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쇄일기(曝曬日記)』는 1871년에 박정양(朴定陽)이 쓴 한글 기행가사(紀行歌辭)이다. 이 때 박정양은 약 40여 일에 걸쳐 총 31개소의 읍치를 방문하였다. 『포쇄일기』에는 박정양이 이동 중에 머물렀던 숙소를 비롯하여, 읍치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 읍치 안에서 공간을 이용하는 방법과 절차 등의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박정양이 보았던 읍치의 풍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읍치의 “안온(安穩)”한 풍경이다. 박정양은 산으로 둘러싸인 읍치에서 “병풍”과 같이 “장포”되는 “안온”한 풍경을 보았다. 그런데, 읍치 안팎을 연결하는 길가, 바깥으로 물이 흘러나가는 수구는 안온한 읍치에 열림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곳에서는 안온함을 보완하기 위한 인공 숲, 즉 “수(藪)”, “수구막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로(大路)”라고 불린 간선도로는 읍치 안을 관통하지 않고 바깥으로 우회하였다. 성곽이 있는 경우에는 읍치 사방에 문을 두었지만, 한 곳의 “정문”을 설정하여 드나듦을 의식적으로 제한하였다. 이는 모두 읍치의 안온함과 관계되는 내용들이다. 다음으로, “인걸지령(人傑地靈)”의 풍경이다. 좋은 조건을 갖춘 터에 잘 포진한 읍치에는 “명기(明氣)”가 가득 차 있다고 했다. 박정양에게 터와 인간은 길흉(吉凶)의 관계로 맺어진 일체로 여겨졌다. 속리산 거북바위, 피장(皮匠) 남매와 산화(山禍) 이야기 등에서 이러한 인걸지령의 풍경을 더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환경의 인식과 경험의 방법, 사물을 받아들이는 공통의 기반이 있다. 본 연구는 『포쇄일기』 속에 담겨 있는 그 공통 기반의 일단(一端)을 와쓰지 테쓰로(和汁哲郞)의 풍토론, 오귀스탱 베르크(A. Berque)의 풍경론을 단서로 밝혀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서 드러난 읍치의 안온한 풍경, 인걸지령의 풍경은 아늑함과 따뜻함, 그리고 신체와 일치된 공간을 추구하는 “둥지의 속성”을 갖고 있다. 이는 곧 “둘러싸인 장소”, “아늑하게 보호된 곳”에 다름 아니다. 풍수의 지형 구도에 엿보이는 “안주의 원리”는 이와 같은 인간의 근원적 풍경을 이루는 심리적 근거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