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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16호 (11건)
No

一般論文

1

題畵詩文에 나타난 高麗畵論의 價値觀 硏究

김대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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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회화는 본격적인 회화활동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다만 500여년의 오랜 세월동안 회화가 창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작품이 거의 없으므로 회화의 기법이나 양식적인 면에서는 상고할 길이 묘연하다. 다행히 회화에 관한 題畵詩文이 문헌에 남아 있어 이를 통해 회화사상을 단편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 고려초기에는 회화를 통하여 勸善戒惡하게 하는 ‘以藝爲政’의 기풍이 주를 이루어 회화의 존재가치인 사회적 효능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유교적 이념에 입각하여 통치체제의 확립과 왕조운영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勸善戒惡의 성격을 띤 인물화나 풍속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따라서 회화의 효용과 기능을 중시하였고, 그림의 효능은 道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藝道一致의 畵道論’으로 간주된다. 한편 위정자의 修身 자료로 여긴 天變地異의 경관을 그린 것은 ‘誠意正心’의 修養論을 파생시켰고, 이는 유가에서 강조하는 ‘성의정심’의 미학적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산수화의 발달을 가져왔으며, 산수화도 단순한 경관묘사뿐만 아니라 자연과 합일되어 작가의 마음이 녹아든 ‘情景交融’의 예술경계를 지향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회화의 본질적 가치관과 연계된 고려화론을 제화시문에서 발췌하여 화론으로 정립시키는 데 의의가 있다.
Paintings of the Koryŏ period are important because they signaled the beginnings of the proper art activities. Yet, despite of its 500 years of creative production, there is no way to examine the techniques or forms of Koryŏ paintings because there were no extant paintings left from the period. Fortunately we have a document called Chehwasimun (題畵詩文) that contained discussions on paintings to enable us to examine the Koryŏ theory of paintings. The early Koryŏ period emphasized the social function of the paintings as the 'Iyewichŏng (以藝爲政: do politics with art)’ sentiment was at the center that expressed 'Kwŏnsŏnkyeak (勸善戒惡: to promote the good and warn against the evil) through art. Therefore during this period, portraits or genre paintings with the message of Kwŏnsŏnkyeak flourished that were in coordination with the demand of the time and the ruling body that tried to establish the governing system based on Confucian ideology. Thus they emphasized the utilities and functions of paintings. Also, as the utilities of paintings were in close relation with Tao, it could be characterized as 'the painting theory of Yedoilch'i (藝道一致: art and Tao is the same). On the other hand, there were paintings that depicted the landscape of 'Ch'ŏnbyŏnchii (天變地異: the changes of the sky and the differences on the earth). These are considered as the material for rulers' self-cultivation and brought about the 'Sŏngŭichŏngsim (誠意正心: true meanings and right mind)' theory of cultivation, which was the aesthetic translation of 'Sŏngŭichŏngsim' emphasized in Confucianism. This tendency led to the development of landscape paintings that came to target the artistic achievement of 'Chŏngkyŏngkyoyung (情景交融: The fusion of the mind and the scenery)' that not only described the landscape but the spirits of the artist in unity with the nature. This paper is meaningful in that it establishes a theory of paintings by extracting Koryŏ theory of paintings from the materials in Chehwasimun, in connection with the essential values of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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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6-17세기 한글편지의 서체적 특징 -여성 한글편지의 중심축 변천에 대한 사상사적 고찰을 중심으로

정복동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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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여성 한글편지를 분석해보면 16세기는 계층․성별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중심축이 중앙에 맞추어졌지만 17세기 중반부터 왕후를 비롯한 여성들이 쓴 한글편지에는 세로획〔ㅣ〕으로 중심축이 이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성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종성에서 일정 정도 변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간의 연구는 이러한 중심축의 변화 양상에 대하여 조형적 측면에서 논해온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었지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관해 사상적 측면에서 논한 글은 없다. 본고는 중심축이 중앙에서 우측 세로획〔ㅣ〕으로 변화된 것은 단순히 조형적 측면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변화가 일어난 근본원인은 왕후들의 마음가짐 즉, 욕망 절제와 관련된 곧은 마음을 지향하는 예학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17세기는 16세기의 한국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정치적으로 예의가 강화된 시기이다. 특히 장렬왕후를 비롯한 인선, 명성, 인현왕후는 예송논쟁 등 정치적으로 그 중심에서 생활하면서 愼獨과 誠․敬으로 禮를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것은 筆劃을 곧고 바르게 하는 직선형의 直筆로 나타났다. 이처럼 세로획을 直筆化 하는 것은 바른 마음을 올곧은 필선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存天理 去人欲’의 윤리론적 심미사유가 중심축을 우측 세로획으로 맞추어 그은 것이라고 본다. 이를 미학적 범주로 말하자면, 직선형의 직필로 드러난 實劃은 작가의 感性이나 사상 등의 심미경험을 표현한 것이다. 곧 17세기 왕후의 서체에서 직필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주체와 객체, 내면과 외면, 정신과 형식이 합일된 심미경지이다. 왕후들의 감성과 사상․정신 등의 심미경험을 靜中動勢의 直筆로 생명화시킨 직필은 왕후의 學德과 倫理實踐的 삶과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다. 왕후의 서체에서 直劃은 簡潔․沈着․飛動․바름, 온화 등 안정된 유가미학의 中和精神이 意象된 것이다. 이러한 심미정신이 궁녀들의 상상력을 유발하여 虛實相生의 공간 분위로 자모음의 길이를 변화 있게 하되 통일하는 식으로 드러났다고 본다. 이에 철저히 세로획〔ㅣ〕으로 중심축을 이동하여 均平․均齊한 대칭의 결구로서 생명력이 충만한 아름다운 궁체를 완성한다. 이에 본고는 17세기 궁녀들의 장법이 17세기 왕후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우측 세로획〔ㅣ〕에 중심축이 맞추어졌을 것이라는 개연성과 16세기 한국 성리학의 정착과 함께 17세기에는 정치적으로 예의가 강화되어 유가의 미의식에서 왕비들의 서체가 형성된 점을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20세기뿐만 아니라 현대 여성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 지속적으로 선호되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 장법(중심축)의 특징을 탐색한 결과는 시기를 알 수 없는 諺書의 公的․私的 필사 자료에 대한 시기를 유추할 수 있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Analyzingletters written in Korean by women in the Chosun Dynasty, the central axis was in the middle of a character regardless of a class and a gender in the 16th century. However the central axis was shifted into a vertical stroke〔ㅣ〕inletters written in Korean by women including empresses by the middle of the 17th century. This kind of shift in a final consonant could be found in letters written by men as well. There wasn't an article of the ideological consideration about the reason the shift occurred even though it has been studied aesthetically. I shall explain why the central axis was shifted into a vertical stroke〔ㅣ〕. Its fundamental reason was simply not the aesthetic aspect but the empress mental attitude - the control of their desires concerning the Ye-thought. Manners was reinforced in the 17th century with the Neo-confucianism of the 16th century settled in Chosun Dynasty. Expecially Jangryol empress, lnseon empress, Myeungseung empress and Inhyeon empress were the main people in the politic case such as Yesong studies and did their best to practice Ye(禮) from Shen tu(愼獨), coherent sincerity(誠), and intentional seriousness(敬). Their attitudes were expressed in a linear stroke. What they wanted to express using a linear stroke resulted form the ethical aesthetic thoughts. When it comes to its aesthetic category, the vertical stroke makes a writer express their aesthetic experience, their emotions or their thought. In other words the vertical strokes written by empresses were not the simple forms but the unity forms of the subject and the object, the inside and the outside, and the mental and the convention. Their vertical strokes included their academic achievement as well as ethical lives and mind. Also their vertical stokes represented the aesthetic thoughts in Chin Confucians like simplification, moderation, fairness and so forth. Such an aesthetic thoughts caused them to exercise imaginations. In the end the length shifts in consonants and vowels were begun. The full vitality and beautiful Gung-Che was completed by shifting the central axis into a vertical stroke〔ㅣ〕as the symmetry structure. I identified the probability that the central axis in characters written by maids were also shifted identically like empresses' and the fact that empresses' strokes were formed from the aesthetic thoughts in Chin Confucians in 17th century. Modern women in the 20th and the 21th centuries have been interested in this trend. Accordingly the result investigat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central axis is expected to help us infer the exact times Hangul books including both public and private materials were 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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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북한 민속무용의 차이점 연구

이소정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7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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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전통적인 춤의 전승은 궁중무용의 경우, 국립국악원에서 보존하고 있고 종교무용들은 지금도 종교의 현장에서 보존 및 계승되고 있다. 그리고 기방무용인 예인무용은 중요문화재나 지방문화재로 지정하여 특정인에 의해 원형이 보존되고 있다. 또한 민속무용의 경우 당초에는 노동의 현장에서도 추어 왔으나 지금은 풍속이 거의 없어졌지만 마을축제로 전승되거나 보존단체에 의해 전승되어 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직업무용단에 의해 창작된 이른바 한국무용이 공연예술로 발전되고 있다. 반면 북한의 경우, 전통적인 궁중무용이나 각종의 종교무용, 그리고 교방무용과 같은 춤은 전승되지 않고 민속무용만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춤도 옛날 그대로 순수하게 원형을 지키면서 이어가는 춤은 없고 현대화하여 재구성한 춤들이다. 그 예가 농악과 탈춤 그리고 소리춤 같은 것이고, 아니면 8․15해방 후 새로 복원한 춤들이 많다. 그러나 북한과는 과거 문화의 단절이 있었고 거기에다 민속예술에 대하여도 과소평가되어 왔지만 알고 보면 북한의 민속예술도 우리 민속의 최고 이상에서 창출된 것이고, 또한 나름대로의 예술적 형식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의 대표적 민속무용을 보면 우리민족의 근면한 노동생활과 아름다운 풍습을 반영하고 있는 서민창작무용으로서 춤에 서민적 정서가 차고 넘치고 지방적 특색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춤구도와 춤가락도 자연스럽고 누구나 쉽게 추고 즐길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 있다.
Since North Korea officially subscribes to materialism (more specifically atheism) and communism, religious dances are totally nonexistent, and the more aesthetic dance forms enjoyed by the gentry (yangban) class are excluded as well. And folk dances in North Korea have not preserved the old forms of feudal times, but have either been altered to express a more revolutionary spirit, or replaced by so-called “mass games” involving thousands of people. Thus the folk dances in North Korea exhibit entirely different features from our own, in theory as well as in practice, and this raises the academic question of how we are to register and characterize these differences in our own history of Korean dance. Just as the flow of South Korean dance history since 1945 can be divided into (i) the New Dance Period, (ii) the Adoption Period, and (iii) the Development Period, so the flow of North Korean dance history can be divided into (i) the Self-Reliance (juche) Ideology Period, (ii) Interregnum [literally, the “Reign according to the Last Instructions (of Kim Il Sung)”], and (iii) the Post-Kim Il Sung Period. These divisions will enable us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Korean dance in relation to the sociopolitical changes that have taken place in the two Koreas. If folk dance is understood in terms of its dictionary definition, then this does provide an understanding of it common to both North and South Korea. However, it is a salient feature of folk dance in both Koreas that its forms and characteristics can more or less remain traditional or undergo transformation. Take, for example, the transmission of traditional dances in South Korea. The royal court dances are preserved by the National Institute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s. Religious dance traditions are preserved and transmitted even nowadays by various religious centers. And gyobang dances are designated as important cultural properties and their original forms are preserved by specialists who widely disseminate them among students and laypeople. As for folk dances, they used at first to be performed even in the workplaces, and although that custom has almost disappeared nowadays, the dances are still being transmitted through village festivals and by preservation societies. Alternatively, these folk dances, under the rubric of “Korean dance”, may be created freely and developed as performance art by many professional dance troupes. In North Korea, on the other hand, only the folk dances are being transmitted, and not the traditional court dances, the religious dances and the gyobang dances. But even these folk dances are not preserved in their pristine original states, but instead are modernized and reconstructed. Cases in point are farmers’ folk music, mask dance, balladic dance, and various dances newly restored since the independence from Japan. Although North Korea had loosened its bond with the past, and North Korean folk arts have been underappreciated, nevertheless its folk arts originate from the highest ideals of our folkways, and it is possible to view them as having their own distinctive aesthetic. North Korea’s representative folk dances reflect the Korean people’s diligent work ethic and beautiful customs. Created by the common people, they flow with folksy sentiments, and impart the local flavor of their own region. Not only that, but their rhythm and composition are natural and easy for anyone to perform and to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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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新韓屋의 미학적 문제와 지향 -다물장원을 통해 본 신한옥 기술 현대화 과제와 문화적 연속성 확보 사이의 긴장관계

김경수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10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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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건축에서 형식주의와 윤리성 사이의 문제는 건축미학적 담론의 핵심적 주제이다. 새로운 건축기술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문화적 전통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 건축계가 보여주는 현대건축과 전통건축 분야의 완벽한 분리 상황을 극복하는 과제가 신한옥에 주어진다. 다물장원은 그에 대한 구체적 실천의 하나이며, 이 논문은 그에 대한 건축미학 측면의 반성이다. 한옥의 가치는 한옥이미지가 환기하는 정서적 분위기에 대한 복고적 향수에 압도되어 간과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다물장원은 저탄소 친인체건축으로서 전통한옥이 갖는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신한옥을 실천하는 일에는 전통 기법과 현대적 기술 사이의 충돌과 선택 속에 미학적 문제와 그 해결과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지붕과 벽, 바닥의 구조와 재료 및 공법 등에서 자연재료의 사용방식은 물론 그 환경성능이나 비용에 대한 판단이 미학적 결정과 수시로 얽혀 들어가는 것이다. 한옥의 지붕 형식 현대화는 전통 형식에 대한 복고적 선호나 모더니스트의 거부 자세를 넘어서야 한다. 다물장원에서는 신한옥의 경사지붕과 처마를 비롯하여 팔작지붕과 맞배지붕 및 서까래와 당골막이 등 성능을 고려한 지붕구조와 재료 및 상세 결정이라는 구체적 기술적 과제 속에 미학적 문제가 대두되고 해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울러 목구조 형식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벽체와 바닥 재료의 환경성능과 인체 친화성을 확보하는 처리방식 속에 시각적 인지가능성을 넘어서는 다양한 건축미학적 문제가 있음을 논하였다. 또한 현대적 버내큘러나 키치로 판단할 수도 있는 두 사찰 건물 사례를 통해 한옥 형식을 재현하는 양극단의 경향을 비교하였다. 문화재급 전통 수공예를 반복하는 호화한옥의 복고적 자세보다는 공업적으로 생산되는 대중의 저렴한 한옥에서 좀 더 건전한 건축미학적 정직성을 볼 수 있다. 다물장원은 한국의 현대예술로서 이 땅의 풍토와 기후에 적응하는 기술을 시도하면서 문화적 연속성을 구현하는 신한옥을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한다는 미학적 지향과 실천을 보여 주고 있다.
The conflict between formalism and ethics is the key theme in Korean contemporary architecture. The struggle between the adopted new architectural technology and the existing cultural tradition is ubiquotous. Korean architects have special task of resolving the hard barrier between the modern vs. traditional sectors of architecture. Damulland, the new-hanok experiment site, is one of the concrete praxis upon such a challenge, and this article is an aesthetical reflection on it. The revivalist nostalgia of emotional milieu from the imagery of hanok has overridden Korean architecture-world forcing the general public blind over the genuine value of traditional hanok. In the Damulland the author keeps attention on the value of traditional hanok as a low carbon architecture and at the same time as a health raising architecture. In the practice of new-hanok, many aesthetic problems collide and are selected continuously within the traditional hanok craft and the new modern technology. The aesthetic decision, the judgement on the use of natural material and construction of roof, wall and floor, and the assessment of their cost and physical-environmental performance are always intermingled together. It is recommended that we overcome the revivalist preference or the rigid modernist refrain from the moderization of roof form in hanok. We could find out in Damulland, the raise and resolution of the aesthetic problems within the concrete technological tasks of decision of roof structure, its material and detail, considering their performance and style-the slant and eaved roof, the rectangular rafter etc.. Furthermore, many aesthetic problems which are extended over the tangible visual perception are embedded in the very treatment of the wall and floor materials, maintaining the wood frame structure form and at the same time satisfying the performance and health criteria. In addition the author discussed extreme trends of hanok representation comparing two cases of hanok temple which could be regarded as examples of modern industrial vernacular and/or kitsch. We can find out aesthetically more honest and healthy attitude in the ordinary hanok of industrial production rather than the opposite craft-oriented carpenter's superfluous luxurious revivalist repeat. The aesthetic intention and practice of the Damulland as a contemporary Korean art shows a case of realization of cultural continuity taming the construction technology for Korean land and we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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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야금 기초연습 체계와 연습곡 연구

송혜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139-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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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12현 가야금과 25현 가야금의 기초연습 체계와 연습곡 개발을 위한 방법론 연구이다. 필자는 「가야금 교수이론 체계 정립을 위한 기초연구」(2002)를 통해 가야금 교수이론에 대한 학술적 논의와 奏法 학습 이전의 통합적인 음악성 향상을 위한 학습 목표의 설정의 필요성을 제안하였다. 아울러 효율적인 연주를 위한 자세와 연주법을 주제로 한 「가야금 초기 연습 방법론 연구(1)-신체 운동 원리와 연주 자세」(2004)를 발표하였고, 가야금 기초연습의 합리적인 체계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연습곡 개발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관련 교재 연구와 실습을 진행해왔다. 기존의 남북한의 가야금 교본 류 저작물과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등의 기악 교재, 일반적인 음악 교수법 등을 참조하여 가야금 기초 학습 및 연습곡 체계를 구상하는 한편, 대학원에 ‘가야금교수법’이라는 학과목을 개설하여 실기전공자들과 함께 집중적으로 토론하면서 연구의 기초영역을 넓힌 결과를 종합하여 본 논문을 작성하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12현 가야금과 25현 가야금의 기초연습 체계와 연습곡 개발을 위한 논의와 그동안의 실습을 통해 검증과정을 거쳐 ‘기본연습과정’과 ‘응용연습과정’으로 구분하여 4가지의 연습체계로 구성하였다. 일반 기악연습의 예와 남북한의 가야금 교본 류에 적용된 방법론을 살펴본 결과 보다 효율적인 연습을 위해서는 단 권으로 이뤄진 교본보다 연습체계와 연습곡이 각각의 목표에 맞게 설계되고, 지도자가 학습자의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연습을 위한 창의적인 다양한 응용연습체계와 이에 맞는 연습곡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본 연구에서는 12현의 응용연습과정에서는 ‘표제적 음형 연습을 위한 연습체계와 연습곡’을, 25현 가야금 응용연습과정에서는 ‘코드 익히기를 중심으로 한 연습체계와 연습곡’을 제시하였다. 연습체계에서는 난이도를 고려한 단계별 학습체계가 효율적임을 검토하였고, 각각 ‘주법익히기를 위한 간단한 악구’, ‘주법연습’, ‘연습곡’, ‘연주곡’의 체계를 수립하여 이에 맞는 곡들을 개발하였다. 간단한 악구와 주법연습은 각 단계의 목표에 맞게 새로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악보읽기, 부호익히기, 소리내기, 음색익히기, 이전 및 다음 단계와의 연계성, 수법 고치기, 음악표현력 익히기 등을 부수적으로 고려하였다. 연습곡은 기존의 악곡을 활용하여 악보를 가야금에 맞게 정리하거나 부분적으로 편곡하였는데, 악곡의 소재는 기초학습과정임을 고려하여 가야금 음악의 전통음악성 함양에 목표를 두어 주로 민요로 한정하였고, 25현 기초연습과정의 경우 창작국악동요를, 25현 응용연습과정의 경우 외국의 민요와 대중음악 등을 활용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각각의 연습체계별로 30곡에서 70곡 정도의 연습곡을 마련하고, 실습과정에서는 이 체계와 연습곡이 1) 주법의 종류를 과정별로 달리하여 단계적으로 난이도를 높여 연습할 수 있다는 점, 2) 각 주법별로 ①주법 익히기를 위한 악구, ②연습, ③연습곡 ④연주곡으로 구성된 연습체계는 기존에 남한에서 간행된 교본류의 연습체계에 비해 효율적이라는 점, 3) 연습곡과 연주곡을 통해 다양한 악곡의 체험, 장단 익히기, 지역별 민요의 음악성과 특징적인 표현법 익히기, 악상기호에 유의하며 연주하기 등을 익힐 수 있도록 고려한 점, 4) 각 과정이 너무 길지 않아, 다음 단계로 연습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도록 기획되었음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
This study is on the methodology for developing rational and basic disciplinary system and etudes for the gayageum, which enables students to comprehensively learn the educational contents essentially required for all beginners in the instrument. In 2002, in another paper entitled, "Basic research for establishing theoretical system for teaching and learning gayageum," I have already suggested various issues that spring from teaching gayageum, strongly advocating for sequential research on the topic. Ever since, I have continued pursuing this issue with students of gayageum, through questionnaires and interviews focusing on their learning experience, to learn if they need a special course according to individual performance level, and whether developing creative teaching methodology based on step-by-step learning and systematic etudes is necessary for their learning. Therefore, in this study, I have suggested learning system and methods for developing etudes for the 12 and 25-stringed gayageum, based on the result of my compiling of basic disciplinary works for the gayageum and its application on the students for 12 weeks. This paper first looks at what is considered important in most textbooks for teaching he piano, violin, and guitar, followed by an intensive analysis of the teaching manuals for gayageum currently used in both North and South Koreas. Then it suggests 4 types of systems as methodology for establishing systematic teaching for the basic disciplinary etudes for the 12 and 25 stringed gayageums respectively. First, the essential constructive elements necessary for basic disciplinary system of gayageum is categorized into basic learning process and its application. Based on the premises that creative and multiple application system and related etudes must be developed, I have suggested, for the 12 stringed gayageum, 'disciplinary system and etudes for learning program note forms' and, for the 25-stringed gayageum, 'disciplinary system and etudes for learning to play chords.' I have decided also that it is more efficient to presuppose different learning levels for teaching gayageum, for each of which various systems for learning are provided with appropriate musical examples accordingly; 'simple melodic forms for learning different techniques,' 'training your fingers' 'etudes' and 'stage pieces.' In 'Simple melodic forms for learning different techniques, special care is given to learning to read scores and symbols, as well as training to make sound and different tone colors. This is supported with tips for learning lower and higher technical levels, as well as practice methods for correcting your techniques and for learning various musical expressions. Etudes are partial arrangements of established musical pieces to suit gayageum performance. The subjects for the pieces were chosen based in the consideration that this is for basic learning and that it should promote the deepening of musical abilities required for playing traditional pieces. Therefore, the etudes include mostly folk songs, but for the 25 stringed gayageum, I have included newly composed children's songs for the basic level and folk songs of other culture and popular tunes for the application level. The resulting 30-70 etudes, categorized into different practice levels, were tested through actual application, which yielded the following conclusions. 1) It allows a step-by-step learning, by altering the level of etudes according to one's present abilities. 2) For each technique, four levels of difficulty are provided; ①basic melodic forms ② its application ③ etude ④ musical piece. Such format allows a more efficient learning compared to other currently practiced textbooks. 3) Experiencing and learning various musical pieces and rhythmic forms through etudes and musical pieces, learning musical features of local folk songs and their unique musical expressions, and playing with a special attention to expressive symbols. 4) Each section is not too extensive, designed in order to motivated students to keep going without slackening their energy. I have no doubt that such study as this, of the disciplinary system and etude for the instrument, has already been formulated in the minds of most textbook designers and teachers of gayageum. However, there was no sufficient discussions on what kind of system would be most appropriate, which leads to mere duplication of current teaching materials. Therefore, it is required a more logical approach and open discussions on the disciplinary system and methodology for teaching and learning gayag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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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 예술의 특성으로서의 臨書

민주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17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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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書예술의 역사에서는 古典이나 模本과 같은 종류를 ‘보고 쓰는’ 臨書라고 하는 행위가 널리 행해져왔다. 이 글의 목적은 書의 표현의 場에서 줄곧 끊임없이 행해져 온‘臨書’에 초점을 맞추어, 이것을 쓰는 행위라고 하는 관점에 입각하여 조명함으로써 전통예술로서의 서의 특질을 탐구하는데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단순히 ‘보고 쓰는’ 임서 행위가 어떻게 예술성을 가질 수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고, 창조성과 독창성을 중요시 하는 비평규준에서 보자면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서 예술은 이러한 시각에 의해 그 가치가 결코 폄하될 수 없다. 이러한 임서 행위는 서 예술의 장르적 특성일 수도 있고, 또 동양적 예술관의 독특한 특질일 수도 있다. 임서가 어떠한 방식으로 서의 표현에 관계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고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筆意’를 읽는다고 하는 서의 본질에 관여하는 임서 태도가 서의 표현의 장에 예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임서는 주어져 있는 것을 단순히 ‘베끼는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스스로를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필의를 읽는 임서 태도에는 享受와 創作이 동시에 수행되고, 예술체험의 총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In East Asian calligraphy the creative copy-training has been executed broadly, named as Imseo(臨書), which means to look and write the classical or the example. It is to copy after original works in a freehand manner. It seems to be trifle from the viewpoint of creativity or originality in Western sense, and so people today doubts the artistic quality of copy-training. However, it is not only an important method to learn the technique of calligraphy but also an essential requirement for its artistic expression in Eastern aesthetic tradition. It doesn't imply the imitative copy but the creative copy.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 of calligraphy as a traditional East Asian art through considering this unique training method of artistic fulfillment. Thereupon I would like to inquire into the meaning of 'copying' in calligraphy, then analyze the technique of production by creative copy-training.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is copy-training is the attitude to read the artistic mind of original calligrapher. Copy-training is not merely to copy a preconceived form of letters but to enter into the ancient calligrapher's artistic intention included in his original work. Calligrapher indulged in copy-training introduces the mind of the ancients masters through investigating the exemplary traces of the brush, and at the same time expresses his own artistic mind. The creative copy-training can be regarded as the realization of the artistic intention. It is a kind of expressive activities which read the master's intention. Copy-training is a form of interpretative act that is essentially based on the dialogue between the ancient master and calligrapher in copying process. Through this dialogue calligrapher could cultivate his own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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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繪畵 美學으로서‘形神’의 關係性 및 具現事例 硏究

강민영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2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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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동양에서 회화창작자들은 회화를 창작하고 품평할 때 기준으로 삼는 근거를 기록으로 남겨두었는데 이는 동양회화 미학의 이론적 배경을 고찰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화론을 살펴보면 그들이 회화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는 기본적인 체계는 ‘形’과 ‘神’이라는 두 개념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형’과 ‘신’은 중국미학사에서도 서로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서 ‘형’은 사물의 외형을 의미하고, ‘신’은 ‘형’에 깃든 정신을 의미하며, ‘형’과 ‘신’의 상관성에 관한 미학적 태도는 形神論이라는 하나의 미학 범주를 이룬다. 동양회화 미학에서도 형신론은 가장 중요한 창작이론 중 하나로서 ‘신’은 회화의 정신, 즉 회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고, ‘형’은 내용을 전달하는 기법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회화창작에서 ‘신’과 ‘형’은 불가분의 유기적 관계이지만 선후관계와 중요성을 따지자면 동양화에서는 ‘형’보다는 ‘신’이 우위를 차지하는 개념일 것이다. 본 논문은 동양화의 형신론에 주목하여 화가가 형과 신을 얻는 미의식 구조를 구성해보는데 목적을 둔다. Ⅱ장에서는 ‘형’과 ‘신’의 개념을 살펴보고, Ⅲ장에서는 회화에서 형신의 구체화는 무엇인가를 용례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회화에서 화가가 형과 신을 얻는 과정은 유가사상에서 知은 心이 사물에 대한 學과 思를 통하여 얻는다고 보는 관점과 유사하므로, 󰡔대학󰡕의 진리추구 과정인 ‘격물치지’의 과정과 연계하고 동양화 창작과 감상에 있어서 ‘형’과 ‘신’에 대한 미학적 의의를 도출하여 이론적 토대를 연구해 보고자 한다.
We can recognize that the Image and the Spiritual being are basic concepts of explaining the chinese painting. Because these concepts are key concepts in the chinese philosophy. It is useful that Image and Spiritual being concepts searching by Chinese Traditional Painting Aesthetics Theories, which are records about ancient oriental paintings. 'The shape and spirit theory(形神論)', the basis of Chinese painting is the core proposition in the history of Chinese painting theory. This proposition is an actually fundamental matter about a relation of a Chinese painting and objective reality and subjective thought(情思) corresponded to. To see the developed history of Chinese painting theory, other proposition in Chinese painting are developed from this proposition, what is more all of them could have been developed, deepened and changed. The issue about 'The shape and spirit(形神)' is basically the issue about the material and spiritual that is called 'the body and mind(身心)' in ancient. 'The body(身)' that comes under 'the shape(形)' means a form or body, 'the mind(心)' that comes under 'the spirit(神)' means soul or divinity. The issue that comes from a separation and combination of 'the shape and spirit' is a subject investigated in philosophy, religion, natural science and all fields of study. In my opinion, Spiritual being, which is mentioned in painting theory, has various hidden meanings and need to researched by various spectrum. So I'm going to explain the chinese painting theories by finding and analyzing the hidden meanings of Spiritual being and Image. Getting new meaning from the concept of Image and Spiritual being, It would like to be a useful way, that is to connect the concept of Research. To connect Research with Shape and Spiritual being, we know that the concept of Spiritual being has hidden meaning.

8,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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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庖丁解牛’의 플로우 현상 연구

도원찬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24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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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莊子』의 ‘庖丁解牛’에서 볼 수 있는 플로우 현상을 이해하는데 목적이 있다. 解牛할 때 지각 능력의 활동도 멈추고 본시 그러한 바를 따를 뿐인 포정은 목표가 없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전문가적 기술의 경지인 포정은 의식적인 목표설정 없이 자동적 그리고 직관적으로 일을 처리하면서도 解牛과정의 목표를 분명히 알고 있다. 포정이 뼈와 근육이 엉켜 모여 있는 곳에서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하면서 경계하는 모습은 플로우 상태에 진입하기 위해 실력을 높이는 상태에 모습과 비교해 볼 수 있다. 포정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는 어려운 과제를 맞이해 플로우 상태까지 자신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사람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의 변화이다. 포정이 天理를 따를 뿐이라는 것은 플로우 현상의 특징인 통제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 없다는 느낌과 완벽한 규칙성에서 포정은 마치 천리와 같은, 즉 道에 이끌리고 있다고 느낌이 들며 나아가 자의식 상실의 단계까지 이른다. 이 상태는 心齋, 그리고 坐忘과도 비교 될 수 있다. 자의식 상실을 유추해 할 수 있는 대목은 ‘사방을 돌아보며 머뭇거리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면’이다 제정신이 돌아오기 전의 상태는 장자가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로서 忘我의 상태이고 플로우 상태의 특징인 자의식 상실의 단계이다. 滿志는 ‘제정신으로 돌아와 흐뭇해하고’로 풀이될 수 있다.
對于庖丁而言,解牛的時候知覺活動會停止,順其自然,看起來似乎沒有目標。這可以與flow的强化集中力的自然狀態相比較。專業的技術的境界是指沒有意認性的目標的設定,自動的直觀性的處理事務。庖丁由于淸淸楚楚地知道目標,可以說是個解牛專家,當他進行解牛的時候,淸淸楚楚地知道每時每刻的目標。庖丁雖然已經達到了一定的境界,但是當他遇到骨頭與肌肉向混合的部位的時候,知道其難處,感到恐懼,提高警惕。這一狀况可以與爲進入flow而提高實力的狀態進行比較。庖丁爲了進入flow狀態從而提高實力的樣子,可以應用flow樣式標示出來(圖4)。庖丁所感受到的恐懼感以及警戒心理,是與(圖4)里的不安、覺醒相類似的感覺。從而,庖丁所經歷的感情的變化,就是在從遇到難題到進入flow狀態,從而提高自己實力的人們那裏一般所出現的感情的變化。庖丁的“知覺能力停止了活動,取而代之的是神妙的作用力在發動”,從而達到了天理。這似乎與flow現象特徵的統制感有關聯。flow狀態就是指在實力與課題相協調、局限的狀態裏,依據自己的意志,控制狀况的可能性得到提高。如果根據flow狀態裏的自然流出的規律行動,似乎覺得是跟着別的甚麽在行動。幷沒有感覺到自己人爲地在做甚麽,在完美的規律當中庖丁覺得自己似乎被類似于天理的道所吸引。與這種完美的規律或者是存在的道的和諧的感覺,使他的控制力提高到更完美的狀態上。從而達到失去自我意識的階段。這一狀態也可以與心齋、坐忘相比較。從“看周圍,猶豫,恢復正常”的句子當中,可以推測出自我意識。通過這個句子,可以看出庖丁從別的狀態當中恢復了正常狀態。正常意識得到恢復之前的那一狀態是庖丁完整解牛、莊子所追求的最高的境界,卽忘我的狀態,也是flow狀態特徵喪失自我意識的階段。對于“滿志”,以往注釋到“恢復正常狀態”、“自我滿足”。如果像感受幸福,一定得關心內心的狀態。這時候flow狀態會受到妨碍,所以接受了只有當脫離flow狀態、才能感受到幸福的flow理論。考慮到庖丁經歷了莊子所追求的最高的境界,通過“恢復正常了的欣然滿足”的境界,可以統和以往的互不相同的解釋。

8,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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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樂和聲』 笙『詩樂和聲』 笙의 音位 연구의 音位 연구

정화순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279-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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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악화성』에 수록되어있는 17황 대생의 구성 음은 󰡔악학궤범󰡕의 17관 우․생과 다르다. 이는 곧 조선조 궁정에서 연주한 笙에 변화가 발생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악화성󰡕 “포음생우”조에는 17황관을 낮은 음부터 음고 순으로 배열하였을 뿐, 散形이 명시되지 않아 그 음위와 운지법을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생우형제’에 명시된 9관의 음과 관의 배열 모양, 및 ‘대생형제’를 통한 매 관의 길이와 簧口의 위치(즉 出音孔과 황구 간의 간격), 명시된 工尺譜의 음 등등을 종합하여 그 17관의 음위를 추고하여 보았다. 그 결과, 󰡔시악화성󰡕 대생은 제1관부터 <仲․仲․姑․太․㒣․㑲․㑲․汰․㽔․應․南․林․潢․黃․㑣․姑․應>의 순서로 배열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대생은 청대 초기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만 공척보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인하여 양자 간에는 각 관의 음고에 대한 율명의 사용에서 차이가 발견되었다. 이는 청대의 궁정에서 사용한 율명과 조선조에서 사용한 율명이 서로 음고가 다름을 의미하고, 양자의 차이는 약 2도이다.
The notes of 17 Hwang Daesaeng listed in Siakhwaseong are different from those of the 17 Gwan U-saeng listed in Akhakgwebeom (Musical Canon). This suggests that changes were made to the performance of Saeng at Joseon's palace. In Siakhwaseong, the Poeumsaengu匏音笙竽 tunes arranged the 17 Hwanggwan from low-pitch sounds, and did not specify the dispersion pattern, making it difficult to identify the sound position and fingering methods. Thus, based on nine Gwan notes, the pipe arrangement patterns, Daesaenghyeongje as specified in Saenguhyeongje笙竽形制 system, the length of each pipe, the position of Hwanggu (namely, the interval between sound emitting hole and Hwanggu), specified Gongcheokbo notation, etc. were comprehensively examined so as to estimate the sound position of the 17 Gwan. As a result, it was confirmed that the Daesaeng under Siakhwaseong was arranged from the first Gwan in the order of Yu, Jung, Go, Tae, Eung, Nam, Nam, Tae, Jung, Eung, Nam, Im, Hwang, Hwang, Im, Go and Eung <㽔․仲․姑․太․㒣․㑲․㑲․汰․仲․應․南․林․潢․黃․㑣․姑․應>. This arrangement was confirmed to be identical with that of the early Qing period. However, due to a difference in the interpretation of Gongcheokbo, between the two dynasties, there was found a difference in the use of Yulmyeong regarding each Gwan's pitch. This suggests that there was a difference in the sound pitch of Yulmyeong used in the palace of Qing and in the palace of Joseon. The difference is about 2 degrees.

8,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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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 <破陣樂> 연구 - 太宗ㆍ高宗ㆍ玄宗 시기를 중심으로

김미영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31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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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朝鮮 世宗 대에 <定大業>의 창작 과정에서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하는, 唐代 <破陣樂>의 창작 배경과 시기 및 시대에 따른 변천 양상을 분석하는 것이다. 군사들에 의해 군가 형식으로 창작된 최초의 <파진악>은 唐 太宗이 직접 만든 <破陣樂舞圖>를 바탕으로 歌ㆍ舞ㆍ樂이 하나 된 大曲 <파진악[七德舞]>으로 거듭난다. 대곡 <파진악>은 ‘文王八卦圖’에 따라 배치된 ‘八陣圖’를 바탕으로 한 진세를 기본으로 하여 120명의 무용수들이 북소리가 웅장한 龜玆樂의 음악에 맞춰, 發揚蹈麗ㆍ交錯屈伸ㆍ撃刺往來하며 ‘秦王破陣樂’이라 화답했으며, 앞은 전투마차이고 뒤는 군대 행렬로 관진법과 아진법의 전투 형태[先偏後伍, 魚麗鵝鸛]에서 세 차례 변하고 매번 네 가지의 진세로 변하는 음운이 강개[聲韻慷慨]한 유형의 대곡이다. 고종 시기의 <一戎大定樂>은 <파진악>의 형상을 답습한 것이지만 고구려 침략을 기치로 한 고종의 욕망을 담았다고 할 수 있으며, 현종시기의 <小破陣樂>은 현종의 업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변모되었다. 결국 당 태종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창작되었던 <파진악>은, 고종의 욕망과 현종의 업적을 드러내는 정치적 수단으로 쓰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creative background of which was reported that adopted along with in Sejong time and its phased evolution depending on times since then. The original was initially created by army in the form of a martial song but it was combined later with a dance music of which was created by Taejung and then transformed to . The music of was structured according to 'Palzindo(八陣圖)' of which formation was based on 'Munwangpalgwaedo(文王八卦圖)' and it was designed that 120 dancers were changing their positions 3 times to the magnificent sound of drum of Guga-ac(龜玆樂) and making 4 types of formations of which front line was battle formation and back was marching in the form of zigzagging and straight[先偏後伍, 魚麗鵝鸛] and they jumped from the ground with the hands straight up(發揚蹈麗), and moved up and down with mixed each other(交錯屈伸), and danced with hit and poke motions(撃刺往來) saying 'Jinwang Pazin Music'. The form of was also reflected on the grand music in Gojung period and it was the reflection of his ambition to invade Koguyea. After then, it was also changed to at Hyunjong time in which it became the symbol of Hyunjong's accomplishments. Therefore, it could be concluded that was created to applaud Taejong's accomplishments, but later then it was politically used to admire each emperor's accomplishment at Gojong and Hyunjong periods.

7,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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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末 蘇州지역의 개인 書畵 收藏이 畵壇에 미친 영향

배현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16호 2011.02 pp.349-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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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서화 수장활동은 황실과 고위관료, 문인사대부들의 문예취향에서 시작되었다. 명말의 개인 서화수장은 사회,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황실내부의 수장품들이 대량 유실되는 과정에서 개인 서화 수장가들이 수장품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특히 蘇州 지역은 전국에서 서화 수장이 가장 흥성한 지역으로 文徵明,韓世能, 王世貞, 王世懋 형제, 張丑 등과 같은 유명한 수장가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의 작품 수장은 집안 대대로 계승되었으며 서화 수장계층은 문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 서민층에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명말 활동한 수장가들과 서화가들은 서로 밀접하게 교류하며 서화 창작과 수장의 원동력이 되었고 이들의 시각적 경험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결국 수장가들의 서화 수집과 완상 욕구가 명대 상품경제의 발전과 함께 실천됨으로써 동시대 화가들에게 다양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와 동기를 제공하였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中国的书画收藏活動從皇室与高官贵戚及文人大士的文艺去向开始. 明末私人书画收藏进行在混乱的社会政治环境, 皇家收藏不兴导致皇室內府的收藏品大量流失. 在这些过程中对私人书画收藏家会提供機會能夠增加自己的收藏品. 特別在苏州地区兴盛了书画收藏风气, 包含了文徵明,韩世能, 王世贞, 王世懋兄弟, 张丑的收藏家, 承继了他们的收藏品家传. 在明末时期动的收藏家与书画家不仅多有来往, 关系密切, 可以接触到古代名迹古代书画, 而且收藏风气的盛行促进了书画創作与发展, 能夠成为书画创作和收藏滋养. 明末苏州地区自宋元以来已成为中国经济与文化之最发达的地区, 以苏州藏家们的创作有着不可分割的关系, 既是提高书画创作能力的手段同时, 在绘画史和收藏史上的意义更深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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