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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18호 (11건)
No
1

조선시대 왕실음악의 시공간과 향유의 특징 -조선전기 用樂의 差等 사례를 중심으로-

송혜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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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왕실의 각종 규범과 일상생활에서 등위에 따른 品級을 달리함으로써 유교적 신분질서를 구현한다는 관점에 주목하여 조선전기의 왕실 예행과 연향에 적용된 음악의 차등 사례를 살펴보았다. 기존의 연구에서 『악학궤범』 권2의 내용을 중심으로 주악 인원과 복식에 근거하여 왕실 용악의 차등을 4가지 유형으로 제시한 바 있지만, 그 범위가 제한적이고, 차등의 사례를 주악인원과 복식규정에 치중한 것이어서 일반화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또한 복식이나 用器 등에서는 국왕 專用의 개념이 적용되고 있는데 용악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지 주목해보지 못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기존 연구 성과를 참고하되, 그 범위를 조선전기로 확장하였다. 또한 용악 차등의 문제를 주악인원과 복식규정에 한정하지 않고, 연향의 주체와 대상, 공간과의 관련성을 살폈고, 등위에 따른 ‘전용’ 개념의 사례가 있는지를 조사하였다. 이에 태종조에 제정된 예행과 조정연향악의 16종 사례, 세종조의 국왕과 왕세자조참의 사례, 성종조의 전정헌가와 전정고취 사례, 성종조 연향악 29종 사례를 토대로 차등의 양상과 전용 문제를 살필 수 있었다. 등위에 따른 차등은 연향의 주체와 대상, 연향공간에 따라 악가무의 구성, 악곡의 차이, 악곡의 갈래, 주악인원의 다소, 복식이 달리 적용되었다. 첫째, 주체자에 따라서는 ‘임금>왕세자>의정부육조>종친>예조’순으로, 둘째, 대상에 따라서는 ‘임금>중국사신>종친>기타’ 순으로, 셋째, 공간에 따라서는 ‘정전>경회루하>후원>편전>궁밖> 기타’의 순으로 용악에 차등을 두었음이 확인되었다. 둘째, 악가무의 구성은 등위가 높을수록 악가무를 다양하게 향유하였고, 등위가 낮아지면 구성이 단조로워져서 ‘①악+가+무> ②악+가> ③가’의 형태로 시행되었다. 셋째, 연주되는 악곡의 수는 등위가 높을수록 차수가 많았고, 낮을수록 적었는데 주악의 차수는 태종대의 조정연향악의 경우 최대 16곡, 최소 3곡이었다. 넷째, 음악의 갈래는 연향에서 주로 향악과 당악이 고루 쓰였으나 태종대에는 왕실의 연향과 서인을 대상으로 한 연향에서 용악의 제한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즉 서인의 연향에서는 오직 향악 노래만을 상연하였다. 다섯째, 주악인원은 대상에 다라 적절히 가감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한편, ‘전용’ 개념이 있었는지에 주목해 볼 결과, 성종조의 전정헌가는 국왕의 전용악대로서 국왕의 대행자들이 약식으로 에를 거행할 때 연주되는 전정고취와 구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악곡을 연주할 때 ‘黃鐘宮’은 국왕의 전용 악조로서 다른 신분의 사람들이 쓸 수 없음이 명시되었다. 즉, 조선전기의 왕실에서 상연된 음악과 춤은 언제, 어디서, 누가 향유하는가에 따라 악무의 구성과 악곡의 수, 악대의 편성과 인원, 악곡의 갈래에 차등을 두었으며, 이는 성리학적 유교사회에서 ‘上下를 분별하고 名分을 정하여 等威의 분별을 정하려는 왕실음악문화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하겠다.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differential music performance of the royal court music in the early of Jeoseon dynasty. With regard to the concept of the differentiation of the music performance in the royal court music, this paper was not limited to the existing studies such as number of the musicians and regulations of the dressing style, but focused on examin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subject, target and the space of the enjoyment. Moreover, this study was focused on the examination whether a particular type of music which had been serving exclusively for King ever existed or not, and expanded to the early times of Jeseon Dynasty. For example, the 16 cases of governmental ritual ceremony established during the reign of Taejong, the founder of the Jeoseon Dynasty, and other 29 more cases on the royal rites for King and Crown 殿庭軒架, 殿庭鼓吹, Yeonhangyack etc. in the reign of King Sejong through Sungjong were analyzed. In the result of this study, the performance of royal court music and dance in Jeoseon Dynasty placed on differential configuration of the musical group, number of the performers, band's formation and even to branch of music genre depending on when, where, who enjoy the performances. This sort of principle seemed to came out of the influence of the Confucian society that emphasizes the classification of hierarchy (上下 分別) and encourages the sensible justification (名分) according to social ranks.

6,600원

2

조선시대 ‘琴銘’의 도가미학적 고찰

강유경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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琴銘이란 거문고에 직접 새기거나 새기기 위해 지은 운문형식의 글로서, 그것을 통하여 기본적으로는 거문고의 내력과 제작 동기 등에 대해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특히 금명 작가의 거문고와 거문고 음악에 대한 인식과 태도 내지는 그들이 추구한 경지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조선시대 금명의 작자들은 대부분 성리학자나 선비들로서 그들은 현실에서는 修己治人이라고 하는 유학 본래의 입세지향적 특징을 띠고는 있지만, 그들의 정신적ㆍ내면적 깊은 세계의 한 편에는, 현실세계에서 초탈한 정신적 피양처를 추구하는 은자적 삶의 모습과, 자연과 동화된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天人合一ㆍ天人無間이라는 정신적 최고경지를 끊임없이 추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朱子의 성리학적 방법만으로는 도가적 궁극 세계인 無何有之鄕이라는 초탈한 세계를 묘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연히 도가적 경계를 통해 현실과 이상을 동시에 아우르는 미학적 최고 경계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그 대표적인 방법이 거문고와 琴銘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조선시대 琴銘의 작자들이 대부분 성리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琴銘 속에 道家的 이상향의 세계와 趣味가 녹아 있었던 것이다.
Keum Myeong 琴銘 is records inscribed directly or in order to carved on a geomungo. We can search history of writers geomungo and motive for production of it by means of Keum Myeong(琴銘). Especially, we can get history of the geomungo as an instrument of writer, moreover, realization and attitude for music by a geomungo and alos ultimate goal of Keum Myeong writers. Keum Myeong writers are mostly Sun-bi or neo-confucian scholars in Joseon Dynasty. They have characteristics to pursue Soo Ki Chi In 修己治人 (correcting one's mind and then governing others) in the real world. On the other hand, they constantly pursue reculsive life style and pursue such as Chen In Hap Il 天人合一 (the unite of universal principle and human being, that is, harmony between nature and human), Chen In Mu Gan 天人無間, spiritual highest perfection in the world of spirit. Much to my regret, neo-confucian methods have a limitation in approaching to the world of origin such as Moo Ha Yoo Ji Hyang 無何有之鄕 (the natural world, in which fact and value are united as one. That is, no fallacy in human society). Therefore, It can be inferred from this that the Joseon Dynasty period's Keum Myeong writers used a Taoist approach towards the boundary line of Chen In Hap Il or Moo Ha Yoo Ji Hyang although they were equipped with knowledges of Confucianism. The typical way to reach boundary line above mentioned is by geomungo and Keum Myeong(琴銘) Through This Study, We can ascertain that Keum Myeong writers attempted to reach the boundary line by adopting as a methodology a Taoist boundary line in a description of the stage of Chen In Hap Il while seeking a Confucian method in a theory of thorough building-character of reality.

7,600원

3

燕巖 朴趾源의 自得的 學藝意識과 得眞的 書畵認識

한경애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67-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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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巖 朴趾源은 노론 낙론학파의 명문에서 태어났지만, 당시 서울 지역의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색당파를 초월하여 여러 지식인들과 교류를 가졌다. 연암은 혈연관계로 보면 당시의 집권 세력과 관련이 깊지만, 실제로는 권력층에서 소외된 지식인이었다. 그는 다양한 지식인들과 교유를 하면서 활발하게 변화해가는 서울의 개방적 흐름을 소화해낼 수 있었다. 연암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박학의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학문적 개방성을 보여준다. 연암사상의 개방적이고 혼융적인 특성은 주체적 반성이 실천적으로 사유된 결과였으며, 성리학적 이념의 강압과 위선을 배격하고 세계와 주체의 진실을 회복하는 실천적 운동이었다. 연암의 학문관은 관점의 상대화와 객관화에 기인한다. 연암의 古와 今에 대한 상대적 인식의 전환은 인간 주체의 자각과 인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체로서 인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결과 연암의 창작 세계는 李贄의 陽明左派와 公安派의 性靈說을 수용해 假와 僞善의 배격, 眞心ㆍ童心, 人間平等思想이 강하게 나타난다. 연암의 眞論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인식과 주체의 진정성으로 이는 바로 眞機와 天機이다. 연암의 天機論은 만물의 실제성과 구체적인 현실성으로 환원된다. 즉 연암에게 眞은 주체와 대상을 모두 아울러 객관성과 사실성ㆍ일상성ㆍ진솔함을 드러내며, 주체와 현실을 실존으로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연암의 心에 중심을 둔 인식의 전환은 脫俗의 새로운 창작의식과 함께 행위 주체자로서 인간의 의지가 중시되었으며, 진정주의 의식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인식의 전환을 열어줌과 동시에 개성주의 미학이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燕岩朴趾源虽然出身老论洛论学派名门,但是在当时首尔地区的开放氛围之中超越四色党派,与许多知识者进行了交流。从燕岩的血缘关系来看,他虽然与当时的集权势力有着深深的关联,但实际上却是被权力阶层疏远冷落的知识者。他通过与各种知识者的广泛交友,吸纳了首尔日益活跃变化开放的趋势。燕岩思想基本上带有朴学结构,呈现出学问的开放性。燕岩思想上的开放、浑融特性,是实践性地思维主体反省的结果,也是排斥性理学理念的强压与伪善,恢复世界与主体的真实的实践性运动。燕岩的学问观源自观点的相对化与客观化。燕岩对于古与今的相对认识的转换,强调了人类主体的自觉与人类的重要性,刻畵了改变世界的主体之人类。其结果,促使燕岩的创作世界,接纳李贽的阳明左派与公安派性灵说、排斥仮与伪善,强力表现出真心、童心、人间平等思想。燕岩的真论是外部世界的客观性认识与主体的真正性,这正是真机与天机。燕岩的天机论,还塬为万物的实际性与具体的现实性。即,对于燕岩来说,“真”反映出主体与对象的客观性与事实性、日常性、坦率性,促使主体与现实作为实际存在的一致性。燕岩以“心”为主的认识转换,以其脱俗的新的创作意识一道,重视行为主体者的人类意志,并强化了真正主义的意识。这些倾向在开启转换认识的同时,导致了放大个性主义美学的结果。

9,000원

4

丁若鏞 회화의 傳神論 연구

김찬호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11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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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若鏞의 회화인식은 사회개혁가로서의 정약용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그 주변 당파간의 원시유학의 원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각으로 접근하여 살펴보아야 진면목을 헤아릴 수 있다. 그래서 정약용의 핍진사상은 신형묘합의 중용적 문예인식에 기반한 그의 회화관에 깊숙이 투영되어 있다. 정약용의 회화인식은 위진 이전의 사실적 그림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개지의 전신론에 있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逼眞形似的 측면을 통해 寫意的 측면을 제대로 담아내어 神形妙合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寫意畵를 그린다는 구실로 삼아 形似를 무시하는 문인들의 창작활동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다. 繪畵는 書藝에 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는 물론 실체적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行爲藝術이다. 이런 점에서 정약용의 회화관은 以實得眞에 기초한 形似를 통한 寫意畵를 추구한 신형묘합의 美學精神을 드러내고 있다. 정약용의 신형묘합의 문예인식이 그의 회화관에 일관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정약용의 회화세계는 形似지향이 아니고, 그렇다고 寫意에 치우치지도 않는 神形妙合의 中庸的 審美認識을 보여준다. 그 이는 象人貌物의 傳神觀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후기, 근대사회로의 移行期에서 丁若鏞은 神形妙合의 中庸的 審美認識을 토대로 本源儒學의 전통적 이상과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書畵世界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하여 정약용은 神중심적 심미인식에 의해 억압되어 왔던 것들을 복권시키고, 形중심적 심미인식에 의해 은폐되어 있는 것들을 드러내며, 그동안의 심미활동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창안해 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약용의 神形妙合의 심미인식은 진취적인 미적세계를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정약용은 마음을 그림에 구현할 수 있었다. 실제로 逼眞形似的 측면을 통해 寫意的 측면을 제대로 담아내어 神形妙合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寫意畵를 그린다는 구실로 삼아 形似를 무시하는 문인들의 창작활동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데서 알 수 있다.
Tasan Chŏng Yakyong's view of calligraphy and art showed the aesthetic awareness of the middle way that was neither just pursuing Hyeongsa (形似: representation) nor leaning toward Saŭi (寫意: creative intention). His view superbly combined the spirits and forms. In the late-Chosŏn period that was in transition toward the modern era, Chŏng Yakyong tried to contain both the traditional ideal of original Confucianism and the possibility of the new way. To understand this aspect of Chŏng Yakyong, one has to illuminate the broad sensitive leanings of him that dynamically operated in the back of his Confucius philosophy summarized as 'Kyeongsech'iyong (經世致用)'. To reveal his thoughts through this field of arts and senses seems very important in understanding his inner world deeply. In spite of this importance of his aesthetic theory of calligraphy and art, there have been not much works except on his literature theory. The characteristic of Chŏng Yakyong's views on calligraphy and art would reveal its true shape when considered in conjunction with the various artistic trends and philosophical contexts since the 18th century. It analyzes his inheritance and overcome of the Namin school that had influence on the directions of his calligraphic and artistic theory and considers the literary and artistic trends of the 18th and 19th century. By doing that it placed his thoughts in the intellectual context of the time and his views on calligraphy and art clearly emerged. One can see this from Chŏng Yakyong's artistic leanings. In Sanchŏngachipuch'aun (山亭雅集又次韻), written by him at his age of 68 (1829), he wrote "I gave up to become the Samchŏl (三絶: master) of poetry, calligraphy, and art because I had no talents." Though here he deplored modestly that he could not become the master of poetry, calligraphy, and art, it rather showed the essential values that he put on poetry, calligraphy and art. His words in Kiyeron (技藝論) that says "how we could have a new artistic world if we ignore every calligraphers since Wang Xizhi (王羲之), by only celebrating his as the best" showed his universal relativism. His artistic leanings can be confirmed also by that he composed numerous poems of about 2,500 throughout his life. Through this, it shows that Chŏng Yakyong was a superb artist as well as a philosopher. He sharply criticized the works of the previous calligraphers with his deep understanding and discernment on calligraphy and art and presented a new way and virtues needed for calligraphy and art. He thus left a big footprint in the history of the late Chosŏn art.

7,500원

5

조선후기 화조화와 에도시대 伊藤若冲화풍과의 연관성 연구

이중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145-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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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회화에 영향을 미친 새로운 외래적인 신화풍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주로 중국으로부터 유입에 관하여 지적되어 왔다. 반면에 일본에서 유입된 화풍에 대해서도 지적되기는 했으나 그 대부분은 조선통신사와 관련한 내용에 한정되어 있다. 내용에서는 대부분 전통화와 관련한 것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특히 조선후기의 화조화 영역에서 에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1602-1868)의 소위 ‘寫生派’라는 신화풍의 유입이 없었을까 하는 점이다. 조선후기가 되면 실학과 같은 사상사면에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일본과의 문화적 교류는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회화사에서 보아 양국간 교류에서 정확한 이입 루트는 아직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와 다르게 나타나는 사생적인 신화풍의 화조화나 동물화에서 의외로 일본화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 일본화란 신기하게도 에도후기의 대표적 사생파 화가 이토 쟈크츄(伊藤若冲, 1716-1800) 화풍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놀랄만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18세기 에도시대 이토 쟈크츄의 사생화풍은 그 연원에서 보아 서양화 내지는 중국의 南蘋派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본의 에도시대 박물학 붐으로 인한 도보작성에서는 서양 과학서를 통한 사실묘법, 그리고 중서절충 양식인 남빈파의 영향이라는 두 방향으로 이입되어 새로운 사생화파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렇게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화풍의 계보면에서 보아서, 조선후기 특히 화조화에서의 사생적 묘사 ➞ 일본의 사생화파에 속하는 대표적 화가 伊藤若冲 ➞ 서양 과학서의 사실화 내지는 중서절충 양식의 南蘋派에 이어지는 것이어서, 화풍의 근원에서는 역시 서양화로부터 흘러오는 루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즉 조선후기 화조화의 사실화풍은 서양화의 간접적 영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The study on the inflow of Japanese painting style reflected in that of Joseon is nonexistent. However, the cultural interchanges between the two countries were brisk and included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The channel to introduce Japanese style in paintings has not been uncovered. Despite this fact, the new style include the Bird and Flower Paintings and animal paintings, which are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the Real Landscape painting, cannot exist except for the potential chance of being influenced by the Japanese style. For the Realistic style Paintings(寫生體) in the Edo era, the sketches of nature result from the West or Nam bin school in China. In making illustrated guidebooks caused by the boom in natural studies, realistic depictions used in Western science books and the mixed style, Nambin school(南蘋派) are two main streams to create the Realistic style Paintings. Traced back to the origin of the Realistic style Paintings, when it comes to the genealogy of paintings, the order goes like this: The realism in Western science books or the mixed style named Nambin school is successive to the style of Ito Jakuchu’s(伊藤若冲), one of the leading artists in realism, followed by that of the Bird and Flower Paintings in the late Joseon paintings. Basically, the origin of painting style seems to have been found in that of the West. In other words, it is not an overstatement to say that the realism found in the painting of flowers and birds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is the equivalent of that of the West in a roundabout way.

8,500원

6

박생광의 전통인식 연구 -민속과 무속을 중심으로

김용국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18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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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을 전공으로 하는 자가 미술작품을 두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일지 모른다. 그러나 박생광은 민속과 무속을 소재로 한 작품을 창작하였다는 점이 필자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무속은 지역마다 그 특성이 드러난다. 지역에 따라 巫服, 巫歌, 巫具, 모시는 신이 다르다. 과연 화가는 무속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였는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였는가? 하는 것은 무속학의 입장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본 논문에서는 박생광의 작품 가운데 민속과 무속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을 선별하였으며, 선별된 작품의 소재를 분석하였다. 결과적으로 박생광이 인식한 우리민족의 전통이란 민속과 무속, 무속과 불교가 서로를 포함하고 서로에 포함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무속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곳과 저곳, 자아와 타자, 삶과 죽음을 연결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서울의 굿당과 제주도의 무신이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주술적 힘으로 맺힌 것을 풀어주고 일상사의 막힌 것을 뚫어준다. 민속은 우리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소박한 기원의 내용을 담아낸다. 그러기에 꽃 하나, 새 한 마리에도 의미를 담았고 이 들을 쌍으로 배치하여 부부를 뜻하게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민중의 기원은 담아낼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맺힌 것을 풀어내는 주술적 힘을 갖지 못한다. 박생광은 민속과 무속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민속과 무속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양자가 어떻게 결합되고 연결되는 지를 화폭에 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불교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려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민속과 무속, 무속과 불교, 불교와 민속이 우리 민족의 기저에 뿌리내린 전통의 얼임을 깨달았다.
It is against to write on a work of art, I think. However Park Saeng Kwang made his work which was created about folk and the shamanism. This made me write them. The shamanism has diversity every region. According to their region clothes, song, instrument, of shamanism, and their God. What were painter's means and expressions of shamanism. What they do express their thought! At a glace, it was very interesting. I divided his work(Park Saeng Kwang) into folk and shamanism and chose one of them. As a result, Park Saeng Kwang thought that Korean traditional customs contain custom and shamanism, shamanism and Buddhism. And they recognized their characters were molded by them. Shamanism connects here and there, self and other people, life and death. This rise above the time. These are meet at Seoul 'Gut dang' and 'Jeju Musin' in the same place. The power of incarnation ties and unbind in our daily lives. The folk put people's prayer in their lives. Therefore a flower, a bird in paintings have many implications. And sometimes, it means a couple. But it does not contain people's wishes. As it has not the power of the incarnation. Park Saeng Kwang knew that folk and shamanism are not same substance. He wants to draw them attached to union and connection. And their subject is Buddhism. In a process of works, He knew that these ideas fastened itself on our people.

9,300원

7

한국 근대 기독교미술에 나타난 ‘土着化’의 含意-箕山 金俊根 筆 '텬로력뎡' 揷圖를 중심으로

정성은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23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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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세기 말 개항기에 기독교가 한국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근대 土着化된 기독교미술의 圖象에 담긴 함의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 연구범위는, 1895년 게일 선교사(James Scarth Gale, 1863-1937)에 의해 영국소설 The Pilgrim's Progress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토착화된 도상으로 그리게 된 기산 김준근 필󰡔텬로력뎡󰡕42장의 삽도가 중심이다. 기산 김준근 필 󰡔텬로력뎡𐁕은, 기독교 복음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얻고 커뮤니케이션의 매체로서 국가 간의 이해와 교류의 수단일 뿐 아니라 삽도를 통하여 시각적으로 재배치하여 보는 이의 시각을 기획하고 표상해내는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그 의미있는 도상들이 자연적 존재로 간주되면서 “만들어진 전통”에 위치하거나 “영원한 현재”로 표상되곤 하였다. 더욱이 이것은 개항직후 생성된 근대적 제도와 시설 속에서 만들어진 인쇄물이기 때문에, 지적 교양의 일반화를 실현시키는데 일조하였으며, 이는 곧 근대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기산 김준근 필 󰡔텬로력뎡󰡕 삽도가 첫째, 선교사들이 조선에서의 선교의 당위성을 시각이미지로 쉽게 전달하여 기독교인으로 전도하기 위해 그려진 삽도임에도 불구하고 삽도 속 조선인들은 이미 기독교인이 되어 있거나 또는 반드시 기독교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만들어 놓고 출발한 점. 둘째, 기독교인으로서의 내면과 영혼의 진전 상태를 표현함에 있어서 조선사회의 신분상승의 구조 과정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 셋째, 삽도 속 등장인물들이 전반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무표정과 무관심. 넷째, 시선의 방향과 경직되고 활기없는 움직임. 다섯째, 가늘고 거의 변화가 없는 철선묘를 주로 사용한 기법상의 특징 등에 담긴 복합적인 시선에 주목하였다. 그 결과 󰡔텬로력뎡󰡕삽도는, 선교사들이 카메라와 같은 기산 김준근의 손을 통하여 토착화된 조선풍 크리스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었고 그것을 토착화라는 명목으로 안심시키면서 우리들의 내면을 세뇌화시켜 기독교라는 외부의 권력에 은연 중에 복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를 결국은 토착민 우리들 스스로, 기산 김준근이라는 화가의 대표적인 손에 의해서 탄생되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왜냐하면 근대적 시각 체계의 주도권을 우리들 스스로가 갖지 못함으로써 타자에 의해 재현된 이미지가 우리들 안으로 그대로 내면화됨으로써 우리 스스로 우리의 모습을 타자화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한국 근대 기독교미술에 나타난 토착화 현상의 시원이라 일컬어지는 기산 김준근 필 󰡔텬로력뎡󰡕은 기산 김준근의 개인적 표현의 결과라기보다는 자율적 수용과 타율적 수용의 맥락에서 매우 복합적이면서 혼재된 양상으로 다뤄지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더불어 이같은 맥락에서 토착화된 한국 근대 기독교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The purpose of the paper was to analyze implications implied in images of Christian art naturalized in Korean modern times in the process that Christianity was accepted in the age of civilization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research scope included 42 illustrations of the first Korean version of The Pilgrim`s Progress' illustrations by Gisan Kim Jun-geun, which were portrayed as naturalized images in the process of translating an English novel, the Pilgrim's Progress by a missionary, Gale(James Scarth Gale, 1863-1937) in 1895. The first Korean version of The Pilgrim`s Progress' illustrations by Gisan Kim Jun-geun not only was a means to get knowledge and information on the Christian gospel and to understand and exchange each other between nations as a medium of communication but also played a role in designing and representing viewers' perspectives relocating them visually through the illustrations. As a result, as significant images were considered to be natural beings, they were located in “tradition made up" or represented as “eternal present” as well. Moreover, since it was a printed matter made in modern systems and facilities produced immediately after opening ports, it had been evaluated that it had contributed to realize universalization of intellectual culture, and that it had pursued the very modernity. However, the paper paid attention to the following issues: Firstly, the first Korean version of The Pilgrim`s Progress' illustrations by Gisan Kim Jun-geun got started based on a premise that Koreans in the illustrations had already become Christians or that they could not help becoming Christians although they were illustrations portrayed in order to evangelize make Koreans into Christians by missionaries delivering easily the appropriateness of mission work in Chosun(Korea) through visual images. Secondly, when expressing the development state of their inner side and souls as Christians, they were treated as images of the structural process of a better social status in Chosun society. Thirdly, lack of facial expressions as well as indifference displayed generally by characters in the illustrations. Fourthly, direction of their vision and stiff and lifeless movements. Fifthly, complicated vision etc. contained in characteristics of techniques mainly employing description of wires which were thin and has few changes. As a result, for illustrations of The Pilgrim`s Progress, missionaries made Chosun-style Christian images naturalized by hands of Gisan Kim Jun-geun like cameras, and they played a role to make the Koreans to obey foreign power called Christianity without knowing it by brainwashing Korean inner world easing our minds under the name of its naturalization. However, it was a problem that these images were eventually born by ourselves, natives, by hands of a typical artist, Gisan Kim Jun-geun: The one's images became the others' images by ourselves as images reproduced by others were internalized into us as they were because we were not able to have leading position of modern visual system. Accordingly, it will be appropriate to treat the first Korean version of The Pilgrim`s Progress' illustrations by Gisan Kim Jun-geun which was called as the origin of naturalization phenomena in Korean modern Christian art as very complicated and mixed features in the context of voluntary and involuntary acceptance rather than a result of individual expression by Gisan Kim Jun-geun. In addition, it would be possible to verify a question of identity of Korean modern Christian art naturalized in this context.

7,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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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渭 大寫意畵의 狂逸美 硏究

신은숙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263-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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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위(1521-1593)는 明나라 末期의 문인이다. 浙江城 山陰사람으로 자는 文長, 호는 淸藤, 天池生, 田水月 등을 사용하였다. 서위는 시문, 서화, 희곡에 능했고, 희곡 연구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淸代의 王夫之는 명대 중⋅후기를 특징지어 ‘天崩地解’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해체될 만큼 당시는 정치⋅사회⋅경제 같은 외형적 측면부터 인간 정신의 내면적 측면까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극심한 변화가 발생하고, 모든 전통적 도덕이나 이상, 관념 등이 재평가 받는 시대였다. 狂의 시대를 살아간 서위는 대사의화라는 회화예술을 창안하며, 狂逸의 경지로 나아간 예술가이다. 宋代 이후에 등장한 정주학 속에 융합된 道⋅佛의 영향은 寫意畵 양식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였다. 道⋅佛로부터 逸格과 奇⋅拙⋅醜 등 범주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양명심학의 영향아래 狂의 새로운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서위는 양명심학의 광의 양식에 悲憤慷慨的 悲壯美와 以醜見美的 醜美, 脫中和的 奇怪美, 그리고 脫規矩的 放逸美를 통일하여 ‘광일’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광의 예술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대사의화를 창안한 것이다. 서위의 삶과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매개 개념은 ‘狂’이다. 서위는 예법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고, 반규범⋅반전통적인 사상을 갖추었으며, 소탈하고 자유분방하여 유가에 얽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情’을 앞세워 예술 창작활동을 전개하였다. 서위가 제기한 ‘情’개념은 시대의 산물이자 시대의 부정이며 시대를 앞서간 진취적인 것으로, 서위가 주장한 ‘聖人論’, 즉 ‘사람을 이롭게 하는 자는 모두 성인’이라는 생각과 함께 서위를 狂人, 광일미로 인도한 핵심개념이다. 狂의 系譜를 계승한 서위가 전개시킨 狂逸미학은 결국 굳은 생각, 폐쇄된 질서를 해체시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려는 노력이고, 狂의 예술이 역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며, 그것은 바로 聖人의 길에 이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徐渭乃明末文人,浙江山阴人,字文长,号曾用青藤、天池生、田水月等。徐渭对诗文、书画及戏曲颇有研究,他在戏曲方面展示了超凡的能力。清代的王夫之评价明代中后期是个“天崩地解”的时代。那时从政治、社会、经济等外在的东西到人类精神等内在的侧面发生了天翻地覆的变化,是一个对所有传统道德或者思想、观念等进行了再评价的时代。生活在“狂”时代的徐渭创造了一个叫做大写意画的绘画艺术,这是一种通过狂逸的境界来表达的艺术。在宋代以后登场的程朱学,融合的道、佛的影响,给写意画的样式带来了相当大的影响。它们受到阳明心学的影响,以全新的‘狂’的样式赢得了地位。徐渭在阳明心学的狂的样式里统一了悲愤慷慨的悲壮美、以丑见美的丑美、脱中和的奇怪美、脱规矩的放逸美,开创了‘狂逸’的境界。名副其实的开创了将‘狂’的艺术引导到最高境界的大写意画。贯通于徐渭的人生和艺术世界的一个重要的媒介概念就是“狂“。徐渭是一个“不喜欢艺法”的性格,具有反规范、反传统的的思想,不仅“脱俗自由奔放,不受儒家思想的束缚”而且是把‘情’放在第一位进行创作的人。徐渭提出的‘情’的概念是当时时代的产物,是对时代的否定,是一个超时代的进取性的概念。他所主张的‘圣人论’,即“把人理性对待的人都是圣人“的想法把徐渭引导为狂人、狂逸美学范畴。承继了狂系的徐渭所开展的狂逸美学最终成为使死板的想法和封闭的秩序解体,探求新视觉的努力,打开了狂的艺术在历史上全面登场的道路。因为这就是到达圣人之路的方法

6,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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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젭 간트너의 관점에서 본 동양미술

민주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29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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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미술사학에서 바젤학파를 대표하는 요젭 간트너의 미술사 방법론으로부터 동아시아 미술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간트너에 주목한 까닭은 그의 ‘先形象(Präfiguration)’ 이론이 기존의 양식사와 정신사로 대표되는 서양미술사학의 한계를 넘어서서, 예술창조의 근원을 밝히는 가운데 인격성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그의 예술의 근원적인 성격에 대한 주목은 다름 아닌 동양예술의 본성을 가장 잘 해명해 줄 수 있을 단서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트너는 미술작품은 형식으로부터만은 결코 완전하게 설명될 수 없다고 말하고, 미술의 역사를 단순히 ‘양식사의 편리한 그물’로 포착하는 일면성을 경계한다. 그가 형식외적인 요소들에 주의하는 것은 본래부터 이 계기들에 우위를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름 아니라 이 계기들이 미술 그 자체의 창조과정이라는 변증법적인 대결과정에서 한쪽의 성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트너의 관점과 이론은 동양의 서화의 세계, 특히 수묵화의 세계가 지향하는 근원형상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주며, 작가의 인격성을 중시하는 문인화의 정신을 해명하는데도 크게 도움을 준다. 간트너의 관심은 본래 형식과 구분될 수 없는 결합 가운데에서 ‘작품의 내적 핵’에 관여하는 내용의 문제이며, 실로 내용적 선형상의 문제이다. 그는 이미 선형상적인 것의 특수한 가치를 발전시켜온 동양, 특히 중국과 일본의 미술에 관해 언급하고, 그것이 현대의 지구적 양식의 앞길에 수행해야 할 역할이 더없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자신의 학설을 확장하기 위해, 아마도 가장 결실이 풍부한 영역의 하나는 동아시아 미술과의 내적인 관련이라고 조차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학설은 널리 미술사학의 일반적인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행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동양미술의 과제 해결에도 직접 기여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earch for the possibility to illuminate the eastern art from point of view of Joseph Gantner's methodological thinking in art history. The reason why the author paid attention to Gantner was that his theory of pre-figuration threw light on the artist's personality by making clear the origin of artistic creation, beyond the boundary of western art history. His observation on the basic ground of artistic creation would be a clue to explain fruitfully the nature of eastern art. Gantner argued that work of art could not be explained completely by form, and he was cautious of grasping the history of art through a convenient net of history of style. His perspective was always opened to not only cultural history or history of ideas, but also technological and social dimension. The notice on elements outside form or outside art was not for allowing predominant position. These elements were constituents of dialectical confrontation process of artistic creation to be significant part. His emphasis on artist's personality, mental state and human attitude was also made from his point of view that artist was the only person in charge of this dialectical process and the only stage of making a work of art. He indicated that eastern art, such as Chinese and Japanese art, had developed the peculiar values of the pre-figural, and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the role to play in the future way of planetary or global style. In order to extend the scope of his theory, he demanded especially the inner correlation between Western art and the East Asian art. In this sense, his theory contributed both to the development of art history in general and rightly to resolving the issue of our Eastern art. Gantner's theory became a bright light to illuminate the distinctive quality of Eastern art, though it was developed entirely from Western viewpoint.

7,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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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아트에 표현된 여백의 조형성 -본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정연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32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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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Void Space)은 예술분야를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미의 표현방법이다. 여백은 어떠한 현상이나 실체에 대한 철학적 고찰로부터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의 문제까지 다루어지기에 그 범위는 더 광범위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배경은 여백 자체가 비움의 미학이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며 생각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것들을 다양하게 표현하여 왔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무한한 가능성과 수용을 함축하고 있으면서 작가의 정신적 배경인 내적의지를 표현하는 여백이라는 창조적 공간을 조형적 측면에서 이해하였다. 여백의 미를 바디아트에 표현함으로서 바디아트의 새로운 표현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의의가 있다고 사료되어 본 연구를 시도하였다. 본 연구를 위한 작품에서 본 연구자의 마음이 투영된 서정성을 여백의 조형언어로 표현 하고자 하였다. 바디라는 공간 안에서 하나의 형태로 표현된 형상보다 그 형태를 조화롭게 만드는 다양한 비움과 채움의 '여백'을 본인 작품을 통해 바라보았다. 여백을 통한 바디아트 디자인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바디아트디자인 창출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연구방법은 이론적 고찰과 본인의 작품제작을 통한 실증적 고찰을 병행하였다. 이론적 고찰을 통해 여백의 조형적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본 연구자의 작품에 표현된 외적형식에 따른 내적의미를 찾아 결론으로 도출하였다. 작품에 담겨진 여백의 내적의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傾向性이다. 미완성처럼 보이는 여백의 효과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재라고 할 수 있는 한지에 침투하기 쉬운 먹을 이용하여 우연의 효과를 이용한 경향성의 작품을 구성하였다. 그림의 선과 형의 형상은 여백에 의해 더욱 실이 되고 이렇게 표현된 실에서 여백의 허는 실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백의 우연성의 형성에 따른 경향성의 형성은 작가의 중요한 정신을 이루고 있다. 둘째, 含蓄性이다. 본 작품의 여백에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최소화된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안에 연상과 상상을 통하여 상징성을 띠고 있는 함축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려지지 않은 공간이고 설명되어지지 않은 공간이지만 많은 함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여백의 공간이 조형적으로 최소화된 공간이라 하더라도 관찰자에게 무한성을 의미하는 최대의 효과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본 작품에서는 복잡한 것이 아닌 단순한 것, 고요한 것, 생략의 함축성을 의미하고 있다. 셋째, 時空間性이다. 본 작품에서의 여백은 바디라는 제한된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바디의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공간적 한계를 넘어 무한한 외부 공간과의 연결을 유도하고 있다.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관찰자의 경험이나 지각에 따라 바디라는 공간 안에서만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밖까지 연결시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넷째, 虛實相生性이다. 여백은 비워놓은 공간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하나의 형을 의미하는 실이다. 즉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이러한 비원진 허에서 작가의 정신적 실제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백은 허이지만 더 깊고 진실한 실을 의미하기도 하며 실을 완성시키는 공간이다.
This paper tries to propose the new approach of expression in body arts by utilizing the void space, the creative space that contains limitless potentials and acceptance and expresses the internal will, the mental background of an artist, in a body art. The 'void space' in a diverse kind of emptiness and filling which harmonizes the forms rather than the shapes expressed in one form of a space 'body' that was examined using my works. This paper aims to propose new concept in creating designs as well as implement new approaches of body art design. The methodologies are theoretic deliberation and empirical research by producing my works. The results are presented below. The first feature is tendency. The effects of void space which seems an incomplete creation on the works of tendency by using the accidental effects and the ink that can easily penetrate in a Korean traditional paper, the representative material of Korea. Accordingly, the formation of tendency through a formation of contingency of void space is the important element of an artist's spirits. The second is implication. The void space in this work doesn’t have an explanation for a minimized space. However, it has the implication that is symbolic through an imagination and association. The void space implies the maximum effects meaning there is an eternity to the audience while it is not drawn nor explained. Next is the spatio-temporal. The void space in this work goes beyond the limited space, the 'body'. It doesn’t divide the boundary between the inside and outside of a body but tries to connect limitless external space beyond spatial limit. The work can create a story by connecting the outside without observing only the space 'body' in accordance with the experience or awareness of the audience upon appreciating the works. The final feature is truth and mutual sustainability. The void space is not an empty space but the truth means one form in a work. In other words, although it seems that nothing exists, the void space implies the mental substance of an artist in such emptiness. The void space means more profound and authentic truth to complete the truth.

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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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양예술학회 彙報

한국동양예술학회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8호 2012.04 pp.349-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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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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