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화단은 중국에서 전래된 회화양식에서 벗어나 그림의 주제와 양식에서 조선적인 회화로 발전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적인 회화의 전개라는 상황 속에서도 중국 南宗文人畵의 본격적인 수용은 중국 회화의 영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던 조선후기 화단의 주요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 董其昌 화풍의 전개에 있어 중국의 대표적인 畵派 중 하나인 吳派畵風의 유입은 조선후기 문인화풍과도 직접 연결된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작품들 가운데 吳派화풍의 요소가 보이는 작품들을 통해 동기창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吳派의 영향이 조선후기 문인화가들에게 폭넓은 수용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吳派를 비롯한 넓은 의미로의 중국 회화의 수용과 인식은 중국 화보류의 보급과 중국 서적문화에 대한 조선 문인들의 지식이 확대되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나아가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鑑賞之學의 영역이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書畵古董 취미와 鑑評活動의 확산은 조선후기 문인문화의 성숙과 발전에 기여했다. 조선후기 문인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동기창의 서화자료를 감상했으며, 동기창의 영향은 조선후기 화단에 저변화되어 畵題로 이용된다거나 倣作되어 동기창에 대한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동기창의 繪畵美學思想은 山水傳神과 士氣의 중시라고 할 수 있다. 동기창은 후천적인 氣韻生動의 경계를 강조했으며, 조선후기 李夏坤은 자연 대상으로부터 회화가 갖는 인식으로서 대상의 내면적 진실을 찾아내고 傳神的 경지에 도달해야 함을 추구한 것에서 볼 때, 동기창과 이하곤의 山水傳神의 美意識은 유사함을 보인다. 또한 동기창이 山水丘壑의 정취로서 士氣를 중시했던 점과 南公轍이 중국 화론과 관련하여 士氣를 언급한 것에서 볼 때, 동기창이 제시한 尙南貶北論이 조선후기 화단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士氣는 조선후기 南宗文人畵의 단면이자 審美意識의 기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