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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35호 (9건)
No
1

顧愷之 傳神論과 蘇軾 傳神論의 비교 고찰

강교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5호 2017.05 p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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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교화 수단으로서의 도구적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고대 회화는 위진 현학의 등장과 함께 예술 작품으로서의 독립성을 부여받았다. 사물의 형(形)과 신(神)을 분리하여 사유하는 방식의 도입으로, 형태가 없는 신의 작품 반영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었고, 이러한 사유의 축적은 회화 영역에 ‘전신’이라는 명제를 탄생시켰다. 전신은 인물 혹은 사물에 내재된 정신을 작품상에 구현하는 것으로서, 이에 관한 해석 가운데 고개지와 소식의 견해가 대표적이다.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는 처음으로 전신을 제시하였으며, 북송(北宋)의 소식(蘇軾)은 고개지의 전신에 대한 주장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경험에 의한 구체적인 견해를 덧붙였다. 그러나 전신론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고개지와 소식의 견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같은 범주의 이론으로 간주함에 따라, 전신에 대한 정의가 다소 모호해진 경향이 있다. 고개지와 소식의 주장은 형상의 묘사와 함께 대상이 지닌 정신적 요소의 반영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출발점은 같지만, 실제로 그것을 구현하는 과정에 대한 관점이 크게 세 가지 지점에서 대조를 이룬다. 첫째, 전신의 구현에 활용되는 매개의 범주가 상이하다. 고개지는 눈동자, 털 등 대상의 내부 뿐 아니라 배경 또는 정황 등 대상의 외부까지도 전신의 매개로 활용하였다. 반면 소식은 전신의 매개를 대상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지점으로부터 구하였으므로 외부 요소가 아닌 대상 자체를 통해 전신을 구현하고자 했다. 둘째, 대상의 변형 허용 범위에 대한 견해가 상이하다. 고개지는 대상을 미화하거나 연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상의 신을 전달하는 매개에 대해서도 변형을 허용하였다. 반면 소식은 신을 전달하는 매개 이외의 요소에 대해서는 가감이 가능하지만 매개 부분은 자세하고 특징 있게 표현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셋째, 전신 구현의 목적이 상이하다. 고개지의 전신은 묘(妙)의 확보를 통해 창작자가 의도한 연출미를 추구하며, 소식의 전신은 대상이 본래의 그것답게 보이도록 하는 자연스러움[天]과 닮음의 확보를 통해 고유성 회복을 도모한다. 위와 같은 점들로 인해 고개지와 소식은 전신은 각각 구분되어 인식될 필요가 있다. 또한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성과 함께 그것이 나타나게 된 구체적인 원인까지 파악할 수 있다면, 고대 중국 회화 미학의 전신에 대한 정의와 그 구현 방법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다.
Ancient Chinese painting that was focused on instrumental role for edification from earlier ages was given independence as art works along with appearance of Neo-Taoism in Wei and Jin Dynasties. By adopting reasoning method that divides objects into shapes and spirits, discussion on reflecting shapeless spirits in art works was escalated, and This accumulation of reasons gave birth to the range of paintings of the premise of ‘Chuanshen 傳神’. Chuanshen is to realize spirits innate in figures or objects on art works, which is represented by Gu Kaizhi(c.344∼406)'s and Su Shi(1037∼1101)'s opinions among interpretations on Chuanshen. Gu Kaizhi suggested Chuanshen for the first time and Su shi added concrete ideas from his experiences along with arousing Gu Kaizhi's opinion on Chuanshen. However, existing study of Chuanshen tends to have vague definition to a certain degree because it does not clearly categorize Gu Kaizhi's and Su Shi's opinions, but regards them as theories in the same category. Gu Kaizhi's and Su Shi's opinions have same fundamentals in that both of them pursued reflection of spiritual elements that the objects have along with depicting shapes, but in fact, perspectives on the process in realizing it largely contrasts into three points of view. Firstly, the category of vehicles that are utilized in realization of Chuanshen. Gu Kaizhi utilized not only inner elements such as figures' pupils or beard(hair) but also outer elements such as backgrounds or situations as vehicles of Chuanshen. On the other hand, Su Shi tried to get realization of Chuanshen through the object itself, not outer elements, because he found the vehicles of Chuanshen from the point where the vehicles meet the essentials. Secondly, their opinions are contrasted in the range of allowing the transformation of the objects. Gu Kaizhi allowed transformation of vehicles that carries spirits of objects in order to glamorize objects or maximize dramatic effect. Su Shi, in contrast, suggested that vehicles should be expressed concretely and characteristically, although other elements except vehicles are allowed to be adjusted. Thirdly, the purpose to realize Chuanshen is contrastive. While Gu Kaizhi's Chuanshen pursued dramatic beauty that is intended by the creator through securing 'Marvelousness 妙', Su Shi's Chuanshen aimed to restore uniqueness through securing 'Naturalness 天' and likeness that make objects look as itself. By those perspectives, Gu Kaizhi's and Su Shi's Chuanshen need to be understood respectively in separated ways. Moreover, it can be much clearer to understand the definition of Chuanshen in Ancient Chinese Painting Esthetics and the method of its realization if it is possible to grasp both the discrimination between Gu Kaizhi and Su Shi and the specific causes of it.

5,800원

2

고구려 書寫文化의 형성과 전개

고광의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5호 2017.05 pp.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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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문헌과 문자 유물을 통해 고구려 시기 書寫文化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서사문화 전통을 이어받았다. 주몽은 원래 부여에서 성장하였고 상당수 부여계 유민들과 함께 남하한 것으로 보아 부여의 서사문화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漢나라의 서사문화를 받아들여 고구려 초기의 서사문화는 더욱 발전하였다. 고구려 문자 유물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4세기 이후 중국에서의 書體 변천의 주된 추세는 隸書가 쇠퇴하고, 章草가 今草로 발전하며, 行書와 楷書가 기본적인 완성을 이루었다. 당시 고구려에서도 隸書가 점차 쇠퇴하고 新隸體가 사용되었으며, 行書가 발전하고, 楷書가 성숙하는 과정이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어 고구려에서 書體 演變이 국제적 보편성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서사문화는 내재적 발전을 통해 고구려적 특징을 형성하였다. 수용된 다양한 서사문화적 요소들은 고구려 특성에 맞게 변용되어 독특한 서사문화를 창조하기에 이르는데 414년에 건립된 廣開土太王碑에 체현되었다. 비의 형태는 自然石柱碑 양식이고, 서체는 예서를 바탕으로 하여 전서․해서․행서․초서의 결구들을 가미된 독특한 서법적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비의 양식과 서체를 비롯한 고구려 서사문화는 주변 지역에 영향을 끼치는 등 동아시아 서사문화 발전에 공헌하였다.
This study examines the process of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Koguryo's narrative culture through related literatures and script relics. Koguryo inherited the tradition of Gojoseon's narrative culture. Considering that Jumong was grown up in Buyeo and moved south with large numbers of the migrants of Buyeo origin, it seemed that there was a reasonable influence by Buyeo's narrative culture. In addition, as Koguryo accepted Han's narrative culture, the narrative culture of the early Koguryo was developed more. The major trend of calligraphy style changes in China since the 4th century when the script relics of Koguryo were intensively discovered was that LiShu style was declined, ZhangCao style was developed to JinCao style and XingShu and KaiShu styles achieved the fundamental completion. At that time, LiShu style was gradually declined, XinLi style was used, XingShu style was developed and the growth of KaiShu style was found in Koguryo and it was known that the extending changes of calligraphy styles had international universality. Koguryo's narrative culture formed its own characteristics through immanent development. A variety of accepted narrative culture factors were transformed to fit Koguryo's characteristics, creating unique narrative culture and being embodied in King Gwanggaeto's stele built in 414. This stele was featured by natural stone statue and its calligraphy style was based on Yeaseo, featured by unique style combined with Jeonseo, Haeseo, Haengseo and Choseo styles. Such forms and styles of this stele influenced the surrounding regions and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narrative culture of East Asia.

7,200원

3

石坡 李昰應의 天機自發的 性靈境의 審美體現 考察

김명주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5호 2017.05 pp.5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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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朝鮮朝 末 정치가이자 書畵家였던 石坡 李昰應의 예술론에 관한 글이다. 석파의 人生歷程은 한편의 드라마이며, 그 드라마는 다시 예술이라는 이름을 빌어 세상과 疏通하고자 하였다. 李昰應은 조선조 말이라는 급박한 역사적 전환기에, 한 왕조를 부정적 강인함으로 이끌었던 인물로 더 많이 刻印되어 왔다. 그러나 그 落魄의 역정을 겪으면서, 정치적 擊爭속에서 실로 많은 작품을 창작한 예술가였기에 더욱 주목된다. 其實, 石坡의 삶은 10년간 擊爭의 정치적 行蹟을 제외하면, 自意든 他意든 落魄의 餘情과 隱居的 삶이었고, 그 기간에는 詩 · 書 · 畵로 자신을 털어버렸다. 그는 生을 마감하기 전까지 紀年作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왕실의 종친이었지만 자기철학이 있는 예술가의 삶 또한 소중히 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자기철학적 예술의 正相은 石坡 李昰應에게서 天機自發的인 性靈境의 審美로서 體現되었다. 이 性靈境의 審美는 단순히 기발한 그 妙相의 構想이 아니며, 效顰學步의 模擬가 아니라, 自然性情의 드러남인 天機적 妙思이며, 自發的 창작이다. 이와 같이 自然 · 自發的인 靈感을 의미하는 天機ㆍ性靈論은, 陽明의 心學으로 창작 주체자의 革新적인 自由獨創精神으로 表出되기에 이른다. 石坡 李昰應은 正統의 조선儒者이다. 본디 佛家에 심취한 석파였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자신의 人生餘情에서, 살얼음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처럼 禪家와 陽明의 心學은, 인생 끝자락에 이른 석파의 內面에서 그를 지탱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를 지탱해주던 석파의 自得的 天機는 비로소 眞書畵로 드러난다. 石坡 李昰應의 ‘天機自發的 性靈境의 審美體現’은, 天地萬物에 內涵 되어 있는 眞自然道를 스승으로 삼고, 生機로써 象形을 ‘陶冶性靈’하며, 塵俗에서 벗어나 自得한 石坡書畵의 眞我的 意境이 펼쳐진 審美境界라고 하겠다. 이는 ‘陶冶性靈’하는 석파 예술의 창작과정에서 有我의 강한 自覺的 창작 정신인 我法인 것이다. 이러한 審美學 境界는 自得과 自發을 지향하는 석파藝術의 革新的인 自由獨創精神으로 석파의 ‘我’에 집약되며, 石坡의 詩文에 관한 ‘有我’는 그의 內面自我에 內涵되어 있는 그 무엇인 天機에 自發的으로 이끌리어 표출된 性靈의 긍정적 審美體現이다. 이러한 석파 이하응을 老傅 秋史는 ‘그 天機가 淸妙하다’고 하였다.
This paper is on Seokpa(石坡) Lee Ha-Eung(李昰應)’s art theory who was a politician and a calligraphic painter(書畵家) in late Joseon Dynasty. Seokpa’s life was like a drama and in the name of art, he tried to communicate with the world through the drama. Lee Ha-Eung has been widely recognized as a figure who led a dynasty with negative toughness at an urgent, historical transition period of late Joseon. Going through that declining history and political bitter struggles, however, he was an artist who created a number of works, which draws keen attention. Ideals of self-philosophical art is embodied by Seokpa Lee Ha-Eung as aesthetic appreciation (審美) of realm of exquisite nature (性靈境). The aesthetic appreciation of realm of exquisite nature is not its novel, clever form or imitation of Hyobinhakbo (效顰學步, imitating others without judgment of right or wrong) but expression of natural temper through clever thoughts with Cheongi (天機, the secrets of nature) and voluntary (自發的) creation. Thus, Cheongi (天機) is a term which means natural and voluntary inspiration and it is ultimately expressed as a creator’s innovative free and original mind through practical ethics (心學) of Wang Yangming (陽明). Seokpa Lee Ha-Eung is an orthodox Confucian scholar in Joseon. He was initially absorbed in Buddhism but the practical ethics of the Zen sect and Yangming was support in his later years on the inside like water in the valley flowing under thin ice through his complicated life. Seokpa’s Chengi that supported himself is finally expressed as Kaishu painting (眞書畵). Seokpa Lee Ha-Eung’s ‘embodiment of Cheongijabal aesthetic appreciation for realm of exquisite nature’ is what was learned from the way of true nature (眞自然道) implied in all things in the universe; shaping for ‘cultivation of exquisite nature (陶冶性靈)’through a chance to be vital again (生機) and; the realm of aesthetic appreciation where artistic atmosphere of true self entering nirvana (眞我的) on Seokpa’s self-complacent calligraphic painting out of the earthly life lies on. It is a way of one's own expression (我法) - a strong, conscious creative soul for recognition of self-existence (有我) in Seokpa’s artistic creation process with ‘cultivation of exquisite nature.’ This realm of aesthetic appreciation is innovative free and original mind in Seokpa’s art that is oriented towards self-complacency and voluntariness, which is focused on his ‘self (我)’ and the ‘recognition of self-existence’ in Seokpa’s poetry and prose is embodiment of positive aesthetic appreciation for exquisite nature expressed through being voluntarily drawn by Cheongi, something implied in his inner self. Chusa (秋史) acclaimed Seokpa Lee Ha-Eung as ‘one whose Cheongi is pure, beautiful and at the same time, odd.’

7,200원

4

『포쇄일기』를 통해 본 읍치의 풍경

김병주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5호 2017.05 pp.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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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쇄일기(曝曬日記)』는 1871년에 박정양(朴定陽)이 쓴 한글 기행가사(紀行歌辭)이다. 이 때 박정양은 약 40여 일에 걸쳐 총 31개소의 읍치를 방문하였다. 『포쇄일기』에는 박정양이 이동 중에 머물렀던 숙소를 비롯하여, 읍치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 읍치 안에서 공간을 이용하는 방법과 절차 등의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박정양이 보았던 읍치의 풍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읍치의 “안온(安穩)”한 풍경이다. 박정양은 산으로 둘러싸인 읍치에서 “병풍”과 같이 “장포”되는 “안온”한 풍경을 보았다. 그런데, 읍치 안팎을 연결하는 길가, 바깥으로 물이 흘러나가는 수구는 안온한 읍치에 열림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곳에서는 안온함을 보완하기 위한 인공 숲, 즉 “수(藪)”, “수구막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로(大路)”라고 불린 간선도로는 읍치 안을 관통하지 않고 바깥으로 우회하였다. 성곽이 있는 경우에는 읍치 사방에 문을 두었지만, 한 곳의 “정문”을 설정하여 드나듦을 의식적으로 제한하였다. 이는 모두 읍치의 안온함과 관계되는 내용들이다. 다음으로, “인걸지령(人傑地靈)”의 풍경이다. 좋은 조건을 갖춘 터에 잘 포진한 읍치에는 “명기(明氣)”가 가득 차 있다고 했다. 박정양에게 터와 인간은 길흉(吉凶)의 관계로 맺어진 일체로 여겨졌다. 속리산 거북바위, 피장(皮匠) 남매와 산화(山禍) 이야기 등에서 이러한 인걸지령의 풍경을 더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환경의 인식과 경험의 방법, 사물을 받아들이는 공통의 기반이 있다. 본 연구는 『포쇄일기』 속에 담겨 있는 그 공통 기반의 일단(一端)을 와쓰지 테쓰로(和汁哲郞)의 풍토론, 오귀스탱 베르크(A. Berque)의 풍경론을 단서로 밝혀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서 드러난 읍치의 안온한 풍경, 인걸지령의 풍경은 아늑함과 따뜻함, 그리고 신체와 일치된 공간을 추구하는 “둥지의 속성”을 갖고 있다. 이는 곧 “둘러싸인 장소”, “아늑하게 보호된 곳”에 다름 아니다. 풍수의 지형 구도에 엿보이는 “안주의 원리”는 이와 같은 인간의 근원적 풍경을 이루는 심리적 근거로 해석할 수 있다.
『曝曬日記』は1871年朴定陽が書いたハングル紀行歌辭である。朴定陽は約40日にわたって總31個所の邑治を訪問した。『曝曬日記』には朴定陽が移動中に泊まった宿所をはじめ、邑治の外から中へ入る過程、邑治の中で空間を利用する方法などの様々な內容が記されている。朴定陽が見た邑治の風景を要約すると次のようである。 まず、「安穩」の風景である。朴定陽は山に囲まれた邑治で「屛風」のように「藏包」されている「安穩」の風景を見ている。ところで、邑治の内外を結ぶ道端、外へ水が流れていく水口は安穩な邑治に開きを要求する。このようなところでは、安穩を補うための人工の森、つまり「藪」「水口マギ」を見ることができる。「大路」と呼ばれていた幹線道路は、邑治の中を貫通せず、外を迂回している。城郭がある場合は、邑治の四面に城門を設けたが、一つの正門を設定して出入りを制限した。これらはすべて邑治の安穩とかかわる内容である。 次は、「人傑地靈」の風景である。良い条件を備えている場所に布陣した邑治には「明氣」が溢れている。朴定陽において場所と人とは、吉凶の関係で結ばれている一體と思われていた。俗離山の龜岩や皮匠兄妹の山禍の話などからは、これらの人傑地靈の風景をより具体的に伺うことができる。 特定の時代と場所に属する人々には、集團的に共有される環境の認識や經驗の方法、すなわち事物を受け入れる共通の基盤がある。本硏究は『曝曬日記』の中に含まれているその共通基盤の一端を、和汁哲郞の風土論、オギュスタンㆍベルクの風景論を手がかりとして解明しようとした。これにより明らかになった安穩の風景、人傑地靈の風景は、小こぢんまりとした暖かさ、身體と一体となる空間を求める「巣」の屬性を持っている。これは「囲まれた場所」「庇護されたところ」を意味しており、風水的地形の構圖に伺える「安住の原理」は、このような根源的風景の心理的根拠となっている。

6,700원

5

‘감성’의 측면으로 본 동서양의 공예론 - 윌리엄 모리스와 야나기 무네요시를 중심으로 -

신나경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5호 2017.05 pp.119-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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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서구 근대가 탄생시킨 순수미술(Fine Art)이 ‘유용성’을 배제하면서 모더니즘 시기까지 최고의 미를 구가할 때, 공예는 장인(匠人)에 의한 장식예술이자 응용미술로서 단지 부가적인 미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양에서는 윌리엄 모리스(W.Morris)의 미술공예운동을 계기로, 또한 동양에서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의 민예운동을 시발점으로 하여 각기 공예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환기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모리스와 야나기의 사상 속에 ‘공예(工藝, craft)’라는 개념은 결코 동일한 개념으로 보이지 않는다. 서양의 중세미술을 모범으로 하는 미술공예운동의 곡선적이고 우아한 ‘미술공예’와 야나기의 민예관에 소장된 소박하고 단아한 ‘민예’를 떠올려 본다면 이들 공예 간에 어떤 공통적인 조형상의 미적특질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록 야나기와 모리스가 똑같이 공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는 하지만, 동양과 서양이라는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해 온 그들의 감성이 가진 차이가 역시 그들의 예술관과 작품에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야나기가 모리스의 예술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존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구한 공예는 ‘회화적(미술적)’이었다고 비판한 점이다. 야나기의 이같은 모리스 비판 속에는 그가 의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형이나 색 등을 중시하는 ‘회화적인 것’ 과 ‘소재의 중시’ 혹은 ‘촉각성’에 관한 강한 대비가 있다. 공예가 소재를 완미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에 비하여, 회화나 조각에서는 상대적으로 형이나 색등의 요소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회화나 조각에 있어서도, 예를 들면 ‘마티에르 (matière)’라고 하는 용어에 나타나 있듯이 소재의 맛은 중요한 계기를 이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형태나 색이 주된 요소가 된다. 형태나 색이 주역이 되는 것은 작가들이 그들 자신의 이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며, 사실 근대 이후의 미술은 작가 자신의 이상을 표현하는 것을 주 목표로 해 왔다. 그러나 ‘나’를 중심으로 두고(주관), 그 내가 대상(객관)을 파악한다고 하는 주관-객관의 축에 따라 구성된 서양과는 달리, 대상과의 합일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미술은 항상 일상생활과 깊이 관련을 맺으면서, 대상을 향하는 의식도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촉각적이며 전신으로 반응한다. 본고는 이와 같이 감성이 다르면 감동받는 조형의 세계도 당연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 근거하여 ‘미술공예’와 서양의 감성, 민예와 동양(동아시아인)의 감성이 가지는 구조의 차이를 고찰해 본 것이다.
The craft has played a role of simply additional beauty as the decorative and applied art by the master craftsman when the fine art that the western modern times has given the birth was recognized as the best beauty until the modernism era by excluding the usability in the 18th century. The interest for the craft respectively starting with the head of Art and Craft Movement of J. Ruskin and W. Morris in the West, as the starting point with the Folk crafts movement of Yanagi Muneyoshi(柳宗悦) in the East has been aroused rapidly under such circumstances. By the way, how the concept called the crafts in the thought of Morris and Yanagi can be tied as the same concept indeed? It would be difficult to find the aesthetic characteristic of certain common in molding elements among these crafts if you recall the curve and elegant art crafts of Arts and Crafts Movement that the medieval art of West shall be the model and the simple and elegant crafts of Folk crafts that Yanagi pursued. Although Yanagi and Morris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crafts equally, it is because the difference that their emotion grown in a different cultural background called the East and West respectively as well are exposed in their view of art and work definitely. This paper would reconsider the difference of the emotion of Westerns in Art and Crafts and the emotion of Asian in Folk crafts on the basis of the point that the view of point about artwork has no alternative but to be different naturally if the emotion is different like this. By doing so, it aims to provide the key seeking the new direction of crafts in our climate of crafts world getting a lot of control still in the viewpoint overlooking the crafts in modern Western eyes after the Japanese colonial era. It has been noted that whereas Yanagi responded to the tactual sense like the ceramic sensitively out of especially crafts field, Morris responded to the pictorial art of textile or wallpaper, etc. mainly by comparatively analyzing the difference concretely in the aesthetic sensibility of Yanagi and Morris with the representative crafts they made or collected.

5,800원

6

주민 생활문화 기반의 마을 벽화 제작 의식 전환 필요성

심영옥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5호 2017.05 pp.14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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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마을의 벽화에 대한 제작 의도와 의식 변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현지 주민들과의 면담을 통해서 제시하고 향후 마을 벽화 제작시 좀 더 미적이고 가치 있는 벽화 제작을 제언하고자 연구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낙후된 마을이나 지역의 특수성을 알리고자 하는 마을에 벽화가 그려지고 있는데, 이러한 좋은 취지와 달리 마을 주민들의 불만도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마을의 벽화가 주민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벽화를 제작하기 전에 주민과의 소통과 생활문화에 기반한 마을 벽화를 제작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 마을 벽화 전환 의식의 요인으로 무분별한 벽화 제작, 지역 및 마을의 생활문화 이해 부족, 장소성과 작품 주제의 부적합, 체계적인 작업 과정 및 사후 관리 미흡, 주민과의 소통 부재 등에 대해 분석하였고, 그에 따른 주민 생활문화 기반의 마을 벽화 제작 의식 전환의 필요성으로는 지역 생활 및 문화와의 협력 관계 개선, 도시재생 정책과 주민 의식과의 소통, 마을 벽화 행정 지원에 대한 주민의 올바른 이해, 지역 자치단체 요구와 주민 생활문화와의 관련성 강화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앞으로 도시 미관 정비를 위해 시작된 각 지역의 마을 벽화가 도시의 흉물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본 연구에서 분석한 제작 의도나 제작 의식이 주민 생활문화가 기반된다면 관광자원으로나 미적 가치를 수반한 마을 벽화가 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uggest the necessity of changing the intention and consciousness of the murals in villages in Korea through interviews with local residents and to the propose of more beautiful and valuable mural painting in the future. For many reasons, murals are being portrayed in villages that want to know the particularities of the villages and areas that are underdeveloped. But also there is great discontent among the local residents. Therefore, we need to make village wall paintings based on communication with residents and living culture before making murals so that the murals of villages can be loved and loved by residents. In this study, we analyzed the factors of the town wall painting change consciousness such as indiscreet murals, lack of understanding of the living culture of local and villages, inadequacy of the theme of place and works, lack of systematic work process and lack of post management. And the necessity of changing the awareness of village mural production based on the resident 's life culture includes improving cooperation with local life and culture, communicating with urban regeneration policy and residents' consciousness, correct understanding of residents. And the strengthening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needs and the living culture of the residents. To prevent that the town wall paintings bacome hideous objects, it will become a town wall painting with aesthetic value as tourism resources, if the intention and the production consciousness analyzed in this study are based on the resident living culture.

6,100원

7

카타칼리와 압사라에서 본 감정표현 연기에 관한 이론적 고찰

이규리, 김지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5호 2017.05 pp.165-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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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류가 소통할 수 있는 문화 아이콘으로 ‘감정‘과 ’표현‘이라는 의미에 주목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표현이라는 예술의 상징적 의미를 체계화하려는 데 목적도 있다. 본 연구의 텍스트인 인도의 카타칼리는 전통적으로 남성 우월주의와 지역 의식적 민속무용으로 춤 동작과 표정, 정교한 손짓, 음악, 연극 및 무술을 포함하는 내면의 표현행위다. 또한 캄보디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앙코르와트가 있고, 그 성벽에 묘사된 1737점의 압사라스 부조에는 천상의 존재를 표현하는 춤추는 물의 요정 로밤 프레 리아차 트롭 압사라가 공연을 펼친다. 본 연구는 감정과 표현이라는 상징과 예술의 이야기가 가장 정교하게 발달된 카타칼리와 압사라를 통해, 인류의 감정과 예술로서 행위에 관한 의미화의 필요성에서 비롯된다. 이는 내면의 발로에서 ’감정과 표현‘이라는 예술적 상징체계는 물론, 인간과 예술에 관한 표현행위의 의미와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인류문화의 보고로서 문화 예술적 의미체계를 위한 분석이기도 하다.
This study focuses on the meaning of 'emotion' and 'expression' as a culture icon that human beings can communicate with. And there is a purpose to systematize the symbolic meaning of art of expression. The text of this study, Kathakali in India, is traditionally an expression of inner supremacy involving dance behavior and expression, sophisticated beckoning, music, theater and martial arts with male supremacy and local consciousness and folk dance. In Cambodia, there is Angkor Wat registered as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In the 1737 Cambodia, which is depicted on the wall, there is a dance fairy chimpanzee Rafamia Chathrop Apsara performing the performance. This study derives from the necessity of the meaningfulness of humanity 's emotion and art as an act through the most elaborate development of the symbolic and artistic stories of emotions and expressions, Kathakali and Apasara. This is an analysis for the artistic symbolic system of 'feelings and expression' in the inner footstool as well as the meaning of the expression act of human and art and the cultural and artistic meaning system as a report of human culture to develop it.

7,200원

8

趙壹 「非草書」의 書以載道的 유가미학 고찰

이순옥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5호 2017.05 pp.197-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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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동한 趙壹 「非草書」에 담긴 서예사상을 書以載道 차원에서 규명한 것이다. 서예사에서 동한(25〜220)은 서예가 실용적 측면에서 벗어나 점차 예술로서 독자적 지위를 구축해가는 시기로 간주된다. 이런 점에서 동한은 중국서론의 미학사상형성의 초보적 단계로 본다. 조일은「非草書」에서 초서가 실용성을 넘어 과도한 예술열기 풍조를 일으키는 현상에 대하여 비난하였다. 본고는 조일의 서예에 대한 견해를 ‘誠中形外’의 人格美學, ‘宏道興世’의 致用美學, ‘務內闕外’의 批評美學의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다. 조일은 사람들이 각각 기질이 다르다는 관점에서 인격과 藝品을 결합하는 인격적인 ‘심기’를 중시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예술작품이 예술가의 사상과 기질의 특징을 그대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심‧수‧서 합일의 서예미학관을 제기함으로써 후대의 ‘心手相應說’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초일의 초서열풍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경전을 위배하고 세속을 따라한다[背經追俗]’는 것이다. 조일은 이런 사유에서 시작하여 서예를 통해 담아내야 할 것으로 ‘유가 성현의 도를 넓히고 세상을 흥기시키는 것[宏道興世]’를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經과 道에는 유가성현이 문자를 만든 근본 이유와 그 문자를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올바른 정교적 효용성이 담겨있다. 아울러 조일은 천부적인 자질론에 입각하여 초서를 비평했다. 초서의 효용론적 입장에서 과도한 초서의 유행과 애호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조일은 ‘특히 안의 것을 힘쓰면 밖의 것을 소홀히 한다[務內闕外]’라는 측면에서 초서를 밤낮없이 쓰기만 하는 행위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처럼 조일은 유가미학관점에서 ‘書以載道’를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서예의 인격미를 갖춘 실용성, 공공성과 致用性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This study is to clarify calligraphic ideas implied in Zhao Yi’s Feicaoshu of East Han Dynasty. In calligraphic history, East Han Dynasty (25〜220) is regarded as a period when calligraphy gradually established its own independent domain as art beyond its practical aspects. In that sense, East Han Dynasty is seen as a beginning stage of forming aesthetical thoughts in Chinese calligraphic theory. In Feicaoshu, Zhao Yi criticized a phenomenon that Caoshu caused excessive trend of being too much enthusiastic for art beyond practicality. This study is to examine Zhao Yi‘s views on calligraphic in three aspects of personality aesthetics of ’what truly is within will be naturally manifested (誠中形外)’; aesthetics application of ‘broadening Confucian saint’s way and making the world prosperous (宏道興世) and; critical aesthetics of ’effort for one’s inside causes carelessness for the outside (務內闕外)’. Zhao Yi put emphasis on personal ‘temper’ that combines personality and artistic character in a perspective that people all have different temperaments. It is because a work of art expresses the artist’s thought and temperamental characteristic as it is. In addition, he provided posterity with rationale for ‘theory on consistency of heart and hands (心手相應說)’ by suggesting calligraphic aesthetics with heart, hands and calligraphy combined. The core of his criticism on Caoshu fever is to ‘go against scriptures and follow the secular [背經追俗].’ Starting from this idea, Zhao Yi argued ‘broadening Confucian saint’s way and making the world prosperous [宏道興世]’ that should be expressed through calligraphy. The scriptures (經) and way (道) here embody basic reasons that Confucian saints made letters and right religious and political utility to be realized through those letters. He also criticized Caoshu based on natural traits theory. He was critical to excessive popularity and preference on Caoshu on a pragmatic stance toward Caoshu. Zhao Yi pointed out problems in an action of thoughtlessly writing Caoshu day and night in an aspect that ‘effort for one’s inside causes carelessness for the outside [務內闕外].’ In a perspective of Confucian aesthetics, he argued ‘carrying ways through calligraphy (書以載道),’ which is a stance that emphasizes practicality, publicness and applicability of calligraphy with beauty of personality.

5,100원

9

예술과정과 예술결과에 드러난 윤리성에 관한 소고

이종선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35호 2017.05 pp.21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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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역할을 둘러싼 논의는 작품을 중심으로 美/善, 유미주의/교훈주의, 내재적 방법/외재적 방법 등으로 구별하여 전개되어 왔다. 그것은 근·현대적 개념으로 예술의 자율성과 비예술적 요소들과의 소통가능성을 중심으로 예술을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중심의 예술이해는 동아시아 예술의 근간담론을 형성해 왔던 修養論적 예술관을 담아내기에는 많은 한계를 드러낸다. 동아시아의 예술은 예술결과로서 ‘작품’보다, 예술과정에서의 ‘활동[노동]’을 보다 중요하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품은 자기 동일적인 고정된 존재이지만, 새로운 감상자를 만날 때 마다 새로운 해석을 낳으며 창조되는 속성을 갖는다. 그래서 예술활동의 전 과정, 창작→작품→감상이라는 가치창조의 구조는 영구혁명과 같다. 예술결과로서 작품이 끊임없는 감상의 창조라는 예술과정에 놓여 있기 때문에 결과로서 작품이 갖는 특징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다. 따라서 예술교육과 창작활동, 작품 감상 등을 포괄하는 동시대 예술 이해에 있어서도 예술결과와 예술과정으로 구분하여 미/선 등의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하겠다.
Regarding the role of art, artworks have been discussed in terms of beauty and good; aestheticism and moralism; and, intrinsic method and extrinsic method. And this is also a way to understand art by focusing on autonomy of art and communicability with non-artistic elements based on modern and contemporary concepts. However, understanding art by focusing on artworks reveals too many limitations to convey the view of art based on the ‘cultivation theory,’ which formed the foundation of art discussion in East Asia. Art, in this region, emphasized ‘action (labor)’ more than the ‘result (artwork).’ Furthermore, artworks are fixed, self-identical objects that are newly interpreted and created by each new viewer. For that reason, the entire process of artistic activities, i.e. the structure of value creation through creation → artwork → appreciation, is akin to permanent revolution. Artworks as results are relative and temporary as they are in the artistic process of endless appreciation and creation. Therefore, when understanding contemporary art that encompasses art education, creative activities, and appreciation, it is more reasonable to divide artistic results and artistic processes and approach beauty and good.

5,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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