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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ISSN
    1229-1846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8~2018
  • 주제분류
    인문학 > 불교학
  • 십진분류
    KDC 220.1 DDC 294
제10권 (16건)
No
1

한국정토학회 학술세미나 2007

한국정토학회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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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刊行辭

한보광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3-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3

祝辭

김철수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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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원

4

불교에서 願의 문제

한태식(보광)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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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불교의 願의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부처님의 근본적인 가르침은 인간의 오욕락을 버리고 수행정진하여 성불의 길에 이르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탐욕을 버리되 새로운 삶과 희망에 대한 의지 意向은 더욱 크게 내길 바라고 있다. Pūrva-pran̜idhāna는 發願이나 誓願에 대해 초기에는 인간적인 바람, 소원, 기원 등의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願이란 ‘구하는 것을 정하여 그것을 얻으려고 기원하고 구하는 것’, ‘바람’으로 쓰이고 있다. 業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의지를 誓願으로 보고 있다. 초기의 원시불교에서는 󰡔수타니파타󰡕에서 말하는 것처럼 四輪法,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에 대해서 세간적이고 재가자적인 서원을 세우고 있으나, 소승부파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의 본생담에서 석가보살의 서원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다불다보살의 출현으로 모든 불보살의 공통적인 원인 四弘誓願을 총원이라 하고, 각 불보살의 개별적인 원을 本願이라고 하였다. 총원의 대표적인 사홍서원도 초기에는 四弘誓라고 하다가 후에 사홍서원이라고 하였으며, 오늘날 사용하는 것은 중국불교에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본원사상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阿閦佛國經󰡕의 아촉불의 동방묘희세계와 󰡔無量壽經󰡕의 아미타불의 48대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대승불보살의 모든 원은 그 뿌리를 上求菩提와 下化衆生에 두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원이 실현될 수 있도록 수행정진하여야 할 것이다.
This dissertation studies on the issue of Buddhistic wish. The essential teachings of Buddha tell us to let our disgrace and pleasure go, and to practice asceticism, and to move toward the way of enlightenment. The essential teachings of Buddha tell us to abandon our greed but instruct us to have an enlarged wish for a new life and hope. According to Pūrva-pran̜dhāna, offering a prayer or making a vow was meant to be a human desire, wish, or praying originally. It defined a wish as a praying and attaining the objective after fixing what is sought for. Namely, a wish was meant be a desire. It also viewed vow as a will to change and free from karma restraint. At the initial stage of original Buddhism, like what is written to be in Sutanipata, there was a secular Buddhist vow for a happy life, which was called as a four wheel dharma. Hinayana Buddhism, however, mainly mentioned about Shakyamuni bodhisattva’s vow recorded in the Jataka sutra which talks about Shakyamuni Buddha’s original life. There are, however, multiple Buddhasand multiple Bodhisattvas in Mahayana Buddhism. All Buddhas and Bodhisattvas’s common vows, which are represented in fouressential vows for Buddhists, are called as a total vow. Individual vow of each Buddha and each bodhisattva is called as an original vow. Four essential vows for Buddhists represented as a total vow was once called as four essential pledges initially, later, those were named as four essential vows. Current use of four essential vows came from Chinese Buddhism. As good represents of original vow thought, there are east mystic world of Achok Buddha depicted in Achok Buddha’s land sutra and Amitabha’s 48 big vows depicted in immeasurable bliss sutra. All vows of Buddhas and Bodhisattvas in Mahayana Buddhism are based on the principle which is seeking upward for supreme wisdom and is saving all sentiment beings fromdownward. We should practice diligently in order to accomplish those vows.

9,000원

5

淨土思想에 있어서 本願思想

강동균, 이정모(태원)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5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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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사상을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要諦가 있다면 그것은 극락정토와 아미타불의 성립 근거인 <本願>과 <아미타불과 그 국토>와 그 국토에 누가 어떻게 <往生>하느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미타불과 그 국토>란 극락세계와 그 주불인 아미타불, 그리고 극락세계에 머물고 있는 보살과 성문과 人天들이다. 정토사상에 있어서 궁극의 목적은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아미타불과 무수한 보살 성문 人天들과 함께 가장 원만한 수행 환경이 갖추어진 곳에서 성불하는 것이다. 本願思想이란 釋尊에 의해서 自覺된 慈悲와 智慧가 바탕이 된 如來의 大悲心이 阿彌陀佛의 本願이라는 구체적인 모양을 갖추고 표현된 것이다. 그것이 如來의 大悲心의 발로라고 한다면, 인간은 단지 如來의 本願에 의지하기만 하면 구제되는 것이다. 구제되는 因은 중생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如來에게 있다. 本願이란 衆生이 挫折의 밑바탕에서 믿고 依支할 수 있는 純粹生命이며 絶對價値이다. 眞理앞에서는 無力할 수밖에 없는 凡愚衆生이 그를 ‘攝取不捨’하겠다는 如來의 本願(=약속)을 믿고 의지할 때, 거기에 本願의 意義는 뚜렷이 現前하는 것이다.
If we suppose there exist three cardinal points in the foundation of the Pure-Land Thought, those must be the Amitabha’s Original Vow which is the foundation of existence in the Pure-Land as well as Amitabha, Amitabha himself and the land of Amitabha, and the issue of Birth in the Pure-Land that discuss who and how to give birth in the Pure-Land of Amitabha. Amitabha and the Pure-Land of Amitabha denote following facts. Namely, there is the Pure-Land of Amitabha, Amitabha is the main Buddha in the world of Pure-Land, groups of Bodhisattvas, faithfully awakened Buddhists, human and celestial beings stay in there. The final goal of the Pure-Land Thought is to give birth in the Pure-Land where has the superbly equipped environments in the buddhism practice, and to enter into Nirvana surrounding with Amitabha and countless groups of Bodhisattvas, faithfully awakened buddhists, human and celestial beings. The original vow doctrine is a manifestation of Tatagatha’s great compassion based on the awakened mercy and wisdom of Tatagatha. Tatagatha’s great compassion has been incarnated into the Amitabha’s primal vow. If we accept that the original vow doctrine is the exhibition of Tatagatha’s great compassion, we are to be saved when we simply rely on Tatagatha’s original vow. The salvation cause does not exist in sentient beings but do exist in Tatagatha. The original vow is the pure life as well as the absolute value that sentient beings could have a faithand a trust in. Sentient beings are helpless in front of truth. Tatagatha’s original vow (equivalent to Tatagatha’s promise) is to embrace all sentient beings. The original vow’s signification comesto exist when stupid sentient beings are happened to believe and rely on the Tatagatha’s original vow.

4,800원

6

화엄의 원(願)

이행구(도업), 서병진(성운)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7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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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갖고자 하는 마음,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함”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 욕(欲)이다. 경전에서는 “욕망․갈애․탐욕․망집” 등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바람, 구함”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말에 원(願)이라는 단어가 있다. 욕(欲)과 원(願)은 그 의미는 비슷하나 전자는 버려야하는 것으로, 후자는 가져야 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회향(廻向), 중생회향(衆生廻向)이 전제되지 않은 “바람, 구함”은 欲․욕망․갈애․탐욕이요, 중생회향이 전제되면 그것은 願․誓願이 된다 할 수 있다. 이것은 대승보살 사상의 핵심이다. 󰡔화엄경󰡕은 대승보살의 길(道)과 행(行)을 설하는 경답게 여러 곳에 願이 설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명법품」․「10지품」․「이세간품」․「입법계품」에 보살의 10대원이 설해지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명법품」․「10지품」․「이세간품」의 10대원의 명칭은 각각 다르지만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입법계품」의 보현보살의 10종대원은 그 명칭과 내용에 차이가 있다. 반야삼장이 大經의 「입법계품」만을 떼어내 󰡔40화엄경󰡕으로 편역할 때 그 끝부분인 권제40에 「보현행원품」을 편입시켰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화엄경은 철학성과 논리성이 대단히 잘 된 경전이다. 반야지혜를 체(體)로 하고 보살만행을 용(用)으로 하는 구조는 참으로 잘된 것이지만, 신앙성이나 보살의 실천행은 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을 보충한다는 뜻에서 반야삼장은 別行經으로 유포되어 있던 “보현보살의 10종 대원”을 󰡔40화엄경󰡕의 맨 마지막에 편입시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In Buddhism, a desire is meant be a status of mind that attain or achive something deparately. In another words, a desire is expressed as wants, attachment, greed, or deep-seated delusion in Buddhism scripture. Also, there is a wish which denotes a word for caring for something or requesting for something. There is a similar meaning between a desire and a wish. However, in a view of Buddhist’s common sense, a desire should be abadonned but a wish should be maintained in a person’s mind. Without a showing deepgratitude toward all sentiment beings, caring or requesting for something is becoming to a desire, a want, an attachment, or a greed. But with a showing deep gratitude toward all sentiment beings, caring or requesting for something is becoming to a wish or a vow. This is the essential point of Mahayana Bodhisattva’s thought. Avatamska sutra has explanations about a wish in several chapters since the sutra is guidance for the Mahayana Bodhisattva’s way and practice. Specifically, there are explanations for10 big vows in the chapters of Myung-Bup, 10-Gy, Isegan, Ipbipgye. If we look at the correponding chapters, each calling name of 10 big vows in each chapter of Myung-Bup, 10-Gy, Isegan is different respectively, but the contents are quite similar to each other. However, the name and the content of Bohyun Bodhisattva’s 10 big vows in the Ipbipgye chapter are different from those of other chapetrs. It is so, since when Banyah-Samjang tried to edit from the Big sutras into 40 Avatamska sutras, he just detached the Ipbipgye chapter from the Big sutras and tranferred the part into the last sutra of 40 Avatamska sutras as the chapter of Bohyun Bodhisattva’s vows. Avatamska sutra has a well establiment of philosopical as well as logical flows. It reposes Banya wisdom as its body and takes Bodhisattva’s various acts as its usage. This is a well established framework. But, its framework is little bit absent from Bodhisattva’s practice. In order to compromise the deficiency, it is seemed that Banyah-Samjang tried to insert the content of Bohyun Bodhisattva’s 10 big vows, which once was spreaded out as a separate sutra, into the last part of the 40 Avatamska sutras. Go gwang duk, grand sunim, has newly established the Bulgwang temple and has been the Dharma master of Bulgwang Temple. It is seemed to be a good idea for Go gwang duk sunim to adopt Diamond sutra as the body of Bulgwang Dharma lecture and to take Bohyun Bodhisattva’s practice vows as the usage of Bulgwang Dharma lecture.

6,400원

7

『白花道場發願文』의 願에 대한 고찰

전호련(해주), 김호성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109-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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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의상(625-702)이 지었다고 전하는 󰡔白花道場發願文󰡕의 願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백화도량발원문󰡕은 관음대성을 본사로 모시고 본사와 같아지기를 원하며, 관음대성이 계시는 백화도량에 왕생하기를 발원한 것이다. 그런데 이 발원문은 그 전문이 온전하게 전하지는 않는다. 고려의 木庵體元이 1328년에 集解한 󰡔백화도량발원문약해󰡕의 主文이 현행본 󰡔백화도량발원문󰡕으로서 유일한 것이다. 그 판본은 해인사 사간장경속에 간직되어져 오늘에 이르렀는데 󰡔약해󰡕(총 20장)의 제5장과 제7장은 결락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결락된 󰡔약해󰡕 부분에 해당하는 발원문의 분과와 내용을 추정하여 보완해보고, 발원의 내용을 재분류하고 원의 내용에 담긴 의미를 조명하며, 그와 아울러 발원자와 귀의 대상인 관세음보살의 제자와 스승의 관계를 함께 종합해서 원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그리하여 그 원의 특징을 ‘觀音菩薩의 華嚴行願’이라고 명명해 보았다. 그간의 연구는 발원문의 특징을 통틀어 ‘관음신앙’이라고 한 것에서 벗어나지 아니하였다. 필자는 이를 수용하면서 발원문의 특징을 ‘信仰’이라기보다 ‘行願’으로 보는 것이 더 적확하다고 판단하여 관음보살의 대비행원으로서의 화엄행원으로 본 것이다. 백화도량에 상주하는 관음진신이 발원제자의 대비행원으로 중생 앞에 나타날 때 낙산의 백화도량이 온 법계로 넓어지고, 제자 의상의 발원이 신라만이 아니라 법계 일체중생의 발원이 되어서, 관음보살의 대자대비한 화엄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고 하겠다.
This study is an examination of the vow in the Vow Made at the White Lotus Place of Enlightenment (白花道場發願文), written by Uisang (625-702). The Vow Made at the White Lotus Place of Enlightenment is a supplication that pays homage to Avalokitesvara as a Buddha whom we aspire to become, and vows for rebirth in the White Lotus Place of Enlightenment, the dwelling place of Avalokitesvara. However, the original text has not been transmitted intact. The Explanation of the Vow Made at the White Lotus Place of Enlightenment (白花道場發願文略解) contained in a compendium compiled in Goryeo in 1328 by Mokam Chewon is the only extant version of the text. This xylographic text is preserved at Haein Temple in the Haeinsa Sutra Collection (寺刊藏經), but pages five and seven the of the twenty-page text are missing. In this study, first the content of the missing pages from the Explanation is inferred so as to complete the parts of the text that comprise the vow and elucidate its meaning. In addition a special feature of the vow, in whic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disciple (the one making supplication) and the master (Avalokitesvara, the object of reverence) is synthesized, is examined. Next, the special characteristic of this vow is designated ‘Avalokitesvara Bodhisattva’s vow to practice the Avatamsaka (觀音菩薩의 華嚴行願).’ In total, research to date does not extend beyond characterization of this as ‘faith in Avalokitesvara (觀音信仰).’ While the author accepts this, it is concluded that rather than ‘faith’, a more accurate description of the vow in this text is ‘vow to practice’ in which Avalokitesvara’s vow to practice great compassion is seen as the vow to practice the Avatamsaka. Through the vow of the supplicant to practice great compassion, when the true body of Avalokitesvara appears before sentient beings the White Lotus Place of Enlightenment expands to fill the whole dharma realm. The vow of Uisang then becomes not just one of faith, but that of all sentient beings in the dharma realm, such that Avalokitesvara’s greatly loving and compassionate vow to practice the Avatamsaka stretches out endlessly.

8,100원

8

天台智顗의 誓願에 관한 고찰

김종두(혜명), 정재일(적멸)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15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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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의 발심은 불도(佛道)에 들어가기 위한 절대조건으로서, 불도를 구하는 생각을 일으키고, 지혜를 완성해야 한다는 뜻을 일으켜서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서원을 가진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발심은 십승관법의 수행을 통해서 구현된다고 할 수 있다. 십승관법에서는 마음과 세계에 대한 바른 인식으로부터 중생에 대한 자비의 서원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는 바른 실천을 행하게 된다. 바른 인식 없이는 바른 실천이 될 수 없으며 바른 인식 없이는 중생에 대한 올바른 자비의 마음도 생겨날 수가 없다. 또한 바른 실천 없는 인식이나 서원 또한 공허한 것이다. 따라서 지의스님이 생각하신 서원은 단순히 서원만으로 한정되지 않고 인식과 서원과 실천이 동시에 갖추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Conversion of Cheontae, an essential condition to start the Buddhist doctrine, means to have pledge of relieving all human beings by establishing the sense that should seek the Buddhist doctrine and complete wisdom. This conversion is realized through practicing asceticism of Sipseunggwanbeob rules, establishing pledge of mercy for human beings from recognition on mind and world and translating into action to achieve. Without right recognition, there cannot be right practice, and without right practice, no right mercy for human beings can be generated. Also, any recognition or pledge without right practice is in vain. Therefore, priest Jiui's pledge is not limited to just pledge but also includes recognition, pledge, and practice.

6,700원

9

제2정화운동과 영축회

김광식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189-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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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불교계에서는 불교정화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 운동은 불교계 내부에서의 식민지불교의 극복과 새로운 불교의 지향을 위한 고뇌였다. 그러나 이 운동은 비구승, 대처승 간의 치열한 대립을 가져 왔고 숱한 문제점을 잉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2년 4월 이른바 통합종단의 등장으로 그 운동은 일단락되고 조계종단으로 새 출발을 기하였다. 그러나 1962년 가을 경의 대처측의 퇴진, 종단내부의 명리추구, 1965년 경의 화동위원회의 등장, 신도 배척, 정화이념의 토착화 실패 등의 문제가 야기되었다. 이에 종단 일부에서는 대처측과의 갈등을 종식시킴으로서 이러한 종단의 문제를 마감시키고 도제양성, 역경, 포교 등에 전념하려는 일단의 세력이 있었다. 그에 반해 정화운동을 새롭게 하려는 중진, 소장파 승려들이 있었다. 본고찰은 바로 이러한 제2정화운동이라는 구도에서 정화 이념을 투철하게 실천하려고 만들어진 영축회의 전모, 성격, 퇴진 등의 문제를 정리한 글이다. 영축회는 1967년 1월에 창립 준비위원회가 열리고, 그해 3월 20일 출범하였다. 영축회는 정화운동을 추진하였던 중견수좌, 율사, 소장파 승려들이 주축이 되어 출범했다. 그들은 대정진, 대화합, 대협조를 내세면서 불교정화의 재가동을 꿈꾸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축회의 핵심 지도부의 이탈, 종견 간부들이 선림회라는 새로운 단체로의 이적, 현실과 이상간의 괴리의 심대함 등이 중첩되어 1967년 가을 경에는 퇴진의 길로 갔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조계종단 내부에서 불교정화운동을 다시 해야 한다는 일단의 세력들의 고뇌, 조직화 문제, 한계 등의 문제를 살펴봄으로서 향후 이 시대 불교사의 단면을 파악할 수 있었다.
During the years of 1950, purification movement of Korean Buddhism had been played very actively in the realm of Korean Buddhism. That movement was a kind of an agony for overcoming Japanese colonial Buddhism as well as formoving toward new concept of Korean Buddhism. However, that movement brought in hot conflict between a priest without a wife(bhiku monk) and a priest with a wife, and resulted in various troubles. Nonetheless, the movement was ended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n Buddhism unification order in the April of 1962. The Korean Buddhism unification order had been transformed into Chogye Buddhism Sect order. There were, however, series of troubles after the establishment of Chogye Buddhism Sect order. Troublesome events were such as the retreat of the monks who took wives from Chogye Buddhism Sect order around the fall of 1962, the conflict arised from the members of Chogye Sect order due to terrestrial interests, the creation of the Wha-Dong committee, the expulsion among Buddhism devotees, the failure in settling the purification spirit. With regard to these troublesome events, whereas there were some members of Chogye Buddhism Sect order who tried to solve the conflict between a bhiku monk and a priest with a wife in order to focus on training apprentices, translating Buddhism sutras, and propagation of Buddhism, there were mainstay and youmg members of Chogye Buddhism Sect order who tried to start the Korean Buddhism purification movement again. This research study investigates the various aspects of Young-Chuk Group who tried to execute the purification spirit faithfully for the 2nd purification campaign engagement. And it also summarizes charateristics of Young-Chuk group members and their resigning. Young-Chuk Group was launched on the March 20th of 1967 after organizing its own establishment preparation committee in the January of that year. Mainstays of Young-Chuk group were the main heads of priests, the precept defensors, and young priests who led the Korean Buddhism purification campaign. They attempted to restart the Korean Buddhism purification campaign proposing great practice, great union, and great cooperation. However, Young-Chuk Group was faded away around the fall of 1967 due to the withdrawal of main leading members from Young-Chuk Group, the transfer of main heads into new group called as Sunlim, and the big discrepancy between actual situation and ideal status. This research study has been able to recognize some aspect of Korean Buddhism history by looking at the agony, the organization problem, and the constraint of the priest group who tried to restart the Korean Buddhism purification campaign in the Chogye Buddhism Sect order during the middle period of 1960s.

9,400원

10

불교 상담의 방향과 그 실제

김말환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235-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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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담의 시작은 궁극적인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붓다는 왕자로 태어나서 호화로운 왕궁생활을 즐겼지만, 끝내는 생사의 고통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깊이 있게 통찰 하시면서 출가수행을 결심한다. 출가수행은 6년이란 세월 동안 難行苦行을 하셨다. 그러나 고행만이 출가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고행을 버리고 중도를 통해 더 이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生死 輪廻로부터 자유스러운 길, 연기법을 통한 사성제의 이치를 밝혀내셨다. 깨달음을 이룩하신 후 깨달음의 경지를 다른 사람에게 설하고자 하였으나, 부처님께서 스스로 독백하시었듯이,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세상 사람들과는 반대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이 법을 전하기는 어렵다.”고 하셨다. 그러나 범천의 간절한 권유에 의해서, 근기에 따라 법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교화하는 여러 방법들이 모색 되었다. 여기에서부터 부처님의 교화가 시작되고, 중생의 근기에 따라 ‘차제설법’과 ‘방편’으로써 중생에게 다가간다. 최초로 부처님께서 법을 설한 5비구에게는, 고행보다는 중도의 수행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고․집․멸․도 사성제와 연기의 법을 설하시고 개달음의 실천 행으로서 팔정도를 가르쳤다. 또한 최초의 출가자와 재가신도인 “야사와 야사의 부모님에게는 보시의 공덕과 청정한 생활을 위한 계행의 실천, 그 결과로 인해 하늘에 태어 날 수 있다는 생천설에 대해 설함으로써 차차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次第說法”이 행하여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根機에 따른 對機說法으로서, 교화를 받을 상대의 성질이나 능력에 따라서 각자 알맞게 여러 가지 방법이 摸索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機 즉 받아들일 수 있는 隨機가 되지 않고, 應病應藥처럼 아픈 곳을 알지 못할 때,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처럼 서로 신뢰하고 공감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 법은 설해 질 수 있는 것과 같다. 초기 부처님의 교화는 有爲法的 입장에서 善因善果의 내용과 四聖諦의 원리에 따라 苦의 해결을 위해 집착으로 벗어나는 해탈열반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대승 불교에 오면서 해탈열반을 강조한 아라한의 입장을 넘어서서 믿음과 원력 그리고 성불로 나아가는 대자비의 보살행이 강조 된다. 이러한 입장은 ‘비유와 방편’을 통해서 깨달음에 들어가게 하였으며, 특히 대승경전에서는 누구나 불성할 수 있다는 불성 즉, 여래의 씨앗을 갖추고 있다는 믿음을 통해서 중생에서, 성문, 연각, 보살승으로 轉依하는 과정을 가르쳤다. 이는 곧 과거와 현세의 공덕에 의해 來世에 成佛하리라는 ‘수기’와 ‘현세의 보살 원력’을 통해 미래세에 성불하겠다는 예언을 보여주셨다. 이러한 교화는 부처님의 대자대비의 실천이 곧 중생과 함께하게 되고, 공감과 존중, 그리고 일체감을 나타내는 보살행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교화는 중생들로 하여금 외적 성향에 의해서 변화 되고 성숙되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내면의 통찰을 통해 무명을 타파하고, 왜곡된 생각들을 놓아버림으로써, 본래 갖고 있던 참 성품인 지혜와 자비의 구현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들은 불교교화의 기초가 되며 곧 불교 상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오늘날 심리상담 과정에서, 상담자와 내담자가 충분한 공감대를 함께할 때 촉진 관계가 형성되게 되며, 본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리고 난 다음 문제 해결에 대한목표를 찾게 되며, 그 목표를 향해 실천 계획을 세우고 가능한 것부터 실천에 옮겨, 왜곡되거나 방어하여 왔던 고통 받던 부분들이 해소되면서 건전한 성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과 같은 과정으로 볼 수 있다.
Siddhartha Gautama, the Buddha, was born around 536 BC in India. Gautama in a childish hood lived amid great luxury. In his 20s he encountered four sight : an old man, a sick man, a corpse and a holy mendicant. "Four signs" - he was bewildered and horrified by the realization that were the common fate of humankind, human suffering of the old age, sickness, and death. His quest lasted 6 years and exposed him to a variety of spiritual teachings and practices. After his awareness, his central teaching was the Four Noble Truths. he Four Noble Truths provides the map of how to experience enlightenment. : transience, selflessness and inter-dependence. But Buddha was being anxiety. "men couldn't understand. mind with greedy, angry and foolish" Buddha's new teaching methods designed preach of order, simile and expedient, preach of prophesy. This thought’s core, every man was fullness with wisdom and compassion, buddha nature. These core conditions map on to the three roots in the Buddhist theory of root relations. Rogers's three core theory are empathy, unconditional respect, congruence. Buddhism thus concurs with Rogers that these three antidotes do strike at the very root of the disease in the human condition. Buddhata(buddha nature) is that in us which enables us to self-passion aside in order to be deeply receptive. But western conception of the core self, stands in the way of getting what it believes it's self needs in order to be happy. Mahayana Buddhism's teaching emphasizes trusting that all men possess the 'buddha-nature' (buddhata). trusting the 'buddha-nature' is similar to the humanistic psychology that there is a reliable constructive growth process called the 'actualizing tendenc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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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전개와 복지정토 관점에서의 조명

서병진(성운)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28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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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은 근본적으로 괴로움이 구조화되어 있다. 인간은 개인적으로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피할 수 없으며, 사회적으로 전쟁, 빈곤, 질병, 환경파괴 등과 같은 괴로움을 면하기 어렵다. 근본불교는 개인의 생로병사로부터의 해탈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고난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해탈의 방향도 열반에 두고 있기 때문에 염세적이라는 면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고 나온 것이 대승불교였다. 대승불교는 개인의 해탈보다 중생의 제도에 주안점을 두고 극락세계와 같은 이상세계를 그렸으며, 전륜성왕이 출세하여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사후에야 갈 수 있는 곳이기에 현세 지향적인 사람들에게는 먼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에 든 것이 아니라 아직 영산회상에 있으며 지금도 설법 중에 있고, 이제 와서 성불한 것이 아니라 진묵겁 전에 성불하여 수도 없이 이 세상에 출현하였다가 열반상을 보인 법화경 사상이 출현하였다. 대승불교 사상은 이렇게 개인적 해탈을 넘어 사회적 중생제도에도 관심을 두었으나 사회 전체가 복지사회로 탈바꿈하지 않는 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는 없었으며, 영산회상 역시 철저한 수행으로만 도달 가능한 것이기에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에 현세에서 현실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재가불자들은 미래부처님이 출현하여 현실정토를 실현한다는 미륵신앙에 주목하였다. 미륵신앙은 고난이 많았던 역사를 배경으로 현세지향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앙하기에 적절하였다. 고단한 현실세계의 삶에 희망을 주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증산교와 같은 많은 신흥종교가 생성되기도 하고 때로 권력을 창출하려는 인물들이 내세운 사상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미륵세계는 56억년 뒤에 도래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현실정토를 바라는 인간들이 이 사회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미륵신앙에서는 이상세계를 현실에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10선법을 제시하였다. 모든 인류가 10선법(善法)을 실천할 때 용화세계가 이루어지고 정토복지사회가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기다리기보다 현세에서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 복지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연구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현대국가가 추구하는 복지사회는 정책과 제도를 통한 복지사회의 건설이다. 불교는 이타행을 통한 불교복지를 통해 불국정토를 구축해야 한다. 인간의 사회적 문제와 물질적 욕구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사회복지에 정신적 복지를 더하는 불교복지는 훨씬 차원 높고 광범위하며 포괄적인 사회복지이다. 인간의 복지를 통해 최종적으로 해탈을 이루게 하려는 불교복지의 실천이야말로 바로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이루기 위한 초석이라 할 수 있겠다.
Man can say the world we are living is full of bitters and sufferings. At the personal level, birth, ageing, disease and death are fatal for individual human beings. And at the social level, they can't avoid war, poverty, epidemic, environmental pollution and destruction. Early buddhism focused on the liberation from the samsara(karmic cycle) of life and death, so that it had less interest in removal of the sufferings caused from the society. The liberation didn't pursue worldly happiness or pleasures. Its ultimate goal was nirvãna. On reflection, Mahayana Buddhism came out. Mahayana Buddhism focused on rather bringing about the welfare of all beings by freeing them from sufferings than personal liberation. Its ideal world was the sukãvat(utmost bliss) in which cakravartin, wheel-turning king, rule by virtue rather than force. But for people wishing living happily in this world, the sukãva seemed too far to reach. It was like they could reach after death. So Saddharmapundarika- Sûtra came and taught that Sakyamuni Buddha didn't enter into nirvãna: Buddha was yet teaching of dharma in the assembly at Grdhrakuta Mountain. Buddha just showed people the characteristic of nirvãna to lead them to the ultimate truth or dharma. He became a Buddha uncountable times of kalpa ago, but came to this world to show the way to get the liberation and save the beings. Although Mahayana Buddhism taught liberating sentient beings beyond personal liberation, all of the problems people had couldn't be solved, as far as the whole society wouldn't change into a perfect wellbeing society. And Grdhrakuta Mountain itself could only be reached through thorough ascetic exercises. Then lay devotees who wished to fulfill their desires in this world noticed Maitreya, also known as the future Buddha. who has still to come, is thought to be waiting for the right time to come down to earth to create sukhãvatî(Pure land). Koreans were harassed by all kinds of problem of living like in any other countries and had to go through wars and invasions, so they had tendency to be realistic and hoped to live safely and happily in this world. Maitreya was an appropriate belief for them. It gave them hope. Furthermore, a large number of new religions such as Jeungsangyo came based upon it, Often it became the ideological foundation of them. It is told, Maitreya world would come true in 5600million years. But people rather should make efforts to realize it now than to wait. People have to make every effort to build and realize the ideal world. As the best way to realize, Maitreya shows us 10 virtues. Sukhãvatî would be realized when all human beings practiced the 10 virtues. Then Maitreya Buddha, the future Buddha, would come to revive Buddhist teaching and bring the human beings an end of suffering. Therefore we have to think and study how to practice the virtues than just wait. A modern state is a society which provides all individuals a fair distribution of the basic resources necessary to maintain a good standard of living. The modern welfare state will provide for the overall needs of the community without regard to individual success or failure. On the other, Buddhism teaches to practice altruism to create sukhãvatî. Buddhist welfare is more comprehensive and expansive than institutional social welfare, since Buddhist welfare cares about mental as well as physical welfare. In other words, Buddhist welfare is much more comprehensive than a narrow notion of social welfare that takes into account only the material aspects of human needs. Sometimes it appears that mental sufferings are much more intense than physical ones. By the performance of acts of punna(meritorious deeds), they will be free from greed, hatred and delusion and possess the wholesome qualities of mind such as kindness, sympathetic concern for the suffering of other beings. In this way, human beings can realize the ideal wellbeing society. Besides, one of the most potent sources of suffering in society is the cruelty and insensitivity of man that is reflected in the pursuit of self-interest. For the ongoing conflicts and wars, acts of terrorism, exploitation of various social groups etc., human beings themselves are responsible. More human suffering has resulted from cruelty of man towards man than from any other causes such as natural disasters. So we have to adopt a way of life that conduces to ours own welfare and the welfare of others. By practising of 10 virtues that purify the spirit of human beings, we can realize the ideal wellbeing society in this worldly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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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축조에 관한 소고

임경미(원영)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329-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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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는 간단한 표시와 결계에 의해 계단이 설치되었다. 지금처럼 고정설비를 갖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달랐다. 중국에서는 탑형식의 특정 모형물이 축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도선에 의해 성립되었다고 하는 계단은 그 규모가 인도와는 다른 형태였다. 현장의 역경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었던 도선이 인도풍의 계단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선은 인도풍에 따르지 않고 중국풍의 새로운 계단을 이루어 낸 것이다. 중국불교에 맞는 계율을 평생 모색해왔던 도선은 계단축조에 있어서도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발휘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도선의 계단축조는 이후 한반도와 일본열도에도 전해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출가수계에 사용되고 있다. 특히 통도사의 금강계단은 도선의 영감계단보다 빨리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렇다고 도선의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도선이 최후에 완성했다고 하는 영감계단보다는 이르다고 말할 수 있다. 본 소고에서는 주로 계단의 설정방법과 그 형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실제 현존하는 계단 위에서 수계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다. 대개는 상징적인 축조물로서 남겨두고, 실제 수계는 그 앞이나 법당 등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The ordination platform was established by the simple sign and limited area in India. This wasn't in accordance with fixed equipment like now. However it was different in China. There was the specific model of tower style there. Though the ordination platform established by Tao-hsǔan was differentiate from the platform's size of India. It doesn't seems that Tao-hsǔan who participated in the adverse business on the spot didn't know about India style's ordination platform. Although Tao-hsǔan didn't follow the India style and completed new ordination platform of chinese style. Tao-hsǔan tried to find Buddhist percepts which suited for Chinese Buddhism for entire life and he might display originality itself about ordination platform construction The ordination platform construction of Tao-hsǔan is handed down at the Korean Peninsula and Japan' chain of islands and used in the disciple of Buddha of Buddhist priesthood. Especially it is highly expected that Tongdosa Diamond Ordination platform had established earlier than Ling-gan ordination platform of Tao-hsǔan. Even if it is affected by Tao-hsǔan, it is completed earlier that Ling-gan ordination platform that Tao-hsǔan finished the last. In this piecemeal consideration, I mainly inspected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ordination platform. However I wonder how many ordinations got accomplished on the existed ordination platform. Nearly this remained to be symbolic structure and real ordination might realize in front of it or the sanctuary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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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의 고암대종사

이경순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353-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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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70년대 古庵大宗師(1899~1988)의 행적을 살핀 것이다. 고암은 曹溪宗 宗正을 역임한 한국 현대불교의 대표적 고승이다. 1988년 입적하였지만 수행자로서, 청정율사로서의 행적은 수많은 문도와 신자들 사이에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다. 또한 3차례나 종정에 추대된 인물로서 현대 조계종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빠질 수 없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는 고암의 행적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고암은 1970년대 신흥사 조실로서 신흥사를 중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3차례 조계종의 종정을 역임했다. 교단사에서 1970년대는, 1954년부터 시작되어 10여년을 끌던 종단정화의 광풍이 지나간 후 정화의 정착과 敎政의 안정이 기대되던 시기이다. 그러나 중앙 종단의 권력과 각 사찰의 이권을 둘러싼 분규와 소송이 끊이지 않아 교단의 혼란과 위신 추락이 날로 더해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의 조계종의 종정은 지금과 같이 상징적 위상을 갖는 종정과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종정은 종단정치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종단운영에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고암은 종정으로서 종단정치에 관여하였고 때론 분규의 주역으로서 세간에 알려졌다. 고암은 1970년대 종정으로서 분규와 기강해이로 대혼란을 겪던 당시 승단을 이끌어야 했다. 수행이 바탕이 된 승단정화를 꾀한 고암은 종정유시를 통해 종회를 유보시키거나 총무원장 중심제로의 종헌개헌에 반발하는 등 종정의 권한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청정율사로서, 전국과 세계를 누빈 포교사로서 평생을 살았던 고암의 일생에서 1970년대는, 종단의 정신적 수장이라는 영광과 혼란뿐인 종단정치의 상처가 교차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1970년대 고암은 승단분규의 중심에서 정화과정에서 파생된 승단 내 문제를 인식하고, 정화의 완성과 당대 한국불교 승단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1970년대 고암의 행적연구가 현대 고승으로서 고암의 전반적 생애와 사상에 대한 연구와, 승단분규의 시대로만 규정된 1970년대 불교계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촉진할 수 있길 기대한다.
This study investigates Goam's activities in the 1970's. Goam was one of the great Seon masters of contemporary Korean Buddhist history. He was famous for a respectable Seon ascetic and stern vinaya master. He also was had as the 3rd, 4th, and 6th Supreme Patriarch of the Jogye order from the end of 1960's to the end of 1970's. In the 1970's, Goam helped Sinhungsa be restored as the head temple in Gangwon province and participated in official affairs of Jogye order. He had reserved the activity of the Central Assembly of Jogye order and vetoed revision of the constitution of the Jogye order, which aimed to restrict the competence of the Supreme Patriarch. This caused lots of controversies about the limit of authority of the Supreme Patriarch. However, he realized the aftermath of Buddhist purification movement from the 1950's and tried to overcome all difficulties in order to reform Sangha society. I wish this study would contribute to promote the research about the lifetime of Goam as the representative master as well as the 1970's Jogye order in contemporary Korean Buddhis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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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曉의 불교대중화 일고

원영만(정산)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38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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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초 공인된 신라의 불교는 사회의 여러 방면에 긍정적 역할을 하며 국가적으로 전개되었다. 사회 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한 것을 역사적으로 國家佛敎 護國佛敎 등으로 불리게 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원효시대는 신라가 삼국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불교사회 또한 가장 화려한 불교문화를 이룩한 시기이다. 당시 신라불교사회는 특징이 있다. 초기 신라불교는 왕실중심의 귀족불교이었던 것이 원효시대는 일반 민중에까지 널리 전파되는 불교의 대중화가 진행되었으며, 중국 유학승 등을 통해 들려오는 다양한 경전의 진의를 깊이 연구하여 불교학의 크나큰 진흥을 보게 되었다 할 수 있다. 불교대중화를 사회계급상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만이 불교대중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불교대중화의 정의가 계급과 빈천에 의해 명명된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석존의 가르침은 결코 그렇지 않다. 곧 불교대중화란 불교를 통한 불국정토, 즉 불교의 사회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고는 귀족중심이 되었든, 가항중심이 되었든 불교의 사회화라는 관점에서 이를 접근하여 살펴보았다. 그런데 신라사회의 불교대중화가 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가. 출가자에게는 출가 시 진정한 初發心時의 마음으로, 재가자에게는 참다운 福利의 의미를 다시 되돌아보는, 출가․재가자가 모두 하나 된 불제자로서 진정한 보살행을 疑情으로 삼는 동시에 참된 보살행을 실천하므로 증장되는 지혜와 복덕을 통해 불도를 증득하자는 것이 아닐까. 원효의 보편적 화쟁사상은 바로 대내외적으로 겪고 있는 오늘의 우리 불교계에 던져주는 화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Having recognized officially at the early period of 6th century, Silla's Buddhism took an active role in various social fields and then spread throughout the country. Thanks to such an affirmative role in social development, Silla's Buddhism came to be called National Buddhism or Nation Protection Buddhism. In this context, the era of Wonhyo is really regarded as the time when Buddhism created the most brilliant Buddhist culture after Silla's having unified the Three Kingdoms. In the period of Silla Kingdom, Silla's Buddhism had its own unique characteristics. Early Sill's Buddhism had a tendency to takes on aristocratic Buddhism based on the Royal family. However, at the period of Wonhyo, Buddhism got to spread widely even to the populace and so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gradually made process. Furthermore, during this period, it is significant that there was a great development in Buddhism studies through deep study on a variety of scriptures brought by student monks studying in China. Actually, we tend to regulate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as one which targets at only common people in terms of social class. If so, it seems that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should be defined according to class or poor and low status. But the Buddha's teaching never discriminate human beings but embraces all beings. Consequently,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is to build Buddha Land, to emphasize the socialization or popularization of Buddhism. Hence, in this paper I tried to discuss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in the perspective of the socialization of Buddhism whether it is aristocratic or common. Moreover, another my topic is "What does the popularization of Buddhism in Silla's society suggest us today?" In this essay, I attempted to examine that it is to attain enlightenment through wisdom and merit and virtue increased by genuine Boddhisattva's practice with an ascetic's genuine initial spiritual awakening, with lay people's genuine reflection on real welfare, and with an ascetic and laity's genuine Boddhisattva's practice and great vows as one disciple of the Buddha. In the nebulous and uneasy society, it seems that Wonhyo's universal "Hwajaengsasang" ("Synthetic Philosophy") is the very “Hwadu”(Koan) that delivers Korean Buddhist society getting faced with difficulties domestic and 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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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한금순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42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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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내세워 1918년 법정사에서 주지 김연일의 지휘 아래 지역 주민 700여명이 함께 일으킨 항일독립운동이다. 그간 일제의 의도적인 왜곡에 의해 보천교의 난으로 폄하되었던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해 기존 연구와 달리 새롭게 밝혀진 내용을 정리하였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국권회복을 기치로 내건 독립운동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거사로부터 시일이 멀어질수록 참여주민의 숫자를 700명에서 3백여 명으로 축소시켰고, 불교도들이 참여하였다는 처음의 기록은 점차 사교도들의 난리로 기록하였다. 법정사 항일운동이 보천교의 난으로 왜곡된 것은 바로 일제가 항일운동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폄하한 것이었다. 이후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시각은 보천교의 난으로 고정되어, 법정사 항일운동에 대한 연구를 모두 이러한 시각과 연관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기존 연구의 법정사 항일운동의 날짜와 주도 세력에 대한 오해 등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8년 10월 7일에 일어났으며, 700여명의 주민이 동참하였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형사사건부󰡕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사람들은 85%가 법정사 인근 마을인 좌면 출신 주민들이었다. 주도세력들은 법정사에 모이기 이전에 이미 승려로 출가한 사람들이 주가 되었으며, 이들이 법정사에 모여 거사를 준비하였다. 법정사에 모인 신도들에게 거사의 뜻을 알리고 주변에 동참을 권유하면서 주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에 참여한 주민들도 자신들이 참여한 거사가 일본인을 몰아내려 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도 살펴보았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이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하여 700여 주민들이 참여한 항일운동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The Anti-Japanese Movement of Jeju Beobjungsa broke out at Dosoonri in Jeju on December 7 in 1918. The Anti-Japanese movement was staged by some Buddhist monks such as Kim Yeon-il, Kang Chang-gyu and Bang Dong-hwa and about 700 local folks to the purpose of recovering national sovereignty. This study sheds light on the specific characteristics on the Jeju Beobjeongsa movement by tracing not only its preparation and the process of the development for the movement but also the activities and achievements of the leading power all throughout the movement. Japan, however, tried to diminish and distort the meaning of the resistance movement into "a rabble-rousing instigated by around 300 to 400 pretended devotees." Seeing the fact that Beobjungsa Buddhist monks induced about 700 local folks' participation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through a careful prearranged plan, we can easily perceive the Japanese intention to diminish the meaning of this Anti-Japanese movement. The newly discovered documentary records made this study possible. This study is also based on preserved documents in National Registration Agency, words of mouth from the bereaved families, and materials in their poss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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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彙報

한국정토학회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0권 2007.12 pp.469-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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