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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6)
1977 (9)
1976 (6)
1974 (6)
1973 (9)
이용수:12회 20세기 초 중국 청년들의 복식 문화와 그 표상 ― 근대 중국과 표상의 역학을 주목하며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66집 2011.02 pp.295-321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本文試圖以印記著衣服的表象爲中心, 考察當時中國社會的變化。 表象與認識不同, 便是在落實時才能夠呈現出來, 以反映現實實際變化。 清朝進入中原後, 在文化方面上頗爲重視文化正體性, 即不顧漢人的強烈的反對、 抵抗, 堅強地推行固守滿州文化的政策, 譬如辮發、 滿州服飾。 這結果導致革命派否定滿州服飾-馬褂、 袍子。 那麼, 革命成功後, 當時中國人認爲該穿什麼衣服才合適呢?當時革命派卻沒有考慮到這一點, 以至於洋裝成爲代表新時代的衣服, 進而導致當時社會上形成了“洋服熱”。 從中可見, 據當時中國人看, 新時代的表象潛在洋服上, 而此“表象性”不久面臨挑戰, 是由傳統絲綢產業家造成的。 他們擔憂西洋衣服的流行會給傳統絲綢產業帶來很大的打擊, 要系統地對付和改變衣服的表象, 結果形成所謂“表象的春秋戰國時代”。 二十世紀初社會上還沒形成反對洋裝的氣氛, 洋裝一直被認爲實用性頗強的衣服, 因此在軍事、 教育方面上普遍使用。 而至此絲綢產業家深爲擔憂洋裝逐漸威脅國產, 便把它解釋爲代表帝國主義的產品。 值得注意的是, 當時青年選擇衣服跟社會的風潮不一樣, 卻愛穿西裝。 一九一五年《新青年》創刊, 這意味著當時“青年”不僅是概念術語, 而其實體已經普遍認同的。 魯迅在他的作品上常用這個詞彙, 並且加之以一些含義, 即是反保守、 反傳統, 勇猛向未來前進的群體。 很有興趣的是, 他將西裝用爲代表青年的象征, 例如在<未有天才之前>, 他說過“我總不信在舊馬褂未曾洗淨疊好之前, 便不能做一件新馬褂。 ”要注意的是, 他反對固守國故的人時, 以“馬褂”做比喻, 进行批評。 這說明他注意衣服上的表象, 寫出文章。 後來, 他所寫出的<幸福的家庭>也是典型的佐证。 该篇文章里描寫着一位穿洋裝的家長, 根據我們考察, 從他的描述中, 不難發現他所認識的洋服和穿那件衣服的人不搭配, 是因爲當時已成了家長再也不是“新青年”。 我想, 這便是後來他寫出<洋服的沒落>的主要動機, 也就是說, 他虽然表面上说“洋服的没落”, 而看来, 在他的脑子里, 沒落的不是洋服, 而是青年。 這便说明他晚年的悔恨。
이용수:11회 한국과 중국의 〈歸去來圖〉에 나타난 陶淵明 〈歸去來辭〉의 隱居生活과 隱者形象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72집 2012.08 pp.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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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通过比较考察韩国和中国的《歸去來图》来考察陶淵明的《歸去來辭》的接受史的一面。 本文就每部《歸去來图》反映出对文学文本的阐释而着眼, 考察韩国和中国的《歸去來图》把《歸去來辭》的内容怎样形象化, 并且比较考察其形象怎样呈现《歸去來辭》所表達的隐逸生活。 现存的《歸去來图》之中, 以12世紀初传稱北宋李公麟的《淵明歸隱圖》, 14世紀元初何澄的《歸莊圖》, 15世紀明前期李在、 馬軾、 夏芷的《歸去來兮圖》以及18世紀朝鮮时代鄭敾的8幅《歸去來圖》为研究对象, 进行考察, 而得到以下结论。 第一, 李公麟传称的《淵明歸隱圖》和何澄的《歸莊圖》基本上充實地图解文学文本的内容, 并表现出归乡的乐趣和隐居生活的闲适兴趣。 第二, 李在、 馬軾、 夏芷的《歸去來兮圖》重视表现对文学文本的画家的感受和情感, 并描写孤寂闲逸的隐居生活和清高飄逸的隐者形象。 第三, 朝鲜鄭敾的8幅《歸去來圖》是一幅非常独特的作品。 这作品以故事人物图变成为山水画之作, 其形式很崭新, 在中国的《歸去來图》裏幾乎没有。 该作品通過呈现沉着的氛围, 而表现在山水里萧然自得的隐者形象。
이용수:10회 조선 문인들이 본 《사기 화식열전》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89집 2016.11 pp.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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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집필 목적은 조선의 문헌에서 《사기 화식열전》과 관련된 記事들을 살펴 보고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조선 문인들의 수용 양상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조선 문헌에서 발견되는 〈화식열전〉의 위상, 그리고 〈화식열전〉에 관한 평가를 확인해볼 것이다. 부자들에 대한 기록인 〈화식열전〉에 대한 평가는 전통 시기 중국에서도 양분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냉철한 분석을 긍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제 없는 욕망추구를 지나치게 긍정했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이에 못지않다. 특히 〈화식열전〉을 비판한 일부 문인들은 사마천이 孔子에 대해 맹목적인 숭상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 조선의 문인들이 〈화식열전〉을 어떻게 수용하고 평가했는지 확인해 보는 과정은 입장의 차이에 따른 해석 방법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司馬遷在貨值列傳中專門爲商業和商人寫一篇文章。在貨值列傳中,司馬遷對富人致富的主要戰略進行研究了。歷代中國學者關注了此篇文章, 朝鮮文人也受了不少影響。他們常常引用貨殖列傳的故事和人物。隨着商品經濟的發達,貨值列傳的引用範圍逐漸擴大,對此篇文章的關心也不斷地增加了。 司馬遷評價子貢時說,“夫使孔子名布揚於天下者, 子貢先後之也. 此所謂得埶而益彰者乎?。” 因此以班固爲始, 司馬遷受了歷代儒家思想家的批評。 朝鮮是儒家之國,儒家等於是一種宗教。朝鮮文人不敢進行對孔子的評價。對這項問題,朝鮮文人的基本態度和班固一樣。
이용수:10회 포스트휴먼과 죽음 — 공자, 장자, 도잠, 노신이 죽음을 대했던 태도와 현재적 쓸모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92집 2017.08 pp.149-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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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만물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超연결(hyper-connection)-포스트휴먼(posthuman)시대의 도래를 앞둔 상황에서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자 기획되었다. 목하 생명과 인간다움에 대한 논의와 통찰이 다양한 매체와 언어를 통해 활발하게 수행되고 있고, 그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죽음의 문제가 놓여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다만 이 주제는 다양한 학문분야의 관련 연구를 활용하여 가능한 넓고도 깊게 또 높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러한 고찰의 ‘마중물’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공자, 장자, 도잠과 노신이 죽음에 대해 취했던 태도에서 ‘초연결-포스트휴먼시대와 죽음’이란 주제를 궁구할 수 있는 지적 자원을 길어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장에서는 공수반의 고사를 예로 하여 문명에서 기술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초연결-포스트휴먼시대, 죽음이란 화두가 생명, 인간다움과 왜 긴밀하게 연동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논술하였다. 3장에서는 공자, 장자, 도잠과 노신이 죽음에 대해 취했던 태도를 고찰하여 이를 각각 ‘삶의 특권화’, ‘삶-죽음 회로의 바깥 지향’, ‘죽음과 놀기’, ‘죽음에 비스듬히 서기’라고 명명해보았다. 맺음말에서는 그들이 죽음에 대해 취했던 태도의 현재적 가치를 세 가지로 수렴하여 논했다.
This paper is set out to address the issue of death in the context of the full-fledged arrival of the ‘hyper-connection & posthuman era’ represented by internet of things(IoT) and artificial intelligence(AI). This is because the discussions and insights about life and humanity are actively conducted through various media and narrative forms such as novels, movies, drama, and UCC, and the problem of death lies at the root of such phenomenon. However, it is necessary to review the existing research outcomes related to the subject as deeply and widely as possible. In this article, we will look for intellectual resources which can lead to deeper research on ‘death in the hyper-connection & posthuman era’ in the intellectual tradition of China, focusing on the attitudes that Confucius(孔子), Zhuangzi(莊子), Tao Yuanming(陶淵明) and Luxun(魯迅) take towards death. Chapter 1 will examine the role of technology in the process of creation, maintenance, and renewal of civilization through the historical story of Gong Shuban(公输班). Chapter 2 will discuss the reason why the topic of death should be closely linked with life and humanity in the hyper-connection & posthuman era. Life extension and death suspension demolish the existing view that privileges life for death by devaluing the ethical status of life. Artificial intelligence, which is getting closer to humans, blurs the boundary between human and non-human, and deconstruct the existing ‘human-centered’ and ‘human body-centered’ paradigm of thought. Chapter 3 will look into the attitude that Confucius, Zhuangzi, Tao Yuanming and Luxun have taken to death, naming them as ‘Privileging Life’, ‘Outward Orientation of Life-Death Circuit’, ‘Playing with Death’ and ‘Standing Slantly between Life and Death’ respectively. In conclusion, I have outlined three aspects of the current value of attitudes they have taken on death. Firstly, as the possibility of extension of life becomes higher, the necessity of ethical justification for an extended life is increasing accordingly. Confucian scholars’ ideas on death can offer us a valuable reference for this need. Secondly, Zhuangzi’s idea which set the outside of a life-death circuit as a ‘real’ place for human life can be a useful reference system for thinking about the hyper-connection & posthuman era when the boundary between god, human and machine is getting ambiguous as ever. Thirdly, while it may be difficult to regard non-human beings as human based on homogeneity, could it be possible for we humans to play with them and stand slantly between life and death? At this situation, the idea of Luxun and Tao Yuanming on death can be intellectual and cultivative assets which can be applied to life by imagining and thinking about it.
이용수:9회 韓愈의 碑誌文과 古文運動 한유의 비지문과 고문운동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59집 2009.05 pp.16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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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9회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에 대한 연구: <붉은 수수밭>과 <인생>의 영화화를 통해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53집 2007.11 pp.237-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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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文以张艺谋导演的两部电影为例批判分析了小说作品的电影化现象。 本文的分析中可发现下列要点。 第一, 大众性转换下的变形。 电影≪活着≫和电影≪红高粱≫与原著最大的不同在于叙述方式的转换。 原著在叙述方式上有一定的实验性, 避开了按时间顺序进行的流水型叙述, 但电影中却积极采取了按时间顺序进行的流水型叙述。 这种叙述上的转换可以说是电影妥协于大众性的结果。 第二, 意识形态性转换下的变形。 小说≪活着≫中对大跃进运动更持否定性立场, 而对文革的立场则稍微平缓一些。 与此相比, 电影中则将大跃进刻画为一种庆典, 而对文革则表现出十分否定的视角。 小说≪红高粱≫中不仅对日本帝国主义, 对所有国民国家性的东西(包括国民党和共产党)都设有一段批判性距离, 将它们设定为外部的东西, 与此同时着眼于地区共同体的身份。 而在电影≪红高粱≫中却明显附加上了亲共题材。 第三, 由神话性想象力到政治性想象力转换下的变形。 小说≪活着≫基于一种神话性的想象力, 展示了一种以农村和城市的对立为内容的神话性空间, 而电影≪活着≫则基于一种政治性的想象力, 展示的是一种以城市里面的矛盾为内容的政治性空间。 通过纵观以上的变形, 可以发现一种图示:原著小说一般为神话性的, 反思性的, 非大众性的;而电影则是政治性的, 妥协性的, 大众性的。 本文的研究首先是以将小说实事求是地电影化为前提而进行的。 因而电影对于原著的保留性就是重要的标准。 但如果试图利用和小说之间的互文性, 制作一部全新的、独立的电影作品的话, 对原著的保留性则不再重要了。 而此时重要的则是互文性, 正是通过互文性才表现了每个作品的独立性意义。 本文中对后者的研究也是以消极姿态对待的。 关键词:小说的电影化, 中国电影, 红高粱, 活着, 张艺谋, 余华, 莫言, 大众性转换, 意识形态性转换, 想象力的转换, 神话性的想象力, 政治性的想象力, 对原作的保留性, 互文性。
中國文學史家, 皆以爲新樂府運動發生於中唐之際, 而中唐文學之價値莫大於此也. 然中國學者羅宗强等針對其虛構以反駁此見. 因運動之支持者與反駁者之間, 展開一場十餘年之論爭也. 其詳細情況, 未傳於韓國, 而國內諸學者猶信文學史家之主張, 終致無反駁之氣分. 我素憫然之. 於是欲到致韓國學者間之一場論爭, 我先受反駁之見, 以主張新樂府運動之不在也. 略我之主張, 蓋如下也. 第一, 諸硏究家以白居易爲現實主義者也. 然考其人之著作, 如此之主張, 蓋偏載於<策林>與<新樂府>等不多之作中, 而餘他作無類似主張也. 又詳細觀察其新樂府創作之情況, 其眞實理由不在於現實主義, 而<策林>志於制擧, 新樂府志於唱和詩, 吾等不可以之爲現實主義也. 第二, 白居易詩中多數作, 流行於社會全地域與全方向. 考察唐代刊行之文書, 唯未見告新樂府流行之記錄也. 故吾等以此得判, 新樂府之流行無史籍記錄. 第三, 中唐與晩唐皆混亂時期, 而藩鎭外族與唐之間, 戰爭不休不息, 唐終陷於再起不能之處地也. 又元稹著作<白氏長慶集序>, 而載元和體流行之事實, 學者之多數以爲此體有唯美主義也. 以此考之, 新樂府運動無實體之主張也.
이용수:8회 김광주의 현대 중국문예 비평과 루쉰(魯迅) 소설의 번역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87집 2016.05 pp.7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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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는 1930년대의 중국문단을 비평 소개하면서 중국 국민당의 민족주의문예든 중국 공산주의의 계급문학이든 그것이 정치적 당파의 선전도구로 기능한다면 ‘참된 현실주의의 경향’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김광주는 《보헤미안》의 제호가 암시하듯이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아와 개성을 존중하는 예술의 순수성을 추구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문예의식은 아나키즘문예이론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그것은 1930년대의 중국 문단상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중국 프로문학운동의 몰락과 중국 국민당정부의 정치적 민족주의문예운동의 폐해를 목도한 결과이기도 하며, 중국의 혁명문학논쟁에서 ‘문학무력설’(文學無力說)을 주장하며 현실정치로부터 문예의 독립을 강조한 루쉰의 입장으로부터 일정한 영감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김광주는 루쉰의 문예의식에 크게 공감하였거니와 루쉰의 단편소설을 번역하고 ‘루쉰 정신’을 환기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주로 5·4신문학시기의 루쉰 문학을 주요 텍스트로 읽으면서 그 시기 루쉰의 문학과 사상에서 루쉰 정신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 특히 김광주는 이용규(李容珪)와 함께 1946년 해방공간에서 한국 최초의 루쉰작품집인 《루쉰단편소설집》을 출간하였는데, 김광주는 루쉰 소설을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유려한 한국어로 번역함으로써 류수인의 〈광인일기〉번역이나 양백화의 〈아Q정전〉번역(중역) 등 기존의 루쉰 소설의 번역에 비해 훨씬 완성도가 높은 번역문학을 완성할 수 있었다.
这篇论文着重点是阐明1930年代在上海滞留期间, 批评、介绍现代中国文艺并且翻译鲁迅小说的金光洲, 作为中国现代文学研究者的新面貌。金光洲在批评、介绍1930年代中国文坛时, 认为无论是中国国民党民族主义文艺还是共产主义的阶级文学, 如果把文学当成政党宣传工具的话, 文学不可能成为 “真正的现实主义倾向”。对中国文坛这样的批评, 来源于他对文学一定要否决 “宣传纲领的文学”、重视 “如何表现”这样的文学本质的认识。并且, 他也关注以 “朝鲜”(韩国)为背景的一个中国作家群的作品, 想要极大地突出中国人对 “朝鲜”的关心。中国和朝鲜虽然在很多方面具有文化的共同点, 但他在认识朝鲜特殊历史条件的同时, 想要对朝鲜新文学运动的未来有一个乐观的想象。 金光洲像 《波西米亚》的题号所暗示的那样, 挣脱所有束缚, 追求尊重自我和个性的艺术的纯粹性。这样的文艺意识受了安那其主义文艺理论的直接影响。并且这是他在具体研究1930年代的中国文坛的过程中, 目睹了中国普罗文学运动的衰落和中国国民党政府政治民族主义文艺运动的弊害的结果;也是从在中国革命文学争论中主张 “文学无力说”、从现实政治出发强调文学独立的鲁迅的立场那里, 得到了一定灵感的结果。金光洲在鲁迅的文艺意识上产生了很大的共鸣, 毫不犹豫地翻译鲁迅的短篇小说, 唤起鲁迅精神, 他把五四新文学时期的鲁迅文学当作主要文本来读, 想要找出那个时期鲁迅文学和思想上鲁迅精神的本质。尤其是1946年金光洲和李容珪一起出版了韩国最初的鲁迅作品集 《鲁迅短篇小说集》, 鲁迅文学所具有的彻底的反抗性和对毒疮的深刻揭露, 在批判陈腐、打开新世代的历史情况中, 是切实需要的。金光洲不但忠实于鲁迅小说的原文, 而且用流利的韩语翻译, 相比于既存的柳树人的 《狂人日记》、梁白华的 《阿Q正传》等鲁迅小说的翻译, 能够成熟度更高地完成翻译文学。 《鲁迅短篇小说集》的出版向韩国读者打开了一条能够正确、系统地理解鲁迅文学的途径。
이용수:8회 사마천이 서술한 여태후 이야기 -《한서·고후기》와의 비교를 통한 《사기·여태후본기》 읽기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76집 2013.08 pp.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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吕后是汉高祖刘邦的皇后,汉惠帝即位后被尊为皇太后。她执政十五年,临朝稱制八年,可以说中国历史上第一个实际上的女皇帝。给後人留下了最深刻的事情是人彘事件。刘邦的最後幾年中,他最宠爱戚姬,甚至想改立戚姬之子赵王如意为太子。这不能实现,刘邦死后,吕后将戚姬弄成活不如死的状态。因此大多人以为吕后是残忍的女主。这些记录是被司马迁写的,所以人们又以为司马迁的著作目的是暴露吕后的残忍性。笔者认为,这只不过片面性的意见而已。因为司马迁写《史记吕太后本纪》时,要辩护吕后的立场。虽然有些故事表面上批评吕太后,但是其含义并不如此。通过比较《汉书高后纪》中所记述的记錄,我们可以发现司马迁的真正意图。简单地说,《史记吕太后本纪》的主要著作目的有两个。第一,他想辩护吕后。批评她的残忍之前,我们要理解她所面临的特殊情况。第二,司马迁告诉我们當时刘氏中没有作皇帝的人才。总之,吕后不是後人說的那么残酷,而且她的稱制是不可避免的历史现象。
이용수:8회 朝鮮 後期 小品文 創作과 明淸 小品文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53집 2007.11 pp.18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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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後期, 小品文創作的活躍, 給文壇帶來了新的活力。 本文將關注這一時期的小品文與明淸時代的小品文之間密切的關係, 幷從兩個方面來闡明這一關係。 首先, 我們將考察朝鮮各個時期的小品文與明淸的小品文之間的相互影響及關係。 小品文從17世紀初期到19世紀中葉經過了四個發展階段, 我們通過對各階段不同發展狀况與明淸小品文的比較, 能把握各個時代、各個作家之間互相接受程度以及相異之處, 然後揭示朝鮮時代後期受明淸小品文的影響, 散文創作和著作所發生的變化: 1) 對傳統和正統的權威的否定態度; 2) 對新體制的嘗試及著述方法的多樣化; 3) 趨向于鑑賞小說和戱曲。 結果顯示, 朝鮮時代後期的小品文在積極吸收明淸小品文的基礎上, 不斷發展幷在各個不同時期都表現出逈然不同的特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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