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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28호 (11건)
No
1

한국춤에서 흰색의 표상과 미적 의미연구

김지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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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빛의 미는 우선 가장 순수한 색으로 채색의 정도가 흐려지지 않고 스스로 환희 빛나는 색이다. 흰 살빛은 미의 기준이 되며 탄생인 반면 죽음으로 가는 이중지향의 색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해석하면 삶과 죽음은 동일선상에 있으며 생(生)한 뒤 소(消)는 멸(滅)아니라 다시 생(生)하기 위한 기운으로 현세적 삶과 실천적 삶을 권고하는 철학적 의미와도 통한다. 따라서 서양보다는 동양적 삶에서 더욱 청량감과 밝음을 지향하게 두어 흰 빛이 유독 예술에도 많이 반영되었을지 모른다. 흰색은 많은 종교에서 본바탕, 본심을 의미하기에 태초의 경지와 생하는 빛의 원천을 의미했다. 흰 빛은 신성한 색이였으며 정신적인 색이며 인간의 선한 본성을 의미하는 색으로 본연의 심성을 잃지 않기 위해 고매한 인격의 수단으로 늘 가까이 두려는 색이었다. 특히 한국인은 고대 사회로부터 하늘과 태양 숭배, 음식, 민간신앙, 상복, 의복 등 모든 생활양식 곳곳에 흰 빛을 숭상하는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예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백자와 한국화에서 여백의 공간, 학을 숭상하여 그린 도자기 등 흰 빛은 많은 미학적 메시지를 남기고 민족의 철학까지 가늠하게 해주는 영롱한 빛이 되고 있다. 한국춤 또한 내면과 정신을 추구하는 실천적 몸짓 언어이다. 한국춤은 오방의 영향도 물론 받았지만 오래된 역사와 전통에 가까운 춤일수록 흰색을 숭상하는 춤으로 보존되어 남아 있다. 흰색은 ‘한국의 춤=흰색’ 이라는 숭고함이 우미(優美)를 더하며 한국 예술이 다른 문화와는 다른 독자적 미의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한국춤은 구도자와 같이 명상과 깨달음의 경지를 향해 움직이고 마음의 채색을 흰 빛으로 비워둔다. 춤사위 하나하나에 자연그대로 나를 놓아 버리고 원(怨)과 한(恨)을 비워냄으로써 나와 타자를 이해하고 우주의 섭리를 향해 서로 소통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The beauty of white is, first of all, being the purest color which does not dilute the coloring and delighting itself with its own illumination. White skin is one of the standards of beauty and birth of its own, but it is also the color that heads towards death making it the double-sided color of all. One interpretation is that white is positioned on the same plane as life and death, and it is in line with the philosophical meaning of temporal life and practical life where life accompanies death and death leads to life. Therefore, it is more clear and lighter in Eastern life styles than it is in Western life styles, and this may the reason why the color white is reflected in art forms as much as it does. In many religions, white means the foundation and fundamental of things, and it is mainly depicted as the source of light and the birth of the beginning. White light is a holy color, spiritual color and the color of man’s kind nature which man kept it at his side at all times as a medium to remind himself to never lose the kind nature of himself. In particular, Koreans was a race that worshiped white light through various items in their daily lives such as the sky and sun worshiping, food, folk lore, mourning dresses and clothes from ancient times. Korean art was no exception. White porcelain, beauty of space in Korean paintings and crane worshiping reflected in porcelains have left countless aesthetic messages, and the light has become the guiding light in studying the philosophy pursued by Koreans. Korean dancing is also a practical body language reflecting the inner spiritual. Of course Korean dancing has been influenced by many forms of other dancing, but the most traditional and historical forms of Korean dancing has preserved itself as a dance worshiping the color white. White adds outstanding beauty in its form through the meaning of “Korean dancing = White,” and it proved that Korean art has its own aesthetics embedded within itself unlike other cultures. Korean dancing moves forward to the enlightenment, and it leaves the color of one’s heart as pure white. Every single dance move releases oneself as nature has formed, and by eliminating the resentment of oneself, one can understand oneself and others and leave all to communicate towards the providence of the universe.

6,100원

2

공존의 미의식 : 이우환의 작품세계

남수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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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에서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위한 시도로서 ‘공존’의 개념에 주목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우환은 ‘공존’에 대하여 철저하게 자아와 타자가 존중되며 함께 있는 것이며, 예술가가 타자의 다름을 점유하지 않고 최소한의 행위를 통해 세계를 껴안으려는 시도는 ‘공존’의 이념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우환의 일련의 작품들인 <관계항>, <점으로부터>, <조응>에서는 이러한 공존의 미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이우환은 작품 <관계항>에서 돌과 유리를 부딪치게 하는 최소한의 신체개입을 통해 각 물체의 특징을 더욱 드러나게 하였으며 만남의 순간적 지각을 유발시켜 작가 혹은 관람자에게 장으로서의 공간에 공존함을 인식하게 한다. 작품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연작에서는 작가의 반복된 행위로 인한 점과 선들의 차이는 그리기의 과정 즉 시간성을 경험하게 하며, 행위의 결과로서의 점과 선들은 시간과 공간의 공존을 보여준다. <조응> 연작에서는 물감과 캔버스 간의 상이적인 물성으로 인해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이 확연하게 드러나며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그려지지 않은 부분인 여백을 인지하게 한다. 여백은 작가의 최소한의 개입인 한 번의 붓질로 생성된 공간이며, 작가의 이러한 행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기존에 이루어졌던 서양의 현대미술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 비록 그 표현방식은 공통점을 보이나 작품을 통한 이우환의 메시지는 동양적 미의식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우환의 공존의 미의식은 타자 즉 자연을 점유하지 않으려는 동양의 자연관, 또는 한국의 전통 윤리관과도 연결된다.
In this paper, we are focus on the concept of ‘coexistence’ to try new analysis of art work of Lee U Fan. Lee U Fan said the coexistence is respecting of ego and others. The try which artist did not occupy other difference and embrace world with minimum act is base on concept of ‘coexistence’. This aesthetic consciousness of coexistence can be observed in his artworks, like , , . In his work , Lee U Fan reveal each object’s character by minimum physical intercept of collision of stone and glass. By using this, audience or artist he break out instant recognition to audience or artist and they recognize coexistence as a field of space. In his works and , repeating of artist’s act of painting dots and lines make us to experience time. The result of painting of dots and lines show us that the coexistence of time and space. We can observe in his work about the empty space which is revealed by the property difference of dye and canvas. The empty space is created by one snap of brushing which is minimum interception. This artist’s acting is the way of proposing the natural world. We can understand that his way of expression is same as western modern arts, but his message is base on oriental aesthetic consciousness. The aesthetic consciousness of coexistence is connected with an outlook on nature of oriental and traditional ethics of Korea, which do not possess others and nature.

5,800원

3

중국 남북조시기 외래악무의 중원 전래와 수용

남종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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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ㆍ唐 部伎樂은 중국 무용사에서 宴樂의 전성기를 가져온 원동력이었다. 당시의 부기악은 대부분 남북조시기에 中原에 전해진 외래악무로, 이는 중외 악무교류의 산물로써 동아시아 악무교류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본고는 史書, 政書, 類書의 관련 기록에 근거하여 남북조시기 외래악무의 중원 전래과정을 고찰하였다. 당시 외래악무는 五胡十六國(304-439) 이래로 중원과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하였고 6세기 후반까지 계속되었는데, 수ㆍ당 부기악에 편입된 남방계의 天竺樂, 서역계의 龜玆樂, 高昌樂, 西凉樂, 疏勒樂, 安國樂, 康國樂, 동방계의 高麗樂은 모두 이 시기에 중원에 전해진 것이었다. 그 전래과정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조시기 외래악무는 2세기 넘는 기간에 걸쳐 중원에 전해졌다. 4세기 중반에 천축악이 불교와 함께 전해진 것을 필두로 서량악과 구자악이 전래했고, 5세기에는 소륵악, 안국악, 고려악이 6세기에는 고창악과 강국악이 각각 중원에 전해졌다. 둘째, 남북조시기에 외래악무는 직접 전파와 간접 전파의 경로로 중원에 전해졌다. 고창악, 소륵악, 안국악, 강국악, 고려악은 중원 세력의 정복이나 해당 국가가 헌정으로 전해진 반면 천축악, 구자악, 서량악은 서역에 진출한 중원 세력에게 수용되어 다시 중원에 전해지는 이중의 과정을 거쳤다. 셋째, 남북조시기에 외래악무는 단방향 전파와 쌍방향 전파의 두 가지 방식으로 중원에 전해졌다. 천축악, 구자악, 고창악, 소륵악, 안국악, 강국악, 고려악 등 대부분 외부로부터 일방적으로 중원에 전해졌으나 서량악은 그 형성과 전파의 과정이 매우 독특하다. 즉 4세기 초에 凉州 일대에 진출한 중원 세력이 가져간 중원의 악무가 현지의 악무와 융합하고, 이후 4세기 후반에 외래의 구자악과 다시 융합하여 새로운 악무로 탈바꿈 한 다음에 5세기 초ㆍ중반에 다시 중원으로 전해졌다. 넷째, 남북조시기에 중원에 전해진 외래악무 가운데는 서역 계열의 악무가 단연 많았는데, 천축악과 고려악을 제외하면 모두 서역 계열의 악무였다. 이는 당시 서역 국가가 중원 세력과 교역이나 외교관계가 밀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서역 악무가 지닌 예술성이 중원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컨대 남북조시기에 외래악무는 4세기 중반부터 6세기 후반까지에 걸쳐 정복이나 헌정의 방식을 중심으로 중원에 전해져 중원의 악무문화를 풍부하게 만들었고, 수ㆍ당 시기에는 부기악에 편입되어 부기악의 지주가 되었다. 그러므로 남북조시기에 중원에 전래된 외래악무는 수ㆍ당 宴樂 발전의 토대였다고 하겠다.
由于隋唐時期有了部伎,故中國古代舞蹈史迎接了宴樂的鼎盛时期。但这部伎是在南北朝時期从外传入中原的樂舞,所以隋唐部伎可以说是中外樂舞交流的産物,这对東亞樂舞交流史也具有是重要的意义。 本论文考察了≪隋書≫、≪舊唐書≫、≪通典≫、≪唐會要≫、≪文獻通考≫等历史书籍来研究了南北朝時期外來樂舞傳入中原的途径。从五胡十六國(304~439)时期以来,外來樂舞断断续续通过交流传入到中原,这种交流持续到了六世纪末。到了隋唐,部伎里包括的南方系樂舞有天竺樂,西域系樂舞有龜玆樂、高昌樂、西凉樂、疏勒樂、安國樂、康國樂,東方系樂舞有高麗樂。这些樂舞都是在这一时期传入中原的。其传入特点如下: 第一、南北朝時期外來樂舞的传入历经了二百多年的时间。从四世纪中期开始,天竺樂随着佛敎的传入而传入到中原,随之西凉樂和龜玆樂也相继传入到中原。五世纪,疏勒樂、安國樂、高麗樂也传入到中原。到了六世纪,高昌樂和康國樂也最终传入到了中原。 第二、南北朝時期外來樂舞是直接或間接地傳到中原。高昌樂、疏勒樂、安國樂、康國樂、高麗樂是经过了中原勢力征服相關國家,或与相關國家通过外交的獻呈的途径传入的。天竺樂、龜玆樂、西凉樂是中原势力进入西域后接受的,还有经过其他途径传入的。 第三、南北朝時期外來樂舞的传入,有單方向与雙方向两个傳播形式。天竺樂、龜玆樂、高昌樂、疏勒樂、安國樂、康國樂、高麗樂等是外来的單方向形式的传入。其中,西凉樂的形成与传播形式有些特殊。四世纪初期,中原势力进入凉州一带之后,他们带去的中原樂舞与本地的樂舞融合。这一樂舞后来,到了四世纪末期又与外來龜玆樂再融合而焕然一新。最后,到了五世纪初期中期才传入到了中原。 第四、南北朝時期传入中原的外來樂舞中,西域的樂舞比较多。除了天竺樂和高麗樂之外,都是西域的樂舞。也许,这是因为当时西域國家与中原势力进行了频繁的交易或外交活动。不仅如此,更重要的是中原的人们喜欢西域的樂舞艺术。 总而言之,南北朝時期的外來樂舞是从四世纪中期到六世纪末期,经过征服或獻呈的形式传入到中原,从而丰富了中原的樂舞文化,最终列入到隋唐時期的部伎里。所以,南北朝時期外來樂舞的传入,对隋唐時期宴樂發展起到了基石性的作用。

6,100원

4

작품과 인품 : 동양예술에서의 예술과 인격의 관련양상

민주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7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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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미학과 예술론은 작품과 주체의 관계에 주목하고 시, 서, 화는 그 사람과 같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인물을 품평하는 일련의 이론이 그대로 직접 예술비평에도 운용되었다. 시는 그 사람과 같고, 시는 시인의 생명을 표현하며, 시인의 인격을 표현한다고 하는 견해야말로, 동양예술의 표현을 중시하는 자세이다. 하지만 이것은 서구에서 말하는 표현 중시 예술관과는 다르다. 동일하게 표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서구 근대미학에서 말하는 작가의 ‘감정’이나 ‘정서’의 표현이 아니라, 시인의 ‘생명’과 ‘인격’을 표현한다는 점에 바로 동양미학의 특징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과 인격을 표현한다고 하는 동양미학이 현대예술의 상황에 과연 얼마만큼 부합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양자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동양예술의 인격성은 현대예술의 상황에서 보자면 ‘결여’이고, 전통의 맥락에서 보자면 ‘단절’이다. 그래서 논자들은 인격과 인품의 개념이 편협하다고 비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역사적 인격’과 ‘예술적 인격’을 개념적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인격이란 한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행하고 겪는 다양한 행위와 체험의 양상들을 총체적으로 통합한 전체적 인간상이다. 이에 반해 예술적 인격이란 작품을 창작하는 주체로서의 인격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품을 통해 그것을 만든 역사적 인격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예술적 인격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작품은 인격에서 생겨나지만 ‘독립된 존재’가 되며 공공성을 갖는다. 인격에 밀착한 '행위'가 곧잘 그 인격성을 표현함에 반해서, '작품'이 드러내는 것은 역사적 인격성이라기보다는 창조하는 주체이다. 창조의 주체와 역사적 인격성 간의 차이는, 후자가 있는 그대로의 나임에 반해서, 전자는 그 나를 넘어서려고 하는 데에 있다. 사적 성격을 버리고 작품을 자립시키는 것이 바로 창조 주체의 명예이다.
Traditionally eastern aesthetics and art theory noticed the relationship between work of art and subject and emphasized the identity of art and person. Accordingly, the principle of evaluating person was adopted in the realm of art criticism. Eastern attitude showed the theory of expression that poetry is the same as the poet, and that poetry expresses the life or the personality of poet. But the expression of life and personality in the East was different from the expression of feeling and emotion in the West. However, the traditional eastern aesthetics of expressing personality is substantially remote from the circumstances of contemporary art. The personality has double meaning of the lack in contemporary art and the disconnection from tradition. And so some researchers criticize the narrowness of the concept. Here, we need to distinguish conceptually the historical personality from the artistic personality. The former means the total aspect of human being who integrate various behaviors and experiences. On the contrary, the latter means the subjective human being who create work of art independently. Therefore, from work of art, we don't grasp the historical personality, but we comprehend and sympathize with the artistic personality. Although work of art is made from person, it becomes an independent being with public character. What the work of art disclosure is not the historical personality but the creative subject. The difference is in that the former is just me as it is and the latter strives to surpass me. The honor of creative subject is to throw away private bonds and to make the work of art self-sufficient.

6,700원

5

‘아리랑랩소디’ 연극에 표현된 광대 분장에 관한 연구

박윤희, 정연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10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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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에서 분장작업은 외적으로 배우를 다르게 각색하여 캐릭터를 설정하는 최소한의 단위이자, 캐릭터 표현을 위해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한 시각작업이다. 광대분장은 시각적인 작업 이외에도 캐릭터 메이크업의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된다. 광대의 속성은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표현되는 행위예술이며, 그에 따른 광대분장은 캐릭터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표출할 수 있는 미적인 표현방식이다. 본 논문은 무대분장에 나타난 광대의 표현특성에 따라 관객에게 전달되는 방법을 연구자가 참여한 5편의 ‘아리랑랩소디’ 연극을 통해 비교 분석하였고, 바보 광대의 유형과 분장특징을 고찰하여 광대라는 특정 캐릭터에 무대분장을 적용하였다. 연구 결과 바보광대 ‘희준’이라는 인물은 해학적이면서도, 오락적이고 시대적인 아픔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성과 비판적인 사고 사이에 연기라는 행위 앞에서 진정한 광대의 모습을 내외면적으로 표출하였다. 무대 위, 연극을 통한 바보 광대의 표현방법이 과도한 흰 칠과 무언의 표정으로 가려진 슬픈 웃음으로 가장되진 않지만, 분장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배우의 이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어 완성된 결말 또한 예측할 수 있었다. 본 논문은 연극 속에 표현된 무대분장을 통해 무대미술의 한 분야로 캐릭터를 다양하게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고, 무대분장이 표현이미지의 한 분야인 시각적인 캐릭터 예술로 공연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해본다.
Within the performance art, makeup is a discrete unit aimed to help establish characters by promoting performer dramatization and visual self-identification with a goal of expressing characters. Clown makeup has symbolic meaning in character makeup as well as effects of visual work. The clown is a performance art character that is expressed on the stage of the real world. Accordingly, clown makeup has aesthetically expressive manners that can be expressed through a diversity of styles. This study has comparatively analyzed the methods of expression toward the audience depending on the expressive characteristics of the clown wearing stage makeup through the five dramas of the ‘Arirang Rhapsody.’ After reviewing the types and makeup characteristics of the fool/clown, in addition, stage makeup was applied to the particular character named ‘Clown.’ According to the analysis, the fool/clown ‘Hui-joon’ unveiled the aspects of a true clown through acting between insight into humorous and entertaining contemporary pain and critical thought. A clown’s expression on stage may not be disguised by a sad laugh, putting on excessive white makeup and being non-verbal. However, makeup indirectly expresses an intended message to the audience through the performer’s image, making it possible to predict a complete conclusion as well. The scope of this study is limited to the clown’s facial image, which can be expressed through makeup and character personality via the performance art sector without such additions as costume, lighting and stage design. Hence, it is expected that this study would make a contribution to the establishment of the grounds for studying characters in a diverse manner as a field of stage art and the development of performing culture as a visual character art in the field of expressive image through dramatic stage makeup.

6,100원

6

명말 도시문화 변화와 서화수장 취미 전개 양상

배현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127-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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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 강남지역 서화 수장은 단순한 감상이나 취미의 영역을 넘어 수장품의 양과 질이 개인의 사회ㆍ경제적 지위와 품격 및 수양 정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수려한 환경과 경제적 발전을 배경으로 한 강남지역은 문화적 소양을 높이고 동시에 인재를 배양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명말 문인사대부와 부유한 상인, 예술가 등이 대거 모이는 지역으로 산수를 유람하거나 서화를 감상하는 문화가 성행하였다. 명대 강남지역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은 새로운 형태의 소비문화와 생활방식, 사치풍조 형성을 자극하였다. 부유한 문인이나 상인들의 ‘여가’를 즐기고자 하는 욕구를 만족시키고 개인의 문화적 수준이나 품위를 드러낼 수 있는 활동을 찾아 문인들은 장서 활동과 개인 원림 조성을 구체화하였다. 이는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서화 수장가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할 수 있는 문화적 원동력을 형성하여 소주를 비롯한 그 주변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강남지역은 명ㆍ청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서화수장풍조를 주도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명대 중기 이후 강남지역의 유명한 수장가인 韓世能(1528-1598)ㆍ韓逢禧 부자와 張丑(1577-1643), 王世貞(1526-1590)ㆍ王世懋(1536-1588) 형제, 項元汴(1525-1590), 李日華(1565-1635), 詹景鳳(1528-1602), 吳廷, 吳其貞, 董其昌(1555-1636) 등의 서화 수장 상황에 관해 그 수장품 내용 및 규모와 경향을 집중 분석하고자 한다. 당시 서화 감상과 창작 및 수장의 주체는 대부분 문인사대부들이었으며 이들은 서화에 풍부한 문학적 함의를 부여하며 寫意적 화풍을 구사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문인적 아취와 이상을 중시하였으며 다른 계층의 수장가들도 이들의 문화를 모방하고자 하면서 명말 강남지역의 화단에서 문인화 전통이 흥성하게 하였는데 이는 청대에 까지 이어졌다.
明末在江南地區的書畵收藏, 超過鑑賞或趣味的部分, 甚至收藏品的質量, 就是被人视为象征着私人社會經濟地位和品格以及修養程度. 特別是江南地區以秀美的自然環境與經濟的發展爲背景, 而提供了对提高文化素质和培养人才的基础. 明代江南地區的經濟不斷的發展, 引导了新形態的消費文化和生活方式以及奢侈風潮的形成. 有錢的文人, 或者商人要享受他們的‘空闲’生活, 爲了满足欲望, 他們都要顯示出自己的文化水平和趣味活動, 所以文人要具体化藏書活動和私人園林的造成. 而且在明末的江南地區中, 巨大的云集了文人士大夫和商人及書畵家等, 是游览山水或玩赏書畵之风非常盛行. 此是以在江南地區爲中心, 許多書畵收藏家能广泛的存在, 也是成爲了文化的基本動力. 因此, 包括蘇州及影響到其周边地区, 江南地區以至明ㆍ淸代在全國上成爲了主导書畵收藏風潮的中心. 明代中期以後, 在江南地區上有著名的收藏家, 就是韓世能(1528-1598)ㆍ韓逢禧父子, 張丑(1577-1643), 王世貞(1526-1590)ㆍ王世懋(1536-1588)兄弟, 項元汴(1525-1590), 李日華(1565-1635), 詹景鳳(1528-1602), 吳廷, 吳其貞, 董其昌(1555-1636)等, 把这些人的書畵收藏情況和其收藏品內容以及规模, 傾向都要深刻分析. 當時书画赏鉴與創作, 收藏的主体大槪是文人士大夫, 他們在書畵創作上, 赋予了豊富的文學含义, 还想要运用寫意的畵風. 这些人以文人的雅趣和理想爲重要, 也其他不同阶层的收藏家對於文人的文化风格要模仿, 在明末江南地區的書畵界上, 成爲興盛文人畵的傳統, 关于这些收藏的趣味一直延续到淸代.

6,400원

7

金代 塼彫墓의 주택 재현 연구 - 山西 稷山 馬村 金墓를 중심으로

백소훈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153-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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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성 직산 마촌에서 발견된 금대 단씨 씨족묘는 묘실들의 벽면에 정밀하게 가공된 전돌을 사용하여 지상 건축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우리가 중국과 한국의 공통된 전통이라 믿는 음택풍수의 추상적 陰宅 개념과는 다르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산자의 주택인 陽宅을 모방하여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직산 마촌 금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산서성 남부와 하남성 일대 금대 塼彫墓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으로 당시 이 지역의 무덤에 대한 독특한 인식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직산 마촌 금묘로 대표되는 산서지역 금대 전조묘들이 어떠한 설계의도와 구법으로 전돌이라는 반영구적 재료를 이용해서 지상의 목조건축을 모방 재현하였는지 분석하고, 이렇게 독특한 무덤이 출현할 수 있었던 배경을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첫째, 원래 목조인 건축부재를 전돌로 번안하는 과정에서, 무덤을 만든 塼瓦匠은 본인의 고유영역 뿐만 아니라 대목작과 소목작을 포괄하는 폭넓은 건축지식과 정밀한 전조공예를 기반으로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각 부재를 재현하였다. 묘실 안에 재현된 건축부재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장식성이 강한 금대 목조건축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둘째, 하나의 묘실은 하나의 주택을 의미한다. 묘실의 동서남북 벽면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의 건축군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건축군은 바로 합원식 주택의 전반부인 정당 영역에 해당한다. 단, 건축부재와 건축군 배치가 극히 사실적인 것과는 달리 건축의 전반적인 형식은 실제 서민의 주택이 아닌 왕공의 궁전에 버금갈 정도로 화려한데, 이는 고대의 고유한 厚葬풍습에 기인한 것이다. 셋째, 직산 마촌 금묘의 출현은 음택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극사실주의적으로 실체화 시킴으로써 중국 음택 예술의 흥미로운 단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대부터 꾸준히 계승되어온 음택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묘실보다는 부장품, 석곽 등을 매개체로 지상의 주택을 재현하였는데, 금대에 이르러 극도로 발달된 전조공예와 시공기술을 기반으로 묘실 자체를 온전한 주택의 모습으로 표현해는데 성공한 것이다.
Shanxi province known as the live museum of Chinse ancient architecture also has over one hundred of Song and Jin Dynasty brick tombs underground. Many of them imitate the structure and façades of wood structures found above ground and reproduced these to create an underground house for the dead. Ma village Jin tomb known as the greatest masterpiece of Jin brick tombs was researched in this paper. The Chinese have a belief that the tomb was the house for the dead for a long time. They decorated the tombs with carved stones or clay bricks which imitated wooden structural components of houses found above ground. This tradition began in the Han dynasty. In the Tang dynasty, the imitated components were used partially and independently. But since the Song dynasty, tombs began to adopt whole façades of wood structure buildings on chamber walls and each imitated component began to be integrated into a systemic order. The chamber wall was organized with platforms, columns and a roof just like the façade of a wooden structure building. Each component was also made to look like real wooden components but made with carved clay bricks. Since the Jin dynasty, tombs began to express a whole courtyard house in the chamber. First, the chamber plans changed from hexagon or octagon to rectangle; then the four chamber walls began to represent specific buildings like the main hall, the left side and right side buildings and the opera pavilion surrounding the courtyard of the house found above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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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實心的 佛學觀과 書畵美學의 相關性 연구

선주선, 전상모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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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는 조선 후기를 대표적인 서예가일 뿐만 아니라 고증학․훈고학․실학․금석학․불교학․서화론 등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다. 특히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독특한 禪觀을 견지하고 있었던 까닭에 ‘見性한 先生’ 또는 ‘海東의 維摩居士’라고 불리었다. 추사는 당시에 禪門에서 두루 행해지고 있던 看話禪을 철저하게 부정하였다. 당대 선종에 대한 불신과 비판은 실사구시 정신에 기인한 것으로 부처님의 경전을 통해서만이 부처님의 경지에 들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특히 당대 禪宗을 佛門의 이단으로 여겼고 達磨의 禪觀까지도 僧肇의 아류로 치부하였다. 그 대안으로 추사는『安般守意經』을 선의 바른 안목의 귀결 처로 삼아 선풍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참선의 바른 자세와 방법을 제시하였다. 또 寫經이나 佛經刊行 그리고 念佛功德을 크게 여겼음은 물론, 특히 晩年에 봉은사에서 지내면서 鉢盂供養과 刺火懺悔까지 하였던 신행불교의 큰 居士였다. 추사의 예술관은 선비정신에 입각한 詩理․書理․畵理․禪理 一體의 관념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추사의 예술관은 송대 문인들의 예술 정신과 이를 수용한 우리나라 선인들의 예술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불교관과 선의 원리를 채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선리적 서화경지는 외재적인 작품형식보다는 그 내재적인 정신세계에 가치를 둔 것이었다. 추사의 서화경지는 怪․奇․險絶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철저하게 看話禪을 부정했지만 살상 善知識의 話頭나 棒喝같은 것을 함부로 평할 수 없듯이 추사의 서화도 그것과 방불한 점이 있다. 결론적으로 추사의 문학과 불교와 서화 모두 장점 단점을 공유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외경의 추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아울러 그에 대한 ‘재평가’ 같은 운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Chusa was a representative calligrapher in late Joseon dynasty and had profound knowledge of documental archaeology, exegetics, realistic school of Confucianism, epigraphy, Buddhism and the theory of calligraphy and paintings. He was called ‘a master with realizing his nature’ or ‘Wéimójūshì(維摩居士, Vimalakīrti grhapati) in the East’ because he especially had an extensive knowledge of Buddhism and a unique perspective on Zen. Chusa thoroughly denied Kànhuàchán(看話禪, Zen-Buddhist meditation through dharma topic) which was commonly conducted in Zen-Buddhism in those days. Distrust and criticism of Zen-Buddhism resulted from the spirit of seeking truth from fact, and he believed that he could only achieve the stage of Buddha though Buddhist classics. He considered Zen-Buddhism as a heresy of Buddhism and treated Dharma’s perspective on Zen as an imitation of Sēngzhào(僧肇, a famous Buddhist master of the Eastern Jin dynasty). Alternatively, Chusa regarded Ānbānshǒuyìjīng(安般守意經) as a sequence of a correct perspective on Zen and suggested a correct posture and a means of Zen-Buddhist meditation with indicating a negative effect of the atmosphere of Zen-Buddhism. Also, he highly appreciated Xiějīng(寫經, copying Buddhist classics), Fójīngkānxíng(佛經刊行, publication of Buddhist classics) and Niànfógōngdé(念佛功德, to practice good deeds through an invocations to Buddha). He was a big grhapati of Buddhism who has practiced Bōyúgòngyǎng(鉢盂供養, monastic meal) and Cìhuǒchànhuǐ(刺火懺悔, repentance receiving the commandments of Buddhism) when he stayed in Bongeun temple in his latter years. Chusa’s perspective on art adhered to the thought of regarding all the principles of poetry, calligraphy, paintings and Zen as one based on the spirit of classical scholars. His perspective on art was systematized, applying his perspective on Buddhism and the principle on Zen, based on the art spirits of literati in Song dynasty and Korean ancestors who have accepted those of literati in Song dynasty. Therefore, his stage of calligraphy and paintings of the principle of Zen had more values on internal world of spirits than external form of artworks. Chusa’s stage of calligraphy and paintings could be strange, abnormal and extraordinary. He thoroughly denied Kànhuàchán(看話禪, Zen-Buddhist meditation through dharma topic), but his calligraphy and paintings resembled closely as Huàtóu(話頭, dharma topic) or Bànghè(棒喝, to rebuke with a rod) of a Buddhist priest of high virtue could not be thoughtlessly evaluated. In conclusion, Chusa’s literature, Buddihsm, calligraphy and paintings have both advantage and disadvantage. However, it is obvious that Chusa would be awed and respected as he has been so far. The reassessment about him would not be disappeared. Finally, whether or not Chusa’s calligraphy and paintings would be established as a characteristic of Korean beauty with supports of contemporary calligraphers and painters left for further discu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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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회화에 나타난 창의성의 개념 - 일품(逸品)을 중심으로

윤여범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2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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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에서 ‘창의성(Creativity)’은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동양예술에서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연구함은 동양예술에 현대적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창의성은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성립된 개념이므로, 서양예술에 나타난 창의성의 변화와 영향을 확인하여 그것을 동양예술에 유비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동양예술에서 ‘새로움’이라는 가치에 처음 주목한 주경현의 일품(逸品) 개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개념의 발전 양상이 서양과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 가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서양예술의 창의성은 기존 질서에 대한 파괴와 반항을 나타내는 반면 동양예술에서는 전통의 발전과 초월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창의성에 대한 서구적 관념에서 벗어나 폭넓은 예술관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In the modern art of creativity is the most important factor in assessing the value of work. Thus, actively studying the creativity in the Eastern Art thought that it could grant the contemporary value of the Eastern Art. However, because creativity is an established concept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in the West, to confirm the change and the influence of creativity in Western art and analogy it in the Eastern Art. These studies focused on starting from Jugyeonghyeon's Il-Poom (逸品) concept in Eastern art which the first one attention in the value of 'newness', the development aspect of the concept show any difference from the West. As a result, I was able to confirm that the creativity means tradition of development and transcendence in the Eastern art, while the creativity of Western art represents the destruction and resistance against the existing order. Through this, to escape from the Western notion of creativity and to form a broad view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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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인 한국무용 예술경영학 연구

이영희, 박권일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229-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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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작품의 공연행사에서 기존의 공연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연출과 안무작품으로 인하여 관객들에게 호평받지 못하는 일회성 행사로 그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무용예술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관객들을 위해서 한국무용 연출가와 안무가 및 제작자는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무용예술을 접목하여 공연하는 모든 예술작품의 효과증진을 위하여 무용예술경영의 연구가 필요하다. 무대종합예술작품은 거의 대부분 무용예술을 활용한다. 그만큼 무용예술은 우리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대종합예술의 일종으로 오페라작품, 뮤지컬작품, 연극작품, 음악극작품, 무용극작품, 마당극놀이와 창극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이러한 모든 종합예술작품은 무용예술이 함께 연희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무용예술은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째즈댄스등 무용예술 전체가 포함된다. 이러한 종목중에서 특별히 한국무용을 활용하여 공연예술이 효과적으로 공연되기 위해서는 무용예술경영학을 과감하게 그리고 필수적으로 도입하여 무대공연예술효과를 극대화 하여야 한다. 온갖 예술작품 중에서 무용만큼 우리와 가까운 예술은 없다. 우리들이 작품속에 자신의 마음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움직인다면 무용작품이 될 수 있다. 때문에 한국무용은 어느새 우리 가까이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까워졌다는 친근감이 어떤 의미에선 무용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무용작품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용예술의 공연현장에서 무용을 구하는 일, 이것이 새로운 한국무용 예술작품을 창출하는 길이다. 생동감 있고 변화있는 무용예술자품을 창작해야 하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무용예술작품을 창작해야 한다. 한국무용작품이 관객과 만나게 되었을 때 작품속에 한국적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어야 효과적이다. 한국무용작품의 공연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그리고 한국무용작품을 안무하고 연출하여 최종적으로 극장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경우에 무용예술경영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Som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performance are not acclaimed and can not be more than just a one time event due to trite directing and choreography that couldn't deviate from the custom. However, for the development of dance art, and for the audience, Korean dance director and choreographer, and producer are facing a reality that have to show the face of new challenges. Business Administration in Dance Arts is planned to be introduced for effective promotion of all works of art performing by combining the Korean dance art. Dance Arts in Business Administration may be used for various applications. Stage comprehensive art works almost take advantage of the dance art. So dance art has kept a close relationship with our daily lives. Stage comprehensive art is as follows. Opera, musical, theater, music drama, dance drama, Madangguk(One of traditional Korean performance) are also included in this category. In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field, Changgeuk should also be included(Korean traditional opera). All of these comprehensive art works include dance art. At this point, dance art includes the whole dance art : Korean dance, ballet, modern dance, jazz dance, etc. For this reason, for arts performances to be performed effectively by utilizing the Korean Dance especially among these events, should maximize the effect of the stage performing art by introducing Business Administration in Dance Arts boldly and essentially. nothing is closer to people than Dance among all art works. If we move by giving a special meaning and own mind in this work, this can be a dance work. For this reason, Korean Dance has always existed in close us imperceptibly. However, this familiarity by approaching may be seen to make the misfortune to dance in a sense. Perhaps lost the presence of Korean dance works. Dance and producer did not even try to look for self-reflection for too long. Saving the dance in the reality of dance art, this is a way to create new Korean dance art works. Should creative lively and changing dance art works, and that can give pleasure to the audience. When Korean dance work meet the audience, It is effective that contains Korean image in the work. In order to maximize the performance effectiveness of Korean dance work, And until finally lifting Korean dance works the theater to meet with the audience by choreographing and directing, arts management should be comb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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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魯迅)의 현실인식과 문학의 상징성

장경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8호 2015.08 pp.255-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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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예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근대화를 주체적으로 이루어내지 못한 한국의 예술은 현실에 대한 인식과 사회참여적인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현실도피적인 관념주의 예술로 치우쳐 전개되고 있다. 한국의 예술이 이렇게 반신불수의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남북 분단으로 인한 정치체제의 경색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근대’에 대한 반성과 개혁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루쉰(魯迅)이 사회현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견지했는지, 그렇게 해서 씌어진 글이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 살펴봄으로써, 예술창작에 대한 하나의 길을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다. 먼저 서론에서는 필자가 루쉰의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한국예술에서 근대성과 현실인식의 부재’에 대한 문제의식에 있다는 점을 밝힌다. 본론에서는 루쉰이 문학에 투신하게 된 배경과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루쉰이 형성한 현실주의 문학관이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루쉰 문학의 몇 가지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감상해 보고, 그 의미를 짚어볼 것이다. 끝으로, 루쉰의 삶과 문학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희망’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Without freedom of expression and diversity, development of art cannot be expected. Art in South Korea, is focused on escapism and conceptual art instead of awareness of reality and social movement, as the country failed to achieve modernization on its own. This state of paralysis in Korean art can be partly attributed to rigid political system as a result of division into South and North, but, more fundamentally, is because there has been no reflection on 'modernity' and reform yet. This study aims to propose a way to art creation by examining how Lu Xun saw the social reality and how he wrote his novels from his perspective. First, in the introduction, the author will explain that I became interested in Lu Xun's literature because I recognized the problem of 'lack of modernity and reality awareness in Korean art'. Later, the study introduces how Lu Xun came to devote himself to literature and how he recognized reality, as well as his realist literary view. Also, several novels written by Lu Xun and their meaning will be discussed. Lastly, the study will suggest the meaning of 'hope' found in the life and works of Lu X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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