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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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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찰관악(季札觀樂)을 통해 본 ‘악(樂)’의 의미와 지향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64집 2010.08 p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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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从季札在鲁襄公二十九年所欣赏的‘乐’, 为何表现为‘观’一说的疑问点出发, 阐示了‘周乐’里不仅有歌者, 同时也有舞者和唱者的演出。 《诗经》里的诗, 从字面上看, 它只是诗而已。 但看當时演出情况, 就可知扮装之人的特定动作或者随舞而歌的歌词。 卽先秦时期的‘乐’是诗⋅歌⋅舞熔於一体的综合艺术形态的概念。 儒家的‘乐’, 其意思一般多伴随着禮而表露出来。 到禮乐制度整理完善的周朝, 在乐中的‘舞’的地位更达到了稳固。 周公和孔子把乐舞當作打好政治、 经济、 社会、 文化基礎的, 体现禮的重要手段。 ‘乐’的作用超过单纯的歌舞概念, 进一步达到了敎化人和社会的总体品行的地位。 季札所批评的六種舞, 與周公所定立的‘六代舞’實際上相同。 孔子也对‘乐’进行了批评, 他的论评也和季札一样, 在‘六代舞’中,把<韶箾>为最理想, 最高的作品。 通过以上论述, 阐明了中国古代‘乐’的综合艺术性―視覺的效果不亚於聽覺的效果。 也可以考察了儒学所追求的‘乐’的意義和中国‘乐’的意義。 現在中国的戏曲與西欧的演剧概念不同。 它是以唱、 念、 做、 打构成的。 这就从始於先秦時期‘乐’里, 已可寻起源。 清代以後越来越强化演剧化因素的中國地方戏和民間演戏―秧歌、 莲花落等―都是這樣基礎上形成的。
고대중국수사학의 ‘설득’에 대한 연구-《韓非子》의〈難言〉과〈說難〉편을 중심으로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64집 2010.08 pp.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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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方修辞学起源于古希腊的演说技术。 这时的技术包括立论和修饰词句的艺术。 演说在古希腊被广泛运用于政治、 经济上的诉讼, 说服就成为演说的主要目的, 而论证也在说服中起着重要作用。 亚里斯多德承袭古希腊的传统修辞, 以说服和论证为主要框架设计了演讲论辩修辞理论。 他的修辞学注重於听众心里、 构思过程、 论辩、 文体风格等說服和論證方面。 从此西方修辞学本身也经历了内涵意义上的不断扩展。 但亚氏修辞学在意思上基本与当时中国以文辞修辞研究为主的传统修辞概念有一定的差异。 在中国的传统修辞的视角看, 古代中国修辞与西方的说服为主的修辞有一定的差异。 但先秦时期诸子的相关论述中我们不难发现以说服为重点的修辞思想, 韩非子的<说难>和<难言>被很多人理解为正面宣传说服技巧的典范。 中国古代修辞虽涉及说服修辞, 但这种修辞不同于古希腊对公众演讲和辩论, 尤其是以君主为唯一对象的说服不同于公共演说。 因此, 这两篇都通过对君主心里和说服的语境的分析, 说明说服的艰难和危险。 在这种特殊的说服环境下, 韩非子提出了说者必须具备的基本素质。 说者必须要证明自己是可以信赖的人而且有伦理道德的品德和善良的态度, 使听者处于互相信赖的心理状态, 这样才能比较容易地说服听者。 说者先要充分洞察听者的心里期盼, 恰当地调整言辞来说服他。
本論文將陶淵明作品里所一貫潛流的主要意識看爲孤獨意識, 竝以三個遞層的階段, 卽本性及世界觀所緻的孤獨感、 “淹留無成”的自我省察所致的孤獨情緖和知音的不存在所致的窮極的孤獨意識, 來深入分析出他內心深處所潛流的孤獨意識的根源. 他的本性屬於旣耿直又內向的這一類型, 竝愛好自然朴素的生活, 厭惡複雜多端的政治及社會現象, 由此産生“稟氣寡所諧”的和他人及社會之間的隔閡, 這便是産生孤獨情緖的第一層原因. 在歸去田園之后, 雖能過本性所愛好的“孤閑”的生活, 但“淹留無成”的自我省察所致的慨嘆和孤獨情緖壓倒這一“閒”的價値, 尤其是他對有限生命的憂慮感特別敏銳, 因此不斷努力去尋求生命的價値和存在意義, 竝追求生命的無限. 但是因爲他身處在窮僻的田園里, 所以根本無法實現他“功成辭歸”的政治理想, 而且“躬耕”這一謀生之道造成一生的“飢寒”, 由此帶來心理上的慙愧和悲哀, 使他惟能選擇“庶以善自名”的立德之路, 竝以此做爲他的生命價値及存在意義. 但是這究竟不是他所抱的“平生之誌”, 而且“善”這一道德價値本身具有抽象性及不確定性, 所以難免産生“誰當爲汝譽?”的懷疑和憂慮感, 這便是引起他內心深處所潛流的孤獨意識的深層原因. 使陶淵明無法脫離於這一孤獨情緖的窮極的原因可謂是知音的不存在. 這是因爲在這現實社會里無人理解他的孤獨一生和他所苦苦追求的生命價値這一冷酷的事實導致存在的無限脆弱和絶對的孤獨, 所以他終於哀歎“孟公不在玆, 終以翳吾情”的存在主義的憂慮感.
李白詩<烏棲曲>是唐代大詩人賀知章極讚它‘可以哭鬼神’的著名作品. 這句‘可以哭鬼神’的話跟也是賀知章讀李白詩<蜀道難>之後送給李白的‘天上(謫仙)人’之讚詞和稱號成爲有力的根據和解明說明李白怎麽可能沒有社會⋅文化⋅歷史的背景被薦擧到首都長安擔當供奉翰林的中央官職的. 而再者, 成了道破詩人李白和李白詩之總體性質的最有名定義世世遺傳至今. 可是不管它有沒有這樣的名聲和意義, 李白詩<烏棲曲>被秉斷需要跟以前不同的新理解和解析. 因爲從前至今對李白詩<烏棲曲>的理解和解析把李白詩<烏棲曲>之文學性不必要的掛拉到詩人李白的名譽, 因而把李白詩<烏棲曲>認爲當于《詩經》美刺說的詩作, 把李白變成傳統的《詩經》詩人的外樣. 雖然那位鬼爲李白駁斥唐代政治黑暗預示未來不祥的非凡風貌哭了, 基于這樣理解的李白詩<烏棲曲>停在只有幾個含蓄表現沒有特別長處的單純虛擬歷史故事. 對李白詩<烏棲曲>的新理解應從新解析出發, 這新解析應充分照顧<烏棲曲>的眞正文學性. 所以解析<烏棲曲>必需認之幾個先決條件. 李白詩<烏棲曲>: 第一是個樂府詩, 第二是個故事詩, 所以第三擁有詩之話者和登場人物(焦點話者), 第四西施爲登場人物在李白詩裏包辦特別重要的文學個性. 檢討這些項目以後, 李白詩<烏棲曲>終能發顯基名聲和意義的新意思的. 一. 李白詩<烏棲曲>是個樂府詩. 很多<烏棲曲>被作成于李白詩<烏棲曲>以前的. 所以李白詩 <烏棲曲>是傳統樂府<烏棲曲>之慣習裏作成的還是詩人李白固有創作的判斷能明確李白詩<烏棲曲>的文學意義. 李白詩<烏棲曲>其基本主題和詩的主要素材都來由古樂府詩<烏棲曲>的. 因此李白詩<烏棲曲>很可能有跟原來的<烏棲曲>同一內容和影響. 二. <烏棲曲>是個故事詩. 它的基本故事是由一男一女在夜裏(或著晩上)相會談戀愛, 凌晨(早上)悲痛離別的造成. 所有樂府詩<烏棲曲>都惑著利用一切基本故事結構或著利用見面⋅戀愛⋅離別等的故事結構個別因素的. 李白詩<烏棲曲>也按著樂府詩<烏棲曲>的一切基本故事結構展開詩的內容, 把故事的主角變成從前沒有的新人物吳王和西施創造了新奇的<烏棲曲>. 三. 樂府詩的話者不是固定的. 李白詩包含樂府詩的全體有很多種類的話者, 詩裏登場人物不是話者也能說話. 卽李白詩有獨尊話者和焦點話者都能登場說話. 所以在李白詩<烏棲曲>裏說話的存在自由換身絶不是奇怪的. 以前樂府詩<烏棲曲>的故事結構爲最後的離別傷心的人主要是女的. 所以把李白詩<烏棲曲>之最後歎息者辨爲女性登場人物西施的分析是自然幾乎理所當然的. 四. 西施是個歷史人物, 可是西施被引用惑登場在李白詩的是個特別文學人物. 通常歷史人物西施是誘惑吳王破滅吳國的傾國之色之尤物. 所以有些硏究者理解李白詩<烏棲曲>的內容也是警告吳王和西施的亡國失正. 可是總體李白詩的文學人物西施不是爲政治謀略冤枉利用的悲運女人. 她是身分上昇到君王之側最上地位完成自己的任務以後一下舍得離開的神秘攻城身退偉人似的人物. 所以李白詩很有具備美貌⋅本事⋅高潔⋅思念的文學人物西施. 西施飮酒跟古代著名飮酒家飮酒差不多. 李白詩<烏棲曲>的西施當然也跟古代偉大人物詩頌時間的過去⋅人生的無常⋅酒會的終結⋅愛情的可惜等差不多. 綜合以上的探討到頭, 李白詩<烏棲曲>終于是李白詩的傑作之一. 它擁有傳統樂府詩<烏棲曲>的故事結構變換其女主角爲特色文學人物西施, 再獲得含蓄複合的多種文學意義和感動完全超越離別惑解散的單純悲哀. 西施對吳王(而且讀者包含我們)發的一聲最後歎氣感動十分强烈足于哭唐詩之鬼神, 這是千古獨有李白善手的一大詩作.
這篇文章以由局地的陷沒與跟着它發生的洪水的兩個母題構成的傳說爲硏究對象, 而且以文獻資料和口碑資料爲硏究文本. 在這篇文章里考察陷沒型洪水傳說的變樣, 以及造成變異型的主要話素的文化含意. 總的來說, 中國的陷沒型洪水傳說以歷陽型爲中軸, 而中軸有三個階段, 卽雛形階段, 定型階段和變異階段. 這些階段的中軸都有各自的類似型. 各階段的主要關鍵是災難的前兆體現在哪兒, 也就是說, 城門閫, 石龜和石獅子. 根據故事的出處, 陷沒型洪水傳說的傳承時期如下: 雛形階段的‘伊尹生空桑’的故事是至遲在戰國末出現而從後漢代到南北朝時期盛行的. 而定型階段的故事是至遲在後漢末出現而經過南北朝時期在唐宋代盛行的. 變異階段的故事里, 石龜登場的變異型是至遲在晉代出現而一直到唐宋代盛行的, 而石獅子登場的變異型是在明代以後盛行的. 陷沒型洪水傳說的地域分布是如下的 : 定型階段的故事是主要以現在的安徽省、 浙江省、 四川省和河北省爲空間背景. 四川省是地震频频发生的地域, 而其他三個省是洪水频繁发生的長江或黃河流域. 變異階段的故事里, 石龜登場的故事是以位置於長江流域的安徽省和縣及巢湖市爲空間背景的, 而石獅子登場的故事, 除現有的空間背景外, 在上海市、 湖北省、 江蘇省、 河南省、 東北地區等也被搜集整理.
근대 중국 정기간행물의 지식 편제와 ‘문학’ ― 초기 중문 잡지의 사례에 대한 검토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64집 2010.08 pp.149-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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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though certain human activities and products of such activities from any time in history can be labeled as ‘literary’, strictly speaking, ‘literature’(文學) as we know, read, and enjoy today, ‘literature’ in the narrow sense of the word is very much a modern institution. In this essay I have traced the status of ‘literature’ in Chinese language magazines published in mid 19th century. By doing so I was able to catch some evidences that lead to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properties of modern Chinese literature. In early missionary publications, in midst of knowledge formation circled around Christian doctrine, geography, astronomy, and natural sciences, relative absence of ‘literature’ is undeniable. Whereas in the case of Yinghuan suoji(《瀛寰瑣記》), and similar magazines published by Shanghai based publisher-entrepreneur Earnest major, and edited by a group of Jiangnan(江南) intellects, pursuit of something ‘literary’ results in relative absence of new knowledge. It can be argued that ‘literature’ that was forming on inevitable basis of age long tradition of classical literature which in most part corresponded with Confucian or Taoist ideals, could not but was in tension with new/modern knowledge that had its source in the modern Western civilization and Christianity. Such status and character of ‘literature’ inherent from it’s birth may have caused it's relatively conservative stance compared to other social and intellectual aspects of modern China, but on the other hand, it may be interpreted as having given modern Chinese literature a strong potential of overcoming or rethinking the ‘Modern’.
分析修改本《孽海花》, 可以看出傅彩云不仅不能算是作品裏的主人公, 甚至作为线索人物, 也没有起到很大的作用. 虽然也有部分情节是围绕傅彩雲展开的, 但那是與政治变动或文化推移分别展开的. 傅彩雲在一定程度上算是稍有些份量的作中人物, 但是她和主导政治或文化变迁的人物群没有交遊. 《孽海花》是以政治小说或历史小说为目标创作的, 所以以傅彩雲看为‘孽海花’之‘花’的观点是不正确的. 只看修改本《孽海花》的话, 好像传统官僚层是作品的中心人物似的. 但是假如當初计劃的共60回的《孽海花》完成的话,情况可能会不同. 根据小说林本第1回发布的60回的回目来看, 保守派或洋务派的人物群只能在作品的前半部裏占主要人物的位置, 变法派和革命派人物一定會被设定为后半部的主要人物群. 并且曾樸在<孽海花人物名單>中把作中人物分为舊學時代⋅甲午時代⋅政變時代⋅庚子時代⋅革新時代⋅海外運動等六類, 由此也可以看出傳統官僚層没有被设定为60回本主《孽海花》的主要人物群. 《孽海花》是以煽揚革命为目的的进步思想为基础的作品, 没有理由把不能接受新潮流的传统官僚层設定为‘孽海花’之‘花’. 那麽‘孽海花’的‘花’到底意味着什麽呢? ‘孽海’是腐敗無能的統治勢力和列强横行的中国, 在这裏盛开的‘孽海花’爲革命的成功, 就是在‘奴樂島’上开出的‘自由之花’. 《孽海花》是由投身于革命运动的金松岑和支持革命的曾樸发起和创作, 支持革命的思想贯彻到了全部作品中的. 作品在第1回的开篇就表达了鲜明的反帝反封建思想. 看小說林本第1回上預告的60個回目就可以知道作品是计劃以共和革命的成功作为结局的. ‘孽海花’的‘花’就是第1回开篇裏提到的“自由花”.
도연명의 “도화원(桃花源)”은 풍부한 문화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 한중 양국에 점차 많은 화신(化神)이 출현하게 되었다. 중국의 후대시인들은 도화원의 현실성을 의심하였고, 이로 인해 중국시인들 사이에서 도화원이 신선세계인지를 두고 논쟁이 일어났다. 왕유, 한유, 왕안석, 소식은 도연명의 도화원에 묘사된 선계(仙界)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제기하였다. 한국의 경우, 고려중기 무인정권시대 진화와 이인로는 도원향의 실존성에 주목하여 현실공간에서 도원향을 찾았다. 무신정권이후 도원향을 동경한 작품은 출현하지 않다가, 고려후기 이색이 도원을 선계로 묘사하였으나, 이색의 도원에 대한 태도는 진화와 이인로와는 다르게 관조적이다. 조선초기 도원향은 점차 실지화된 경향이 있으나, 조선중기에 들어서자 흥기한 단학과 도가사상의 영향으로 몽환적 경향도 나타난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도원향은 이미 현실의 공간으로 변모하였고, 민중은 청학동지도의 도원향을 찾아나서는 현상이 출현하였다. 한국문인이 도연명의 도화원을 수용하고 변용한 요인은 한국의 풍경에 대한 자부심, 한국 고유의 전설에 대한 인식, 두보(杜甫) 시의 ‘方丈三韓外’之句의 영향, 선계에 대한 동경과 신선사상의 영향, 한국문인의 현실인식태도 및 지식인으로서 사회 개조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中國文學史對於韓愈的古文成就, 沒有人低估或懷疑. 但對韓愈的詩, 却是自古至今褒貶不一. 原因就是韓愈詩歌具有散文的特徵,即以文爲詩. 在中國詩壇韓愈獨創的作詩法對後代詩人生産了不小的影響. 韓國文人也認識到了韓愈詩的這些特徵, 韓國的詩話, 很多的評論都記錄韓愈的作詩法. 本文探討韓國詩話應考察韓國文人對於韓愈詩有什么樣的評價. 韓國詩話作家論述韓愈詩, 跟中國作家的評價相比, 角度不同, 理解各異, 其中頗多精辟之見, 可爲當今的文學批評提供新的視角和闡釋維度, 亦可見韓國漢詩中韓國文人對韓愈詩的接收與批評. 韓國詩話中論韓愈詩的詩話如下: 如高麗詩話中的《補閑集》(崔滋 著), 《櫟翁稗說》(李齊賢 著), 朝鮮詩話中的《東人詩話》(徐居正 著), 《體意聲三字注解》(尹春年 著), 《鶴山樵談》(許筠 著),《芝峰類說》(李睟光 著), 《霽湖詩話》(梁慶遇 著), 《星湖僿說》(李瀷 著), 《溪谷漫筆》(張維 著) 等等. 韓國詩話中最多論及韓愈詩的是《芝峰類說》和《星湖僿說》. 韓國詩話中最初論韓愈詩是高麗時期崔滋的《補閑集》. 《補閑集⋅序》記錄: “學詩者, 對律句體子美, 樂章體太白, 古詩體韓蘇, 若文辭, 則各體皆備於韓文, 熟讀深思, 可得其體.” 朝鮮中期李睟光的《芝峰類說》記錄: “唐之文體, 至昌黎始變而古矣. 唐之詩, 之昌黎始變而文矣.)” 朝鮮後期李瀷的《星湖僿說》記錄: “又如韓退之筆力, 往往有冗卑下乘之語, 然細詳之, 非退之之不及, 乃故爲此, 延綿氣脈以待激昻奮發, 比如山勢逶迆峻必有低, 過峽則陡巘天秀自露......如是看, 方得退之筆套.” 通過分析筆者發現韓國文人對於韓愈詩的特徵具有較爲正確的把握, 崔滋敍述了韓愈詩對於韓國文人的影響, 李睟光言及到韓愈詩如何改變傳統中國詩的作詩法, 李瀷用自身的言語表現了韓愈詩的作詩特徵.
본 논문은 19세기 조선시인들이 펼쳤던 성령관이 청대 원매와 과연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 조선의 학문적인 경향은 실학의 시대로 불릴 만큼 국가사회의 발전과 국민의 실제 생활에 유익한 것들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이에 따라 당시 지식인들은 그동안 경시해왔던 청대의 문물제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농업⋅수공업 등을 통한 생산력이 급격히 발전함에 따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인층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봉건적인 전통 신분질서가 흔들리면서 중인층에서도 한시를 짓고 한시에 관한 이론을 펼치는 시인들이 다수 출현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단에서 원매와 그의 문학을 최초로 수용한 것으로 간주되는 문헌상 기록은 1778년에 출간된 이덕무의 《청비록》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덕무를 위시한 한시사가들은 1778년부터 직접 외교사절의 신분으로 연경에 가서 중국시인들과 교류하였고 학술전적과 문학작품을 구입해 읽음으로써 청대 시단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즈음부터 당시 중국시단에서 성령설로써 명성을 떨치고 있던 원매의 시와 시론은 조선시단에 적극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하는데, 19세기 초기와 중기 사이에 이르면 이미 광범위하게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19세기 양반사족들의 성령관은 주로 이옥⋅홍석주⋅김정희⋅조두순 등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중 남녀 간의 애정을 중시한 이옥의 성령관은 원매의 관점과 매우 유사하였으며, 특히 그가 편찬한 《백가시화초》는 비록 백가란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오직 《수원시화》 하나만을 초록한 것이어서, 이옥은 원매의 성령관을 조선시단에 널리 선양한 인물이라고 간주할 수 있었다. 김정희의 성령관도 원매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것이 분명하였는데, 다만 성령을 그대로 가감 없이 표출하기보다는 우아한 격조로 손질하여 바로잡은 성령만을 표현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원매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었다. 19세기 중인층 시인의 성령관은 주로 장혼⋅장지완⋅조희룡⋅정지윤⋅최성환 등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장혼⋅장지완 등의 성령관은 당시에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던 예교주의 관점을 준수하고자 하는 토대 위에서 제시된 것이었기에 진실한 감정의 표현이라는 측면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조희룡⋅정지윤⋅최성환 등의 성령관은 원매가 제시한 진실한 감정과 독창적인 개성의 표현이라는 성령관과 상당히 유사하였다. 특히 최성환이 《성령집》의 서문에서 밝힌 성령관은 상당 부분 원매 《수원시화》의 내용을 직접 그대로 인용하고 있고, 또 이 시선집에 원매의 시를 다량으로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19세기에 이르러 조선시인들이 원매의 시와 시론을 수용하고 나아가 그의 성령관과 유사한 시론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 1791년 정조의 문체반정 이후, 조선시인들은 원굉도의 성령관을 자유롭게 주창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원매의 성령관을 대안으로 수용하여 당시 문단에 팽배하였던 의고주의적인 문학론을 배척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로 삼고자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둘째, 특히 19세기에 들어 새롭게 등장한 중인층 시인들은 성령관을 창작근거로 삼아 신분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비통한 심리를 시에 표현하고자 하였고 아울러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양반사회의 실상을 극복하고자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本文以甲骨文的人稱代詞與今文《尙書》的人稱代詞爲研究對象, 作比較硏究, 試圖探討商周人稱代詞演變的規律。 商代的人稱代詞相互在數和格上形成互補, 構成一个完整的系統。 到了西周, 这種人稱代詞間的區別開始淡化, 今文《尙書》的人稱代词间数的区别已经开始消失, 格的区别在同一个句子中基本保留。 过了春秋战国时代, 数和格的区别已经消失, 到了汉代, 各人稱代詞都合并爲一个形态:第一人稱代詞合并爲“我”, 第二人稱代詞合并爲“尔”。 至于为何第一人稱代词合并爲“我”, 第二人稱代词合并爲“尔”, 我们可以推测这样的过程: 第一人稱代词“予”和“朕”的存在理由在于格的区别。 后来格的区别消失, 它们就失去了存在的理由, 本来没有格区别的“我”, 就成爲最适合这种情况的代词, 结果第一人稱代词只剩下一个“我”。 “尔”也由于同样的理由成爲第二人稱代词的代表。 所以最早时期表示复数, 没有格区別的“我”和“尔”后来成为第一、 第二人稱代词的代表, 格的消失对此起重要作用。 本文認爲, 商代的人稱代词确实存在数和格的区别, 过了西周、 春秋战国时代, 数和格开始消失, 这是形态类型上的变化。
近代漢語 구개음화 연구 (Ⅰ) ― 반영하는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64집 2010.08 pp.28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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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探討的是近代北方漢語的顎化現象在相關資料中反映的情況。本文在硏究近代漢語顎化現象時, 發現了一些至今還未硏究過的資料, 同時也對前人的硏究成果進行了仔細的探討, 爲擴大該音韵變化現象的參考資料之範圍, 做了不少努力。本文還對中國與韓國文獻中出現的顎化現象進行了仔細的分析, 試圖完全理解这一現象。《古今韻會擧要》與《中原音韻》中出現的現象, 可能只是意味着发生顎化現象的環境条件當時已經成熟了, 而並不是表示顎化現象的實際發生。在北方漢語中, 《圓音正考》是專門记錄顎化現象的第一本文献。爲解決滿漢對譯過程當中出現的一些問題, 书中定了人为區分尖團音的注音規則, 因此後来的滿漢對譯資料一般都沒記錄顎化現象。不过, 在还未人为区分尖团音的17世纪或18世纪初期的满汉对译资料中, 也有一些是部分反映尖团不分現象的。中国的资料, 由于注音方法有限等原因, 無法好好记錄顎化現象的变化过程。相反, 朝鲜时代的汉学书, 用表音文字韩文给每一個汉字都加了注音, 因此, 通过这些汉学书, 不仅可以把握近代北方汉语音的全貌, 而且也能了解顎化現象的变化过程, 可以说它们都是很宝贵的文献资料。本文查看了生动反映顎化进行过程的18世纪版《老乞大》、《朴通事》的諺解書及此後出版的朝鲜汉学书, 对于顎化現象的情况與变化过程进行了仔细的研究。由此可知, 近代汉语的顎化現象, 比起中国传统的韵书與韵图, 在满汉对译资料與朝鲜对译资料中, 反映得更为豐富。此外, 本文還通過對現代漢語方言裏的顎化現象進行考察, 試圖探讨這個音韻變化的方向性問題。我期望通过本文及後续研究, 不仅对于近代汉语中出現的顎化現象, 而且还对于韩国與中国資料中所记錄的當时的汉语音韵变化、汉语语音系統、出現于相关语言中的有关音韵現象、與近代汉语的关係等, 做出更加缜密, 更有深度的成果。
본 논문은 중국어서사체 语篇 중 주어 생략의 구체적인 조건에 대한 분석을 했다. 먼저 주어 생략의 3가지 유형, 즉 承前省略, 蒙后省略, 从中省略으로 구분했던 예전의 연구에 대해 语篇의 각도에서 연구한 결과 주어 생략은 단 한 가지 형식인 承前省略만 있는 걸로 파악되었다. 다음으로, 구체적인 언어 자료에서 주어 생략의 시작과 끝의 각종 상황을 분석하였고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상황인 단일 주어를 가진 어문 중 주어 생략의 필요 조건에 대해 분석을 하였다. 이 분석을 통해 주어 생략은 반드시 하나의 소 화제 내에서 진행이 되어야 하며 소 화제 내에서 처음의 주어는 생략이 불가능하지만 그 이후에는 생략이 가능함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语篇 중 주어 생략이 왜 다 承前省略인가 하는 원인을 설명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은 소 화제의 확립문제를 연구하였다. 서로 다른 의미의 마침표에 대해 분석한 결과 기타 다른 문장 부호로 변환시킬 수 없는 마침표만이 소 화제를 구분하는 지표가 될 수 있고 기타 부호로 변환해도 아무런 의미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마침표는 소 화제를 구분하는 지표가 될 수 없음을 발견하였다. 본 논문은 소 화제를 구분할 수 있는 마침표를 不可替代性句号라 명명하고자 한다.
현대 중국어 사교 호칭 계통은 지칭 수량에 따라서 개체호칭 계통과 단체 호칭 계통으로 나누어 있다. 대량의 문헌을 고찰 해 보면, 언어학자들이 개체 호칭 계통만 주시하여 연구하고 단체 호칭을 관해 연구한 내용은 거의 없다. 본 논문은 단체 호칭 계통에 대해 세 방면으로 연구했다. 우선 개체 호칭 계통 기능에 따라 분류 한 기초를 바탕으로 단체 호칭의 구성 특징에 따라 “단항식(单项式)단체 호칭어”와 “다항식(多项式)단체 호칭어”로 나누었다. “단항식 단체 호칭어” 중에 “N们”、 “각위N(各位N)”、 “각위(各位)/제위(诸位)/수(数)+위(位)”、 “영형식(零形式)” 네 부분을 나누었다. 그리고 “다항식 호칭어” 중에서 각종 형식을 철저하게 열거했다. 단체 호칭 계통 분류를 바탕으로 단체 호칭어의 어의(语义) 특성을 서술했다. 단체 호칭어의 어의특성을 전체 지칭 특성(整體指稱性)과 笼统 지칭 특성 두 개로 나눴다. 마지막으로 단체 호칭 계통의 기능 분석을 한다. 즉 호소기능과 한정하는 기능, 감정 표현 기능, 관계기능으로 나누었다. 본 논문 연구 내용 주로 세 부분을 한다, 단체 호칭 계통의 분류, 그의 어언 특성과 기능 분석, 현대 중국어 사교 호칭어 계통의 연구를 완선하게 하는 것이 본 논문 연구의 주지이다.
중국어와 한국어의 관형절 대조연구 ― 기사와 사설에서의 사용 제약을 중심으로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64집 2010.08 pp.34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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根据笔者的观察, 汉语和韩语在其複句由多数分句组成时, 主要的组句方式有所不同。 为此, 本文以新闻和社论为对象, 对定语句的使用限制进行了对比分析。 首先, 本文对汉韩定语句的组织和类型进行比较, 发现有幾個共同點, 即 : 需要使用定语标记、 位於中心语的前面、 有关系从句和补足从句之分等。 但是, 按照中心语的语意特點和定语句的復杂與否观察时, 笔者不难能发现有如下不同點 : 第一、 本身不具词汇意义的名词为中心语时, 需有成分显示其词汇意义, 而这一成分在韩语中用为定语 ; 在汉语中则用为谓语。 第二、 本身具有词汇意义的名词可分为不限定名词和限定名词。 不限定名词为中心语时, 需有成分限定其词汇意义, 而这一成分在韩语中成为前置定语 ; 在汉语中则可成为前置定语, 亦可成为後置定语。 後置定语在前分句属於存现句的信息结構, 或在前後分句显示行爲-目的的逻辑關係时出现。 限定名词(短語)为中心语时, 本不需有成分再次限定其词汇意义, 而韩语依然使用前置定语 ; 汉语则幾不使用前置定语。 第三、 多重定语句在韩语中较为普遍 ; 在汉语中则极为罕见。 综上所述, 在新闻和社论中, 韩语使用定语句幾無限制, 汉语使用定语句十分有限。
한국인의 중국어 억양 오류 유형에 대한 운율유형론적 분석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64집 2010.08 pp.37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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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aims to analyze Korean speakers’ pitch contours of boundary tones and four phonemic tones in pronouncing Standard Chinese (SC). The Korean language has the phonological stress which can be modified some various pitch patterns phonetically. In contrast, tone languages such as SC, which have underlying tones phonologically, can be restricted within narrow limits in realizing their pitch patterns. The prosodic typological differences between the two types of languages tend to lead Korean speakers to errors in pronouncing tonal pitch. The pronunciations of 248 sentences by Korean and Chinese participants were analyzed in terms of pitch contours and their pitch targets, target positions, target-to-target slope. Results show that tone 4 (high fall) at an interrogative sentence final can be easily changed into a rising pitch contour such as tone 2 (high rise), suggesting Korean-style pitch modification of SC at an interrogative boundary. Also, the Korean participants tended to pronounce a tone 3 (low dipping), which pitch contour has only one low target at non-boundary positions in SC, as tone 2 which has two targets. The finding indicates not only that Korean speakers are learned to pronounce Chinese sentences using strict tonal pitch patterns but also that pitch variations were influenced by the first language.
對於逋峭之意, 所有辭典都這樣解釋: “[逋峭] 本爲山巖屋勢傾斜曲折貌. 借以形容人物文筆有風致.” 逋峭爲‘逋’和‘峭’兩個字相結合而成立的一個詞. ‘逋’有“逋亡”或“逋懸”之意, 而‘峭’有“山勢陡峻”之意. 但‘峭’字意跟‘逋峭’意比較相近, 而‘逋’字意跟‘逋峭’意毫無相關. 那麽‘逋’字,除了‘逋亡⋅逋懸’意以外, 應該另有別的意義, ‘逋峭’這個詞才能成立. ‘逋’和‘峭’本來是用在建築和書法上的詞, 有着相對的意思. 宋代木造建築之屋頂, 近脊部陡峻, 檐部平緩, 這樣的屋頂稱爲‘逋峭’. 所以可以說‘峭’意味着‘陡峻’, ‘逋’就意味着‘平緩’. 在書法方面來說, 三國吳皇象之書被評爲‘逋峭’, 而這‘逋’指着緩平而沈着的筆勢, ‘峭’指着‘險急’而痛快的筆勢. 綜上而言, ‘逋峭’這個詞在建築和書法上,原本就是指平緩和陡峻之勢,融合而成的一個獨特風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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