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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39호 (10건)
No
1

「淨因院畫記」를 통한 蘇軾의 이분법적 대상 인식 고찰

강교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9호 2018.05 pp.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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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北宋)의 소식(蘇軾)은 송대(宋代) 문인화풍 형성의 선구적 인물로서, 화론서를 집필하거나 체계적인 회화 이론을 주창한 바는 없으나 회화 창작에 대해 다수의 독창적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 중에서도 「정인원화기(淨因院畫記)」에서는 창작 대상을 상형(常形)이 있는 것과 상리(常理)가 있는 것으로 이분하는 새로운 인식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상형은 각각의 사물이 지니는 일정한 형태이며, 상리는 각각의 사물이 지니는 일정한 이치를 말한다. 즉 사물에는 상형이 있거나, 상형이 없는 경우 상리가 있으니 반드시 그것을 파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소식이 사물에 상형 또는 상리가 있음을 주장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리가 상형의 부재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한 점에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상형이 있는 사물’과 ‘상형이 없는 사물’의 차이는 그것의 일정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가의 여부에 있는 반면, 상형 부재의 대안으로 제시된 상리는 비형태적인 영역의 명제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세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정인원화기」를 재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상형이 있는 사물’과 ‘상형이 없는 사물’, 즉 ‘상리가 있는 사물’의 예로 분류된 소재들의 구분 기준은 무엇인가. 기존 연구와 같이 시시각각 외물의 영향을 받는 사물을 상형이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당시 성행한 문인화와 소식의 관계를 고려해본다면 회화 장르에 따른 소재의 구분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상리가 있는 예로 제시된 사물들이 창작자의 정신 반영을 중시하는 문인화의 소재들이기도 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둘째, 상리로 상형을 대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형 없는 사물의 경우 상리를 파악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서 특이한 점은 상리가 상형과는 반대의 영역에 있는 비형태적 요소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식이 추구하는 회화 창작의 궁극적 목표가 무형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유형의 가치의 회복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형은 가시적인 이치로서, 상리는 비가시적인 이치로서 창작 대상의 실제와 같은 닮음의 재현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도모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상형과 상리를 파악하는 방법이 있는가.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두 번째 쟁점과 같은 맥락에서 상형과 상리의 파악에는 모두 끊임없는 관찰과 배움이 요구된다. 위와 같은 점들로 인해 「정인원화기」는 다시 분석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소식이 대상의 인식 경로를 상형과 상리로 이분할 것을 주장한 이면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창작 대상의 사실성 확보를 통한 닮음의 재현은 소식이 회화 창작에서 추구하는 일관된 가치임을 확인할 수 있다.
‘Su shi 蘇軾(1037∼1101)’, the pioneer of the literary artist's style in Song Dynasty, suggested several inventive views on painting creation, although he didn't write any painting theory or advocate a systemic painting theory. Most of all, in 「’Jingyinyuanhuaji 淨因院畫記’」, the new recognition method is identified; it divides objects into the one that has ‘Changxing 常形’ and the other that has ‘Changli 常理’. Changxing is fixed forms of objects and Changli is reasons that each object has. It means that observers have to understand that most objects have Changxing and if there is none of it, there exists Changli. However, the fact that Sushi suggested that Changli can substitute absence of Changxing, rather than arguing that objects have Changxing or Changli, leave room for consideration. It is because Changli as an alternative for absence of Changxing is a proposition of incorporate domain, while the difference between 'objects with Changxing' and 'objects without Changxing' is whether the object has certain form or not. In this context, 「Jingyinyuanhuaji」 is in need of reanalysis on following three points; First, what is the criteria of sorting materials that are categorized as examples of 'objects with Changxing' and 'objects without Changxing' which means 'objects with Changli' in other words? Like existing studies, objects that are influenced by external things every moment can be considered not to have no Changxing, but a possibility that the sort of materials conforms painting genres can't be excluded when considering the relation between Su shi and the then prevalent literary art. This possibility is supported by the fact that the objects suggested as examples that they have Changli are materials of literary art that emphasizes the reflection of creators' spirits. Second, what does it mean that Changxing is replaced by Changli? a singularity of Su shi's opinion that objects without Changxing should be understood by Changli is that Changli is a formless element in the domain opposite from Changxing. For that, the fact that Su shi‘s final goal of painting creation was to recover corporeal value based on incorporeal value should be considered. Changxing is visible logic and Changli is invisible reason; it can be said that both of them aim one value of reproducing realistic resemblance of creation objects. Third, is there a method to figure out Changxing and Changli? Although there are differences in specific methods, constant observation and study is needed to figure out Changxing and Changli on the same context as the second issue. By those points above, 「Jingyinyuanhuaji」 needs reanalysis and it helps understand Su shi's ulterior intention to insist that object recognition channel should be divided into Changxing and Changli. With this, it is confirmed that reproducing resemblance by securing realism of creation object is constant value that Su shi pursues in painting creation.

5,500원

2

春秋戰國ㆍ漢代 繪畵의 筆墨法에 觀한 考察

김선옥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9호 2018.05 pp.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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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藝術史와 藝術論의 근간은 氣韻生動을 중심으로 한 筆墨法에 있다. 동양예술의 첫 단계에 해당하는 春秋戰國・漢代의 필묵법에 대하여 그 경향성을 살펴보는 것이 본 小考의 목적이다. 이 목적을 위해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한 연구범주는 春秋戰國・漢代의 帛畵와 壁畫이다. 현재 학계에서 춘추전국・한대를 동양예술의 제1단계로 설정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밝혀진 작품으로는 춘추시기의 것은 아직 볼 수 없으며 전국시대 초・중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人物龍鳳帛畵>와 전국시대 중・후기로 보이는 <人物御龍帛畵>가 전한다. 漢代는 西漢의 馬王堆 1号墓 출토의 <彩繪帛畵>가 있으며, 洛陽 八里台 출토의 <上林苑訓獸圖>와 <彩畵塼人物圖>가 있다. 東漢의 작품으로는 河北 望都 1号墓 출토의 《官員人物圖》 가 있다. 본 小考에서는 이 작품들을 연구대상으로 하며 동시에 연구범주로 하였다. 위의 작품들은 모두 무덤 부장용의 그림들이어서 그동안 세간에 늦게 알려진 탓에 동양예술론은 魏晉南北朝 이후로 淸代까지 많은 연구가 진행된 반면 춘추전국・한대는 연구 성과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위진시기 이전의 회화예술에 대한 선행연구는 거의 희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고대의 많은 고분들이 발굴됨으로써 춘추전국・한대의 필묵법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주된 필묵법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또 시대조류에 따른 필묵법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후대의 필묵법과 예술론과는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하여 위와 같은 범주 안에서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동양회화예술의 제1단계였던 춘추전국・한대의 회화는 筆墨法에 있어서 이미 후대에 펼쳐질 白描法의 前身이 되고 있었으며, 高古遊絲描와 같은 一筆畵를 선호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墨法에 있어서는 아직 뚜렷한 畵法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 시기의 회화는 實用畵였기에 예술성에 대한 관심은 없었으나 이미 동양회화예술의 전통으로써 筆法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 전통을 초석으로 하여 後代 魏晉南北朝 이후로 筆法 中心의 藝術形態가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傳統은 唐代의 水墨畵를 통해 墨法에 대한 관심이 고양되어 筆墨法은 더욱 풍요로와 질 수 있었다. 그리고 元代 이후로 文人畵가 융성하면서 表現的 筆墨法이 구사되었는데 모두 春秋戰國・漢代의 筆墨法 傳統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춘추전국・한대의 筆墨法은 東洋繪畵藝術의 근원이며 전통으로 작용됨이 고찰되었다.
The essence of Chinese art history and theories are hinged on how to use brushes and ink (bimofa 筆墨法) which highlight the dynamic flow of qi 氣 (vital energy) ( qiyun shengdong 氣韻生動). This paper explores the usage of brushes and ink during the Warring States and the Han, the formative stages of Chinese art. Silk painting and murals in the tombs of the periods will be analyzed to meet the purpose of this paper. Most of the art historians hold that the first stage of Chinese art starts at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and put the Spring and Autumn, the Warring States, and the Han in the same category. Even so, there has been no paintings which fall into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The earliest paintings such as “Renwu long feng bohua” 人物龍鳳帛畵 and “Renwu yu long bohua” 人物御龍帛畵 blong to the Warring Stage period. The Western Han paints includes “Caihui bohua” 彩繪帛畵 which was founded in tomb no.1 at Mawangdui 馬王堆, and “Shanglinyuan xun shou tu”上林苑訓獸圖 and “Cai hua zhuan renwu tu” 彩畵塼人物圖 which are found at Balita 八里台, Luoyang 洛陽. the Eastern Han painting includes “Guanyuan renwu tu” 官員人物圖. This paper will be focused on the aforementioned paintings. The aforementioned paintings have not studied until recently mainly because they are unearthed several decades ago and few scholars paid good attention to them. This is why most studies of Chinese art history are limited to the periods between the WeiJin 魏晉 and the Qing 淸 without full attention to the earlier periods. This meas that there have been no enough previous studies on Chinese art before the WeiJin period. Recent years witness the increase in studies of early Chinese art thanks to the new findings of paintings in the tombs. In other words, the newly unearthed paintings have enabled art historians to understand the usage of brush storks and ink during the early periods. Also, the newly discovered paintings provide a better and clearer picture of the changes and links of the usage of brushes and ink over time. The main achievements of this paper can be summarized as below. The first stage of Chinese painting (i.e., the paintings of the Spring and Autumn, the Warring States, and the Han) already embraces the brush technique (bifa 墨法) of baimiaofa 白描法 (drawing with lines) which has formed the very characteristic of later Chinese paintings. It should be noted that one stroke painting (yibihua 一筆畵) such as Gaoguyousimiao 高古遊絲描 are already developed during the first stage. However, the ink technique (mofa 墨法) was not developed during the first stage. This is mainly because the early stage valued practical paintings without much attention to artistic values. This means that Chinese painting which put more weight to the brush technique has started at the first stage of Chinese art and this tradition has continued to the Tang 唐. During the Tang dynasty, the ink technique was developed and became a essential part of Chinese art. The Yuan dynasty witnessed the blooming of literati paintings (wenrenhua 文人畵) which demonstrated the artistic skills which were developed during the first stage of Chinese art. In sum, the Spring and Autumn, the Warring States, and the Han already developed the brush and ink techniques which have become the basic skills of Chinese paintings.

6,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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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의 관점에서 본 한국춤 사유의 근원

김지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9호 2018.05 pp.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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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예술의 장르가 인간의 독자적 사유로부터 비롯된 상징이라는 미학적 해석에 기인한다. 상징은 예술이 추구하는 은유이자 대상을 인식하는 또 다른 방법론 중 하나로,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예술을 계승한다는 것은 전형에 관한 단순한 복사가 아니라 미의식의 상징적 함의의 투영이다. 이에 ‘전통과 모방’은 상징이란 매개를 통해 성립되는 예술적 맥락에서 읽어내려 갈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모방이론과 한국예술로서 춤 모방의 관점을 의미로부터 범주화하고, 예술적 사유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철학과 예술의 결합된 형태로서 미의식의 세계관을 해석하고 있다.
This study is based on the aesthetic interpretation that the genre of art is a symbol derived from human 's own reason.Symbolism is one of the other methods of recognizing metaphors and objects pursued by art. In this context, inheriting traditional art is not merely a copy of the typology but a projection of the symbolic implications of aesthetic consciousness. Therefore, 'tradition and imitation' need to be read in the artistic context established through mediation of symbols.Therefore, it categorizes the imitation theory and the view of imitation of dance as Korean art from the meaning, and interprets the world view of aesthetic sense as a combined form of philosophy and art about the fundamental question of artistic reason.

6,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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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畵藝術 表現形式에 있어서 ‘陰陽對待 美學槪念’의 예술철학적 의미 - <歲寒圖>와 <谿山無盡>의 筆墨法과 構圖法을 중심으로 -

변명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9호 2018.05 pp.7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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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서화예술의 表現形式에 있어서 陰陽對待 미학개념의 예술철학적 의미를 <歲寒圖>와 <谿山無盡>의 筆墨法과 構圖法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미술사의 수많은 書畵 창작자들은 ‘畵道’와 ‘書道’가 실제적인 창작 과정에서의 筆墨體驗에 있으며 書畵創作 미학원리의 奧妙함이 필묵체험에 있어서 ‘一陰一陽’의 원리에 있음을 역설한다. 이에 대해 몇몇의 선행연구들은 書畵예술의 미학적 특성이 陰陽美學的 調和美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창작과정의 筆墨體驗에 있어서 陰陽美學的 原理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美學境界를 의미하는지에 관해서 논증한 연구는 찾기 힘들다. 이에 대해 본 연구는 수많은 서화창작자들이 실제적인 창작과정에서 경험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畵道와 書道가 의미하는 筆墨體驗의 구체적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서화예술은 畵派나 作家의 개성에 따라 차이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서양의 현대미술과 비교하면 큰 틀에서 일정한 形式美를 지니며 오랜 세월을 거쳐 서양화와는 다른 나름대로의 독특한 표현형식을 구축해 왔다. 예술의 內容은 形式에 고스란히 담겨지므로 형식은 곧 그 내용을 의미한다. 또 表現形式 안에는 書畵家가 실제적인 筆墨體驗 과정에서 느끼는 審美的 境界가 담기게 되므로 표현형식을 분석함으로써 그 審美的 境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화예술의 ‘表現形式’ 혹은 ‘形式美’에 관해 분석한 연구는 드물다. 본 논문은 書畵작품의 筆墨法과 構圖法의 形式美를 陰陽美學 개념과 관련하여 분석하고 서화창작의 필묵체험 과정에서 창작자가 느끼는 심미적, 철학적 경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구체적인 작품으로 秋史의 문인화 <歲寒圖>와 서예작품 <谿山無盡>을 예로 들어 이에 나타난 筆墨法과 構圖法의 원리를 분석하였다. 그 과정에서 서화예술의 구도법이나 필묵법의 표현형식 안에 陰陽論的 對待原理가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것이 실제적인 창작과정에서 書畵 창작자에게 미치는 예술철학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陰陽對待의 미학개념은 어떠한 運動性을 띠는 것으로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우주자연과 만물의 본질적 모습이기도 하다. ‘對待’ 槪念은 하나의 고정된 법칙이 아니라 相對的인 관계에 따라 時時刻刻 變通한다는 점이 특징이므로, 그 본질적 의미는 言語나 槪念으로 明澄하게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활자적인 지식보다 오히려 필묵운용의 창작행위를 통해 몸소 체험함으로써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서화 창작자들이 필묵운용의 원리와 생생한 자연의 變化와 運動의 원리와의 유사성을 체험적으로 느끼고 그 神妙함에 대해서 강조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서 서화창작의 필묵체험 과정은 陰陽對待의 미학개념을 인지하게 하는 체험적 지식일 뿐만 아니라, 서화예술을 畵道나 書道의 경지로 이끄는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This study is to contemplate the implication on the philosophy of art innate in the expression style for the Oriental calligraphy and painting art. Numerous calligraphy and painting artists in art history attribute to the fact that ‘Hwado (right of way for painting’ and ‘Seodo (right of way for calligraphy)’ are in the brush and Chinese ink experience under the practice creative work process, and with respect to the brush and Chinese ink experience, the exquisiteness of the aesthetic principle of creative calligraphy and painting work is in the principle of ‘one yang and one ying’. In this aspect, some of the earlier studies disclose that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for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art are in the ying-yang aesthetic harmony. However, with respect to the brush and Chinese ink experience under the practice creative work process, there is hardly any study that empirically verifies on what the ying-yang aesthetic principle really implicates the aesthetic boundary in details. In this regard, this study contemplates detailed implication of the brush and Chinese ink experience that is implied by Hwado and Seodo that many creative calligraphy and painting workers empirically perceived by the practice creative work process. The Oriental calligraphy and painting art has structured its unique expression style that is different from the western paintings through a long period of time.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art may display difference depending on the personality of the painting sector or individual artist, but compared to the contemporary western art, it is formulated in succinct and plain style to contain its consistent aesthetics within the great scheme of things. Content of art is contained in its style that the contents contained within may be presumed through the style. This researcher considered that the aesthetic boundary would be confirmed by analyzing the expression style since the aesthetic boundary felt by the calligrapher in the actual brush and Chinese ink experience process to be contained within the expression style. However, there is hardly any study that analyzed on expression style or formative aesthetics of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art. Accordingly, this study is intended to analyze the formative beauty of brush and Chinese ink method and composition method for the painting and calligraphy works and taken a look at the innate philosophical implication in a way of clarifying the meaning of exquisite ying-yang aesthetics felt by the creative calligraphy and painting workers in the process of brush and Chinese ink experience. As for the concrete work products, there are , the literary painting, and , the calligraphy work of Chusa in a way of analyzing the principle of brush and Chinese ink method) and composition method displayed thereof. In this process, it is confirmed that the ‘ying-yang aesthetic coincidentia oppositorum’ is working within the expression style of composition method or brush and Chinese ink method of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art and it contemplates the implication of the philosophy of art that influences on the calligraphy artist in the actual creative work process. The study outcome is shown as follows. The concept of ying-yang aesthetic coincidentia oppositorum has certain movement to display the intrinsic appearance of universal nature and all things unyieldingly move and change.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incidentia oppositorum’’ concept is that it is not a fixed principle but is the change every moment of time depending on the relative relationship. The intrinsic implication of the ying-yang aesthetic coincidentia oppositorum’ is difficult to define clearly in language or concept that it could be even clearer by personally experiencing it through the creative work of Chinese ink operation rather than the written knowledge. Therefore, it affirms that numerous creative calligraphy and painting work자s personally feel the similarities of the principle of Chinese ink operation and the principle of change and movement of live nature and emphasize the exquisiteness thereof. Through this study, the brush and Chinese ink experience process of the creative calligraphy and painting work is not only the empirical knowledge to perceive the ying-yang aesthetic coincidentia oppositorum’, but also an important aspect to lead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art into the state of hwado or seodo.

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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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별로 본 剛菴의 서예

장지훈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9호 2018.05 pp.9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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剛菴 宋成鏞(1913-1999)은 일제의 단발령과 창씨개명에 항거하며 평생 儒者의 삶을 지켜온 그는 전통적인 학문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킨 20세기의 마지막 선비이자 서화가이다. 강암은 栗谷(李珥)―艮齋(田愚)―裕齋(宋基冕)로 이어온 학맥과, 蒼巖(李三晩)―石亭(李定稷)―裕齋 등으로 계승된 예맥 위에, 거슬러 歐陽詢 ․ 黃庭堅 ․ 董其昌 ․ 紫霞(申緯) ․ 秋史(金正喜) 등 역대 제가들과 아래로 一洲(金振宇) ․ 潁雲(金容鎭) ․ 雪松(崔圭祥) 등 근대 서화가들을 통섭하였다. 특히 선친 裕齋가 일생동안 학문과 예술의 이념으로 삼아 온 ‘舊體新用’론에 입각하여 장년기까지 갈고 닦은 학문과 예술의 실질을 사회적으로도 발현하여 강암은 自得의 예술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강암의 다양한 서예세계를 서체별로 분석하였다. 강암의 전서는 金文의 회화적이면서도 주경한 금석기의 맛과 웅혼한 기상, 小篆의 엄경하고 방정한 조형과 유려한 필세, 碑學의 웅혼한 필획과 자형이 혼융되어 있어서 ‘蒼勁古拙의 미’가 두드러진다. 예서는 끊임없는 자기화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枯淡한 기운이 응축되어 고졸하면서도 맑은 기운이 감도는 ‘苦澁淸虛의 미’가 두드러진다. 해서는 방정하고 수려한 규범을 토대로 풍윤하고 굳건한 기상과 비학의 험절한 서법 등을 두루 섭렵하여 무기교의 탈속적인 ‘瘦拙平淡의 미’를 형성하였다. 행초서는 역대 제가들의 장점을 두루 취하여 瘦硬通神의 기풍을 갖추었고, 공교의 극치를 넘어 탈속의 경계와 천취자연의 서예본질로 회귀함으로써 ‘蒼勁拔俗의 미’를 구현하였다. 강암은 공자의 溫故知新과 왕희지의 詳察古今과 김정희의 實事求是와 송기면의 舊體新用에 입각하여 고금의 서예자료를 섭렵하고, 그 용필과 체세에 대해 면밀히 규찰하고 체득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강암체를 창출하였다.
Gangam Song Sung-yong(1913-1999) preserved the life of the Confucian during his lifetime against the Revolutionary Revolution and the Renunciation of the Japanese Empire. He was the last scholar of the 20th century who succeeded the traditional scholarship and sublimated the spirit of the times into art. Gangam integrated modern painters and calligraphers, school ties along with Yulgok(Lee lee)-Ganjae(Jeon woo)-Yoojae(Song Gi-myeon), on the line to Changam(Lee sam-man)-SeokJung(Lee jung-jik)-Yoojae, Backwards Kooyangsoon . Hwangjunggyun . Zaha(Shinwi) . Chusa(KimJeong-hee) and Iljoo(Kim Jin-woo)-Youngwoon(Kim Yong-jin)-Sulsong(Choi Kyu-sang). In particular, Gangam established the artistic world of Gangam by expressing the realities of the arts and the arts which had been refined until the middle of the age, based on the idea of 'Out with a new'. I analyzed the world of various calligraphy of Gangam by writing style. '篆書'of Gangam is mixed paintings and the goldsmith period mood of 金文, the strict and smooth molding of '小篆', the grand ornamental writing and font of '碑學', the beauty of '蒼勁古拙' stand out. '隸書' is a continuous process of magnetization, condensed energy of 枯淡, and cleared the high resolution of the sunshine. the beauty of ‘苦澁淸虛' stand out. '楷書' is based on a fair and good standard, covered the fluent and steady weather and experienced writing of occult arts, and formed artless unworldy beauty of '瘦拙平淡'. '行草書' has taken the strengths of the past generations and established the spirit of '瘦硬通神'. It has realized the beauty of '蒼勁拔俗' by returning to the essence of calligraphy nature beyond the boundaries of deceit and beyond the extreme of myoism. Gangam has been studying the calligraphy materials of Gogum based on the ‘溫故知新‘ of Confucius and the ‘詳察古今‘ of Wang Huiji, and the ‘實事求是‘ of Kim Jung-hee. He created his own unique steel body.

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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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代記로 본 剛菴의 書藝

전상모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9호 2018.05 pp.13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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剛菴 宋成鏞은 先考 裕齋선생의 ‘舊體新用論’을 평생 견지하고 ‘藝道合一’을 실천한 선비이자 서예가이다. 그는 부친 유재선생의 훈도 아래 20대 초반까지 歐陽詢의 해서와 董其昌 행서, 그리고 分隸를 익혔다. 30대 초반에는 金容鎭과 金振宇에게 서예와 墨竹을 배우고 학서의 범위도 金文, 小篆, 漢瓦, 漢隸, 米芾의 행서 등으로 넓혔다. 이 시기에 강암서예는 이미 일정 정도 경지에 올라 있었다. 강암서예는 3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에 이르는 사이에 一變하였다. 강암은 40세 중반까지 顔眞卿 해서, 黃庭堅의 해서와 행서, 淸代 제가들의 篆隸, 漢隸를 공부하였다. 특히 안진경의 해서를 통해 장중함을 더하고, 황정견의 用筆을 통해 변화를 구함으로써, 自成一家의 토대를 굳건하게 다졌다. 40대 중반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국전추천작가가 되면서 자신의 서예역정에 轉換期를 맞이하였다. 국전출품에 이미 자신의 서체가 일정 정도 형성되어 있었다. 강암서예는 50대 중반이후 개화하기 시작하였고 60대 중반이후에는 만개하였다. 전서는 청대 전서와 국전출품 시기에 수용한 孫在馨 서풍을 참고하고 金文을 응용하였다. 예서는 東漢의 諸碑들과 청대 예서을 참고하고 추사의 예서를 응용하여 雄渾, 蒼古함을 더하였다. 해서는 晉唐의 古法을 바탕으로 전예의 자형과 필획을 응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서풍을 이루었다. 행초는 동기창, 미불, 황정견, 소식, 손재형 등의 서풍이 어우러져 있는데, 예서의 필획을 행서에 섞어 쓰는가 하면, 中鋒과 側筆, 偏鋒을 가리지 않고 自在로 구사하였다. 60대 중반 이후에는 자신의 서체를 마음껏 펼쳐내는 가운데 끊임없는 변화와 창신을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行草와 大楷, 小楷에서 자기 면모를 일신하고, 이전의 학서 자료를 다시 돌아보는 동시에 새로운 자료를 통해 자신의 서예세계를 확장하는 등 초학의 자세를 끝까지 잃지 않았다.
Gang-am(剛菴) Song Seongryong was a classical scholar and calligrapher who had sticked to ‘the theory of applying the lessons from the old on the new’ and had practiced ‘the unity of art and the Way’. Under the discipline of his father, Yujae(裕齋), he had learned OuyangXun(歐陽詢)’s regular script, DongQichang(董其昌)’s semi-cursive script and clerical script until his early 20’s. The range of his studies had been expanded to bronze script, small seal script, roof tile script, clerical script from Han dynasty, and MiFei(米芾)’s semi-cursive script since he learned calligraphy and bamboo paintings from Gim Jinyong(金容鎭) and Gim Jinu(金振宇) in his early 30’s. In this period, his calligraphy had been reached a significant level, and it had changed since his early 30’s until his mid-50’s. Gang-am had learned YanQiqing(顔眞卿)’s regular script, HuangTingjian(黃庭堅)’s regular script and semi-cursive script, seal script and clerical script of calligraphers from Qing dynasty until his mid-40’s. He attained the solemnity from YanQiqing(顔眞卿)’s regular script and pursued the changes from HuangTingjian(黃庭堅)’s law of wielding brush, so he formed the basis to establish a school of his own. In his mid-40’s, he faced a turning point in his calligraphy as he became a recommended calligrapher of National Art Exhibition. His own style of calligraphy was already formed when he submitted for the exhibition. Gang-am’s calligraphy had started blooming in his mid-50’s and had been in full bloom in his mid-60’s. In seal script, he accepted the seal script of Qing and Sonjaehyeong(孫在馨)’s style of calligraphy and applied bronze script. In clerical script, he referred the stele of DongHan and the clerical script of Qing, and he attained sublimity and antiquity by applying Chusa’s clerical script. In regular script, he established his own style by applying the shapes and the strokes of seal script and clerical script based on the old law of Jin(晉) and Tang(唐). In semi-cursive script and cursive script, he accepted the styles of DongQichang, MiFei, HuangTingjian, SuShi and Son Jaehyeong. He used the strokes of clerical script when he wrote semi-cursive script and had a good command of Zhongfeng(中鋒), Cebi(側筆) and Pianfeng(偏鋒). Since his mid-60’s, he had consistently pursued change and creativity, so he had refreshed his calligraphy in semi-cursive script, big regular script and small regular script. He had maintained his original intention by reviewing the previous materials of studying calligraphy and by expanding the world of his calligraphy through the new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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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동남아 교류사에 의한 궁중 춤 연구 - 類型과 要素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

정강우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9호 2018.05 pp.16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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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한국과 동남아의 궁중 춤 교류와 관련하여 1차 연구에서 포착된 공통적 춤 유형에 대해 추가적으로 고찰하고 그 속에 배치된 요소들을 규명하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양 지역 궁중 춤의 유사성을 도출하여 궁극적으로 역사적 기록이 희미한 한-동남아 궁중 춤의 상호 교류 실태와 근거를 논증하고자 한다. 고대 한국과 동남아의 궁중 춤을 거론할 때에는 인도와 중국의 영향 또는 서역으로부터의 유입이라는 생성 배경을 반복적으로 주지하는 데 그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본 연구는 동남아지역에 시선을 돌려 한-동남아의 교류에서 진행되었던 궁중 춤에 대해 살펴보았다. 논의 결과 한-동남아가 교류에 의한 궁중 춤에는 다음과 같은 유사성이 있음을 정리하였다. 첫째, 양 지역 국가교류에서 생성된 궁중 춤은 그림자극, 인형극, 가면극 등 춤극 형태의 공통적 유형으로 진행되었다. 둘째, 양 지역 궁중 춤은 토착신앙 위에 유입신앙을 얹는 형태였으며 상호 법형적인 상징으로 교류를 지속하였다. 셋째, 양 지역에서 교류된 궁중 춤을 유사한 형태로 보유하되 독자적 해석과 자국적인 예술형태를 곁들여 ‘변용과 발전’이라는 예술의 본질적 흐름으로 완성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urther examine the common dance types captured in the first study, in relation to Korean and Southeast Asian court dance exchanges, and to identify elements disposed therein. Moreover by analyzing the similarities, ultimately to be demonstrated are conditions and evidence to prove that Korea—Southeast Asia court dances were mutually exchanged. In the Korea—Southeast Asia exchanges, the court dances had the similarities as follows. First, court dance types created in the exchanges among the countries in both regions were in dance-drama forms such as shadow plays, puppet shows, and mask shows. Second, the court dances were in the form of putting foreign (religious, influx) faith on top of indigenous faith, and continued the exchanges as mutual legal symbols. Third, the court dances were completed as the essential flow of art entitled “transformation and development” by infusing independent interpretation and local art forms, while preserving the court dances exchanged in both regions as analogous 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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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詩意圖를 통한 시대 문화의 발현

조인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9호 2018.05 pp.18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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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창작된 詩를 화제로 하는 朝鮮詩意圖를 통해 문학작품이 회화로 표현되며 나타내는 시대문화를 규명하기 위한 논의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의 조선시대 畵員과 문인화가들은 중국의 詩가 아닌 先人이 지은 시를 화제로 한 시의도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먼저 조선시대 학자인 趙光祖, 鄭汝昌, 李珥의 시를 그린 李澄의 <난죽병>,<화개현구장도>, 김홍도 등에 의해 그려진 <고산구곡도>등에선 조선성리학의 이념, 학통의 계승을 공고화하려는 당시 사대부들학문적 지향과 권력 의지 등을 밝힐 수 있다. 주문자들은 회화 제작으로 先賢의 가르침과 이와 연관된 학통의 맥을 구체적으로 명시화하려했고 문학 작품과 더불어 시각적 표현을 통해 선현의 뜻을 존숭하고 잇는 매개체로 삼고자했다. 따라서 이징의 <난죽병>과 <화개현구장도>는 중국문학에 대한 축적된 소양과 인식이 회화 표현으로 전환되며 정여창의 시를 화제로 제작되는 목적을 더욱 명료하게 했다. 자연에 대한 기초적인 인지를 바탕으로 공감각적인 시구 표현에도 거침이 없었다. 또한 金弘道 등에 의해 그려진 <고산구곡시화병풍>은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화면 구성과 내용, 인용 시구 등의 배열 등으로 회화 제작의 의도를 충실하게 실현했다. 이징, 김홍도 등의 화가들에 의해 구현된 이러한 작품들은 조선 중, 후기의 주요 화풍을 구사하며, 주문자들의 의도를 화면에 반영했다. 이어 이규보, 최치원, 박은, 이병연, 김명원등이 지은 시 중 유명 시구는 강세황, 정선, 이인상, 김홍도, 이인문, 신윤복 등 조선후기의 주요 화가들에 의해 화면에 옮겨졌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人口에 널리 膾炙되던 선인들의 시구로 修身의 의미를 담거나 자연의 풍광을 읊은 것이었다. 김홍도의 <渡江圖>를 통해 신분제 사회인 조선이 후기에 이르면 그 경계가 느슨해지는 현상을 감지할 수 있었고, 신윤복의 <월하정인도>를 통해 선인의 시구 한 줄의 詩情으로 조선 후기 도시문화의 한켠에 자리했던 삶의 은밀한 영역을 화면에 담아냈음을 알 수 있었다. 鄭敾의 <시화환상간>, <양천현아도>에서는 화가의 畵意가 문학의 抒情에 대응하는 새로운 양상도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회화가 당시 유행했던 풍속화, 진경산수화의 유형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이같은 양상은 중국의 유명시를 화제로 한자 문화권의 주요국에서 그려지던 시의도와는 차별화되는 조선만의 고유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주어진 틀에 우리의 시를 담아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문화로 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의도가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3국의 공통적 예술형태임을 전제할 때, 自國의 시를 그린 시의도는 동일한 양식의 문화형태이지만 그 소재의 차별화로 인해 창작자의 고유한 특성이 획득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논의는 동일 문화권에서 이루어지는 동일한 형태의 예술 창작 행위가 어떠한 특징을 가지며 각국의 고유한 문화적 특징을 내재하고 있는지를 밝히는데 기본 자료가 될 것이다.
This study aims to figure out how poem-based paintings, in which the poems were created from the Silla to Joseon dynasties, expressed their own social and cultural backgrounds and achieve originality. In their art pieces, both professional and amateur painters in the Joseon dynasty between the fifteenth and nineteenth centuries clearly demonstrate the historical, social, and cultural backgrounds of the time a painting was produced. These poem-based paintings, "A folding screen of Orchids and Bamboos" and "Painting of a Country House in Whagae-Prefecture" by JLee Jing who created paintings based on prominent scholars in the Joseon period, such as Cho Kwangjo, Jeong Yeochang , Lee Yi, and "A folding screen of poem-based Paintings about Gosan nine Valleys" by Kim Hongdo and others show academic goals and the will-to-power of "Sadaebu," well educated and high-ranking government officials in the Joseon dynasty, who desired to assert the principle of neo-confucianism and its succession. Customers who ordered these paintings wanted to assert their academic tradition and predecessor's messages through poem-based paintings. "A folding screen of poem-based Paintings about Gosan nine Valleys" differentiated itself from other poem-based paintings with unique formation and poem-arrangement. The major painte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cluding Kang Sehwang, Jeong Seon, Lee Insang, Kim Hongdo, Lee Inmun, Shin Yunbok transferred famous poems written by Korean scholars, Choi Chiwon, Lee Kubo, Park Eun, Lee Byeongyeon, Kim Myeongwon into paintings. A majority of these poems used in the paintings were written by prior renowned scholars and embody meanings of conventional morality or appreciation of natural beauty. Through these poem-based paintings we can get ideas of how the class system and urban culture during the Joseon dynasty developed and how painters with new perspectives interpreted the social changes at that time. It is interesting that poem-based paintings in the late Joseon period were drawn as thegenre painting style or real view landscape painting which incorporated Joseon's authentic landscapes in ways startlingly different from the abstract or imaginary ones of the Chinese schools. In conclusion, we can see that the unique characteristic of the creator is obtained due to the differentiation of the objects though the poem-based paintings are the similar form which represents each countries poems. This discussion will be the meaningful basis for identifying the artistic uniqueness in spite of the similarity of the artistic form, and the inherent cultural characteristics of each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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汉字源流的动态化图表演绎

陳景普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9호 2018.05 pp.217-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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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가 설계한 예술 형식은 전통적인 인쇄 매체에 한정되어 있다. 이제는 컴 퓨터 기술의 발전을 통해, 디자이너는 더욱 풍부한 예술 표현력의 그래프를 창조할 수 있다. 텔레비전 매체에서도 정보 도표를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디자이 너는 일련의 복잡하고 뚜렷한 동태 도표를 활용해 원래의 복잡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 다. 본문의 제1장은 한자의 조형 방법인 “六书”와 한자의 형체를 나타내는 두 가지 단 서를 통해 문자를 정리하여, 한자 발전의 원류를 파악하는 것이다. 제2장은 한자 원류 의 서술형식이다. 순 문자 설명과 그림을 통해 서술하고 그래프화한 서술을 비교하고 그래프서술의 우위를 확정한다. 제3장은 도표의 발전 역사 및 동향화 추세를 이해한 다. 제4장은 자신의 졸업 설계를 결합하여, 동적인 도표 설계의 절차를 설명하고, 원칙 과 그 장점을 설명한다. 제5장에서는 동적인 도표의 설계를 나타내는 연구 방법으로, 한자의 기원과 동적인 도표의 설계 가치와 사회적 의의를 나타낸다. 작품을 통해 생동 감 있는 그래프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의 논리적 사고 능력과 팀의 합작 의식을 단련할 수 있는 실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한자의 원류라는 주제에 대한 디자인은 한자 문 화의 확산에 대한 사회적 의의가 있다. 대중에게 한자 문화를 인식시킬 수 있으며, 한 자 문화의 우수한 전통을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Information graphic design art form has been limited to the traditional print media, through the development of computer technology, designers can create a dynamic chart a more artistic expression. The television media are also beginning to use the information graphic design information representation. The designer can use a series of simple, clear and dynamic charts to convey the original very complex information. Word - formation of "The Six" and the physical changes of Chinese characters are two clues to collate information, understand the origins of Chinese characters; the second chapter of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Chinese characters described in the form, elaborated through the text, graphics combined with elaborate and chart described were compared to determine the chart described the advantages; chapters chart the history of the development and dynamic trend; Chapter in conjunction with their graduation project of the steps, principles and advantages of the dynamic graphic design; the chapter on research methods of dynamic graphic design, the design value and social significance of the Chinese characters origins dynamic chart. To exercise the people's ability to think logically through the work to draw dynamic graphic design, graphics creation capabilities and the practical value of the sense of teamwork. Also have some social significance, and make the audience aware of Chinese culture, the fine tradition to promote the culture of Chinese characters have a role in fueling the spread of the culture of Chinese characters through the design of the subject of the Chinese characters origins.
信息图表设计的艺术形式一直受限于传统印刷媒介,如今通过电脑技术的发展,设计师可以创造出更富艺术表现力的动态信息图表。电视媒体中也逐渐开始运用信息图表设计进行信息表达。设计师可以运用一系列简单、清晰的动态图表传达原本十分复杂的信息。 本文第一章通过对汉字的造字方法“六书”和汉字的形体变迁两条线索来进行信息整理,了解汉字发展的源流;第二章讲汉字源流的阐述形式,通过纯文字阐述、图文结合阐述和图表化阐述进行比较,确定图表阐述的优势;第三章了解图表的发展历史及动态化趋势;第四章结合自己的毕业设计来阐述动态图表设计的步骤、原则及其优势;第五章阐述动态图表设计的研究方法,汉字源流动态图表的设计价值及社会意义。 通过作品创作得出动态图表设计能锻炼人们的逻辑思维能力、图形创作能力和团队合作意识的实践价值。通过对汉字源流这一主题的设计对汉字文化的传播还具有一定的社会意义,能使受众认识汉字文化,对弘扬汉字文化的优良传统有推波助澜的作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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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ques Matters: Chinese Bronzes in Chang Sŭngŏp’s Paintings of Antiques and Flowers

Lee, Ja Won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9호 2018.05 pp.23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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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소장중인 장승업의 작품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유행했던 중국 골동품 收藏文化가 器皿折枝圖 제작에 미친 영향과 중국 청동기가 지니는 의미에 대한 연구이다. 조선후기 문인 문화를 羨望했던 중인계층은 중국의 골동품을 실제로 수집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런 收藏文化가 유행하던 분위기 속에서 중국 청동기는 祭器에서 玩賞의 대상으로 그 기능이 확장되었다. 장승업은 19세기 말 중국 청동기와 화훼를 주요 소재로 器皿折枝圖라는 회화장르를 개척하였고, 器皿折枝圖의 주요 청동기 소재로 鼎形 향로와 明 宣德 향로를 사용하였다. 이 청동기들은 당시 중인계층의 수장가들이 매우 선호하던 종류의 수장품이었고, 그들의 문화적 세련미를 드러내는 수단으로써 기능하였다. 장승업의 器皿折枝圖는 실제 수장품을 그리거나 변형하여 표현했는데, 이로 인해 중국 古銅器의 실제 收藏에 대한 代用品으로 이용되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중인계층의 중국 청동기에 대한 관심과 수장문화가 당시 회화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장승업의 器皿折枝圖를 통해 알 수 있다.
Chang Sŭngŏp established the distinct genre of paintings featuring Chinese bronze vessels, inkstones, fruit, and auspicious flowers with the support of affluent patrons of the cultural elite. Focusing on the representation of Chinese antiques in Chang Sŭngŏp’s paintings of antiques and flowers in the collection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n New York, this study examines how the trends in appreciating and collecting Chinese antiquities generate a new fashion of presenting such antiquities in late Chosŏn paintings. Chang Sŭngŏp particularly rendered certain types of bronzes, namely Xuande-type censers and ding vessels, in response to the aspirations of the newly-emerging chungin collectors in the nineteenth-century Korea. While Chang Sŭngŏp’s paintings of antiques and flowers functioned as a means to disclose patrons’ cultural sophistication, they most likely served as surrogates for real collec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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