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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34호 (14건)
No
1

<散氏盤> 銘文의 書藝美學的 特徵

강순남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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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西周 말기 금문인 <散氏盤>에 담긴 善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고, 아울러 명문의 書體를 도가 미학적 차원에서 고찰한 논문이다. <散氏盤>은 西周 말 지방제후간의 토지거래를 기록해 놓은 명문으로, 측나라가 산나라를 침략하여 빼앗은 토지를 산나라에게 돌려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토지를 돌려주는 과정에서 측나라는 어긋남과 변고가 있으면 벌금을 낼 것이며, 또 그러한 사실을 알려 더 이상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散氏盤> 명문 속에는 善, 毋自欺 仁, 禮의 윤리사상이 내재되어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애타적 윤리사상을 볼 수 있다. 반면 草篆의 선구가 되고 서예가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散氏盤> 명문의 書體는 이지러지고 모자란 듯 하고 무뚝뚝하며 소탈하고 꾸밈이 없다. 속된 느낌이 전혀 없으며 천진난만한 소박함과 진실함이 <散氏盤> 서체의 생명력이다. 이런 점에서 <散氏盤>의 서체에는 道家미학이 지향하는 미의식이 담겨 있다. 이처럼 自然而然한 <散氏盤>은 현대의 작가들에게 창작영역의 많은 자료를 제공하며 오늘날 서예를 연구함에 있어서 많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This study is for the purpose of understanding the good in SanSsiBan, a form of Keummoon, bronze character presented in the late Western Zhou dynasty as well as of studying the characters in terms of Taoist aesthetics. SanSsiBan is an inscription about a transaction of property between feudal lords returning a real estate to its original owner of San state, a feudal state land acquired from San by Cheuk state trough invasion. During the process of returning the land, Cheuk stated that it would do its best to prevent any variation or accident and to inform if anything happened with compensation for damages. So, we can find the ethical and altruistic ideas such as the good, no self-deceit, humanity and courtesy in SanSsiBan taking care of others. On the other hand, the character in SanSsiBan inscription as representative example of ChoJeon (草篆, a calligraphic type) and beloved by traditional calligraphers is so simple and unsophisticated. The naive sincerity without any secularity is the core of characters in SanSsiBan. In this sense, we can discover Taoist aesthetics in the SanSsiBan. As presented above, SanSsiBan can be understood that it provides today’s modern artists with a lot of ideas in various creative areas as well as has its artistic values in research of traditional calligraphy.

6,000원

2

조선후기 여성인물화에서 본 머리 형태의 변화 연구

권귀민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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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회화사에서 여성인물화가 집중적으로 많이 출현하는 시기는 조선후기로, 당시 사회의 제도적인 규범이나 관습 및 신분계급 등의 변화가 잘 반영되어 있으며, 표현기법상에 있어서도 당시의 문화양식 · 복식사 · 사상 · 미감 · 화풍 등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형적인 구분으로는 풍속화와 미인도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는 시대적인 환경과 표현방법에 따라 다양한 개성과 독특한 조형적 특색을 지니고 있어서 여성인물화에서의 표현기법 연구는 회화사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여성인물화의 표현기법을 세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일환으로 머리 형태를 중심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머리를 꾸미는 형식은 당시 여성들의 문화수준과 미의식 · 사회적 제도 등이 반영되어 있어서,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방향에 의의를 두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사람들의 문화의식이 성장하고 복식면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면서 머리 형태에서도 변모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특히 여성인물화에서 표현된 머리 형태는 당시의 제도적인 규제나 혼인여부 · 신분제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띠며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회적 배경은 구조적 · 규범적 한계에 부딪힌 여성들의 미적 욕구를 일으키게 하여 양산된 가체 · 차액 · 장옷 · 쓰개치마 · 댕기머리 · 쪽머리 · 둘레머리 · 머릿수건 · 트레머리 전모 등의 머리형태가 그림에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이 여성인물화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머리 형태를 풍속화와 미인도를 통하여 고찰함으로서 그 형태적 변화와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며, 이 머리형태의 표현기법이 당시의 제도적 ·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특징 · 당시 여성들의 미의식 등이 반영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It is the era of the Joseon Dynasty that focused on female portraits in history of Korean paintings. Social norms, conventions, and caste are well reflected in those days and even in terms of expression, there are a cultural style · history of costume · ideology · sense of beauty · style of painting. In the case of type classification, it can be divided into a genre painting and portrait of a Beauty, and according to the environment of the times and way of expression, it has a variety of personality traits and unique formative characteristics , so the study on representation technique in female portraits has a significant meaning in history of painting. However, studies on these are still incomplete. Therefore, in this study, we should look into the shape of the hairstyles as part of a detailed understanding of the representation technique of female portraits. A pattern of decorating hair has a meaning to the direction of this study in terms of having value as historical records because it reflects cultural level, asthetic consciousness and social system of woman at that time. In the late Joseon dynasty, hair style changed as people's cultural consciousness grows and clothing style changes. Especially, the hair style showed in female portraits was made with very close relation to the institutional regulation or marital status · caste, and these social background resulted the aesthetic desire of woman who has a structural · standard limit, so hair style such as Ga-Che, Cha-Aek, long hood, head-dress, Daenggi hair, chignon, Dullae hair, head kerchief, chignon Jeon-Mo were espressed in various way in paintings. In this study, we would like to look at the morphological change and characteristic of various hair style in female portraits through genre painting and portrait of a Beauty, and it would be possible to confirm that the representation tecnique of this hair style reflected the systematic, social and cultural characteristics of the time, and the aesthetic consciousness of women at that time.

7,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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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思想이 조선후기 寫意畵에 끼친 심미경지 연구

김도영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5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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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약 1700~1850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시대였다. 또한, 새로운 예술관과 다양한 화풍·화법의 전개로 한국회화사상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남겼다. 특히 신분제의 동요와 변화는 문인들의 행동방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유가가 지향하는 삼강오륜에 바탕한 교화와 인격도야에 치우친 예술만으로는 변화된 조선 후기 사회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이런 시점에서 장자의 비판정신과 변화와 부정의 논리는 진보적 사상가들에 의해 포착되어서 체제를 비판하고 도덕의 진정성을 반성하는 기제로 사용되었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청초하기 위한 문예적 모색의 방편으로 『莊子』의 사유는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寫意畵는 묘사 대상의 생긴 모습을 작가의 의도에 느낌을 강조하여 그린 그림으로써 작가의 정신세계, 즉 “神似”를 중시하는 문인사대부의 회화이다. 조선후기 사의화는 玄化無言하며 神의 공교함을 운용하며, 虛靜之心의 자유분방한 해방정신을 遊로 형상화한 장자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姜世晃, 沈師正, 李麟祥, 金弘道, 崔北, 趙熙龍 등은 장자의 인식론을 수용하여 새로운 사상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작품 속에 구현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사의화의 새로운 방안으로 『莊子』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의 경지를 구가하거나 세속적 가치에 대한 회의를 표출하였고, 성리학적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세계와 그에 따른 미의식을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이처럼 장자사상이 조선후기 사의화에 끼친 심미경지이자 심미풍격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되어진다. 첫째, 技進乎道의 大巧美이다. 장자가 부정하는 것은 세속적인 미와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는데 뜻을 둔 ‘작은 기교(小巧)’이다. 그렇지만 만일 세속적인 미를 부정하면 ‘大美’를 파악할 수 있고, 세속적인 감관의 쾌락을 초월하면 ‘大樂’을 깨달을 수 있으며, 천지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大巧’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 趙熙龍의 <紅梅圖 對聯>과 金弘道의 <老梅圖>는 자연본성인 道와 수예의 技를 합쳐 최고의 예술경지를 이루어 새로운 매화의 화경을 이루어내었으니, 이는 大巧가 道와 서로 합치하여 일종의 정신 경계에 도달한 技進乎道의 大巧美이다. 둘째, 以虛用實의 簡逸美이다. 筆簡形具를 이룬 획기적인 표현방법으로 虛(여백의 無畵부분)로써 實(묵색의 有畵부분)의 形迹을 드러낸 “以虛用實”의 작법인 여백경영을 들 수 있다. 우주의 근원을 무에 있다고 보고, 미의 근원 역시 무에 있다고 본다면 인위적으로 수식하지 않은 상태의 무위와 연관해서 도를 표현하는 방법이 여백(虛)으로 설명되어진다. 그리고 實은 시각적으로 드러난 먹빛의 선과 면이다. 金弘道의 <舟上觀梅圖>와 李麟祥의 <長白山圖> 등의 그림에는 여백(虛)만큼 기가 배어있다. 이러한 여백과 필선의 파격적인 簡逸함 속에 물상의 ‘眞’을 온전히 발현했다. 특히 田琦의 <溪山苞茂圖>는 색채가 배제된 수묵에 의한 簡遠한 표현형상과 渴筆의 솔직한 필묵 효과에 의해 전달된 자연생명의 충만함이 강조되었다. 셋째, 逍遙自適의 奇怪美이다. 진정한 예술은 자기의 의식세계로부터 해방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규약으로부터 소요유하며 자유자재하게 행동한다. 또한, 외형의 추악·기괴함은 도리어 더욱 진실하고 더욱 유력하게 인간 내재 정신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여기에서 장자의 본뜻은 결코 하나의 예술화된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이를 통해 自然無爲를 깨달은 사람은 외적 형체가 부자유스럽고 추악해 보이더라도 高古한 인격미를 지닌 인간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존경과 애정을 받음을 강조한 것이다. 醜를 통해 眞을 드러낸 沈師正의 <仙人渡海圖>, 속기를 배제한 듯한 기괴한 야성미가 느껴지는 姜世晃의 <怪石圖>에서는 超逸한 화풍이 느껴지고, 指頭畵法으로 그린 崔北의 <風雪夜歸人>은 기이하면서도 창신적 개성이 두드러지며, 불행했던 자신의 환경을 초탈하여 넉넉하고 편안한 자유로움을 추구한 自適 경지의 화풍을 전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는 이전의 고정된 틀을 부정하고 비판하면서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꾀할 때 예술은 영원한 생명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현세와의 타협이나 규범을 배제하고 자연본성을 추구하는 莊子의 자유분방한 미의식은 당대의 화가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It refers to high-level metaphysical spirit of the world to realize the pure freedom liberated from all restraint out of the Chungtzu real nature dao turns of human life, which is the starting point of the Chungtzu's spirit, it is also the starting point of aesthetics in oriental art. 『Chungtzu』 is pushing the universe naturally revealed in the world, it is not meaningful if words can describe push because they can not speak. Such beauty can only get to go through the process of performing a profound degree. Once it restored the virtues can help meet without gaps. Chungtzu clear the character to perform also in order to reach regain the 'virtue' inherent qualities in exceeding a separate state to get the iconic beauty of nature “Return to wipe the nature of virtue World(性脩反德)” said that. This is a position that, by face, not by artificial as any act that could result in their true nature, even of inaction. And in that a specific method proposed cultivate theory the 'Simjae' and 'Jwamang'. Refers to as the hollow 'Heojeong' heart discard wash the core is the heart craving in the state, yimyoung obsessed with 'muki', 'mugong', 'mumyoung' mental state correctly placing broke the ego to out of things by light perception. Jwamang is reaching as that escape from prejudice and selfishness that they have also reached out to the true nature of the original discipline. In order to reach as the road reaches it is not required to have ‘at heart of Heojeong’. Chungtzu saw that human beings can be contemplating enough Heojeong also reaches the heights of the core and jwamang. 'Dao' of these forms the Chungtzu closely related to the 'skill'. Creating a 'Big Beauty' turns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yet enjoy the pleasures of heaven not to reveal their finesse. "Great beauty" of heaven and earth will soon inaction one of utmost natural beauty, finesse to have seen in the sky, this is the Daekyoyakjo of Chungtzu, Daekyoyakjol traditionally were used as a tool to focus the Jolbakmi inaction of nature. Discipline is the key of the Chungtzu utmost beauty, even though it was to be a passive form of life, reaching a state of utmost joy. Utmost beauty, the true content of the pleasures of heaven will get free liberation, the Chungtzu was shaping these spiritual freedom and liberation as “You(遊)” and came attracted by philosophy and aesthetics. Impersonator suggests a aesthetic appearance of life in a manner that soyoyu(逍遙遊). Chungtzu absolute freedom human-made yimyoung and the core and the big dao through degrees of inaction the utmost beauty of altitude in a natural state, exceeding the fun through jwamang of discipline, in compliance with the natural flow that does not cling to anything and great finesse that the world can be seen in soyoyu(逍遙遊). Chungtzu’s spirit and cultivate theory is in those days was the fact that the artistic ideal life who want to achieve, and artistic spirit of oriental calligraphy esthetics can actually see that is derived from this idea from the grid. Chungtzu’s cultivate theory had a profound impact on the creative arts inspired generations of artists to be oriented world, art galleries, craft look the best state to be reached, and ideal beauty and style.

7,800원

4

한국예술의 수평적 사유 읽기 - 악기, 음악, 춤을 중심으로 -

김지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11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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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수평적 세계관이 반영된 한국예술의 근원을 분석적으로 추론하여 한국예술의 정체성, 곧 세계관과 문화의 반영이라는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예술의 독자성과 한국문화의 미를 의미체계화하고 논증하기 위함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합일을 이루려는 본성은 일원론적 세계관을 중심으로 사유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일심의 미학, 조화와 균형을 꾀하고 우주적 소통을 통해 인본주의를 추구하여 아우름을 이루고자 하는 철학적 사유는 수평적 세계관의 반영으로 한국예술에 투영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서양예술의 미가 드러난 실체에 시각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만들어내는 예술이라 한다면, 한국예술은 동양의 정체적 우주관이 반영되어 내면의 미학을 읽어 내려가야 한다. 이는 구(求)의 형태와 같이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원리와 같다. 즉 소멸은 곧 생성의 지점이며 생성은 생장의 단계에서 차이를 드러내고 창작을 이루어 예술의 발전을 지속한다. 따라서 수평적 세계관의 사유는 차이와 반복의 회귀형태이긴 하지만 한 형식에만 국한된 해석이 있을 수 없으며 자유로운 소통적 차원에서 예술을 바라봐야 한다. 한국전통예술에 반영된 수평적 사유는 반복적인 산조의 형식이나 동일한 리듬의 두드림, 맺고 푸는 호흡의 연속적 춤사위가 어떻게 예술적 감동을 주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었다. 수평적 사유는 분절이 아니라 소통이다. 안팎의 구분이 없어 여백의 자유로움을 구하고 자연그대로 순응하는 자세는 평안함을 지향하고자 하는 한국적 세계관이 예술에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This study is to find the identity of Korean art by analytically inferring the origin of Korean art reflecting the horizontal view of world, in other words, systemizing the meanings of the art’s identity and the beauty of Korean culture through in-depth research called the reflection of world view and culture. Our nature, that tries to harmonize with nature and consolidate us with it, makes us think based on monistic view of world. Philosophical thinking, that tries to pursue humanism and realize embracement through universal communication of harmony and balance, is projected in Korean art by reflecting the horizontal view of world. The art of the western world is to realize the ultimate and visible beauty by revealing the true nature of forms, however, in case of Korean art, we should read its fundamental thinking, as it is the product reflecting the static view of the universe of the Orient. The principle of repetition and its differences, and the extinction in the process of growth are the points of creation, and the creation makes the art develop forever by revealing the differences in the process of growing. Therefore, the thinking with the horizontal view of world is a regression form of differences and repetition, however, there could not be the interpretation confined to one form, and we have to see the art as a free communication. As above, the way of reading the lateral thinking of Korean art gave us an answer to the question on how the form of repetitive free-style solo or the beats with a same rhythm, and the continuous dancing steps in accordance with the inhaling and exhaling breaths could give us an artistic impression. Lateral thinking is not a seclusion but a communication that pursues the unrestrictedness of blank space, as it does not have a discrimination of in and out, and reflects the aesthetic nature of Korean art that expresses the attitude of life trying to be adapted to nature, while aiming for peace without any intractableness.

6,900원

5

정지용시를 이용한 스토리컬러 감성배색 연구

김진희, 정연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14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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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스토리컬러를 통한 아이디어 발상의 새로운 시도와 방법으로 창의적인 뷰티디자인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연구방법은 시의 시각화를 중시한 정지용의 시 중 자연을 소재로 한 3편의 시를 선정하여 연구하였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홍춘’의 스토리컬러 분석색채는 R, YR, Y, G, BG 색상과 s, dp, dl, sf, pl, gy, dkgy의 톤으로 구성되었다. 기조색은 Y/sf로, 보조색은 YR/dl, Y/wh, Y/dl, G/pl, G/dkgy, BG/gy을, 강조색은 R/기본, R/dp으로 배색하였다. 전체적으로 전원적이고 소박한 이미지와 절제된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둘째, ‘바다 1’은 Y, G, BG, B, P, N의 색상과 기본, wh, lt, dk, dp, Neutral 톤으로 구성되었다. 기조색은 B/wh, 보조색은 G/wh, G/lt, G/기본, G/dk, P/dp, P/lt, P/wh, N9, N6을, 강조색은 Y/wh, N 9.5로 배색하였다. 감성배색은 역동적이면서도 차분한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셋째, ‘비’의 스토리컬러 분석색채는 YR, Y, GY, N색상과 sf, dp, dl, dk, dkgy 톤, Neutral 톤으로 구성되었다. 기조색은 neutral tone, 보조색은 GY/sf, Y/sf, GY/dl, GY/dkgy, Y/dk, 강조색은 YR/dp를 배색하였다. 감성배색이미지는 비가 오는 정경을 스산하면서도 고요한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시를 통해 스토리컬러를 분석하고 감성배색 디자인을 시도하여 뷰티디자인의 새로운 발상법과 표현의 다양성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aims to provide the basic structure for investigating the direction of creative beauty design as the new attempt and approach creating idea through story colors. As the methodology, 3 poems on nature by Jeong Jiyong emphasizing the visualization in poems were selected. The analysis results are presented below. first, The story colors in the poem ‘Hongchun’ were R, YR, Y, G and BG and the tones were s, dp, dl, sf, pl, gy and dkgy. The base color was Y/sf and the assort colors included YR/dl, Y/wh, Y/dl, G/pl, G/dkgy, and BG/gy. R/basic color and R/dp were used as the accent color. The poems expressed pastoral and naive image and temperate image. Second, The story colors in the poem ‘Sea 1’ were Y, G, BG, B, P and N and tones were wh, lt, dk, dp, basic color and neutral tones. The base color was B/wh and assort colors included G/wh, G/lt, G/basic color, G/dk, P/dp, P/lt, P/wh, N9 and N6. Y/wh and N9.5 were used as the accent color. Emotional coloration expressed dynamic but composed image. Third, The story colors in the poem ‘Rain’ were YR, Y, GY and N. ‘Rain’ selected sf, dp, dl, dk, dkgy and neutral tones. The base color was neutral tone and the assort colors included GY/sf, Y/sf, GY/dl, GY/dkgy and Y/dk. YR/dp was arranged with other colors as the accent color. Emotional coloration described the scenery when it rained as bleak and quiet image. This study proposed the diversity in expression and new approach of thinking colors in beauty design by producing emotional coloration design through the analysis on story colors in poems.

5,200원

6

刺繡付金활옷의 衣制와 服色연구

명유석, 김영란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16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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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년)가 13세 혼례 때 입었던 활옷은 다른 활옷과 달리 정교한 자수(刺繡)와 황금빛의 부금(付金-금박) 무늬가 옷 전체를 화려하게 장식한 조선 왕실의 예복이다. 특히 옷 모양새기 앞깃의 여밈 부위나 소매 배래, 앞길 양끝이 궁중 의장(衣裝)인 당의, 원삼과 같은 호선(弧線) 형태로 꾸며져 있어 부드러운 실루엣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는 복온공주의 활옷은 그 출처와 년대가 확실하고 유물의 보존 상태도 양호함으로 인해 조선 중후기의 편직수품(編織繡品) 및 의장에 대한 제반 공예기술적 지식 내지 사회 배경, 미학 등까지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준과 구체적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그 중에서도 의복의 구성이 하나의 천으로 재단해서 장식무늬를 제작한 것이 아니라 따로이 수놓거나 부금한 조각 천들을 옷 크기에 맞추어서 배치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 왕비 적의(翟衣)가 수놓은 꿩무늬를 옷에 첨수(貼繡)했다는 기록을 통해, 이것이 자수침법의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지로 대한제국 시기의 수방 나인들은 우리말로 ‘새김수’라 불렀다. 특히, 이 활옷이 왕실 외명부(外命婦) 공주의 혼례복임을 비추어 볼 때, 값비싼 자수(刺繡)를 생산하지 않고, 재사용하였던 정황을 보아, 왕실에서부터 사치풍조를 없애고 검약한 생활을 실천하여 백성에게 본보기가 되었던 애민사상(愛民思想)의 일면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노의(露衣)의 둥근 원앙문(鴛鴦紋) 부금장식을 접목시키거나, 혹은 그 천 조각을 다시 사용함으로서 오히려 다른 자수 활옷보다도 더 다채로운 형식의 신 활옷이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본 연구자는 위의 특징을 토대로 이 활옷을 “자수부금 활옷”이라고 명명하고 이와 비슷한 유형의 활옷으로 19세기 말 이후로 해외에 유출된 필드자연사박물관, 브룩클린박물관의 소장품 활옷 2점을 비교 고찰하였다. 이밖에도 창덕궁 소장본인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 홍잠삼 수본(繡本)과 개인소장의 근대 홍사지자수(紅紗地刺繡) 활옷을 종합하여 화속문(花束紋), 보문(寶紋)자수와 원앙문, 수(壽)자문, 봉황문의 부금, 장식무늬의 포치(布置), 새김수 자수침법 등을 분석하였다. 색채에 관해서는 음양오행설에 기인한 혼례복의 색채관념과 이를 반영한 채색 수실을 비롯해 광명의 금빛을 지닌 금실의 의의를 서술하였다. 이상으로 본 연구에서는 전통의 역사성과 기예의 경험으로 새로운 스타일이 출현하는 과정 속에 변천하는 조형적 요소를 밝혀 현대 예복의 디자인에 활용하고자 하였다. 주목할 점은 환경과 인간이라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재사용’이라는 키워드로 지속가능한 패션을 올바른 소비 지향으로 나아가는 현대 패션계에서 200여년전 복온공주 활옷이 담고 있는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따라서 이에 대한 본 연구 결과를 현대의 디자인 가치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 기초자료로 삼고자 한다.
Hwarot is a royal wedding robe in the Joseon dynasty. Unlike other kinds of hwarot, the hwarot worn by princess bokon (福溫公主 1818-1832) at the age of 13 was decorated with elaborate embroidery and golden attachments. In particular, the front collar, baerae of sleeves, both ends of apgil were decorated in the shape of a line of arc. This can be found in clothes such as dangui (唐衣) and wonsam (圓衫), and forms a soft silhouette. The origins and age of the Princess Bokon’s hwarot are well-known. Its preservation is also good. Therefore, it can be used for understanding woven, interlacing and embroidered products (編織繡品) and design of mid and late Joseon period. Moreover, it provides specific clues and standards that can be used to grasp social background and aesthetics of those times in depth. The decorative pattern of the clothes was not made by cutting one fabric; the pieces which were separately sewn or attached were placed according to the clothes size. It can be confirmed that this was one of the embroidering methods through the record in Gukjo-oryeui that the pheasant pattern embroidered by the fabric was attached to queen's jeogui (翟衣). In fact, the Subang-nain of the time of the Korean Empire were called Saegimsu. Particularly, in view of the fact that this shirt is the wedding robe of the princess of the royal family, reusing expensive embroidery without producing can be seen as a manifestation of the Aemin-sasang(Love of the people idea), which royal family practiced the lifestyle of eliminating the luxury breeze to be a good example for the people. It can be inferred that by embroidering the circle ornamentation of wonangmun (mandarin duck pattern, 鴛鴦紋) of noui (露衣), or by using the piece of noui again, it became the occasion for the emergence of new hwarot which has more diverse form than others. Based on the above characteristics, this researcher named this embroidery as “Jasu Bugeum Hwarot (Embroidery Gold foil Hwarot)" and compared it with the two other hwarots from the 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 and the Brooklyn Museum, respectively. They were flown abroad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In addition to this, princess deokon’s (德溫公主 1822-1844) hongjangsam subon (a collection of Changdeokgung) and a modern hongsajijasu hwarot (private collection) were also compared. This study analyzed hwasongmun (花束紋), bomun (寶紋) embroidery, wonangmun (鴛鴦紋), sujamun (壽字紋), bugeum (gold foil) of bonghwangmun (鳳凰文), placement of the decorative pattern, and saegimsu embroidering method. Regarding the color, this study described the color concept of the wedding robe based on Yin Yang Wuxing (陰陽五行) theory, colored embroidery thread reflecting the theory, and the significance of the gold thread.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changing formative elements in the process of emergence of a new style through the tradition and experience of crafts. It is worth noting that in the modern fashion world, which is pursuing sustainable fashion with the keyword “reuse” in response to the demands of the times, the environment and humanity, the value of princess beokon’s hwarot is more significant. Therefore, we intend to make the results of this study as the basic data to produce modern design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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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국적 패션과 K-패션의 비교 연구 : 1980년대~2010년대를 중심으로

김인경, 차유미, 이진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17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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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전 세계적 한류의 확산으로 인해 우리 정부와 언론은 한국적 패션을 K-패션으로 언급하였다. 특히 해외 진출 브랜드들을 살펴보면 표면적으로 한국적 패션이 K-패션으로 단순 명칭 변경된 것이 아닌 내용적 변화가 함께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국적 패션이 시대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국가의 인지도를 높이고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K-패션으로 변화했는지 그 흐름을 시대별로 비교 고찰함으로써 현대 한국 패션 디자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적 패션과 K-패션의 비교 연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성에 치우쳐 과거 지향적이었던 한국적 패션과 달리 세계화ㆍ현지화를 추구하는 젊고 새로운 디자이너들로 교체된 K-패션은 현재의 시점에서 트렌드를 가미하여 현대성과 전통성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둘째, 한국적 패션은 상업성보다는 전시, 컬렉션을 위한 작품성 위주의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대중성이 약했던 반면, K-패션은 패션 트렌드를 적극 수용한다는 점에서 대중성과 실용성을 겸비하고 있으나 확실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셋째, 이러한 정체성으로는 디자이너의 주체성을 바탕으로 한 콘셉트가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한국적 패션은 콘셉트 자체가 전통적이었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콘셉트보다는 전통적 고유양식을 서양복에 대입ㆍ수용하였다. 반면, K-패션은 디자이너의 콘셉트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한국적 모티브는 디자인 프로세스(Design process)에서 재해석ㆍ융합되어 최종적으로 디자이너의 콘셉트로 형상화하는 데 활용된다.
Korean fashion began to be mentioned gradually in the government and the media as 'K-fashion' with the spread of Korean Wave in the 2000s. This phenomenon can be seen not only in the change of the name but also in the aspect of contents, in which expression characteristics of fashion design which shows 'Koreaness' are changing. Therefore, this study investigates the correlation how Korean fashion has changed into K-fashion that can enhance the awareness of the nation and the world can sympathize with through the process of the times by comparative studying the flow by period, and searches for the ways to strengthen the identity of modern Korean fashion design. The comparison of Korean fashion and K-fashion is summarized as follows. First, K-fashion, which has been replaced by young and new designers who pursue globalization and localization unlike Korean fashion, which was based on tradition and past-oriented, has tried to integrate modernity and tradition by adding trends at the present time. Second, Korean fashion is composed of design for presentation, exhibition, and collection rather than commerciality and popularity, while K-fashion has a popularity and practicality in that it accepts street fashion trends positively, but it needs to establish the firm brand identity that can go beyond commerciality or price competitiveness. Third, as for this identity, the concept based on the subjectivity of the designer is being highlighted. Since Korean fashion itself is a traditional concept, and so traditional images and elements rather than designers' concepts were accepted and admitted in Western costumes, on the other hand, K-fashion is used to ultimately shape in the concept of designers, by re-interpreting and fusing Korean motifs in the design process according to each designer's intended conce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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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문인화에 나타난 儒家와 道家의 상대적 영향력

박서령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1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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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문인화는 知性과 人性의 수양을 궁극목적으로 하는 ‘필묵화(筆墨畵)의 정신적 훈련’라는 관점에서 ‘道를 구현하는 방법, 나의 존재하는 방법, 나를 수양하는 방법’으로 분류하여 문인화에 나타난 유가와 도가의 상대적 영향력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였다. 유가와 도가의 철학은 문인화의 도덕수양심미의 배경이 되는 중심사상이다. 한편 유가와 도가는 유위 對 무위, 집단성 對 개체성, 채움 對 비움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그 내용은 윤리와 순리, 바로잡기와 버리기, 성실함과 고요함 등의 개념으로 수양방법의 차이를 보였지만, 문인화에서는 이러한 상대적 개념이 수용되어 자기수양적인 필묵화의 정신적 훈련으로서 필묵의 숙련성으로 성취되었다. 성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를 구현하는 방법에서는 ‘유위 적이면서 무위적인 훈련된 자율성’의 필묵의 숙련성으로, 둘째, 나의 존재하는 방법에서는 ‘본질로 파악된 나다움’의 필묵의 숙련성으로, 셋째, 나를 수양하는 방법에서는 ‘극치로 운용된 창조성’의 필묵의 숙련성으로 성취되었다. 또한 유가와 도가의 상대적 개념은 상대적 특징의 그림양식으로 나타났는데 유가적 문인화는 유한한 범위 안에서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규범성의 자연(道)’을 구현하고자 하였다면, 도가적 문인화는 무한 감으로 생겨지는 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다양성의 자연(道)’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정리하면, 문인화는 필묵을 통한 시각적으로 구현된 정신적 표상 안에서 참된 인간다움의 창조성 즉 道의 구현을 위한 ‘도덕적 관념화’로 표출되었고, 이러한 도덕적 심미의 동기는 필묵화의 정신적 훈련으로 귀결되어 도가의 자연성, 개성, 허의 개념이 유가적인 숙련성, 나다움, 지적가치의 필묵의 숙련성으로 성취되었다.
This study explored the intercross influence of Confucianist and Taoist presented in the literary artist paintings by categorizing into the way to realize the Tao, the way for oneself to exist, and the way to train oneself from the viewpoint that the literary artist paintings is ‘the spiritual training by brush and ink paintings’ with the ultimate goal of cultivating intellectuality and humanity. The summary of this study is as belows. Firstly, the way to realize the Tao is presented by ‘wei, doing’ vs ‘wu wei, not-doing.’ In this regard, the spiritual discipline of brush and ink achieves the proficiency of brush and ink as disciplined autonomy derived from the moral belief conflating the ideas of doing and not-doing. Secondly, the way of self-existence is presented either by collectivity or individuality. The spiritual discipline of brush and ink toward these ideas helps to obtain the proficiency of brush and ink as being essential oneself. Thirdly, the way of self discipline is presented by either filling or emptying. In this regard, the spiritual discipline of brush and ink helps to realize the proficiency of brush and ink for ultimately managed creativity. In summary, the Confucianist is the normative tao which intentionally reveals within the finite circle, while the Taoist is the varied tao which naturally expresses itself in its infinite natural form. In the meantime, the literary artist paintings are expressed as the moral intellectualization to materialize the tao, the creation of truthful human nature, through equating the spiritual discipline of brush and ink, the visual forming of brush and ink, with the philosophical acknowledgement of Confucianism and Tao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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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 언해본의 書藝美 고찰

신현애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21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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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인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은 신미스님과 세조사이에 주고받은 편지글의 형태로 작성된 것이다. 국왕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기 위해 불타서 허술했던 상원사를 다시 창건하는 과정에 왕실의 가족과 중신 및 지방 관료들에게 함께 동참하길 권선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이에 231명의 남성과 16명의 여성이 참여하였으며, 한문본에는 각각의 한문 권선문 아래 왕을 비롯한 왕자 및 중신과 지방 관료들인 남성이 수결하였고, 언해본에는 한문 권선문과 이를 언해한 한글 권선문 아래 세조와 세자를 비롯하여 왕비와 세자빈 및 종친과 외명부 여성들이 수결하였다. 이렇게 한문본 외에 언해본을 따로 만든 것은 한문을 모르는 여성들을 위해 작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 작성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신미 권선문과 세조 권선문이 작성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비록 두 권선문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 제시된 문자의 표준 형태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체에 나타나는 방형의 자형과 중앙중심축을 유지하여 중정미를 발한다. 하지만 두 권선문은 각각 작성자의 기질과 성정이 서로 다르게 드러낸다. 신미 권선문은 여러 부분에서 초·중·종성 자소의 형태변화에 따른 방형의 자형도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세조 권선문은 방형의 자형과 정해진 자소의 공간을 지키려는 의지가 확인 된다. 신미 권선문이 상대적으로 좀 더 자유롭고 활달하여 생동하는 미감을 주며 세조 권선문은 규범을 지키며 서사하여 상대적으로 정적인 전아한 미감을 준다. 이로서 법도에 엄격한 궁궐의 환경보다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쓴 신미 권선문이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조짐이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두 권선문의 서체비교를 통해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고 작성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체분석을 통해 두 권선문의 서체가 새로운 서체로의 변천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ㅣ’획과 ‘ㅡ’획이 길어져서 상대적으로 초성과 종성의 자소가 작아졌는데, 이러한 현상은 신민의 권선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자형의 변화가 세조 권선문보다 더 심한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초성과 종성의 자소가 모음 ‘ㅣ’획과 ‘ㅡ’획에 종속되는 궁체로의 초기 단계라는 점에서 두 권선문이 한글 서예학적으로 더욱 의미가 있다.
「Odaesan Sangwonsa Jungchang Kwonseonmun」, which is the oldest manuscript among the inherited ones, consists of two booklets with letters written by the monk Sinmi and the king Sejo to each other. It was used to recommend people to participate in fund-raising so that they can rebuild the damaged Sangwonsa by fire in order to pray for king's health and nation's peace; 231 men and 16 women took part in it. On the booklet in Chinese, there are the signatures and the stamps of the men; the king Sejo, the prince, the senior retainers and the provincial bureaucrats. And on the other booklet in Korean, which has Chinese letters and the Korean one interpreted, there are the signatures and the stamps of women; the queen, the prince's wife, the princes and the retainers' wives, together with only the men, the king and the prince. We can understand that the Korean lettered booklet was made for the women, who are not good at Chinese letter. Thru the comparison in detail between the letters' handwriting, we can find the hand-writers of the letters are different. The letters emit the jungjeongmi (the right and central beauty) which showing in the squared letter style and the central Axis in letters set up in the first letter style of the book 『Hunminjeongeum』haerebon as the standard of letter style when Hunminjeongeum was created. By the way, those letters are exposing the writer's nature and disposition. we can find there are changes on the space boundary set in the letter elements of the initial consonant, vowel, final consonant specially on Sinmi's Gwonseonmun. On the other hand, on Sejo's, there is writer's will to keep the space boundary in squared letter style. So, we feel that Sinmi's Gwonseonmun reveals more free, active and vibrant aesthetic impression relatively than Sejo's, which is showing the still elegant beauty because it was written keeping the rule set in the letter style of 『Hunminjeongeum』 Hearebon. This is saying that Sinmi's, which was written in more free environment than the strict life in palace, shows the symptoms of getting out of the fixed form and going forward to change. Thru analyzing the letter style, we can confirm that the letter style on those two Gwonseonmuns allude the transition to the new letter style, specially Sinmi's make more progress in changing on letter shapes, lengthening the strokes of 'ㅣ' and 'ㅡ', and shrinking the letter elements of the initial and the final consonants. It is meaningful in calligraphic study to figure out those letters were written by the different person and to seek the different aesthetic beauty from each letter. Further more, this study shows the letter style changes are the early stage to become the letter style 'Gungche' which was set as the unique letter type of Hangeul 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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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중 관광문화상품 형성에 대한 추론 - 대도시 전통공연상품을 중심으로 -

윤아영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23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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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관공연문화상품은 그 나라의 고유한 공연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현대적인 공연이다. 특히 대도시, 주로 수도 서울에서 공연되는 관광문화상품의 경우 그 나라의 전통문화라고 하는 필수 요소를 가지고 정제된 작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는 곧 그 나라의 오래된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한국과 중국 양국은 고대부터 백희라고 하는 공연 문화를 공유했었다. 이것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문화적, 정치적 영향으로 인해 점차 자국화되어 고유성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백희(百戲) 중 산악류(散樂類)와 잡기류(雜技類)가 고루 존재하기는 하였으나 위정자층은 광대와 잡기를 금기시했고, 사회적으로는 반감이 지배적이었다. 반면, 중국에서는 산악뿐 아니라 잡기도 문화통치의 도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후 개항도시를 중심으로 무난히 근대화에 성공하였다. 근대 이후로도 백희의 교육기관의 유무와 저변화의 정도에 따라 양국의 공연문화형성의 차이점은 더욱 뚜렷해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산악의 맥을 이은 음악 교육기관이 주가 되고, 잡기를 담당하는 연희전공자를 키우기 위한 교육기관이나 전문 직업단체는 거의 사멸되었다. 반면 중국에서는 음악 위주의 교육기관뿐 아니라 잡기의 육성을 위한 교육기관들이 독립적으로 설립되어 있으며, 여기서 교육받은 이들이 곧바로 활동할 수 있는 연행단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저변화에서 차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현대 한국의 대표 관광문화상품은 정동극장의 ‘미소’와 난타전용극장의 ‘난타’인데, 이 공연들은 산악, 즉 민속악무를 위주로 전통적인 이야기나 실생활에서 일어날 법한 내용에 효과를 더해주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반면 중국의 대표 공연문화상품은 북경 환락곡의 ‘금면왕조’나 상해 마시청의 ‘시공지려’인데, 이들 공연은 잡기, 즉, 주로 신체기교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여기에 전설이나 환상적인 내용을 결합된 쇼형식의 공연이다. 즉, 현대의 관광문화상품은 이처럼 한 민족의 오랜 역사적 전통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그 가치가 더욱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은 형성배경은 앞으로도 국가문화상품의 제작 방향에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The main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investigate the historical backdrop of formation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as cultural tourism products in Korea and China, especially focused on the tradition of baixi(all kinds of performance for the entertaining including musics and acrobatics) and the bottom of the social and educational environment. In recent years cultural tourism products related to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n both countries have dramatically differed, despite that two neighboring countries had baixi culture in common from ancient history. While in China, circus performances reflected with their artistic tradition baixi have still gained a great popularity as a tourism performance in Beijing and Shanghai, however those of Korea have almost been disappeared except folk music genres. This phenomenon is caused from the historical background and ideology of own. Baixi of Korea had become treated as a taboo after the late period of Goryeo dynasty(912-1392), and in addition to that, baixi after Joseon dynasty(1392-1910) could only be presented one time at the year-end ceremony of the year. Even when it was presented, the king could not officially watch baixi, because of the ideology Song Confucianism. However, baixi of China had occupied a high position relatively with those of Korea when it had been presented at the royal palace. Emperors in Chinese history would use baixi as a cultural tool to unify tributary states and show off the power of central government. Moreover, modernized performances such as Jinmianwangchao(Golden mask dynasty) and Shikongzhilu(jorney from the past to the future) made absorbing traditional culture of Baixi have gained a great popularity, not as Miso(Beautiful smile) and Nanta(percussion performance) of Korea. That is, in Korea, performing arts had relatively attached importance to sanyue(산악(散樂), folk music) among baixi, and in China, those had placed much emphasis on zaji(잡기(雜技), acrobatics). This will be the good answer to how rulers and ideology and the education of those times affect the traditional cultures and what the result came into realization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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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孔子의 情感敎育에 관한 考察

이수빈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273-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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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孔子의 情感敎育을 통하여 藝術의 참모습과 敎育의 역할에 대하여 논한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자율성이 중시되는 예술과 규범적인 교육이 상충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儒學에서 말하는 敎의 의미는 修道이며 情은 中和이다. 따라서 예술과 교육은 修身으로서 맥을 같이한다. 孔子는 교육자이자 철학가이며 예술가이다. 그의 핵심사상은 仁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仁을 가르치기 위한 특별한 교육을 행하였는데, 그것은 감정이 중심이 되는 교육이다. 감정이 중심이 되는 교육이란 詩‧禮‧樂을 통하여 진리를 터득하는 것이다. 孔子의 仁思想과 審美意識을 통해서 심미주체인 ‘나’를 확인하며, 孔子 情感敎育의 方法과 活用에 있어서 詩․禮․樂을 통한 예술의 참모습과 創作觀․鑑賞觀․批評觀을 통한 예술의 참작용에 대하여 알 수 있다. 또한 孔子 情感敎育의 現代적 意義를 學習의 인식전환과 修身의 생활화 그리고 仁에 근거한 예술 활동으로 살펴봄으로서 ‘나’의 예술 실천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iscuss the true nature of arts and role of education through the idea of emotional education in Confucius. From today 's point of view, it may seem that the art of autonomy and the normative education are in conflict. However, the meaning of instruction in Confucianism is the regulation of this path and the emotion is the states of equilibrium and harmony. Therefore, art and education are the same as the self-cultivation. Confucius is an educator, philosopher and artist. His core idea is humanity(仁) and emphasized poetry, propriety and music as a way to learn and practice humanity. Poetry, propriety and music are the natural manifestation of emotion and is the best place Confucius pursues. Through thoughts of humanity and aesthetic consciousness in Confucius, this researcher will examine his perception of the emotion and the view of art, and try to find out the method of emotional education in terms of creation, appreciation, and criticism. It will also highlight the significance that the idea of emotional education in Confucius means to us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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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人藝術의 三敎思想에 관한 고찰

장기준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29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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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文人藝術이라고 하면, 詩·書·畵가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 ‘畵’의 영역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宋代 蘇東坡의 ‘士夫畵’이론을 시초로 한 文人畵가 있다. 이는 元代에 이르러 독특한 사회배경에 영향을 받고, 明代에는 董其昌에 의해 ‘文人之畵’로 집대성된다. 이후 ‘文人畵’로 약칭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에 적합한 정체성을 운운하며 변천된다. 이와 같은 文人藝術의 이해를 위해서는, 文人과 藝術 사이의 상통개념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이는 兩者의 범위가 매우 광대하고 주관적이라서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상통개념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意義 熊秉明, 『中國書法理論體系』, 雄獅美術, 2011. p.108. 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즉, 文人의 理想을 예술이라는 간접적 방식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한다는 목적성을 말한다. 그 목적성은, 각 시대의 정세에 따라서 발휘되는 文人들의 ‘自覺’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自覺’이란, 개인적 主觀과 사회적 客觀, 거기에 主·客觀의 경계를 넘나드는 心적 작용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 특히 그 바탕에는 본질을 추구하는 文人들의 실천정신, 즉, 그들만의 理想적 추구에 직결되는 ‘過程’이라는 단계가 존재한다. 그 핵심은 바로, 文人의 철학·미학적 사유방식이며 儒·道·佛이 대표적이다. 역사적으로 동양의 三敎관계는 대립적 입장도 물론 존재하지만, 서양의 종교 갈등처럼 극단적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오히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호교류 해왔는데, 특히 佛의 역할이 적지 않다. 佛은 신속하게 상류층과 文人에게 접근하기 위해 黄老사상을 활용하거나, 상황에 따라서 格義佛教 혹은 敎禪一致도 주창한다. 최종적으로 三敎는 각자 독립적이면서도 융합의 과정을 거쳐, 三敎融合에 이른다. 한편 최근의 문인예술은 맹목적 自覺으로 인해 현상(작품)에 치우친 나머지 ‘과정’이 홀시되기도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과정’중시의 동향도 보인다. 예를 들면 동아시아 서예 문화권에서 행해지는 performance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교육의 일환으로써 지도자와 학생 사이의 협력이 이상적이다. 특히 그 가운데 등장한 서예에서의 단체성은 작품제작까지 겪게 되는 단체생활의 교감과 갈등을, 협력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즐거움으로 승화시킨다. 이는 그 동안 주관적 개념의 서예가, 객관적 개념으로써 거듭나는 ‘과정’이며, 文人藝術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自覺의 현대적 意義라고도 할 수 있다.
When discussing about literati art, literati paintings comes first, and it is easy to access to the theories about it. The theory of ‘gentry paintings’ established by Su Dongpo(蘇東坡) in Song Dynasty was the beginning, and it was the objection to the group of painters at that time, which was biased towards a painting form. In addition, it had been affected by the social background of ethnocracy in Yuan Dynasty. Furthermore, it had been compiled as the concept of ‘literati’s paintings’ by Dong Qichang(董其昌) in Ming Dynasty. After all, as it was called ‘literati paintings’, it has been changed with the identity that suited the needs of the time. To comprehend literati art as mentioned above, we should grasp the mutual concepts of literati and art first because both are inconsistent due to their extensive and subjective scopes. Among the mutual concepts, the most distinguishing one is to pursue a social significance. In other words, it is the objective to propagate literati’s ideal to the public through art as an indirect means. Since it is also evitable to have a sense of responsibility, not only the art works as a result but also the production process matters. Thus, personality used to be emphasized naturally. This study focused on the self-consciousness that literati have exhibited in accordance with the situation. The self-consciousness here connotes literati’s subjectivity, social purpose and mental action. Especially literati’s practical spirits that pursue essence underlie it, that is to say, there is a stage of ‘process’ directly related to their own ideal result. Historically, literati have emphasized on the stage of ‘process’. In the categories of art, there are two tendencies. One is ‘the process based on the premise of a painstaking effort’, and the other is ‘the transcendence from the process’. The former is Confucian aesthetic interpretation, and the latter is about Taoistic or Buddhist aesthetics. Consequently, it could transcend only through the ‘process’ based on the premise of an effort, and the subsequent stage mutually fused is regarded as the best ideal. By the way, there might be a cacophony of art practices by denying the others due to a blind self-consciousness. The ‘process’ of artistic activities is sometimes neglected by biased towards the result of art works. Fortunately, there has appeared artistic activities that emphasize on ‘process’ lately. For example, ‘performance’ activities have been performed in East Asian calligraphy cultural area. Especially in Japan, it is ideal that teachers and students cooperate as a way of educating. The collectivity of calligraphy makes students realize the pleasure of the process to resolve conflicts of group activities experienced during an artistic production with cooperation. It is the phenomenon that a subjective concept of calligraphy turns into an objective concept, and it could be the modern significance that starts to emerge in literati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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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唐詩意圖 비교 연구 - 16-19세기 왕유, 두보 시의도를 중심으로

조인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317-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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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의는 16-19세기 동아시아 3국에서 동일한 화제로 그렸던 왕유시의도와 두보시의도비교를 통해 양상과 특징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작품에 내재된 공통 인식과 표현의 독창성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중국 한자 문화의 영향권에 있던 조선 후기와 에도시대는 시화일률이란 문예적 지향, 왕유와 두보 작품의 문학적 탁월성과 시가 지닌 회화성, 시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 등에 긍정적 인식을 같이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왕유의 『망천집』의 일련의 시들과 「종남별업」,「종남산」 두보의 「南隣」,「秋興八首」,「飮中八仙歌」,「登高」,「春夜喜雨」 등의 詩句가 공통의 시의도 화제가 되었다. 화제가 된 시의 내용은 은일자의 삶을 읊은 것, 산수자연의 경치나 사계절의 정서를 표현한 것, 중국 유명인의 故事를 표현한 것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화제는 산수 인물화의 형태로 화면에 표현되었다. 명청대 화가들은 화면 가득 경물을 배치하는 치밀한 필법으로 시 내용의 배경이 되는 산수 표현에 보다 적극적임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화가들의 보다 간략한 필선으로 시의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조선후기 시의도에서 주목되는 것은 중국에서 전래된 『개자원화전』등 화보의 화면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중국의 시의도와는 다른 화면을 보이고 있다. 또한 화제의 詩意 표현에 인물을 자세, 동작 등을 강조하며 산수표현보다 중시한 경향을 보인다. 에도시대 시의도의 경우 일부 漢學派를 중심으로 그려졌고 중국화보에 소개된 준법을 사용해 경물을 유기적으로 화면에 배치하고 있다. 명청대에는 조선후기나 에도시대에 비해 시의도가 화첩형태로 전하는 특징이 있다. 이상의 논의 결과 명청시대의 화가들은 시의도를 통해 宋代부터 이어진 詩畵一律의 예술적 지향을 이루려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화가들은 조선 치국의 이념이 된 성리학적 理想像과 自然觀을 바탕으로 시의도를 통한 詩畵一律이란 문예적 성취를 추구했다. 반면 에도시대 화가들에게 왕유 시의도와 두보시의도는 중국문화에 대한 선호의 대상으로 인지되며 시도되었다. 문인계급의 부재라는 사회적 특성은 당시의도의 제작을 적극화하는데 쉽지 않았고 시를 그린다는 형식적인 면을 자국화해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俳句) 화면에 옮기는 하이가(俳畵)의 발달로 이어진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동아시아 3국에서 공통된 화제로 그린 왕유, 두보시의도 비교는 시의도가 발생국에서 발달되는 과정은 물론 주변의 동일 문화권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수용하는 지역의 사회 이념과 미적 취향을 담으며 변화하고 자국화되며 더 나아가 독자적 회화 영역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article aims to find out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in the poem-based paintings of China(Ming dynasty & Qing dynasty), Korea(Joseon dynasty), and Japan(Edo dynasty) in the 16-19 centuries through the comparative study of these countries' paintings based on the same subjects like Wang Wei(699-759) and Tu Fu(712-770) lyrics. They seems to be sharing the literary aesthetics of painting and poetry are one and special respects on the excellent picturesqueness of Tu Fu and Wang Wei poems and their lives. Meanwhile it seems clear that each country had developed its idiosyncratic traits while they chose the same lyrics as subjects of their paintings. Chinese painters tried to achieve the aesthetic goal of painting and poetry are one continued from the Song Dynasty. Joseon’ painters had an orientation to stress the ideological nature of the confucian philosophy called Sung Confucianism. In the Edo Dynasty of Japan, arts for the literati were less all the vogue with the political and cultural dominance of the Samurai class resulting in the premature in the poem-based painting genre. Rather the concern with literature developed into a blooming of oosume its ingenious poem style called Haiku. In conclusion the three countries of the East Asia developed their unique style of the poem-based paintings while sharing the similar lyrics from Wang Wei & Tu fu'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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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모은중경 한글판본 서체의 조형적 특징 연구

최영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4호 2017.02 pp.346-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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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모은중경』 한글판본은 한문본 『부모은중경』을 1545년 오응성에 의해 초역 간행된 이후 19세기 초까지 전국의 사찰에서 覆刻 또는 飜刻되어 현재 40종이 발견되었다. 국문학계에서는 40종을 판화의 양식과 서체의 특징 등에 의해 초역본계, 조원암본계, 금산사본계, 한글본계 등 모두 4계통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에 본고는 소장처 등을 방문하여 확보한 15종을 계통별로 구분하여 판본서체의 조형적 특징 변화 樣相을 살펴 이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서체의 조형적 특징은 자모자형과 음절자형으로 나누어 살펴본 결과 먼저 子母字形가운데 모음자형은 세로획의 收筆부분에서 뚜렷한 변화를 보이는데, 초역(1545)본계와 조원암(1689)본계는 圓畫이나 方畫이며, 금산사(1720)본계부터 수필부분이 斜畫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자음자형도 금산사본계부터 설음자형 등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다음 음절자 가운데 초중성합자의 외형은 한글본계인 ‘용주사(1760)’판본은 세로로 긴 長方形이고, 그 이외는 가로로 약간 긴 長方形이다. 그리고 문자 ‘워’의 ‘ㅓ’ 왼쪽 점획 위치에서 변화가 보이는데, 한글본계를 제외한 초역본계 등은 ‘ㅜ’의 가로획 위에 위치하고 있으나 한글본계는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초중종성합자의 외형은 초역본계나 조원암본계는 대체로 正方形인데, 금산사본계나 한글본계는 세로로 긴 長方形이다. 그리고 종성의 크기에 변화를 보이는데, 초역본계와 조원암본계는 초성과 같거나 큰 자형이 혼재하는데, 금산사본계부터 전체적으로 작아졌다. 또한 초역본계와 조원암본계는 종성 ‘ㅇ’에 긴 꼭지점이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끝으로 합용병서자는 ‘’자의 종성 ‘ㄼ’에서 특징을 보이는데, 초역본계와 조원암본계는 위아래로 連書하였으며, 금산사본계는 左右위치를 바꾸고, 한글본계에서 바로 쓰고 있다. 이상 15종의 『부모은중경』 한글판본은 강재희판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자체이다. 그리고 서체의 조형적 특징은 초역본계와 조원암본계가 대체로 같고, 금산사본계부터 변화가 확연하였다. 따라서 서체의 특징만으로는 초역본계, 금산사본계 및 한글본계 등 3계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There are 40 versions of the Han-geul-Printed version of Bumoeunjungkyeong that has been found since its first translation and publication of Chinese version of Bumoeunjungkyeong by Oh Eung-Seong in 1545 until early 19th century in Buddhist temples throughout the country in the form of reprint or reproduction. Korean literature academia classifies the 40 versions into 4 systems with 30 sorts of the first translated version (Choyeokbongye); 2 of Jowonambongye and; 4 of Geumsansabongye along with 4 of Hangeulbongye based on print form and characteristics of letter style. Therefore,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letter style on 18 versions among the 40 which have been obtained, for example, via visit to places where they are possessed. As a result of analyzing collected consonants and vowels, its character shape shows a distinctive change on vertical strokes at the tip, which demonstrates that Choyeokbongye (1545) and Jowonambongye (1689) were most of a rounded or quadrangular shape while the tip of Geumsansabongye changed into tilted one. As to the character shape of consonants, Geumsansabongye represents change in lingual sounds and the angular point on ‘ㅇ’ (Ieung). Another lingual sound of 'ㅌ' (Tieut), except for Hangeulbongye, has a horizontal stroke at the center of 'ㄷ' (Digeut) while Hangeulbongye represents Tieut by putting the horizontal stroke separately over Digeut. Among syllables in terms of combined letters of left and right initial consonant and vowel, Choyeokbongye and Jowonambongye are most of square form while Geumsansabongye and Hangeulbongye are of rectangular one. The letter ‘워’ (Wo) has the horizontal tittle under the horizontal stroke of 'ㅜ‘ (Wu) in Hangeulbongye but in other systems, the tittle is located over Wu. Combined letters of initial consonant, vowel and final consonant most have a long angular point on the final consonant of Ieung except for Hangeulbongye. With change on size of the final consonant, it is most of the same with or bigger than the initial consonant up until Jowonambongye while it is most of the same size starting from Geumsansabongye. A mixedly used and laterally attached letter of ‘' adopts connected writing on its final consonant of ‘ㄼ’ in Choyeokbongye and Jowonambongye while it is shown as ‘ㅂㄹ’ in Geumsansabongye in a reverse order of the left and the right and then ‘ㄼ’ in Yongjusa-printed version. Except for Gangjaehee-printed version, the 18 versions of Bumoeunjungkyeong are all of the square style. In terms of formative characteristics, Choyeokbongye and Jowonambongye are substantially the same while Geumsansabongye shows distinctive changes. Therefore, it is regarded reasonable to have a current classification with 4 systems by the Korean literature acade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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