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Home

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22호 (12건)
No
1

『周易』의 諸卦를 통해본 陳暘 『樂書』의 禮樂論

조민환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5-31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陳暘의『樂書』는 北宋 이전의 음악활동에 관한 總錄으로 고대 음악의 발전 맥락 및 북송 음악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저서다. 『악서』에서 표현하는 음악사상은 대개 儒家에서 中和를 미로 삼는 전통과 易理를 근본으로 하는 형이상학적 음악미학이다. 『악서』는 앞 95권에서는 『三禮』, 『詩經』, 『尙書』, 『春秋』, 『周易』, 『孝經』, 『論語』, 『孟子』등 유가경전 중에서 음악과 관련된 문자를 摘錄한 다음 그것에 대해 하나하나 訓義하고 있다. 뒤의 백오권은 「樂圖論」으로 十二律呂本義, 五聲, 八音(八種樂器), 역대 樂章, 樂舞, 雜樂, 百戱 및 吉禮, 凶禮, 賓禮, 軍禮, 嘉禮에서 사용한 樂을 논술하고, 앞선 시대와 송대의 雅樂, 俗樂, 胡樂 등을 고루 균등하게 비교하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국 고대 음악이론의 각도에서부터 보면 역대 많은 음악이론서 가운데 『주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주역』을 원용하여 학설로 삼은 것은 『樂記』와 『악서』다. 중국 고대 악론에 끼친 『주역』의 영향은 크게 세가지 방면이다. 첫 번째 방면은 『주역』의 一陰一陽之謂道의 우주관이다. 이 우주관은 중국고대음악가들이 음악 本源 문제를 연구할 때 철학기초를 제공하였다. 두 번째 방면은 易象이 담고 있는 예술사유의 精髓다. 고대 악론 중 樂象說의 기본사상과 이론은 대부분 易象과 상관관계가 있다. 즉 觀物取象으로써 방법을 삼고 立象盡意로써 목적을 삼는 것이 그것이다. 세 번째 방면은 『주역』의 易簡之道가 중국고대 음악이론의 핵심이 된 것이 그것이다.『주역』에서 말하는 음양학의 원리는 同聲相應과 同氣相求의 학설에서 출발하고, 律을 말한 것은 『주역』의 十二辟卦와 일정한 관계가 있다. 『악서』의 형이상학적 음악미학은 『주역』의 음양의 도와 역상이론 및 이간학설과 직접적인 연원 관계가 있는데, 특히 『악서』에서는 『주역』의 天地和諧의 설을 근본으로 하면서 음악의 본질을 논한다. 음양의 도는 우주의 근본이 되면서 음악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진양은 『악서』에서 『禮記』 「樂記」의 禮樂을 음양론적 측면에서 논하고 또『역』의 여러 괘를 통하여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면 禮의 가장 사유인 天地之序를 「謙卦」와 「履卦」와 적용하여 이해하고, 樂의 기본적인 사유인 天地之和를 「豫卦」와 「復卦」를 적용하여 풀기도 하고, 아울러 「坎卦」와 「離卦」 및 「復卦」와 「姤卦」를 예악의 각각의 상황에 따라 적용하여 푸는 것이 그것이다. 이밖에 유가가 지향하는 수신ㆍ제가ㆍ치국ㆍ평천하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서의 政과 刑을 「比卦」와 「豊卦」에 적용하여 풀이하기도 한다. 이런 사유의 바탕에는 ‘樂由中出’과 ‘禮由外作’을 음양론을 적용하여 풀이하는 사유가 깔려 있다. 이처럼 진양이 『악서』에서 말하고 있는 예와 악에 대한 역리적 이해는 『예기』 「악기」에서 말한 예악의 형이상학적 사유틀을 보다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陳暘『樂書』是對北宋以前的音樂活動的總錄,它對研究古代音樂的發展脈絡尤其是北宋音樂的狀況,是必不可少的文獻依據。此書表現的音樂思想,大抵不出儒家以中和爲美的傳統見解和以易理爲本的形而上學的音樂美學也。『樂書』前九十五卷,摘錄『三禮』『詩經』『尚書』『春秋』『周易』『孝經』『論語』『孟子』等儒家經典中有關音樂的文字,一一爲之訓義。後一百零五卷,爲樂圖論,論述十二律呂本義,五聲,八音(八種樂器),歷代樂章,樂舞,雜樂,百戲,以及吉禮,凶禮,賓禮,軍禮,嘉禮所用之樂,對前代和宋時的雅樂,俗樂,胡樂等均有比較詳盡的說明。從中國古代樂論的角度看,受『周易』影響最深,援『周易』以爲說最多的,則爲『樂記』和『樂書』.『周易』對中國古代樂論的影響主要表現在三個方面,一是『周易』一陰一陽之謂道的宇宙觀,爲中國古代樂論家探討音樂本源問題提供了哲學基礎。二是易象蘊含了藝術思維的精髓要義,古代樂論中樂象說的基本思想和理路多與易象相關聯,即以觀物取象爲方法,以立象盡意爲目的。三是『周易󰡕易簡原則植根於天地自然之性,著眼於王道教化功能,這又使得它與樂簡理論發生了內在聯系。音響學的原理, 源出『周易』同聲相應,同氣相求之說. 言律者和十二辟卦也有一定的聯系。『樂書』形而上學的音樂美學與『周易』陰陽之道, 易象理論和易簡學說有直接的淵源關系。『樂書』本易道天地諧和之說,論述音樂的本質。陰陽之道爲宇宙之本,同時也是音樂之根。『周易』陰陽之道的大義和謙卦履卦豫卦復卦坎卦離卦復卦姤卦比卦豊卦等諸卦表現在宇宙生化與天地諧和兩方面,『樂書』正是循易道之跡,從這兩方面來論述音樂的起源與本質的。

6,600원

2

六朝時期 山水畵에 미친 佛敎의 영향 - 宗炳의 山水畵論을 중심으로 -

이광수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33-61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중국 회화에서 육조시기는 산수화의 태동기이다. 그 사상적 배경으로 道家 사상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한편으로 불교가 전래되면서 佛學은 심미의식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불학은 육조시기 산수화를 고찰하는데 소홀이 취급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 시기 저술된 최초의 산수화 이론서로 晋末宋初, 宗炳의 『畵山水序』와 王微의 『敍畵』가 있다. 일반적으로 산수화를 연구하는데 老莊을 중심으로 道家의 자연관을 배경으로 그 성향을 규정지어 왔으나, 산수화는 노장사상뿐 아니라 佛學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나아가 儒家의 사상도 흡수하여 문인화의 단초를 마련하기도 한다. 실제로 종병은 노장과 유교에 정통하면서 불교학자이기도 한데, 그의 스승인 慧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佛學은 기존의 노장사상과, 유교의 토대위에 더욱 풍부한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으며, 송대에 이르러 선종사상은 문인화의 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유ㆍ불ㆍ선의 사상적 배경은 중국문화에서 意境의 개념을 형성하게 되고, 종국에는 중국미학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종병의 화론을 중심으로 당시 佛學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그의 화론 속에서 찾아보고, 불학의 사유방식과 이상을 살펴 당시 산수화의 미학사상과 심미의식을 고찰해보고자 하였다.
In chinese paintings, the Six Dynasties was the developing period of landscape painting drawn in black and white. The thoughts behind it were mainly Taoist, however with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Buddhist lore als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aesthetic appreciation. Therefore, Buddhist lore is one of the significant factors in the study of landscapes from the Six Dynasties. The earliest text on landscape paintings written is 󰡔Essay on Painting-Landscape(畵山水序)󰡕by Tsung P'ing and 󰡔Introduction of Painting (敍畵)󰡕by Wang Wei(王微) at the end of the Jin and the beginning of the Song Dynasties. Generally in the study of landscapes, the view of nature of Taoism defined the characteristics of landscapes, focusing on the thoughts of Lao-tzu and Chuang-tzu, and closely correlated to Buddhist lore. Furthermore it also absorbed Confucianism to take the lead in a literary's painting. In fact, Tsung P'ing was a Buddhist scholar who was well-versed in the thoughts of Lao-tzu and Chuang-tzu as well, and was greatly influenced by his teacher Huiyuan(慧遠). Buddhist lore gave rich support to the literary's painting on the basis of existing thoughts of Lao-tzu and Chuang-tzu and, during the Song Dynasty, Zen Buddhism had a significant influence on its flourishing. These thought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Zen Buddhism formed the artistic conception(意境), which in the end became the main thought of the Chinese aesthetics. This study reported on the impact of Buddhist lore on Tsung P'ing's painting by investigating his painting theory, and considering the thoughts of aesthetics and appreciation of the beauty of that period by studying ideas and thinking of Buddhist lore.

6,900원

3

金石文과 5세기의 倭王

洪性和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63-9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本考는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된 刀劍類 銘文 등 金石文의 분석을 통해 5세기대 왜왕에 대해 갖고 있는 통설적 인식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해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宋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료에는 5세기대에 讚, 珍(彌), 濟, 興, 武라는 왜왕이 등장하지만, 이들 왜왕의 계보가 『古事記』와 『日本書紀』에 나오는 천황의 계보와 일치하지 않고 있어 현재까지 이들 倭 5王을 『古事記』와 『日本書紀』의 어느 천황에 비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왜 5왕의 비정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金石文과 관련해서는 石上神宮 七支刀 銘文의 ‘倭王旨’를 人名으로 보아 倭 5왕과 연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倭王旨’를 人名으로 보기 어려우며 이는 백제의 헌상설을 전제로 한 해석과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는 인식에 불과하다. 七支刀 명문의 분석을 통해서는 5세기대의 금석문으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69년이라는 통설적인 인식 속에서 七支刀의 명문을 해석하고 있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稲荷台1號墳의 鐵劍 銘文을 통해서도 고분의 조성연대를 5세기 중엽으로 판단할 때 濟일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연호나 王名이 나타난 것도 아니어서 당시의 상황을 명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稲荷山古墳의 鐵劍과 江田 船山古墳의 大刀는 그동안 銘文에 나오는 獲加多支鹵大王을 雄略과 武에 비정하여 雄略의 시대인 5세기말 당시 九州에서 東國의 武藏 지방까지 大王의 지배력이 미쳤다는 설에 강력하게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문헌의 분석을 통해서도 471년을 武의 치세로 보기 힘들며 銘文에 보이는 ‘治天下’와 같은 天下觀은 倭王 武의 上表文의 인식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고학적인 분석에 있어서도 고분의 조성연대와 이들 刀劍의 부장 시기를 6세기로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獲加多支鹵大王을 雄略이나 武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
The objective of this article is to investigate and analyze the ancient Japanese swords on which the Chinese characters were carved and Five King Yamato Wa in the 5th Century. So far, not many things are known about the ancient Japanese swords on which Chinese characters were carved in the 5th Century : the Seven-branched sword, the Sword of Inaridai ancient tomb No.1, the Sword of Inariyama ancient tomb, the Sword of Eta-hunayama ancient tomb. Of these swords, when we exposed the Seven-branched sword to X-ray irradiation, we could read that it was made on November 16. Therefore, we could understand that it was made in 408 A.D., the 4th year reigned by King Junji in Baekje. Nevertheless, still the Japanese academic circle denies that the Seven-branched sword was made in Baekje in the 5th Century. On the other hand, the Japanese academic circle admits the Sword of Inariyama ancient tomb and the Sword of Eta-hunayama ancient tomb was made in the 5th Century. However in this study philological and archaeological analyses showed that the Sword of Inariyama ancient tomb and the Sword of Eta-hunayama ancient tomb was made in the 6th Century. It represents the limitations of Japanese congnition regarding Japanese history of the 5th Century.

7,600원

4

조선시대 여성의 이미지 변화 과정 연구 - 머리 모양을 중심으로 -

이영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97-11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조선시대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시대적 배경에 따른 머리모양의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초기는 체계확립기로서 여성들은 신분과 역할에 따라 정해진 머리모양을 해야 했다. 머리모양은 고려시대 수발 양식과 조선시대의 머리 모양이 혼재 된 이미지를 보이고 있었다. 조선시대 중기는 사림 정치가 행해져 지배 체제에 변화가 온 시기로 둥근 모양의 가체가 크게 유행하였다. 가체 머리는 황소 한 마리 값과 가격이 비슷할 정도로 사치스러워 문제가 야기 되었다. 조선시대 후기는 붕당원리가 붕괴되고 노론 중심의 일당 독재가 등장하였으며, 가체 금지령 이후 궁중에 정착한 삼각형 모양의 첩지머리를 하도록 장려하였고 신분에 따라 그 모양이 구분되었다. 즉 조선시대 초기에는 머리모양이 혼재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으나, 조선시대 중기에서는 체재가 안정되면서 머리모양이 화려한 가체가 유행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사치스럽다는 이유로 가체가 금지되고 첩지머리가 유행한 것이다. 이렇게 조선시대 여성의 머리모양은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변화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The objectiv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distinctive changes in hair-style in Lee Dynasty times at different temporal stages, that is, the early, middle, and late stage. The results were summarized as follows. In the early Lee Dynasty when the basic system was still being founded, women were forced to keep their hair-style according to their status and roles and the new hair-style and the typical hair-style of Koryo Dynasty were mingled. In the middle stage characteristic of politics controlled by groups of confucian scholar-officials, round-shaped wigs called gha-ches were in vogue. The price of a gha-che was high enough to be worth an adult cow. In the late stage that featured a single party political system dominated by No-ron party, wearing gha-ches was prohibited. As a result, a new triangle-shaped Cheopji hair-style (so called because a hairpin called cheopji was used) appeared first in the royal court and spreaded to other parts of the country. The shapes were further split into different sub-categories according to the status of individuals. In conclusion, over the many hundred years of Lee Dynasty the women's hair-style changed, roughly reflecting different degrees of social instability, that is, the coexistence of the two different styles in the early stage, the appearance of the spectacular Gha-che style in the middle stage, and lastly the advent of cheopjis put on hairs together with the prohibition of gha-ches in the late stage.

5,800원

5

朝鮮 後期 文人들의 中國繪畵 認識에 관한 연구 - 董其昌의 美意識을 중심으로 -

한경애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119-15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조선후기 화단은 중국에서 전래된 회화양식에서 벗어나 그림의 주제와 양식에서 조선적인 회화로 발전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적인 회화의 전개라는 상황 속에서도 중국 南宗文人畵의 본격적인 수용은 중국 회화의 영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던 조선후기 화단의 주요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 董其昌 화풍의 전개에 있어 중국의 대표적인 畵派 중 하나인 吳派畵風의 유입은 조선후기 문인화풍과도 직접 연결된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작품들 가운데 吳派화풍의 요소가 보이는 작품들을 통해 동기창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吳派의 영향이 조선후기 문인화가들에게 폭넓은 수용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吳派를 비롯한 넓은 의미로의 중국 회화의 수용과 인식은 중국 화보류의 보급과 중국 서적문화에 대한 조선 문인들의 지식이 확대되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나아가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鑑賞之學의 영역이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書畵古董 취미와 鑑評活動의 확산은 조선후기 문인문화의 성숙과 발전에 기여했다. 조선후기 문인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동기창의 서화자료를 감상했으며, 동기창의 영향은 조선후기 화단에 저변화되어 畵題로 이용된다거나 倣作되어 동기창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동기창의 繪畵美學思想은 山水傳神과 士氣의 중시라고 할 수 있다. 동기창은 후천적인 氣韻生動의 경계를 강조했으며, 조선후기 李夏坤은 자연 대상으로부터 회화가 갖는 인식으로서 대상의 내면적 진실을 찾아내고 傳神的 경지에 도달해야 함을 추구한 것에서 볼 때, 동기창과 이하곤의 山水傳神의 美意識은 유사함을 보인다. 또한 동기창이 山水丘壑의 정취로서 士氣를 중시했던 점과 南公轍이 중국 화론과 관련하여 士氣를 언급한 것에서 볼 때, 동기창이 제시한 尙南貶北論이 조선후기 화단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士氣는 조선후기 南宗文人畵의 단면이자 審美意識의 기저였다.
朝鲜后期画坛已脱离了从中国传播过来的绘画形式,在绘画的主题与形式上已进入朝鲜特有的绘画时期。即使在此种朝鲜绘画逐渐发展的格局下,也全盘接受了中国南宗文人画,中国绘画对其影响也未中断过,这也是朝鲜后期画坛的主要特点。朝鲜后期董其昌画风的扩散以及中国最具代表性的画派之一-吴派画风的引入也与朝鲜后期文人画风也有直接联系。进而通过此时期的作品中吴派画风作品,不仅有利于理解和认识董其昌,而且可看出朝鲜后期文人画家积极接受了吴派的影响。并且接收和认识以吴派为代表的中国绘画也与朝鲜文人增加了对中国书籍文化的知识有关。进而形成了以更为专业知识为背景的鉴赏之学领域,对书画古董的兴趣以及键评活动的扩散也影响了朝鲜后期文人文化的成熟及发展。朝鲜后期文人通过多种渠道鉴赏了董其昌的书画资料,朝鲜后期画坛已将董其昌的影响作为基础化,或作画题或仿作,由此对董其昌的认识已逐步扩散。董其昌的绘画美学思想特别注重上海岁传神与士气。董其昌强调后天性气韵生动的境界,而朝鲜后期李夏坤以自然取材绘画认知,找出对象的内面真实,追求达到传神境界,由此看出董其昌与李夏坤的山水传神的审美意识非常类似。并且董其昌非常重视山水丘壑的情趣之士气,而南宫辙也提及到与中国画论相关的士气,由此可以推论董其昌所所主张的上南贬北论也影响了朝鲜后期画坛。士气是朝鲜后期南宗文人画的截面和审美意识的基础。

8,200원

6

文人畵에서 意趣의 條件과 그 象徵 - 고람 전기의 문인화를 中心으로 -

권윤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157-190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고는 문인화에 있어서 意趣의 개념을 파악하고 意趣의 조건과 그 상징을 古藍 田琦의 문인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기 위함이다. 동양예술을 구현하는 핵심원리는 極工을 통한 熟에 있다. 고람은 독자적인 예술경계를 구축하여 천재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회화는 ‘形’을 그려 작가의 ‘意’를 드러내는 예술이다. 특히, 문인화는 작가의 ‘意’를 神似의 방법으로 드러낸다. 이는 보통 比德이나 선비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흔히 ‘意’는 인간의 感情ㆍ感性ㆍ情性ㆍ情感을 내함하고 있다. ‘意’的 趣向은 ‘意趣’라 한다. ‘意趣’는 理趣와 서로 대하는 개념이다. 理趣가 윤리, 인격 수양 등을 도모하는 哲理指向이라 한다면 ‘意趣’는 주로 자연과의 對話, 融和, 체화를 통한 蓄藏된 흉중의 내심의 드러냄을 지향한다. 따라서 ‘意趣’는 감성지향적이다. 그러므로 ‘意趣’는 내면세계를 성찰하고, 몰입하게 되며, 또한 이를 재해석함으로서 自娛의 심미감이 드러나게 된다. 이는 의취가 인간 내면의 감성을 바탕으로 하여 자연과 동화되거나 체화되었을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고는 의취가 체현될 수 있는 조건은 다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즉, ‘情性의 추구’와 ‘자연에서 妙韻의 깨달음’이다. 情性의 추구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성찰하게 하게 하여 준다. 그러므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재해석이 가능하다. 또한 自然 妙韻의 깨달음은 자연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연의 기묘한 운치나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이다. ‘意趣’는 여러 미감으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본고는 逸味와 禪味가 의취를 상징하는 심미범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를 고람에게서 찾는다면 <매화서옥도>, <매화초옥도>와 <계산포무도>라 하겠다. <매화서옥도>, <매화초옥도>는 거문고를 갖고 벗을 찾아가는 정경을 그린 것으로 乘物하여 遊心을 표현한 乘物遊心의 逸味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계산포무도>는 주조가 荒凉ㆍ疎疎ㆍ閑寂함으로 心胸이 滌蕩된 禪味로 심미되고 있다. 따라서 고람의 <매화서옥도>, <매화초옥도>와 <계산포무도>에 나타난 逸味와 禪味는 문인화에 있어 의취를 드러낸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즉, <매화서옥도>와 <매화초옥도>는 脫常으로 인한 逸脫의 모습이며, <계산포무도>는 溪山에 苞茂가 되어야 하지만 苞茂는 보이지 않고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처럼 슬쓸함이 주조를 이룬 荒凉感의 극을 보여주고 있다바꾸어 말하면 고람의 <계산포무도>와 <매화서옥도>,<매화초옥도>에 심미되는 禪味와 逸味는 乘物遊心, 滌蕩心胸이어서 인간의 感情ㆍ感性ㆍ情性ㆍ情感을 내함하고 있어 문인화에서 ‘意趣’의 상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This study is to grasp the meaning, condition, and symbol of Yichi(意趣) in the literati painting based on Goram Cheongi's paintings. The main principle of eastern art is on skill through lots of practice. He shows us an aspect of gifted artist out of realizing unique artworks. Painting means an art that express an artist's 'mind' by drawing a 'shape'. especially, a literati painting exposes an artist's 'mind' by the method of shinsa. This contains mainly biduk(比德, comparing to the virture) or spirit of literati. Usually, the 'mind' contains humans feeling, sensibility, emotion. Taste of the 'mind' is 'Yichi' 'Yichi' is the counterpat of 'Lichi (理趣)'. While 'Lichi'tries to be ethical and cultivate his mind, 'Yichi' tries to show his mind through conversation with nature, harmony with nature. So 'Yichi' inclines to be emotional. Therefore, 'Yichi' examines himself and absorbed in himself and shows beauty of enjoying himself. Because 'Yichi' is shown when it accomplishes harmony with the nature on the basis of human sensibility. so, I think there are two conditions 'Yichi' can be be embodied. Pursuing of 'jeongseong(情性, a kind of emotioal aspect)' and realizing of the nature's subtleness. Pursuing of 'jeongseong' makes you reflect your inner world. So you can reinterpret the object the artist tries to express. And realizing the subtleness of the nature means that you discover yourself in the nature and realize the beauty and grace of the nature. 'Yichi' can reveal various beautiful senses. But I consider ‘ilmi’(逸味, the taste for the idle pursuit of pleasure) and ‘sunmi’(禪味, the taste for meditation in ZEN buddihism) as the category of 'Yichi'. I think ‘mawhaseokdo’(梅花書屋圖, a drawing of a house filled with books covered with plum flowers), ‘mawhachokdo’’(梅花草屋圖, a drawing of a thatched house in plum flowers) and ‘gesanpomudo’(溪山苞茂圖, a drawing of reeds and a mountain) are such paintings that have ‘ilmi’(逸味, a taste for an idle pursuit of pleasure) and ‘sunmi’. ‘mawhaseokdo’ and ‘mawhachokdo’ are drawings that draw a man with ‘geomunko’(a kind of korean lute) to see his friend. They reveal ‘ilmi’ of ‘sungmulusim’(乘物遊心, a mind of an idle pursuit of pleasure according to the situation). And ‘gesanpomudo’ mainly expresses desolateness, being rough and coarse, being tranquil, so you can appreciate it as ‘sunmi’(禪味, a taste of meditation in ZEN buddhism) that dirtiness becomes clean. Therefore ‘ilmi’(逸味, a taste of an idle pursuit of pleasure) and ‘sunmi’ in ‘mawhaseokdo’, ‘mawhachokdo’’ and ‘geomunko’(a kind of korean lute) is the symbol of 'Yichi'. therefore ‘mawhaseokdo’ and ‘mawhachokdo’’ are a deviation from everyday routines, and ‘gesanpomudo’ shows an extreme sense of desolateness. mountain with a brook should be full of dense reeds, but dense reeds are not seen, The main tendency is desolateness like a field after harvest. In other word, ‘ilmi’ and ‘sunmi’ in ‘mawhaseokdo’, ‘mawhachokdo’ and ‘geomunko’ is ‘sungmulusim’, ‘chuktangsimhung’(滌蕩心胸, doing away with dregs out of deep mind) because it contains human's feeling, sensibility, and emotion. So it typically shows the symbol of 'Yichi'

7,600원

7

石亭 李定稷 書藝의 儒家美學的 考察

김도영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191-23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石亭 李定稷(1841-1910)은 구한말 호남 儒學을 대표하는 文豪로, 海鶴 李沂(1848-1909), 梅泉 黃玹(1855-1910)과 더불어 ‘湖南三傑’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역량은 대단하여 어학ㆍ천문ㆍ지리ㆍ의학ㆍ서화 등 여러 분야에서 一家를 이루었는데, 新學問으로 불리는 독일의 칸트(Kant)와 베이컨(Bacon) 철학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석정은 28세(1868년)에 燕京을 다녀온 유학파로서, 燕京에서의 문화ㆍ예술적 자극은 그의 심미의식의 시야를 폭넓게 넓혀주는 주요한 요인이 되어 博學과 實證을 중시하는 實事致用的 好學精神과 학문의 유기적 연관성이 그의 서화예술세계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석정은 詩文集 『燕石山房未定藁』『燕石山房未定藁』는 2001년 김제문화원에서 『石亭李定稷遺藁』Ⅰ-Ⅳ라는 이름으로 번역하여 완간되었다. 를 통해 자신의 학문적 성과와 서예가로서의 자신의 書藝觀을 남겼다. 그의 書藝論은 원형이나 근본으로 돌아가 古를 師法으로 삼아 새로운 이론을 모색하는 것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방법임을 제시하면서, 뛰어난 작품일수록 法古性的인 전통요소와 創新性的인 시대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역사 속에 오래 살아남게 된다는 法古創新論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晋帖이나 唐帖과 같은 기존의 전통서법을 부단한 연마를 하였지만,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려 하지도 않았다. 석정이 서예의 이상적인 典範으로 삼은 이는 筋骨ㆍ精意ㆍ風神이라는 글씨의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晋代의 王羲之인데, 그의 경지에 한 부문이라도 도달했던 인물로써 宋代의 米芾이 筋骨을, 元代의 趙孟頫가 精意를, 明代의 董其昌이 風神을 얻었다고 보았다. 후대인들이 왕희지가 도달했던 서예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무엇보다도 이들 三家가 얻었던 전통적인 각각의 경지를 먼저 傳習하여 이들의 장점을 계승하고 하나로 융합하여 조화를 이루어야 眞熟의 예술경지에 도달할 수 있고, 眞熟한 이후에야 가히 變化할 수 있다고 보았다. 석정은 구양순의 楷書에 미불과 동기창의 行書를, 때로는 안진경의 楷書와 行書를 접목시켜 또 다른 行草의 세계를 調和ㆍ創出시켜냈다. 이는 眞熟의 통합과정을 거쳐 筋力과 結構라는 形似的ㆍ手藝的 차원을 뛰어넘어 보다 높은 寫神的 차원에 들어서는 造化의 경지를 보여준 것이다. 석정 서예는 書의 예술적 표현이라는 형식미의 분석보다는 性情의 발현이라고 하는 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陰陽對待의 中和美를 구현했고, 교유관계를 통해 흥취가 돋우면 그 자리에서 詩를 짓고, 그 자리에서 筋骨을 강조한 氣韻生動의 興趣美로 붓을 들어 써 내려 갔다. 또한, 書如其人的 인품론을 중시하였고, 剛毅嚴正한 風神美를 발현하였다. 그러나 너무 法古에 치중하고, 行書에 치우쳐 기예가 단조로운 면이 있고, 서체에 筋骨이 약하고, 平澹軟媚한 느낌이 들어 超逸의 創新경지를 자신의 이론대로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석정은 단순한 실기 중심의 서예가가 아니라, 학문과 기예를 함께 겸비한 서예가였다. 특히 書畵에 대한 제반 문제를 학문적 이론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근현대 서화예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석정의 출현은 조선 말기의 수준 높은 지방 문화계의 한 면모를 잘 보여준 것으로써, 전북서단은 이전과는 달리 뚜렷한 師承的 書脈을 형성하게 되었고, 호남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서단의 한 脈을 형성하여 찬란한 문인ㆍ예술의 경지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Seokjeong Lee, Jeongzic (1841-1910), a scholar representing Honam confucianism in the late Choseon in 19C, is called one of Honamsamgul including Haehak Lee, Gi (1848-1909), Maecheon Hwang, Hyun (1855-1910). In secluding himself in Buan region, he continued to possess an practical attitude drawn from Bangesurok wirtten by Bange Yu, Hyungwon (1622-1673). He contributed to thriving practical studies in the center of Honam even under politically urgent circumstance in the late Choseon. In additon to philosophy, he devoted his life to studying virtually everything that was considered to be necessary in life: horoscope, mathematics, and machine. Not only was he remarkable to the point that he left Yeonseoksanbangmijeongmungo composed of 25 books, he was also extraordinary in other fields such as linguistics, astronomy, geography, medical study, paintings and calligraphic arts. He introduced Western philosophers, Kant and Bacon, in the name of Sinmunhwak-new studies, to the nation first. Furthermore, he mastered various studies ranging from Chinese studies to Korean studies. He was highly respected as a literature expert who helped 'old literature' to root in Honam region. As shown in the collection of literature, he had, also, studied in Bukkyeong at the age of 28. Hoharkjeongsin emphasizing extensive learning and practical evidence and interconnection between studies melted down in his studies and paintings and calligraphic arts. Cultures and arts in Bukkyung served as motives for him to widen his eyes related to aesthetic arts. Needless to say about calligraphy and seal craving, enormous energy stemming from extensive, intensive learning is revealed in his paintings and calligraphyic arts, involving mountain and water, flower and bird, and feathers of birds. Since he was good natured, he was called a first Samjeol author, who shows excellency in poem, calligraphy, and painting, also called Tongyu, which referred to a person who exhibited extraordinaries in Confucianism at that time, in Jeonbuk Province. Seokjeong's thought system based on his poems, calligraphy, and paintings is closely related to Sung Confucianism, and he repeatedly practiced his calligraphy by imitating Jinchop(a calligraphy book of Jin) or Dangchop(a calligraphy book of Tang). However he thought that being a great calligrapher is not only blindly practicing writing letters but also there should be some way and process. His roll model for calligraphy was Wanghiji from Jin who had three elements of calligraphy such as geungol(muscle and bone), jeongeui(meaning and energy), and pungsin(soul and refined taste). He didn't think anyone could reach the level of Wanghiji. He thought that people who had reached even one element of three are Mibul of Song who had geungol, Joemaengbu of Won who had jeongeui, and Donggichang of Myeoung who had pungsin. He emphasized that to reach the level of Whaghiji's calligraphy, one should practice these three great calligraphers' calligraphy respectively and make unification with succession of strong point and compromise. Seokjeong enjoyed writing haeseo of Guyangsun and hangseo of Mibul and Donggichang, tombstoneletters of Anjinggyeong based on Wanghiji style. Seokjeong must be influence by Jaha, Sinwee and Chusa, Kimjeonghee, judging from his work. Above all his hangseo of Donggichangstyle is great, but skill is very simple, geungol in writingstyle is weak but soft and beautiful, because it inclined to hangseo. The theory of Seohwaron -paintings and calligraphy- by Seokjeong suggests that adopting confucianism as a guide, which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old things, is a method in which potential talents can be developed further. Prose and poetry founded on theory of old literature called Gomunron showed a view of which Muninhwa must be acquired through practicing calligraphy first. Insisting on Bubgochangsinron which specifies that the ability of creating new things can be only achieved through learning old things, he took spirit of art and boundary of meanings as gracious beauty by outlook and will shown in practical theories based on physical evidence in the process of acquiring old disciplining method in which once one gets what an object ultimately represents, don't think about its physical looking any more. Seokjeong's calligraphy was based on ideology and thought of confucianism. He expressed his firm and strong character affected by his father, Leegyewhan who wrote poems very well in spite of a military officer and flavor that enjoy isolated life from society living in the countryside in his works with the harmony of relativity, yang and yen, and the beauty of balance. And he emphasized that before writing letters one should examine his calligraphy, philosophy, and theme, and then visualize his idea calmly and sufficiently, therefore, one could express his pure and clean spirit. So his artistic temperament that he valued his lifestyle enjoying poems, calligraphy, and paintings while interchanging between like-minded friends was expressed as a beauty of high leveled spirit that letters could reveal to one's personality. In particular, the appearance of Seokjeong at Jeonbuk Calligraphy Organization helped form a unprecedented, significant vein - learning in the presence of mentors and passing down what learned to next followers. In addition to the establishment of traditional calligraphy in this way, he contributed Samjeol, which consists of poem, writing, and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to being full blown in pursuing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as Muninhwa. Thereby, it can be said that 19C Jeonbuk Calligraphy Art Organization deeply connected to Seokjeong was able to pave a concrete way for Jeonbuk Seodan by providing an unprecedented, indomitable foundation.

9,700원

8

전통 조각보 기법에 나타난 조형성 및 여성복 디자인 개발을 위한 연구

양지나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239-263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의 전통미와 조형적 특성을 겸비한 조각보에 나타난 미적요소를 활용하여 여성복 디자인을 제시하고자 세계시장에서 차별화 되고 상품가치가 높은 여성복 디자인 개발의 계기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우리나라 조각보의 조형적 특성을 살펴 본 결과 면구성에서는 삼각형, 사각형, 방사형, 여의주문형, 자유형 등으로 구성되어 문양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색채 배합에서는 오방색 중에서도 청색과 적색계열을 강한대비를 사용하여 제작하였으며 차분한 백색을 함께 사용하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본 연구자는 문양 디자인 개발을 위한 문양선정에서 조형적 특성 중 면구성 배합 중 가장 세련되고 생기 있는 배열을 보여준 삼각형 조각보 구성을 선정하고, 색상배합에서 가장 많이 쓰인 오방색 중 청색, 적색, 백색을 사용하여 조각보를 제작하여 Adobe Photoshop CS5을 통해 문양을 반복, 패턴을 제작하고 도식화를 8점 디자인하였다. 제시된 도식화를 통하여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 의상에 접목된 세모꼴의 조각보 디자인을 문양으로 표현함으로 독창적인 이미지를 표출시킬 수 있었다. 둘째, 현대 여성복 도식화 디자인에 전통 한복요소를 디테일로 일부 적용하여 전통복식의 이미지보다는 세련되며 활동성을 겸비한 디자인으로 재구성 되었으며 조각보 문양과 함께 어우러져 전통요소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셋째, 세모꼴 조각보 문양을 통해 방사형, 여의주문형, 자유형 구성 등으로 전개하여 현대 복식에 적용시킨다면 한국적인 전통미가 강한 조각보의 활용이 현대복식에서도 적용 가능하리라고 사료한다.
This paper aimed to present the opportunity to develop the women's apparel design which have high product values and is differentiated in the global market by proposing the women's design using traditional triangle patchwork pattern. These designs have both traditional beauty and elegance of Korea as well as modern fashion look. In accordance with the analysis results on the formative features of patchworks of Korea, the planes comprised rectangular, radial, Yeouijumun, and free shape. It indicated that the patterns were applied. For color arrangement, the complementary colors of blue and red series in five colors were used and the soft color arrangement was also adopted. For selecting the patterns to develop the pattern design, this paper selected the triangle patchwork composition which looked the most elegant and vital in plane composition among the formative features and made the quilt using blue, red and white colors in five colors which were the most frequently adopted. The patterns were repeatedly arranged using Adobe Photoshop CS5 and finally 8 flat designs accomplished. The conclusion from designs are, First, the triangle patch design which was newly created in this paper was applied to modern clothing and so the unique image was created. Next, the traditional Korean clothing element was partially applied to the flat design of the modern women's apparel and the design emphasizing the elegance and activity rather than the existing images of traditional clothing was created. The design harmonized with the patchwork patterns indicated the highly added values. Finally, this study proved that the traditional patchwork could be proposed in a variety of designs in apparel by modernizing the triangle designs, renovating radial, Yeouiju and free shapes and applying them to the modern apparel.

6,300원

9

박태준의 초기 한국 가곡에 관한 고찰 - 思友(1922)와 물새발자옥(1935) 작품을 중심으로 -

문선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265-29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가곡은 각 나라마다 고유한 언어와 음악, 그리고 문화가 결합되는 민족음악이다. 한국가곡도 우리의 고유한 언어의 시에 작곡가들이 곡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고유한 민족음악이다. 한국가곡에는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가 잘 반영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한국가곡의 시작인 1920년대와 근대적 가곡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되는 1930년대의 흐름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전 시기의 唱歌에 예술적 주체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1920년대 초기 한국가곡들은 서구 찬송가의 모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0년대에 와서 근대 가곡으로서의 틀을 갖추게 되고 무대공연의 상설화, 음반 발매, 방송국의 출현 등으로 더욱 발전 하게 된다. 20년대와 30년대에 초점을 맞추어 이 당시 활동한 주요 작곡가들 중에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애창이 되고 있는 곡들을 작곡한 박태준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의 삶을 되짚어 보고 그의 일생에 음악이 깊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던 그 필연적인 만남을 되새겨 보았다. 또한 그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두 인물, 이은상과 윤복진과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박태준의 작품들 가운데 <思友:동무생각, 1922>과 <물새발자옥, 1935>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최근 <동무생각>과 관련하여 이 곡을 만든 작곡가 박태준의 고향인 대구와 작사가 이은상의 고향인 마산이 이 곡의 가사 1절에 등장하는 ‘청라언덕’의 자리를 놓고 뜨겁게 대립하고 있다. 무엇이 이 대립의 문제점인지 알아보았고, 이 곡이 가지고 있는 가사 속 의미를 살펴보아 왜 많은 이들에게 애창될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하였다. 두 번째 곡 <물새발자옥>에서는 이 곡이 담겨진 작품집 󰡔물새발자옥(1939)󰡕을 음악박사 계정식(1904-1974)이 1939년 7월 26일 동아일보지에 면밀히 소개한 기사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윤복진과 이인성, 박태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며 이 작품집에 대해 소개하였다. 곧 이 작품집이 많은 이들과 다시금 만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가곡, 더 나아가 한국의 창작곡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연구하는 이들에 의해 많은 성과가 나오길 바라고 또한 본고를 통하여 잊어져 가고 있는 한국가곡의 뿌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숨어 있는 많은 작품집들이 세상과 소통되고 연구되어져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노래로 다시금 불리길 기대해본다.
Korean art songs are national music combined by each unique language, music and culture. Not only these songs are one of Korean traditional songs composers make with traditional poems, but also Korean art songs reflect Korean life and culture. In this study, it represents 1920's Korean art songs as beginning era of the songs and 1930's lyric songs as the form of modern Korean art songs. As the earlier Korean traditional chanting began to form its own artistic sources, early 1920's Korean art songs had limit that the Korean composers mimicked a western hymn. In the 1930's, Korean art songs were formed as modern music and it was highly developed by establishment of stage, releasing a record, appearance of broadcasting station. Among many composers in the 1920's and 1930's, in the study, Park, Tae-Jun who composed many famous songs was introduced. It is important point for this study to represent Park, Tae-Jun's life of childhood and youth when he was deeply inspired by music. In addition, it is easy to understand Park, Tae-Jun's relationship of Lee, Eun-Sang and Yun, Bok-Jin who sincerely influenced his life. Recently it would be big conflict about Chung-ra hill shown on the first lyric of Longing for my friend between the composer Park, Tae-Jun's hometown Dae-gu and the lyric writer Lee, Eun-Sang's hometown Ma-san as Park, Tae-Jun's songs which are Longing for my friend and Footprints of waterfowl were researched. In the study, it analyzes what point of argument is and why people love this song that has meaningful lyric. This study explains the second song which is Footprint of waterfowl included the works with the article of Dong-A daily newspaper written by musical doctor Gye, Jung-Sik on 26 July in 1939. The works would meet many people soon. It would inspire that people who love and study Korean creative songs can do research with ardor. Moreover, it is worthy for this study to meditate root of Korean traditional art songs which have been forgetting. The many hidden works can be communicated with people and researched; it would be popularly sung as traditional song for Korean once again.

7,300원

10

1970년대 한국 모노크롬 회화에 나타난 한국미적 특징 분석

심영옥, 박명선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297-329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한국 모노크롬 회화는 서구 모노크롬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에 표현된 양식적 특징과 작가들의 정신성을 비추어 볼 때, 한국 모노크롬 회화는 서구미술의 모방이나 아류에서 벗어나 한국의 독자적인 미술 분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본 논문은 한국 현대 미술사에 있어서 1970년대의 흐름을 주도했던 모노크롬 회화에 대한 연구로써, 한국 모노크롬이 한국 미술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한국 모노크롬 회화의 한국미적 특징을 모색하였다. 한국 모노크롬 회화가 갖는 독자성과 방법적 특성은 물성으로서의 색이 아닌 정신화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국성 정립에 공헌한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70년대 한국 모노크롬 회화에 나타난 한국성으로서의 한국미감에는 백색 모노톤에 나타난 백색미감, 물성으로서가 아닌 정신성으로 나타낸 자연미감, 그리고 인위적이거나 목적을 두지 않은 무작위미감 등이 내재되어 있다. 어떤 미술 장르든 미술사의 흐름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1970년대 우리 작가들은 한국적인 미의식으로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그에 따라 표현된 한국 모노크롬 회화는 한국적인 독자성과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하겠다.
Korea Monochrome painting can not ignore Western Monochrome. But when the format shown in the work of painters and look at spirituality, Deviate from the imitation of Western art, Korea has became a unique genre of art. In this study, the characteristics sought aesthetic of Korea of Korea Monochrome painting for Korea Research Monochrome painting 1970s, which led to art history in Korea, Sought Korea Aesthetic characteristic of Korea Monochrome painting. Identity and way of Korea Monochrome painting Korea has contributed to make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lor of the non-localized properties that mental. Especially, The aesthetic of the 1970s, Korea was represented by out aesthetic, Aesthetic in Korea are white aesthetic by white monotone, Appeared in the spirit of nature aesthetic, Aesthetic rather than artificially random. What genre of art all of art history, the flow can not be ignored. for that reason Korea Monochrome painting uniqueness and identity that is high in value.

7,500원

11

編織繡品 服飾 미학에서 形態美의 특질 연구

김영란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331-367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편직수품 복식의 科技 美學은 미학 분야의 신흥 학문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현대 패션디자인의 조류 가운데서도 여전한 영향력을 지니며, 새로운 예술품의 창작과 생활미화에도 의의를 갖는다. 본 고에서는 대립과 통합 규율의 변증법적 근본원리를 활용하여 편직수품 복식의 미적 심리정서와 예술적 감염력에 대해 종합 분석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출토된 실물과 전래품을 위주로 문헌의 기재를 통해 형상예술의 변화 발전 과정에 비추어진 형태미의 특질을 고찰하였다. 먼저 편직수품 복식의 결구를 구성하는 가공 방법과 문양의 조형 디자인에 대한 意象性의 원리를 귀납 분류하였다. 미의식의 분석에 대한 탐구는 심미적 문화가 응집되어있는 상고대의 풍부한 철학, 미학 및 윤리학 등의 의미를 고할함으로써 이 분야에서 부족된 연구를 보완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미학 영역에서 편직수품 복식의 형태미로 표현되는 재질 결구의 미, 색상 조화의 미 및 문양 조형의 형상 사유, 시대 관념, 길상 문화 등의 意象性과 심미 감정, 과기 미학의 특징 등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살펴보았다. 또한 이에 상관된 내용과 이해가 다소 부족한 어휘들도 함께 고찰하였다. 연구 결과, 편직수품 복식의 미감이 역대를 거쳐 응용, 발전시키고, 생활을 아름답게 가꾸는 과정 속에서 인체 외양미, 장식미로 표현되었으며 시종일관 최고급 수준의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在美學研究中,編織繡品及服飾的科技美學成爲一門新興學科.它在時裝設計潮流中仍有影響力. 幷在創造新穎藝術品,美化生活方面具有特殊意義. 本硏究試圖,運用對立統合規律的辨證法的根本原理,綜合分析對編織繡品及服飾的審美心理感受和藝術感染力.因此從歷代各地出土的實物與傳世品爲主線,結合歷史典籍記載及其相關資料,分析进行了編織繡品及衣裝所顯示的形象藝術演變發展過程的形態美特質. 首先,通過對編織繡品紋理結構特質的加工方法和紋樣造型設計意象性原理等歸納分類,編織繡品的結構肌理、色彩、紋樣等帶有標志性、規律性爲核心,以及其有關它的象征意義和審美觀念等方面,進行系統性的研究分析論述。同時探索美意識的分析方面,通過審美文化其凝聚著上古代其豐富的哲學、美學和倫理學等的深層理性含意, 以補充在這方面研究的不足. 隨之上古代美學領域裏,對於編織繡服飾的形態美,所呈現的材質肌理結構美、色彩配色、暈色和諧美,以及紋樣造型設計的形象思維、時尚觀念、吉祥文化等的意象性和審美情愫性、科技美學特征等,論述了比較系統的總結. 還探討了有關內容和理解上的一些欠妥之詞. 編織繡品及服飾之美,聞名遐邇。編織繡品及衣裝的美感是人們設計思想、情愫和制作工藝技術等物化的形態感、材質感、色感的集中體現。其結果是在歷代編織繡品服飾的應用、發展和美化生活的進程中,確認它在表現人體儀表美、裝飾美方面,始終扮演著最高水平的主導角色.

8,100원

12

세화를 활용한 네일아트의 조형성에 관한 연구 에어브러시(air brush) 작품을 중심으로

김신희, 정연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2호 2013.08 pp.369-387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연구에서는 세화에 감춰진 고유의 조형적 美를 표출, 소재로 선택하여 에어브러시 기법으로 현대와의 조화로움과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조형미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이론적 고찰과 실증적 연구를 병행하였으며 세화를 중심으로 작품 제작에 필요한 디자인 모티브는 꽃, 새, 잉어, 호랑이를 선정하였다. 세화의 특징을 살린 네일아트 작품 제작을 위해 섬세하고 정교한 디자인을 연출할 수 있는 에어브러시 기법을 활용하여 표현하였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작품에 표현된 공간구성 분석을 통하여 조형적 상징성의 의미에 비중을 두어 고정된 틀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였다. 호랑이 그림에 표현된 공간구성을 보면 타원형의 배치와 주제의 S자형 구도, 시선의 각도에 따른 공간의 밀집과 팽창성, 호랑이를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오는 화면의 전체적 잠식성을 강조하였다. 여백 없는 강인함과 엄격함의 분위기에 공간구성은 동시성의 부분을 강조하였다. 둘째, 작품에서 표현된 의식적인 주제의 반복적인 되풀이를 통해 사실적이면서 자연주의적인 개인의 창의적인 구도보다는 상징물의 감정을 잘 드러나게 하는 유형화된 조형적인 특성을 표현하였다. 셋째, 작품에서 각 사물의 상징성의 강조와 다소 장식적인 경향의 여백 없는 채색을 통하여 수직, 수평, 유선형의 복합성을 표현 하였다.
This paper tried to express the creative and unique formativeness harmonized with modernity by creating the unique formative beauty contained in the traditional folk painting of Korea using air brush techniques, as the creative and dynamic work. The analysis on the production of works based on the literature review, theoretic review and empirical analysis were implemented as the methodology. The air brush technique was used for the empirical analysis on the works. The motives as the materials were flowers, birds, tigers and carps of Korea among folk painting materials. Those motives were expressed using the air brush technique. The analysis results are described below. First, the fixed frame was intentionally emphasized by focusing on the meaning of the formative symbolism through the analysis on the spacial structure in the works. For the spacial structure in a tiger drawing, an oval arrangement, S-shape structure for themes, density and expandibility of space depending on the angle of view were identified. Encroaching into a screen was emphasized by arranging a tiger in the center. Second, the intentional repetition of themes in Morando(peony drawing) expressed the materialized formative features expressing the emotion of symbols rather than the creative structure of a realistic and natural individual. Next, the vertical, horizontal and streamlined complexity was expressed in Hwajodo(drawing on flowers and birds) by coloring without blank which tended to emphasize the symbolism of each object and be slightly decorative.

5,400원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