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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文)과 헌(獻)의 고고학 ― 문/헌의 통합과 제국(帝國) 아카이브의 구축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87집 2016.05 p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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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논어』 「팔일(八佾)」에서 공자가 언급한 “문(文)”과 “헌(獻)”의 개념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戰國)시기에서 전한(前漢)시기까지 문헌 유통의 양상 변화를 추적하여, 고대문헌의 고정화 과정에서 내면화된 제국(帝國)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성을 고찰한다. ‘문’은 ‘예(禮)’와 관련된 문자기록이고, ‘헌’은 ‘의(儀)’와 같은 의미로서 ‘예’를 체득하고 있는 지식인이다. ‘문’과 ‘헌’은 선진(先秦)시기 각국의 아카이브를 구성하는 핵심요소였는데, 문자기록이 각국에 산재하여 단일한 체계를 구축하지 못 한 당시의 상황에서는 ‘헌’이 ‘문’을 압도하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제국(帝國)의 형성과 더불어, 고정된 ‘문’을 중심으로 유동적인 ‘헌’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박사관(博士官) · 박사제자(博士弟子) 제도의 확립과 비부(秘府)의 확충이었다. 특히 유향(劉向)을 중심으로 구축한 제국의 아카이브는 ‘문’과 ‘헌’이 통합된 상징적인 장소였다. 이 제국의 아카이브에서 중국고대의 문헌이 고정되는데, 그 과정에서 제국의 이데올로기가 문헌의 체계에 내면화된다.
The aim of this paper is to study the ideological directivity of the Empire in the process of textual fixation of Chinese classics, by analysing the notion of Wen(文) and Xian(獻) at the Analects “Ba Yi” and tracing the aspects of changes in text circulation. Wen means the textual records concerning state systems and rituals, and Xian as a synonym of Yi(儀) means the master who is well aware of the systems and rituals. Wen and Xian both are the essential elements that constitute state archives in pre-Qin period, but Xian is more important than Wen at that time for there is no singular and authoritative structure of classics. However, as the Empire had been constructed in China, the government had controlled fluid Xian gradually by collecting and canonizing Wen. The significant actions of controlling Xian are establishment of national schools and expansion of imperial archives. Especially, imperial archives built by Liuxiang(劉向) was the symbolic place of integration of Wen and Xian, in which Chinese classics were fixed, and with this process the imperial ideologies had been internalized in the structure of Chinese classics.
從《文心雕龍》看劉勰對 '小說'的認識 - 以六朝志怪小說的部分敘事特點為中心 -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87집 2016.05 pp.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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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문심조룡》을 통해 유협의 ‘소설’에 대한 인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관련하여 선행연구자들은《문심조룡》에서 유협이 왜 ‘소설'에 대한 구체적인 논평을 가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유협의 ‘소설'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는지에 대하여 이미 어느 정도로 논의한 바 있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유협이 소설을 논평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에는 소설이 아직 독립인 장르로 성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편 유협의 소설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본 학자도 있고, 부정적으로 본 학자도 있었다. 필자는 유협이《문심조룡》에서 말한 ‘소설’이 신화전설과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점,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욕조지괴소설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때문에《문심조룡》에서 나타난 유협의 ‘소설’에 대한 인식을 육조지괴소설에도 적용시킬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다. 이 글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통해《문심조룡》에 나타난 유협의 소설적인 표현방식과 특징에 대한 인식을 고찰했다. 구체적인 논의에 있어 신화전설에 대한 인식, 기이한 글에 대한 인식,그리고 꿈의 표현방식과 꿈의 계시적인 의미에 대한 인식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유협이 신화전설에 대해 은(殷)나라의《귀장(歸藏)》의 내용을 가지고 신화전설들이 존재한다는 타당성을 설명한다는 점, 기이한 이야기들이 비록 황당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런 기이함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 그리고〈서지(序志)〉편에서 꿈이라는 표현방식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였고, 꿈의 계시적인 의미를 깊이 믿었다는 점 등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유협은 구체적인 장르에 따라 적용되는 기준이 각기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신비로운 것이나 보기 황당무계한 내용을 무작정하게 모두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유협은 소설적인 표현방식과 소설적인 화소들을 모두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This paper studied Liuxie's concept of ‘Xiaoshuo’ in <Wen Xin Diao Long>. Liuxie lived during the Qi・Liang Dynasty. In his time, ‘Xiaoshuo’ was not an established literary style, but consisted of short stories from ancient works, like mythology, fables, legends, etc. Liuxie’s book doesn’t directly comment on such tales, but only deals with certain elements. Researchers conclude Liuxie did not consider ‘Xiaoshuo’ to be an actual literary style. Some view his position positively, and others negatively. In some ways, the features of ‘Xiaoshuo’ in <Wen Xin Diao Long> are similar to the supernatural romance fiction of the Wei Jin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Both feature stories of spirits and ghosts, which, people believed, contained valuable knowledge. I considered Liuxie's concept of ‘Xiaoshuo’ applies to the supernatural romance tales of the Wei Jin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as well. Therefore, this paper derived three elements of Liuxie's concept of ‘Xiaoshuo’. One is his feeling about imaginative writing: he approved of imaginative writing to express sincere views and sentiments. Second is his view of old myths and legends: his approval of their rationality and literal truth. Last is his consciousness of dreams: his belief in clairvoyant dreams and interpretations and revelations from them.
1887년 上海의 大同書局에서 간행한 石印本 《海上中外靑樓春影圖說》(규장각소장)은 淸末 상해 기녀들의 모습을 담은 삽화와 기녀에 관한 小傳을 모아 놓은 靑樓圖記類 筆記 작품이다. 현재로서는 중국을 포함하여 규장각 이외에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은 보이지 않으며, 이 책과 관련한 선행 연구도 전무하다. 이 책에는 저자를 밝힌 서문, 발문, 刊記가 없다. 본고에서는 책에 수록된 내용과 관련 저작물을 참고하여 이 책의 저자가 淸末民初에 활동한 저널리스트작가[報人作家] 鄒弢(1850-1931)임을 규명하였다. 《海上中外靑樓春影圖說》에 수록된 鄒弢의 서술에서 눈에 띄는 점은 외국 기녀의 언어 능력에 관한 서술이 빈번히 보인다는 점이다. 상해 방언에 능한 외국 기녀에 대한 기록을 통해 당시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춘 상해에서 활동하던 기녀들에게 언어 능력 역시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였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청말 상해의 기녀들은 전통적 名妓로서의 면모를 점차 상실하고 있었고, 이는 《海上中外靑樓春影圖說》의 기록에도 반영되어 있다. 그럼에도 몇몇 뛰어난 기녀들이 지닌 전통적 기예에 대한 서술을 통해 청말에도 여전히 기녀들의 시문 수창, 가창, 악기 연주 실력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鄒弢가 중시했던 기녀의 자질은 고아한 성품이었다. 鄒弢는 당시 상업화되어가던 화류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아한 면모를 갖춘 기녀에 대해 추앙하는 태도로 글을 썼다.
1887年由上海大同書局石印的 ≪海上中外靑樓春影圖說≫(韩国首爾大學奎章閣收藏)是一部筆記作品屬于靑樓圖記, 淸末颇胜行的一种青楼筆記。這部書收录了淸末上海妓女们的图象和关于图象里面的妓女的小传。与其他狹邪小說、靑樓筆記一样, 我们以查看这本书, 便可以考察淸末上海妓女的多种多样的面目和极度繁盛的上海靑樓文化。 至今中国内外有所藏书机关, 韩国奎章閣以外没有收藏题为 ‘海上中外靑樓春影圖說’这个书目的古籍, 而从前中国内外全无有关这本书的研究成果。这部书裏面没有序、跋、刊記等的明記著者姓名的一切記錄。该犒首先查明这本书的著者为淸末民初时期在上海活动的一位報人作家鄒弢(1850-1931)。参考有关鄒弢的事迹和他的其他著作, 可以推測鄒弢这个人对外国文物相当有关心, 结果就是这本书裏关于外国妓女的记录详细且豊富。还有鄒弢與報界名士王韜(1828-1897)坚持很密切的郊游关系, 王韜尝在 ≪淞隱漫錄≫裏书写了外国妓女的多种形象。从此我们可以推测鄒弢从王韜受到一种影响。 鄒弢在 ≪海上中外靑樓春影圖說≫所收錄的几篇小传裏描述了几位优秀的妓女们, 通过详细分析这几篇小传, 我们可以查看一下当时出名妓女的多方面目。首先鄒弢记录了會说上海方言的几介日本妓女, 关于这些妓女的记录显示当时对活动在上海的妓女来说, 语言能力也可以算的为了维持生业一种很重要的才质。鄒弢也记录了以歌唱能力或者乐器演凑能力得名的几介妓女。最后鄒弢对几介妓女的高雅的品行呈现出很大的重视。在青楼逐渐堕落为頹廢紊亂的空间的时代, 鄒弢很热烈的寻找高雅超脱的妓女, 对她们取了追昂的态度。
김광주의 현대 중국문예 비평과 루쉰(魯迅) 소설의 번역
한국중국어문학회 중국문학 제87집 2016.05 pp.7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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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주는 1930년대의 중국문단을 비평 소개하면서 중국 국민당의 민족주의문예든 중국 공산주의의 계급문학이든 그것이 정치적 당파의 선전도구로 기능한다면 ‘참된 현실주의의 경향’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김광주는 《보헤미안》의 제호가 암시하듯이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아와 개성을 존중하는 예술의 순수성을 추구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문예의식은 아나키즘문예이론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한 그것은 1930년대의 중국 문단상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중국 프로문학운동의 몰락과 중국 국민당정부의 정치적 민족주의문예운동의 폐해를 목도한 결과이기도 하며, 중국의 혁명문학논쟁에서 ‘문학무력설’(文學無力說)을 주장하며 현실정치로부터 문예의 독립을 강조한 루쉰의 입장으로부터 일정한 영감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김광주는 루쉰의 문예의식에 크게 공감하였거니와 루쉰의 단편소설을 번역하고 ‘루쉰 정신’을 환기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주로 5·4신문학시기의 루쉰 문학을 주요 텍스트로 읽으면서 그 시기 루쉰의 문학과 사상에서 루쉰 정신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 특히 김광주는 이용규(李容珪)와 함께 1946년 해방공간에서 한국 최초의 루쉰작품집인 《루쉰단편소설집》을 출간하였는데, 김광주는 루쉰 소설을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유려한 한국어로 번역함으로써 류수인의 〈광인일기〉번역이나 양백화의 〈아Q정전〉번역(중역) 등 기존의 루쉰 소설의 번역에 비해 훨씬 완성도가 높은 번역문학을 완성할 수 있었다.
这篇论文着重点是阐明1930年代在上海滞留期间, 批评、介绍现代中国文艺并且翻译鲁迅小说的金光洲, 作为中国现代文学研究者的新面貌。金光洲在批评、介绍1930年代中国文坛时, 认为无论是中国国民党民族主义文艺还是共产主义的阶级文学, 如果把文学当成政党宣传工具的话, 文学不可能成为 “真正的现实主义倾向”。对中国文坛这样的批评, 来源于他对文学一定要否决 “宣传纲领的文学”、重视 “如何表现”这样的文学本质的认识。并且, 他也关注以 “朝鲜”(韩国)为背景的一个中国作家群的作品, 想要极大地突出中国人对 “朝鲜”的关心。中国和朝鲜虽然在很多方面具有文化的共同点, 但他在认识朝鲜特殊历史条件的同时, 想要对朝鲜新文学运动的未来有一个乐观的想象。 金光洲像 《波西米亚》的题号所暗示的那样, 挣脱所有束缚, 追求尊重自我和个性的艺术的纯粹性。这样的文艺意识受了安那其主义文艺理论的直接影响。并且这是他在具体研究1930年代的中国文坛的过程中, 目睹了中国普罗文学运动的衰落和中国国民党政府政治民族主义文艺运动的弊害的结果;也是从在中国革命文学争论中主张 “文学无力说”、从现实政治出发强调文学独立的鲁迅的立场那里, 得到了一定灵感的结果。金光洲在鲁迅的文艺意识上产生了很大的共鸣, 毫不犹豫地翻译鲁迅的短篇小说, 唤起鲁迅精神, 他把五四新文学时期的鲁迅文学当作主要文本来读, 想要找出那个时期鲁迅文学和思想上鲁迅精神的本质。尤其是1946年金光洲和李容珪一起出版了韩国最初的鲁迅作品集 《鲁迅短篇小说集》, 鲁迅文学所具有的彻底的反抗性和对毒疮的深刻揭露, 在批判陈腐、打开新世代的历史情况中, 是切实需要的。金光洲不但忠实于鲁迅小说的原文, 而且用流利的韩语翻译, 相比于既存的柳树人的 《狂人日记》、梁白华的 《阿Q正传》等鲁迅小说的翻译, 能够成熟度更高地完成翻译文学。 《鲁迅短篇小说集》的出版向韩国读者打开了一条能够正确、系统地理解鲁迅文学的途径。
이 논문은 시대를 거치며 상고 중국어 음운 재구 연구 원리가 발전되어 온 양상을 살펴보고 그 의의를 해석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상고 중국어 음운 연구의 역사는 바로 연구사의 역사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연구 원리를 토대로 한국어 자료들이 중국어 상고음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This paper aims at understanding certain concrete development aspects in reconstruction of Old Chinese phonology through periodical principles of its research. It focuses on three points: First, it tries to shed light on the main methodology and the principal linguistic materials each period used; Second, it tries to find out why and how some languages survived but not others; and Last, it introduces some trendy issues in the study of Old Chinese phonology. The history of Old Chinese phonology is, in a way, the history of its research. Korea and China are neighbors and they had a long history of linguistic exchange. So far, we didn’t see much contributing materials from the Korean side. However, the colloquial side of the Korea language (as opposed to written) still provides a promising source of contribution to the Old Chinese phonology research. International networking and cooperation among researchers will become more important in the future.
본고는 현대중국어 존재문이 메타구문적 특징이 있음을 논의하였다. 기존연구에서는 주로 장소구와 존재대상의 공간적 관점 또는 존재동사에 접근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 본고는 공간에 펼쳐져 있는 존재대상은 시간성의 함의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본고는 존재문의 시·공간적 측면에서 논의했으며, 존재동사의 특징, 존재대상에 대한 논의를 근거로 존재문이 다양한 사건도식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本文从时间概念和空间概念的角度来讨论现代汉语存在句的上位-句法特征(meta-constructive feature)。存在句的内部成员有如下特点;处所短语必须排列在句首, 存在动词没有体标记, 存在对象是无定成分。因此以往的存在句研究主要在句法和语义方面, 比如说, 处所成分和存在对象的空间关系和存在动词特点等等。本文认为存在句的内部除了空间概念以外还含有时间概念的认知特征。我们不仅讨论 ‘存在’的意思和存在句中所含有的空间和时间的涵义, 而且讨论存在动词和存在对象的时间性。通过这些研究中我们可以发现存在句具有 ‘现在时’的时间性, 也可以发现这个时间特征扩大到静态性或动态性。本文运用位上几何图式讨论存在对象的空间性和时间性, 并且通过 ‘概念图式’讨论这些存在对象如何转移到诸如 ‘连接图式(link schema)’, ‘传达图式(transfer schema)’等的事件图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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