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Home

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33호 (12건)
No
1

고개지(顧愷之) 화론의 형신관(形神觀)에 관한 고찰

강교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5-23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는 예술 분야의 전반적인 부흥과 더불어 회화가 작품으로서의 독립된 가치를 지니게 된 시기이다. 이처럼 고대 회화가 윤리적 교화의 도구일 뿐이라는 인식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학 영역에 도입된 형신 관념과 이로부터 파생된 형사(形似)와 신사(神似)에 대한 논의가 기여한 바가 크다. 이 가운데 동진(東晉)의 저명한 화가이자 화론가였던 고개지(顧愷之)는 ‘전신(傳神)’이라는 명제를 제시함으로써 형신에 관한 논의에 전문성을 부여하였으며, 그의 견해는 후대의 화론에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전신은 묘사 대상이 지닌 정신적 요소를 작품에 집약시켜 감상자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고개지의 화론은 기본적으로 그의 형신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단순히 정신 전달을 주장한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심후한 형과 신의 운용, 묘(妙)의 달성에 대한 고려가 그 저변에 안배되어 있다. 따라서 ‘전신’에만 초점을 두기보다는 고개지의 형신관을 파악할 수 있는 전체적인 범주에서 그의 화론의 대표 명제인 이형사신(以形寫神), 전신사조(傳神寫照), 천상묘득(遷想妙得)을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파악되는 고개지 형신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묘사 대상이 지닌 외형의 기본적인 표준은 준수하도록 한다. 둘째, 대상이 지닌 신의 반영은 전체 모습이 아니라 특정 부분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들을 매개로 전달되는 신에는 대상 인물 내면으로부터 발산되는 생각과 감정, 심상, 학식, 가치관 등이 이에 포함된다. 셋째, 회화 창작의 궁극적인 목표는 ‘묘’의 획득에 있으며, 대상의 미화 또는 오묘함의 극대화를 위해 묘사 대상의 외형을 변형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앞서 제시되었던 외형의 기본적인 표준의 보존은 유보될 수 있으며, 이는 대상의 신이 집약되어 있는 매개 부분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즉 고개지는 대상의 본질보다는 정감, 정취, 가치관 등 인물을 중심으로 한 내·외부로부터 얻은 ‘신’을 통해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화면을 장악하는 하나의 기운인 ‘묘’를 작품에 부여하고자 하였다. 이 가운데 ‘형’은 신의 구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묘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유보될 수 있는 이중적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Weijin Nanbeichao was the era that paintings founded their individual values as works of art along with all-round revival in Art. Likewise, discussion on the concept of Shape and Spirit which was introduced to the domain of Aesthetics and on similarity in apperance and alikeness in spirit which were derived from Shape and Spirit widely contributed to the circumstances that the ancient paintings could overcome the bias that they were merely means of ethical edification. To the accompaniment of that change, Gu Kaizhi, who were an eminent painter and a painting commentator, added professionalism to the discussion on Shape and Spirit by suggesting the proposition of 'Chuanshen' and his opinion had the continuing influence on the painting theories in the future generations. Chuanshen means an attempt to integrate the mental elements of the objects into the works so they can be delivered to the appreciators. Gu Kaizhi's painting theory is basically established on his concept of Shape and Spirit, and also the consideration on the performance of shapes and spirits which is more complicated and profound than he merely had insisted the mental delivery and on the achievement of Marvelousness are found throughout his theory. Thus, it is more needed to closely analyze some representative propositions of his painting theory at the overall domain that widely shows his concept of Shape and Spirit, rather than to focus only on Chuanshen. The features of Gu Kaizhi's concept of Shape and Spirit grasped by the analyzation are as in the following; First, the fundamental standard of objects' shape should be complied with. Second, the reflection of spirits which the objects possess is achieved through specific parts of them, not through their entire form, and spirits which is delivered through the parts includes the ideas, emotions, images, erudition, values, and such things that are radiated from the object's inner side. Lastly, the ultimate aim of painting creation is on the gain of 'Marvelousness', the objects' form can be modified for their beautification and maximization of abstruseness. For this, the preservation of basic standards for the forms can be set apart, and it is same about the media which the objects' spirits is integrated. That is, Gu Kaizhi meant to give the formless values of abstruseness by setting invisible circumstantial elements. It cannot be said that the consideration on shapes was discarded from his painting theory, but the preservation of shapes could be put aside as the gain of mysterious mood became emphasized.

5,400원

2

<노비훈(奴婢訓)>의 기계매체와 부재(不在)의 역할놀이

강춘애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25-51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일본의 정치, 사회, 그리고 예술의 격동기인 1960~70년대에 활동한 주요 인물 가운데 가장 애매하면서도 가장 전위적 평가를 받는 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의 후기 작 <노비훈(奴婢訓), Nuhikun>(1978년 초연)에서 압도적인 무대 이미지를 구현한 기계매체의 발상에 주목하였다. 데라야마는 연극실험실 덴조사지키(天井棧敷, 1967-1983)의 주목적은 ‘정치를 통하지 않는 일상 현실 원칙의 혁명이다’라고 했다. 반근대로 출발한 소위 앙그라(Angura ,Underground의 일본어식 약어) 연극 1세대들은 근대연극에서 배제된 일본 전통문화를 현대연극에서 복구하는 것으로 근대성을 넘어서려 했다. 데라야마는 서구의 근대극과 아방가르드 연극을 수용한 현대연극의 틀 자체를 에도(江戶)시대 미세모노(見せ物)의 볼거리로 복구하고자 했다. 그는 배우가 없는 연극과 누구나 다 배우가 되는 연극, 극장이 없는 연극과 모든 장소가 극장인 연극, 관객이 없는 연극과 상호 관객이 되어 주는 연극을 10년간의 궤적으로 입증하였다. 후기작 <노비훈>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와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의 작품을 차용하면서, 주인의 부재를 테마로 삼고 있다. 종래 그에 대한 작품연구는 유년시절의 외상이라는 자전적 배경에 의존하여 해석해왔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각 장면에 걸쳐 기계를 도입하여 텍스트를 해체함과 동시에 확장된 무대언어의 생성에 주목하였다. 특히 1975년 이후 덴조사지키의 무대미술을 맡은 고타케 노부타카(小竹信節)와 공동구상으로 설계 한 기계장치가 차지하는 공간언어의 확장과 주인 부재의 상징 코드를 해석하였다. 이로써 주인의 부재와 노비들의 주인 역할 놀이에 대한 각 장면별 분석의 틀을 확보하였다.
This study pay attentions to conceptions of mechanical media realizing overwhelming images on the stage in the performance of ‘Nuhikun(奴婢訓, Directions to Servants)’, which is first shown in 1978 and belongs to Terayama Shūji’s latter works. He has been vaguely valued but is the most avant-garde among major theatre figures during the period from 1960s to 1970s, when was a turbulent time of Japan in terms of politics, society and arts. He said that the main goal of his theatre laboratory ‘Tenjō Sajiki’(1967~1983) was ‘a revolution of reality principles in daily lives without the help of politics’. The first generation of Angura Theatre, that started as a movement of anti-modernism, intended to go beyond the modernity by restoring Japanese traditional culture being excluded in early Japanese modern theatre. He tried to restore frames of Japanese modern plays with the spectacles of Misemono in the Edo era because it had mixed western modern plays and Japanese Avant-garde plays. For 10 years of his theatre experiments, he proved his ideas through ‘a play without actors’, ‘a play in which everybody can be an actor’, ‘a play without a theater’, ‘a play in which every place becomes a theatre’, ‘a play without the audience’ and ‘a play in which everybody including actors becomes the audience’. His works have been interpreted dependently on injury in his childhood in the context of his autobiography. However, ‘Nuhikun’ borrowed characters of works of Jonathan Swift and Miyazawa Kenji and de-constructed the text using machineries in each scene. The study focuses on languages of spaces created on the stage by them.

6,600원

3

‘詩書畵刻一律’의 확장성 연구 -중국 근ㆍ현대시기 전각가 8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

김희정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50-7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동아시아의 예술전통으로 인식되고 있는 ‘詩書畵刻一律’論의 확장 가능성을 소동파가 제기한 “天工與淸新”의 방법과 동양미학의 범주 가운데 ‘意象’의 개념을 적용하여 기술하였다. 詩․書․畵가 어떤 원리로 인식되었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 相補相生하며 확장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근현대전각가 8인의 書․畵․刻을 대상으로 하였다. 앞의 고찰을 종합해보면, 근대시기의 작가들은 주로 ‘探古’적 성향이 강하고, 현대시기의 작가들은 ‘融合’의 성향이 우위에 있다고 하겠다. 또 근대시기의 전각가들의 공적을 서술하면, 鄧石如는 切刀法으로 새긴 전배들의 도법을 용필법과 같은 원리의 衝刀法을 써서 비학서예의 전서 필획과 같이 유창하면서 질박한 풍격의 전각을 개발한 점이다. 趙之謙은 등석여의 ‘印從書出’의 경지에서 진일보하여 ‘印外求印’의 지평을 넓혀, 이후부터는 진한시대와 위진시대의 인장을 기초로 기타 유물에 주목하여 각자의 전각세계를 개척하도록 한 점이다. 吳昌碩은 조지겸의 ‘印外求印’의 지평에서 주로 한인과 석고문의 자법을 취하고 봉니의 이미지에 주안점을 두고 石美(石味)를 형상화하여 質朴하면서 敦厚한 문인 전각을 이뤘다. 黃士陵의 전각작품은 진한인에서 형식과 이미지를 땄고, 金文과 錢幣·權量·銅鏡 문자 등에서 字法, 章法을 취했다. 그래서 金味(金美)를 형상화하여 光潔하면서 古雅한 문인전각을 이뤘다. 현대시기 전각가들의 전각사적 공적은, 먼저 齊白石은 單刀法을 위주로 하는 도법과 上密下疎와 斜線의 사용으로 질기고 사나우면서 통쾌한 서민적 감성을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인화의 장법을 전각에 도입하는 새로운 경지를 연 점이다. 王鏞은 산수화의 장법과 의경을 전각에 융회시켜‘書從印入, 印從書出’과 ‘印內求印, 印外求印’을 포함한 시각예술(조형예술)의 보편적 규율을 전각에 적용시킴으로써 새로운 전각언어를 통해서 민간의 심미취향인 진솔한 생명력을 표현한 점이다. 石開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예술장르인 전각을 통해 동아시아의 심미를 실현함과 동시에 전각을 보편적 예술장르로서의 조형예술로 보고, 자연과 구별되는 예술은 人工(人僞, 造作)이라는 근대적 관점의 예술론과 자연보다 더 뛰어난 인공이 진정한 예술작품이라고 인식한 칸트 미학을 실현한 점이다. 陳國斌은 동양의 전통예술의 하나인 전각을 현대미술이나 혹은 현대 문명에 익숙한 현대 동양인들의 미감까지도 포섭하여 ‘현대’라는 시대정신을 시대양식으로 구현하였다. 예술이 인간의 삶을 반영하고, 예술사가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전각 또한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담고 있으며, 특히 현대시기 전각가들의 작품에는 확장된 세계에 부응하는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장르의 詩․書․畵가 ‘意象’을 매개로 融合되어 相補相生하면서 발전했다. 또한 근대시기에 이르러 詩․書․畵에 篆刻이 포함되면서 ‘詩․書․畵․篆一律論’으로 확대 발전되었으며, 장차 만화나 영상 등 현대미술로의 확대 증식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was discussed at the '融 複合' perspective that is advocated in our society '詩書 畵 刻 一律' 論 that are recognized as art traditions of the East from the near few years. 'Creates essentially a single combined different types or areas are mixed new' concept of 'convergence' is recognized as the means, and the 詩. 書. 畵. Synergistic effects with convergence how 刻 together different genres the '意象' concept, one of the categories of oriental aesthetics whether technology was able to apply. In addition, specific targets are heard in modern and contemporary times in China jeongakga 8 people.

6,300원

4

도상체계로 본 한글 창제의 철학적 원리

박상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74-9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한글은 철학적 개념으로 만든 유일한 문자체계(文字體系)다. 한글을 만든 철학적 개념들에는 한국인의 고유한 사유가 포함돼 있다. 15세기 세종과 집현전 성리학자들의 우주관과 세계관은 한글창제에 그대로 반영됐다.『훈민정음(訓民正音)』에서 밝힌 한글 창제의 철학적 개념은 모두 3개다. 첫 번째는 삼재(三才)이고, 두 번째는 이기(二氣)며, 세 번째는 오행(五行)이다. 삼재는 천지인(天地人)을 뜻하고, 이기는 음과 양이니 자음과 모음을 뜻한다. 그리고 오행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로 대변되는 어금닛소리, 혓소리, 입술소리, 잇소리, 목구멍소리이다. 한글 창제 원리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지속적으로 정리되어 왔으나 15세기 성리학의 우주관이 어떻게 한글에 적용됐는지 도상체계를 바탕으로 연구된 바는 없다. 이에 이 논문은 도상체계(Iconography system)를 바탕으로 한글 창제의 철학적 원리를 분석해 보려 한다. 한글을 삼재의 도상성, 이기의 도상성, 오행의 도상성에서 그 창제 원리를 참구해 보고자 한다. 문자를 창제하기 위해 사용한 철학적 개념들이 구체적인 도상(Icon)으로 어떻게 전환됐는지 그 과정을 짚어 봄으로써 한글의 미적 우수성과 공간 활용의 과학성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고자 한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논문은 한글을 표의문자(Ideogram)와 표음문자(Phonogram)를 모두 갖춘 철학문자(Philogram)이라 명명해 보고자 한다. 그렇게 명명하고자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한글이 자질문자라는 지엽적 분류에서 철학문자라는 그 본질적 의미로 한글의 위치를 회복시키자 함이며 두 번째 이유는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본질적 목적을 더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함이다. 결론적으로 본 논고가 철학문자(Philogram)라는 새로운 명명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은 한글을 사랑하는 한국인은 물론 재외동포,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한글을 더 깊게 이해하고 한민족 사유의 독창성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John Man, England's historian and documentary MC, explained in his book 《AlphaBeta》 which traces back the origin of Alphabet, as 'Hangul is the best language in the world that all languages strive for as an ideal." The Pearl Buck, the author of Good Earth, also praised Hangul as 'Hangul has the most simple word structure in the world, but it can surprisingly express any sound by combine the consonants and vowels.' The excellence of Hangul is the excellence of philosophical structure embedded in the principles of inventing Hangul. In iconography system interpretation, Hangul is the character system made of trichotomy world view. Hangul, in its Hunminjeongeum Haerye Edition Introduction which explained the principles of invention, described as 'Hangul is based on the three principles, heaven, earth and man. So the posterity cannot change in their discretion.'. Also, according to the Sejong chronicles, it is written as ‘the Korean alphabet was based on the classic letters, so it is not brand-new letter. The principles of pronunciation was newly invented, but the letters were emulated from the format of ancient classic letters'. Hangul made the 3 basic letters to consonant and vowel each, and expanded the characters by transforming these basic letters. The consonant was modeled from the shape of circle, triangle and rectangle. The vowel was modeled from dot, line and stroke. Like this, there was no object that Hangul could not express, by using 3 principles of consonants and vowels. Hangul also applies trichotomy philosophy by dividing the letter into initial, medial, and final consonant phoneme. This is the uniqueness that only Hangul possesses. Trichotomy can be seen to apply the notion of 3 principles (三才), heaven, earth and men. If scrutinizing its shape, it directly applies the placement and the direction of these 3 principles into the shape of the words. The initial phoneme is a consonant, so it becomes the leader to draw out the shape and direction. Then the medial is the vowel, which becomes the body for the center of the change. Then, the last one is the final phoneme, which works as a motive for the next word to come out. Like this, Hangul contains its basic 3 principles in every word. From this special phonemic structure, when conceiving the word, the brain acknowledges in spatial matter. The ways to read and write in Hangul is the natural measure to understand the basic principles of nature. Hangul is the only writing system made a philosophical concept. Philosophical concepts created Hangul has included a unique reason for Koreans. So this assay dominate Hangul is "Philogram".

6,000원

5

項元汴의 서화 수장과 미술사적 의미

배현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96-122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명대 중기 이후부터 江南地区의 경제성장과 사회 문화적인 환경변화는 수장문화성장의 전제조건이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강남 지역은 많은 서화 작품이 수집, 거래되는 중심지로 문인과 상인들이 대거 밀집하였다. 項元汴(1525-1590)은 明末 유명한 수장가로 선대부터 전해 내려온 서화 수장 활동을 계승하였으며,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대량의 서화 작품을 구입하거나 명대 화가 仇英(1494-1552) 등에게 직접 제작을 의뢰하며 수장품을 확대하였고 작품 제작을 후원하였다. 따라서 그는 고대의 많은 진품을 소장하였는데 그의 서화 수장품이 제일이었음은 현존하고 있는 서화 작품에 남겨진 그의 수장 인장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강남 지역의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며 작품을 완상하였고 이는 명말 서화 수장의 확대와 서화 학습 및 연구를 현실화하였다. 본고에서는 명말 항원변의 수장 방식과 수장품을 파악함으로써 그의 활발한 수장 행위가 당시 화단에 가져온 결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또한 나아가 그의 수장 활동이 명대 말기 뿐 아니라 청대 초기의 화단에 미친 영향과 그 의미에 관해 고찰할 수 있다.
从明代中期以后, 基于江南地区的经济成長和社会文化的环境变化, 成为收藏文化的前提条件。当时江南地区收集了大量书画作品, 以交易的中心聚集了文人和商人。 項元汴(1525-1590)是明末著名的收藏家,参与在先代继承来的书画收藏活动。他以豐富的資金能购买大量书画作品, 或對明代画家仇英(1494-1552)直接委託作品, 扩展收藏品的範圍和赞助作品创作。 因此, 他能收藏很多古代眞品, 从質量上看当时他的书画收藏品都很优秀。在現存的书画作品上, 通过留下的收藏印也可以理解这样的事实。他跟江南地区的文人們交游和玩赏作品, 由此可看出明末书画收藏的扩大, 而且将书画学习及研究成爲现实。 在本论文上, 通過掌握明末項元汴的收藏方式和收藏品情况, 而能进行清楚了解他的活跃的收藏活動對當時画坛带来的结果。同时他的收藏品不但明末的画坛而且淸初造成了影响, 和对其意义能进行考察。

6,600원

6

『詩品』의 풍격미로 조명해 본 彛齋 權敦仁의 書畵美學

설경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122-151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彛齋 權敦仁(1783-1859)이 활동한 조선 말기는 性理學的 名分論이 쇠퇴하면서 北學이 전면적으로 대두된다. 그의 예술 활동은 그의 사상ㆍ정치적 활동과 연관하여 김정희와 교유하면서, 개방적인 학문관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차원 높은 그의 서화가 남겨져 있으나 그의 문집인 『彛齋集』의 유실로 인해 권돈인에 대한 연구는 그가 남긴 족적에 비해 아주 미미한 상태였다. 그러나 최근에 권돈인이 김정희에게 보낸 척독 모음집인 『彛阮尺辭』(일본 東洋文庫 소장)의 연구논문이 발표되면서 권돈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에 권돈인의 척독집인 『彛阮尺辭』를 1차적 자료로 삼고, 그가『시품』을 애호하여 당시 예단의 시대미학을 이끌어 창도한 족적을 따라서 그의 서화미학을 ‘金蘭之交의 典雅美ㆍ謫居에서 형성된 雄渾美ㆍ문인화의 沖淡美’로 정리해보았다. 彛齋의 서화미학은 그가 법도에 맞는 겸허한 예법으로 처세하는 사대부였기에 자신의 자유로운 감정에 따라 창출된 자신의 人格美ㆍ氣韻美ㆍ生動美의 주관적 美感이 향수자에게 더욱 객관적으로 典雅하고 숭고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또한 대자연과 교감하는 심미내부에서 우러나오는 무한한 역량으로 謫居 이후에는 온축된 雄渾美로 승화하였다. 彛齋는 천지만물의 존재법칙과 순환의 법칙에 따라 혹한을 겪으며 고통과 시련을 감내하고 이를 순환 속의 과정으로 받아들인 긍정적인 존재였기에 비장하고 숭고한 격조의 경계에 서서 인간의 이상적 가치를 보편적으로 표현하고, 찌들지 않은 영혼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心意를 담는 沖淡美로 書畵 예술 세계를 펼칠 수 있었으며, 가슴에 내재된 풍부한 여운과 의미를 역사에 뚜렷이 남길 수 있었다. 彛齋는 중국을 드나들면서도 사대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조선말기 예단의 중심에서 시대미학의 주류가 되어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갔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秋史의 추사체가 형성되기까지 많은 물심양면의 지원과 지지를 보내고, 추사의 사후까지 제자이자 莫逆之友로서의 義理를 지키는 모습은 그가 구현한 典雅美ㆍ 雄渾美ㆍ沖淡美의 서화미학과 그의 인품이 일치하고 있어 오늘날에도 귀감이 되는 드높은 예인정신을 잘 발휘하였다고 하겠다.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en Ijae Gwon, Donin(1783-1859) lived, the Northern Studies has emerged as the justification of Neo-Confucianism decayed. His artistic activities have led to the forward-leaning view of literature in terms of philosophical and political activities by associating with Gim, Jeonghui. Thus, he left behind the elevated art works of calligraphy and paintings, but the studies on Gwon, Donin have been insignificant compared to his legacy due to the loss of the collection of his work, 『Ijaejip(彛齋集)』. However, the interest in Gwon, Donin has been rising recently along with the presentation of thesis about 『Iwancheoksa(彛阮尺辭)』, which was the collection of correspondence with Gim, Jeonghui. This study made 『Iwancheoksa(彛阮尺辭)』 as the primary source and categorized Gwon, Donin’s aesthetics of calligraphy and paintings into three: The Classical and Elegant beauty of close friendship, the Grand and Vigorous beauty of living in exile, and the Harmonious and Pure beauty of literati paintings according to his legacy that has led the aesthetics of the times in the artistic community as he loved 『Shipin(詩品, Poetry Criticism)』. Because he was a scholar-official who conducted himself observing the proprieties, his aesthetics of calligraphy and paintings could have elegantly and loftily conveyed the subjective sense of beauty such as beauty of personality, beauty of atmosphere, and beauty of vitality to appreciators. Furthermore, due to the infinite competence of communing with Mother nature, it has been sublimated to the Grand and Vigorous beauty after living in exile. Since he regarded the suffering or tribulation as the process of circulation by the law of existence and the law of circulation, he could have universally expressed human’s ideal values with a lofty elegance and achieved his artistic world of calligraphy and paintings with the Harmonious and Pure beauty that contained a free and peaceful mind. Ijae has never been biased towards toadyism though he has often visited China. Also, he has supported Chusa both materially and spiritually until the style of Chusa’s calligraphy was established. Moreover, his attitude to keep fidelity as a pupil and as an intimate friend until Chusa passed away corresponded to his aesthetics, represented by the Classical and Elegant beauty, the Grand and Vigorous, and the Harmonious and Pure beauty, and his personality. Therefore, it could be said that he exhibited his lofty artistic spirit that could become an example in these days.

7,000원

7

민화 <문자도>에 구현된 유교이념 - 廉恥를 중심으로 -

안호숙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152-17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문자도>는 궁중 또는 지배계층의 사대부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문자도>를 통하여 그들은 유가 윤리덕목 실천으로 바람직한 인간 도리의 정립에 두고 있었다. 반면 서민들은 지배계층인 사대부들의 그림을 모방하여 생활화로 유행한 그림이 민화이다. <문자도>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나 고사 등에서 취택되거나 󰡔시경󰡕 또는 행실도류 등에서 인용되었기 때문에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의 전개로서 생활화로서 기능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화가 발달하면서 그 의미는 사대부들의 회화와는 달리 변용된다. 민화에 표현된 상징들은 서민들의 소망 상징이다. 때문에 초기 문자도의 ‘廉ㆍ恥’ 문자의 유교적 가치관에서 보여주던 엄격한 지식인들의 표상인 ‘출처지리’와 달리 후기로 넘어가면서 서민들의 소망이 표현되었다. <고사인물도>를 빌려 ‘게[蟹]’라는 상징물을 통하여 청렴한 관리가 세상을 다스리는 세계가 오기를 바라고, 봉황이 나타나 천하가 태평해지기를 우회적으로 바란 것이 민화 ‘廉’자 그림의 상징적 코드이다. ‘恥’의 문자도에서 는 초기에는 임금으로써 보물을 자랑한 위혜왕이 신하를 자랑하는 제위왕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왕의 덕치를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중기부터는 ‘백이숙제’의 이야기로 ‘부끄러움’에 대한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백이숙제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나라의 평화를 더 중히 여긴 인물들로 고된 삶을 살면서도 자신들의 이상이 구현되었기에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살아간 인물로 칭송받는 것이다. 여기서 감계화로써 <문자도>의 전체적 의미는 서민들이 염치의 실행으로 궁극에는 태평성대를 소망하는 염원이 담긴 감계화이다.
This thesis analyzed the pictures of ‘sense’ and ‘shame’ expressed in the folk painting of Munjado (character drawing) focusing on how Confucian ideology implied in these two characters was embodied. Munjado started from the Royal Court or high officials of the ruling class and through this drawing they expressed the ultimate purpose of practicing Confucian ethics to establish the desirable human way in reality. Among common people, on the other hand, folk painting was the picture popular in the process of producing Saenghwalhwa (lifestyle picture) by mimicking that by high officials. Materials appearing in Munjado was universal and common enough for common people then to be familiar with. Being selected from stories transmitted by word of mouth or ancient customs, or cited from <the Book of Odes>, Haengshildoryu (behavior illustrations), etc. those materials with plots were known so generally that they could function as a Saenghwalhwa. With advance of folk painting, however, its meaning became different from the painting by high officials. The symbols expressed in the folk painting were of the common people’s hope. So different from the ‘source geography,’ a strict representation of the intellectuals in the initial Munjado through the characters of ‘Sense’ and ‘Shame,’ the folk painting expressed the ordinary people’s hope as it passed into the latter period. After <Portraits in ancient customs>, symbolical code of the folk painting character ‘sense’ wished indirectly for upright officials to rule the world through the symbol of ‘crabs,’ and for phoenix to appear and pacify the world. Besides, for ‘Shame’s’ Munjado, in the beginning, the concept of shame was presented by the case of the Wei king Hye, who showed off his treasure, being shamed before the Qi king Wi who boasted of his vassalage. From the middle period, however, Munjado presented the posture about ‘shame’ with the story of ‘Baeggi-Sookje’ who were admired as an example of noble life because they put the country’s peace before their private gains and because their ideals were realized after their life of hardship. This is a maxim painting and the whole meaning of <Munjado> is the wish of ordinary people to learn and practice the way for benevolence and fatherland, and ultimately reach the ideal world.

6,600원

8

상암사지(上菴寺址), 문화유적지로서의 가치에 대한 연구

이근우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178-20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논고는 괴산군(槐山郡) 연풍현감(延豐縣監)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 공정산 상암사 중수기(公正山 上菴寺 重修記), 상암사지 및 상암사지 암각 글씨의 문화적 가치를 통해 상암사지가 문화유적지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논증하고자 하였다. 본 논고「상암사지, 문화유적지로서의 가치에 대한 연구」는 승정원일기의 연풍현감 단원 김홍도, 조선사찰사료 공정산 상암사 중수기의 연풍현감 단원 김홍도 치적(治績)과 상암사, 상암사 주지 발령에 관한 기록은 조선총독부 관보, 연풍, 문경, 조령, 이화령, 점촌에 관한 6.25전쟁의 내용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4)『금강-소백산맥선 지연작전』과 충청북도방위협의회『충북지역전사』의 기록을 중심으로 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추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역사적 기록에 의한 것으로서 문화유적지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와 그 현장이 현존하고 있어 불교유적을 넘어 한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의의를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문화유적지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재고해 볼 수 있는 사찰이라 하겠다. 본 필자는「상암사지, 문화유적지로서의 가치에 대한 연구」준비에 있어서 객관적 논거의 연구방법론에 근거하여 연구를 진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할 수 있는 연구의 객관성과 신뢰성의 부족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2014년 12월 7일(일) 상암사지 답사를 시작하여 2016년 6월 12일(일)까지 총 11회의 답사를 진행하여 문화유적지로서의 가치를 입증하려고 하였다. 특히 답사를 통해 절터, 법당 초석, 암각 글씨, 기와 편들, 당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등을 확인하여 본 주제의 목적에 부족함을 최소화하려고 하였다. 상암사는 신려(新麗, 신라 혹은 고려)에 건립된 사찰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 상암사지는 백두대간(白頭大幹) 조령산(1,026) 8부 능선(약845고지) 지점에 있으며 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에 등록된 법주사(法住寺)의 본사(本寺) 및 말사(末寺) 소속이고 소재는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743-1번지이다.
In this treatise, proving Sangam Temple site has enough cultural value of being cultural historic site; by proof of these cultural values: Goesan, Yunpoong-Hyeongam, Danwon Kim Hong-Do, Historical records of Joseon Temple, Mt. Gong-Jung Samgam Temple restoration monument, and Sangam temple Stone inscriptions. This treatise 「Study of Sangam Temple Site; The value of Cultural Historic Site」is based on; Yunpoong-Hyeongam Danwon Kim Hong-Do, Danwon Kim Hong-Do’s achievement and Sangam Temple, Historic records of Joseon Temple Mt. Gong-Jung Sangam Temple restoration monument, from Seungjeongwon Ilgi (the Diary of the Royal Secretariat); Record of assigned Sangam Temple head Buddhist monk is from Governor-General of Korea’s official gazette; Yunpoong, Mungyeong, Joryeong, Ihwaryeong, Korean War in Jumchon area, are from institute from Military History, in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6.25 Korean War (4) 『Delayed Military Operation in Geumgang Sobaeks Mountain Range』and 『Battle in North Chungcheong』from North Chungcheong Province Defense Council. These contents are not inference; it is based on actual historic records; the temple has valuable cultural historic site prove with objective basis and existence of site; and able to understand historic, cultural and artistic significance of an ear more widely; can be reconsider the value of historic temple site. When the writer was preparing this treatise「Study of Sangam Temple Site; The value of Cultural Historic Site」writer used objective argumentum of research methodology, however, to reduce all the objective and reliability in this treatise, year 2014 December 7th Sunday, starting to investigate Sangam temple site and ended in year 2016 June 12th Sunday, total number of 11 investigation has been held and try to prove the value of cultural historic site. Also during the investigation, temple site, Buddhist sanctuary foundation stone, stone inscription, roof tiles, and other relics of the past time has been found and verified and attempt to reduce the lack of the information. Sangam temple was built during Sillyeo (Silla or Goryeo), it has long history. Right now, Sangam temple is placed in Baekdudaegan Mountain Range, Mt. Jo-Ryeong (1,026), 8th ridge (about 845M from sea level); head office temple and brach temple of Beopju Temple and the property of Korean Buddhist Jogye Order; the address is North Chungcheong-do, Goesan-gun, Yunpoong-myun, Wonpoong-ri, 743-1.

7,200원

9

중국 논서시 개관

이기범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208-230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시는 인간내면의 사유를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시만큼 함축적으로 잘 표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論書詩는 일반 서론에서처럼 書法을 체계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시가 가지는 함축성과 감성을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논서시는 서론과 상호보완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할 것이다. 특히, 역사상 많은 서예가들이 서론이나 글씨에 관한 글들을 남긴 것이 없이 논서시만남기고 있기 때문에 논서시를 소홀히 다룰 수 없다. 지금까지의論書詩 연구는 몇몇 연구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지만, 광범위 한 연구는 없었고, 단자 시 자체의 분석만 이루어져왔다. 본고에서는 中國 論書詩를 살펴봄에 있어서 먼저 ‘논서시’라는 용어의 개념과 그 용아가 어디서 유래하였는지를 생각해 보고,각각의 논서시들을 대상으로 내용상의 하위분류를 시도하였다. 또한 논서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발달 양상은 어떠하였는지를 개괄해 보았다.
The poetry is the art which describes a man's inner thinking into a moderate language. The poetry discussing the theory on calligraphy has a strength that it can well deliver its implication and sensitivity. Consequently, the poetry discussing the theory on calligraphy should be understood in a mutually supplementary perspective with a calligraphic theory. In particular, since many calligraphies in the history did not leave any writings on a calligraphic theory or calligraphy but left only the poetry discussing the theory on calligraphy, the poetry discussing the theory on calligraphy cannot be roughly handled. Although the study on poetry discussing the theory on calligraphy has been made by some researchers, there has been no extensive research. Only the analysis on the poetry itself has been made. This study first examined the concept of term like the poetry discussing the theory on calligraphy and its origin with respect to a review on the Chinese poetry discussing the theory on calligraphy and then tried to classify the content regarding each poem. In addition, this study summarized where the poetry discussing the theory on calligraphy began and the aspect of the relevant development.

6,000원

10

운보 김기창 ‘바보화풍’의 시기별 특징과 의미

최병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230-25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운보 김기창의 예술세계는 20세기 초에서 후반에 이르는 근현대 한국 전통화단의 맥락을 잇는 미술사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나 그 중에서 1970년대-1980년대 까지 이어지는 ‘바보화풍’은 조선시대 민화와 풍속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가는 운보만의 독특한 화풍을 보여줌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특히나 수많은 청록산수에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하여 십장생도를 비롯한 도석인물화류의 작품을 상당수 남기고 있는 등 그의 도가적 세계관은 당대 미술계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운보만의 독자적인 ‘이상향산수’이다. 2장에서는 이와같은 바보화풍의 시기구분과 배경을 살펴보고, 3장에서는 시기별 분석에서 전기(1975-1984)와 후기(1984-1989)에 걸친 바보화조, 바보산수, 서상도, 장생도 등의 작품과 시기별 주요 특징을 살펴보고 분석을 하였다. 4장에서는 특징과 미술사적 가치를 기술함으로서 향후 한국 전통회화의 계승과 방향성을 제시 해가는 데 사례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金基昶(1913-2001)的艺术世界是正在贯通从20世纪初到后期, 进行继承近现代韩国传统的画坛脉络, 同时包含着美术史的价值和意义。其中特别是代表在20世纪70年代-80年代的‘傻瓜画风’, 用现代感觉再次诠释了朝鲜时代风俗画和民画, 只是金基昶自己表现出独到的画风。 正如很多的青绿山水所显示的那样, 为了体现乌托邦的世界观, 包括十长生画和道释人物画作品, 留下了相当数量的艺术价值很高的作品, 在当代美术界上, 他的道家的世界观很难找到的, 又是金基昶自成独立的‘乌托邦山水’。 第二章, 察看了傻瓜画风的时期区分和背景, 第三章, 就是将金基昶的前期(1975-1984)和后期(1984-1989)的风格, 即傻瓜花鸟、傻瓜山水、瑞像图、长生图等等的作品, 进行分析了各时期的主要特征。 第四章, 作为叙述其特征与美术史的价值, 而提出了以后韩国传统绘画的继承和方向性, 同时要提示其典范。

6,300원

11

통일 이후 뷰티 프로보노(Pro bono)를 통한 나눔 문화 활성화 방안

표연희, 이영미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254-27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세계화 사회 속에서 아직까지 한국은 전쟁이란 범주 아래 자유롭지 못한 분단국으로 남아있다. 한국 사회에서 통일은 남북 민족 공동의 과제로 역사적 전통성, 동질성의 회복, 경제적 발전, 평화의 정착 등 통일에 대한 중요성과 이에 대한 가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특히 통일 이후의 변화와 이에 대한 대비가 중요한 논제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남·북한 상호간의 기술적 교류를 통한 이질적 문화의 완화가 필요하다. 이는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교류와 공유, 상호간의 노력은 가치혼란과 사회균열의 통일국가 문제의 핵심과제가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뷰티라는 개인서비스 산업의 기술적 활용을 통해 지속적 교류 및 공유를 시도하고자 하며 이를 바탕으로 통일 이후 북한 국민을 위한 남한의 뷰티를 나누는 나눔 문화 활성화를 목적으로 재능기부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프로보노(Pro bono)를 통한 남, 북간 나눔 문화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여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방법으로는 이론적 고찰을 통해 나눔 문화와 프로보노의 개념을 이해하여 프로보노 활동에 대한 다양한 사례 분석하였다. 실증적 연구로는 통일 이후 프로보노를 통한 나눔 문화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기부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프로보노 방식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통일 이후 뷰티 프로보노를 통한 나눔 문화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복지, 창업, 교육의 세 영역의 분야로 세분화 하여 뷰티 평생교육 프로그램, 뷰티 마이스터 고등학교, 뷰티 창업 교육의 프로보노 활동을 제시하였다.
In the global society still is not free under the category of war remains a divided country. In Korean society, the historic unification is the joint task of the legitimacy and economic recovery, for the reunification, including economic development, peace, importance and value on that time has long Been put forward a range from before And preparation for these changes in after reunification, in particular through mutual exchange and raised in important issues of alien culture should be eased. This is continued exchange and sharing of the members of the unification of the cracks in the confusion of values and social mutual efforts can see the agenda of the core of the issue of the country. Therefore, technical use of this study is beauty in service industry through continuous exchange and want to try to share, and people of North Korea after unification based on it Sharing culture that separates the South Korea is the beauty of the Pro bono, a new paradigm of the contributions to spur the talents of people, Bei River through (pro bono) sharing culture ways to vitalize Looking and offers direction. In this way of the study : The Theoretical View Pro bono and culture of sharing through the concepts and Pro bono activity for analysis of various cases.An empirical study in development sharing culture by Provo, sunset after reunification, to seek ways to focus on Pro bono, a new paradigm of the donation culture and ways. So After the unification of Beauty of sharing culture through the Pro bono, boost welfare divided on the field of three areas of entrepreneurship education and beauty in lifelong education programs, Beauty presented Pro bono activities of entrepreneurship education, maiseuteo high school.

5,700원

12

北學派의 藝術認識과 審美觀 硏究 - 洪大容ㆍ朴趾源ㆍ朴齊家를 중심으로 -

한상일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3호 2016.11 pp.274-302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북학파는 실천의지적 實心ㆍ實事ㆍ實地를 강조하고 백성들의 생활향상을 위한 이용ㆍ후생을 적극 주장한다. 이러한 실심적 학풍과 사상은 북학파의 실심적 예술을 형성하는데 기초가 되었다. 본 연구는 북학파의 실심적 예술인식과 실용적 심미추구의 특징을 분석하고, 자연생태의 보존과 활용을 통한 환경친화적 예술을 지향한 그들의 사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북학파는 예술을 목적론적 공리성과 존재론적 심미성으로 이해한다. 세교의 측면에서 예술의 미적가치와 공리성을 적극적으로 긍정한 점은 유의할 만하다. 나아가 개성적 문예창출로써 자아의식을 발현코자 하였으며, 예술을 통한 자긍심 고취를 중요하게 여겼다. 신분적 한계에 놓여 있었던 서얼출신들이 관직진출에 연연하지 않고 전문적인 기량과 함께 예능인으로서 자기세계에 천착함으로써 보다 자유롭게 자신들의 정감을 표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조 18세기는 그간의 관념적 사유에서 벗어나 眞ㆍ癖을 통한 사실주의적이며 독창적인 심미경향을 나타냈다. ‘卽物’을 통한 ‘寫眞’과 ‘眞物態’로써 사실적 회화를 추구했다. 중국화풍과 성리학의 전통과 틀에서 벗어나 天機ㆍ性靈의 자유로운 발산을 통하여 인간의 자아ㆍ개성ㆍ본능 등을 긍정하고 예술자체의 효용을 극대화 하는데 주력했던 것이다. 북학파는 자연과 사물의 합리적 이용을 주장했다. 각 사물의 올바른 가치인식의 기준은 곧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各得其所의 원칙에 바탕을 두었다. 분수에 맞게,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능력과 적성에 맞게,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을 근간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본 논문을 통하여 확인한 것은 無用之用과 道無所不在의 莊子的 思惟, 실용과 심미의 유기적 조화를 통하여 환경 친화적 예술을 추구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곧, 교조화된 성리학에서 벗어나 북학파의 포괄적 실학정신이 예술분야에 그대로 구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중화중심적 문화전통으로부터 탈피하여 事大에서 用大로, 反淸에서 克淸으로의 발상 전환을 통한 민족의식의 각성을 촉구한 것은 오늘날 우리의 예술이 지향해야 할 바에, 하나의 지표로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Among the literati of school of northern studies, especially Daeyong Hong, Jiwon Park and Jega Park empirically checked advanced artifacts and various thoughts through their journey to Qing dynasty and insisted that Joseon should introduce those from Qing dynasty and scientific technology from the West. In addition, they requested to abolish the status system and tried to improve the people’s living standards through Utility and Welfare, which made them emphasize Practical Mind(實心), Practical Matter(實事) and Practical Status(實地). These practical-minded academic traditions and thoughts became the foundation for shaping the practical-minded art of school of northern studies. This study intends to investigate how the practical science thought of the school of northern studies influences the perspective on art and the pursuit of aesthetics. The school of northern studies comprehended art as a teleological utility and an ontological aesthetics. They also actively affirmed an aesthetic value and utility of art in terms of edifying the world. Moreover, they intended to reveal their self-consciousness through the creation of individual literature and express their self-esteem through art. Especially the children of concubines who had a limit of status more freely expressed their feelings with their professional skills, as an artist, by not clinging to a government position but sticking to their own world. A realistic and creative aesthetic tendency through genuineness(眞) and habit(癖) was shown by breaking away from an abstract thought in 18th century of Joseon dynasty. People paid attention to pursuit of realistic paintings which expressed the genuineness and the genuine shape of an object through facing up to an object(卽物). They also intended to affirm human’s ego, individuality and intuition through releasing his heaven-gifted nature and natural spirit by going beyond Chinese painting styles and Neo-confucian traditions and maximize the effects of art itself. The school of northern studies insisted on a rational utilization of nature and things. They founded their principles that all things placed where they were supposed to do to recognize the value of each thing correctly. Also, they followed the principles to let people do whatever they want depending on their abilities and aptitudes within their compass. I figured out that the school of northern studies pursued an eco-friendly art through Chuang-tzu’s thought which emphasizes on the utilization of the useless and that there is no place where the Way doesn’t exist and through the systematic harmony of utility and aesthetics. It means their expansive thought of practical science was realized in the field of art by breaking away from the dogmatic Neo-Confucianism. In addition, it could be still effective that they urged people to be aware of the national consciousness through the conceptual shifts from the submission to the stronger to the utilization of the stronger and from opposing Qing to surpassing Qing.

6,900원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