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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14호 (12건)
No

一般論文

1

王羲之에 대한 비평을 통해 본 중국서예의 미학적 지향

장지훈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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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을 막론하고 東晉 시대의 王羲之(321-379)는 서예역사상 典範으로 인식된다. 그는 書聖으로 추앙받으면서 비평의 準據가 되고 있다. 따라서 역대의 왕희지에 대한 인식과 비평은 중국서예사의 핵심을 이룬다. 왕희지에 대한 비평은 대체로 두 가지 측면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왕희지의 서예정신과 창작실천에 대한 추숭적 계승이다. 이는 왕희지를 존숭하는 입장에서 왕희지의 서예정신과 창작요체를 자신들의 서예본령으로 계승하고 계발하려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왕희지의 서예정신과 창작실천에 대한 비판적 계승으로 주로 왕희지의 서예정신과 창작요체에 대한 반성이다. 이는 왕희지의 서예정신과 창작요체를 기반으로 자아의 심미취향과 시대심미에 맞도록 改變하려는 입장이다. 왕희지에 대한 비평을 통하여 중국서예미학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보편미의식을 중시한다. 왕희지의 서예정신과 창작요체를 盡善盡美, 無過不及의 中和美라 평하는 것은 서예사를 비추어볼 때 일정 정도 미의 보편타당성을 담보하고 있다. 보편미의식은 生→熟→生 가운데서도 熟을 충분히 거친 다음의 生의 실현으로써 가능해진다. 둘째, 時中之道의 서예실천과 自得의 창작실현을 중시한다. 왕희지의 時中之道 구현은 왕희지가 살아간 그 시대의 도를 구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서예는 과거의 서예관이나 서예심미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과 시대심미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왕희지의 창작실천은 고대의 서예정신과 창작요체를 집대성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런데 집대성이란 의미는 단순히 기존의 사상이나 서체를 섭렵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것들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體化하고 새로운 사유와 서체를 주체적으로 재창조한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의 서예는 왕희지를 모델로 삼아 서예의 보편미를 확보하는 가운데 끊임없는 時中之道의 서예실천과 自得의 서예정신을 강구했다고 하겠다.
Wang Hsi-Chih in the era of China's Dongjin Dynasty is said to be the leader in the history of Chinese calligraphy. Indeed, he was christened as the saint calligrapher of standard by calligraphy criticism. so he is play a key role in the Chinese calligraphy. The calligraphy criticism of about Wang Hsi-Chih (王羲之) in to the tow categories. For the most part, reflecting the fame of his works the graceful mood and excellence of which drew citation and respect, intended to foster calligraphy mind and practice creation. another assume a critical attitude for stand on the basis the calligraphy mind and practice creation, preference self that change to reflect the spirit fo the age. The calligraphy criticism of about Wang Hsi-Chih(王羲之) in to through the history of Chinese calligraphy. First, most importance universal esthetic stream of consciousness. Wang Hsi-Chih(王羲之)'s calligraphy of mind and key point creation most virtuous and most beautiful(盡善盡美), have no short and nothing excessive(無過不及) aesthetic of neutralization(中和美) make a estimation, about counterlight to the history of calligraphy have a general aesthetic fo consciousness. General aesthetic fo consciousness is realizable be a possible of life(生) , life(生) → ripen(熟) → life(生) enouhg to the through between of ripen(熟). Seconed, the self-satisfaction(自得) of realization of new learning of consider the realization by the time of realize(時中之道) of calligraphy of practice. The time of realize(時中之道) of Wang Hsi-Chih(王羲之) that he make live at the time on the materialization. So this time calligraphy is don't be buried of the passt calligraphy of consciousness and aesthetics of Calligraphy spirit. Realization of new learning of Wang Hsi-Chih(王羲之)compiled Practical ancient history calligraphy of spirit and point of new learning to relevant, anyway compiled Practical signification is not simple, make an advantage of your own and new one of calligraphy style, over and reinvent of calligraphy. Therefore Chinese calligraphy is make model of Wang Hsi-Chih(王羲之) general aesthetic to secure and constantly of the time of realize and the devise to practice of calligraphy, self-satisfaction, calligraphy of spirit.

5,800원

2

天․人의 五行미학

민병삼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2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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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 하며 지구는 23.5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자전한다. 이러한 공전과 자전에 따라 黃道상에 태극모양의 사인웨이브 곡선을 만들고 태양빛이 지구의 적도를 기준으로 남회귀선과 북회귀선을 直射하면서 계절의 변화와 방위의 개념이 생겨났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수․금․화․목․토성의 元氣오행은 지구에 영향을 준다. 지구중심으로 볼 때 지구와 행성간에 어떤 각도로 위치하는가에 따라서 인간이 하늘의 행성에 따르는 길흉의 영향이 다르다. 하늘의 五星의 변화가 인간과 땅에 五臟과 五行山[五星]으로 관련한다. 인체의 오장은 四時와 同調하며 운행한다. 하늘의 오행인 五星과 日月은 인간의 삶의 길흉에 영향을 주고 있는데, 동양에서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28수의 별자리의 움직임으로 관찰하였다. 오행성이 28宿의 어느 곳에서 운행하고 어떤 색으로 변하는가를 天文관측을 통하여 인사의 길흉을 예측하고, 책력을 보정하고 농사에 이용하였다. 서양에서는 태양의 黃道가 지구의 적도와 만나는 춘분점을 0°로 기준하여 30°씩 360°를 12개로 구분하여 천문학적인 하늘의 방위를 관측하는 기준을 삼았다. 황도를 30°로 구분한 12자리를 기준으로 하늘의 五星을 관찰하여 어떤 각도에서 지구와 만나는가에 따라서 人事의 길흉과 삶에 영향을 준다고 예측하였다. 천인의 서로 다른 오행이 같은 氣로서 동조하고 있으면 인간의 생명과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人间の生命活动は空が运行する四时に影响を受け取って同调しており、空の行星五行、四时五行が人间の五脏に影响を与える。四时は、地球の空转と地球が23.5度傾いた状态で自转することが互い调和深く太阳の黄道をS字に运行にすることによって行われます。四时が循环されると、方位と四时五行が生じる。空には四时五行以外行星が発する元气の性情に分类した木火土金水の五星がある。古代中国天文学では、空の五星を观测ハヨソ人间の生活の吉凶と国家の大事に対して豫则した。特に、岁星である木星の运行の振り返り、现在60甲子干支になった册历が作成される前に农事に有用である册历を私用された。従って私達は、一年を岁として使用している。このような空の五星は、四时の运行によって四时五行の木火土金水の性情は、同じ意味で使用されていますが、その实体は別である。つまり、四时五行があり、行星から五行が区別される。 四时が循行ハヨソ作り上げた五行と方位は自然の循环秩序をすぐにキャッチ。しかし、空の五星が意味する木火土金水の实体は五行星である。五行の性情の五星は、その发散する气运が人间万事に影响をかけることになるのだ。つまり、五行イランの実体は違うが、その各各五行の性情が1つの同一の一气で囲むに使用されている。五行の种类は多いが、具体的な五行の实体は、他のものである。空の五行は行星が实体であることができ、太阳と地球が作る四时五行の方位が实体人もいるのだ。 人间エゲソド五行は多样に表现のが、最も重要である脏腑论的である侧面では、肝心脾肺肾の五脏が人间の性情を代表的に表す五行である。人间の体形を五行に区分して話すことができる。人间の声も五行的に分離することができる。人间感じる六感も、すべての五行的に分離することができる。しかし、この様々に表出される人间の五行の根本は五脏なのである。五脏の模样と气がいかにスムーズに循环されることに沿って表示されている。人间に最も本质的であり、重要である五行は五脏が、その实体なのである。人间の五行は五脏が根本である。 タンエソウイ五行は、その土地で育つ植物を分类して話すことができ、动物を分類して言うことができ、山川草木をすべて分类して話すことができる。しかし、土地の最も重要な意味で天地人が互いに交感する主体は、地中に運行している元气なのである。地中の五气が裝露出五行の形状の山と丘陵に表出される。だから地理では、山や土地の模样と气势を振り返り、五气の性情を判断する。これは、山の五星と呼ばれる理由である。

11,400원

3

북송 휘종대의 正聲과 中聲에 관한 연구

정화순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8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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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사에서 서로 상대적 개념을 지닌 正聲과 中聲이 처음으로 언급된 사료는 󰡔고려사󰡕 「악지」이다. 그것에 의하면 정성과 중성이 대두된 배경에는 북송 휘종대의 대성아악(위한진악)이 자리하고 있다. 애초, 대성아악에서의 정성과 중성은 음고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음악 내지는 악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음악학분야에서 논의되어온 대성아악의 정성과 중성은 종경(편종과 편경)의 수 16과 12에 의거함으로써 단지 음역문제로만 조명되었다. 이에 북송 휘종대 대성아악에서의 정성과 중성에 대한 본래적 의미를 상고해 보았다. 연구 결과, 북송 휘종대에는 隨氣用律法을 적용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기본음인 황종의 길이를 9촌으로 삼은 정성과 8촌 7분으로 삼은 중성 등 두 종류의 樂制가 병존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즉 정성과 중성이라는 음고가 서로 다른 양종의 황종율관을 구비하고, 각각의 황종 기본음에 의거하여 서로 다른 두 부류의 樂器群을 제작한 뒤, 祭儀가 행해지는 시기의 節氣에 따라 正氣가 이르는 때에는 정성의 악기를, 中氣가 이르는 때에는 중성의 악기를 사용함으로써 음양의 조화에 대비하였다. 동시에 音域 면에서 상이점이 발견되었는데, 󰡔고려사󰡕 「악지」의 편종과 편경에 종경에 이미 정성 16, 중성 12의 수가 명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성용 횡목[천]과 중성용 횡목[천]이 별도로 구비된 점으로 미루어 정성악은 16율, 중성악은 12율로 음역이 제한되었음이 확인되었다.
It is in Goryeosa ‘Akji’󰡔高麗史󰡕「樂志」 that the relative concepts of Jeongseong正聲 and Joongseong中聲 were mentioned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Korean music. According to it, in the background of the rise of Jeongseoung and Joongseong there was Daeseong court music (Wiseongjinak魏漢津樂) in the Buksong Hwijong era. Originally, Jeongseong and Joongseong in the Daeseong court music were two different kinds of music or musical instrument with different pitch. Nevertheless, Jeongseong and Joongseong that have been discussed in the Daeseong court music have been examined as only a matter of a pitch extent by being dependent upon the numbers, 16 and 12, of Jong and gyeong (pyeonjong and pyeongyeong). So, in order to properly understand Jeongseong and Joongseong that appear in the history of Korean music, this researcher attempted to examine the original meaning of Jeongseong and Joongseong in the Daeseong court music in the Buksong Hwijong era. The research results confirmed that, as a means to apply Sugiyongyoolbeop隨氣用律法 in the Buksong Hwijong era, two kinds of music such as Jeongseong and Joongseong, in which the length of basic sound Hwangjong was 9 chon and 8.7 chon, respectively, coexisted. Equipped with Hwangjongyoolgwan of Jeongseong and Joongseong with two different pitch, two different kinds of the groups of musical instruments were prepared based on the respective Hwangjong basic sound and then they prepared for the harmony of the cosmic dual forces by using the Jeongseong instrument when Jeongi正氣 was reached and the Joongseong instrument when Joongi中氣 was reached, according to the subdivisions of the seasons when the rituals were conducted. Thus, Jeongseong and Joongseong were based on the difference in pitch in the aspects of Yoolgwan, musical instrument, and music, but they were also found to differ in the aspect of pitch extent. In other words, the numbers of Jeongseoung 16 and Joongseong 12 were already specified in Pyeonjong and Pyeongyeong in Goryeosa ‘Akji’, and in view of the fact that Hwaengmok[Cheon] for the use of of Jeongseong and Hwaengmok[Cheon] for the use of Joongseong were separately established, it could be confirmed that the pitch extents of Jeongseong music and Joongseong music were limited to 16 rhythms and 12 rhythms, respectively.

7,500원

4

朝鮮朝 琴銘의 儒家哲學的 修養觀 硏究 -李彦迪과 金馹孫의 琴銘을 中心으로

강유경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12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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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이 琴을 벗으로 삼았다는 것은 단순한 악기로서 그 소리를 감상하거나, 물리적인 현상에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 琴이 가지고 있는 德을 벗 삼아, 仁을 체득하고, 天人合一을 이루는 동반자로써 인식함을 알 수 있다. 금명의 세계에서, 琴자체는 하나의 작은 물건에 지나지 않지만, 이미 소우주로써 우주만물의 이치를 동일하게 갖추고 있다. 그리고 琴이 담고 있는 내재적 기능 즉, 마음의 사욕을 없애고 또한 우주 만물의 본원으로 내재된 덕을 일치시킴으로써, 德音의 소리를 발현시키고자하는 작자의 내성외왕이라고 하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의지를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금명의 세계에서는 대상과 합일하여 덕음을 발현하고자 하며 동시에 내면의 德音을 들음으로써, 보고 듣고 일체화하는 모든 작용이 순환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군자의 본모습이 곧 琴의 본래적 기능이고, 금과 군자가 상호 일체화된 세계, 덕음을 통하여 그것이 발현되며 또다시 그 德音으로써 자기성찰과 마음을 순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학문과 군자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실천적 수양은 思辨的인 수양방법이 아닌 구체적 수양으로 자리매김한 것에 큰 의미가 있으며 예술에 있어서도 대상인식-내재된 덕성의 일체화-德音의 세계라는 순환적 심미사유체제를 이루어 하나의 상징성을 구체화 하였다.
Geum(琴;Korean harp with six strings;a Korean lute) had been called that is true gentleman's[君子] musical instrument, and is known as good friend of scholar since ancient times. Specially, Joseon Dynasty's Confucianists recognized Geum that is companion to accomplish own literary ultimate purpose. By the way, Joseon Dynasty's learning is Neo-Confucianism, and its ultimate purpose is becoming a saint who recovered original human nature. Then, why did Joseon Dynasty's Confucianists become intimate Geum and recognize it that is companion? If examine 󰡔論語󰡕, expression of "Help Ren(仁) with friend.[以友輔仁]" looks. Ren(仁) is the heart of Confucius philosophy, it is the essence. Even if speak that is "Confucius asserted to accomplish Ren(仁) during all life.", saying too much is not. Therefore, that got from experience Ren(仁) is that indeed became saint. Also that become intimate is "Become intimate the virtue.[友也者, 友其德也.]". Therefore, it means that Joseon Dynasty's Confucianists become intimate with Geum is that become intimate with it's virtue which indwell to Geum. So, Confucianists recorded by literature that praise such Geum's virtue and it's action, and engraved on geoungo, usually call this that is Geummyeong[琴銘;Writing that engraved on Korean harp with six strings.]. The main purpose of this treatise is investigating about Confucianists's moral culture study which is expressed to Geummyeong. Geum is small universe, and have the laws of nature already. By the way, the laws of nature is identical my thing or thing of other things. This is similar Geum. Based on the above logic scholars thought that the origin of human and all things is hsing(性-nature), and based on this he thought that the nature of all things is the nature of human. The nature of Geum is the nature of all things and the nature of human at the same time. Therefore the nature here means Tian-de(天德-virtue of nature) existing in all things equally not the nature that nay specific thing has originally. Therefore human and all things should always agree with T'ian-de. Main text to treat in this treatise is the Geummyeong of Kim-ilson(金馹孫, 1464-1498) and Lee-onjeok(李彦迪, 1491-1553) who were Joseon Dynasty's Confucianist. Geummyeong is important data that can illuminate abstract meaning connected with high spiritual view of the world of Geum concretely, and because connote actual philosophical meaning in educational effect as well as art at future generations, can speak that the meaning and sense also are very large.

8,100원

5

金時習 詩 『四遊錄』의 미의식 - 遊 개념을 중심으로

김종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159-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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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은 15세기 문인이자 사상가로서 약 40여년 간의 방랑을 시로 표출하였다. 그것은 시를 통해 인간의 사상과 감정 그리고 유․무형의 형이상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표현한 시인이었음을 보여준다. 매월당의 예술은 그의 삶이자 곧 정신이다. 사유체계 그 근저에 미학적 구조가 놓여있으며 이는 다시 예술적 양식으로 구현된다. 이는 김시습에게 있어서 미학적인 것과 인식론적인 것은 분리할 수 없는 일체를 이루고 있는 개념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김시습의 미학관은 장자의 심미관에 근접되어 있다. 장자의 형이상학적 실재탐구는 미증유의 현실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사유되고 있으며 김시습 또한 현실적 고통의 문제가 物과 我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임을 직시한다. 다시 말해 방랑을 통해 자연을 관조했으며 그 속에 자신의 현실을 은유함으로써 현실을 긍정하는 사유세계를 펼친 것이다. 그 결과 비록 불합리한 현실일지라도 비판과 분별로 일관하지 않는 현실대긍정의 인식체계를 형성했다. 그 바탕위에 표현된 문학은 ‘遊’의 미학사상으로 그 결실을 맺는다. 김시습이 문학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궁극적 세계는 초월적 세계인 遊의 경지이다. 김시습에게 있어 遊는 바로 깨달음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김시습이 추구했던 遊는 생동감 있는 것으로 역동적이며 힘이 있다. 삶의 역동성은 대범성으로 설명되며 그것은 宕으로 정립될 수 있다. 이러한 역동성은 시적 대상에 대한 무한한 상상으로 이어지며 이는 낭만적 풍조인 風을 통해 표출된다. 그런 까닭으로 宕 - 風은 遊의 세계로 진입하는 핵심적인 개념이자 미의 구현방법이다. 김시습에게 문학이란 기존의 내면적 외면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삶의 진실을 표현하게 하는 통로이다. 비록 불우하고 고독한 삶일지라도 그가 걸어가는 길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길은 길을 낳고 그 길은 장구한 세월 속에 역사를 만들어간다. 따라서 김시습의 길은 고독함으로 인해 오히려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길에 형성된 미학사상으로서 遊는 김시습만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문예미학 전반에 흐르는 예술정신일 것이다.
Kim, Si-seup known by the pen name of Maewoldang who was a writer and profound thinker of the 15th century put his about 40 years' wandering life into words. It shows that he is a poet who expresses almost everything from man's thoughts and feelings to tangible and intangible metaphysics through the poetry. Maewoldang's art is the expression of his life and mind. An aesthetic structure forms the basis of his thought system, which is embodied in his works of art. Kim, Si-seup's view of aesthetics is close to that of Chuang Tzu. As Chuang Tzu's metaphysical quest of realities is about the solution of the harsh pain of the realities that has never been experienced, so Kim Si-seup faces up to the fact that the pain of the realities comes from the relations between the subjective and the objective. In other words, he meditates on the nature through wandering life, and shows his thoughts in a positive view of life by expressing his realities metaphorically in his poems. As a result, despite the unreasonable realities, he makes up a system of thoughts that does not criticize and reject but fully accept the realities. His literature which is based on the system of thoughts bears fruit in aesthetics of ‘eudaimonia as the absolute spiritual freedom (遊)’. The ultimate world that Kim, Si-seup seeks for in his literature is the transcendental state of freedom and ease (遊). This transcendentalism (遊) is just the symbol of his spiritual awakening. At the same time, his transcendentalism (遊) is full of life, energetic and powerful. The energy of life can be explained by generosity, which is redefined as liberal-mindedness (宕). This energy extends to unlimited imagination of poetic objects, which is again expressed in a romantic tinge like enjoying natural beauty in the open air (風). So, liberal-mindedness (宕) and enjoying natural beauty in the open air (風) are the key concepts to enter the world of freedom and ease(遊), and the ways of embodying aestheticism. The literature, for him, is a way of expressing the truth of life without any restriction by the established internal or external rules. Even though he lived in obscurity and solitude all his life, the way he lived shows a new passage. The passage leads to another passage, making a history in a long time. Accordingly, the way that Kim, Si-seup followed in solitude obtained life because of the solitude. Freedom and ease (遊) as an aesthetic idea found in the way that he followed is not only his own thought, but the artistic spirit that covers the whole world of Korean literary aesthetics.

8,500원

6

謙齋 鄭敾 繪畵의 周易美學的 理解

김은경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19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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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주역을 통하여 겸재 정선의 미학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진경시대 서막을 알리며 나아가 그 결실을 영글게 만든 겸재로부터 바야흐로 조선은 중국회화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겸재는 周易에 정통한 인물이었는데, 이를 회화에 적극 투영시키고 있었다. 겸재의 작가정신을 주역으로부터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겸재 정선의 작품 곳곳에는 조선 성리학의 이념과 함께 주역의 원리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데, 그것이 곧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의 대표작을 살펴보면, 1. 金剛全圖와 陰陽․五行, 太極사상의 원리, 2. 仁王霽色圖와 河圖洛書, 生生의 원리, 3. 淸風溪와 陰陽對待, 中和의 원리, 4. 洛山寺와 虛實相生, 變易의 원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겸재만의 방식 즉 주역을 이용한 회화창작방식이라는 새로움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겸재는 우주만물의 생생한 미와 주역의 64괘에 내재된 각각의 의미가 전체의 조화로운 체계를 이루어 整體性, 變易性, 陰陽互補, 화합과 균형, 象意合一및 象數合一의 원칙을 철저하게 그의 작품 속에서 재현시키고 있다. 그것은 周易이 천명의 자각이라는 근원적인 존재 차원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단순히 목표로 제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의식에 의해서다. 즉, 천명의 자각을 통해 천지화육에 동참하는 인간의 이상을 현실적 삶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인식의 발로인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conscious of independence. I make investigation into Gyumjae Jungsun(1676-1759)′s Paintings for understanding traditional culture correctly. Korea painting could get out of China in Jingeong age which was active Gyumjae Jungsun. He was aware of The Book of Changes and tried to paint the harmony and contrast of lunar and solar. So He was famous for China. He depicted independence of Korea as painting with the idea of Joseon Sung Confucianism and the principle of The Book of Changes. I will tell you the principle of The Book of Changes, which is connected with Gyumjae Jungsun′s most important work. 1. Mt. Geumgangsan and Yin-Yang and the Five, principle of Yin-Yang symbol (Taegeuk), 2. Clearing after the rain at Mt. Inwangsan and rough sketch and adjoin writing, principle of vivid, 3. Cheongpunggye Valley and Yin-Yang wait and reply, principle of harmony, 4. Naksansa Temple and weakness and strength each other growth, principle of Changes of come and go, This is the way we can understand Korea history. The Book of Changes and Gyumjae Jungsun′s aesthetics have something in common with harmony. The Book of Changes had completed with the whole harmony which was made by each 64 divination sigh. Gyumjae Jungsun′s paintings was painted with appling The Book of Changes. So there were independence, alteration of come and go, balance of yin and yang, harmony and balance, each other meaning union, each other number union in his painting. The Book of Changes let human present why human is. It is called consciousness of fate. In addition, The Book of Changes is showed an ideal of human who participate in heaven and earth grow up with consciousness of fate. It will effect modern people to Gyumjae Jungsun′s unique and independence art based on The Book of Changes and philosophy. Studying Gyumjae Jungsun′s the True-view Landscape including aesthetics of The Book of Changes. I try to find originality and independence of Korean culture. I guess that modern people forget why human is. So I hope for people to conscious the independence of Korean culture. I wish that the method of finding identity of Korean culture is caused by Gyumjae Jungsun′s aesthetics of The Book of Changes.

6,700원

7

일본의 문인화개념과 요사부손(与謝蕪村)의 예술세계

신나경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227-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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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화란 본래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용어로서, 고도의 유교적 교양을 지닌 고급관료, 즉 문인이 취미로서 그린 회화를 말한다. 그러나 같은 봉건사회라고 해도 중국의 봉건사회와 일본의 봉건사회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데, 중국의 지배계층이 사대부였던 것에 반하여, 일본의 지배계층은 장군을 정점으로 하는 무사였다. 따라서 엄격한 잣대로 보면 중국에서 말하는 문인이 일본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에 있어서 문인들은 위정자였으며, 무엇보다도 지식계급이었고 대부분이 유교적 교양을 몸에 지닌 사람들로서 이상주의와 그에 따르는 좌절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노장사상에 경도되어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엄밀한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문인정신의 전통은 일본에 있어서도 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하이가(俳画)의 창시자이기도 한 요사부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를 통하여 일본 문인의 삶과 예술의 일면을 고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사부손 역시 일본의 다른 문인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중국산수화의 한 양식인 남종화의 흡수에 열중했으나, 점차로 일본의 고전적 회화 스타일도 취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킨 화가이다. 그는 하이쿠의 정취를 회화에 끌어넣어 전통적인 이미지와 새로운 현실감을 잘 융화시켜, 격조를 떨어트리지 않으면서 실제 삶의 리얼리티를 잘 표현하고 있다.
From the early eighteenth century on, literati in Japan followed the tenets of the Chinese literary men, producing paintings that were simplified and personally expressive or abstracted, sometimes to the point of appearing amateurish. Therefore the term "Lterati Painting" is originated from China, and it was mostly drawn by high ranking officials, the gentry who mastered advanced Confucian culture. Literati painting is also called Nanga (Southern) painting in Japan, which refers to the theories of the Chinese painter Dong Qi Chang (1555-1636). Dong divided Chinese artists of the past into Southern and Northern schools based on the character of Southern or Northern school Chan (禪) Buddhism. These two divisions came to mirror the methods of the scholar-amateur artist, who searched for profundity through direct self-expression, versus the professional artist, who strove to please a patron. But the Japanese feudal society was very much different from the feudal society in China and Korea, and the biggest difference can be found in the fact that the Chinese ruling class was Shi-da-fu (士大夫) whereas that the Japanese elite class was warriors centering around Shogun. Accordingly, strictly speaking, there was no literary man like Shi-da-fu of China in Japan, and Japanese literary men mostly meant those who adored Chinese literature. However, given that literary men in China were mostly intellectuals and that they experienced spiritual confusion while devoting themselves to Philosophical Taoism, some sort of literary spirit seemed to prevail in Japan as well. In this connection, this study is focused on examining Japanese literary men’s life and arts by taking a close look at Yosa Buson, the originator of Haiga(俳畵) who greatly contribute to establishing the Japanese literati painting. Like other literary painters in Japan, Yosa Buson was also immersed in studying Chinese paintings of the Southern School, a type of Chinese landscape painting, at first, but he gradually accepted Japanese classical painting styles broadening his artistic horizon. His paintings well expressed the reality of life without sacrificing refinement based on combination of traditional image and a sense of realism by drawing artistic effect of Haiku(俳句) in his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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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江 蔡龍臣의‘三國志演義圖’에 나타난 표현 정신과 조형적 특징 연구

변종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259-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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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신의 ‘삼국지연의도’는 지금까지 일부 제한적 시각에 머물렀던 채용신의 평가에 대한 새로운 미술사적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성과이다. 무엇보다 삼국지연의도는 대한제국기 전후 절박한 시대적 상황에서 제작되었다는 점과 채용신의 초상화가 지닌 조형적 특징을 새로운 측면에서 재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이에 본 연구는 크게 삼국지연의도에 내재된 표현정신과 조형적 특징의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하였다. 첫 번째로 채용신이 활동했던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삼국지연의도에 내재된 표현 정신은 ‘충의정신’, ‘민족정신’, ‘관우신앙’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도가 제작된 1912년을 기준으로 보면 당시 역사적 배경은 물론 삼국지연의도의 제작동기와 목적을 추론할 수 있다. 특히 삼국지연의도 중 <單刀赴肅>에 적은 ‘壬子孟春上澣從二品前定山郡守 臣蔡龍臣寫上”墨書는 삼국지연의도와 관련한 제작의도를 추론할 수 있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또한 1910-20년대 초는 채용신의 민족의식이 가장 고취되었던 시기였던 만큼 그가 남긴 많은 우국지사의 초상작품들과 비교하면 삼국지연의도에 나타난 민족정신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토대로 볼 때 채용신의 삼국지연의도에 내재된 표현정신은 단순한 감상용이나 개인적 관심분야를 넘어 충의정신과 민족정신을 담아 국가적 재건을 염원하는 구국의지를 표현한 그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두 번째는 三國志演義圖에 나타난 조형적 특징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이다. 총 8폭으로 구성된 채용신의 三國志演義圖는 그림의 성격상 각 장면마다 주제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주제의 표현을 위해 채용신은 크기, 형태, 구도, 색채, 기법, 묘사 등에서 기존의 三國志演義圖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개별성과 독자성을 표출했다. 채용신의 삼국지연의도에 나타난 다양한 조형적 특징은 ‘궁화형식’, ‘복합시점․복합구성’, ‘대조법’, ‘서구적 기법 변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채용신의 三國志演義圖는 8폭에 편액이 그려져 있으며, 채색화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궁화형식이다. 보기 드물게 큰 화폭 역시 삼국지연의도가 궁화형식임을 뒷받침하는 요소이다. 또한, 삼국지연의도에 표현된 조형적 특징은 여러 시점과 기법을 한데 모아 조합했다는 점에서 복합시점 또는 복합구성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도에 나타난 조형적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조법이다. 대조법은 삼국지연의도에서 작품의 내용적 전달과 표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한 대표적 방법이다. <赤璧大戰>은 삼국지연의도 중 대조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채용신은 초상화제작에서 유지해오던 전통적 특징과 당시 신문물과 신문화의 물결 속에서 수용했던 여러 서구적 기법을 변용하여 삼국지연의도의 조형적 완성도를 높였다. 결론적으로 채용신의 三國志演義圖는 급변하는 시대위기 상황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한국적 화풍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던 조선말 한 화가의 끊임없는 탐구와 열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This thesis,「A study of formative characteristics and spirit of expression in Chae Yong-shin's 'Samgukji Yeonuido'」is about Chae's Paintings 'Samgukji Yeonuido(Pictures inspired by The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which is found recently. The finding of Chae's Paintings 'Samgukji Yeonuido' is the great discovery which changes the evaluation of Chae's works, from underestimated to get his value properly in art history. Most of all, the 'Samgukji Yeonuido' is very meaningful and valuable in two aspects which are made in very critical situation historically, such as during the period of the end of The Greanter Korean Empire and are reevaluated it's value of the characteristics in new aspect. Because of that, this study took a look in two aspects. At first, I believed the spirit of his works melting in spirit of expression is three different spirit such as the loyal spirit, the national spirit, Cult of Guan Yu. I tried to understand his work underlining spirit which is not only his personal interest and emotion, but also the faith of reconstruction of his country containing the national spirit and the loyal spirit. I could infer his purpose and intention to make 'Samgukji Yeonuido' by examining historical background in 1912 and personal relationship with Chae and the last Emperor Gojong. Secondarily, I studied all aspects of characteristics shown in 'Samgukji Yeonuido'. Each of all 8 pictures have there own subjects. He used unique technique in size, form, composition, color, technique, description and it gave unique and differentiation from ordinary 'Samgukji Yeonuido''. Since I analyzed his characteristics of 'Samgukji Yeonuido' in ‘forms of the Royal Court’, ‘complex viewpoint. complex composition', 'counterpoint', 'change the West technique'. Specially, I tried to reevaluate the meaning and the value of his work in art history by analysing 'A great war of Red Cliff', which showed his unique drawing atmosphere most, with his the other works. On the conclusio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he on the way of processing overcoming the limitation of former Chae's studies and reevaluation of his work properly in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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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統 建築 空間에서의 非物質적 特性에 관한 硏究 -朝鮮時代 傳統 建築 空間을 中心으로

이준호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30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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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상과 가치를 지배했던 과학적 방법과 지식, 물질적인 진보에 대한 신념은 20세기의 과학적 세계관이 絶對的 개념에서 相對的 개념으로 전이되면서 절대적인 시․공간의 개념은 사라지고, 정신적이고 직관적인 패러다임으로서 기존의 二元論적인 사유체계에서 벗어나 一元論적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80년대 이후의 현대 건축 공간은 混成的 경향과 더불어 재료의 표현이나 공간의 기능, 수용된 프로그램을 재해석하여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패러다임은 非物質性으로 해석된다. 한국 전통 건축은 儒․佛․道․民間信仰 등의 다양한 思惟體系를 기반으로 일원론적이며 관념적인 형이상학적 철학을 건축에 반영하였기 때문에 현대의 비물질적 특성과 많은 부분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한국 전통 건축 공간을 분석하였다. 그 특성은 첫째, 한국 전통 건축 공간은 하나로 규정되어지지 않은 연속된 공간체계로, 각 공간들은 여러 개의 경계에 의해 끊임없이 분리되면서도 부분과 전체의 다양한 상호 결합의 방법으로 유기적인 공간 구성 체계 속에서의 연속성을 이루고 있다. 또한 연속성 및 중첩에 의하여 공간의 경계는 사라지고 다양한 공간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러한 非境界的 模湖性으로 비물질화를 추구하고 있다. 둘째, 한국 전통 건축 공간은 개구부의 개폐여부에 따라 감싸여진 경계와 시각적으로 한정된 공간의 경계 사이를 넘어 공간의 넓이뿐만 아니라 시각적 전망까지 아우르는 무한경계의 인식을 유추해 낸다. 그러므로 무한경계는 비어 있지만 시각적 틀을 구성하는 중간 영역의 투명성을 가지며 공간과 외부환경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可變的 擴張性으로 비물질화를 추구하고 있다. 셋째, 한국 전통 건축 공간은 공간과 사용자의 끊임없는 시각적 인지작용으로 끊임없이 變化․生成․消滅을 통한 視覺的 相互作用性을 통해 비물질화를 추구하고 있다. 비물질적 특성을 통해 한국 전통 건축공간을 분석한 결과 구축적이며 고정적인 외형에 반해 내부는 탈경계적 모호성, 가변적 확장성, 시각적 상호작용성의 특성을 가지며 항시 변화무상하고 유동적 질리지 않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In the Western philosophy, science and technology based on the rationalistic thinking of Ren Descartes built up a mechanistic view of the world, and this formed identity philosophy that emphasizes identity itself. This identity philosophy, however, caused the loss of humanity, and discussions regarding post-mechanistic natural philosophy for getting over this problem have continued to be performed. New science, such as the "theory of relativity" and the "quantum theory" in the early 20st century, created distrust on the mechanistic and dualistic view of the world of Descartes and Newton. As the features of this new science cannot be explained by the existing Western philosophy but can be explained by the thinking system immanent in the Oriental traditional thought, many scientists and philosophers are concentrating their interests on the Oriental philosophy. In addition, some have been making efforts to find solutions needed for a new paradigm from the thinking system of the Orient. From old times, the traditional architectural space already planned nonphysical, idealistic and unrealistic potentiality to architectural space. This is because monistic and metaphysical philosophy was reflected in architecture based on various thinking systems, including Confucianism, Buddhism, Taoism and folk faith, which are a philosophical basis for intellectuals of the times who planned the traditional architecture. On the contrary to the reductive and mechanistic idea of the West, the Korean traditional architectural space connotes the "nonphysical features" as an expression of mental idea based on integral and organic thought. the framework of case studies for understanding the correlation of the immaterial features in the traditional and digital architectures was analyzed by the aforementioned features, and the correlation was grasped centering around the characteristics appearing with mutual overlapping.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ly, it can be seen that the immaterial features exhibited in the digital architectural space and the traditional architectural one are not just interconnected with specific features, but they are correlated to all immaterial features. Secondly, what is displayed commonly in the traditional and digital architectural space is uncertain and obscure space, mutually organic and temporary mobile space. The digital architecture sublating what Deleuze and Guattari refer "the body without fully-packed organs" sublates continued creation and the space actively accommodating the outside with opening but not being fixed. On the other hand, the traditional architectural space is based on inactive natural and nature-friendly thought, does not differentiate humans, architecture and nature, but continuously creates deterritorialization and reterritorialization by flexibly accommodating the situation of interrelation. Thirdly, as the "AlloBio" asserted by Marcos Novak, the digital architectural space shows a movement of combining breathing by seeking organic mobility like living organism. In the traditional architectural space, however, humans, architect and nature are not separately, but they were already recognized as mutually supplementing architectural space. Along with the development of technology corresponding to the times, only the methods of expression by materials and effects are different, but we can understand that the perception of space as a fundamental living organism is the same. Fourthly, the architecture flowing like condensed and densely-concentrated liquid, which is referred in the digital architecture, refers to the dense-concentration of the space full of energy, not nothingness, through Taegeuk's unpreparedness, in the traditional architectural one. It could be understood, therefore, that the digital architectural space and traditional architectural one are different in forms and expression styles of space due to the technology development of the times, but the immaterial features shown in each architectural space have their correlation. In this respect, this study intends to have its significance as a leading study that not only seeks a method for overcoming the limitation of digital architectural space from the traditional one but also finds an independent connection ring that can go beyond the limitation of the digital archite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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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역사생태도시 조성을 위한 지역특성화 방안 연구 -도시경관 색채를 중심으로

이상은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327-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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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증대됨에 따라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생태도시(Eco-city)의 조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경관은 그 마을의 이미지가 한눈에 비치는 것이다.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조성하기 위한 경관 조례에는 조망권, 건물의 높이, 외관, 옥외 광고물, 지붕색등의 규제가 있다. 도시 경관 중에서도 우리 시각의 80%를 차지하고 조형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도시경관 색채가 그 도시의 이미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보기 좋은 건물이라도 색채 조합이 맞지 않으면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충주시의 특색있는 역사 생태도시 특성화 방안은 도시 경관 색채에 주안점을 두어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충주시를 아름답고 특색있는 역사 생태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국내외 생태도시 실태파악과 충주시의 역사적, 문화적 문헌 조사와 경관 색채조사, 도시경관에 대한 주민 의식 조사를 통해 충주시의 환경색채 개선의 방향 설정과 특성화 방향을 제시하였다. 충주시를 아름다운 역사생태도시로 조성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서의 문헌조사 결과는 북부권과 중심권은 중원 문화의 중심지로 전통적인 이미지의 역사 생태도시 이미지, 서부권과 남부권은 자연 체험학습, 레저 등의 자연 친화적인 생태도시 이미지로 구축되었다. 충주시의 이미지별 생태지역에 따른 경관색채 조사를 한 결과 곳곳의 지붕색이 아름다운 경관을 헤치는 경우가 많았고, 무질서한 간판색이 도시 경관을 헤치는 주범임을 알 수 있었다. 문헌조사와 충주시민의 의식 조사 결과에서 충주시를 가장 대표하는 곳이자 지역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곳은 탄금대와 호암지 부근의 북부권이고 대표적인 축제는 세계 무술 축제로 나타났다. 중원문화의 중심지이자 세계무술 축제가 열리는 탄금대와 호암지 부근의 경관 색채를 조사한 결과 색상이 7R, 명도3-6, 채도8-14인 고채도의 주황색 지붕색과 색상이 7B, 명도5, 채도12인 파랑색 지붕이 전통적인 이미지의 경관을 헤치고 있었다. 전통적인 이미지의 도시 경관을 가장 많이 헤치는 지붕색을 주변 자연 환경과 어울리도록 전통적이고 안정된 분위기의 색상과 톤을 고려하여 색상이 2.5YR-10YR, 명도2-5, 채도 2-4의 지붕색으로 제시하였다. 이상과 같이 충주시의 특색있는 역사 생태도시 특성화 방안은 도시 경관 색채에 주안점을 두어 역사와 전통적인 이미지의 도시경관 만들기 사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As the recognition on seriousness of environmental problem is grown recently, the much interest is being given to forming eco-city that is 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Even among them, the landscape is what the image of its village is illuminated at a glance. There are regulations pertinent to prospect right, height in building, external appearance, outdoor advertising matter, and roof color in the rules for landscape. However, As color possesses 80% of our sight and holds the largest parts in modeling, the image of color is what is the most outstanding than anything in the landscape of the city. When the combination of colors is not matched even if being a building so good for being seen, we come to knit our brows. A plan for specialization of the historically eco-city, which is characteristic in Chungju city, needs to be researched with the focus on color of urban landscape, by considering this point. This study grasped the actual condition for the eco-cities at home and abroad in order to develop Chungju city into characteristically historical eco-city, and suggested the establishment in direction and the direction in specialization for improving environmental color in Chungju city through the survey of historical and cultural literatures in Chungju city, the survey of color in landscape, and the survey of residents' consciousness on urban landscape. As a result of literature survey as basic data for forming Chungju city as beautifully historical eco-city, the northern bloc and the central bloc were implemented as the historical eco-city image in the traditional image as the central site of the mid culture. The western bloc and the southern bloc were implemented the nature-friendly eco-city image such as natural-experience learning and leisure. As a result of surveying the scenic color according to ecological region by image in Chungju city, there were many cases that the roof color in several places spoils the beautiful landscape. The disordered signboard color could be known to be principal offender of ruining the urban landscape. In the results of the survey on literature and the survey on consciousness of Chungju citizens, it was indicated to be the northern bloc around Tangeumdae and Hoamji as a place where is the most representative place in Chungju city and where shows the best regional characteristics, and to be the world martial-art festival as the representative festival. As a result of surveying the color of landscape around Tangeumdae(Chungbuk monument Number 4) and Hoamji where are the central places of the mid culture and where the world martial-art festival is opened, the orange roof color in high chroma with color in 7R, brightness in 3-6, and chroma in 8-14, and the blue roof with color in 7B, brightness in 5 and chroma in 12 were spoiling the landscape of traditional image. It suggested the roof color with color in 2.5YR-10YR, brightness in 2-5, and chroma in 2-4 by considering color and tone in traditional and stabilized atmosphere so that the roof color, which spoils the most the urban landscape in traditional image, can be harmonized with the natural environment around. As the above, regarding a plan for specialization of historically eco-city that is characteristic in Chungju city, a project of making urban landscape in historical and traditional image will need to be preferentially made with the focus on color of urban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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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外論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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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古代 樂律學 概述

陈应时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35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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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의 악률은 일찍이 “音律”이라 일컬었고, 그 뒤에도 “鐘律”ㆍ“律呂”ㆍ“樂典”ㆍ“聲律” 등 기본적인 의미가 상통하는 호칭이 있었다. 그 이후에 또다시 樂學과 律學이라는 학과 명칭이 출현하였다. 현대사회로 진입한 뒤에 樂律學이라는 명칭이 출현을 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학과 성질의 정확한 위치, 학과 내용의 분류에 대하여 진일보된 연구 토론을 요구하게 되었다.
中国古代的“乐律”,最早称“音律”,其后亦有“钟律”、“律吕”、“乐典”、“声律”等基本意义相通的称谓。之后又出现了“乐学”、“律学”的学科名称。进入现代社后又出现了“乐律学”的名称,这就需要对这一学科性质的定位、学科内容的分类作进一步的探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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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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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東洋藝術學會 彙報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4호 2009.11 pp.377-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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