering the logical structure of the concept of the aged, I would like to find out that there could be a so-called "aesthetics of stage of the aged" in Eastern art. To this end, I have discussed the conceptual system of the aged, taking Kinbara Seigo's writings on the aged as the clue. Although his chapter on the aged was very short, I was able to confirm the scalability of the concept by organizing the contents he mentioned intermittently. While looking at various aspects of the aged such as physiology, philosophy, psychology, form, and beauty, we became aware of the spirit of its forming a large stem in Eastern thought and art. The aged is backed up by the principles of intelligence, nothingness, contemplation, bone structure and deep simplicity. As the aged gives back the body to nature, his passion has cooled and he has become smarter and cleverer. The attitude of getting a taste of the eternal atmosphere of heaven and earth from a rock and a glimpse of the taste of infiniteness at a moment is truly the beauty of the aged. The Eastern culture respected eternal aging, while the Western respected eternal youth. The East appreciated prudence and the West appreciated liking desire. The principal principles of Chinese painting, spiritual energy and bone structure, are also derived from the stage of the aged and the beauty of "calmness" and " simplicity " are also achieved from the stage of the aged. Based on our deep understanding of the aged, we can get the wisdom to live a beautiful life.

6,700원

5

書ㆍ刻의 미학적 상관성 고찰

박정이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11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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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서예와 전각이라는 서로 다르게 여겨지는 두 예술장르가 그 근원과 창작의 미학적 차원에서 상관적 동일성을 지녔음을 모색한 것이다. 양자는 한자를 매개체로 하는 조형예술이라는 점에서 필연적 동일성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영역의 예술로 인식되어 전반적인 창작 과정에서 상호 호환 되지 못함에 따라 독특한 예술성의 드러남이 미흡하였다. 이에 본고 Ⅱ장에서는 형식미 측면에서 서예와 전각의 상관성을 모색한다. 먼저 1절에서는 서예의 筆法과 전각의 刀法의 동일성 관점에서 ‘書從印入·印從書出’의 사유를 논한다. 구체적으로 書 ·刻은 骨法用筆의 주재 하에 운용되는 線 즉 劃의 直曲, 굵기, 작가의 서체적 특징 등이 형식미의 기법적 측면에서 동일하게 운용되어 서로 영향을 줌으로써 외재적 예술성이 상호 보완됨을 다룬다. 2절에서는 양자 예술에서 외재적 형상으로 드러나는 획에 생명미를 부여하는 기저에는 음양론적 시각에서 우주 자연의 對待相生的 사유가 동일하게 근간이 됨을 인식하여, 창작 과정 중에 음양이라는 두 인소에 의해 ‘㓉物로서의 획’이 상관성을 지님을 살펴본다. Ⅲ장에서는 내용미 측면에서 서예와 전각의 상관성을 탐색한다. 먼저 1절에서는 양자 예술에서 창작주체자의 기법적 주관성, 체현하고자 하는 성정의 뜻을 세우는 것이 작품에 앞서 필연적 사전단계라는 ‘意在筆·刀先’의 사유를 언급한다. 이어서 2절에서는 ‘意在筆·刀先’이 세워진 후 실질적 창작 단계에서, 用筆과 用刀가 ‘熟’의 단계를 거친 후 心手相應하여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神彩의 경지로서, 書·刻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無法而法’에 이른 ‘逸趣’의 경지를 논한다. 마지막 Ⅳ장에서는 앞서 논의된 양 측면에서의 미적 상관성을 인식함으로써 이를 계기로 서예와 전각이 비록 상이한 도구에 의해 전개되는 예술이지만, 이러한 상관성이 두 영역으로 상호 삼투되고 용해되면서, 우주의 道를 체현하는 현묘한 기예로서의 미의식이 심층적으로 체현되기를 기대하는 예술임을 밝힌다.
Calligraphy and seal engraving are character arts based on classical Chinese characters. Although they are different genres of arts, it can be said that the two arts are inevitably related in that they have been developed from the practical level to the artistic level. In this study, I examined for the relationship between these two arts by exploring the grounds of the fundamental and technical identity that they have in common in terms of a beauty of external form and a beauty of internal content from the point of aesthetic view. In terms of the beauty of form, calligraphy expresses an aesthetic sense through the brush, and seal engraving does through the graver. In seal engraving, the seal is engraved with the seal script of calligraphy, so it is said that ‘seal engraving comes from calligraphy(印從書出)’. On the other hand, calligraphy expresses a beauty of stroke and a beauty of disposition as the taste of graver on the paper, so it is said that ‘calligraphy enters from seal engraving(書從印入)’. Since calligraphy and seal engraving have a complementary relationship although they use different tools from each other, the same technique of both recreates a new classy beauty of characters by spanning two arts. In addition, in the basis of this aesthetic sense expressed as an external form in both arts, the principle as the origin of the creation and changes of the universe, symbolized as ‘Yin and Yang’, is equally applied. Moreover, a harmonious beauty of coexistence of external form is created as two contradictory elements correlatively coexist based on the thought of the Yin and Yang movement. In both calligraphy and seal engraving, the thoughts that ‘a calligrapher should have the will before wielding brush(意在筆先)’ and ‘a seal engraver should have the will before using graver(意在刀先)’ are necessary as if ‘a painter should have complete bamboo in mind before painting bamboo(胸中成竹)’ in the theory of painting in terms of pursuing a beauty of internal content as a preliminary stage for creating a beauty of external form. It is the thought of emphasizing a creator’s subjective idea and control, and it requests to conceive a design to express the will which contains the artist’s spirit and to determine technique and disposition before creation. At the same time, it warns about the negative effect of blind imitation. In the actual creation after undergoing these steps, a creator goes through the step of practice in which his mind and hands correspond as he intends. Both calligraphy and seal engraving ultimately aim at reaching the stage of ‘Transcendence(逸)’ full of natural taste in which the artist forgets any means and methods and does not need any laws. In this stage, the art work is nature itself, and it is extended to the realization of the beauty of transcendence that emerges as the beauty of simplicity, that stands for ‘the way without rules(無法而法)’. Both calligraphy and seal engraving are merely small Ways by simple skills. Although the tools used in the two arts are different from each other, they are in the same artistic area in that they aim at realizing the Way that consistently produces and reproduces all things in nature. In addition, understanding and perception of correlation that the two arts have the same origin and technique has a mutual influence on creating the new. Therefore, I hope that the deeper meaning of artistry as a delicate craft will become clearer as the aesthetic correlation of the two arts sought from the aspect of the beauty of form and the beauty of content is mutually permeated and harmonized in the stage of actual creation.

5,800원

6

徐渭의 異端的 書藝審美意識 考察

박주열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13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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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渭(1521∼1593)는 시문, 희곡, 서화 등 여러 예술 분야에 걸쳐 다양한 업적을 남긴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그가 일생을 보낸 명대 중후기는 정치·사회·경제면에서 모두 혼란한 시기였으며, 각 방면에서 변혁의 조짐이 태동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는 그러한 시대를 살면서 시대상황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혁을 주도한 진보적 지식인의 한 사람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서위에 주목하여, 당시의 세류를 거스르는 서위의 이단적 서예심미의식을 고찰하였다. 서위는 당시 문학예술계의 복고주의, 의고주의 등의 폐단을 지적하였고, 예술은 시대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서위는 이런 복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情’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에 대한 울분과 원통함이 가득 차 있었고, 예술을 통해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시문에는 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평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情을 중시하는 그의 비평의식은 결국 개개인의 개성을 인정하는 심미의식으로 드러난다. 그가 중시했던 天成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각자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문예관, 비평의식, 심미의식은 모두 당시 세태에 어긋나는 것들이었다. 시대의 조류를 정통이라고 본다면 그의 생각이나 행동은 모두 이단이다. 그러한 행동이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었든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이었든 그는 문학, 서화 예술계에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가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한 점은 지금 시대에서도 높게 평가받을만한 점이다.
XuWei(徐渭, 1521∼1593) was a talented man who has made various achievements in various fields of art such as poetry, drama, and calligraphy. In the middle and late period of Ming Dynasty, when XuWei has lived, it was confused in the political, social, and economic aspects, and the signs of innovation were shown in each field. He was one of the progressive intellectuals who led the transformation in keeping with the change of the times. In this study, I focused on XuWei who did not afraid of change and established the ingenious art world, and examined his heretical aesthetic consciousness of calligraphy against the trend of the times. XuWei pointed out the evils of the field of literature of the times, such as the retroism and the pseudoclassicism, and argued that the art should reflect the times. He sought to find an alternative to overcome the evils of this retroism in ‘emotion’. His mind was full of wrath and frustration about the absurdity and corruption of society, and he was able to express himself through art. Thus, his poetry revealed a critical awareness of the contradictions of society. His critical consciousness, which emphasized emotion, ultimately manifested itself as an aesthetic consciousness recognizing individuality. Natural Attainment(天成) he emphasized was not the absolute value that applied to everyone, but was to show their own energies. As such, his literary view, critical consciousness, and aesthetic consciousness were all contradictory at the time. If the trend of the times was orthodoxy, all his thoughts and actions were heresy. No matter whether such actions began with a complaint about society or a lamentation about his own situation, he created a big wind of change in the art world of literature, calligraphy and paintings. The fact that he did not afraid of change and pursued it deserves to be highly appreciated even in the present age.

6,400원

7

중국 대중문화 속 마오쩌둥(毛澤東) 이미지 변용 - 차용을 통한 재맥락화를 중심으로 -

배현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16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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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중국의 시장경제체제는 점차 일정한 성과를 얻었고 1990년대 이후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더욱 더 세계화와 다원화 구조를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글로벌 환경’ 속에서 중국의 대중소비문화는 이전의 절대적, 강제적 성격의 문화를 대체하여 중국 사회를 주도하는 문화가 되었다. 1990년대 확산된 대중소비문화와 마오쩌둥 열풍인 ‘마오열(毛熱)’은 중국 사회를 지배하는 중요한 문화 부호가 되었고, 사람들은 자유로운 경제구조 안에서 개인주의와 향락주의를 실현하였다. 즉, 중국의 대중소비문화는 문화의 새로운 방향과 가치를 제공하였으며 이때 마오쩌둥 이미지는 반성과 회의, 비판과 풍자적 의미를 가지며 차용과 조합을 통해 재맥락화와 이중부호적 전략으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중국 사회는 집단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마오쩌둥 이미지는 이미 과거의 지나간 역사가 되어 직접적으로 대중소비문화의 표층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이에 따라 현대미술에서 마오쩌둥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 재현, 변화하였는지 연구하여 과거와 현대 회화 작품 속 마오쩌둥 이미지의 변용에 따른 중국의 문화정체성에 관해 이해하고자 한다.
1980年代以后的中国市场经济体制逐渐成了一定的成绩, 进入1990年代, 网络的发展將加快全球化和多元化现象, 这样的‘全球环境’之中, 中国社会和文化系统跟之前的绝对性质的文化不同, 取代了中国的大众消费文化。 1990年代, 大众消费文化和‘毛熱’成为了中国社会的重要文化符号, 人们在自由经济结构中, 实现了享乐主义个人主义。也就是说, 中国的大众消费文化提供了文化的新方向和价值。此时, 毛泽东形象含有了反省和会议、批评和讽刺意义, 又是其意味已经通过借用的方式转成了再组织化, 双重符号。 因此, 中国社会更关注了个人的利益比集体的利益, 毛泽东形象已经成为了过去的历史, 直接塑造了大众消费文化的表层人物形象。由此在中國现代美术上把毛泽东形象如何再现、消费、变化研究, 根据过去和现代绘画作品中的毛泽东形象带来的变化, 理解中国的文化特性与身分。

6,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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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전통문양의 현대화를 통한 패션문화상품 디자인 개발연구

이성규, 구수민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187-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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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대사회에서 전통문양은 민족의 시대적·정신적 가치가 깃들여 있는 상징적 표현의 문화요소로 타문화와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특히나 감성문화중심의 시대에서 문양은 다양한 문화상품에 여러 형태로 표현되고 , 패션과 문화의 융합에서는 트렌드와 유행의 감성에 발맞추어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의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문양의 특성을 살려 경쟁력을 갖춘 패션문화상품 디자인이 미흡한 상태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전통문양 중에서 태극문양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하여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다가가 국내·외적으로 크고 작은 행사에서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알릴 수 있는 패션문화상품에 응용하여, 기존의 태극 이미지에서 벗어난 새로운 느낌의 패션문화상품의 디자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특히 태극문양은 국가이미지 형성에 좀 더 치중하여 주도적인 역할이 되는 우리나라의 문양으로 음과 양으로 하늘과 땅을 의미하며 회전되거나 교차하는 역동적인 이태극(二太極)의 음양태극(陰陽太極)문양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어 나타났다. 이러한 이태극의 상징적인 의미와 미적 가치를 재조명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감성적인 패션문화상품으로 태극문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디자인을 개발하고 제작하여 태극문양의 현대적 활용과 발전 가능성을 도모하고자 패션문화상품 7점을 제작하였다. 작품에서는 태극문양의 미적 가치와 조형적 미를 지속적으로 창출 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다. 유물에 표현된 태극 문양을 현대적 감성 디자인으로 변형하여 새로운 표현기법과 젊은 감각을 표현하고자 핑크 색감을 넣어 전통미와 현대미의 융합적 조화를 이루고자 하였다. 자켓·블라우스·티셔츠·원피스의 의류와 스카프·앞치마·가방의 잡화에 태극문양을 표현하여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기존의 태극문양이 가진 전통적인 무게감과는 다른 패션문화상품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우리의 감성과 문화중심 시대 변화에 발맞추어 태극문양을 차별화된 패션문화상품으로 제시함으로써 세계 시장에 태극문양 문화상품을 선보이는 기회가 확산되어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알리고자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In a global modern society, traditional culture is a cultural component of symbolic that contains the period and spiritual values of the people and is unique to other cultures. In the era of emotional culture, culture is expressed in various forms in various cultural products, and in fashion and cultural fusion. However, we don’t have enough cultural fashion product design that contains Korean unique symbolic characters. In this study, the Taegeuk mark was reinterpreted with the modern sensibility to present a new way of feeling away from the traditional Taegeuk image by applying it to fashion cultural products that can approach Korea naturally in everyday life and promote Korea at events, both at home and abroad. In particular, the Taegeuk mark was the most dynamic Korean symbol that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formation of the national image, representing the sky and the earth with yin and yang. In redeliberating the symbolic meaning and aesthetic value of the Korean Taegeuk, we have made seven fashion cultural products that promote the modern use and development of Taegeuk culture by developing and producing designs that actively utilize Taegeuk culture as emotional fashion cultural products. It was designed to create an aesthetic value and a figurative beauty of the Korean national flag. To express the new technique and youthful sensibility by transforming the Taegeuk symbol expressed on the relics into a modern emotional design, the color of pink was added to create a fusion of traditional and contemporary beauty. By expressing the taegeuk mark in the clothing, scarf, apron, and bag of the jacket, blouse, shirt, dress, dress, and dress, the design direction of fashion cultural products different from the traditional Taegeuk mark. In this study, we want to present Taegeuk culture as a differentiated fashion cultural product in line with our sensibility and the changing cultural age, thereby promoting our image in the global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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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초등학교 미술과 서예 분야 교육과정 및 교과서 분석 고찰

이재우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21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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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교육과정의 변천에 따른 서예 교육과정의 변천과 현행 교육과정 내의 초등학교 3-6학년 미술 교과서 17종 중 순수 서예영역이 포함되어 있는 12종의 학습 지도 요소를 추출하고 분석한 글이다. 우리나라 서예 교육은 1945년 광복 직후부터 1954년 제1차 교육과정 전까지 습자교육(한자, 한글)으로 시작되었고, 제3차 교육과정 시기인 1981년까지는 미술교과의 15-20%의 비중을 차지하는 별도의 서예 교과를 4-6학년을 대상으로 지도하였다. 특히 5차 교육과정에서는 그 대상을 3학년으로 확대하여 판본체, 궁체(정자, 반흘림, 흘림)를 지도하였다. 이후 6차 교육과정에서 반흘림은 축소되고 흘림은 제외되었으며, 7차 교육과정부터 현재까지는 판본체와 궁체 정자만 지도하고 있다. 6차 교육과정에서 13-19%를 차지하던 것이 7차 교육과정에서는 13%, 2007 개정 미술과 교육과정에서는 8%,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5.6%로 급격하게 줄었다. 이것은 서예교육이 실질적인 수업이 아닌 참조용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3-4학년 교과서 내 체험영역에서는 판본체의 고전자료와 현대자료를 제시하였고, 5-6학년에서는 판본체와 궁체의 비교를 통해 궁체의 특징을 체험하도록 하였다. 서제는 판본체 18개, 궁체 정자 12개 등 모두 30종이 있으며, 교과서 별로 적게는 2개, 많게는 6개가 제시되었다. 서제 30개 중 세로쓰기는 19개(63.3%), 가로쓰기는 11개(36.7%) 제시되었다. 감상영역에서 전통작품 4점, 작가작품 12점, 생활(기타)작품 13점, 학생작품 14점으로 모두 43점의 작품이 제시되었다. 창작 서예영역은 5종의 교과서에 있으며, 영역 내에 감상 및 응용작품의 수는 생활(기타) 25점, 작가 8점, 학생 5점, 전통 0점 순으로 확인되었다. 서예교육 발전의 원동력은 시대의 흐름과 쓰임에 따른 한글의 변화와 발전이라 할 수 있다. 현행 교과서 내 한글서예를 응용한 다양한 작품을 제시한 것은 학생들의 서예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 것이라 여겨진다. 3-4학년은 판본체, 5-6학년은 궁체라는 천편일률적 교육방식은 향후 교과서 편찬 시 재고되어야 한다. 아울러 향후 서예교육에서 기존의 임서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 개개인의 감성을 담아내는 창의적인 서예를 고려한다면 한글서예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서체미를 제시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 하겠다. 초등학교 서예교육은 전통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다 개성적이고 다양화된 한글서예 교육 활동이 이루어져야만 현 시대적 상황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study investigated the changes of calligraphy curriculum according to the change of curriculum and extracted and analyzed the learning instruction elements from 12 kinds of textbooks including the pure calligraphy area among 17 kinds of elementary school 3-6 grade art textbooks in the present curriculum. Calligraphy education in Korea began with writing character education(classical Chinese character, Hangeul) from the independence in 1945 until the first curriculum in 1954. Until 1981, during the third curriculum, a separate calligraphy course, which occupies 15-20% of the arts curriculum, was taught for grades 4-6. Especially, in the 5th curriculum, the subject was expanded to the third grade, and taught the block-printed script and the court style script(regular script, semi-cursive script and cursive script). In the 6th curriculum, the part of semi-cursive script was reduced, and that of cursive script was excluded. From the 7th curriculum, to the present, only the block-printed script and the regular court style script are instructed. Calligraphy area occupied 13-19% in the 6th curriculum, but it was reduced to 13% in the 7th curriculum, 8% in the revised art curriculum in 2007, and 5.6% in the revised art curriculum in 2009. This means that calligraphy education can be degraded to reference use rather than practical instruction. In the 3rd and 4th grade textbooks, classical materials and modern materials od the block-printed script were presented. In the fifth and sixth grades, students were asked to experience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urt style script through comparison of the block-printed script and the court style script. There are 30 kinds of calligraphic sample, 18 pieces of which are written in the block-printed scripts and 12 piece of which are written in the regular court style scripts. Among the thirty samples, 19(63.3%) are vertical writing and 11(36.7%) are horizontal writing. In the area of appreciation, 43 works are presented including 4 pieces of traditional works, 12 pieces of artists’ works, 13 pieces of life works(the others) and 14 pieces of students’ works. Only five kinds of textbooks include the area of creative calligraphy, and the number of appreciation and applied works in the area is 25 pieces of life works(the others), 8 pieces of artists’ works and 5 pieces of students’ works, and traditional works are not presented. The driving force of calligraphy education development is the change and development of Hangeul according to the flow and use of the times. Presenting various works applying Hangeul calligraphy in current textbooks is considered to enhance the students’ discernment in calligraphy and improve the quality of education. The monotonous method of educating students, that teaches students in grades 3-4 the block-printed script and lets students in grades 5-6 experience the court style script, should be reconsidered in future textbook compilations. In addition, it would be a good idea to present a various calligraphic beauty of Hangeul calligraphy if they want to break from the conventional education of emulating and want students to do the creative calligraphy that captures the emotions of the individual students. In elementary school calligraphy education, it is necessary not only to preserve the beauty of tradition but also to carry out more individualized and diversified Hangeul calligraphy education activities, so that it can meet the present sit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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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석도(石濤)의 심(心)의 미학

장선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24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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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도의 핵심 사상은 심(心)에 있다. 그의 중심개념인 ‘일획론(一劃論)’도 궁극적으로는 심에 대한 논의이다. 즉 ‘일획’은 모든 만물의 근본원리로서 만물을 일체로 여기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그 외에도 심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필(筆)과 묵(墨)’, ‘무법(無法)과 유법(有法)’, ‘전통과 예술창작’, ‘나와 대상 간의 소통’은 석도 미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는데, 이들 모두 심과 관련된 논의들이다. 석도가 살았던 명말∼청초 때에는 유ㆍ불ㆍ도 삼교합일의 성격이 가장 심화된 시기였다. 그의 심의 사상역시 유ㆍ불ㆍ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석도는 단순히 기존의 심학을 종합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이론을 전개해나갔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물을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인식으로서의 심을 강조했다. 둘째, 일체의 속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심을 강조했다. 셋째, 나와 대상 간에 소통하는 심을 강조했다. 넷째, 대립적인 것들이 조화롭게 통일된 불이(不二)로서의 심을 강조했다. 이와 같이 석도는 일정한 형식이나 전통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예술정신을 추구하며, 다른 것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포용하며, 대상과 서로 소통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The core ideology of Shitao resides in the Mind. One-stroke theory, his main concept, is discussion on the Mind ultimately. He considered it as 'Single-stroke' originated from the Mind that thinks of all things in a body as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all things. Besides, the Mind is used as various meanings. For example, 'Brush and Chinese ink', 'the Way of Nothingness and the Way of Being or Doing', 'Tradition and Creation of Art', 'Communication between Object and Me' were most important keywords in the aesthetics in Shitao, but all of which are discussions related to the Mind. Period from Late Ming Dynasty through Early Qing Dynasty when Shitao lived was that the unity of the three religions like characteristic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was most deepened. His ideology of the Mind was affected by all the characteristics like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However, Shitao has developed his unique theories on his own, not simply accept the existing School of Mind synthetically. Accordingly, his School of Mind has originality in his own way. From the characteristics above, it may be summed up as follows. First, he emphasized the Mind as recognition which takes and judges things as they are. Second, he emphasized the free Mind which could not be tied in any constrains. Third, he emphasized the communication between Object and Me'. Fourth, he emphasized the Mind as non-duality which the antagonistic relationship is united harmoniously. As above, Shitao thought that it needed to pursue very liberal spirit of art escaping from the fixed form or bound by tradition. He thought that it required tolerance or generosity, not exclude the difference from me. In addition, he thought that it needed to be unified through the communication each other, not interpret and understand the object unilater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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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예, 그 心身合一의 미학

장지훈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273-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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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란 붓을 잡고[聿] 말을 하되[曰], 내면의 세계를 아름다운 문자로써 전달하는 시각예술이다. 서예는 표현된 문자라는 구상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시각예술 중에서도 추상예술에 가깝다. 상형문자와 같은 篆書가 점차 기호화되고 서사도구가 발달하면서 秦漢 이후로 書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한정적이고 추상화된 문자기호에 정신과 마음을 담아내어 예술화시킨다는 것은 매우 추상적 행위임은 분명하다. 때문에 서예는 형이하를 통해 형이상을 추구하는 철학적 차원의 예술에 가깝다. 즉, 아름답게 서사된 글씨는 형태에 해당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곧 마음[心]과 관련된다. 그래서 서예는 본질적으로 ‘마음의 그림[書, 心畵]’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여 글씨와 인간을 동일시 여기는 사고[書如其人]를 계승해왔다. 역대로 ‘心法’, ‘傳心’, ‘心學’ 등의 명제를 통해 서예는 단순한 문자예술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내는 예술로서 心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왔다. 그렇다보니 “마음이 정성스러우면 그것이 행실로 나타난다[誠於中形於外].”는 사유는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다[心正則筆正].”라는 心書一元的 사유로 이어졌다. 역대 서가들이 ‘心手合一’, ‘心手雙暢’ 등을 주장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양적 사유의 큰 틀에서 보면 마음은 몸의 주재자이고, 마음과 몸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로 간주한다. 그래서 신체를 통해 발현되는 書 또한 당연히 心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다만 心에 대한 이해에 따른 철학적 사고가 달라지듯이 서예 또한 心에 대한 철학적 관점에 따라 그 표현상에서도 차이가 있다. 즉, 유가의 道心이나 正心, 도가의 虛心, 양명학의 童心 등 그 마음[心]에 대한 학문적 지향점에 따라 서예인식과 창작경향도 달라진다. 구체적으로 유가적 心을 지향할 경우 서예창작에서 中和, 中道, 心法, 存天理去人欲, 主一無適 등을 중시하여 謹嚴端正의 美를 추구한다. 도가적 心을 지향할 경우 拙, 怪, 醜美, 愚拙, 無爲自然, 歸於無法 등을 중시하여 反中和的 自然美를 추구한다. 양명학적 心을 지향할 경우 童心, 狂狷, 天機, 性靈, 眞情 등을 중시하여 無一定法의 破格美 ․ 個性美 등을 추구한다. 이처럼 동양의 心身合一的 사유는 서예에서 心書一元의 사유로 발현되고 있다.
Calligraphy is the visual art communicating the inner world with beautiful letters of holding a brush and speaking. Although calligraphy is an expressive character, it is technically more like abstract art in visual arts. As the numbers like hieroglyphics became more symbolic and the introduction of calligraphy began to develop, it was clear that the limited abstract letterhead with the spirit and the spirit were artistic. Therefore, calligraphy is more like a philosophical art, which pursues a figurehead through his brother-in-law. In other words, beautiful handwriting is a form, but making it possible is about the mind. So calligraphy started from the premise that it was essentially a painting of the mind, and has inherited the idea of equating letters with humans. As an authority, calligraphy has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the inner world as art that captures the mind, not merely textual art, through the themes of psychology, whole mind and psychology. Thus, the reason that "if the mind is sincere, it appears to be the act of doing it." led to the reason that "the heart is also bold." In this context, it is understandable that calligraphers used to claim '心手合一' and '心手雙暢.' The mind is the body's master in the grand framework of Oriental reasons, and the mind and body are considered one, not the other. Therefore, the writing that is expressed through the body also has an inseparable relationship with the mind. However, as the philosophical thought of understanding the mind changes, calligraphy also differs in its expression according to the philosophical view of the mind. In other words, calligraphy recognition and creative trends vary according to the academic orientation of the center and mind of the Confucianism, the spirit of the ideology of Taoism, and the spirit of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In particular, if it is aimed at the inner side of the Confucianism, it seeks the beauty of 謹嚴端正, 中道, 心法, 存天理去人欲, 主一無適, etc in calligraphy. In the case of the ideology of Taoism direction, 反中和的, 醜美, 拙, 愚拙, 怪, 無爲自然, 心, 歸於無法, 自然美, etc. If directed toward inner side of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focus on 童心, 狂狷, 天機, 性靈, 眞情, and 破格美. As such, East Asian causes are being expressed in 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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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의 ‘狂者’ 정신과 그 자득 경지

전상모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297-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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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狂狷’ 사상은 중국사상사에서 혁신적이면서도 혁명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양명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狂’의 聖者이자 ‘聖’의 ‘狂者’였다. 양명은 양지학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어 다른 사람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狂者의 胸次’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성’의 경지에 들어섰지만 ‘광’을 배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광’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광’과 ‘성’을 하나로 보았으며 심지어는 ‘광’을 ‘성’이 되는 필수조건으로 보았다. 그는 공자가 제시한 ‘광견’ 사상을 적극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서로 다른 ‘유가적 聖人’과 ‘유가적 狂人’의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그 자신도 ‘狂病’을 치유하기 위해 ‘광자’ 정신을 일생 견지했던 ‘聖狂’이었다. 양명은 ‘광자’를 성인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지닌 사람으로 보았다. 그런 ‘광자’의 기질을 지닌 曾點을 높이 평가했다. 증점의 기상은 어떠한 의도나 기필이 없기 때문에 증점과 같은 ‘광자의 흉차’를 지닌 사람은 어떤 장애나 막힘도 없어서 어디를 가든 ‘自得’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양명은 각 개인들이 지니고 있는 기질이나 자질의 특성을 중시했고, 궁극적 지향점은 양지의 실현에 있었다. 양명은 기질의 특수성을 지닌 증점을 중용의 덕을 갖춘 군자로 평가했는데, ‘광자’의 기상을 인식하는 것이 학문을 하는 과정에서 ‘자득’의 관건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양명은 政事에 관여하건 名敎를 실천하건 행위 주체의 ‘和樂’한 정신경계가 선재되어야 한다고 했다. 양명이 말하는 ‘화락’은 주변 환경의 반향이나 평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심적인 자아감수에 있다. 양명은 이를 ‘자득’이라고 일컫고 그가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도 또한 어디를 가든 자득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었다. 양명은 광자가 세속적인 오염을 초탈하는 데 용감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체의 세속적인 인연이 모두 性의 本體가 아님을 아는 데 있다고 한다. 이는 양지의 경지 즉, 혼연히 하나가 되어 분별이 없고, 對待가 없는 자유자재의 경지이다. 이런 경지가 세속적인 구속을 초월하는 것은 ‘자득’의 관건이다. 창조적 영감은 초월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양명의 ‘광자’ 정신도 자유의 정감이 표출된 자유정신의 변형이라 하겠다.
Confucius' thought of ‘Progressiveness and Obstinacy(狂狷)’ has innovative and revolutionary meaning in Chinese history of thought. Yangming was a ‘Saint’ of ‘Progressiveness’ and a ‘Progressive Man’ of ‘Saintliness’. Yangming was able to attain ‘the mind of a progressive man’ without being shaken by the evaluation of others because he had self-conviction about the study of the innate knowledge. He reached the stage of a ‘Saint’, but he did not reject nor give up ‘Progressiveness’. He rather viewed ‘Progressiveness’ and ‘Saintliness’ as one, and even saw ‘Progressiveness’ as a necessary condition to become a ‘Saint’. He actively interpreted Confucius’ idea of ‘Progressiveness’ and ‘Obstinacy’, and developed it into the two different ideas of ‘Confucian saint’ and ‘Confucian progressive man’. He was a ‘saintly progressive man’ who adhered the spirit of a ‘Progressive man’ for a lifetime in order to heal his ‘ills of progressiveness’. Yangming regarded a ‘progressive man’ as a person who had the possibility of becoming a saint, and he highly appreciated CengDian(曾點) with such a temperament of a ‘progressive man’. Because CengDian’s spirit has no intention or assurance of fulfillment, the person who has the ‘mind of a progressive man’ like CengDian does not have any obstacles or interruptions so that he is always able to accomplish ‘self-attainment’ wherever he goes. Yangming emphasized the temperaments or qualities of each individual, and his ultimate goal was to realize the innate knowledge. Since Yangming believed that the recognition of a progressive man’s spirit was the key to accomplish ‘self-attainment’ in the process of studying, he evaluated CengDian, who possessed the specificity of the temperament, as a man of virtue who possessed a virtue of the mean. Yangming said that the spiritual boundary of ‘Harmonious Enjoyment’ of an action subject should preexist regardless of whether he was involved in political affairs or practiced the teaching of Confucius. ‘Harmonious Enjoyment’ that Yangming said is not in the repercussions or evaluations of the surrounding environment, but in the individual's inward self-supervision. Yangming referred to this as the ‘self-attainment’, and the highest stage that he pursued was to accomplish self-attainment wherever he went. Yangming said that the fundamental reason why a progressive man can be courageous in avoiding secular corruption was because he knew that all secular ties were not the substance of nature. This is a stage of the innate knowledge, and it is a stage of liberty in which there is no differentiation or correlation. It is the key to accomplish the ‘self-attainment’ that such a stage transcends the secular restraint. A creative inspiration comes from transcendence. In this regard, it can be said that the spirit of a ‘progressive man’ that Yangming pursued is a variation of the spirit of liberty that the feelings of liberty is expressed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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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조선조 書論에 나타난 철학과 예술성의 상관관계

조민환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317-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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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를 기교 차원에서만 평가하는 예술이 아니고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예술’로 이해할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筆跡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같이 서로 다른 필적에는 각 예술가마다 마음속에 담긴 서로 다른 철학적 지향점이 담겨 있고, 이런 사유는 기교 이외의 차원에서 이해되는 서예일 경우는 철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예창작과 관련해 철학적 사유를 강조하는 것은 독서를 통한 학문 및 文字香과 書卷氣를 강조하고 아울러 淸高하면서도 古雅한 文氣와 士氣를 담아낼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런 점은 서예는 단순히 문자가 갖는 실용적, 기교적 차원에서만 논의되는 예술이 아니라 철학과 미학에 바탕한 예술이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조선조 서예이론에서도 이런 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즉 한 서예가를 평가할 때 기교의 工拙에 대한 것과 더불어 학식과 인품을 겸하여 평가하곤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같은 사유에는 ‘글씨쟁이[書匠]’ 혹은 ‘글씨 노예[書奴]’에 머무르지 않는 ‘진정한 서예가’와 ‘서예가 어떤 사유를 표현했을 때 품격 높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 담겨 있다. 이런 질문에는 서예를 ‘爲己之學’ 혹은 인문예술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유도 담겨 있다. 본고는 이런 점을 조선조 서론에 나타난 철학적 사유와 연계하여 세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心畵’로서 서예작품이 갖는 의미를 유가 인격미학에 바탕한 氣象론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다음 文字香과 書卷氣를 강조하는 사유를 통해 有識과 無識으로 서예 품평과 관련된 높낮이 판별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학문을 기준으로 한 예술성 평가를 韓濩 서예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런 연구를 통하여 조선조 서예이론에서 철학적 함의가 갖는 의미를 확인하고자 하고 아울러 격이 높고 창의적인 서예를 창작하려면 자신의 예술창작과 관련된 예술적 고민은 물론 철학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What we can confirm when we understand calligraphy as 'art of expressing mind' rather than art that only evaluates artistry is that the trace of brush varies according to how a mind is expressed. In this different handwriting, each artist has a different philosophical orientation in his mind. From this point of view, it can be seen that the calligraphy which is understood at the level other than the technique is very closely related to the philosophy. In this way, emphasizing philosophy in calligraphy is related to emphasizing the energy of reading books and the scent of letters through reading, and emphasizing the power of clear and noble preciousness. In this sense, calligraphy emphasizes the fact that it should be art based on philosophy and aesthetics, not merely the practical aspect of the character and the art discussed only at the technical level. When evaluating a calligrapher in the JoSeon Dynasty, it is evaluated both in terms of familiarity with craftsmanship and sincerity as well as learning and personality. The evaluation includes questions such as "a true calligrapher" and "a calligrapher who does not stay in the "Artisan calligraphy" or "Slave of calligraphy". In this paper, I tried to examine the answer to these questions in three aspects in connection with the philosophical thought that appeared in the introduction to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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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북학파 癖ㆍ癡 추구의 사상적 배경

한상일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40호 2018.08 pp.34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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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에서는 문체반정을 야기한 패관소설이 등장하고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다양한 취미가 나타났다. 서화의 완상 및 수집, 원예와 분재, 산수유기, 독서, 다도의 유행 등 새로운 기풍의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현상들은 ‘癖⋅癡’로 요약되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북학파 역시 그 중심에 서게 된다. 이 글에서는 북학파의 ‘벽⋅치’추구 경향을 人物性同異와 天機論, 四民制度와 身分差別論 그리고 性理學的 世界觀인 玩物喪志論을 중심으로 그 사상적 배경을 알아본다. 북학파는 운명에 대한 거부와 절망보다는 긍정과 수렴을 통한 적극적 삶을 추구하였으며, 동시에 비판적 현실 대응과 낭만적 현실 초월을 병행해 나갔다. 성리학이 주도하던 사회체제 하에서 완물상지로 여겨졌던 末技, 餘技 또는 雜技들을 통해서도 道에 이를 수 있다는 북학파의 전향적 사유는 玩物을 格物로, 그리고 至樂으로 격상시켰으며 그들의 탈주자학적 사상은 당시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In 18th century of Joseon Dynasty, Paegwan novel (a genre of novel about the stories and legends of ordinary people) which led to the reform of the style of literature appeared, and various hobbies appeared among the intellectual class. The culture of the new style such as the appreciation and collection of the calligraphy and paintings, gardening and pot planting, writing journal of landscape sightseeing, reading, tea ceremony were formed. These new phenomena are characterized by ‘Mania(癖)⋅Obsession(癡)’, and the school of Northern studies is at the center of them. In this study, I examined the tendency of pursuing ‘Mania⋅Obsession’ of the school of Northern studies and investigated their philosophical background, focusing on the theory about whether a man has the same nature as the other things does and the theory of heaven-gifted nature, the class system of dividing people into four groups and the theory of social discrimination, and the theory that being indulged in exterior things makes people lose their will. The school of Northern studies pursued an active life through affirmation and convergence rather than the rejection and despair of destiny. At the same time, it critically responded to reality and romantically transcended reality. The school of Northern studies argued that it was possible to attain the Way through the trivial and miscellaneous arts, which has been considered as the object of thinking that being indulged in exterior things made people lose their will in the social system led by Neo-Confucianism. Their forward-looking ideas made the indulgence in exterior things become considered as the investigation of things or the supreme pleasure, and their thought breaking from Neo-Confucianism gave the direction that the society at that time should a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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