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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예술 [Oriental Art]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동양예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Oriental Art Studies]
  • ISSN
    1975-0927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00~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예술일반
  • 십진분류
    KDC 600 DDC 700
제26호 (18건)
No
1

石亭 李定稷 書藝의 예술론과 書體 분석

김도영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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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C 조선 말기 海鶴 李沂(1848∼1909), 梅泉 黃玹(1855∼1910)과 더불어‘湖南三傑’로 일컬어지는 石 亭 李定稷(1841∼1910)은 호남 儒學을 대표하는 학자로서 字를 馨五, 號를 石亭 혹은 石亭山人, 燕石 이라고 하였다. 서양 철학가인 Kant와 Bacon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였으며, 호남에 古文을 정착시 킨 문학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또한, 25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문집『燕石山房未定稿』를 남 겼을 정도로 道學과 詩文에 대한 학문적 역량이 대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학·천문· 지리·의학·서화 등 여러 분야에서 一家를 이룬 詩 ․ 書 ․ 畵 三絶作家이다. 그의 문집에서 드러나듯이 28세에 燕京을 다 녀온 유학파로 燕京에서의 문화·예술적 체득은 그의 학문과 심미의식을 폭넓게 넓혀주는 계기가 되 었다. 그리고 이러한 탄탄한 학문적 역량과 예술적 감성 위에 축적된 書卷氣가 書畵작품 속에 녹아내 려 고매한 逸格의 풍취를 드러내었다. 石亭 서예는 晋·唐에 연원을 두고, 筋骨·精意·風神이라는 서예의 삼박자와 筋力과 結構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를 골고루 갖춘 晋代의 王羲之를 이상적인 正으로 삼아 부단히 연마하면 자신의 참 모 습(自眞)을 드러내고 이러한 自眞을 얻는다면 奇異한 創新을 이룬다는 法古自眞論을 언급했다. 또한, 王羲之의 경지에 한 부문이라도 도달했던 인물로써 宋代의 米芾이 筋骨을, 元代의 趙孟頫가 精意를, 明代의 董其昌이 風神을 얻었다고 보았는데, 무엇보다도 이들 三家가 얻었던 전통적인 각각의 경지 를 먼저 傳習하여 이들의 장점을 계승하고 절충해서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傳習·眞熟論을 강조했 다. 石亭은 法古에 근거한 많은 경력과 오랜 연마를 통하여 熟練의 경지에 이른다고 보았다. 이러한 노력 후에 일정한 熟練의 경지에 무르익을 수 있고, 무르익을수록 謹愼해야 하며, 謹愼하면 生에 가까 워진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生에서 시작하여 다시 돌이켜 굳셈과 아름다움의 勁婉과 원숙함과 굳 센 필력의 圓勁이 完熟되어야 비로소 眞熟경지에 이른다고 보았다. 즉 서예의 이상적인 경지로써 ‘勁 婉과 圓勁을 통한 眞熟’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石亭 서예는 주로 楷書와 行書에 주력하였다. 楷書에서는 근골을 중시하였는데, 歐陽詢에게서 硬直 한 필력을 얻어 一點一劃을 근신하는 마음으로 정밀한 結構와 단아한 章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율법적인 歐陽詢 楷書를 통해 서예의 예술성·학술성 뿐 아니라 本然之性인 理를 드러내어(理發) 復善 去惡하고자 하는 그의 성리사상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歐陽詢體보다 破勢가 깊고 강하여 字形이 비 대칭적으로 커 보인다. 또한, 露鋒을 꺼려한 石亭은 勒劃에 있어서 歐陽詢보다 筋力을 이용한 기운이 강한 게 특징이다. 한편, 行書 연마는 王羲之의 전아함을 바탕으로 董其昌의 天眞平淡한 흥취와 圓勁 과 眞熟의 경지가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활발발한 기운이 느껴지며 필세는 안정감 속에 변화를 도모 하였고, 骨力과 秀麗함을 통해 자태가 조용하면서도 淸雅한 필치가 돋보인다. 또한, 藏鋒으로써 점획 에 붓끝을 간직하여 두는 것 같이 힘 있게 起筆하였는데, 이는 晉·唐 楷書의 古法的 筆意를 응용한 것 이다. 石亭은 명가들의 書藝를 연마하면서 먼저 그 뜻을 구했다고 스스로 밝혔듯이 得意忘象의 古法 수련 에 진력하였는데, 書格과 書風은 전통서법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그 어느 하나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 려 하지 않은 창신적 태도를 견지하였다. 그리하여 歐陽詢의 楷書에 米芾과 董其昌의 行書를, 그리고 顔眞卿의 楷書와 行書 등 명가들의 장점들을 접목시켜 자신만의 法古自眞的 예술세계를 조화·창출하 였다.
Seokjeong Lee, Jeongzic (1841-1910), a scholar representing Honam confucianism in the late Choseon in 19C, is called one of Honamsamgul including Haehak Lee, Gi (1848-1909), Maecheon Hwang, Hyun (1855-1910). In secluding himself in Buan region, he continued to possess an practical attitude drawn from Bangesurok wirtten by Bange Yu, Hyungwon (1622-1673). He contributed to thriving practical studies in the center of Honam even under politically urgent circumstance in the late Choseon. In additon to philosophy, he devoted his life to studying virtually everything that was considered to be necessary in life: horoscope, mathematics, and machine. Not only was he remarkable to the point that he left Yeonseoksanbangmijeongmungo composed of 25 books, he was also extraordinary in other fields such as linguistics, astronomy, geography, medical study, paintings and calligraphic arts. He introduced Western philosophers, Kant and Bacon, in the name of Sinmunhwak-new studies, to the nation first. Furthermore, he mastered various studies ranging from Chinese studies to Korean studies. He was highly respected as a literature expert who helped 'old literature' to root in Honam region. As shown in the collection of literature, he had, also, studied in Bukkyeong at the age of 28. Hoharkjeongsin emphasizing extensive learning and practical evidence and interconnection between studies melted down in his studies and paintings and calligraphic arts. Cultures and arts in Bukkyung served as motives for him to widen his eyes related to aesthetic arts. Needless to say about calligraphy and seal craving, enormous energy stemming from extensive, intensive learning is revealed in his paintings and calligraphyic arts, involving mountain and water, flower and bird, and feathers of birds. Since he was good natured, he was called a first Samjeol author, who shows excellency in poem, calligraphy, and painting, also called Tongyu, which referred to a person who exhibited extraordinaries in Confucianism at that time, in Jeonbuk Province. Seokjeong's thought system based on his poems, calligraphy, and paintings is closely related to Sung Confucianism, and he repeatedly practiced his calligraphy by imitating Jinchop(a calligraphy book of Jin) or Dangchop(a calligraphy book of Tang). However he thought that being a great calligrapher is not only blindly practicing writing letters but also there should be some way and process. His roll model for calligraphy was Wanghiji from Jin who had three elements of calligraphy such as geungol(muscle and bone), jeongeui(meaning and energy), and pungsin(soul and refined taste). He didn't think anyone could reach the level of Wanghiji. He thought that people who had reached even one element of three are Mibul of Song who had geungol, Joemaengbu of Won who had jeongeui, and Donggichang of Myeoung who had pungsin. He emphasized that to reach the level of Whaghiji's calligraphy, one should practice these three great calligraphers' calligraphy respectively and make unification with succession of strong point and compromise. It is referred bupgojajinnon that one should reveal one‘s real I making Wanghiji from Jin who had three elements of calligraphy as a role model. And he made emphasis on the theory of Jeonseupjinsuk that one should practice Mibul’s geungol, Joemaengbu’s jeongeui, and Donggichang‘s pungsin because it is difficult to reach the level of Wanghiji. He thought that one could reach being ripe after practicing old things, and as he grow being riper, he had to effort cautiously, so as to be able to close being new. And from the new thing began the skilled and strong touch could be truly skilled touch, and after achieving this level one could change the higher level of creating new things. This is the theory called the new Bupgojui. His calligraphy is based on Wanghiji, follows the style of handwriting or writing style of hae-hang, a school of cheophakpa centered Mibul and Donggichang, so he established a very conservative art world making emphasis on golgyeok and meaning. Especially he coined his own hang-cho grafting distinguished calligraphers’good point such as Guyangsun’s haseo, Donggichang’s hangseo, Mibul’s haseo, and Anjingyeong’s hangseo.

6,900원

2

한국창작탈춤 ‘도깨비탈’ 특성 연구

김래영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3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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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탈춤이 많이 있다. 가산오광대,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진주오광대, 영등오광대, 김해오광대, 은율탈춤, 봉산탈춤, 창원오광대, 마산오광대, 남구오광대, 북 구오광대, 합천오광대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중에는 이미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전 수, 보존되고 있는 문화재도 있고 문화재 지정은 되어 있지 않으나 이미 발굴되어서 활발하게 공연되 고 있는 작품도 있다. 또한 은율탈춤이나 봉산탈춤은 북한지역의 탈춤이지만 그 내용이나 연희 동작 이 우수하기 때문에 이미 발굴되어서 탈춤보존회가 조직되어 이수자와 전수자들이 열심히 보존활동 을 하고 있다. 기존의 한국탈춤은 그 내용면에서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많다. 양반들의 축첩풍조나 사찰 스님들의 파계승에 관한 내용 등이 많고 전체적인 내용은 권선징악 형태의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해도 과 언이 아니다. 물론 의상이나 연희동작 등이 상이한 작품이 있고 그 내용면에서 타의 작품에서는 흉내 내기 어려운 모범적인 작품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화 시대이자 현대화 시대이다. 이 시대의 탈춤이 많이 출현해야 한다. 앞으로 오백 년, 또는 천년 후에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떤 예술작품을 남겨 줄 것인가. 어떤 모범적이고 우수한 탈춤을 후대에 물려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한국형 창작탈춤으로 “도깨비탈”이 있다. 이 작품은 이 시대에 탄생한 신 창작탈춤이기 때문에 이 탈 춤을 많이 소개하고 연희하여 많은 관객들이 즐기고 감동 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소개하고 더욱 더 발 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익살과 해학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즐겁고 재미있는 작 품이다. 과거의 작품들이 익살과 해학을 강조하고 그 내용에 있어서는 권선징악의 내용으로 끝나는 작품이 많은 것에 비하여 창작탈춤 “도깨비탈”은 이러한 내용에다 진정한 이 시대의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하였고 진심과 우정을 강조하고 있으며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임을 관 객들에게 알리고 홍보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작탈춤 “도깨비탈”은 배우들이 착용하고 사용하는 무대의상과 무대소품들이 모두다 이 시대에 사 용하는 현대적 비품으로 제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배경음악도 전통음향과 현대음향을 혼용하여 편집하였으며 주인공이 부르는 주제 음악곡도 현 시대의 대중가요와 전통클래식 음악 및 국악가요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관객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걸어가기 위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창작탈춤 “도깨비탈”은 국내는 물론 외국 공연에서도 큰 호평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작품제작과 연출단계에서 부터 기존의 작품과는 차별적인 내용으로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우수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되어 후대에 까지 모범적인 한류화 창 작탈춤으로 길이 남을 수 있기 바라면서 앞으로 이 작품을 더욱 더 보충하고 연구하여 세계 각국에서 우수한 예술작품으로 초청공연을 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창작탈춤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A number of masked dance dramas are designated as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in Korea. They include Kasan ogwangdae, Tongyeong ogwangdae, Goseoung ogwangdae, Jinju ogwangdae, Yeongdeung ogwangdae, Kimhae ogwangdae, Eunyeoul talchum, Bongsan talchum, Changwon ogwangdae, Masan ogwangdae, Namgu ogwangdae, Bukgu ogwangdae, Hapcheon ogwangdae and the list goes on. Some of them have been declared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in the past and efforts are being made to preserve and pass them onto the next generation. The others are yet to be declared, but are discovered and actively played on stage. Despite the fact that Eunyeoul talchum and Bongsan talchum were originally performed in various provinces of North Korea, their excellent content and performing acts made it possible to organize and preserve in today’s societies. Hence the instructors and the trainees are undertaking the grand task of preserving the traditional masked dance dramas. Conventional korean masked dance dramas bear some similarities in their contents. They usually deal with stories of depraved monks or the upper classes’ tendency of keeping mistresses, ultimately proposing the idea of encouraging good and punishing evil. But of course, dissimlarities in the costumes or performing acts are also observed. Some dramas show exceptional narratives beyond comparison. Nonetheless, we need modern renditions of masked dance dramas as the world is becoming more internationalized and modernized. We are obliged to contemplate what artistic pieces are worthy enough to pass on to distant generations in the future. It is our liability to decide which masked dance dramas are classic enough to benefit our sons and daughters. Dokkaebi ttal is a Korean creative mask dance drama. Since the days in which it was written, there has been a need to introduce and perform it more often so that vast audiences can reach and enjoy it. Consequently, we foresee its development in the future. This drama excels other ones in its humor and clownery, making it a very enjoyable piece. Masked dance dramas in the past featured humor and clownery and promoted the idea of encouraging good and punishing evil. Those properties were inherited to dokkaebi ttal and further complementation was made such as friendships, sincerity, and true romance of these days. It also features and promotes that the key to success is being good and doing good deeds. Dokkaebi ttal is also characterized by the fact that the actors’ costumes and stage properties are modernized, which means they are the ones we use today. It is also worth noting that both traditional and contemporary music are used in the background, just as Korean classical and today’s pop songs both make theme songs of the actors. The marry of classical and modern music aims to make mask dance dramas more accessible to audiences. I expect dokkaebi ttal to receive wide acclamation from foreign audiences as well as from domestic audiences, because it was produced with unprecedented contents from the very beginning. The expectation goes further, I hope this drama can be valuated to be the one that represents this era and remains for the next generation as a model of Korean creative masked dance dramas. In order for the expectation to be realized, adequate studies and supplements should follow so that the drama can be invited to international soils and ultimately establish its name as a successful creative masked dance drama.

9,100원

3

이슬람 캘리그래피(Islamic Calligraphy)의 조형적 활용 - 아흐메드 무스타파(Ahmed Moustafa), 파르비즈 타나볼리(Parviz Tanavoli) 작품을 중심으로

김보경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7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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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으로 계시된 신의 말씀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이슬람 캘리그래피는 세밀화, 건축, 공예 등 전통예술로써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종교적 교리에 따라 독자적인 회화나, 조 각은 암묵적으로 금기시 되어왔기 때문에 이슬람 캘리그래피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써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슬람 캘리그래피의 조형성은 문자의 의미 전달에도 의의가 있지만, 많은 시각예술가들에 의해 순수 예술로 다양하게 발전될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슬람 캘리그래피의 조형적 활용에 관하여 아흐메드 무스타파와 파르비즈 타나볼리 의 작품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이슬람 캘리그래피의 전통 원리를 연구하고 집대성한 아흐메드 무 스타파는 캘리그래피를 회화에 적용하였으며. 파르비즈 타나볼리는 전통과 예술을 결합하고자 하는 움직임에서 출발하여 캘리그래피를 조각으로 작업한다. 이들은 캘리그래피를 활용하여 이슬람 교리 에 기반하는 내용을 포함하면서도, 캘리그래피의 조형성을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은 캘리그래피를 글쓰기의 성분보다도 시각적인 요소에 집중하여 이슬람 문화의 상징으로 표상하고 있다. 캘리그래피를 활용하는 동시대 이슬람 문화권 작가들이 늘고 있지만, 국내 미술계에서는 지리적, 문 화적으로 낯선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가 미미하다. 두 작가의 이슬람 캘리그래피를 조형 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를 살펴봄으로써 이슬람 예술의 전통을 활용한 새로운 당대 예술의 영 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slamic calligraphy, used to record the word of God, is acknowledged its value as traditional arts with its meticulous details, architecture, and crafts. Since Idolatry is forbidden in Islam, independent paintings or sculpture are implicitly prohibited. Under the circumstances, Islamic calligraphy was able to settle into a distinctive genre in art. While the form in Islamic calligraphy has a significance in delivering the meaning of characters, it has also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as fine art by many visual artists. In terms of applying the form of Islamic calligraphy, this paper mainly focus on the works of two artists: Ahmed Moustafa and Parviz Tanavoli. While Ahmed Moustafa, studied on the principles of Islamic caligraphy, applies caligraphy into his paintings, Parviz Tanavoli approaches from the fusion between tradition and art and turns caligraphy into the sculpture. They not only include the words of Islamic doctrines, but also extend the formativeness of caligraphy. In this process, instead of the verbal elements they focus on the visual elements and symbolize caligraphy into Islamic culture. Even though there is an increase in the number of contemporary Islamic artists utilizing caligraphy, it has not been throughly researched on contemporary Islamic caligraphy due to the geographic and cultural unfamiliarity in Korea. By looking at applying the form of Islamic caligraphy by two artists, the paper seeks to deepen the understanding of utilizing the traditions of Islamic art in the boundaries in contemporary art.

5,800원

4

조선왕릉 수복방(守僕房)의 건축형식 고찰

김왕직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99-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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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의 수복방(守僕房)은 수직방(守直房)이라고도 하며 통상 정자각(丁字閣) 동남쪽에 놓여 제사 때 제관의 대기와 준비 장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수복방과 대칭으로 정자각 서남쪽에는 수라간(水剌間)이 놓이는데 정자각과 더불어 이 세 건물은 제사의 중심건물이다. 현재 정자각은 대부분 남아 있지만 수라간과 수복방은 일제강점기 때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는 것이 많으며 일부 남아 있는 수라간과 수복방도 근대기에 변형되어 원형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발굴을 통해 수라간과 수복방을 복원하고 있으며 최초로 복원된 수복방은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顯陵)이다. 이외에 예종의 창릉(昌陵)과 명종의 강릉(康陵),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익릉(翼陵), 경종 원비 단의왕후의 혜릉(惠陵), 영조의 원릉(元陵)이 발굴을 마치고 복원을 위한 설계 단계에 있다. 임진왜란 이후 수복방은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 내용을 분석하면 건물의 규모와 형식을 명확히 알 수 있으나 조선전기는 발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선전기라고 할지라도 조선후기에 개축되면서 변형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복원은 조선후기의 발굴된 유적을 근거로 할 수 밖에 없는데 발굴된 적심과 초석 정도의 유적으로는 건물의 규모와 위치 정도를 알 수 있을 뿐 구체적인 상부 형태를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의궤내용을 분석하여 수복방의 시대적인 변천과정과 대표유형에 대한 원형을 고찰하였다.
Subokbang (janitor's quarter of royal tomb) of Choseon royal tomb is also called as Sujikbang and it was usually located at the southeastern side of Jeongjagak and used as a stand-by and preparation place of ritual administrator at the time of memorial service (ancestral rites). At the southwestern side of Jeongjagak, Suragan (royal kitchen) is located being symmetric with Subokbang and these three buildings together with Jeongjagak are central buildings of ancestral rites. At present, most of Jeongjagak remains still but Suragan and Subokbang were vanished during Japanese colonial rule and only its foundation remains excepting a few and it is hard to find its original form in partially remained Suragan and Subokbang also as it was transformed during modern times. Recently, Suragan and Subokbang were restored through excavation and Subokbang being restored for the first time is Hyeon-reung that is royal tomb of 5th King Moonjong and Queen Hyeondeok. Besides, Chang-reung of Yejong, Gangreung of Myeongjong, Ikreung of Queen Inhyeon who was original queen of Sukjong, Hyereung of Queen Daneui who was original queen of Gyeongjong and Wonreung of Yongjo are completed of its excavation and under design stage of restoration. After Imjin-woiran (Japanese invasion to Chosen Dynasty during Imjin year), Subokbang was recorded in "Sanreung-Dogam-Euigwe" and when analyzing its contents, scale and style of building could be identified clearly but in case of Subokbang during first half of Choseon era, there is no other way but to rely on excavation. However, Subokbang was remodelled and modified during late Choseon era in many cases. Therefore, its restoration is compelled to be performed based on excavated remains of late Choseon but remains such as excavated Jeoksim and Choseok are not sufficient to identify its detailed superstructure excepting scale and location. And so, in this study, by analyzing the contents of Eui-gwe, chronological transition process and typical type of Subokbang were considered.

8,400원

5

한글과 윌리엄 모리스 작품을 응용한 네일아트 디자인연구 - 작품제작을 중심으로

남경희, 정연자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13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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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글의 조형성과 윌리엄 모리스 작품의 컬러를 모티브로 하여 전문 서적 및 문헌, 자료와 선행 연구를 이론적 고찰 하고 네일아트를 디자인 하고 작품을 제작하였다. 네일아트의 수공예적인 부분과 윌리엄 모리스가 수공예를 중시 했던 것에 맥락을 두고 윌리엄 모리스를 선택하였다. 윌리엄 모리스가 가장 행복했다는 시기에 처음으로 디자인한 벽지 격자무늬와 데이지 등의 작품에 적용된 컬러를 도출하고 한글 디자인은 본 연구자의 주관으로 행복, 꽃, 사랑, 한글, 훈민정음으로 명하였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한글의 조형적 가치를 한층 높일 수 있는 캘리그라피의 서체로 대전 참 아트 갤러 리 작품인 ‘행복’과 강병규 작품의 ‘꽃’ 의 글체를 적용하여 디자인에 참신함을 꾀하고 한글의 창의적 인 조형성을 네일 디자인으로 전개함으로서 내재된 심미적 아름다움을 디자인으로 표현하여 제작 하 고자하였다. 작품에 적용된 기법과 재료를 통하여 다양한 방향성을 색채, 질감, 형태 등 작품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네일 디자인의 표현영역을 확장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노력하였고 트렌드하고 예술적인 아름다움 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으나 학문적인 깊이가 적은 네일아트 분야가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 본 연 구에서 다루지 못한 영역의 새로운 학문적인 디자인과 표현력을 발전시킨 창의적인 네일아트 디자인 후속 논문이 끊임없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본 연구가 한글의 조형적 분석을 통한 네일아트 디자인 개발에 관한 연구를 통해 한글의 조형적 우수 성과 다양성을 확대함으로서 한글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네일아트 디자인으로서의 충분이 아름다운 디자인의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그 의미를 두고 앞으로 본 연구가 네일 아티스트 및 네일 관련 연구자 들에게 네일 아트의 이론적인 디자인발상에 적용할 수 있는 기초 자료로 네일아트 디자인의 사례를 제공하여 네일 디자인의 학술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생각한다.
With the formative beauty of hangeul (Korean alphabet) and color of William Morris' design as motives, this study attempted to express intrinsic aesthetic beauty by maintaining the formative beauty of Korean alphabet and applying human emotions which can be felt when Korean alphabet is reminded of and its formative beauty to various nail designs. Focusing on the handicraft aspect of nail art and William Morris' arts & crafts movement, the colors applied to the designs he created during his happiest days of his life such as checked patterns and daisy among a great number of his designs were derived. For Korean alphabet design, 'happiness', 'flower', 'love', 'Korean alphabet' and 'hunminjeongeum (ancient Korean alphabet)' were randomly named. In addition, calligraphy which can enhance the formative value of Korean alphabet was applied with modern senses. In addition, the novelty of design and creative formative beauty of Korean alphabet were promoted in nail design by applying 'Happiness (by Cham Art Gallery in Daejeon)' and 'Flower (by Kang Byeong-gyu)' to the design. First, to enhance the accuracy of the colors applied to design after using the three-leaf clover as a symbol of happiness, 'L*a*b*' colors were derived, and 'Happiness' written in calligraphy and clover leaves were designed. After applying hand printing with acrylic colors and using parts and acrylic powder in similar color, ornamentation was emphasized with 3D flower decoration. As a result, warmness and happiness which can be felt from the vocabulary of 'happiness; were contained in the design. Second, William Morris' 'Daisy' and Kang Byeong-gyu's 'Flower' were chosen for Korean alphabet design. Using the colors derived from the designs, water-decal flowers were designed on hanji (traditional Korean paper) for background. Then, a flower was designed with acrylic colors, and it was put in the middle of the Korean alphabet 'Kkot'. Third, using the colors derived from William Morris' 'Pomegranate' and design factor of Korean alphabet 'Sarang', Korean nature was designed on hanji with naturally dried greens for background. Then, using passionate red fruits which symbolize 'love', gorgeous parts and colored jewels, it was tried to express the innocence and passion of love. Fourth, the emblem of the Kelmscott Press, a publishing company founded by William Morris in his later years, and Korean type widely used in wood printing and type printing were used. After applying a block book to the design and using the derived colors, a pattern of vine which can be found in Korean traditional patterns as well was applied with acrylic colors for background. After spraying white opal-colored powders, stones were gently laid. Fifth, using the colors derived from William Morris' Acanthus (1874), hunminjeongeum with a scientific and formative beauty was expressed on hanji. Then, the beautiful nature of Korea including sea, river, mountain and trees were created using mother-of-pearl powder. This study intended to expand the scope of expression in nail design in expressing colors, quality of material and shape using diverse techniques and materials. Even though the trendy and artistic beauty of nail design has been recognized, there should be continued studies on new academic and creative nail art designs which haven't been handled in this study for a further development of nail art.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suggested the value of Korean alphabet for nail art by expanding its formative excellence and diversity through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nail design after analyzing the formative beauty of Korean alphabet. It is expected that the study results would be available as basic data for theoretical design in nail art and academic resources for nail design by providing nail art design cases.

5,800원

6

일상에 직접 개입하는 문인의 예술관 연구 - 동양예술의 윤리의식을 중심으로

남치우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160-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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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토는 예술의 역사에서 예술이 취할 수 있는 어떠한 역사적 방향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직 시한다. 그래서 인지적, 도덕적, 정치적, 종교적, 실용적, 장식적 기능을 목표로 삼았던 모던적 예술의 종말을 고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예술은 윤리,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맥락과 계층, 민족, 성별, 섹슈얼리티, 인종, 종교, 지역, 학력 등 다양한 영역들이 예술의 체현, 제시, 감상의 영역 안에서 포착 된다. 이제 예술은 형식상의 실험단계에서 내용 전달을 목적으로 삼는 예술로 진화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예술은 예술과 정치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그것은 “일상에 직접 개입하는 행 동주의적” 양식마저도 예술로 인식하게 한다. 맥락적 사유로서 문화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민중의 실 천의지는 내용을 중시하는 포스트민중미술의 근간을 이룬다는 주장이다. 결국 작품을 통해서 나의 일상을 바꾸는 일은 각계 전문분야의 영역 경계를 허물며 우리의 삶을 개진시키는 문화적 운동이 된 다. 사회 정화를 위한 매개로 예술작품이 활용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 일상을 변화시키는 문화예술 운동적 관점을 전통적인 동양의 예술관으 로 적용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더나가 동양학적 관점에서 회자되는 修己와 治人의 간계를 불식하고 자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예술과 예술가의 지위를 격상시키고자 한다. 순수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 고, 다시 융ㆍ복합되어지는 오늘날 예술의 한 흐름 속에서 파악하려는 이해방식이다. 즉, 예술의 순수 영역은 이제 예술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삶의 문제로 깊이 파고들면서 보다 건전한 세계로 우리의 시선 을 모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나의 문제이자, 우리의 문제라는 점에서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 다 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문화지성인으로서의 사회참여현상은 이제 예술의 창작방향과 존재 가치적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며, 문화담론양상으로서의 기능을 예술론에 장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동양미학의 가치를 오늘날 예술사조와 비교해서 재인식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 특히 동한시대 崔瑗과 趙壹의 논쟁을 통해서 동양학의 철학적 명제가 어떻게 예술이론으로 적극적으 로 적용되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로써 형사적으로 표현된 자연의 모습이 동양의 문화지성인이 안 착하고자 하는 참세계의 표상임을 밝힌다. 이 모두는 지도자의 소명의식과 관련해서 파생된 내용과 형식이라고 동양미학체계를 이해한 결과이다. 다시 말해서 지도자의 소명의식이 예술의 창작의제가 된다는 점을 주시한 결과이다.
艺术史上,丹托(Arthur Danto)直视了艺术可以获取为任何艺术方向却再也不复存在的情况,因此,他告别了以认知、道德、政治、宗教、实用、装饰功能为目标的现代主义艺术。在此意义上,当今艺术将伦理、政治、经济、社会等的脉络和阶层、民族、性别、性特质、人种、地域、学历等多样领域因素捕捉到艺术的体现、提示、欣赏的领域里。如今,艺术由形式上的实验阶段进化为以内容为目的的传播艺术。从这个意义上说,艺术与政治的界限在当今已经坍塌。由日常生活中直接介入的行动主义样式都被认作为是艺术。即主张文化发生在重视内容的民众实践意识是后现代主义民众美术的根基。换而言之,改变我的日常生活的事最终派生出打破各界领域的界限、改进人生的文化运动、以哲学谈论为中心的艺术论创造的巨大潮流。在政治艺术界限将要消失的当代艺术潮流里,笔者想探讨东洋美学的价值。特别关注了东洋艺术家的主体文人士大夫。具有政治责任意识的文人思维意识成为艺术创作论的基础。礼乐的效能和仁的具体支撑深深地扎根于艺术创作论,这是对一个人学问成就度、人格及与相关联的艺术价值的评价。都是作为社会指导者展开健全道德的理想世界的意志与实践方式。因此,以“书如其人”作为评价东洋艺术的批评观就是反映了认识与教化这个社会的指导者思想的艺术观。为了论证做的采取方式有:通过崔瑗和趙壹的论证,探讨所东洋艺术核心——书法的存在理由与价值;通过倉頡造字和易象的认识,探讨书法批评家为何重视自然的样态。一说蕴含了反映作为社会指导者的能力与换言于人格价值资格的艺术的内容。作为现实世界蕴含了表象的自然样态,而其表象逻辑可以更好地说明并解释东洋艺术的价值。这一切都是作为社会领导者的将无道世界换成有道世界的责任,反映所作为政治家的文人意识世界的结果。通过这样的分析,以哲学谈论为中心,主张我们日常生活所有的行为样式甚至以艺术看当今艺术思潮都需要重新理解东洋美学。换句话说,打破修身与治人的界限,把作为社会指导者的本意积极地反映在艺术创造论中。如今,不论创造艺术的主体的社会领导者所具有的品格,艺术还存在以批判的角度暴露不合理的社会现象的因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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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이웨이웨이(艾未未) 작품에 반영된 체제 비판적 요소 - 작품제작을 중심으로

박상미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18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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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중국 미술가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에 반영된 체제 비판적 요소를 중국이라는 지정학적 의 특성과 함께 이해하고자 하였다. 아이웨이웨이의 작품은 중국의 문화유산과 깊은 유대관계를 가 지며 컨템포러리아트와 서구문화와도 연결되고 있다. 또한 예술이 지구촌의 문화·정치·경제가 부딪 히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을 시도한다. 논문에서는 이러한 특징에 주목하며 아이웨이웨이의 작품 속 반영되는 예술의 사회적 상호관계성과 여기서 나타나는 반체제적 요소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논문의 연구과정은 1960〜1980년까지의 중국미술과 1980년대의 미국미술을 살펴보며 아이웨이웨이 의 체제 비판적 성향의 작업관의 형성배경을 알아보았다. 그는 초기 작업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 앤디워홀(Andy Warhol, 1928-1987) 등의 예술가들에게서 삶과 예술이라는 본 질적인 부분에 영감을 받았다. 이후 개인의 삶을 시각화하는 단계의 연구과정을 거치며 주로 사진작 업으로 예술 활동을 하였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으로 돌아온 후, 아이웨이웨이의 작업은 본격 적으로 사회적 이슈를 갖게 되는 외설적 이미지나 정치적·비판적 성향이 강한 작업을 하게 되었고 이 러한 그의 배경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을 통하여 비판적 요소를 연구하였다. 아이웨이웨이의 작업은 직접적인 비판의식을 표현한 것과 물질에 대해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 이것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비판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과정은 관객에게 사 회를 객관적으로 인지시키는 과정으로 그는 작품을 통하여 인식의 전환을 유도한다. 아이웨이웨이는 작업의 목적은 그의 작품을 통하여 자유로운 소통의 힘이 없는 예술가, 소수민족 등 을 지지하며 심미적 표현으로 인권의 자유를 지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과 표현은 중국 컨템포러 리 작가들과 비교하여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만들고 있다. 또한 최근 아시아 미술이 국제적으로 조명 받고 있는 시점에 동양사상이라는 소재 외에 체제비판적 요소를 이용하여 그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웨이웨이의 작업을 연구하게 되었다.
In this paper, study on critical element reflected work of art by Ai Weiwei was understanding of the geopolitical characteristics of China. He's artwork can also be connected with contemporary art, and Western culture has a deep relationship with the cultural heritage of China. Also it attempts to show that culture, politics and economy was crashing in the artwork. This study focus on finding the feature that appear to dissidents and social interaction in the reflected art by Ai Weiwei. Ai Weiwei previously thought political tendencies were shaped by experience. So, prior to the study I look at the Chinese art in the 1980s and American art from the 1960s to 1980s. This background was continuous with initial artwork formation. Specially, When Ai Weiwei was in New York, he has received a lot of inspiration that an essential part of life and art from artists such as Andy Warhol(1928-1987) Marcel Duchamp(1887-1968). At that time, he was study to visualize on the individual's life from photographic working. Since 1990, after returning to China Ai Weiwei tend to discusses as strong issues, political and critical tasks, using the obscene images. His intial work deal with the truth and justice about society. Since 2008, artwork express to kind of political issues that government of corruption, human rights. Ai Weiwei’s purpose was to supports the freedom of human rights in the aesthetic expression. This working to be Ai Weiwei who is one of the main voices of chines dissent heard both domestically and abroad. Recently, Asian artist has been internationally working that mostly used eastern philosophy and asian identity. Ai Weiwei also would be show a asian culture about traditional china. but, he was not only express to the chinese identity but also deal with the social problem generality and individuality. Ai Weiwei’s art have a special thing that hegemonic problems express to the work that it surfaced directly. In the process, he must maintain boundary with aesthetic and communic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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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명말청초 徽州 상인의 書畵 收藏과 문화적 후원

배현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21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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徽州는 오늘날 안휘 남부와 장강 남쪽 해안 지역으로 명대 말기부터 휘주 상인들은 여러 도시를 돌아 다니며 장사를 하였다. 특히 서화 교역과 수장에도 참여하여 수장가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 였으며 중개 상인으로 작품을 판매해 이익을 남겼다. 휘주 상인의 서화 수장은 이들이 문화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재력과 학식을 드러내는 한편 서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하고 후원하는 통로가 되어 예술을 활성화하는 데 공헌하였다. 이로 인해 명말 청초 휘주를 중심으로 새로운 화파가 등장하게 된다. 특히 명말 휘주 상인이었던 吳其貞의 『書畵記』에서는 청대 초기까지 浙江과 江蘇의 도시를 돌아다 니며 본 서화 작품과 매매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그 역시 서화 수장가로 미술사에서 가치 있는 많은 명작을 수장하였으며 휘주 지역의 수장 풍조가 활성화되는 것에 기여하였다. 즉, 휘주 상인들은 휘주 지역의 수장 문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휘주에서 활동하는 여러 화 가들의 작품을 많이 수장하였는데 이는 서화가들을 후원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따라서 명ㆍ청 대 휘주 상인들의 활발한 경제 활동으로 획득한 재화는 휘주 지역 서화 예술 성장에도 영향을 미쳐 서 화가들의 예술 창작에 좋은 조건으로 작용하여 독창적인 문화형태가 되었다.
徽州指是现在的安徽南部與長江南方海区, 从明代末期徽州商人从事商业, 尤其是参加书画交易和收藏, 过与收藏家持续交流而保持良好的关系, 以中间商人的身分把作品出售而追求了利益。在文化上以徽州商人的书画收藏作为能介入的一个方式. 通过此种方式, 一方面表现出徽州商人自己的财力和学问, 另一方面把书画家的作品购买而奉献搞活艺术. 由此, 明末淸初出现了以徽州为中心的新画派, 文化艺术活动的中心之一。特別, 吳其貞是徽州籍著名藏家兼古董商人, 他记录在自己写的󰡔书画記󰡕上,到淸初浙江, 江苏等地把自己的行商古玩的所见所想, 以及当时市场中的细节。他收藏了在美术史上有着价值的许多作品, 在徽州地区掀起了一股收藏风潮的搞活。徽州商人收藏了活动在徽州的许多画家的作品, 用这种方式支持书画家。因此, 明淸时代徽州商人以积极的经济活动获得了财货, 这是影响到书画艺术的发展, 而且对书画家的艺术创作起作用好的條件, 成爲獨特的文化情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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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秋史 金正喜 性靈說에 대한 비평적 고찰 - 학술 사상적 배경을 중심으로

선주선, 전상모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249-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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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史 金正喜(1786~1856)는 당대 사회문화 전반이 세속화되었다고 진단하고 유가의 전통적 이념인 大雅文化 회복의 기치를 든 인물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反復古․反道學․脫載道적 성격을 지닌 성령설 을 수용하였다는 말은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의문점에서 논의를 시작하여 다음과 같은 결 론을 얻었다. 성령설은 양명좌파를 사상적 배경으로 한다. 양명좌파들은 마음의 영험한 측면을 강조하고 마음의 眞을 중시한다. 이는 봉건도덕과 예교규범의 굴레를 벗어나 개인의 정감과 욕망을 긍정하는 것이다. 추사가 지향한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학의 본래 정신인 성인의 도를 실현하는데 있다. 따라서 그 의 학문 방법은 그 사실의 구체적 내용이 담겨있는 경전에 나타난 사실에서 옳은 것을 찾는 것이었다. 이러한 추사의 학문관은 본심만이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진정한 가치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성 령론자들의 개체 중심적 사유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원매는 양명좌파에서 공안파에 이르는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자연인성을 긍정하고 정욕을 긍정한 다. 그는 특히 자신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창작 주체의 개성과 독특한 심미의식이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추사도 정욕을 긍정하였지만, 추사의 이해 방식은 전통적으로 당연시해 온 情 으로부터 理에 도달하여 理로써 정을 절제하는 것이었다. 추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일은 그것 을 그것으로 존재하게 하는 도를 떠나서는 그것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고 본다. 도덕성 과 예술성을 하나로 여기는 것은 추사의 특장이자 한계로 작용하였다. 성령설에서 시인의 진솔한 내면세계를 중시한다는 것은 본능적인 욕구를 의미한다. 원매는 反禮敎적 성향이 강하였고 시풍 역시 가볍다. 재기가 넘치지만 정밀하지 못한 그의 문장은 고증학의 실사구시 정신을 견지한 추사가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추사가 수용한 성령설의 실질적인 내용은 성령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가운데 성령을 격조로서 보완하는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수립하고 자 하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성령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격조와의 관련성 속 에서 성령의 가치를 일정하게 제약하는 입장에 서있었다. 추사의 이 같은 경향은 19세기 전반의 안동김씨 세도정국 하에서 권문벌족의 지위로부터 연유된 것 으로 보인다. 또한 고증학적 학문 방법에 입각한 학예일치라는 고답적인 예술세계를 지향하는 것과 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金正喜(号秋史1786~1856)是诊断当代社会文化被全盘世俗化,并且列举恢复儒家传统理念也即大雅文化之价值的人物。在此种立场上接纳具有反复古 · 反道学 · 脱载道性格的性灵说的话语是不容易被首肯的。本文从此类疑点开始讨论并得出如下结论。性灵说把阳明左派作为思想背景。阳明左派强调心的灵验层面,并且强调心灵的真。这摆脱了封建道德和礼教规范的束缚,肯定个人的情感和欲望。秋史所向往的学问的终极目标是实现作为儒学本来精神的圣人之道。因此他的学问方法是从蕴含其事实之具体内容的经典所体现的事实中寻找对的东西。秋史的这种学问观与性灵论者们以个体为中心的思维也即只把本心作为唯一可以依赖的真正价值之根源的思想有很多差异。袁枚继承了从阳明左派到公安派的学问和思想,并且肯定自然人性与情欲。他特别强调自身。因为创造主体的个性与独特的审美意识对作品必然会产生影响。虽然秋史肯定情欲,但是他的理解方式是从传统上视为理所当然的情到达理,以理来节制情。秋史认为如果基本上人类的所有事情离开让其作为自身而存在的道,那么作为它自身的存在价值也将丧失。把道德性和艺术性看成一体是秋史的特长同时也是其局限。在性灵说中重视诗人坦率的内心世界则意味着本能的欲求。袁枚反礼教的色彩强,因此诗风轻盈。袁枚虽然才华横溢,但是其未能做到精密的文章,使坚持考证学之实事求是精神的秋史完全接纳是不合道理的。秋史所接纳的性灵说的实质内容是在某种程度上认同性灵价值的同时,树立了把性灵作为格调进行完善的独立理论体系。但这并不是完全接纳与发展性灵,而其立场是在与格调的关联性中规则地制约性灵的价值。可以看出秋史的这种倾向缘于整个19世纪的安东金氏专制政局下权门阀族的地位。另外认为与向往学艺一致的清高的艺术世界也即立足于考证学的学问方法有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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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문양 및 색채를 활용한 뷰티디자인 연구

신세영, 김성남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27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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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적 가치는 현재 글로벌 경쟁시대 하나의 전략으로 부 각되고 있다. 최근 한류의 열풍으로 한국적 이미지를 활용한 산업체 영역이 확대되고 있고, 특히 디자 인 영역에서는 한국의 미를 알리기 위해 다방면에서 전통 문양이 활용되고 있다. 현재 한국인의 정서 속에 나타난 미의식을 표현한 전통문양은 뷰티디자인의 모티브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논의와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에 이 연구에서는 한국 전통 문양을 뷰티디자인의 모티 브로 현대적인 시각화 표현을 구체화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방법으로는 실존 유물과 각종 문헌, 전문서적, 정기간행물, 연구 논문, 웹사이트 등을 참조하 여 한국전통 문양의 기원과 역사, 종류,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법 등에 대해 알아보고 뷰티디자인으로 활용될 수 있는 디자인요소 및 원리를 중심으로 전통 문양 구조에 대해 고찰하였다. 뷰티디자인 연구 를 위해 인체부위 중 얼굴에 한정하여 적용하였으며, 뷰티 디자인 활용적 접근을 위해 우리 민족 고유 의 미의식과 장식미를 잘 나타내 줄 수 있으며 인체의 곡선적 요소와 디자인 원리를 적용한 식물 문양 과 가면 문양을 중심으로 전통 문양 패턴을 추출하였다. 또한 한국 전통 색채 활용을 위해 단청의 색 상배열에서 색상을 추출하여 한국의 독창적인 이미지와 뷰티디자인을 접목하여 패턴을 제시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전통 문양 중 뷰티디자인을 위한 식물문양은 반복, 단순화, 연속, 결합의 원리를 사용하여 표현이 가능했으며, 인체의 곡선을 통해 한국적 이미지를 나타내는 패턴으로 이용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물문양은 곡선의 유기적인 특징을 활용, 간격, 위치, 두께에 따라 효과를 극대화, 인체의 곡선 활용이 가능한 문양이다. 이를 통해 율동감이나 리듬감을 표현할 수 있었다. 둘째, 전통문양 중 가면 문양은 단순화, 재배치, 결합, 확장 기법으로 표현이 가능하며 한국적 이미지 를 여러 가지 디자인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가면의 특징적 요소를 얼굴에 그대로 혹은 부분적용 할 수 있으며, 형태의 크기와 배치, 각도, 명암, 색상 대비로 의미와 상징성 부여 및 뷰티 디자인으로써의 활용가능성을 알 수 있었다. 셋째, 한국 전통 색채 활용을 위해 단청의 색상배열에서 색상을 추출하여 한국의 독창적인 이미지와 뷰티디자인을 접목하여 패턴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 연구의 결과는 한국의 전통미를 뷰티디자인을 통해 표현하고 부각시킴으로써 차별화된 디자인 영 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한국적 문양을 이용하여 현대적인 뷰티 디자인으로 활용 이 가능함을 확인 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방법의 접근과 시도를 통해 다양한 한국적인 문양 패턴이 개 발되어지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 전통 문양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전통에 대한 현대의 재해 석을 통한 뷰티디자인이 개발될 것으로 기대한다.
Cultural value that represents an ethnic and cultural identity of a nation has become a strategy in the competitive global world. Recently, industrial areas have been expanded using Korean image along with the Korean Wave. In design, in particular, traditional Korean patterns have been used in various ways to promote the beauty of Korea. Traditional Korean patterns that present the aesthetic sense in Korean sentiment have been used as a motif in beauty design. Therefore, there is a need for discussion about it and systematic study. For this reason, this study aims to specify contemporary visualizing expression as a motif of traditional Korean patterns in beauty design. As study methods, origin and history of traditional Korean patterns, their kinds and current techniques were reviewed by referencing existing remains, various literature, professional books, periodical publications, study thesis and web sites. In addition, structures of traditional Korean patterns were analyzed based on design factors and principles that could be used in beauty design. The beauty design study was conducted on a face among human body parts. For the practical approach to beauty design, plant patterns and mask patterns were chosen among traditional design patterns, which represent Korean aesthetic sense and the beauty of decoration with curve element of human bodies and design principle. Moreover, colors were chosen from color arrangement of traditional multicolored paintwork on wooden buildings and stripes of many colors to suggest a pattern combined with creative Korean image and beauty design. Study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a plant pattern for beauty design was expressed with the use of principles of repetition, simplification and rhythm. It was identified that the plant pattern can be used to represent Korean image with curves of human body. It is possible for the plant pattern to use organic characteristics of curves, maximizing effects depending on distance, location and width for the use in the curves of human body. Therefore, dynamic and rhythmical senses were able to be expressed. Second, a mask pattern can be expressed with simplification and rearranging technique. In addition, various designs can be created by changing an arrangement of Korean image. The study results showed that characteristic factors of masks can be applied on the face either entirely or partially. Moreover, size, arrangement, angle, brightness and color contrast made it possible to give meaning and symbolism, proving its possibility to be used in beauty design. Third, for the use of traditional Korean colors, it was possible to suggest a pattern combined with creative Korean image and beauty design by choosing colors from the color arrangement of traditional multicolored paintwork on wooden buildings and stripes of many colors. The study results would help to construct distinctive design areas by expressing and emphasizing traditional Korean beauty in beauty design. From this study, it was confirmed that traditional Korean patterns can be used in contemporary beauty design. It is expected for Korean design patterns to be developed more various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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項穆 『書法雅言』의 正宗觀에 대한 고찰

신옥주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30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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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ㆍ사회적ㆍ교육적ㆍ공공성의 차원에서 서예의 의미를 밝힌 것이 項穆 󰡔書法雅言󰡕의 ‘書統’ 이다. 항목이 살았던 시기인 명대는 철학에서부터 문학ㆍ예술의 각 영역에 이르기까지 개성을 중시 하고, 性靈의 표현과 性情을 담아내고 복고를 반대하는 이른바 ‘개성해방 사조’가 출현하기 시작하였 다. 이에 程朱理學과 문학에서의 ‘前後七子’의 복고주의 사조가 비판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항목은 왕희지를 중심으로 ‘書統’을 통해 서예가 갖는 공능성을 유가 윤리 사상과 서예의 심 미사상을 연계 통일시켰다. 항목은 󰡔書法雅言󰡕, 「品格」에서 書家들의 등급을 正宗, 大家, 名家, 正源, 放流로 나누고 있다. 본고 는 항목이 제기한 正宗觀의 의미를 ‘고금회통’, ‘중화미’, 종심소욕의 경지에서 규구에 부합되어 ‘天然 스런 逸氣’를 유가 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아울러 時中之道를 실천하고 ‘지난 과거 성인의 업적 을 계승하여 미래 후학들의 학문세계를 열어준다[繼往聖, 開來學]’는 유가 도통관의 서예적 적용인 서통관을 정종관의 본질과 관련지어 밝혔다. 中和를 강조하는 항목은 서예에서도 心正과 時中의 중 화미를 중시한다. 이러한 유가의 道統說에 바탕 한 서예의 정종관은 결국 서예는 우아한 아름다움을 담아내야 한다는 그의 전형적인 유가 미학적 사유가 반영된 것이다.
It is the ‘Calligraphic System’ (Seotong), which is described in 『Shu Fa Ya Yan』’S of xiangmu, clarifies meaning of calligraphy in an ethical, social, educational and public interest dimension. In Ming dynasty, the period when xiangmu had lived, so-called ‘the trend of individuality liberation’ had started to emerge in that, opposing the restoration, it had put emphasis on naturals human emotions, and expression of soul , and individuality in every field ranging from philosophy and literature to arts. Thus, the trend of revivalism of Former and Latter Seven Masters in literature as well as in the Cheng-Zhu Confucianism had been started to get criticized. Under these periodic situations, xiangmu had unified the functionality that is feature of calligraphy, having it connected to Confucian ethical idea and aesthetic thought of calligraphy through ‘Calligraphic System’ Seotong centering around Wang Xizhi, xiangmu in the chapter of ‘Pumgyeok’ of Seobeob Aeon (Reflections of Calligraphy), divided the grade of calligraphers into Jeongjong , Daega , Jeongwon , and Bangryu.Among them, this paper examines the meaning of Jeongjongkwan , which is the completeness of achievement of calligraphic arts focusing on accomplishment of symmetry of Bulgyeokbulyeo having understood logics of ancient and modern times through and through, and capturing natural, outstanding spirit in the heart in the stage of Confucius freedom , which fit in with one’s criterion. Also, this paper examines Seotongkwan, which is calligraphic adaptation of Confucian Dotongkwan that stresses the practice of ‘Metamorphosis as occasion demands’ and urge that one should succeed the achievement of sage in the past and open up the academic world for youths of the future, having it connected with the essence of Jeongjongkwan. Xiangmu who emphasizes symmetry had stressed doing calligraphic arts based on symmetrical aesthetic in that timeliness of righteous mind and Chingmulpyeongsi should be on the ground of cultivated pure mental attitude, personality, and knowledge with the mindset of ‘there is no malicious intention in thinking’ -samusa and ‘do not treat people without respect’ mubulgyeong. In particular, the symmetrical aesthetics, which tells ‘knowing the logics of ancient and modern times through and through gogeum yunghoegwantong that is the condition of Jongjong , has a merit to express elegant beauty (u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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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미르 종교분쟁을 주제로 한 인도미술의 종교 의미 변화 연구 - 레나 사이니 칼랏(Reena Saini Kallat), 아마르 칸와르(Amar Kanwar) 작품을 중심으로

이셋별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32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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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미술에서 미술사적으로 큰 주축을 이루는 종교미술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였다. 특히 일부 동시대 인도 작가들은 우상화와 신비주의적인 사상에서 탈피하여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 가 종교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는 현상을 보인다. 본 연구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종교분쟁 지역인 카슈미르(Kashmir)를 주제로 한 인도미술에서 나타나 는 종교 의미 변화에 대한 연구로, 카슈미르 지역의 종교분쟁을 주제로 작업을 진행하는 인도 출신의 주요 작가 레나 사이니 칼랏(Reena Saini Kallat, 1973- )과 아마르 칸와르(Amar Kanwar, 1964- )의 작 품 분석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레나 사이니 칼랏과 아마르 칸와르는 인도 출신으로, 자국의 문제인 카슈미르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주제로 하여 조각·설치·영상 및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카슈미르 지역의 실제 사례와 현상들을 작품에 도입시키면서,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사안인 국경문제와 분쟁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민들이 겪는 고통과 피해에 집중한다. 본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인 인도의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 시각예술을 분석한 것이다. 신비주의와 우상 화에 집중하던 인도의 종교미술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그들의 작품을 분석하는 것은 동시대 인도 미술의 변화에 대한 연구로 연결되어 의미를 지닌다.
A Religious art of Indian art has changed over many years. In particular, some artists are focusing on the effects of the moder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in the religion that broke from the idealization and mysticism. This study is about Indian art focusing on Kashmir, and the characteristic of Indian art because of the religion dispute. I studied analysis of work of the artists who have worked about the religion dispute in Kashmir, Reena Saini Kallat and Amar Kanwar. Reena Saini Kallat and Amar Kanwar are from India, and they are working about Kashmir conflict in a variety of formats. They are focusing on a boundary problem and damage of the residents in troubled areas. They also introduce real case and phenomenon in their works. This study is the analysis about the visual art which reflects ongoing social phenomenon. The analysis of their works focusing on mysticism and idealization in a variety of views is meaningful because it can be related to changing of contemporary Indi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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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조각에 표현된 변형과 들뢰즈의 ‘되기’ 이론

이원숙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34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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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1922-1973)는 끊임없는 실험을 수행한 조각가이지만 인물상 중심의 재현적 구도 안에서 평가 되고 해석되어온 경향이 있다. 권진규의 작품은 실험적 기법을 통해 오히려 시대적 담론을 벗어나고, 작업과정을 중요시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때 그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요청된다. 누드조각「웅크린 여인」에서 여인은 새로운 도약을 위해 움츠리듯 몸을 둥글게 말아 넣고 인간인지 동물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접 어 넣기(pliage)’를 통해, 인간이라는 외피를 쓰기 이전의 미완의 존재가 되는 것을 ‘접힘과 펼침’, ‘생 성’으로 설명한다. 웅크린 여인의 형상이 몸을 말아 넣어 알 수 없는 ‘미완의 존재-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면, 이를 들뢰즈가 말하는 ‘창조적 함입(含入, in-volution)’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닭의 시각적 재현을 청각적으로 변환하고 있는「해신」, 말도 아닌 고슴도치도 아닌 제3의 동물 을 만들어 낸「마두」에는 변형과 단순화에 의한 익살과 해학이 담겨 있다. 이 두 작품은 하나의 존재 에서 다른 존재로 되는 과정, 둘 사이의 연결접속 혹은 관계맺음을 보여주며, 이전에는 보지 못한 익 숙하지 않은 새로운 형상을 표현한다. 대리석으로 제작된「기사」는 성별과 노소를 가늠하기 어려운 한 존재와 말이 서로 신체적 변용을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 부조 작품「두 사람」에서 형상들은 자 유로운 선들의 연결접속으로 다양한 존재로 변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권진규는 자신의 얼굴과 승려 얼굴을 중첩시키면서 새로운 존재-되기를 보여준다. 비구 니상에는 이항대립 구도를 벗어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표정이 담겨 있다. 또 이 인물상에 표현된 절제의 조형미학은 질량의 제거라는 삭감의 구도로 제작된다. 이는 비움의 몸을 만드는 구도자-되기 로 해석될 수 있다. 비움을 위한 훈련과 고행은 무소유를 이루고 이항대립구도와 결별하는 강밀한 힘 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되기’는 생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정된 동일성을 깨뜨리고 무규정화, 미확정성을 통한 끊 임없는 ‘다른 무엇 되기’에 주목하는 사유방식의 하나이다. 권진규의 조형세계를 질 들뢰즈의 ‘되기’ 이론으로 해석하는 것은 권진규의 조형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창조 하는 것이며, 이는 곧 결과적 으로 권진규의 조형세계를 다양하게 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되기’이론과 권진규의 작품을 연결 고찰 함으로써 그의 작품이 담보한 풍부한 조형성의 한 지층을 열어 보인다는 데 의의를 두고자한다.
Kwon Jin Kyu(1922-1973) is a sculptor who had tried to make new change and experiment continually in his whole works. But his works have been estimated and interpreted mostly from representational points of view. This thesis intends to interpret the deformation expressed in his works from a different standpoint as a theory of Gilles Deleuze (1925-1995), 'becoming'. In a nude「Crouching woman 」, a figure enfold her body in a circle, as if to crouch to leap. It seems like to become the cephalopod, which could be interpreted as making an ontological change, creative retrogression which is not a degradation, showing a folding(pliage) her body. It could be a virtuality because the crouching figure has lots of modifications. 「Knight」and「The God of the Sea」,「Two People」show an aspect of 'becoming' through a transverse traversing forming a block, creating some unfamiliar figure which draws a flight line opened to the new world forming a connection and relationship between two. The self-busts and busts of monk, through being piled up Kwon Jin Kyu' own face on Buddhist monk's express a sympathy between himself and monk, resisting only one identification and practising to be a seeker after truth, which requests the asceticism and moderation, and force to go beyond a threshold. Therefore it is a 'becoming-all(everyone)', resisting any transcendental standard, rejecting any dualism. This interpretation with an aesthetics of 'becoming' of Deleuze on Kwon Jin Kyu's art world is creating and reproducing a new one, which riches his own art world as well. His works are waiting for a more diverse and open interpretation with a more delicate and elaborate study, without any common or fixed notion or point of view. This thesis is not a completed study of his works, but an ongoing interpretation of them. This thesis while being more creative and productive, seeks ultimately to be seen as a threshold of change in thinking about Kwon Jin Kyu's art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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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사회의 재편에 따른 1910년대 춤 연행의 변동에 관한 연구 - 서울지역 근대 극장에서 연행된 기생 춤을 중심으로

이정노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365-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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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00년을 전후로 하여 변화된 기생들의 활동 환경이, 1910년대 전반기(前半期)에 나타난 기생의 춤 공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조망한 연구이다. 1900년을 전후해서는 당시에 활 동하던 기생의 부류를 일패‧이패‧삼패로 지칭하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 명칭의 내면에는 과거와 달 리 ‘예기(藝妓)’와 ‘창기(娼妓)’로 기업(妓業) 활동의 방식을 양분화 하려는 기획이 내재되고 있었다. 이 방식은 1908년 <기생단속령>‧ <창기단속령>의 공포로 더욱 공고화 되어졌다. “기생(藝妓)”/“창기 ”의 활동 구분과 단속령의 시행은 서울 지역의 기생 사회를 재편시켰다. ‘삼패’가 매음(賣淫)만을 전 문으로 하는 ‘창기(娼妓)’로 분류되었고, 지방에서 활동하던 향기(鄕妓)는 서울 지역에서 무부기(無夫 妓)로 기업(妓業)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현상은 춤의 연행 양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춤을 추지 않던 삼패가 춤 공연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 ‘무부기(無夫妓)’의 기업 활동 전개로 ‘정재(궁중무용)’ 종목의 증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는 “창기”의 신분으로 전락한 삼패가 “기생”이 되기 위해 관기(官妓-일패)들의 춤을 모방했던 배경이 있 었고, 같은 ‘관기 출신’인 무부기가 기업 활동에 합류하자 이를 의식한 유부기-경기(京妓)들이 반응이 내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10년대 전반기에 기생 춤 공연 기사가 다수 등장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근대 극장에서 춤을 관람한 대중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어냈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기생들 스스로 변화된 활동 환경에 적응하고 타개해 나가고자 했던 면모가 춤 연행 양상에도 표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In this research paper, we study how the changes in Gisaeng’s activities, which began to undergo change around 1900, influenced dance performances of Gisaengs observed during the first half of 1910s. Around 1900, the Gisaeng groups active during the time began to be referred to as Ipae (Group 1), Ⅱpae (Group 2), and Sampae (Group 3). Behind such titles, a plan to categorize Gisaeng activities into Yegi (Art performers) and Changgi (Prostitutes) was present. Such method became more solidified after the announcement of and in 1908. The categorization of activities between “Gisaeng” and “Changgi,” and the implementation of the control order, caused realignment of the Gisaeng society in Korea. “Sampae” referred to Changgis who specialized in prostitution, while “Hyanggi” who engaged in the regions could engage in Gisang activities in the Seoul region as non-registered Gisaengs. Such phenomenon led to changes in dance performances as well. Sampae, who did not previously engage in dances, began to be involved in dance performance activities, while the types of palatial arts increased as Hyanggis engaged in Gisaeng’s activities as non-registered Gisaengs. This was caused by the efforts of Sampae, who fell to the class of prostitutes, to imitate the dances of Gwangi (institutional Gisaeng- Ipae) in order to become true “Gisaeng.” It can also be viewed as the reaction on the part of registered Gisaengs in Seoul area responding to the participation of non-registered Gisaengs in performance activitiesThe reason for the appearance of numerous Gisaeng dance performers during the 1st half of 1910s can first be regarded as the outcome of positive responses from the audience who have viewed the performances at the modern theaters. Meanwhile, it also confirms the efforts on the part of Gisaeng to adapt and respond to changing performance environments, as expressed in dance perform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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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서예미학 연구

장지훈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3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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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백제의 서예사료 가운데 <武寧王誌石>, <砂宅智積碑>, <昌王舍利龕銘>, <彌勒寺址金製舍 利奉迎記> 등 당시의 통용 서체인 해서를 중심으로 백제 서예미학의 단면을 조명하였다. 백제는 삼국 가운데 대내외적으로 문화적 교류가 가장 활발한 나라였다. 특히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남북조와 수․당 그리고 일본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하였다. 지리적으로 중국의 남조와는 바닷길을 통해 수차례 교통할 수 있었고, 내륙을 통해서는 고구려와 중국의 북방과 소통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남 북조와 고구려 등 다양한 문화를 흡수할 수 있는 개방적 여건이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백제의 서예문화 또한 특수한 성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남북조의 서풍, 고구려의 서풍 등을 다양하게 수용하고 변용하여 백제인들의 심미감수를 반영한 이상적인 서풍을 형성하였다. 비록 정형화된 해서체임에도 불구하고, 단아하고 평정함 속에서도 天眞하고 변화무쌍하여 形似에 구 속되지 않는 忘技巧的 天趣가 두드러졌다. 서예의 기본적인 규범을 준수하면서도 그 속에서 무한한 변화와 운치를 추구한 것이다. 백제의 서예는 북방의 剛健하고 敦厚한 유가적 풍모 위에 남방의 平淡한 天趣自然의 도․불가적 미의 식, 백제인들의 온유한 성품과 주체적 심미의식 등이 조화롭게 혼융되었다. 즉, 유․불․도의 조화와 남 북조 서예문화의 흡수와 변용을 통해 和而不同의 심미를 지향하였다. 백제 서예에 투영된 ‘和’는 ‘양강과 음유의 조화’, ‘개체와 전체의 조화’로 구체화되었다. 즉, 남방의 부 드럽고 유려한 서풍이 주류를 이루면서도 북방의 강건한 기상을 내함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평정 한 통일성을 이루는 가운데서도 글자 하나하나의 변화가 많고 자연스러운 풍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 서 백제의 서예는 筆勢와 神韻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따라서 백제의 서예는 북방의 강건함과 남방의 부드러움, 유가적 氣象과 도․불가적 平淡의 和諧를 통 해 격조 높은 서예문화를 꽃피웠다. 즉, 백제의 서예는 소박하면서도 품격을 갖추었고, 세련되면서도 절제의 운치가 강하며, 주변국 서체와 유사한 가운데서도 주체적인 風韻을 지님으로써 ‘自得尙和’의 심미경계를 구현하였다.
本文以韩国百济书法资料中《武宁王志石》、《砂宅智积碑》、《昌王舍利龛铭》、《弥勒寺址金制舍利奉迎记》等当时通用的楷书字体为中心,审视了百济书法美学的一个层面。百济是韩国三国(包括百济、高句丽、新罗)之中,国内外文化交流最为活跃的国家。特别是对外,与南北朝和隋唐时期的中国,并且与日本也持续地进行了交流。百济在地理上与中国的南朝通过海陆进行了多次的交通往来,并且通过内陆能够与高句丽和中国的北方进行交流,所以具备了吸收中国的南北朝和高句丽等多样文化的开放性条件。在这种柔和的条件下,百济的书法文化没有偏向于某种特殊倾向,而是多样地吸纳和交融了中国南北朝的书风与高句丽的书风,从而形成了反映百济人审美感受的理想书风。即使是已经定型了的楷书书体,也不拘束于形似,而是在端雅和平静中带有天真与变幻无常,突出了忘记技巧的天趣。在遵守书法基本规范的同时,追求其中无限的变化和韵致。百济的书法在北方刚健敦厚的儒家风貌上面协调地融合了具有南方平淡自然天趣的佛道审美意识、百济人柔和的品性以及主体性审美意识。也即,可以说是通过吸收和交融儒、佛、道与南北朝书法文化,来向往和而不同的审美。贯穿百济书法的“和”,被具体化为‘阳刚和阴柔的协调’与‘个体和整体的协调’。即,在形成具有南方柔和与流利的主流书风的同时,内涵了北方强健的气质;总体上来看,在形成平静的统一性的同时,每个字都有很多变化和自然的风貌。所以百济的书法形成了笔势与神韵绝妙的协调。因此百济的书法通过北方的强健与南方的柔和、儒家的气质与佛道平淡的和谐,使雅致的书法文化达到了高潮。即,百济的书法在朴素的同时具有风度、在凝练的同时具有强劲的规范韵致、相似的同时具有主体性的风韵,以此体现了‘自得尚和’的审美境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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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Indonesia) 발리(Bali)춤 구조를 통한 힌두(Hindu)이외의 원류 사상 탐색

정강우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41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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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문화예술의 존속에서 그렇듯 춤 분야 역시 중심적 사상체계는 이슬람․힌두․불교의 신앙에서 출발하여 삶의 공동체적인 부분에 지배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이슬람과 불교의 세력이 우수해 지면서 상대적으로 힌두의 신앙을 보존했던 민족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힌두의 피신처답게 발리(Bali)섬으로 옮겨진 힌두는 발리춤에서 대부분의 줄거리와 인물들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발리춤에서 어느 정도의 범위가 힌두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는 것을 명확하게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다. 기존의 ‘발리춤-힌두’라는 반복적 연구보고는 더 이상의 전진적, 심층적 정보를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리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으나 지역 간의 이주 정착민들로 구성된 타동남아 지역과는 달리 원주민들에 의해 설립되어 보존되고 있는 정통적 지역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했을 때 13-15세기의 발리의 점차적인 힌두 유입은 완전히 다른 시작을 의미하거나 전혀 새로운 양상을 생성시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본 논문에서는 발리춤에 대한 다년간의 연구와 현지 조사를 통해 ‘힌두를 만나기 이전의 생성된 춤’ 또는 ‘힌두와 혼재된 춤’의 구조에서 흩어져 드러나는 원류적인 사상들을 정리, 검토해 보았다. 발리춤에서 힌두 이외 원류 사상들은 첫째, 이원론적인 양극의 성질을 균형-화합-통일로 완성해야 하는 생활 전통의 범주이다. 이는 힌두의 양극대립에서 나아가 삶에서 의무와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규율이다. 둘째, 정통적인 조상들의 섬김과 삶의 지혜에 대한 전수의 가시성을 드러낸 형상물의 근본이다. 나아가 신과의 합일을 염원하며 입신의 경지에 다다를 즈음 비로소 춤은 완전한 사상 확립에 도달한다. 셋째, 발리춤 사상은 동부 자와(Java)의 힌두와 불교의 유입 과정에서 발리의 정통적 신앙과 닮은 밀교(密敎)와 같은 신앙을 받아들이며 기존 정통 사상의 우수성을 재확인한다. 이는 초자연적인 힘(샥띠, Shakti)의 재생산이며 정통사상의 재현과 맞닿아 유용하다. 특히 주술적 행위로써의 동작의 움직임과 손짓의 행위를 따르는 밀교의 표상들은 힌두적인 신앙물과 정통적인 제의와도 자연스럽게 혼재되었다.
Like the retention of the Southeast Asian cultural art, dance was also started from Islamic․Hindu․Buddhist belief and now shows a dominant trend in communal life. In case of Indonesia, as power of Islam and Buddhism becomes superior, the ethnic group which tries to preserve Hindu belief relatively has been weakened. Nevertheless, Hindu story and characters can never be ignored whenever there is a discussion on Bali dance. And at the same time, whether Bali dance is entirely composed of Hindu story should also be considered. The official study report saying‘Bali dance – Hindu’is just repetitive and doesn’t provide any of progressive, in-depth information. The origin of Bali is not exactly known but Bali is an orthodox region of the natives which is different from other Southeast regions composed of settlers. Considering that, the role of Hindu in Bali doesn’t mean a completely different beginning nor that it created an absolutely new aspect. In addition, the ideologic origins of dances which were made before meeting Hinduism were reviewed through a field survey. First, it is a completion of ‘Balance’․‘Harmony’․‘Unification’of dualistic polarity. it has rules to cope with duties and responsibilities. Second, it is expressed as a visibility of handed down faith and wisdom of life from orthodox ancestors. Furthermore, the purpose of the dance is completed when people are about to reach the level of a superhuman praying for a union with God. Third, a description of the supernatural power (Shakti), the idea of Esoteric Buddhism similar with the orthodox religion of Bali, took a part of Bali dance ideology during the inflow of Hinduism and Buddhism of eastern Java. Especially, Esoteric Buddhism which follows the movement and hand gestures as a shamanistic activity infiltrated into a part of Bali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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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글 편지 서체에 나타난 ‘韻’의 미학적 토대 연구 - 계층별ㆍ시기별로 나타난 흘림체 이어쓰기를 중심으로

정복동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43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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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글 서예 미학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韻’을 주제로, 한글 편지 서체의 미를 분석한 것이다. 분 석 대상으로 삼은 미적 요소는 흘림체에서 도출하였는데, 특히 흘림체 이어쓰기에서 여운이 남기는 미감을 특징적으로 파악함에 있어서 직선형은 절제미로 규정하였고, 곡선형은 자연미로 규정하여 분 석하였다. 연구대상 자료는 조선시대 한글 편지 가운데 발신자와 발신일이 추정 가능한 것을 우선적으로 선정 하고, 이를 시기별․계층별․성별로 구분하여 대표성을 지닌 85건을 선정하였다. ‘운’에 관한 서예 미학 범주는 ‘기운’에 근거하고 있으며, 한글서체에 대한 ‘운’의 분석방법은 ‘應物致 知’에 기인하여 탁월한 理想美를 밝히는 것으로, 개인별 연결 글자를 분석한 결과 크게 두 가지로 규 정할 수 있다. 첫째, 한글 서체의 장법이 세로획〔ㅣ〕중심인 것은 세로획이 다음 글자와 연결될 때에 직선의 형세에 의해 운필이 절제되었는데, 이는 문법 단위인 어절별로 띄어 쓰는 형식이 많아 절제미 로 규정하였다. 둘째, 자형의 중앙에 중심이 있는 장법은 자소와 자소 혹은 단일문자와 단일문자가 연 결되는 획이 자유롭게 運腕되었다. 세로획도 길이․굵기․기울기․공간 등이 변화를 주어 다양한 곡선의 형세로 운필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절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비어절인 경우에도 강한 필세로 이어 서 운필하고 있다. 이는 문법의 장애를 받지 않고 마음을 따라 마치 하늘이 쉬지 않고 운행하듯이 사 람의 기식이 쉬지 않고 이어지는 ‘기운’에 의해 기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는 점에서 자연미로 규정 하였다. 조선시대 한글 편지 흘림체의 ‘운’에 대한 曲直 형세를 분석한 결과 개별적인 차이는 있으나 남성인 왕과 사대부가 남성은 정조대(1790년)를 기점으로 정조대 이전은 曲勢의 자연미가 유행하였고, 정조 대 이후는 直勢인 절제미가 유행하였다. 여성인 왕비와 궁녀, 사대부가 여성은 남성보다 이른 시기인 효종대의 인선왕후(1659년)부터 절제미를 보이기 시작하는데, 18세기부터는 사대부가 여성의 한글 사용이 활발하면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감성을 표출한 것이 늘어났다. 하지만 19 세기에는 일부 왕후와 사대부가 궁녀 모두 최고조의 절제미를 이룬 궁체가 정착되면서, 남성 또한 18 세기 이후 절제된 神韻을 보인다. 한글 서예에서 ‘韻’의 미학적 특징은 1550년 이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한글 편지의 흘림체에서 그 특 징이 두드러진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한글 편지의 자료는 상당수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본고는 궁중 과 사대부가의 한글편지 중에서 시기와 발수신자를 알 수 있는 자료를 대상으로 하였다. 이들 자료는 대부분 한자 서예의 경험과 학행이 뛰어난 계층들이 필사한 것으로, 그들이 지향한 知行合一과 修己 治人의 세계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비록 편지글의 서체이지만 장법이나 용필 등 에 한글 서예의 미학적 특징과 서체의 변천을 논하기에 손색없는 자료이다. 이에 실제의 작품을 분석 하되 수치를 이용한 비율로써 객관성을 확보하였다는데 연구의 가치가 있으며, 한글서예의 미학적 기초 자료가 되리라 본다.
This paper analyzed chirography of letters in Korean, emphasizing rhyme in order to establish foundation of Korean calligraphy. Artistic factors, which were subjects of analysis, were derived from cursive handwriting. In particular, I analyzed beauty of lingering imagery, and defined straight lines as art of moderation, and curves as art of nature. Research subject were derived from letters written in Korean from the Joseon dynasty. There were several criteria of selecting letters. When and where the letters were written must be trackable, and 85 among them were selected as research subjects in three categories; time, social class, and gender. Art of calligraphy on ‘Rhyme’ is based on 'Vigor', fundamental framework of analysis on 'Rhyme' of Korean calligraphy is to figure out ideal of beauty, there are mainly two types of 'Rhyme', based on analysis of connecting characters of each individual. First, vertical strokes are widely used. When they are followed by the next letter, shape of the stroke determined style of writing. From these letters, there were many uses of spacing separate words, making this an art of moderation. Second, core of the letter was placed in the center of the letter to freely express connection between consonant and vowels, and a letter and another letter. Vertical stroke displayed changes in length, thickness, tilt, and space to express various curves. Even when not writing a full word, strong strokes were displayed. This is an art of nature as a writer’s intent was not leashed by grammar, like no one can hold the sky, it is an art of natural vigor without restriction of grammar. Based on analysis of curves and straight lines of ‘Rhyme’ displayed in letters of Joseon dynasty, Many kings and nobleman in the era before the King Jungjo (1790) were attracted by the art of nature (curves) in calligraphy despite slightest personal differences. After the King Jungjo’s reign, art of moderation (straight lines) was more popular. Queen Insun and maids of honor started to use art of moderation since the era of King Hyojong (1659). Beginning 18th century, ladies of noble family became active users of Hangul (Korean characters), enabling them to freely express their emotion without restriction to formats. However, from 19th century, as queens and maids of honor from noble family were attracted to the art of moderation, men’s writings showed the art of moderation as well. Aesthetic traits of ‘Rhyme’ in the Korean calligraphy became distinctive from correspondences excavated after 1550. Significant portion of correspondences from the Joseon dynasty was discovered. However, my research focused on correspondences of the royal and noble families that let us know when and who wrote them. The majority of these letters were hand-copied by skilled people in Chinese calligraphy, reflecting their beliefs; synchronization of knowledge and action, and becoming life examples and enlightening the others. Therefore, those letters are useful enough in estimating aesthetic traits (use of strokes and sentences), and changing trends of Korean calligraphy. Value of the research is derived from objective and measurable analysis on works of the Joseon dynasty. I believe that this research would be aesthetic foundation of study on the Korean 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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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미술(當代美術)에서 한국전통회화 용어 사용의 문제점과 대안

최병식

한국동양예술학회 동양예술 제26호 2014.12 pp.479-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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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간 사용해왔던 명칭인 ‘한국화’ 90년간 사용해온 ‘동양화’에 대한 재인식의 필요성은 미술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대학의 학과분류에서도 ‘동양화(東洋畵)’ ‘한국화(韓國畵)’ ‘회화(繪畵)’ 등이 혼재되고 있지만, 사실상 미술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의 혼란과 오류는 전면적인 현상이다. 여기에는 일제 식민정책의 영향이 짙게 깔려있으며, 상대적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강박관념 또한 가 장 핵심적인 배경으로 판단되어진다. 2장에서는 ‘동양화’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과 식민정책의 문제, 특히 타이완과 만주의 관전(官展)까지 일본의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동양화를 의도적으로 개설한 사실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분석하였다. 3 장에서는 ‘한국화’ 용어사용의 현황과 함께 그 당위성, 모순을 검증하고 4장에서 전통회화 용어의 대 안을 모색하였다. 대안에서 회화로 통합된 용어와 회화, 채묵화, 한국전통회화 등의 세부분류로 귀결 되는 이 논문의 대안이 결코 최선의 해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통회화 뿐 아니라 이미 90여년 동안 사용해온 미술계 용어에 대한 논의로 확대되는 이 문제는 교육현장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화두이다. 한국미술계의 향방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더 많은 토론과 의견 이 개진되어 현장에 반영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对使用三十多年的‘韩国画’和用九十年的‘東洋画’用语问题, 出现在全美术界上再认识的必要性。首先, 共存在大学的学系分类上‘東洋画’ ‘韩国画’ ‘绘画’ 等的用语, 不过这是实际上使用在全美术界出现的用语混乱及错误的现象。由此看来, 还有日本帝国主义殖民主义时代的残余, 最核心的背景就是在相对影响下想克服的被驱迫观念所裹胁的。第二章, 对‘東洋画’具体的背景与殖民主义政策的问题, 尤其是台湾和满洲官展作为日本帝国主义殖民主义时代政策的一环, 要刻意扩大开设東洋画, 于是分析了由此导致的问题。第三章, 验证‘韩国画’用语使用的现状连同其当为性及矛盾, 第四章, 探索传统绘画用语的解决办法。在解决办法上, 以绘画为合并的用语, 还有把绘画, 彩墨画, 韩国传统绘画等归结于细节分类, 然而我绝对不是想此论文的代行方案是最好的答案。这个问题就是不但对传统绘画的谈论, 又是对于九十多年时间已被放大了在美术界用语使用的论议。还有在教育实践活动方面可以影响到的重要话题, 而且在韩国美术界的方向会有极其重要的意义。这一点就是可以陈述更多的讨论和意见, 希望被反映到现场达到共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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