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史 金正喜(1786~1856)는 당대 사회문화 전반이 세속화되었다고 진단하고 유가의 전통적 이념인 大雅文化 회복의 기치를 든 인물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反復古․反道學․脫載道적 성격을 지닌 성령설 을 수용하였다는 말은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의문점에서 논의를 시작하여 다음과 같은 결 론을 얻었다. 성령설은 양명좌파를 사상적 배경으로 한다. 양명좌파들은 마음의 영험한 측면을 강조하고 마음의 眞을 중시한다. 이는 봉건도덕과 예교규범의 굴레를 벗어나 개인의 정감과 욕망을 긍정하는 것이다. 추사가 지향한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학의 본래 정신인 성인의 도를 실현하는데 있다. 따라서 그 의 학문 방법은 그 사실의 구체적 내용이 담겨있는 경전에 나타난 사실에서 옳은 것을 찾는 것이었다. 이러한 추사의 학문관은 본심만이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진정한 가치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성 령론자들의 개체 중심적 사유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원매는 양명좌파에서 공안파에 이르는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자연인성을 긍정하고 정욕을 긍정한 다. 그는 특히 자신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창작 주체의 개성과 독특한 심미의식이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추사도 정욕을 긍정하였지만, 추사의 이해 방식은 전통적으로 당연시해 온 情 으로부터 理에 도달하여 理로써 정을 절제하는 것이었다. 추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일은 그것 을 그것으로 존재하게 하는 도를 떠나서는 그것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고 본다. 도덕성 과 예술성을 하나로 여기는 것은 추사의 특장이자 한계로 작용하였다. 성령설에서 시인의 진솔한 내면세계를 중시한다는 것은 본능적인 욕구를 의미한다. 원매는 反禮敎적 성향이 강하였고 시풍 역시 가볍다. 재기가 넘치지만 정밀하지 못한 그의 문장은 고증학의 실사구시 정신을 견지한 추사가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추사가 수용한 성령설의 실질적인 내용은 성령의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가운데 성령을 격조로서 보완하는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수립하고 자 하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성령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격조와의 관련성 속 에서 성령의 가치를 일정하게 제약하는 입장에 서있었다. 추사의 이 같은 경향은 19세기 전반의 안동김씨 세도정국 하에서 권문벌족의 지위로부터 연유된 것 으로 보인다. 또한 고증학적 학문 방법에 입각한 학예일치라는 고답적인 예술세계를 지향하는 것과 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