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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15호 (10건)
No
1

박생광 예술의 특징과 미술사적 평가

최병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5호 2010.08 p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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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광(1904-1985)은 1920년대 일본 교토(京都)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여 일본화를 수학하였고, 이후 30여 년간에 걸쳐 일본에서 日本美術院展 원우에 오르는 등 많은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였다. 그는 1980년대에 접어들어 일본색을 탈피하고 진정한 한국미술의 근원에 대하여 많은 실험을 하였으며, 역사화와 무속화로 유명한 대표적인 경지를 구축하였다. 그의 호를 따서 ‘그로 화풍’이라고 불리우는 독자적 경향은 특히나 <명성황후>, <전봉준>, <역사의 줄기> 등에 대한 역사화와 수십여 점의 무속화 시리즈에서 대표된다. 1984년에서 1985년 2년간 절정기를 이루는 그의 예술세계는 특히 한국의 불화, 민화, 무신도 등에서 비롯된 전통 색채의 현대적 변용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였을 뿐 아니라 진정한 민족성을 반영한 회화세계를 확립하여 미술사적으로도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박생광 예술의 특징을 역사화ㆍ무속ㆍ불화ㆍ색채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으며, 미술사적 평가로서는 독자성, 내용적 관점과 역사ㆍ무속화, 형식적 관점과 색채의 재발견, 한국화와 ‘그로 화풍’ 등으로 나누어 사후 25년간의 미술계평가를 재정립하였다.
朴生光(1904-1985)1920年开始日本东京的留学生活,以及日本画的学习。其后30年间成为日本美术院展的会员并参加了很多活动,然后归国。进入1980年后,他摆脱了日本绘画的影响,开始对真正的韩国美术进行尝试。创作了很多具有代表性的著名历史画和巫俗画。以其号命名的‘朴生光 画风’具有独创性,尤其是<明成皇后>,<全琫準>,<歷史的脈> 等作品是他所创作的历史画和数十件巫俗画系列中的代表作品。1984年到1985年间是他美术生涯的顶峰时期,他把韩国的佛画,民画,巫神画等传统色彩向现代性方向变用,不仅创造了一种新的绘画可能性,而且确立了可以反映真正民族性的绘画世界。因此他被认为是美术史上极具影响力的画家。本论文从历史画ㆍ巫俗ㆍ佛画ㆍ色彩等方面对朴生光的艺术特征进行阐述说明,然后,将其死后25年间美术界对其评价进行再次整理,从独创性,内容层面的观点和历史巫俗画,形式层面的观点和色彩的再发现,韩国画和‘朴生光 画风’等几个方面对其在美术史方面的评价进行详细的阐述。

7,800원

2

『선화화보』의 10문에 담긴 회화분류사적 의의

이정미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5호 2010.08 pp.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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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화보󰡕에 실린 10문의 구조체계는 오늘날 회화분류사 방식의 연원을 알 수 있는 문헌적 성과물로서의 가치를 지녔다. 이는 동아시아 회화예술사조에서 주요한 문제로 인식되는 회화분류사의 근원과 사상적 맥락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선화화보󰡕가 편찬되었던 시기 전후로 나타난 화론사와 회화사의 특징도 함께 고찰할 수 있게 해준다. 󰡔선화화보󰡕의 편찬은 황실 內府 소장이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실행한 畵學政策의 일환이었으며, 개인 저자의 서화사론인 米芾(1051-1107)의 󰡔畵史󰡕․劉道醇의 󰡔聖朝名畵評󰡕 등과 비교해 볼 때, 그 규모와 자료 보유량 측면에서 차별화된 이론적 경향과 풍부한 사료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선화화보󰡕에 담긴 다양한 서화예술의 특징 중 하나인 10문의 회화분류 구조체계는 󰡔선화화보󰡕의 문헌학적인 가치와 의의를 더욱 제고시켰다. 󰡔선화화보󰡕를 기점으로 󰡔도화견문지󰡕와 󰡔화계󰡕에 담긴 회화분류의 구조체계를 비교분석한 결과, 10문의 회화분류는 ‘道則一’이라는 사상적 기조에 바탕을 두고 회화분류사의 주된 개념인 ‘類型化’의 과정을 통해 완전한 분류체계를 갖춘 특기할만한 서화예술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The painting classification system of ten subject categories expounded in Xuanhe-huapu(Catalog of Paintings of the Xuanhe Emperor) is of great value as a bibliographical accomplishment to trace the origin of painting classification systems today. This system offers an opportunity to grasp both the origin and thought of painting classification history, and examine the features of painting theory and painting history around the period when Xuanhe-huapuwas compiled. The catalog was compiled as part of state-driven painting studypolicies. Compared with painting history by individual authors, such as Painting History (畵史) by Mi Fu (1051-1107) and Shengchao-minghua-ping (聖朝名畵評) by Liu Daochun, this catalog encapsulates differentiated theoretical tendencies and abundant value as historical records, in terms of its scale and amount of information. The painting classification system by ten subject categories,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diverse painting and calligraphic art studies further enhances the bibliographical worth and significance of Xuanhe-huapu. Through a comparative analysis of the painting classification systems recorded in Tuhua jianwenzhi (圖畵見門誌) and Huaji (畵繼), the painting classification system by ten subject categories is consideredthe specially noteworthy feature of painting and calligraphy, based on the philosophical basis that "Tao (path or principle signifying the fundamental or truenature of the world) is one-and-the same." This system is regarded as a perfect classification system formed through a process of categorization, a primary concept of painting classification history.

7,000원

3

燕巖 朴趾源의 書藝認識에 關한 硏究 - 文學論과 相同性을 中心으로 -

전상모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5호 2010.08 pp.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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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 朴趾源(1737-1805)은 우리나라 고전문학사에서 문학의 제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문학이론을 펼쳐낸 인물이다. 그는 詩(文)․書․畵를 겸비한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예에 관한 인식은 결코 그의 문학론과 다른 것은 아니었다. 연암의 미의식은 대체로 인위적인 기교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존중하고 원숙한 미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미의식은 문학작품의 정신적인 지층을 형성하는 근원적인 요소로서 기타 예술 장르에 대한 인식으로 확산되어 있다. 연암은 자신만의 사회비판적 문예를 창조하였다. 거기에는 인간이 차별적인 신분제도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근대적 의식이 내재해 있다. 또한 당시 조선은 경제적인 낙후뿐만 아니라, 그것에 수반한 문화의 저급한 수준을 개선하여 찬란한 문명을 수립코자 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연암은 자연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여 自得하고자 하였다. 연암은 詩(文)․書․畵는 단순히 性情之正과 溫柔敦厚를 표출하는 수단이 아니라 천지자연의 삼라만상에서 自得하고자 하였다. 연암은 시간적으로는 ‘今’을 강조함과 동시에 공간적으로는 ‘朝鮮’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중국이 모든 기준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상대적 관점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개체성이 문예적으로는 당대 현실을 강조하면서 전통에 대한 모방을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전까지 ‘善’의 추구만을 지상의 과제로 알고 있었고 그 규범주의 명분주의의 질곡화에 따라 인간의 감정이 자유로울 수 없었던 조선조 18세기 성리학의 풍토 속에서 연암이 ‘善’에 못지않게 ‘美’의 세계의 가치를 인식하고 성정의 자유로운 발현을 주장한 것은 성리학으로부터의 문학예술의 해방운동이었다. 연암의 문예정신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眞’이라고 할 수 있다. 창작주체의 진실로부터 문학의 객체를 反映해 내는 진실성까지 일관되어 있다. 이러한 문예정신으로 연암은 주체적 정감의 진실과 객관적 묘사의 진실이 고도로 통일된 작품을 창작하여 지금까지도 우리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Yeonam Park Ji Won (1737-1805) built his own systematic and logical comments on literature in the Korean history of traditional literature. One of few had been endowed with poem (literature), calligraphy and painting, he had the same views on both calligraphy and comments on literature. His aesthetic consciousness was more generally in favor of naturalness than artificial techniques. Such consciousness, as a fundamental element to form a metal stratum of literature works, has been extended to consciousness for other art sectors. Yeonam created his own society-criticizing literature and it included a modernistic mind of humans should be liberated from discriminatory status system. And in it, he also emphasized that Chosun should create a brilliant civilization by improving its fall-behind economy and a low level of culture accompanied by such economy together. He tried to understand by discovering a new meaning from nature. Besides, he himself realized poem (literature), calligraphy and painting were not a just means for expressing softness and mildness, corrective temperament and tried to find an ultimate idea from the whole of creation. He emphasized 'now' for time and "Chosun" for space respectively, which means a relative perspective that China could not be a center of all standards. And this individuality was shown in the forms of emphasizing the current reality and criticizing the imitation of tradition in literature. Under the Neo-Confucianism, the 18th century of Chosun had seen only the pursuit of 'goodness' and the strict obeisance to norms and the resulting suppression of free expression of human's feelings and Yeonam recognized newly the value of beauty and suggested a free revelation of nature under the environment, which was a kind of liberation movement of literature and arts from the Neo-Confucianism. His spirit of literature could be summarized as the word of 'truth,' which contains fidelity that reflects an object of literature from a truth of a creating subject. With this mind, he created moving works which harmoniously combined a truth of the subjective emotion with and a truth of the objective description.

10,000원

4

李三晩의 元氣自然的 서예미학에 관한 연구

장지훈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5호 2010.08 pp.12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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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19세기에 활동했던 蒼巖 李三晩(1770-1847)은 당시 최고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圓嶠 李匡師(1705-1777), 秋史 金正喜(1786-1856) 등과 함께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서예가이다. 그는 中人의 신분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刻苦의 노력으로 ‘流水體’라는 獨自的 서풍을 개척했던 불굴의 서예가였다. 그의 서예탐구는 50대 후반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기록한 여러 書帖과 書訣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본고는 書訣에 담겨진 이론을 분석하여 이삼만의 서예미학을 탐구하였다. 이삼만은 漢․魏 이래 서예가 근본에서 점차 멀어지면서 元氣가 쇠락하고 본연의 정신을 상실했다고 간주하고, 서예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해 漢代에 근간한 元氣自然의 서예심미에 주목했다. 그는 자연심성에 바탕하여 개성적․주체적 서예정신을 고취시켰으며, 氣勢의 力量을 서예미로 승화시킴으로써 生氣가 고갈되고 생명력이 상실된 조선의 서예를 일소하고자 했다. 창작 상에서도 推展의 用筆法을 통해 力動美를 강구했으며, 天然의 자연심성에 바탕한 逸韻美를 실현하였다. 이러한 창작경계는 예술이 윤리에 종속되는 조선의 보편적 서예심미에서 일정정도 벗어나 자유의 예술경계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이삼만은 진솔한 자연심성과 생명력 있는 氣勢를 결합하여 역동적인 조선의 서예를 창도하고자 했다. 즉, 元氣自然의 서예미학을 통해 自得의 서예경계를 구현했던 것이다.
Ch'angam Lee Sam-man(蒼巖 李三晩 : 1770-1847), active in the Chosun period of the nineteenth century, was not considered to be the best calligrapher by his contemporary. Yet he was one of the calligraphers who characterized the late Chosun period calligraphy with Wongyo Lee Kwang-sa(圓嶠 李匡師 : 1705-1777) and Ch'usa Kim Chŏng-hi(秋史 金正喜 : 1786-1856). He was a strong-willed calligrapher who created his unique calligraphic style called Yusuch'e(流水體 : literally, a style that flows like water) through an incessant effort despite of his humble origin of Chungin(中人 : middle group of people). His calligraphic exploration can be seen through many of his calligraphic collections and calligraphic treatises recorded from his late fifties until his death. This paper focuses on his calligraphic theories from his calligraphic treatises to examine his unique calligraphic aesthetics. Lee Sam-man considered that calligraphy lost its Wongi(元氣 : original spirit) and its fundamental nature as it moved further away from its foundation since Han and Wei dynasties. As a way to recover the original spirit of calligraphy, he paid his attention to the calligraphic aesthetics of Wongijayŏn(元氣自然 : original spirit and nature) originated in the Han period. He encouraged the individualistic and independent calligraphic spirits based on natural human sentiments and he tried to renovate the Chosun calligraphy that lost its vitality and spirits by sublimating the power of spiritual strength into calligraphic beauty. In the area of artistic creation, he pursued dynamic beauty through the usage of the brush of Ch'ujŏn(推展 : literally, push and expansion) and realized the beauty of Ilwunmi(逸韻美 : beauty of comfortable rhyming) based on natural sentiments. This artistic achievement overcame to a certain degree the general calligraphic aesthetics of Chosun that bound arts with ethics and moved toward the free artistic achievement. To sum up, Lee Sam-man tried to create a dynamic Chosun calligraphy by combining the honest natural sentiments and vitalistic spirits and power. That is, he created a self-obtained calligraphic world through the Wongijayŏn calligraphic aesthetics

6,400원

5

篆刻의 陰陽對待的 美學 特徵

김현숙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5호 2010.08 pp.147-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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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각의 陰陽對待的 원리와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미학적 특징을 탐색한 것이다. 이 특징은 현상계의 변화를 음양으로 서술하고 있는 󰡔周易󰡕의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음양은 서로 相反된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그 상반성을 매개로 하여 상호 보완하고 성립시켜주는 대대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음양론은 예술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철학적 범주와 명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각의 내용과 형식에 미학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전각에서의 음양대대적 원리는 相反相成의 和諧美와 陰陽流行의 妙化美라는 측면에서 미학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먼저 상반상성의 화해미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로써 표현된 형상은 부드러운 변화 가운데 안정된 整合性을 갖추며 상반된 가운데 대대의 미학적 특징을 갖는다. 음양유행의 묘화미는 천지자연이 一陰하고 一陽하여 끝도 없고 시작도 없이 순환하며 유행한다는 원리적 측면을 담고 있는 것인데, 곧 陰陽互藏的 妙化의 미학적 특징을 지닌다고 하겠다. 이처럼 전각의 음양대대적인 면은 󰡔주역󰡕 음양론의 사유체계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것은 전각에 표현된 각종 음양적 형상들이 서로 상반성을 지니면서도 상호 감응과 성취의 대대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는 전각이 기술이나 실용성을 넘어 미학적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This paper aims to investigate to the yin-yang(陰陽) principles in seal engraving and its aesthetic characteristics.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seal engraving can be found in yin-yang(陰陽) principles of {I Ching} which describe the change of world. Yin and Yang are opposite to each other, but they have correlations between them. The theory of yin-yang in {I Ching} does not mention art itself, but provides aesthetic groundwork of philosophical category and proposition in meaning and form of seal engraving. The yin-yang(陰陽) principles in seal engraving express its aesthetic characteristics in terms of the reconciling aesthetic of the opposite but correlation and the profound and mysterious aesthetic of yin-yang movement. The reconciling aesthetic of the opposite but correlation forms the organic relationship with balance and harmony in seal graving. The opposite forms expressed in it are used in forms such as structure, drawing, using knife. These forms hav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mild transition among stable consolidation and the opposite but correlation. The profound and mysterious aesthetic of yin-yang movement has the aspect of principle expressing once being yin, once being yang and endless transition of nature. As mentioned above, the yin-yang(陰陽) principles in seal engraving have close relationship to the theory of yin-yang in {I Ching}. It can be confirmed in diverse yin-yang forms expressed in seal graving, which mean the opposite but correlation between yin and yang. It would emphasize that seal graving has aesthetic characteristics and meaningfulness beyond technique and practicality.

6,900원

6

柷 ․ 敔에 관한 儒家美學的 硏究

이창신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5호 2010.08 pp.177-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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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에 성인은 덕음의 음인 도․고․강․갈 등의 악기를 제작하여 음악을 조화롭게 함으로써 관직서열의 귀천을 바로잡고 존비의 장유차서를 세우고자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과 같이 동양의 악기에는 동양의 우주론과 윤리가 담겨 있다. 본 논문은 이런 점에서 柷(椌)․敔(楬)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강․갈은 축․어의 다른 이름이며, 당상에서 연주될 때 사용된다. 이들의 유가미학적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축․어는 각각 양․음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축은 악기 제도가 양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진괘로서 동북쪽에 배치되어 음악의 시작에 사용된다. 어는 간괘로서 서북쪽에 위치하여 가을을 상징하며, 악기제도가 음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음악의 끝에 연주된다. 축․어에 음양의 속성을 담고자 한 것은 이 이들을 연주함으로써 자연의 음양조화에 부응하고자 한 것이다. 둘째, 性과 心의 상징성을 보이고 있다; 樂은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근본을 두고 있어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音이 생겨난다. 음의 발생을 축의 소리 나는 원리에 비유하여 목재상자는 사람의 마음으로, 추병은 외부의 자극으로 상징화시키고 있다. 椌의 한자는 악기 내부에 허공을 넣어두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음악이 시작되는 虛와 상통하고 있다. 셋째, 경계와 절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축의 추병을 止로 명명하고, 어에 止의 의미가 있는 것은 음악이 발생할 때 예․의로써 절제하여 색이 음란하지 않고 덕을 보전하며, 음악이 끝날 때 적당한 그침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넷째, 1년 24절기와 우주를 상징한다; 축의 제도는 우주와 사시순환을 나타낸다. 또한 축․어의 겉면에 오방색으로 채색한 것은 오행사상과 관련되어 있다. 오색은 만물을 생성하는 힘의 원천인 하늘의 氣를 나타낸 것이다. 다섯째, 德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축의 한자는 진괘에서 유래한다. 진괘는 木으로 건괘의 장남이다. 때문에 축은 木과 兄의 회의자이다. 진괘의 방위인 동쪽은 으뜸이 되는 덕을 가지고 있어서 만물의 생성을 돕는다. 축이 수양하고 성찰하여 덕을 쌓는 震卦象의 속성을 담고 있는 것은 修身하고 덕을 함양하고자 하는 유학자들의 의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대 동양에서는 축․어를 단순히 음향적 효과만을 내는 악기로 인식하지 않고 유가철학적 관점에서 여러 가지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 음양오행사상, 경계와 절제, 덕 등의 상징적 의미를 축어의 제도․연주법․색상 등에 반영하고 있는 것은 이 악기들이 덕음의 음을 소리나게 함으로서 백성을 교화시키고, 사회를 안정시키며, 국가의 평안을 구하고자 하는데 있다. 또한 이것은 유가철학의 예악사상에 기초한 것이며, 나아가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통치계급의 염원이기도 하다.
Book of Rites, in Chapter on Akgi (Musical Instruments), defines the sounds of the six instruments(Do(鼗), Go(鼓), Gang(椌), Gal(楬), Hun(壎) and Ji(篪)) as sounds of virtue, and notes that through these instruments, social order can be established. Of these instruments, the philosophical meaning of Gang(椌)․and Gal(楬) was examined. The names of Gang(椌) and Gal(楬) are not currently used, but, according to Akhakgwebeom (musical cannon) and Heo Mok's Gieon (sign language), Gang is another name of Chuk(柷), and Gal(楬) is another name of Eo(敔); as such, the two instruments are all used when played on the floor of the Royal Palace. The philosophical meaning of Chuk(Gang) and Eo(Gal) can be defined as follows. First, Chuk and Eo have the attributes of Yang and Yin, respectively. Chuk is seen as Yang according to the instrumental system depicted in Akhakgwebeom and Akgi. Regarding Chuk, the two books agree on the instrumental system, but differ in the interpretation of measurement. Regarding the length of one side of the four directions, 2-ja 4-chi, Akhakgwebeom considers them to be numbers 2 and 4, and Akgi considers them to be 3×8; and, regarding the depth, 1-ja and 8-chi, Akhakgwebeom considers them to be 10 and 8, while Akgi considers them to be 2×9. These numbers are elaborated in the two books, and the attribute of Chuk, derived from these explanation, is Yang. In other words, the two books both consider that with Chuk used when music starts, Chuck has the attribute of Yang defeating Yin. Siakhwaseong(lit. Poetic Musical Harmony) sees Chuk as Jingwae described in Book of Changes, and explains its relation with Yang. Since Yang begins with Jingwae, Chuk is used when music starts, and since the direction of Jingwae is northeast, Chuk is positioned northeast, and Chuk(柷) is composed of Mok(木) and Hyeong(兄), because Jin(震) has the attribute of Mok(木) and the first son. Eo(敔), as Gangwae(艮卦), has the direction of northwest, and is positioned northwest in Royal Palace music. Gangwae embeds the shape of a tiger, and thus Eo is shaped like a tiger. Thus, Eo is a thing of Yin character with the direction of west. Also, the Yin number 10 derived from the length(1-ja) of the stick defeats the numbers 3 and 9 derived from the number of Jeoeo, and thus Eo is understood to have the attribute of Yin. Eo, positioned west, symbolizes autumn, and autumn symbolizes Yin; thus Eo is understood to represent Yin. Second, human nature and mind are symbolized. Music consists in human nature and mind, and thus sound comes from the human mind. Sound comes only from the mind itself, not from external sources. In Akgi, this principle of producing sound is compared to the principle of Chuk producing sound. Chuk does not produce sound of its own accord, but is sounded only by external shock (club). In other words, the wooden case is compared to the human mind, and the club is compared to the external stimulus. Another name of Chuk, Gang(椌), means accommodating and holding emptiness. Akhakgwebeom, in the preface, says that the starting point of music is emptiness; emptiness means the state wherein music has not yet begun, and has a thread of connection with the emptiness created inside the instrument Gang. As such, the name of Gang indicates that Chuk is the beginning of music. As such, Chuk has the attributes of human nature and mind. Third, the instruments contain the meaning of caution and temperance. Chubyeong(club) of Chuk is referred to as Ji(止) in Iya(爾雅), which means initial caution. It also means that even when music starts to play, the ending of it is already kept in mind, thus harmonizing music and preventing temperance from losing. Eo, as Gangwae, holds the meaning of ending appropriately. When Eo, symbolizing ending appropriately, is played, all social members are considered to be able to cultivate their own virtue. Fourth, the instruments symbolize 24 seasonal divisions of the year, and the universe. The one side length and depth of the four directions of Chuk symbolize the universe and four season circulation. The external color blue or five-direction color symbolizes the thought of Five Elements or the five elements of the universe. Fifth, the instruments symbolize the attribute of virtue. The letter, Chuk(柷), comes from Jingwae(震卦) described in the Book of Changes. Jingwae, as Mok (木), the first son of Geongwae(乾卦). Thus, Chuk(柷) is the combined letter of Mok(木) and Hyeong(兄). The direction of Jingwae(震卦), east, has the utmost virtue, thus helps the creation of all things. Therefore, the letter, Chuk, embraces the heaven's will to create all things, and virtue makes the heaven's will be fulfilled. The in-depth symbol of Chuk is virtue.

7,800원

7

2000년대 패션에 나타난 반복에 의한 형태변형에 관한 연구

김영란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5호 2010.08 pp.21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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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패션에서의 반복은 좀 더 복잡한 구조적 형태를 ‘반복’에 의한 확대 변형기법을 활용하여 부분 또는 전체에 내적, 외적인 변이를 가능하게 하며 리듬감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디자이너는 그 시대의 문화적 특징을 의복에 도입하여 새로운 패션의 창조표현을 위한 방법으로 ‘변형’이라는 독특한 표현과정을 통해 또 다른 미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확대에 의한 과장된 형태의 표현은 반복의 규칙과 외형적 변형을 통해 극대화 될 수 있다. 그러므로 2000년대 패션에 나타난 반복기법을 활용한 형태변형 표현방법은 첫째, 수직적 확대변형으로 러플과 같은 디테일을 이용하여 상체 위로 길어보이게 하거나 스커트 아래로 길이를 연장하는 효과로 수직적인 방향의 장식성을 나타낸다. 둘째, 인체의 앞․뒤․좌․우로 면적을 넓혀 입체 공간을 형성시키는 수평적 확대변형으로, 어깨부분이나 허리부분을 과장하여 부풀리거나 확대시키는 형태이다. 셋째, 원형적 확대변형으로, 디테일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원형을 만들어 장식하거나, 스커트 단을 과도하게 부풀려 극단적으로 표현된 형태를 말한다. 넷째, 일정한 부위를 강조하여 시선을 집중시키는 부분적 확대변형이다. 결과적으로 ①의복의 외관을 리드미컬하게 변형시킨 기하학적인 형태의 반복과 ②과장된 의복구조의 반복, ③다양한 변형이 가능한 디테일 반복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Transformation through repetition is a dynamic, exaggerated form of expression that allows the designer to realize his unique fashion philosophy.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re­highlight the diverse post­2000 attempts at dramatizing the external structures of clothes through repetitions, thereby analyzing the expressions of repetitive formative intent capable of further transformation. This study analyzes the repetitive elements (i.e., geometrical repetition using the collage technique, structural repetitions, repetitions of certain details) of clothes capable of further transformation­whether vertical, horizontal, circular or partial. By doing so this study seeks to provide data of the unique aesthetics in repetitive transformations evinced in the post­2000 fashion.

5,800원

8

高句麗 冠帽 羅織의 復原 硏究 -나직물의 유형과 날실4올꼬임라의 실물 복원 -

김영란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5호 2010.08 pp.235-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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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고대 국가는 衣冠을 정제하고 禮를 갖추었던 예의지국이다. 의례의식에 공급된 각양각색 衣裝(服飾)의 수요로 인해 錦, 繡, 罽, 羅 등의 고급 견직물을 생산하였으며, 상당한 수준의 技藝를 발전시켜 그 시대의 과학기술과 예술정신이 함축된 물질문화를 형성하였다. 고대 문헌과 고구려 고분벽화에 의하면, 왕을 비롯한 신분이 높은 자는 견직물 중에서도 物性이 가볍고 통풍이 잘되는 羅직물로서 冠帽를 제작하였음을 알려준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나직물에 刺繡와 印繪로 문양을 첨가한 아름다운 고급 衣料가 성행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그 쓰임새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절멸되어 오늘날까지 나직조 공예기술의 맥은 끊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인류문화예술의 유산으로서 수공예의 가치가 지대한 나직물-날실4올꼬임라의 복원을 시도하여 국내외 유물을 종합, 비교하므로 배경, 원류, 유형, 공예기술 및 특징을 밝히고, 수차례의 실험과 반복을 통해 유물의 과학적인 수복관리, 보존복원, 기술체계를 세우며, 직기 도구, 직조 기법, 직기 조작 등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 연구 성과로 인해 패션소재에서 뮤지엄의 전시대체품에 이르기까지 소급되는 나직물의 실물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고대방직품의 전통과학기술과 미학을 기반으로 텍스타일 신소재의 개발을 창출하고, 아울러 전통섬유 관련 산업의 개발과 전망을 제시하였다.
In the ancient country of our land is the country of courtesy which always equipped with formal clothes and hat. Thus, due to the necessity of formal clothing for various rituals and ceremonies Goguryo, Backje and Shila produces silk fabrics such as polychrome woven silk, embroidery, woven wool, la woven silk. And they also forms the material culture which contains the spirit of art and the technology of the time as the significant level of handicraft. According to the literature records and the murals of the tombs, we could find out that the high class people including the king use to wear the crown made by la woven silk which is light and has good ventilation. Untill Goguryo dynasty, the la woven silk had prospered as beautiful and fancy materials for clothing with applying the extra embroidery and printing and dyeing. But from Chosun dynasty the la woven silk started to almost extinct and even its use can hardly be found.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try to restore the 4-end complex la which has the great value of handicraft as the inheritance of cultural art of the mankind. and by putting together and comparing of both domestic and foreign relics we verified the background, origins, types, craft technique and the characteristics. And also through the numbers of experiments and tests we established the scientific recovering management, restoring and conservation, systems of technology and also fixed the realistic problems of weaving tools, weaving technique and operating of the weaver. By the achievements of this study, the supply of real la woven silk as for substitute for exhibit of the museum or as the materials for fashion business became possible. Furthermore, we could create the new textile materials based on the esthetic and the Tradi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of the Ancient textiles and we also suggested the vision and development of traditional textile-related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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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춤문화의 연행 양상 - 19세기 중인계층의 문화공간을 중심으로 -

이정노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5호 2010.08 pp.27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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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19세기 춤문화에 대한 고찰은 오늘날과 가장 근접한 전통시기로서 봉건적 삶이 해체되기 직전인 전통체제 속에서의 춤문화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인계층의 문화공간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조선후기 새로운 문화사적 현상의 주체로 중인층이 부상하였고 이들은 19세기 춤문화에 가장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중인계급의 경제적 성장과 생활의 여유는 문화예술에 대한 향유 욕구를 자극하여 유흥적이고 향락적인 소비문화를 확산시켰으며, 더욱이 지식이나 교양에 있어 양반계층에 못지않았던 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신분적 처지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의 예인들을 통솔하여 그들의 공연문화권 안에서 주도권을 행사함으로써 19세기 춤문화를 장악하고 있었다. 중인층의 문화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춤문화는 서울지역과 향촌지역이 달랐는데 서울지역은 기부나 왈자, 가객으로서 존재하였다. 이들은 기생들을 자신들의 문화 공간으로 끌어들였고 이로써 京鄕 간의 춤문화의 유통이 활성화 되는 작용을 하였다. 지방 중인층들은 지역의 緣故와 가문에 대해서 자긍심을 갖고 있었으며 官이 주도하는 나례희 및 세시행사를 주관했다. 이 행사는 지역민과 중인집단 간의 유대관계를 위한 與民同樂을 위해서였으나 이때 연행된 중인계층들의 탈춤(가면극)은 지역민과 중인층 사이의 신분적 위계질서가 전도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했다.
This paper, focused on a singing and dancing girl and jester group in charge of entertainment, inquired into the entertainment in the latter period of Chosun Dynasty according to the change of social system. The traditional entertainment that passes through modern time to the present has been continued over the traditional period of eighteenth and nineteenth. At the eighteenth and nineteenth a singing and dancing girl and jester group's entertainment was much in fashion through the national event like before or commercial entertainment space in Seoul, and new entertainment space appeared in these eighteenth and nineteenth has been applied as a space that become an accent point with the national entertainment circulated. And, various entertainment categories throughout the country have been diffused to each zone, and it seemed to have the similar national entertainment. The entertainment circulation in the eighteenth and nineteenth can find its cause from the change of entertainment system related to a singing and dancing girl and jester, which has been realized by entertainer's activity and response at the commercial entertainment space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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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두레놀이의 활성화 방안 연구

노수철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5호 2010.08 pp.30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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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통진두레놀이는 농경 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기초로 형성된 두레의식을 통해서 향토성을 고취시켰으며, 대자연과 사람이 일치되는 상태 속에서 노동의 애환을 환희로 표현하는 놀이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형식 속에서도 집단적 노동춤과 농경모의적 춤사위 및 소리와 장단, 공동체적 단합성의 특징이 살아있다. 무형문화재 보호․육성에 있어서 대부분 시․도가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시․도 지정 문화재의 보유자로 하여금 예능의 전수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예산 지원이 턱없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 같은 전승지원 정책으로는 전수교육이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비록 무형문화재 보호․육성사업은 이와 같이 열악한 환경이지만, 통진두레놀이가 지니는 지역의 자긍심 제고문제와 그것을 지켜나갈 때 야기될 문화관광 자원 확충이라는 문화산업육성적 측면에서, 그 지역의 민속예술인 통진두레놀이에 대한 가치를 우리는 인정해야만 하는 시점에 와 있다. 나아가 통진두레놀이는 놀이와 풍물이 함께 어우러져 진행되는 공연형식으로 기능적․예능적인 측면을 좀 더 보완하여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통진두레놀이 구성원의 전문화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이유와 현재의 무형문화재 보존적 차원과 전승발전이 곧 김포지역의 민속놀이의 브랜드화 사업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GimPotongjindurenolee which is formed on the basis of community life, raises the local spirit of awareness. It has become a play which expresses the sorrow of labor to joyfulness. Therefore, even in the play format, we can find traces of the agricultural movement within the labor dance. The characters Sori and Jang Dan still exist as characters of communal living in unity. To protect and keep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most of the cities and providences in Korea try to allow for the next generation to succeed traditional culture. Therefore, the designated culture holder teaches his/her talents and skills for others to carry on, but the funds are not enough to support the transmission of cultural heritages. This is, in fact, a most difficult situation.  However, even though Tongjin Dure plays in such a harsh environment, the area is now proud of it as it brings cultural tourism and cultural resources of the region in the industrial era. Folk art was recognized as a worthy cultural resource at the time. Therefore, Tongjin Dure’s mix of plays and sceneries is in the progressive form of performances in the play and is centered on the functional aspect of art that needs to be more comple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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