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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38호 (10건)
No
1

혜원 신윤복 「傳神帖」의 글로컬리즘(glocalism)적 고찰

권윤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8호 2018.02 p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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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는 서민들의 생활을 그린 그림으로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과 풍류가 담겨있다. 풍류는 하나의 미의식이면서 삶의 한 양식으로 풍류문화는 높은 정신세계와 예술이 결합된 일종의 예술경계이다. 풍류는 우리 문화의 icon으로 멋과 맛의 구현이며 소요와 유람을 통하여 나타난다. 혜원 신윤복의 「전신첩」은 우리 풍류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속화이다. 혜원「전신첩」의 미학적 특질은 첫째 우리 풍류의 상징이며, 둘째 동양예술학 발전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고 셋째 글로컬리즘적인 고찰이 가능함에 있다. 「전신첩」의 글로컬리즘적은 ‘중심=변방’·‘지역=세계’·‘보편=특수’라는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전신첩」의 심미경계가 개개인의 즐거움을 지향하는 獨樂의 境界·자신이 처한 자연환경과 조화를 지향하는 同和의 境界·집단 구성원사이의 사회환경과 조화를 지향하는 同樂의 境界로 고찰하여 볼 수 있다. 이러한 고품격의 정신경계가 세계와 소통함으로 공감될 수 있는 우리 문화코드인 한류이다. 혜원의 「전신첩」에는 세계가 열광하는 한류의 원형이 담겨있다. 한류의 본질은 우리의 예술적 풍류와 우리의 풍류적 예술이 결합함에 있다. 우리 풍류는 한류의 DNA이면서 원천이다. 한류는 우리문화의 세계화이다. 이는 우리 풍류의 세계화로 K-pop·K-drama·K-beauty등에서 알 수 있다. 「전신첩」에 나타난 獨樂·同和·同樂의 審美境界는 우리 풍류의 본질로 한류로 드러났다. 이는 혜원의「전신첩」이 가지고 있는 글로컬리즘적 심미경계이며 한류의 원형이다.
Genre paintings, which describes the lives of ordinary people, has lifestyle and Pungnyu of our ancestors. Pungnyu is aesthetic consciousness and a way of lives. The culture of Pungnyu is a kind of art boundary that combines high spirits and art. Hyewon’s 'Jeonsincheob'('傳神帖', a kind of spirit trasfered drawings book) is a genre painting which represents Pungnyu and shows various activities at that time. Therefore, we can understand our own spirit and soul through appreciating his paintings. It is through communication and convergence that we can understand the modern civilization. Thus, Hyewon’s 「Jeonsincheob」can be considered in terms of glocalism, which means the combination of globalization and localization and can be explained by the relation of universality=particularity, Korean wave=globalization, and decentration. This is the boundary which means playing together(“同遊”), which means enjoying together("同樂”), and which means harmony(“同和”), This boundary is the Korean culture code which can be linked and have empathy to the outside world. Hyewon’s 'Jeonsincheob' symbolizes the original form of Korean wave which the world is enthusiastic to. Korean Pungnyu is the source of Korean wave and seems like DNA. The source of Korean wave is the combination of Korean artistic Pungnyu and arts which has the Pungnyu. Korean wave, which is globalization of Korean culture, is propagation of the Pungnyu that can be said to the flower of Korean culture. Pungnyu takes place as element of music, art, and poetry and calligraphy from Korean art. Korean Pungnyu has 'heung', characteristic that make the world touching. So, various Korean popular culture has received attention of the world. It can be proved from recent K=drama, K=pop, K=beauty and so on. In addition, Korean Pungnyu culture can be the mainstream of cultural nation. Hence, the study to the Pungnyu culture is foundation and basis to support the sustenance and diffusion of Korean wave. It can apprehend the source and origin of Korean Pungnyu. Korean Pungnyu culture is the academic theory, which is also makes possible the modern succession of the disconnected culture and formulation of high=ㄴlevel sprit culture. The Pungnyu is an icon of Korean culture, realization of taste, and happens through “stroll”, which means the walking peacefully, and “sightsee”, which means go sightseeing. Korean Pungnyu culture shown in 'Jeonsincheob' is the boundary which means playing together(“同遊”), which means enjoying together("同樂”), and which means harmony(“同和”) in the perspective of glocalism, and which is the source of Korean wave sympathizing and communicating with the world. Therefore, it is the importance of 'Jeonsincheob' that it can make Korean wave diffuse worldwide to study about the value of Koran Pungryu culture.

6,900원

2

동서양의 접점에서 파빌리온의 기원과 전개 : 소아시아와 인디아 대륙 사이에서

김영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8호 2018.02 pp.3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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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이슬람 시기를 거쳐 소아시아 지역과 불교를 중심으로 인디아 지역의 파빌리온 건축의 의미론적 해석을 다루었다. 파빌리온의 기원과 발전을 통한 의미 변화는 네 개의 과정을 통해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초기 파빌리온은 궁전과 같은 지배자의 권위를 과시하는 장소에 세웠고 지배자를 위한 중요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지배자의 건물을 표상하기 위한 공간은 건물의 부속 정원 공간에 카피되어서 낙원과 같은 이상적 공간을 구성하는데 적용되었다. 한편 파빌리온은 종교적 이상론인 금욕주의에 대해 숙고하고 교훈을 제공하는 장소를 표상하기도 했다. 즉, 부처와 같은 성인의 거주처는 교훈적이고 상징적 장소를 대신하는 매개체로 파빌리온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파빌리온은 죽은 지배자를 대표하여 자신들이 왔던 고향과 유사한 공간에 지배자의 영묘가 되어서 낙원과 일체화시켰다. 결국 파빌리온은 권위적이고 이상적이며, 종교적이면서 죽은 자의 장소를 표상하는 중심 공간에 세워졌다. 권위적인 공간을 재현한 파빌리온은 점차 낙원의 공간과 결합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고행자들을 위한 종교적 도구로서 사용되어, 죽은 자를 기념하는 권력의 장소이자 이상적인 낙원을 지상에 환원하고자 중앙에 영묘 파빌리온을 건립함으로서 과거 자신들이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차하르바그(Chahar Bagh)를 재현하고자 했다.
This study deals with the semantic interpretation of pavilion architecture, focusing on the regions of Asia Minor through the Mesopotamia - Persia - Islam period and those of India in Buddhism. The semantic changes through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the pavilion can be distinguished through four processes. First, the early pavilion was built in a place that symbolized the ruler’s authority like a palace and was used as an important space for the rulers. Also, the place that represents the ruler's building was copied into the garden space to construct an ideal space such as the Paradise. The pavilion, on the other hand, represented a place to ponder an ascetic asceticism and to provide lessons for people. Finally, the pavilion represents the dead ruler in a space similar to the home where they came from, integrating the mausoleum of the ruler with the Paradise. Through these four processes, the pavilion was eventually built into a central space for representing places for the authority, the ideal, the religion, and the dead. The role of the pavilion was transformed into the Paradise where the pavilion was erected as space became increasingly copied and spread in other places in the space of authority. On the one hand, it was used as a religious tool for the ascetics. In order to revivify the pavilion to an ideal paradise to commemorate the dead, gardens were built on the mundane world. At their center, a mausoleum pavilion was set up to recreate the Chahar Bagh (four gardens), which had been continuously thought of as their ideal and authoritative places.

6,600원

3

동양인의 예술과 윤리 : 한·중·일의 인성과 예술

민주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8호 2018.02 pp.6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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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 중국 일본의 인성과 예술에 대한 비교고찰을 통하여, 동아시아인의 예술과 윤리의식을 해명할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흔히 비교고찰을 행한다고 할 때 양자의 비교를 염두에 둔다. 하지만 한·중·일과 같은 삼자의 비교고찰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어떤 기준이나 척도를 잠정적으로 마련한 다음, 각각이 그 좌표 가운데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따라 정도의 차이를 발견하면서 그 특징을 찾아낼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심성과 예술에 관해서는 ‘한국인’, ‘한국 병’, ‘한국인의 의식구조’, ‘한국인의 미의식’ 등의 논제 아래 산발적으로 논의해 왔다. 이러한 논의를 한층 더 심화 시켜나가기 위해서는, 한·중·일 삼국에 특정 의식이나 사항의 유무에 따라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생각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고유성이고 독창성이라고 하는 사고에 갇혀있었다. 좀 더 열린 시각에서 우리에게 없는 것, 즉 결여된 것도 특색일 수가 있고, 또 이웃 나라와 함께 공유하면서도 그 특색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예술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걸작이라면 그 작품에 품격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이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생활에도 품격이 있기를 요구한다. 우리가 한·중·일의 인성과 예술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비교 정리한다고 할 때, 결국 ‘품격론’의 체계를 끌어들여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중·일 삼국의 성격을 비교할 경우, 비교의 잣대는 인물론이나 예술론에서 다루었던 품격의 유형 개념으로 귀결될 것이다. 한·중·일이 지향하는 예술과 인간의 품격에 대한 의식과 그 선호는 의미 있는 비교고찰의 성과가 될 것이다.
This paper aims to explain the art and ethics of East Asian people by reviewing the comparison of Korean, Chinese, and Japanese personalities or characteristics. It is often said that comparative research is given to the comparison of two items. However, the comparison of the three items like the culture of Korea, China, and Japan is not so simple. It is necessary to temporarily establish a criterion or scale and then discover its personality, finding a degree of difference depending on where each is located among its coordinates. So, researchers need to review the human characteristics of the three nations and the ideas referenced in their art forms in more depth. And then, from there, the standard for comparison is based on which they can estimate and measure the difference. The Korean personality and art has been discussed intermittently under topics such as ‘Korean’, ‘Korean Disease’, ‘Korean Aesthetic Consciousness’ and ‘Korean Consciousness Structure’. To further deepen such discussions, it is necessary to look into the three nations in detail, depending on the presence of certain consciousness and items. Our thoughts were preoccupied with the notion of uniqueness and originality that existed only in our country. We need to recognize from a more open point of view that what we don't have - or lack - can be characteristic and what we have can share with our neighbors. We ask that the work should have ‘decency’ or dignity for a masterpiece worthy of the annals of art. Similarly, we are required to have dignity in our lives. When we compare Korean, Chinese and Japanese personalities and art from a macro-positional point of view, we can finally explore ways to utilize the system of decency. In other words, when comparing the personalities of the three countries, the standard of comparison will result in the concept of the type of decency that was addressed in the theory of personality or art. I think the consciousness and preference for the type of decency in human personality and art will be the meaningful result of comparison.

7,300원

4

일제강점기 요시다 하츠사부로(吉田初三郞) 조감도의 성격과 확산 배경에 관한 연구 - 조선, 만주, 대만 등 일본 식민 지역을 대상으로 그린 도시조감도를 중심으로 -

서동천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8호 2018.02 pp.9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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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하츠사부로(吉田初三郞)는 일본에서 1910년대에서 1945년대까지를 대표하는 도시조감도 작가이다. 그는 1600매 이상의 조감도를 그리며 당대를 대표하는 조감도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가 그린 조감도는 특수한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 일반적인 조감도와는 달리 시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지역까지 넓은 범위를 표현하였고 넓은 화각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요시다 하츠사부로 연구자들은 요시다가 창조한 독특한 회화기법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 조감도의 배경에는 요시다 하츠사부로의 의도로만 설명할 수 있는 당시의 시대상이 숨어 있다. 요시다의 조감도는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일반적인 회화와는 다르다. 대량생산과 유통을 기반으로 하므로 작자인 요시다 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 주체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이 점에서 요시다의 조감도는 일본의 제국주의의 확산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시다에게 조감도를 의뢰한 세력은 대부분 일본의 제국주의를 주도하거나 동조한 세력이었고, 이 조감도는 일본 제국을 선전하기에 효과적었으므로, 의뢰인들의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요시다는 일종의 도구였다고도 볼 수 있다. 제국주의 세력의 의뢰를 통해 생산된 조감도를 일본 국민들과 식민지 국민들에게 소비하여 일본의 제국주의 확산에 일조하였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Yoshida Hatsusaburo is a Japanese artist of a bird's-eye view representative of the period from 1910s to about 1945. In those days, he was established as the representative artist of the bird's-eye view along with more than 1600 pieces. His bird's-eye view has a special form. Unlike general bird's-eye view, it expresses a wide range of area unidentifiable with the eye and is characteristic of an extensive angle of view. So far, researchers on Yoshida Hatsusaburo analyzed it as a unique painting technique created by Yoshida. However, those days' periodic situation that may be explained only by the intention of Yoshida Hatsusaburo lies hidden in a background of this bird's-eye views. Bird's-eye views by Yoshida differs from general paintings in that it is based on mass production. Since it builds on mass production and distribution, both producing and consuming subjects should be examined in addition to the artist Yoshida. Based on above, it is safe to say that bird's-eye view by Yoshida has something to do with the expansion of the Japanese imperialism. Those who commissioned bird's-eye views to Yoshida were mainly forces that took the initiative in or aligned themselves with the Japanese imperialism, and such bird's-eye views were a means of satisfying the purpose of clients since it was effective for propagandizing the Japanese empire. From such a perspective, it may be regarded that Yoshida was a kind of an instrument. It played a part in expanding the Japanese imperialism by causing Japanese and colonial people to consume bird's-eye views produced through commission by the imperialistic force.

5,700원

5

蕙園 申潤福 風俗畵의 隱顯的 特徵 硏究 -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申潤福筆 風俗圖 畵帖≫을 중심으로

손형우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8호 2018.02 pp.116-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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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혜원 신윤복(1758~1813이후)의 ≪혜원전신첩≫에 드러난 은현(隱 顯)적 특징에 대해 연구했다. 신윤복은 양반의 풍류문화, 남녀(한량과 기녀)의 애정, 하위계층 일상생활을 사실적이고 강렬한 색채로 화폭에 담아낸 조선후기 대표적인 풍속 화가이다. ≪청구화사≫에 담겨진 신윤복은 자신(중인ㆍ풍속화가)을 둘러싼 정조와 순조시대의 사회ㆍ경제ㆍ문화적 환경을 통해 충분한 자양분을 형성했다. 정조와 순조 시기의 조선사회는 사회ㆍ경제ㆍ문화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신윤복 풍속화는 ≪혜원전신첩≫에 드러난 은현적 특징 연구를 위하여 유사한 성격의 작품으로 분류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그 분류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 고, 각각 기방풍경, 남녀상열, 양반의 풍류여가, 일상풍경으로 나누었다. 기방풍경의 <유곽쟁웅>의 작품은 인물, 표정, 복식, 동작, 골목풍경, 가옥 등을 통해 명시적이고 사실적이며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화면 안에서 제공하는 명시적 이미지 정보(현顯)는 감상자에게 제공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용된 이미지 는 감상자의 주관적 선택에 의해 암시적인 이야기 구조(서사敍事)를 형성하며 확장된 다. 신윤복 풍속화 ≪혜원전신첩≫에서 남녀상열 계열 작품들은 대체로 남녀 연인의 사랑이나 인간의 성적 본성과 욕망을 담고 있다. 신윤복의 풍속화에는 <춘색만원>처럼 주변의 풍경과 더불어 남녀의 성적 욕망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작품들을 엿볼 수 있 다. 풍속화 나들이 풍경 작품들은 대체로 조선후기 기생, 비구니, 한량, 양반 여인, 시종, 노상탁발무리, 중인, 천인 등 당시 사람들의 나들이 야외풍경을 담고 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의 복식과 동작, 표정, 이동하는 시공간적 묘사, 인물간의 상호작용 등은 감상자에게 다양하고 풍부한 명시적인 이미지(현顯)를 제공한다. 일상풍경 작품들은 대체로 목욕하는 기생, 빨래터의 여인들, 무속인의 굿, 우물가의 여인 등 생활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다. 이들 작품화면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남성들 의 시선(현顯)은 감상자에게 다양한 상상(은隱)을 하게한다. 조선후기 신윤복 풍속화의 시각은 중인이하 서민계층에서 방외인으로 살고, 여 항인(중인, 서얼, 승려, 하층민)과 어울리며 동가식서가숙한 신윤복 자신(중인, 화원, 여항인)의 삶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This study examined hidden and exposed characteristics revealed in painting album 蕙園傳神帖of Hyewon Shin Yun-bok (1758~1813~). He was a representative genre painter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who portrayed chic tastes of noblemen, love of men and women (playboy and gisaeng), daily lives of low class people using realistic and intense colors. According to Cheongguhwasa(靑丘畫史), he provided sufficient nourishments across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environments of King Jeongjo and Sunjo period while he lived as a genre painter from middleclass. Joseon society during this period underwent huge changes from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perspectives. For research on hidden and exposed characteristics of his genre paintings revealed in 蕙園傳神帖, the study divided his work into four groups with similar nature; scenes at gisaeng house, passionate love between men and women, chic and leisure of noblemen, daily life landscapes. From the category of scenes at gisaeng house, Yugwakjaengung represented explicit, realistic and lively images of figures, facial expression, clothes, physical movements, backstreet scenery and houses. Viewers are provided with explicit image information (exposed) from canvas. Images embraced in each different form build allusive storytelling structures (narration) and further expand via viewer's subjective choice. Work pieces in the category of passionate love between men and women from his genre paintings of 蕙園傳神帖generally depict love of men and women or their sexual instinct and desire. At his genre paintings, we can have a glimpse of surrounding landscapes as well as sexual desires of men and women suggested implicitly like Chunsaekmanwon. Landscapes during outing depicted outdoor sceneries of the people then such as gisaeng, Buddhist nuns, playboys, attendants, monks asking for alms in the streets, middleclass and low class men in the late Joseon period. Clothes, physical movement, facial expression of figures in the work, spatial/temporal depiction of such movements, interactions between the figures provide viewers diverse, rich and explicit images (exposed). While, daily life landscapes contained a various range of scenes unfolding in daily life like bathing gisaeng, women in washing place, exorcism of shaman, women at the well. Perspective of Shin Yun-bok's genre paintings in the late Joseon period must also be the outcome of having reflected the life of Shin Yun-bok himself (middleclass man, painter) who lived a life as an outsider and wanderer among lower and rather marginalized class, rubbed shoulders with ordinary people (concubines sons, monks, low class people).

7,300원

6

중화민국 삼민주의 문예론의 출현과 의미 : 미술론을 중심으로

이보연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8호 2018.02 pp.149-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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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30년대부터 50년대 말까지 중화민국 국민정부에 의해 추진돼온 삼민주의 문예정책과 그 이론을 토대로 중국의 우익미술이론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국민정부는 우파집권 시기, 쑨원(孫文)의 삼민주의에 대해 유생론(唯生論), 역행철학(力行哲學) 등 우파식 해석체계를 마련하고, 그에 따라 삼민주의, 민족주의, 민족본위, 항전건국, 민생주의와 민주로 이어지는 문예정책 노선을 추진해 갔다. 또한 이러한 사상 및 정책적 모색은 1940년대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문예정책」(1942)과 「삼민주의문예론」(1953)이라는 두 편의 글을 통해 삼민주의 문예론으로 종합 수립되었다. 특히 후자에서 장다오판(張道藩)은 ‘삼민주의사실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사실주의의 종합’이라는 창작론을 제기함으로써, 사실상 타이완 미술계에서 사실주의(Realism) 미술의 전개를 저지하고, 이를 통해 국가 이념 및 체제에 순응적인 문예계 양성과 운영을 시도했다.
This study is about the right-wing theory of art viewe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policy of literature and culture that stood on the basis of the Three Principles of the People, pursued by the Nat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China from the 1930s to 1950s, and the theory underlying this policy. During the period of ruling by rightists, the National Government laid the groundwork for interpreting Sun Yat Sen’s Three Principles of the People from the perspective of right-wing ideas. In that regard, the government developed such ideologies as vitalism, “Deathbed Teachings of the Premier,” and the philosophy of Li-xing (practice with earnestness). The government then pursued a policy of literature and art that started its course in the era of the Three Principle of the People, followed by nationalism, national standards, the “War of Resistance and Nation-Building,” “Principle of the People's Livelihood” and ultimately democracy. Such an ideological and political pursuit culminated in the theory of literature and art on the basis of the Three Principles of the People since the 1940s. The idea was represented in two articles: The Policy of Literature and Art That We Need (1942) and The Theory of Literature and Art Based on the Three Principles of the People (1953). In the latter of the works cited above, Zhang Daofan introduced a theory of creation called “A Synthesis of Realism,” which has its basis in the concept “Realism of the Three Principles of the People.” With the aforesaid theory of creation, Zhang attempted to put a halt to the realist movement in the Taiwanese literature and art circle and foster them into a group more acquiescent to the ideology and system of the state.

7,000원

7

1950∼60년대 신무용의 전개 양상 연구 - 개천예술제를 중심으로 -

이정노, 이주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8호 2018.02 pp.178-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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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발단은 오늘날 신무용의 형태는 일제강점기 이래로 현재까지 여러 변 화의 과정을 거쳐 온 것임에 주안하고, 변화의 모색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시기로 보 이는 1950∼60년대에 주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신무용을 ‘무대화된 한국춤’이라 고 정의한다면 이 신무용은 최승희와 조택원과 같은 무용계 예술가들 뿐 아니라 한성 준과 같은 전통예인들에 의해서도 연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신무용은 일제강점기 부터 해방 후로도 얼마간 전통예인들에 의해서도 지속되었는데, 대표적으로 한성준의 제자이자 손녀인 한영숙과 그와 함께 활동했던 몇몇 전통예인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예술가들은 무형문화재 제도가 시행되면서 국악분야의 문화재로 지정되는 1960년대부터 서서히 춤 활동이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1960년대까지는 전통예술인들이 신무용을 연행했다고 할 수 있는데, 본고에서 연구 대상을 개천예술제 로 설정하면서 무용계와 전통예술가들의 동시대 신무용 양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고 본다. 본 연구에서는 개천예술제에서 연행된 두 분야의 활동양상을 살피면서 1950, 60년대에 전개된 신무용의 한 단면을 조명해보았다.
This study started by focusing the type of today’s new dance has gone through various changing processes until today sinc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by paying attention to the 1950-60’s when it seems that searing change has started in earnest. However, if the new dance is decided as ‘staged Korean dance’, it is found that such a new dance was peformed by traditional artists such as Han Seong Jun as well as artists such as Choi Seung Hee and Joe Won Taek. That is, new dance has continued by traditional artists for a while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period. It is found from some traditional artists, who had acted with Han Yeong Su, a student and a grand daughter of Han Seong Jun. After the implementation of intangible cultural asset, it was shown their dance activities of traditional artists became unactive until 1960’s. Therefore, they have performed new dance until 1960’s. it is judged that this study can check the contemporary aspect of new dance by traditional artists and dance society when it establish Gaecheon Art festival as the subject of study. This study tried to focus an aspect of new dance which has developed in the 1950-60’s while researching the activity aspect of two fields which were performed in Gaecheon Art festival.

6,100원

8

古代 中國 商나라 胛骨卜辭에서 나타난 巫俗樂舞와 祭禮樂舞에 관한 연구

이화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8호 2018.02 pp.20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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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갑골복사(胛骨卜辭)에서 무속악무(巫俗樂舞)와 제례악무(祭禮樂舞) 양상을 밝히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상대(商代) 악무 양상을 갑골복사에서 파악하고자 했던 이유는, 고대 상나라 악무체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다음과 같은 논의 과정을 통해 갑골복사에서 무속악무와 제례악무의 특징을 다음과 같 이 규명하였다. 첫 번째는, 상나라 제사의 일련 된 과정은 무당의 주관 하에 진행되었으며, 특별 한 제사가 거행될 때 무당은 악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상대 왕실제사가 봉행될 때는 특징적인 악무형태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복사에서 파악된 무속악 무들은 모두 기우제와 관련된 춤[求雨舞·雩舞]으로 밝혀졌으며, ‘구우무(求雨舞)’에서 무구(舞具)들은 ‘소꼬리’, ‘새의 깃털’, ‘깃대’, ‘깃발’ 등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기우제와 관계된 춤으로는 ‘다노무(多老舞)’, 방무(方舞), ‘이무(隶舞)’, ‘황무( 舞)’ 로 밝혀졌다. 또한 왕실 제례악무에서는 ‘새의 깃털’, ‘피리’가 주 된 무구들로 활용되었으 며, 때에 따라 북을 사용한 춤[鼓舞]이 함께 추어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왕실제 사에서 거행된 제례악무는 봉황무[䍿舞]’, ‘우무(羽舞·翹舞)’, ‘약무(龠舞)’, 고무(鼓舞) 로 확인되었다. 이상, 본 연구는 지금까지 논급되지 못한 갑골복사에서 상나라 악무 양 상들을 규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며, 나아가 상나라 악무 연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ain aspects of shamanistic music and dance (巫俗樂舞) and ancestral ritual music and dance (祭禮樂舞) in oracle bone script (胛骨卜辭). The writer tries to investigate aspects of music and dance in the oracle bone script of the Shang Dynasty because he/she took note of the fact that the traditional music and dance of early date can be checked in it. Therefore, the characteristics of shamanistic music and dance and ancestral ritual music and dance in the oracle bone script were investigated and revealed through the following process. First, ancestral rites of the Shang Dynasty and shamans[巫]' status were examined. In this regard, a series of process called ancestral rites was arranged by shamans and the aspects of music and dance used in that moment were revealed. Second, kinds of ancestral rites for blood relatives in the royal family of the Shang Dynasty were examined and elements of ancestral ritual music and dance produced in them were explored. Third, the aspects of shamanistic music and dance and ancestral ritual music and dance in the oracle bone script based on the contents studied above were investigated and revealed as follows: First, shamanistic music and dance uncovered in the oracle bone script were found to be all dance related to rituals for rain [求雨舞·雩舞]. Therefore, for dance tools(舞具) in ‘求雨舞’, 'oxtail', 'feathers from birds', 'flagpoles' and 'flags' were used. And shamanistic music and dance were shown as the aspects of ‘Danomu다노무(多老舞)’, ‘Imu이무(隶舞)’, and ‘Hwangmu(䍿 舞: Dance with a hat with feathers)’. And the words used in ancestral ritual music and dance of the royal family in the Shang Dynasty uncovered in the oracle bone script were found to be 'feathers from birds', 'pipes', etc. and ancestral ritual music and dance were found to be Hwangmu(䍿舞: Dance with a hat with feathers)’, ‘Wumu(羽舞: Dance with feathers)’, ‘Yakmu(龠舞: Dance with pipes)’, etc. The above study is thought to make a contribution to development of studies on music and dance's aesthetics in the ancient Shang Dynasty by exploring the aspects of music and dance recorded in the oracle bone script that have not concretely been discussed until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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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의 예술성과 활용가치 고찰

정복동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8호 2018.02 pp.22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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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전통적으로 계승되어온 한글서예의 예술적 근거에 주목하여 서예의 활용가치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글서예의 예술성은 훈민정음 창제원리의 오묘한 철학적 원리에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의 문자관, 고체의 심미관, 정 형화된 문헌의 정자체, 필사본의 정자체와 사대부가의 부부가 쓴 한글편지를 선별 고 찰하여 품격을 갖춘 예술작품 제작은 전통서예의 본질을 이해해야 무궁한 변화와 다양 한 개성 창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제언하였다. 훈민정음의 문자관은 한자의 신성관이 계승되어 정해진 계선안에 꽉 차고, 가장 커 보이게 결구하여 중심축이 중앙에 있으며, 수직․수평․사선의 간결한 선과 동그란 곡선 등이 필획의 지극히 순수함만 취하여 좌우 대칭을 이룬 구조이다. 이는 태극의 심 미의식인 中과 正, 그리고 陰과 陽이 조화하는 자연의 신묘함이 합일하여 이루어진 결 구이므로 한자의 해서보다 웅혼미가 있고 균평하고 균형미가 있다. 이를 규구로 각종 문헌을 훈민정음으로 언해하며 사용된 인서체는 보고 쓰기에 편의한 정자체의 부드럽 고 안정된 결구로 정형화되었다. 필사체의 정형화는 궁중 소설 낙선재본이 대표적이다. 영정조시기에 완성된 궁 체로 한결같이 고르고 단정하며 아름답게 결구된 정자체와 흘림체 모두 관방과 왕실에 서 간행한 문헌의 정자체를 正法으로 하되 궁중 여인의 敬과 禮道를 중시하는 생활환 경과 궁녀의 성정 및 기질이 반영된 궁체로 필사하였는데, 공통된 미감이 구현되었다. 특히 상궁들의 편지 글씨는 낙선재본의 흘림체를 기초로 필획의 축약과 강약․대소․ 장단 등 운필의 리듬감과 공간분배의 소밀 등을 극대화시켜 진흘림체를 완성함으로써 궁체의 창신적 개성미를 선도하였다. 한편 사대부가의 개성을 추구한 흘림체는 부부의 편지를 선별하여 분석한 결과 문자의 외형, 연결성, 축약 등 형식은 유사성을 보이나 필획의 곡직, 강약, 대소 등 대대요소와 운필의 기교에 따라 필세, 필의, 필운을 달리 하여 각각 개성 있는 품격을 갖추었다. 서예 작품의 개성 있는 풍격은 필봉의 운용에서 이루어지므로 筆鋒은 곧 太極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고인들은 서예를 大道․大美라 하고 세계를 中和할 수 있는 지표 로 삼아왔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대도․대미를 추구하는 삶은 서체에도 반영되었다. 훈민정음에 적용된 不易속에서 ‘隨時變易’ 및 ‘隨時通變’할 수 있는 哲理性을 이해하여 외재적 형식은 시대별 가문별로 유사성을 띠고 있으나 심미적 특징은 각각 개성 있는 서체를 구현하였다. 전통이란 항상 그 시대의 문화적 역량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방대한 판본문헌과 필사문헌 및 고문서 등의 한글자료는 작품을 창작하는데 근거와 규구 가 된다는 점에서 전통서예의 연구는 더욱 가치가 중시되고 활용 가치 또한 높다.
This study aimed to grasp the utilization value of calligraphy focusing on the artistic basis of the traditional Hangeul calligraphy. The artistry of Hangeul calligraphy is inherent in the subtle philosophical principle of Hunminjeongeum creation. Therefore, it investigated a character perspective of Hunminjeongeum, an aesthetic perspective of the old handwriting, a square style of handwriting in formalized documents and manuscripts, Hangeul correspondence between husband and wife of gentry family, and it also suggested that the high-class art work, expressed infinite changes and diverse individuality, could be created after understanding the essence of traditional calligraphy. The character perspective of Hunminjeongeum has succeeded to a divine perspective of classical Chinese character. Therefore, it emerges as the symmetry structure that a character is filled in the prescribed lines to make it look as big as it can be, that its center axis is in the center of the blank, and that a concise line of vertical, horizontal, and diagonal lines and a round curve take purity. It is the structure made by unifying the aesthetic consciousness of the Great Ultimate, the middle and the rightness, and the subtlety of nature in which Yin and Yang harmonize. Thus, Hunminjeongeum is more vigorous and balanced than a regular script of classical Chinese character. A style of handwriting used for annotating various documents in Hunminjeongeum based on this criterion has been standardized as a smooth and stable structure of a square style of handwriting that is convenient to read and write. A typical example of the standardization of the writing script is the royal novel, Nakseonjaebon, written in the court style of writing Korean script which has been completed in the era of King Yeongjo and Jeongjo. The square style of handwriting and the cursive style of handwriting in the novel were structured regularly, neatly and beautifully, and they set an example of the square style of handwriting in the documents pub-lished by the public office or the royal court. In addition, a court lady’s life environment that emphasized respectfulness and propriety was reflected, and her nature and temperament were displayed. Moreover, a common aesthetic sense was expressed. Especially an upper court lady’s handwriting shown in correspondence has led an innovative individual beauty by completing the real cursive style that maximizes a rhythmical sense of wielding brush and sparseness and denseness of spatial distribution based on the cursive handwriting of Nakseonjaebon. On the other hand, as a result of analysis of the correspondence between husband and wife, the cursive style of handwriting pursuing the individuality of the gentry family showed the similarity in the forms such as appearance, connection, and contraction of the characters. However, it had an individual dignity by varying stroke, will and energy of the brush depending on the correlation factors such as curve, strength and size of the strokes and the technique of wielding brush. Because an individual style of calligraphy work is determined by wielding brush, the brush is soon like the Great Ultimate. Therefore, the deceased have seen calligraphy as a great Way or a great beauty and have regarded it as an indicator to make the world equilibrium-harmonized. The life of the intellectuals in Joseon Dynasty that pursued a great Way and a great beauty was also reflected in the calligraphy. Understanding the philosophy which can be timely adapted in the immutability applied to the Hunminjeongeum, the external form had a similarity by the age and the family, but the aesthetic characteristic was expressed as an individual handwriting. Tradition has always been formed in the cultural capacity of the time. Therefore, it is more useful to study traditional calligraphy in terms of the fact that the vast volume of Korean documents such as woodblock- printed documents, transcribed documents, and ancient documents can be a foundation and a standard to create art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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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麓畵品》에 의한 명대 절파 화론 연구

주미경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8호 2018.02 pp.266-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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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는 기존의 연구에서 명대 회화 양식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절파 화풍에 대해 시도하지 않은 절파 화풍에 대해 폄하된 시각을 이개선(李開先)이 주창한 절파에 대한 의견 중 『中麓畵品』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절파는 이당(李唐), 마원(馬遠), 하규(夏珪) 등의 회화 풍격을 계승한 원체화 (院體畵)풍이었으나 오파로 계승된 문인화가들로부터 비하되고, 명말에 이르러서는 절 파 후기양식을 狂態邪學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절파에 대한 비 판, 특히 절파 후기 양식에 대한 공격은 현대사회에 와서 작가의 개성과 의미를 중시여 기는 상황에서 공정하지 못한 평가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에 대해 명대 중 기 감상가인 이개선(李開先)은 그의 저서 『中麓畵品』에서 유일하게 절파 화가에 대 해 변호하는 화론을 제시하였다. 이에 본 논문은 절파 회화에 대한 편벽적이었던 시각에 반론을 제기한 『中麓畵 品』을 분석함으로써 절파 화론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지게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개선(李開先)의 화론이 미술사적인 의의로 절파에 대한 부 정적인 견해를 옹호하여 회화 양식으로의 가치를 가지게 하고, 광태사학이라고 불리긴 했지만, 명대 후기 절파화풍을 계승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present paper aimed at examining and analyzing Chinese Paintings which was a commentary on Zhe School by Li Kai Shan among many scholars in further details for the right understanding of Zhe School painting style which began to develop as the painting style in the Ming dynasty in China. Although Zhe School painting was an imperial-court decorative painting which followed the painting styles of Lee Tang, Ma Yuan, Xia Gui, and so on, it was criticized by literati painters. In the late Ming dynasty in China, the later painting style of Zhe School was called as a wild and heterodox school by some attackers. It is judged that these attacks on the late painting style of Zhe School were an unfair evaluation in the light of modern society in which artists’ characteristics and meanings are greatly regarded. However, concerning these opinions, Li Kai Shan, who was an appreciator in the mid Ming dynasty in China, was the only one who suggested supporting art theory in favor of Zhe School painters in his book Chinese Paintings. Therefore, this paper attempted to suggest the right perspective on the art theory of Zhe School by analyzing his book Chinese Paintings which corrected the negatively biased point of view on Zhe School paintings. It can be said that it was revealed through the art theory of Li Kai Shan as these in the light of the Chinese art history that Zhe School painting style had a value as a painting style by defending the negative opinions on Zhe School, and that it has greatly influenced the succession of Zhe School painting styles in the late Ming dynasty in China, although it was called as a wild and heterodox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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