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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ISSN
    1229-1846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8~2018
  • 주제분류
    인문학 > 불교학
  • 십진분류
    KDC 220.1 DDC 294
제13권 (12건)
No
1

한국정토학회 학술세미나

한국정토학회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5-6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2

刊行辭

이도업 합장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7-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3

『極樂莊嚴經』의 五種莊嚴과 穢土의 淨土化

최봉수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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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 사상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모든 불교학자들이 던질 수 있는 질문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이다. 그에 대한 많은 답이 있지만 사실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리는 정토 자체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리고 예토에 살고 있기에, 정토에 대한 견해가 늘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토 사상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찾고자 한다. 곧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정토처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서, 정토 사상의 참된 의미를 함께 찾고자 한다. 우리는 그 해답을 대표적인 정토부 경전인 범본 󰡔극락장엄경󰡕에서 찾은 듯하다. 󰡔극락장엄경󰡕을 보면 모두 다섯 가지 장엄이 설해진다고 정리할 수 있다. 총 47단 중 제11, 12, 13, 14단은 ‘미타 장엄(彌陀莊嚴)’을 보여 주고, 제16, 17, 18, 21, 22, 23단은 ‘극락장엄(極樂莊嚴)’, 제19, 20, 24, 33단은 ‘유정 장엄(有情莊嚴)’, 제32단은 ‘보리수 장엄(菩提樹莊嚴)’, 그리고 제34, 35, 36, 37단은 ‘보살 장엄(菩薩莊嚴)’을 보여 준다. 바로 이 다섯 장엄이 각각 미래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와 그 분야의 문화적 가치를 이미 잘 표방하고 있다. 첫째, 미타장엄은 미래사회를 구성하는 분야 중에서 “지도자”를 위한 정토문화를 담고 있고, 둘째, 극락장엄은 “국토”를 위한 정토문화, 셋째, 유정 장엄은 “국민”을 위한 정토문화, 넷째, 보리수 장엄은 “종교” 그 자체를 위한 정토문화, 그리고 다섯째 보살장엄은 미래 사회의 여론 선도층과 같은 “리딩 그룹”을 위한 정토문화를 잘 보여준다. 그러한 󰡔극락장엄경󰡕의 아이디어를 우리의 현실 세계에 적용할 수만 있다면, 이 세계는 정토를 닮은 세계가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토 사상의 또 하나의 진정한 의미가 아닌가 한다.
“What is the thought of the Pure Land?” is one of the most fundamental questions that any buddhist scholar can ask. there are many superficial answers to it, but few are satisfactory. We can always change our views of the Land, because of not having experienced the Pure Land itself and now being in the world of Sahalokadhātu This study is seeking the true meaning of the thought of the Land from the another angle, which means to look for the answer how we could change this real world to the Land at the same time seeking the real meaning of the thought. We seems to find an answer from the Sukhāvatīvyūha-sūtra. There are 5 categories of magnificence : the 11th, 12th, 13th and 14th among total 47th paragraphs of the Sūtra, explain the magnificence of Amitābhā Buddha and the 16th, 17th, 18th, 21st, 22nd and 23rd explain the magnificence of the Pure Land and the 19th, 20th, 24th, and 33rd explain the magnificence of the people and the 32nd explains the magnificence of the Bodhi-tree, and the 34th, 35th, 36th and 37th explain the magnificence of the Bodhisattva. Such 5 categories advocate a part that the future society should have more interested in and the cultural value that the part is already related to. The first, the magnificence of Amitābhā Buddha is related to the culture of the Pure Land for the "leader" in the fields of composing the future society. the second, the magnificence of the Pure Land is related to the culture of the Pure Land for "this territory (kṣetra) itself", the magnificence of the people to "the citizens of the future society" as a 3rd, the magnificence of the Bodhi-tree to "the future religions" as a 4th, the magnificence of the Bodhisattva to "the future leaders' group" as a 5th. if we could apply the idea of the Sūtra to the real world, this world would be the land that resembles the Pure Land. That would be one another true meaning of the thought of the Pure Land.

7,900원

4

법성종의 입장에서 바라본 정토사상

신규탁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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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불교도들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을 바다와 같은 고통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수양을 해서, 죽은 다음에는 고통이 없는 정토(淨土)에 환생하기를 희망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도를 통하여 타인을 정토로 환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고통 없는 세상에 대한 인도인들의 발상은 대승경전이 새롭게 편집되는 과정에서 불교 텍스트의 내부로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이런 발상은 역사상의 인물인 석가모니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다만 불교 문학이 유행하면서, 석가모니가 전생에 수행을 했던 공간으로 도솔천(忉率天) 이념을 가상적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실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의 사물이었다. 그런데 후세로 내려오면서 이런 문학적 상상력도 그 나름대로 정합적인 사상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런 사상이 다시 중국과 한국 일본 등등에 전파되면서, 이 지역의 민중들에게는 중요한 종교행위의 일부가 되었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이런 정토에 대한 생각이 한국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전승되어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검토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이런 정토에 대한 생각을 크게 두 가지 철학전통 위에서 전개해왔다. 하나는 정토종(淨土宗)의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법성종(法性宗)의 전통이다. 본 논문은 법성종 전통의 입장에서, 정토 사상을 평가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저들이 환생하기를 희망하는 정토란 고통이 없는 곳이라기보다는,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이 충만한 공간임을 밝혀내었다. 좋은 환경에서 수행하기를 희망하는 종교적인 염원이 정토라는 특별 한 세계를 만들었다. 이 부분에서도 역시 자기 수행을 중요하게 여기는 불교의 발상이 잘 드러난다.
In India, Buddhists have thought that this world is full of pain. So they cultivate their minds in this world and hope that they will be reincarnated in a painless pure land(净土). Moreover, they believe that others could be reincarnated through their prayer. The idea of creating the world free from pain was reflected in the contents of Buddhism through the process of revising the Mahāyāna Text. This idea is not related to Buddha. The prevailing Buddhist literature made it possible to create a virtual space, Tușita(忉率天), which is the Buddha's training place in his previous life. This is not a real but an imaginary place. The literary imagination became a resonable theory as time goes by. This thought was diffused throughout China, Korea, Japan, and so on. And it has become an important part of religious practices for the people in this region. The thought of pure land has been developed through two major philosophical orthodoxies, the School of Pure Land(淨土宗) and the School of Fa-Xing(法性宗). This study examines how the thought of pure land(净土) was introduced into Korea and analyzes the thought by applying the orthodoxy of the School of the Fa-Xing(法性宗). I find that the pure land(净土), where the Korean people wish to be reincarnated, is not a place free from pain, but the most desirable place for self-improvement. The religious desire of the Korean people, who wish to discipline themselves in a favorable condition, created an imaginary place, the pure land(净土). It also reveals the idea of Buddhism, which regards self-improvement as important.

6,700원

5

한국 정토사상의 특색

한태식(보광)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7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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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한국정토사상을 중심적으로 논하다가 보니 신라시대의 정토논소를 중심으로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정토사상을 논한 정토관련 주석서가 신라시대의 자료뿐이라고 하는 한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본 논문에서는 정토수행이나, 정토신앙, 정토문화는 제외하고 오직 정토사상만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므로 한계성이 있었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한국 정토사상은 정토삼부경 중심으로 골고루 연구 되었다. 일부학자들이 한국은 󰡔관무량수경󰡕을 소흘히 하였다고 하는 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신라시대의 대부분의 정토교가들은 정토삼부경을 골고루 다루고 있으나, 단지 현존하는 자료로는 󰡔관무량수경󰡕의 주석서가 남아있지 않을 뿐이다. 심지어 󰡔반주삼매경󰡕의 연구도 있었으며, 이러한 사상적인 기반위에 한국의 만일염불결사가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48대원을 중시하였다. 48대원의 호칭한 것은 정토사상의 일대변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이러한 원명의 호칭이 오늘날까지 한국불교에서는 장엄염불로 남아 널리 애송되고 있다. 즉 48대원이 의례화될 수 있도록 기여하였다고 보여진다. 셋째는 十念을 중시하였다. 특히 48대원 중에서도 제18원과, 제19원, 제20원을 중시하였으며, 이 중에서도 십념염불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하였다. 십념은 󰡔무량수경󰡕의 乃至十念과 󰡔관무량수경󰡕의 具足十念에 대하여 논사들에 따라서 그 해석법이 달랐다. 넷째는 唯心淨土 중심의 念佛禪을 중시하고 있다. 고려시대 이후 선불교의 번창으로 정토교학은 자취를 감추고, 선종에 흡수되어 선수행의 방편으로 행해지기도 하였다. 중국의 永明延壽의 염불선이 도입되어 오늘날까지 한국불교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어찌보면 한국불교단 순한 선종이 아니라 염불선 중심의 法眼宗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점은 조선 淸虛休靜대에 까지 법안종의 염불선의 正法眼藏이 계승되어왔다. 다섯째는 정토교학과 신앙이 널리 유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淨土宗 이라는 종파가 형성되지 못하였다. 이점은 서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정토사상과 신앙이 너무나 보편화되다가 보니 종파형성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This thesis revolves around the idea of Pure Land dating back to the Shilla era in analyzing that in Korean Buddhism. Firstly, the idea has been researched a lot, centered around the Three Sutras of the Pure Land. It is hard to agree with those scholars who say Korea neglected the Amitāyur-dhyāna-sūtra, because it is just that the data and material remaining now rarely include the tome’s commentary, not that those followers of the idea during the era disregarded any of the three sutras. Moreover, it has been confirmed that there had been researches and studies on the Pratyutpanna-buddha-saṃmukhavasthita-samãdhi-sūtra. Those are thought to constitute Pure Land Buddhism of the country. Secondly, the idea has emphasized the 48 Great Wishes of Amitaba, whose denomination was truly a revolution of the idea. The song is still widely recited in Korea as a Buddhist prayer. Judging from this, it seems that the idea of Pure Land contributed to the 48 Great Wishes’ becoming part of Buddhist practice in Korea. Thirdly, the idea has focused on the Ten Thoughts and, especially, the 18th,19th and 20th among the 48 Great Wishes while giving avariety of interpretations of the Prayer of the Ten Thoughts. The interpretation of the Ten Thoughts differed depending on who interpreted it. Fourthly, the idea has aimed towards the invocatory Zen of the Mind-Only Pure Land. Since the Goryeo Dynasty, Zen Buddhism had prospered, driving out the study of the Pure Land or absorbing the idea as a way to practice Zen, until YongMing YanShou’s invocatory Zen found its way to Korea from China to influence Korean Buddhism up to now. In this vein, Korean Buddhism might not be a simple Zen Buddhism but one revolving around invocatory Zen. This peculiarity lasted until the Joseon Dynasty. Fifthly, Korean Buddhism could not see the sect of the Pure Land sect forming in spite of the wide-spread teachings and belief of the idea. It seems that was because of, as mentioned earlier, the belief’s and idea’s being too popular that stemmed a sect from forming.

7,200원

6

念佛修行과 涅槃의 구체화에 대한 一考

정광균(법상)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10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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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신앙의 요체는 阿彌陀佛에게 귀의하여 간절하게 염원하여 극락정토에 往生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念佛修行의 意味는 일반적으로 五濁惡世에서 轉迷開悟의 어려움에 부처님의 본원력을 요청하는 것이다. 즉, 먼저 염불에 의해서 無限劫來의 業障을 消滅하는 것이며, 다음은 삼매를 통해서 見佛하여 인천의 스승이 되고, 셋째는 만인을 위한 만인의 구제인 極樂往生으로 不退轉을 이루며, 넷째는 궁극적으로 無生法忍을 얻어 열반과 깨달음을 실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염불수행은 인간의 한계성에서 아미타불의 本願力과 大慈悲에 의존하여 왕생하고 물러남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 남이 없는 진리를 체득하여 청정한 깨달음을 완성하는 성불의 길이다. 그래서 염불수행은 그 과정에서 자력과 타력이 조화되는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이러한 염불수행의 역사적 과정은 南無佛로부터 三念으로 四念ㆍ六隨念ㆍ十隨念ㆍ五停心觀을 거쳐 중국에서 여러 염불로 다종다양해졌지만 四種念佛로 정리된다. 그 중에 純粹淨土家에서는 稱名念佛을 중요시하여 강조하였다. 이는 五濁惡世의 無佛의 시대에 時期相應하는 염불수행은 難行道를 易行道로 바꾸어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해서 수행의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에 전제조건으로 發菩提心을 비롯하여 信心ㆍ願心ㆍ往生迴向을 가지고 一心不亂하게 진실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아미타부처님의 名號와 正報와 依報를 관하고 생각하면서 念念相續하여 不斷念佛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금생에서는 삼매를 통해서 부처님을 친견하여 안락을 얻어 인천의 스승이 되고, 내세에는 왕생하여 열반의 세계가 실현된 극락세계를 감득하는 것이다.
The essence of the Pure Land faith, rely on earnestly desire and willingness to Amita Buddha is to go to the birth in the Pure Land. Typically, the meaning of performing these Buddhist invocation, turbidity, and five kinds of evil in the world, open to the top of the deceiver to change the enlightenment, the Buddha is to request the power of the original petition. One is to destroy eopjang(業障) by a Buddhist invocation, and then you will see the Buddha through samadhi, become the teacher of the people and the sky, and the third, for the people to the salvation of the people, to go the Pure Land, where the ground do not go away is achieved, the fourth, the births are not ultimately get to the truth, is to achieve Nirvana and enlightenment. In other words, execution of buddhist invocation is done, the castle because of the limitations of human beings, to rely on Amita Buddha's original wish him strength and mercy, was born, reached the ground and not retreat, not born to get to the truth of enlightenment and Buddha will be completed. So, the performing of buddhist invocation is done, in the process, the combination of his strength and power of others, help each other in relationships. This historical process of doing a buddhist invocation in India in the Namobuddhaㆍtree smṛtiㆍfour smṛtiㆍṣaḑ-anusmṛtayaḥㆍ十隨念ㆍ五停心觀 through and in China as many Buddhist invocation variety can organize, but to Four types of the practice of the Buddhist invocation(四種念佛). That is highlighted in The pure Land(淨土) Buddhist invocation of the names of Buddhas(稱名佛念) and will be important. These Buddhist invocation of the names of Buddhas destroyed eopjang(業障) through the process of samadhi, and to see the Buddha, and, ultimately, to go to the Pure Land, this is Nirvana and the Buddha. This, the Buddha of the world do not have five kinds of evil times, the times and people respond to each other, the performing of buddhist invocation is done, the hard way, for an easy change, I've been getting the help of Buddha, is to complete the purpose of performing. Furthermore, as a precondition to realize the mind and heart want to believe, including who was born and tried to get him a heart to heart with the truth not complicated, and needs in mind and Amita Buddha's name and the meaning of life and will subject I think the place to watch and think about each other is swollen with broken resume. Thus, in this life, samadhi through, can see to meet Buddha, get happy, restful, and the teacher of human beings and the sky, and the dead, you go to the Pure Land, Nirvana the world become reality, I feel the world is the Pure Land.

8,100원

7

無記[avyākata]의 四句[catu-koṭika] 구조 분석

신병삼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14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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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Nikāya에 나타난 붓다의 침묵인 無記[avyākata]의 구조와 체계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無記는 붓다 시대의 外道사상들에 대해 붓다가 침묵한 것이다. 경전들에서는 “붓다는 10無記의 질문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無記]. 왜냐하면 涅槃으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설명할 수 있는 것[記]은 무엇인가? 그것은 涅槃으로 이끄는 四聖諦뿐이다“라는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나름대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붓다 당시의 외도들도 마찬가지로 62見․35見․10見 등에서 어떤 한 가지 견해에 집착해서 '그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외도사상인 62見이나 10無記 등을 분석해 보면 ①有 ②無 ③亦有亦無 ④非有非無라는 四句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外道들의 戱論은 Nikāya에서 '62見 → 10無記 → 四句'로 점차 간략히 규정되었고, 이것은 ①제1구 常住論[有] ②제2구 斷滅論[無] ③제3구 懷疑論[亦有亦無] ④제4구 無因論[非有非無]으로 분류되는데, 여기에 붓다 당시의 인도 사상 전체가 포괄된다. ①常住論은 바라문교, Pakudha Kaccāyana 등, ②斷滅論은 Ajita Kesakambalin 등, ③懷疑論은 Sañjaya Belaṭṭhiputta, Nigaṇṭha Nāṭaputta 등, ④無因論은 Pūraṇa Kassapa, Makkhali Gosala 등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러한 常住論 등의 邪見들은 夢想 속에서만 가능하고 그것을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붓다는 四句의 질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無記[avyākata]의 태도를 취한다. 또한 四句는 ①‘긍정’ ②‘부정’ ③‘긍정과 부정의 합’ ④‘③의 부정’으로서, ①정립[正] ②반정립[反] ③종합[合]으로 대표되는 Hegel(1770~1831)의 변증법과 동일한 형식을 가진다. 또한 ABO식 혈액형의 응용방식인 ①A형[正] ②B형[反] ③AB형[合] ④O형[綜合不定]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집합론의 기호를 사용하여 ①A ②~A[Not A] ③A∪~A[All] ④A∩~A[Zero]라는 형식으로도 四句는 표현된다. 그래서 이 긍정판단과 부정판단의 조합인 四句分別은 인간의 사고방식에 있어서 철저한 논리 형식을 갖춘 것이어서 사물을 분별함에 있어서는 그 이상의 체계가 불필요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사유함에 있어서 아무리 정교한 체계가 있더라도 결코 이 긍정과 부정의 조합인 四句를 벗어날 수 없고 그 틀 속에서 사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四句는 인간사유방식의 정형화된 틀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붓다는 이러한 62견이나 10무기 등의 외도들의 견해에 대해서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 이유는 첫째 붓다는 자신이 직접 깨달은 진리 이외에 다른 어떠한 진리도 찾을 수가 없었고, 둘째 그 깨달음의 선언은 62見이나 10見으로 대표되는 모든 기존 사상[外道]에 대한 부정적 입장 속에서의 비판이라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비판의 表明은 “설명하지 않음”[avyākata; 無記]으로서 나타난다. 인간의 戱論[papañca]적 사유형태인 有無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거짓이고 無意味하기 때문에 침묵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붓다의 正覺은 잘못된 戱論을 부정하는 동시에 올바른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The present paper analyzes about the structure and the system of avyākata[silence; 無記] appeared in Nikāya. Avyākata is what Buddha became silent about heresy. Buddha what kind of explanation does not do about question. It says generally in the scripture[sutra; sutta]; “Buddha does not say what kind of explanation about question of 10views. Because it does not go toward nibbāna[nirvāṇa]. Then what will be able to explain? Only it is Catu-sacca[四聖諦]“ Like this Everybody is having an opinion in it's own way. Also the heresies at that time of Buddha with the same were attached in one kind opinion among 62views etc. and said that “Only this truth and, the something else is lie“. Tries to analyze like this heretical ideologies, 62 views or 10 views, has the structure of 4 phrases, that is ①it exists[有; Atthikavāda] ②it does not exist[無; Natthikavāda] ③it exists and also does not exist[亦有亦無; Atthikanatthikavāda] ④It does not exist and also does not that does not exist[非有非無; Nevatthikananatthikavāda]. The ideologies[papañca] of heresies with “62views→ 10views→4phrases“ simply were provided gradually in Nikāya. These are classified with ①Eternalism[Sassatavāda; 常住論], ②Annihilationism[Ucchedavāda; 斷滅論], ③Skepticism[Amarāvikkhepavāda; 懷疑論] and ④Adhiccasamuppannavāda[無因論]. All Indian ideologies at that time of Buddha include in these inside. ①Eternalism is Brahmanism and Pakudha Kaccāyana etc. ②Annihilationism is Ajita Kesakambalin etc. ③Skepticism is Sañjaya Belaṭṭhiputta and Nigaṇṭha Nāṭaputta etc. ④Adhiccasamuppannavāda is Pūraṇa Kassapa and Makkhali Gosala etc. The opinions which go wrong is possible with only imagining, is meaningless to discuss it. So Buddha did not answer about the questions. 4 phrases are ①Affirmation ②Denial ③Sum of Affirmation and Denial ④'Denial of ③'. So Thoes are the format which is identical with Hegel(1770~1831) dialectics. Also Thoes are application method of ABO formal blood types “①A type ②B type ③AB type ④O“ type transitions accurately agrees. Also those are expressed with four kind formats of the sign of set theory, that is ①A ②~A[Not A] ③A∪~A[All] ④ A∩~A[Zero]. So the system of above these divisions is unnecessary. Because those show the format which the human being thinks. But Buddha did not answer about the questions. Because those questions are meaningless and not a truth.

9,700원

8

광덕사상, 그 연원의 시론적 소묘

김광식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19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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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덕은 한국 현대불교사에서 불교 대중화, 불교 현대화를 위해 헌신한 승려이다. 그의 삶, 불교, 사상을 요약하면 그는 불광사상과 불광운동이다. 필자는 그가 걸은 길은 구도행이면서 동시에 보살행이라고 본다. 본 고찰은 광덕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한 예비 단계의 글이다. 즉 광덕의 사상, 운동, 의의, 위상, 영향 등을 연구하기 위해 그의 제반 행적, 활동의 내용 등을 세밀하게 살핀 글이다. 이 글은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한 불광운동 이전까지의 그의 행적, 움직임, 고뇌 등을 정리했다. 이를 통하여 그가 왜? 불광운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는가의 필연성, 배경을 살폈다. 이런 배경하의 본 고찰은 1974년 이전 광덕의 행적을 문헌, 증언 등의 자료에 근거하여 재구성한 광덕의 연대기이다. 광덕의 불교사상, 고뇌와 꿈, 현대불교사에서의 위상, 끼친 영향, 불광운동의 계승 등 그에 대한 연구 주제는 다양하다. 본 고찰이 광덕을 연구하려는 학자, 후학 그리고 광덕을 보다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기대한다.
Go Gwang-Deok was a monk who devoted to popularization and modernization of Buddhism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Buddhism. To sum up his life, his Buddhism and his thought, He is Bulgwang(Buddha Light) thought and Bulgwang movement. I think that his path was a looking for a way to reach the truth and at the same time Bodhisattva's action. This consideration is a paper for preparatory step in order to study Gwangdeok's in earnest. Namely this writing is a paper which researched his all whereabouts and contents of activity in detail to study Gwangdeok's thought, movement, significance, status and influence etc. This writing is to arrange his all whereabouts, his movements and anguish etc. until Bulgwang movement which he developed regularly from 1974. I considered the necessity and background why he had to develop through this paper. The consideration under this background is Gwangdeok's chronology restructured as basis on materials of documents and testimony for Gwangdeok's whereabouts until 1974. The theme of his study is various for Gwangdeok's Buddhist thought, his anguish and dream, his status in the modern history of Buddhism, influence caused and succession of Bulgwang movement etc. I hope that this paper can be reference for scholars, younger students and people who deeply want to know monk Gwangdeok.

9,400원

9

도선율사와 율종계보에 대한 논의

임경미(원영)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237-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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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오늘날 한국불교가 전승해오고 있는 율종과 그를 완성시킨 도선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이 시대에 맞는 진정한 율맥의 전승은 무엇이며, 율 계보의 필요성에 대해 숙고해보려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고찰의 결과, 남산도선(南山道宣:AD.596-667)은 󰡔사분율󰡕이 중국불교에서 확고한 위치를 구축할 수 있도록 힘썼던 인물이라는 것이 그의 생애나 저술활동 등을 통해 밝혀졌다. 중국에서는 구마라집(鳩摩羅什:AD.344-409)을 중심으로 한 󰡔십송율󰡕이 가장 먼저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서 성행하였다. 그러나 다른 율장들이 번역됨에 따라 율장의 비교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에 힘입어 가장 잘 정비되었다고 하는 󰡔사분율󰡕이 율종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남부지역에서는 󰡔십송율󰡕, 관중(關中)지역에서는 󰡔마하승기율󰡕의 연구가 활발하였다. 뒤늦게 자리 잡은 󰡔사분율󰡕은 초기에는 그다지 연구되지 않았다. 다만, 그 후 계율연구가 점차 활기를 띠게 되고, 율종이 성립되면서 󰡔사분율󰡕의 연구가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어갔다. 그런 반면, 그 외의 율장은 점점 그 지위를 잃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비교적 늦게 연구되어진 󰡔사분율󰡕은 법총(法聰)이 깊이 연구하면서 율종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혜광(慧光)이 더욱 융성시켰는데, 그에 힘입어 법려(法礪)의 상부율종(相部律宗), 회소(懷素)의 동탑율종(東塔律宗), 도선의 남산율종(南山律宗)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법원(法願)을 개조로 하는 병부율종(幷部律宗)이 사분율종의 한 파를 이루었다. 하지만 모든 율종이 다 지속적으로 율맥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대부분 한쪽으로 통폐합되거나 힘이 미약해져 자멸해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도선의 남산율종만큼은 제도화된 승가집단으로서 중국불교의 기반 위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불교 또한 그러한 남산율종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있다. 이와 같이 성립된 남산율종은 지금까지도 그 계보가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족보나 계보라고 하는 것은 스승의 권위를 중시하는 제자들이 스승에게 인정받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또 옛것을 숭상하고 스승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태도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율종계보를 만들어 명단을 나열하고, 그 계통을 주장하는 행위가 곧, 나와 내 스승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가치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계보중심의 사고는 종파주의로 인해 복합적이고 다양해진 불교정체성을 단순화시켰다. 그리하여 조직화된 승단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고, 오랜 전통의 불교사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종교집단이 가진 지나친 계보중심의 태도는 오히려 잘못된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특정인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작용될 우려가 있다. 불교 본래의 가르침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따라서 자신이 소속된 문중의 율맥을 강조하기 보다는 계율정신의 회복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해관계를 떠난 불교계율의 보편적 가르침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현실적으로 더 바람직한 종교인의 자세가 될 것이다.
First of all this thesis is written in the purpose to look into the Vinaya School that the today Korean Buddhism has handed down and Tao-hsüan(道宣:AD.596-667) that was completed it. Also it considered what the true tradition of Vinaya genealogy for this generation is and about the necessity of Vinaya genealogy. As the result of contemplation, which Tao-hsüan was figure trying for 󰡔Ssŭ-fen lü 四分律(T1428)󰡕 to build the firm position in the China Buddhism was discovered through his life and work. In China 󰡔Shih-sung lü 十誦律(T1425)󰡕 focused on Kumārajīva(鳩摩羅什: AD.344-409) was not only translated uppermost but also was prevalent earlier. However at translation of another Vinaya Pitaka the comparative study of the Vinaya Pitaka was made actively and 󰡔Ssŭ-fen lü 四分律(T1428)󰡕 that organized the best with the support of this became pivot of the Vinaya School. Looking into the regional, the study of 󰡔Shih-sung lü 十誦律(T1425)󰡕 in the south area, 󰡔Mo-ho-seng-ch'i lü 摩訶僧祇律(T1425)󰡕 in the middle area was active. Just after that, precepts study being active gradually and the Vinaya School being valid the study of 󰡔Ssŭ-fen lü 四分律(T1428)󰡕 was enlarged around the north area. Whereas other Vinaya Pitaka became lost its position by degrees. Every Vinaya School continuously didn't keep Vinaya genealogy. Mostly they became merged to one side or destroyed themselves being weakened. When it happened only the Nan-shan School of Tao-hsüan was occupied with the firm position on the base of China Buddhism as the institutionalized Buddhist group. Korea Buddhism was also under the influence of the Nan-shan School The Nan-shan School established like this handed down the genealogy until now. Generally something like pedigree or genealogy was started from the mind longing for pupils placing emphasis on the authority of teacher to stick from the teacher. Also the attitude of chinese to revere the old and raise the authority of the teacher made this. The deed that made and listed the Vinaya School genealogy and insisted the system was which became the value to emphasize legitimacy of me and my teacher. This idea of genealogy focus made the Buddhism identity that was compositive and varied because of religious principle simple. And then it played a part to make the organized Buddhist monk group and made the old traditional Buddhism history illustrious. Though the excessive attitude of genealogy focus builds the wrong connection and is concerned to work exclusively about the certain people. This is irrelevant to the original lesson of Buddhism. Therefore we shouldn't place emphasis the Vinaya School of family but keep the accent on the recovery of religious precepts mind. In other words, the suggestion of the universal lesson of Buddhism religious precepts is more important. And right this will be the attitude of desirable religion prac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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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竇頌古集』에 관한 考察

이점숙(영석)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26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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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에서 언어형식을 빌리는 것은 義理禪에 불과하다고 하거나 문자선이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송대에는 문학을 통하여 표현하는 새로운 전통이 수립되었다. 선의 새로운 전개라고 할 수도 있는데, 조사의 語要(고칙)와 후학의 견해에 해당하는 댓구가 합쳐져서 頌古와 拈古, 그리고 拈頌集, 公案集으로 발달하게 된다. 본고에서는 拈頌·公案集의 박차를 가한 雪竇의 문학적 세계와 또 그의 頌古에 중점을 두고 그 동안 선행되었던 연구를 바탕으로 고찰하였다. 송고문학은 天禧년간(1017~1021)에 성립된 汾陽善昭의 󰡔汾陽頌古󰡕가 始原이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雪竇重顯의 송고는 󰡔汾陽頌古󰡕와 더불어 불과 수년이내 문학적으로도 더욱 완성도가 높은 󰡔雪竇顯和尙明覺大師頌古集󰡕(天聖4年 1026, 이하 약칭 󰡔雪竇頌古󰡕)이 편찬되었다. 그 중 呂夏卿이 쓴 雪竇의 塔銘에는 雪竇7部集(󰡔洞庭語錄󰡕, 󰡔雪竇開堂錄󰡕, 󰡔雪竇後錄󰡕, 󰡔瀑泉集󰡕, 󰡔祖英集󰡕, 󰡔拈古集󰡕, 󰡔頌古集󰡕)이 전해진다. 그 7部集 중 󰡔頌古集󰡕은 圜悟克勤의 󰡔碧巖錄󰡕에 수록되어져 入藏되고 또 유포되면서 더욱 세간에 회자되었다. 이러한 雪竇의 󰡔頌古集󰡕의 구성을 통하여 典據를 살펴보면 ⑴ 어록을 전거로 하는 것: 조주록, 운문록, 분양록, 지문광조의 어록, 풍혈연소의 어록 등 ⑵ 등사를 전거로 하는 것: 조당집, 전등록, 광등록 ⑶ 경전을 전거로 하는 것: 화엄경, 유마경, 금강경, 수능엄경 ⑷ 전술한 텍스트 이외 분양송고 등을 전거를 하고 있다 󰡔雪竇頌古󰡕의 구성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100칙의 송고는 운문종의 제1세 雲門文偃(864~949)의 법어에 관련된 18칙과 그 제자나 운문종 계열의 선사들이 7칙, 합하여 25칙이나 수록되어 있어 雲門宗의 집대성이요 종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운문의 3구가 대변하듯이 뛰어난 언어적 방편이 설두중현에게 계합하였으리라. 방편이 없는 선은 이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변에 빠진 禪은 死句로 전락한다. 중도의 법에 이를 수 있는 一聲의 송은 운문의 법신을 일깨우고 진진삼매로 들게 하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Getting aid from linguistic forms in Zen Buddhism has been considered nothing but WiLichan(義理禪). However, this was viewed in a different way in Song dynasty when the new climate of Zen Buddhism was expected. During that time, Zen masters' YuYao(語要, Gu-Ze;古則) and their disciples' comments on it were combined and developed into SongGu(頌古), NianGu(拈古), NianSongJi(拈頌集), GongAnJi(公案集). This thesis contemplates XueDou's literature and his SongGus' that accelerated NianSongGongAnJi(拈頌公案集) based on preceding studies. The origin of SongGu(頌古) literature is FenYangShanZhao(汾陽善昭)'s SongGu that was published during TianXi years(天禧年間, 1017-1021). Within a few years after that, XueDouChongXian wrote 󰡔XueDouXianHeShangMingGiaoDaShiSongGuJ i(󰡔雪竇顯和尙明覺大師頌古集󰡕, in short, 󰡔雪竇頌古󰡕 written in CheonSh eng year 4, 1026)󰡕 that was appreciated to have the greater literature value than FenYangShanZhao's. The XueDou's monument has the 7 Department Collection of XueDou(雪竇7部集) including 󰡔DongTingYuLu(洞庭語錄)󰡕, 󰡔XueDoukaiTangLu(雪竇開堂錄)󰡕, 󰡔XueDouHouLu(雪竇後錄)󰡕, 󰡔BaoquanJi(瀑泉集)󰡕, 󰡔JuYingJi(祖英集)󰡕, 󰡔NianGuJi(拈古集)󰡕, 󰡔SongGuJi(頌古集)󰡕) on it written by LuXiaQing(呂夏卿). His SongGuJi(頌古集) became widely well-known after it was quoted in 󰡔BiYanLu(碧巖錄)󰡕 written by HuanWuKeQin(圜悟克勤). The references that were used in 󰡔XueDou SongGu(雪竇頌古)󰡕 were (1) The Analects of Patriarchs (語錄) : ZhaoZhouLu(趙州錄), YunMenLu(雲門錄), FenYangLu(汾陽錄), YuLu(語錄) of ZhiMen GuangZuo(智門光祚), YuLu of FengXueYanZhao(風穴延沼) and so on, (2) DengShi(燈史): ZhaoTangJi(祖堂集), ChuanDengLu(傳燈錄), AnDengLu(廣燈錄) (3) Sutras(經典): Avatamsaka-sutra(華嚴經), Vimalakirti-nirdesa-sutra(維摩經), Vajracchedika-Prajnaparamita-Sutra(金剛經), Surangama-sutra(首楞嚴經) (4) the extra texts that were not included the above: FenYangSongGu(汾陽頌古) and so on. One of its most prominent features in its structure is that XueDou SongGu 100Ze(雪竇頌古百則) has 25 Ze(則) in total which is composed of 18 Chiks related to a Buddhist sermon taught by the master YunMen WenYan(雲門文偃(864-949)) in the first generation and 7 Chiks from his disciples and masters in YoonMoon sect. Because of this feature, this BaiZe(百則) has been considered WenYan sect's compilation and the most important text. As spoken by WenYan's Three Phrases(3句), the prominent linguistic expediency seemed to be suited forXueDouChongXian(雪竇重顯) Zen without expediencies is nothing but an ideal. But Zen that attaches to discrimination falls into dead phrases. A song(頌) from one-voice that enables to achieve the truth about The Middle Way(中道) is thought to be an expedience that awakened YunMen's The Low-Body(法身) and brought him into Samadhi(三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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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 後期 武臣政權과 禪宗의 연계성

한성열(탄탄)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307-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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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고려 후기 무신란 이후 수선사를 중심으로 한 선종의 교세 확장과, 그 과정에서의 사상적․정치적 변화를 조명하였다. 고려시대의 무신란은 고려불교사에 있어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사상적으로는 불교계의 오랜 과제였던 교․선 일치를 이루어내고, 정치적으로는 무신정권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교세를 크게 확장한 시기이다.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이어진 불교계 각 교파간의 경쟁과 갈등은 11세기 문벌귀족층의 형성 이후 교종계열인 화엄종과 법상종이 양립하는 양상으로 변화하였으며 선종의 교세는 크게 위축되었다. 그 과정에서 화엄종 승려인 의천은 교종을 중심으로 한 선종의 통합을 모색하였으나 교선일치의 사상으로까지 진전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신란이 일어나자, 정권을 장악한 무신세력들은 그들의 사상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선종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 중심에는 불교도량으로서의 수선사가 있었다. 무신란 이후 교종 중심의 중앙 불교계가 위축되자 지방 승려들은 기존 불교계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신앙결사운동을 펼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수선사 결사운동이다. 수선사 결사운동은 보조국사 지눌이 주창한 것으로 지눌은 돈오점수와 정혜쌍수를 통해 깨달음의 원리를 이론적으로 제시하였으며 교종과 선종의 통합을 모색하였다. 또한 그는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의 三門체제를 통해 자신의 이론적 체제를 완성하고, 대중으로의 보급을 통해 수선사 결사운동을 사회적 차원의 결사로 이끌었다. 이처럼 지눌이 주창한 수선사는 제2세인 진각국사 혜심 때부터 최씨무신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대규모의 경제력을 지닌 대사원으로서 변모하였다. 혜심은 최씨무신정권과의 관계를 적절히 조율하며 수선사의 교단발전을 도모하였고, 사상적으로는 유불일치사상을 내세워 유교의 통합까지 도모하는 한편 간화선의 선양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그러나 혜심 이후의 수선사는 점차 정치권력에 종속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몽골의 침입으로 무신정권이 몰락하면서 불교계의 주도권을 점차 상실하게 되었다.
The goal of this dissertation illuminates that is expanded the religious influence of the Zen[Dhyãna] Buddhism focused on Suseonsa(修禪社) after the military insurrection in the latter part of Korean Dynasty and changed ideological and politically from this process. The military insurrection in Korean Dynasty is a serious turning point on the Buddhism history of Korean Dynasty because in ideology that period accomplishes agreement of the non-Zen Buddhism(敎宗) and the Zen Buddhism and in politics also the religious influence expanded on a large scale through the close relationship with the military political power in that period. From the final period of Shilla Dynasty to the early years of Korean Dynasty a competition and discord between each sects of Buddhism changed in the compatible aspect of Hwa-eomjong(華嚴宗) sect and Beobsangjong(法相宗) sect on the field of non-Zen Buddhism(敎宗) and the religious influence of Zen[Dhyãna] Buddhism was atrophied on a large scale after formation of lineage noble layer in 11th century. In that process Hwa-eomjong(華嚴宗) sect monk Ui-cheon(義天, 1055~1101) groped the integration of the Zen[Dhyãna] Buddhism focused on the non-Zen Buddhism(敎宗) but it does not develop to equality theory between the non-Zen Buddhism(敎宗) and the Zen[Dhyãna] Buddhism. From this situation the military insurrection occurred. So the autocrats of military political power had the close relationship with the Zen[Dhyãna] Buddhism and supported actively it in order to harden their ideological base. In that center there is Suseonsa(修禪社). And the center Buddhism focused on non-Zen Buddhism(敎宗) was atrophied after the military insurrection. So the region Buddhist monks criticized the problem point of the existing Buddhism and they started a religious association movement. Among those the center is the religious association movement in Suseonsa(修禪社). The religious association movement in Suseonsa(修禪社) is advocated by Jinul(知訥, 1158~1210). Jinul(知訥) presented theoretically a principle of Enlightenment through Donojeomsu(頓悟漸修; the Sudden Enlightenment and Gradual Cultivation) and Jeong-hyea-ssang-su(定慧雙修; practice of both meditation and wisdom), and groped integration between the non-Zen Buddhism(敎宗) and the Zen[Dhyãna] Buddhism. Also he completed the theoretical system of oneself through systems of three part(三門), i.e. Seong-jeok-dueng-ji-mun(惺寂等持門), Won-don-sin-hae-mun(圓頓信解門) and Kan-hwa-kyeong-jeol-mun(看話徑截門), and led the religious association movement in Suseonsa(修禪社) to association of social dimension through popular supply of them. This Suseonsa(修禪社) from the period of Hye-sim(慧諶, 1178~1234) transfigured at the Buddhist temple which keeps the economic power of large scale through active support of the military political power of Choi's family. Hye-sim(慧諶) appropriately tuned with Choi's family relationships and planned a development of Suseonsa(修禪社) and in ideology planned an integration between Buddhism and Confucianism as well as endeavored widely to inform Kanhwa[Hwadu] Seon(看話禪). But Suseonsa(修禪社) after Hye-sim(慧諶) gradually was visible the aspect which is subordinate to a political authority. And the military political power was ruined with infiltration of the Mongol. So Suseonsa(修禪社) was made gradually to lose the leadership of the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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彙報

한국정토학회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3권 2010.06 pp.339-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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