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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31호 (10건)
No
1

선비風流가 빚어낸 문인화의 理想鄕 - 風竹의 文人畵境界-

권윤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1호 2016.05 p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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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風流)는 ‘바람이 정체되거나 막히지 않고 흐르는 것’으로 ‘자유’, ‘자연스 러움’, ‘변화’, ‘움직임’, ‘아름다움’ 등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풍류는 자연과 인생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미적 표현으로 자연·멋·음악·예술·여유·자유분방함·즐거 움을 본질로 한다. 또한 풍류는 자연친화적인 것이며 동시에 자연과의 교감이며 나아 가서는 자연과의 합일, 자연으로 회귀를 의미한다. 그러나 풍류를 즐기는 방향은 사람 마다 그의 개성과 기호에 따라 서로 다양하고 복잡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선비의 풍류 는 노는 것이지만 정신적인 영역까지 포함하고, 예술적·심미적 요소가 함께하고 있다. 즉, 선비풍류의 본질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나’를 합치시키는 근원적인 미적 체험이 선비가 지향한 풍류의 본질이다. 선비풍류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은 선비정신의 추구 와 자연과 친화의 추구에 있다. 풍죽은 선비풍류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문인화로서 바 람과 맑음의 선비풍류적인 요인을 가지고 있다. 즉, 바람과 맑음은 풍죽 문인화가 선비 풍류를 문인화라는 장르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자이다. 따라서 바람은 기운생동 한 기세의 미학으로, 또한 맑음은 俗除淸至한 신채의 미학으로 심미된다. 이러한 경계의 풍죽 문인화는 강암의 풍죽 등에서 심미하여 볼 수 있다. 특히 강 암의 풍죽에는 선비풍류의 본질과 조건이 담겨 있으며 견정의 미감·광일의 미감 등 다 양한 미감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는 문인화 장르 가운데 선비풍 류를 대표하는 풍죽의 이상경계이면서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풍죽의 심미경계를 고찰하여 보면 선비풍류가 빚어낸 문인화의 이상 향이 풍죽의 문인화에 구현될 수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는 결국 선 비정신의 추구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과 철학의 결과에서 나오는 예술경계이며 선비풍류가 빚어낸 이상향의 구현이라 살 수 있다.
Pungryu is a kind of taste and wisdom that make people calm and happy with nature. Pungryu means ‘wind or water flows without clogging’ and it involves the concept, ‘freedom, being natural, change, moving, beauty’ But pungryu has very complicated meaning, because it is not the simple flowing wind and water but the nature must be understood in the relation with human. So pungryu is a kind of amusement culture based on esthetic cognition, the original of amusement culture, and the original of artistic culture. Pungryu developed as a religion·religious ritual in the thinking world and as a poem·caligraphy ·painting ·go·kayagŭm that enjoy culture and art as time goes. Pungryu is nature friendly, and at the same time a mutual response with nature, and further it is a union with nature. Therefore pungryu is a esthetic expression of the state of whole unity with nature, life, and art involving the concept of nature·taste·music·art·free spirit·joy. The spirit of pungryu pursues natural harmony without artificial skill. So pungryu is freedom and ideal thing. But the direction of enjoying pungryu is various depending on human’s individuality or taste. Especially a confucian literati enjoyed pungryu in the groups named, sisa·sigye·gyehyue. writing poem, doing caligraphy, and drawing painting. One of the best among them can be windy bamboo. A windy bamboo is a literati painting symbolizing literati’s spirit and that can express esthetic state when all three of poem, caligraphy, and painting are making harmony. A windy bamboo contains a symbol of literati’s spirit as a metaphor and interaction, flowing, and sympathy. Like this a windy bamboo basically contains characteristics of pungryu. A windy bamboo is a literati painting containing literati’s pungryu esthetics. Therefore it is a utopia and symbol of pungryu that expresses a noble style and dignity. I studied esthetic state of Gangam’s windy bamboo based on pungryu esthetic side. Gangam’s windy bamboo esthetics showing strongness became incarnation of literati spirit and showed various esthetic state such as stable & solidityi, rush about & deviation. This is ideal state and symbol representing literati’s pungryu. And the pungryu of Gangam’s windy bamboo is ‘sound of pure bamboo- leaves’ So my ‘sond of pure bamboo-leaves’ is another symbol of windy bamboo that is a utopia created by pungryu. Therefore I think joyful windy bamboo esthetic state depends on pursuing one and appreciating one as the utopia created by pungryu became a windy bamboo of ‘sound of pure bamboo-leaves’.

7,300원

2

사극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 표현된 헤어스타일 및 장신구 연구

김민경, 정연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1호 2016.05 pp.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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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헤어스타일의 조형성을 연구하였다. 조선시대 헤어 스타일 중 땋은 머리, 나인머리, 첩지머리의 조형성을 연구한 결과 직선과 곡선이 어우 러진 아름다운 머리형태임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는 구름문양의 유기적인 곡선미를 조선시대 헤어스타일에 결합하여 직선 을 곡선화 함으로써 단순한 고증 재현이 아닌 예술적인 개념을 가지고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주어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였다. 장신구에서는 장신구 설정과정과 장신구에서 보여지는 내적의미를 통해 드라마 장면의 느낌을 극대화시켜 분위기를 살렸다. 이러한 설정과정은 국적이 없는 스타일이라는 비판을 받기 보다는 하나의 새로 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개념으로 보아질 것이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의 헤어스타일의 변화와 변형은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고증이 “맞다”, “안 맞다”가 아닌 시간과 공간성을 초월한 독창적인 문 화이자 하나의 발전된 문화로 보아지길 바란다. 앞으로 드라마 제작에 있어 내적의미가 있는 헤어스타일 설정으로 드라마 장면 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킬 뿐만 아니라 캐릭터 창조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The research was conducted regarding formativeness of hairstyle in the drama ‘Jang Ok Jung, Live In Love.’ After studying braided hair, court lady’s hair and hairstyle with an ornamental hairpin on among different hair style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it was found all of these are beautiful hair style with good combination of straight line and curve. So, the researcher combines the cloud-patterned, organic curve with hair style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to create straight line as a curve so that it is more than realization of historical research, but of completeness of design by changing hair style with artistic concept. Through the process of setting accessory and inner meaning shown in accessory, it can maximize the mood of drama scene to create atmosphere. This process of setting should be considered as concept to create new distinctive image, rather than criticized for style without any specific nationality. It is hoped that change of hair style and its transformation in ‘Jang Ok Jung, Live In Love’ not only can provide entertainment, but also will be accepted as innovative culture that surpass era and space while staying out of issues to determine whether or not historical research is true, as well as developed culture. In the future, it is expected that hair style setting with inner meaning can maximize the mood of drama scene and help to creative character in drama production.

5,200원

3

공공성 관점에서 본 한국전통예술의 발전방향

김지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1호 2016.05 pp.5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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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예술은 공공적 영역의 관점에서 예술지원정책을 실현하고 전통문화 유산의 가치와 삶의 질적 행복추구에 대한 권리로서 자유롭게 예술문화를 창조하고 향 유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한국정부도 문화 향유권 신장과 예술가의 질적 환경을 보장 하기 위해 정책목표를 꾸준히 계획하고 인프라를 구축하여 실행하여 왔다. 하지만 이 러한 지원에도 전통예술의 가치 인식과 공공재로서 공동체 사회에 필요한 가치재로서 구현과 같은 당위적 인식은 미흡하다 할 수 있다. 즉 문화재로서 숭례문의 역사와 전통 적 가치라든가, 한국인의 삶에 관한 사상과 철학, 그 밖의 보물에 대한 문화적 보고 등 신 한류로의 무궁한 콘텐츠인 전통예술의 공공재적 가치를 상상하기에는 보다 구체적 인 메커니즘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이에 본 연구는 한국전통예술의 공공 성 구현을 위한 경제적-정치적-사회문화적 차원의 선순환 구조에서 우선시 되어야 할 방안들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를 주제로 한다.
Traditional Art of Korea should be able to realize the artistic support in terms of public policy areas and the creation and enjoyment of art and cultural freedom as the right to value the pursuit of happiness and quality of life of the traditional cultural heritage. Of course, South Korea is also planning a cultural nostalgia empowerment and steady policy objectives to ensure the environmental quality of the artist and has been run by building foundations. But even as this support and recognize the value of traditional arts such as the implementation of necessary public goods is recognized as a valuable material needed for the community it may be insufficient. History and traditional values as cultural assets of Namdaemun, on the Korean spirit and life philosophy, about other cultural treasures such reports to establish specific mechanisms than hagieneun imagine the eternal value of public goods content in the traditional arts of New Korean Wave is thought that it is necessary. This study is economical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Korea Traditional Arts Publicity - political - will be a general discussion of measures that should be prioritized in a virtuous cycle of social and cultural dimension to the subject.

6,600원

4

역대 서론의 형상화 경향 연구

김희정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1호 2016.05 pp.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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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古代書論가운데 物象을 形象化하여 서예를 表現하고, 서예의 理想을 敍述했던 문헌(문장)들을 採錄하여 자연의 형상화, 인체의 형상화, 인격의 형상화로 분류하고, 그것을 다시 시대적 傾向性을 연구한 것이다. 연구 결과 서론의 형상화 경향 의 시대적 흐름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예를 자연물을 비유하여 형상화 한 예를 筆畫과 書體로 나누어 분석하 였다. 역대 서론에서 자연물을 빗대 서예를 형상화 한 것은 대부분 漢과 魏晉시기부터 唐代초기에 집중되었다가 唐代중기 이후에는 급격히 사라진다. 이는 문자가 막 象形 性을 벗어나 抽象化되고, 意象으로서의 서예로 초월하는 과정에서 문자 자체의 생명성 (생동감)을 유지하고자 했던 사유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사유와 기술방 식은 당대 초기에 문자가 楷書로 고착화되어 象形性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더 이상 ‘자 연을 模倣하는’ 사유가 사라지고, 인간의 주체적 敍情性이 서예의 주제로 자리 잡은 결 과라 하겠다. 둘째, 서예의 주체인 인간의 신체를 들어 형상화한 예이다. 이러한 형상화는 書 論이 記述된 초기부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문자를 만들고 서예를 창작하는 과정이 ‘자연을 모방’하든 ‘내면의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든 행위의 주체를 형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人品과 道德으로 서예를 형상화 한 예이다. 이러한 내용의 서론은 唐初까 지의 ‘尙法’에서 탈피하여 抒情性을 띠기 시작한 唐代중기부터 機微를 보이다가 宋代 부터는 인격과 연관 지어 형상화 되었다. 明代에서는 도덕심과 연관시켜 형상화 하였 다가, 淸代는 서예를 인격과 윤리, 도덕과 연관시키고 상징적 대상물을 비유하여 형상 화 한 예도 볼 수 있었다. 이상을 정리하면 서예에 대한 사유(인식)가 서론 발생 초기인 漢‧魏晉시대에서 唐代초기까지는 서예를 ‘자연(대지연과 인간신체)을 模倣한’ 것으로 보았다가 唐代중 기부터는 서정(감정)의 表現으로 轉移되었다. 宋代에서는 서예주체자의 내면인격을 表 象하는 수단으로 인식하였다가 明代에서는 서예를 인격을 수양하고 도덕심을 고양하는 대상으로 인식하였고, 淸代말기에 이르면 서예가 인격과 도덕심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까지 한다. 이는 美學史에서 美論과 審美論, 藝術論(문화예술 상징론)으로 전개되는 과정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ample a series of ancient literature that embody the shapes of objects to express the caligraphy and discuss the ideal of caligraphy, and therewith, classify their embodiments into nature, human body and personality to analyze their historical tendencies. The results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is study analyzed the embodiments comparing the caligraphy with the nature by categorizing them into brush paintings and calligraphic styles. The works that embodied the caligraphy by comparing it with the natural objects started mostly during Han and Wei dynasties followed by Jin dynasty to prosper during the early Tang dynasty and then, disappeared rapidly since the mid-Tang dynasty. Such a transition is perceived to be attributable to the trend that the letters began to be abstract, departing from their images and in this process the letters struggled to keep their own life (sense of vitality). Thus, the letters began to be set in as Kai Shu during the early Tang dynasty with their images lost completely, and therefore, the meditation ’imitating the nature’ would disappear, while the independent human lyricism would be settled down as subjects of caligraphy. Secondly, the subjects of caligraphy or the human beings were embodied. Such embodiment has continued since when the calligraphic discourses started. Such a trend is due to the nature of the calligraphic creativity: embodiment of subjects whether it is ‘imitation of the nature’ or ‘expression of inner sentiment and will.’ Thirdly, the caligraphy was embodied into personality and ethics. Such a trend showed up during the mid-Tang dynasty when ‘the imaging technique’ that had sustained until the early Tang began to be replaced by lyricism. Since Sung dynasty, the embodiment began to be related with personality. During Ming dynasty, the embodiment was related with the sense of morality, and during Ching dynasty, some calligraphic works began to be related with personality, ethics and morality, being compared with their symbolic objects. Summing up, for the period from Han, Wei and Jin dynasties when the meditation (cognition) began to be the theme of the calligraphic discourse to the early Tang dynasty, the caligraphy was thought as ‘imitation of the nature (The great Nature and human body).’ Since the mid-Tang dynasty, it was transformed into the expressions of lyricism (sentiment). Then, the caligraphy would be perceived as means of imagize its subject’s inner personality, and during Ming dynasty, it would be recognized as means of cultivating personality and morality. By the end of Ching dynasty, the caligraphy would be perceived as symbol of personality and morality. Such a transition of the caligraphy seems to be in the same context as the development of theory of aesthetics, theory of pursuit of aesthetics and theory of arts in the history of aesthetics.

5,800원

5

일제강점기 근대적 미디어에 의한 조선관광(朝鮮觀光) 표상의 특징 - 잡지 『모던일본』조선판(1939, 1940)을 중심으로 -

남도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1호 2016.05 pp.10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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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출간된 대중오락잡지 『모던 재팬』조선판에서 드러난 조선관광 표상의 특징을 잡지 편집 구도와 여성 표상에 초점을 두고 분석한다. 『모던 재팬』은 193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잡지로 당대의 시대상을 입체적으로 살 펴볼 수 있는데, 특히 이 잡지는 1939년과 1940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판을 일종의 특집 기획으로 발간한 바 있다. 이는 당시 내지(일본)에서 유일하게 시도된 외지(조 선)에 대한 특집으로 ‘이중적 근대’란 일본의 근대성의 특징을 잡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이중적 근대가 특히 쇼와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이 잡지는 쇼와 모던이 란 시대적 분위기를 담아내려 했기 때문에 이 잡지는 일본의 이중적 근대의 모습을 압 축적으로 표상하는 측면이 있다. 일본의 쇼와 시기는, 다이쇼 시기와 달리 서구의 문물을 상대화했고 일본적인 것을 강조하면서 서구의 일방적 수입이 아닌 일본적인 것을 통한 다른 가능성을 모색 했던 기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적인 것의 강조는 점차 파시즘화하며 극단적인 자 기 파멸의 과정으로 연결되었다. 『모던 재팬』조선판의 간행은 일본적인 것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의 모색이 결말에 도달하기 직전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 양상은 특히 내선일체의 강박과 조선 여성에 대한 외경이란 양상으로 극명하게 드 러난다. 이런 식민주의적 시선은 강박과 불안, 동요와 선망 등 양가적이며 중층적인 특 징을 보이는데, 이런 면모는 잡지의 편집 구도는 물론 콘텐츠의 내용에 스며들어 있다. 본 논문은 아직 연구 초기 단계인 『모던일본』조선판에 대해 몇 편의 선행연 구를 바탕으로, 주로 1939, 1940년에 발간된 『모던일본』조선판을 쇼와 모더니즘의 ‘이중적 근대’란 속성을 염두에 두고 당시 활발하게 전개된 여행과 관광의 문맥, 즉 콜 로니얼 투어리즘(colonial tourism)적인 맥락을 고려하면서 잡지 편집 방식과 여성 을 표상하는 언설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는 1930년 『모던 재팬』의 창간에서 1939년과 1940년 『모던 재팬』조선판의 발행으로 이어지는 과 정이, 어떤 의미에서 일본적 근대 기획, 즉 ‘이중적 근대’란 기획이 실패였다는 사실을 『모던 재팬』조선판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This thesis analyses the representation of Joseon tourism in the articles of an entertainment magazine, (1939, 1940) published in Japa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focusing on its editing planning and the representation of women, and tries to find its characteristics. can give us an opportunity for looking into the phases of that time stereoscopically as a magazine having attracted a great popularity in the 1930s. The magazine published the special editions for Joseon twice, in 1939 and 1940. These were the only special editions which the magazine in Japan(Interior) had tried dealing with Joseon(Outlier), which ‘double modernity’ as the characteristics of Japanese modernity could be confirmed. Japanese modernity was set in the era of Showa and the magazine tried to incorporate the atmosphere of the era that is called as Showa Modern, in its contents. In this respect, it seems to be certain that the magazine had represented Japanese double modernity compressively. The era of Showa, different from the era of Taisho, was the period that relativized the western culture, emphasized Japanese things, and also tried to find out other possibilities with Japanese things rather than depended on one way imports of the western things. But this emphasis on Japanese things had gradually changed into fascism and then linked to the process of excessive self-deconstruction. published in the middle of time between these two wars, vividly reflected the atmosphere of the time that the efforts of searching for new possibilities with Japanese things just had came to the conclusion. It was appeared clearly as obsession of the Naeseon Ilche, "Korea and Japan are One", and the awe at Joseon women. This colonial gaze had shown the layered and ambivalent characteristics such as obsession, anxiety, agitation, envy and so on, which had been permeated not only in the editorial planning but also in its articles. This study started on the base of some advanced researches on , and kept considering the attributes of ‘double modernity’ of Showa modernism. It examined the editorial styles and the features of the remarks that the magazine represented Joseon women, while considering the context of the colonial tourism, in other words the context of travels and tourism in Joseon, that had been actively spreaded out among the Japanese people. Through this examination focusing on published in 1939, 1940) the study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Japanese modernization projects, that is to say ‘double modernity’, had failed on its way from the foundation of in 1930 to the publication of in 1939 and 1940.

6,600원

6

유교의 관점에서 본 한국미

민주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1호 2016.05 pp.128-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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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에서는 예술이 예술로서의 실질적인 미를 갖추는 것 이상으로, 그것이 사회와 도덕에 대해 어떠한 의의와 효용을 갖는지를 중시한다. 유가에서는 자주 인격과 재 능의 빼어남을 ‘미’라는 말로 평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동양에서는 고대로부터 사대부가 반드시 체득해야 할 기술 즉 ‘예(禮)·악(樂)·사(射)·어(御)·서 (書)·수(數)’라고 하는 ‘육예(六藝)’가 있었다. 그 밖의 기술을 잡예(雜藝)라고 불렀다. 당송 시기에 사대부가 회화에 관여하는 사례가 많아져, 회화가 ‘시문서화(詩文書畵)’로 서 사대부에게 필수적인 기술 가운데 하나가 되어 앞에서 말한 육예와 잡예는 경계가 애매해지기 시작하였다. 여하튼 동양과 한국의 예술을 생각할 때 ‘시문서화’가 중심이 되고 있고, 예술이론도 사대부에 의한 사대부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사대부로서의 교양 즉 고전이 전제되고 있다.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오늘날까지 유교정신이 가장 뿌리 깊게 정착되어 있는 나라이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삼강오륜의 유교윤리를 바탕으로 생활해왔다. 유교 에서의 교육목표는 선비양성에 있었으며, 선비들은 시·서·화를 벗 삼아 교양을 쌓았으 며, 이를 통해 수기(修己)하고 교우(交友)하고 충절(忠節)하였다. 유교는 절도와 예법 으로 인간의 감정을 억제하고 이상적 생활을 강조하였다. 일반 서민층에는 시서화가 보편화되지는 않았던 반면, 그 대신 민화가 널리 보급되었다. 민화 가운데에 특히 삼강 오륜이 간추려진 효제도(孝悌圖)와 실내에 장식된 책거리 그림(書架圖)은 양반계층과 서민대중이 함께 향유할 수 있었던 유교사회의 산물이다. 유교사상은 한국인의 미의식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유교는 생활미학과 인격미 학을 형성하였다. 건축에서 주거공간에서의 공간구획을 비롯하여, 별서, 사당, 문묘 등의 구조와 배치 등에서 정돈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언행록」은 인격의 미학이 형성되는 지침을 알려주는 저술이다. 비록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내용적으로는 정돈된 통 합성을 보여주는 가운데, 미적 인격형성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전해주고 있다. 이를테면 퇴계의 언행록은 그의 학문과 생활의 실천을 보여주면서 삶의 미학을 제시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lluminate Korean beauty in the context of confucianism. Basically, confucian theory of art emphasized the utility of art instead of its substantial beauty. Therefore, people are accustomed to say the beauty of human character or talent. In Eastern confucian culture, nobleman has practiced himself six arts such as etiquette, music, archery, horsemanship, calligraphy and mathematics. Other arts were called miscellaneous accomplishments. Afterwards, nobleman began to be involved in painting, and then painting became a necessary item for refinement together with poetry, calligraphy. Korea has a long tradition rooted in confucian thoughts and customs. Korean people have lived their life grounded on confucian morals. The purpose of confucian education is to foster seonbi or scholar who builds their character for self-cultivation, friendly discourse and fidelity through artistic practice. Confucianism controled human pathos and emphasized the ideal life with the moral of moderation and courtesy. Ordinary people enjoyed the folk paintings which depict filial piety and brotherly love. Bookshelf paintings hanging inside are representative fruits from confucian culture, which were enjoyed by both scholars and common people. Confucian thoughts is permeated deeply in the aesthetic consciousness of Korean people, in forming aesthetics of human life and aesthetics of human character. We can find the beauty of adjustment in the arrangements of architectures of dwelling space, side buildings, and ancestral and confucian shrines. Hagiography of eminent scholars, the teaching of the sages, is a guide book which gives us the dial of ordinary life to build our character. Though it is not systematic but shows substantial integrity, notifying the lessons of aesthetic cultivation. Toegye's hagiog-raphy suggest the mode of aesthetic life showing his practice of learning and life.

6,900원

7

郭熙의 『林泉高致』에 나타난 신유학 예술관

박현숙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1호 2016.05 pp.156-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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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말 오대의 혼란을 제패한 북송시기에 과거를 통해 등용된 사대부가 문화의 주 인공으로 출현하게 된다. 이들은 이전시기 사상을 주도했던 불교와 도교에 맞서 새롭 게 유학을 부흥하고자 하였으며 이들에 의해 신유학이 탄생하게 된다. 곽희는 궁정화가로서 이들 신유학자들과의 사상적 공유를 통하여 신유학이 추구 하는 세계 질서를 산수화에 구현하고자 하였다. 신유학은 우선 형이상학적 우주론을 제시하며 자연질서를 설명하고 이를 통해 사회질서와 그 위계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곽희는 거대한 산수화를 통하여 우주의 질서와 생성 변화를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자연 과 사회의 통일된 질서와 조화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신유학이 중시한 격물 공부란 하 나하나의 개별 사물의 이치를 추구하는데서 보편적인 천리를 아는데 까지 상승해 나가 는 것이다. 곽희는 산수화론인 『임천고치』에서 자연에 대한 세심하고 치밀한 관찰을 통한 ‘격물(格物)’ 방법을 단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곽희가 산수화를 그리는 과정은 수양한 것을 확충하고(所養欲擴充), 본 것을 충분히 익히며(所覧欲淳熟), 여러 곳을 많이 경험하고(所經之衆多), 마지막으로 정수를 취하는 것(所取之精粹)이다. 이 과정 은 바로 신유학자들이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하여 천리를 깨닫는 과정과 같다. 산수화 감상에서도 도가적, 불교적 감상방법인 ‘와유(臥遊)’ 대신 반듯하게 앉아 신독(愼獨)하며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좌경(坐窮)’으로 대체된다. 신유학자들은 정 신이 집중되고 어떠한 잡념도 없는 ‘경(敬)’의 상태가 곧 성인이 되는 길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수양법이 『임천고치』에서는 정신을 하나로 집중하여 통일시키고, 엄격하고 철저하며, 삼가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태도(‘注精以一之’, ‘神與 倶成之’, ‘嚴重以肅之’ ‘恪勤以周之’)로 나타나며 이는 모두 신유학의 ‘거경(居敬)’의 수양론이 반영된 것이다.
In Northern Song Dynasty when the confusion of the late Tang and the Five Dynasties had been ended, the new culture leader, the scholar- officials, began its existence, who had been appointed by passing the imperial examinations. They wanted to revive Confucianism again against Buddhism and Daoism which were the leading idea of earlier times. This made them create Neo-Confucianism. Guo Xi (郭熙), who was the court painter, tried to embody the new view of the world pursed by Neo-Confucianism into his landscapes by sharing ideas with Neo-Confucians. Suggesting the metaphysical cosmology, Neo-Confucianism explained the order of nature and moreover through this attempted to explain the social hierarchy. Throughout the paintings, Guo Xi intended to express not only the order of universe and the changes of creation, but also unified order and harmony between nature and society. ‘Investigation of things (格物)’, which was emphasized by Neo-Confucianism, means improving from pursuing reasons of every object to realizing universal truths. In Guo Xi’s art of landscape, he introduced methods of ‘investigation of things’ in phases, through making close observation about nature. These are processes for Guo Xi to draw the landscapes: expand what you have been educated (所養欲擴充), thoroughly master what you have seen (所覧欲淳熟), experience many places (所經之衆多), take the essence of it (所取之精粹). These processes are equal to how Neo-Confucians realize natural principles through ‘investigation of things’. In addition, the methods of appreciation of landscape were also replaced by ‘exploring reasons of every object while sitting up straight (坐窮)’ instead of ‘aimlessly wandering while lying down (臥遊)’ which was the methods of Buddhism and Daoism. Neo-Confucians considered the ‘reverence (Jing, 敬)’ as the way of becoming a sage. These cultivation methods of mind were mentioned in Linquan Gaozhi (『林泉高致』) as concentrating of thoughts, being strict to yourself, and putting great efforts with modesty (‘注精以一之’, ‘神 與倶成之’, ‘嚴重以肅之’ ‘恪勤以周之’), which were all reflected by ‘reverence’ of Neo-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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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근대미학의 수용에서 ‘미적범주론’의 양상과 의미 - 한국과 일본의 초창기 미학을 중심으로 -

신나경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1호 2016.05 pp.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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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일본으로 서구 근대미학이 유입되면서 동양에서 소위 ‘美學’이란 학문 이 성립될 즈음, 서구근대미학에서 발달되었던 미적범주론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고찰하고, 그러한 고찰을 바탕으로 기존의 한국미학 연구에서 특히 많이 논의되어 왔 던 ‘미적 범주론’의 양상과 그 의의를 재고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미적 범주란 사유 혹은 존재의 근본형식을 의미하는 철학에서의 범주개념을 미 학에 적용한 것이다. 19세기말에 동경대학에 미학강좌가 개설된 이래 일본미학의 추세 는 서구의 미학적 방법론을 수용하면서 그들의 고유한 전통개념에 의존하는 방식을 취 했다. 예를 들면, 오니시 요시노리(大西克禮)는 ‘유현(幽玄)’, ‘비애(悲哀)’, ‘풍아(風雅) 와 같은 일본의 전통적 개념을 미적 범주로 성립시키고자 했다. 기존의 한국미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어 온 방법론 역시 미적범주론이라고 볼 수 있다. 고유섭의 ‘무기교의 기교’나, 조지훈의 ‘멋의 연구’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이와 같은 근대학문으로서의 미학이 유입된 것은 역시 일본의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에 의해서였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의 미학 연구는 일정한 한 계를 안고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미적범주론 위주의 한국미학은 어 디까지나 일본미학의 영향 아래 발전된 것으로서 한계를 가진 이론이 아닌가하는 비판과 자성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기존의 한·일미학계의 연구동향을 살펴서 비교 분석해 보면, 서로의 미 적범주론은 그 특성과 성립배경에 차이가 있는 데다 일본 역시 서양의 학문체계를 받 아들였으므로 반드시 국내의 미적범주론이 일본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 다고 생각된다. 세계미학의 발전 추세는 글로벌화되고 있으며, 지구상의 인류가 점점 더 빈번하 게 교류함에 따라 세계문화도 아이덴터티의 상호의식이나 상호이해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화가 각 민족의 일정한 특색이나 범주마저 완전히 무화(無化)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발견되는 미의식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편차를 포함하고 있으며, 어떤 문화도 미적체험을 특정 짓는 유형적 개념을 가지기 때문이다. 미래의 예 술이나 미학은 결국 각 민족의 특색을 유지하면서 공통의 일치점을 향해 나아갈 것이 며, 그런 의미에서 미적범주론은 계속 유의미한 연구방법론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The study identifies how the Western aesthetic category theory had been accepted since the introduction of Western aesthetic notions in Japan, and accordingly understands the aspect of ‘aesthetic category’ and significance that have been mainly discussed in Korean aesthetics. Since Western aesthetics was introduced to Tokyo university in the late 19the century, Japanese aesthetics has accepted western aesthetic methodology while relying on its traditional notions. For instance, Ohnishi(大 西克禮) has tried to incorporate Japanese traditional beauty concepts such as Yugen(幽玄), Sorrow(悲哀), and Wabi(わび) into aesthetic category. Most commonly used methodology in Korean aesthetics is also aesthetic category theory, which was, however, introduced to Korea in line with the Japanese colonial cultural policy; and thus, there has been criticism and introspection on Korean aesthetics, which has been too focused on aesthetic category theory under the influence of Japanese aesthetics and seems to be innately limited. Looking at aesthetic study trends between Korea and Japan, however, the differences of aesthetic category theory appear in their characteristics and foundation background. Korean aesthetic should not strictly be seen as part of Japanese aesthetic influence as Japan has also adopted Western aesthetics. Aesthetic development has become internationalized and grown into mutual and cultural understanding as the world has established closely interchangeable networks between nations. This phenomenon does not mean to nullify the cultural uniqueness and category of each nation because aesthetic concepts found in reality include the cultural difference; any culture obtains tangible concepts that define its aesthetic value. The future art and aesthetics will move forwards mutually agreed concepts among nations while each of them sustain its cultural and aesthetic uniqueness; in this respect aesthetic category theory will believably continue to be one of significant methodolog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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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나라 樂舞의 舞態양상과 舞具의 상징적 의미 - 大武를 중심으로 -

이화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1호 2016.05 pp.20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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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중국의 고대국가 주周나라의 樂舞[大武]에서 연출된 춤과 舞具를 분 석하여, 舞態와 무구사용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첫 번째는, 악무에서 춤이 연출된《大武》의 연원과 이해를 살피고, 두 번째는, 지금까지 파악되지 못한 《大武》의 춤 방향(절차), 춤 구성, 춤 동작 등을 도출시켜, 세 번째는,《大武》에서 춤과 함께 사용된 무구의 종류와 의미를 밝힘으로써, 마지막 네 번째에서는 앞선 논의 를 토대로《大武》에서 춤과 무구와의 유기적 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 결과《大 武》의 1단계[一成]에서는 군사들의 대열을 상징한 무용수들의 숫자와 의미를 밝혔고, 이어 춤이 진행된 방향과 춤이 구성된 동작의 步法을 추출하였다. 2단계[二成]에서는 樂舞에서 연출된 군사적, 전투적인 동작들, 즉 뛰어 오르고[踊躍用兵], 치고 찌르며[击 刺狀], 빠르게 회전하는[速回] 동작을 추출했으며, 이런 동작은 劍舞와 戈舞의 형식을 갖춘 춤으로 드러났다. 3, 4단계[三成・四成]에서는 群舞를 바탕으로 춤이 진행된 방향을 밝혔고, 5단계 [五成]는 춤 동작의 의미와 악무에 사용된 음악[亂]을 해석하였으며, 마지막 6단계[六 成]에서는 왕에 대한 예후를 갖추는 것을 끝으로《大武》의 모든 과정에서 드러나는 춤 양상을 구체적으로 추출하였다. 한편《大武》에서 사용된 舞具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규명하였다.《大武》 는 <武舞>의 형식을 갖추었기 때문에 춤에서 舞具의 종류는 ‘방패’, ‘칼’, ‘창’, ‘도끼’를 상징한 것들이었다. 이에 무구는 무기 용도뿐만 아니라 악기[鐸]로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전쟁 승리를 도우는 수단 도구임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大武》에서 舞具를 사 용한 춤은, 도끼를 들고 추는 춤[斧鉞舞],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추는 춤[干戚舞], 방패 와 칼을 들고 추는 춤[干刀舞], 방패와 창을 들고 추는 춤[干戈舞・干矛舞], 방울을 들 고 추는 춤[鐸舞]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이 본 연구는 지금까지 논급되지 못한 周나라 의 大樂舞인《大武》의 무태와 무구 양상을 밝힘으로써 中國古代樂舞美學연구에 기여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directing form, composition, direction and motion of dance in detail and utilization, meaning of dancing material that have not been mentioned so far by analyzing dancing form and material being directed in AKMU of Ju Dynasty, an ancient kingdom of China. That is to say that its objective is to finally extract foundation of dance, progression, thinking method of dance being used in Ju Dynasty's AKMU based on previous discussion by suggesting first, an origin for understanding DAEMU being emerged in AKMU in order to extract dancing form elements of AKMU, second, dancing form including direction (procedure), dancing composition, motion directed in DAEMU that were not identified so far through GOGU and third, type, usage and meaning of dancing material being utilized in AKMU. As its result, at 1st stage of DAEMU, number and meaning of dancers symbolizing military line were clarified and dancing direction, motion and step method were extracted. At 2nd stage, military, militant motions, that is, jumping, hitting, stabbing and rapidly rotating motion being directed in AKMU exposed a sword, spear dancing form. At 3rd, 4th stages, directional nature of dancing was clarified in detail based on group dance and at 5th stage, meaning of dancing motion and musical meaning used in AKMU were analyzed and finally at 6th stage, as a finale of showing a courtesy to the king, the entire process of dance being used in AKMU was clarified in detail. In addition, regarding dancing material being used in DAEMU, it was analyzed as following meaning. As DAEMU was played in a military dancing form, type of dancing material was clarified to be 'shield', 'sword', 'spear', 'ax' and 'bell' and as a dance using dancing material, dancing with shield and ax, that with shield and sword, that with shield and spear and that with bell were extracted. As an aspect of dance and dancing material of DAEMU that was grand AKMU of Ju Dynasty but has not been mentioned so far was clarified in detail, it is expected that this result would provide an opportunity of being able to contribute to research on AKMU aesthetics of ancient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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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상의원 운영 체계로 보는 현대 미용기업의 경영 방법 연구

장윤재, 이영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1호 2016.05 pp.22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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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반 산업혁명으로 인류는 획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 왔다. 이러한 경제 발전은 기업을 탄생시켰고, 기업은 효율성을 강조하며, 우월한 경제적 성과를 낸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과 찬사를 보냈다. 인류는 점차 부가가치를 더 창출하려고 경쟁하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일하게 되 면서, 인간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오직 성과만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 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기업의 경영자도 성과만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헌대 미용기업들 또한 이러한 시류에 편승하여 더 많은 이익과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마케팅에만 전념하였고, 기업이 해야 할 기본적인 책임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직 원들은 회사와 자신을 분리시켜 생각하게 되었고, 회사는 잠시 자신이 머무는 곳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게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애사심, 그리고 동료애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본 연구자는 조선을 500년 동안 유지하고 발전시킨 가치규범인 유교를 통 해 인간중심의 경영, 신(神)과 인(仁)과 예(禮)을 근본으로 한 경영 모델을 조선시대 상의원의 운영체계를 통해 연구하였다. 조선시대 상의원의 운영 체계는 현대 경영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합리적이며 우수하다. 상의원의 운영체계를 통해 현대 미용기업이 이익의 극대화가 합리적인 경영 인 것처럼 잘못 인식함으로써 벌어질 경영실패를 막고, 인간중심의 경영, 따뜻한 가족 주의 경영, 공정하고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경영이 사회와 기업과 직원 모두의 성공 을 이루어 내고, 이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달성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Human beings achieved the innovative economic growth through the Industrial Revolution in mid 18th century. Such economic growth created enterprises and the enterprises gave more compensation and compliments to those who realized more distinguished economic achievement as emphasizing efficiency. As working like a part of machine competing to create more added values, human beings gradually lost their intrinsic values. Pursuing only achievement was considered to be reasonable and even business leaders recognized pursuing only achievement as the reasonble management. The beauty enterprises in modern days focused only on generating more profits and achievements as getting on such a trend and neglected the basic responsibility as the enterprises. The employees gradually considered themselves to be separated from enterprises and recognized the enterprises as the place where they stayed for a moment. In such situations, it is absurd to request loyalty, devotion to a company and comradeship to the employees. All the phenomenon above were caused by the misunderstanding on the reasons for the existence of enterprises. Thus, this paper investigated the business administration model based on faith, benevolence and etiquette, the human-focused business administration based on the Confucianism and the value system which enabled Joseon dynasty to be maintained and developed for about 500 years through the operating system of Sanguiwon(Royal Tailor Shop) during Joseon period . The operating system of Sanguiwon(Royal Tailor Shop) during Joseon period was reasonable and superior even from the viewpoint of modern business administration. In accordance with the analysis on the operating system of Sanguiwon(Royal Tailor Shop) during Joseon period, the operating system of Sanguiwon(Royal Tailor Shop) during Joseon period will help to prevent the beauty enterprises in these days from potential failure in management caused by misunderstanding that maximizing profits would be reasonable management. Furthermore, it was identified that the fair, strict and benevolent management as well as human-focused management and affectionate familism management would induce the success of society, enterprise and an employee and enterprises could fulfill their social responsibilities through such endeavors.

5,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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