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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 [THE CHUNG KUK MUN HAK ; Journal of Chinese Literature]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중국어문학회 [The Society for 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pISSN
    1226-2943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73 ~ 2017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중국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820 DDC 895
제91집 (10건)
No
1

경학사의 관점에서 본 조선 전기의 《논어》 인식

이강재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1집 2017.05 pp.1-11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고는 조선시대는 전기부터 유학이 흥성하고 유가 경전에 대한 여러 저작이 출현하였음에도 논어에 대한 전문 저작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출발하여, 조선 전기에 논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학습하였는지 탐구하고 아울러 이 시기에 논어 관련 저작이 출현하지 않은 이유를 탐구하고 있다. 조선 전기에는 사서집주의 유입과 출판, 조선전기 학자들의 유가 중심적인 학문 경향, 왕과 신하들의 학문적 토론인 경연의 주제, 과거시험의 학습 대상과 시험문제 등을 검토해보았을 때 논어는 당시의 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경전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가 사서에 포함되어 있고 사서는 성리학에서 중시되었지만, 당시까지는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지 않았기에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였다. 성리학이 들어온 이후 그전까지 경문 중심으로 경전을 이해하던 학풍에서 주석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이로 인하여 일정 정도의 시간이 경과된 이후에야 경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이 때문에 조선 중기 이후 본격적인 저작이 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조선중기 퇴계와 율곡에 이르러 석의와 언해 형식을 통해 논어 관련 저작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고 이후 매우 많은 개인 저작이 등장한 것에서 알 수 있으며, 또한 성리학에 대한 조선 학자의 이해가 깊어졌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당시의 지식인들이 조선의 새로운 문명을 완성해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것이다.

Though many works on Confucianism and Confucian cannons appeared in the early Chosun Dynasty, there were none specially devoted to the study of the Analects. What did people think of the words of Confucius at that time, and how did they learn and study the Analects of Confucius? This is the starting question of the paper. Investigation of relevant documents shows that there was no writing about the Analects of Confucius during the early Chosun Dynasty. However, we have confirming evidence the scholars of that time attached great importance to the Analects of Confucius, a fact based on records of the circulation and printing of the Collected Commentaries on the Four Books (i.e., The Great Learning; The Doctrine of the Mean; the Analects of Confucius; The Mencius), scholars’ academic interests, favorite topics of discussion between the emperor and his ministers, designated courses of learning and test questions for taking imperial examinations. Although Korean Neo-Confucians paid much attention to the four classics, their understanding of xinglixue(“the learning of human nature and principle”, Neo-Confucianism) at that time was yet to be deepened. As a result, the eonhae (Korean annotation)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by collective efforts came out before individually authored works, and after that more and more individual works appeared. During the middle of the Chosun Dynasty, Yi T’oegye and Yi Yulgok formally publishedworks about the Analects of Confucius in the form of interpretation and eonhae, which indicates scholars gained further understanding of Neo-Confucianism and also represents the process of shaping new Korean culture by scholars of that time.

2

《吳越春秋》에 나타난 神話 연구

김영식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1집 2017.05 pp.13-39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오월춘추》는 보통 사서로 거론되지만, 소설적 특성을 많이 보유함으로써 소설에 가깝거나 부분적으로 소설적 성취를 이룬 전적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작품 가운데 많은 신화 관련 서술이 있는데, 신화는 그 자체가 ‘이야기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상상력도 도드라져 문학적 특성이 강하다. 여기에 더하여 작자가 신화의 기술을 통해 소설적 글쓰기도 시도하고 있어, 《오월춘추》를 소설서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을 제공했다. 《오월춘추》에 나타난 신화는 神怪한 이미지를 발현하여 志怪小說과 맥이 닿 아 있으며, 작자는 소설가적인 필법을 운용하여 상상과 허구로 문장을 부연하고 확대했고, 곳곳에 작자의식을 반영하여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글을 이루려 했다는 의도성을 드러내었으며, 신화를 적절한 곳에 배치하여 이야기를 진행시켜가는 動力으로 활용하였다. 이처럼 삽입된 신화를 통해, 작자는 史家들이 추구하는 述而不作의 태도를 벗어나 소설가적 글쓰기를 시도함으로써, 본 전적을 小說書에 접근하도록 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這篇論文開始了於一個把《吳越春秋》想看成小說書的意圖. 以成就那個目的的方法, 我在這兒分析了《吳越春秋》裏面的各類神話. 《吳越春秋》裏面有很多神話. 神話又有故事的特性, 又有很多想像的色彩. 所以神話隨時可能成一篇文學作品. 而且以斷片的敍述或者一個詞, 可以在作品中增大文學性. 《吳越春秋》裏面不但有感生神話, 治水神話, 鑄劍神話, 英雄神話, 而且有崑崙神話, 白猿神話, 鳥田神話, 再生神話, 很多神話性故事, 讓我們覺得又幻想又神秘的氣分. 除了如此的神話的浪漫氣分以外, 作者發揮了自己的小說家的寫作能力, 以讓我們覺得《吳越春秋》的小說性. 《吳越春秋》裏面的神話含有很多神怪的意象, 而作者以此運用得好而把《吳越春秋》變成了一篇又神秘又幻想的作品. 假使我們想神話的神怪特性作爲後來的志怪小說的重要領域, 《吳越春秋》的使用神話把它成爲了一個接近於小說的要因. 《吳越春秋》的作者通過神話運用了小說的筆法. 作者用斷片的事實或者斷想來發揮自己的寫作才能, 加之又敷衍又擴大又虛構地構成, 想要成了自己所意圖的文章. 而且參考以前的典籍而在記述神話的時, 作者寫成了與以前不可比較的很長的文章. 就是作者通過神話的敍述試試了小說的寫作. 《吳越春秋》神話裏面除了含有作者對社會的態度和觀點的意識以外, 而且含有當時的道德․政治的觀點. 這種意識來自了小說家的寫作, 而此與記述歷史的方法差得很多. 我們從此可以窥视作者寫作的意圖性. 作者在《吳越春秋》以神話作爲了進行故事的動力. 有的神話成爲了故事的發端, 有的神話成爲了故事的高潮, 且有的神話成爲了故事的展開. 換句話說, 作者活用神話的機能來把它按排了在合適的地方. 我想這種方法來自了小說家的構想. 《吳越春秋》離開史家的‘述而不作’態度而進入了一場小說家寫作的領域. 以我看法來說, 這把《吳越春秋》成爲了一篇接近於小說或者可以稱爲小說的作品. 而且神話在這科程當中作了相當的貢獻.

3

문명과 야만 ─ 3대 神魔小說 주제 비교

홍상훈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1집 2017.05 pp.41-5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고는 문명과 야만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3대 신마소설’에 나타난 차이와 그로 인한 서사 구조의 차이를 비교한 것이다. 《봉신연의》에서는 ‘武王伐紂’와 ‘封神’의 과정에서 야만적 ‘獸性’에 바탕을 둔 무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부조리에 주목했다. 《서유기》는 손오공의 성장 과정에 나타난 獸性-人性-神性의 단계적 변화를 제시하면서도 역시 문명적 질서를 건립하는 데에 무력이 필요했다는 모순적인 현상을 보여준다. 《서양기》는 독선적인 기준에 의해 中華-海外를 문명-야만으로 규정하고, 敎化를 내세우면서 오히려 폭력과 살생을 앞세움으로써 명분과 현실 사이의 논리적 파탄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주제 설정의 차이는 세 작품의 서사 구조에도 각기 다른 영향을 주었다.

本文简略地对比了以文明和野蠻为主题的"三大神魔小说"中出现的差異和由此引发的叙事结构差異。首先, 在《封神演义》中, 笔者注意到以暴易暴的"武王伐紂"和为了建立文明-人性(神性)的秩序排除野蠻-獸性的"封神"这两种过程中不可避免的矛盾。接下来,虽然《西遊记》揭示了孙悟空的成长过程中出现的獸性-人性-神性的阶段变化, 但在这里也可以看出和《封神演义》相似的矛盾。为了打破野蠻的不合理和无秩序而建立文明秩序, 孙悟空等要求的却是某种强烈的武装衝突。最後,《西洋记》用自以为是的标準来把中华-海外的关系规定为文明-野蠻的关系,而且它暴露出了名为敎化的名份和现实之间的逻辑破裂。當然不同的主题设定也给敍事结構带来了各自不同的影响。结果,在《封神演义》和《西遊记》中,即使有程度和方式的某些差異, 也对立的雙方达成了互相满意的妥协结果。相比之下, 《西洋记》却创造了一種幻想, 那就是提倡文明的中華单方面地扼杀海外蠻夷的梦想。

4

《鏡花緣》의 思想傾向 分析

위행복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1집 2017.05 pp.59-81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鏡花緣》은 儒家的 價値觀을 바탕에 둠으로써 분명한 사상적 한계를 드러낸 작품이다. 사회에 대한 批判的 視覺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儒家的 世界觀을 기준으로 현실을 진단함으로써 작품이 제시하는 理想世界는 낙후하면서도 空想的이다. 여성들에 대한 교육을 지지하면서도 국가 운영에의 참여는 반대하며, ‘三從四德’과 ‘烈女孝婦’의 관념을 강조함으로써 작품 속의 여성교육은 ‘婦德’의 주입과정으로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면서 ‘閨中’을 멀리 벗어나 활발히 활동하는 女性形像은 여성의 위상을 높이기보다는 소설의 獵奇的 재미를 달성하면서 작자의 衒學的 취미를 구현하기 위한 장치로 비쳐진다. ‘鏡花緣’이라는 제목은 작품에서 제시된 세상이 현실세계에서는 구현될 수 없다는 점을 은유한다. 理想을 실현하려는 熱望이나 信念이 작가에게 없었던 것이다. 世態批判과 여성들에 대한 同情的 視覺으로 인해 《鏡花緣》이 진보적 사상을 담고 있다고 평가하는 연구가 많았지만, 保守的 세계관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고 變革에의 열정이 담겨있지 않으며, 예술적으로는 저급한 단계에 처해있는 것이 작품의 實相이다.

《鏡花緣》是以儒家價值觀為基礎的, 因此在其思想上呈現出了明顯的局限性. 該作品雖然具有對社會的批判性視角, 但因受到了儒家價値觀的羈絆, 所以揭示的理想世界是落後的, 也是空想的. 《鏡花緣》在支持女性教育的同時, 又反對了女性對國家運營的參與, 而且還強調了‘三從四德’和‘烈女孝婦’等觀念, 這會使女性教育被理解為對‘婦德’的註入式教育過程, 因此, 這會使小說中所塑造的具有淵博知識、擺脫‘閨中’生活、進行活躍活動的女性形像, 被視為增加小說獵奇色彩、作家炫學的趣味裝置. 作品題目《鏡花緣》, 在暗示小說中所述的世界是無法在現實中存在的. 這表示作家並沒有要實現理想的熱望和信念. 因為該作品承載對事態的批判和對女性的同情, 所以很多學者對其進行了具有進步性思想的評價, 但是貫穿整部作品的保守的世界觀、低級的藝術水平和不對變革存有熱情卻是該作品的真實面目.

5

역사와 문화예술 공간으로서 17-18세기 ‘老北京’의 풍경

최형섭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1집 2017.05 pp.83-111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 연구를 통해 滿洲族이 통치하던 淸朝(1644-1911) 전반기, 제국의 수도 북경의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고 당시 문인들의 글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老北京’의 풍경을 재현해 봄으로써, 독특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역사와 문화예술의 공간으로서 도시의 성격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대략 14-18세기까지 대표적인 작품을 선별하여 북경에 관한 기록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특히 청대 전반기를 順治(1644-1661)․康熙(1662-1722)의 제1기와 乾隆(1736-1795)의 제2기로 구분하고, 17세기에서 18세기로 이행되면서 어떤 변화가 발견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고찰하였다. 다음으로, 도시를 ‘역사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청대 북경이 만주족의 수도가 되면서 나타난 변화상을 분석하였다. 크게 ‘旗民分居’ 정책으로 만주족과 한족이 각각 내성과 외성에 분리 거주하게 한 상황과 그것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만주족과 관련하여 새롭게 생겨난 지명을 통해 17-18세기 북경의 변화상을 논증하였다. 마지막으로, 주로 한족의 공간이었던 외성 지역을 중심으로 ‘문화예술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17-18세기 북경의 풍경을 재구성해 보았다. 명사의 고택, 공연예술의 거리, 출판문화의 거리라는 세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을 吳長元의《宸垣識略》에 수록되어 있는 당시 북경 지도와 연계하여 설명하였다. 이 글은 도시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려는 하나의 시도이자, 도시 북경을 통해 17-18세기 중국 사회의 일면을 새롭게 이해하고, 지금까지의 ‘老北京’에 대한 연구를 확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The Manchu conquered China in 1644 and ruled over for more than 260 years until 1911. The Manchurian entry into Beijing produced much changes. I would like to approach the city of Beijing as the space of the history and culture-art in this paper, and to apprehend various changes of the Qing capital Beijing. This paper is organized as follows. First, I tried to write the history of records about Beijing through examining about 11 reference books. For example, Xiong Meng-xiang(熊夢祥)’s Xijinzhi(析津志) in Yuan dynasty was the first local chronicles and systematic record about Beijing. Yingleti(永樂帝) built Zijincheng(紫禁城) in the early 15th century, and transferred the capital from Nanjing to Beijing. Records about Beijing became more and more increasing since the 16th century. Especially I wrote the history of records about Beijing focusing on changes from 17th century to 18th century in second chapter. Second, I examined the changing profile of the city after the Manchu entering into Beijing. The Eight Banners(八旗軍) were stationed in inner Beijing castle to ensure safety for imperial family and aristocracy in the early Qing dynasty. On the other hand, the Han Chinese must to move to outer Beijing castle. The Manchurian distinct street names also appeared reflecting this circumstance. I tried to explain changes of the Qing capital Beijing from the viewpoint of the historical and political space in third chapter. Third, I attempted to show Beijing’s various aspects as cultural and artistic space in fourth chapter. Many literary man recorded memories and images of Beijing in their works such as Wang Shi-zhen(王士禎)’s Xiangzubiji(香祖筆記), Dai Lu(戴璐)’s Tengyinzaji(藤陰雜記), Ji Yun(紀昀)’s Yueweicaotangbiji(閱微草堂筆記) etc. Based on these works, I reconstructed the celebrities’ homes, the street of theatres to be served tea and meals, and popular bookstore street on maps attached in Wu Chang-yuan(吴长元)’s Chenyuanshilue(宸垣识略)(1788). In this paper I attempted to approach and understand the city of Beijing in the perspective of the humanities, and to explain how the capital Beijng changed in the Qing dynasty as a whole, according as the Manchu and the Han lived together since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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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서양 근대 지식의 중국 전파 - ‘Society for the Diffusion of Useful Knowledge in China’를 중심으로

백광준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1집 2017.05 pp.113-13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834년, 中國 廣州에서 결성된 ‘Society for the Diffusion of Useful Knowledge in China’는 광저우 일대에서 활동하는 상인들과 선교사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였다. 이 협회는 앞선 1827년에 영국에서 결성된 모(母) 협회의 목적을 기본적으로 계승하였고, 문명의 보급과 종교적 축복의 전파를 위한 지식 보급에 노력하며, 그 일환으로 중국 지식지형의 조사, 그리고 출판물의 기획, 간행, 배포 등의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나 지식보급회가 갖는 의의는 오히려 청조의 봉쇄에 직면하여 지식과 축복의 전파라는 ‘聖戰’을 전개하며 중영전쟁까지의 공백을 메우는 가교로서의 역할에서 찾아져야 하며, 이는 그를 뒷받침한 The Chinese Repository가 매체로서 뿐만 아니라 당시 西勢東漸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834年,一群外国人在广州开办两次会议,不久后结成了“中国益智会”。这会是渊源于英国益智会,同样有志乎向中国人民普及实用知识。由于当时产业的迅速发展,英国社会上日渐加重了阶级矛盾,该会针对这一点要普及知识,以期缓解社会上的危机。中国益智会认为中国的落后也缘于实用知识的不足, 因此基本上接受了英国协会的目的与实践方式。因为他们担心中国的未来以投身于普及知识,该会在一定程度上带着慈善的一面,其实在外国人的眼中,该会便是一种慈善团体。不过,即使他们的意图再好,在他们思考之中当时中国的情况均未考虑,这一点上确不免失乎单方面行动。加之,要是考察协会的组成,也可推测该会别有怀抱,即主要成员分为两群,一群应是传教士,另一群是商人集体。这样的情况不得不使得该会不能摆脱两群的欲望,是理所当然的,并且当时他们均为扩大传教、增进贸易致力于争取门户开放,特别是围绕着鸦片战争前后他们大多站在支持战争的一方。要之,他们标榜“祝福”与“进步”不断地唿吁觉醒中国,以使之挺立在列国之中。虽然这些口号确是难能可贵的,而他们的欲望与立场与之相反,显示着该会的双重性。 如考虑英国协会在规定上严禁出版宗教性刊物,就很难理解传教士为何结成该协会的分会。新教传教士在《中国丛报》里多次批评过虽然耶稣会在中国顺利传教,扩大势力,而将传教对象分外集中在统治集团里,因此不能对付因后继统治集团而引起的新局面。由此看出,他们就反对耶稣会的精英意识,这就使得他们之后采取大众传教方式。这一点上,在中传教士所采取的实践方式是与益智会的大众普及方式几乎相同的。不过,他们既然在中国,为普及知识也要克服语言障碍,因此为此倾注心血将他们的刊物当地化,例如制定翻译新概念词汇的标准、适应中国出版样式、援用儒教经典上的表现。 与此同时,该会不断考察和分析中国知识情况,1837年进行细心翻阅京师图书馆的图书目录,该会通过每次会议根据这些分析安排和完善了急需出版的刊物计划。 四次会议后,益智会的相关报道不再刊登在中国丛报上了。按我理解,随着当时鸦片战争的爆发,他们的穷极目的——门户开放是一瞬间达成了,由此该会也失去了主要动力。固然没有鸦片战争,也就可能会长久持续,是因为该协会对中国知识分布的把握与其出版计划逐渐深化。但是,其实协会所出版的刊物几乎都卖不动,在鸦片战争的十年后居然未有变化。那幺,益智会的实践化为泡影了吗? 1836年洪秀全去赴广州应试科举,其间把梁阿发所写的《劝世良言》拿到手里。后来洪秀全从该书中得到启发,终于决心太平天国的建设了。此外,魏源的《海国图志》、徐继畬的《瀛寰志略》也给当时中国带来了很大影响,还有林则徐的《四洲志》、梁廷楠的《海国四说》里也含有很多从该会的刊物里引过来的内容。 不过,不容疏忽的是,益智会的意义不能局限在这一方面,而在于时代性层面上。如果我们看到益智会成立的情况,可以看出当时由于“纳皮尔之败”,中国对外国人刊物强化审阅了,因此由郭实猎等新教传教士不能找到印刷、出版的渠道,摸索出版的另外途径,这就是益智会成立的塬因之一。要之,当时广州的商人和传教士面临一切被清朝所封锁的情况,感到崩溃,以致于迫切为普及知识和传教摸索突破的战略。当时益智会就成立,弥补了他们事业的中断,这就是该协会的重大意义,同时这意味着《中国丛报》不仅是媒体,而更可能是为西势东渐重要阵地。

7

莫言小说《生死疲劳》韩译本中文化负载词的翻译策略

조보로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1집 2017.05 pp.13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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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은 그들만의 독특한 역사, 사회, 생태, 종교 그리고 민속 등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각 민족의 언어는 어휘, 성어 등의 문화적 요소를 통하여 그러한 관념 혹은 사물을 반영한다. 각 나라의 문화적 요소를 번역하는 작업은 타국 문화에 대한 번역자의 정확한 이해를 요구함과 동시에, 그 문화의 정수(精髓)를 충실히 전달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문화 간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논문은 자국화번역과 이국화번역 이론의 관점에서 모옌 소설 《生死疲勞》의 한역본『인생은 고달파』를 대상으로 문화적 요소의 중한 번역 방법론에 대해 고찰한다. 이를 통해 향후 다양하고 우수한 중국 문학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함에 있어서 문화적 요소의 번역 방법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Culture-loaded words is a reflection of a country or a nation’s environment, material culture, religions and beliefs, customs and so on. Due to the cultural divergence between Korean an Chinese, the translation of culture-loaded words brings great challenge to translators. Also, the success of translating culture-loaded word plays an important part in the success of the whole translation. This paper investigates the “Donkey “s Play” translation strategies of Mo Yan ‘s novel, the first part of Life and Death are Wearing Me Out, from the aspects of linguistic culture - loaded words, social-cultural - loaded words, ecological - cultural - words, religious - cultural - loaded words and material - cultural - loaded words, It can be seen that the translators have adopted literal translation, paraphrase, addition and subtraction, as well as the translation of the filling method. The translator has adopted the strategy of alienation for most of the cultural factors, and has retained the original local flavor and national characteristics to the maximum extent.

8

근대 중국의 개념어 번역과 ‘格義’에 대한 비교 연구

양세욱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1집 2017.05 pp.15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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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學의 개창자인 스기타 겐파쿠는 참고할 사전 한 권 없이 독일어 해부학 책의 네덜란드어 번역본을 일본어로 重譯하기로 결심하면서 “마치 노도 없고 키도 없이 망망대해로 나가 배를 댈 곳도 없는 곳에 있는 것처럼 막막하고 또 막막할 뿐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40년 후에는 “이 학문이 이렇게까지 번성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술회하였다. 근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서양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낯선 언어를 대상으로 수행한 번역과 그 산물인 근대 번역어의 생산이 어떻게 그토록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까. 이 논문은 중국이 인도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채택한 번역의 비전과 방법이 동아시아 공동문어를 매개로 시대를 뛰어넘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성공의 경험을 일깨우고 번역에 대한 확신과 청사진을 제시한 ‘노’와 ‘키’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시도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mpare between geyi(格義), which is a hermeneutical method adopted by China to understand the concept of Indian Buddhism and modern East Asian translated loans producted by modern China in the process to understand Western scholarship and thought and to clarify the correlation and the influence. When Sugita Genpaku, a founder in the field of Rangaku, decided to translate the Dutch translation of the German anatomy book in Japanese without any dictionary to refer, he confessed that “it is as if we face boundless ocean where there is no place to go without oar and rudder”. But 40 years later, he said, “I did not expect this study would prosper like this.” How could the translation and production of modern translation which East Asia including modern China and Japan performed on foreign languages belonging to the Indo-European languages in the course of accepting the West have been so successful? In this paper, the vision and methodology of translation adopted by China to understand Indian Buddhism had been passed over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through East Asian common language and played the role of ‘oar and rudder’ to awake the experience of success and present conviction and blueprint for translation.

9

“在+장소명사”와 방위사 “裏”의 제약관계에 대한 소고

김홍실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1집 2017.05 pp.175-195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 논문은 장소명사가 “在”의 목적어로 쓰일 때 방위사 “裏”의 후행 여부에 대해 살펴본 연구이다. 장소명사가 “在”의 목적어로 쓰일 때 뒤에 방위사 “裏”의 후행여부를 결정하는 기제에 대해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몇몇 제약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우선, 장소명사가 나타내는 공간이 “공간 밖”과 대조를 이루는 경우, 그리고 장소명사가 물체를 나타내는 경향이 강할 때 공간성을 확보하기 위해 “裏”가 후행한다. 다음으로, 장소명사가 직장소속 또는 기관에 속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경우 “裏”가 후행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존재물과 처소 사이의 관계가 항상적이거나 비지시성(총칭)을 나타낼 때 “裏”가 후행하지 않는다. 반면 존재물과 처소 사이의 관계가 임시적인 경우는 “裏”가 후행하는 경향이 강하다.

本文探讨了处所词做"在"的宾语时,方位词"裏"是否隐现的问题。考察结果,方位词"裏"的隐现机制可分为以下几点。首先,处所词所表示的方位即"空间内"与"空间外"形成对比时和处所词的所指对象指向事物时,"裏"有强制性显现倾向。其次,处所词指示的对象为工作单位或机关所属人员时,"裏"将会隐现。最后,物体与处所之间的关系具有常规性或处所词具有任指意义时,"裏"将会隐现。反之,物体与处所之间的关系具有临时性时,"裏"有显现的倾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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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양사 ‘条’의 범주 확장에 관한 연구 - 범주화와 원형이론을 근거로

이운재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1집 2017.05 pp.19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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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인지언어학의 원형이론과 범주화에 접근해 장형양사 ‘条’의 범주 확장 양상과 그에 적용되는 인지기제에 관해 살펴본 후 이를 토대로 의미 연쇄 모형을 구현하였다. 다양한 형상성 양사 중에서 장형양사 ‘条’는 기다란 형태를 속성으로 지니고 있으며 이와 결합되는 명사 역시 기본적으로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장형양사 ‘条’와 결합 가능한 명사는 구체명사 ‘根’에서 추상명사 ‘心得’에 이르기까지 범주가 확장되는데, 구체적 범주 ‘根’에서 벗어날수록 기다란 속성은 퇴색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하나의 범주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유사성에 의해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범주화 양상은 새를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새의 전형성에서 가장 좋은 보기인 참새는 원형적 구성원에 속하지만 날지 못하고 몸집이 큰 타조와 펭귄은 주변적 구성원에 속한다. 새의 범주에서 타조나 펭귄처럼 모호한 구성원 역시 새의 범주로 귀납시킬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인지언어학의 방법론인 원형이론과 범주화를 통해 설명 가능하다. 본고는 인지언어학적 관점에 접근해 장형양사 ‘条’와 결속 가능한 명사 중에서 기다란 속성이 구체적으로 구현될수록 원형적 구성원으로 귀납시켰으며, 그 의미가 모호해질수록 주변적 구성원으로 귀납시켰다. 그런 연후에 인지기제인 개념적 환유와 개념적 은유를 적용해 장형양사 ‘条’의 범주가 확장되는 메카니즘을 밝혔다. 개념적 환유에서는 부분·전체라는 개념적 의미를 가지고 장형양사 ‘条’가 형태적 속성, 기능적 부분, 구조적 부분으로 범주화되는 양상을 논하였으며, 개념적 은유에서는 장형양사 ‘条’의 은유계층구조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본고에서 논의된 인지기제를 토대로 장형양사 ‘條’의 범주 구성원의 의미 연쇄 모형을 구현하여 범주가 확장되는 경로를 제시하였다.

本文基于原型理论和范畴化讨论长形量词‘条’的范畴扩张及其认知机制,并且在其讨论的基础下还描画长形量词‘条’的意义连锁模型。量词‘条’本义『说文解字』上说树枝,它具有长形,因此通常将长形作为它的属性,同它可共现的名词一般具有其属性。长形量词‘条’共现合的名词类分为具体名词(‘根’,‘蛇’,‘领带’,‘河流’,‘铁路’,‘大汉’)和抽象名词(‘出路’,‘信息’,‘规定’,‘心得’)。长形量词‘条’范畴成员具有不同的地位,所以可以说名它们根据相似性实现意义链锁。我们将长形量词的范畴成员‘条’分为原型成员和周边成员进行考察,然后,根据认知机制,即概念转喻和概念隐喻,提现范畴扩张所采用的内在因素。从概念转喻来看,长形量词‘条’以‘部分-全体’为主的范畴扩张能力在属性,功能,结构方面起到重要作用。从概念隐喻来看,以时空隐喻为主揭示隐喻层次结构,如‘时间=空间’,‘信息=时间’,‘人生=旅行’等等。最终在上述讨论的基础下描画对于长形量词‘条’的范畴扩张的意义链锁模,从而揭示扩张途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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