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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ISSN
    1229-1846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8~2018
  • 주제분류
    인문학 > 불교학
  • 십진분류
    KDC 220.1 DDC 294
제23권 (11건)
No
1

刊行辭

辛奎卓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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特輯 論文 :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생전예수재

2

한국불교 생전예수재의 특성 - 회편과 차서와 상례화를 중심으로 -

이성운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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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후추천재인 칠칠재를 생전에 본인이 직접 시왕에게 공양 올리고 전생의 빚을 갚으며 경전을 보는 한국불교 생전예수재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예수재의문 회편의 특성과 차서의 재구조화, 예수재의 상례화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그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한국불교계에는 10세기경부터 시왕사상에 입각한 사후칠칠재나 명부 시왕에 권공하여 명복을 비는 신앙이 발달하였다. 현재 한국불교 예수재의문의 고형은 󰡔예수십왕생칠재의찬요󰡕로 생몰을 알 수 없는 대우 스님에 의해 16세기 중반에 집술(集述)되었다. 자료를 모으고 저술하여 ‘찬요(纂要)’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수륙재 ‘찬요’의 편집 전통을 일정 따르고 있다. 같은 방식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같은 문장의 요소를 택하거나 편집에 있어서도 유사한 방식을 전승하고 있다. 또 가장 전통적인 수륙재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촬요(撮要)’의 편제도 일정 부분 도입함으로써 한국불교 의례의문의 간행정신을 잇고 있음이 특이하다. 아울러 예수재에는 한국적 정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거듭 거듭하는 공양 올리는 중층적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재는 집술 이후 역사를 거듭하면서 의례의 차서가 점차 재구조화되고 있다. 신중의 옹호를 발원하는 ‘창불(唱佛)’의식을 어느 위치에서 행하느냐 하는 데 대한 견해가 다양하지만 창불은 적어도 전(全)의식의 서두에 행해지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또 예수재 본 의식에서, 관음보살을 청하여 걸수(乞水)하고 쇄수(灑水)하는 의식을 추가함으로써 엄정팔방(嚴淨八方)을 보완하거나 또 그곳에서 설법의식을 행하는 등 의례를 재구조화하고 있다. 영산․수륙재에서는 법화경이 염송되거나 설해지지만 예수재에서는 저승빚과 함께 바치는 간경(看經)은 금강경이 염송되었을 것이고, 그것은 금강경찬으로 대체되었다. 시왕재나 소번재(燒幡齋)로 불리다가 16세기 중반 예수재라고 명칭 되며 발달하였다고 보이는 생전예수재는, 초하루 보름의 불공이나 십재일의 헌공과 같이 상례화의 길을 걸었다. 또 봄가을의 수륙재 등에 예수재가 합설되면서 고유의미가 퇴색되었다. 특히 시왕권공의 십재일이 그 주(主)불보살에게 올리는 공양으로 인식되어 명부시왕과 관련된 재일은 지장재일에 한정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일상예수(日常預修)라는 의미로 생전예수재가 축소되었지만 거기서 행해지는 독특한 종합의례로서의 성격까지는 감소되지 않아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영산재 수륙재 등과 함께 종합의례들이 정비되고 신앙되면서 그 본래적 기능을 되찾고 있다. 또 생전예수재는 윤달에 주로 행해지고 있었지만, 현재 도하 사찰에서 우란분재를 칠칠재로 봉행하는 등 생전예수의 본래적 의미에 따라 윤년에 구애되지 않고 수시로 행해지고 있다.
This essay considers the characteristic of Saengjeonyesujae(生前預修齋, performing the rites during life in order to be reborn into Buddha’s land after death) in Korean Buddhism, where one performs Chilchiljae(七七齋, weekly ritual for the deceased for seven weeks) in advance while in life, a kind of Chucheonjae after death(死後追薦齋, the ceremony of praying for the repose of one's soul). It is performed through offerings to the ten kings of hell, repaying the debt of the earlier life and by reading the Buddhist scriptures. Here we discuss Saengjeonyesujae focusing upon the trait of compilation of ritual program in Yesujae, the reconstitution of its procedure, and its usual practice. In the 10thcentury the belief of praying for the repose of one’s soul developed in Korean Buddhism, where people perform Chilchiljae after death or made offering to the ten kings in the nether world based on the thought of the ten kings of hell(十王思想). The earlier version of ritual program in Yesujae, Yesusiwangsaengchiljaeuichanyo(󰡔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was compiled in the mid 16th century by Ven. Daewoo(大愚) unknown his birth and death date. He named his compilation as ‘Chanyo’(纂要, the compilation of the gist), which follows the editing tradition for the compilation of the gist. It succeeds the publication spirit of Korean Buddhist ritual program by adopting the organization of Chwalyo(撮要, the selection of the gist), another form of the traditional Suryukjae(水陸齋, the offering ritual for land and water), and shows a multi-layered structure of offering. The order of program in Yesujae has gradually been restructured since his compilation was published. There are a variety of different views on when the ceremony of chanting Buddha, the prayer for gods’ protection should be performed, however I think it should be performed at the opening of the rite. Also, the rite is restructured by the addition of the ceremony of inviting Avalokiteśvara and involves the sprinkling of holy water to purifies the eight directions, and a dharma talk. The Lotus Sutra(Saddharma Puṇḍarīka Sūtra) is read or taught in Yeongsan․Suryukjae(靈山․水陸齋, Vulture Peak offering ritual for land and water) while The Diamond Sutra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was read along with the repayment of afterlife debt in Yesujae before being replaced by the compilation of the gist of The Diamond Sutra(󰡔金剛經纂󰡕). Saengjeonyesujae was originally called Siwangjae(十王齋, the rite for the ten kings of hell) or Sobeonjae(燒幡齋, the ceremony of burning the papers) which were further developed in the mid 16th century to become Yesujae. It has become a common practice such rituals as making an offering to Buddha on the first day of every month, and every full moon day and dedication on Sipjaeil(十齋日, Ten precept days). It lost its inherent meaning as it has become combined with Suryukjae. This was especially the case for sipjaeil, which became an offering to the Buddha and bodhisattvas instead of the ten kings of hell while the offering for the ten kings in the nether world became part of Jijangjaeil(地藏齋日, the celebration for Kṣitigarbha, a bodhisattva of Earth Treasury). Saengjeonyesujae was reduced to the usual practice of Yesujae. But its composite feature is preserved and it has regained its inherent functionality as the composite rites including Yeongsanjae and Suryukjae after being reorganized in 20thcentury. Generally it is performed on leap months but may also often be performed at the temples in the capital when Chilchiljae is substitute for the Uranbunjae(the ceremony for dead ancestors).

8,100원

3

생전예수재의 종교문화적 의미와 위상

구미래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4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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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재는 사후를 위한 의례를 내가 주인공이 되어 치른다는 데 핵심이 있다. 살아있을 때 죽음을 준비하는 전통문화로는 생전에 수의와 관을 만들고 묏자리를 준비하는 풍습, 망자를 위한 의례를 산 자에게 적용하여 치르는 예수재와 산 오구굿, 생전장례 등을 들 수 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자신의 복된 내세를 위한 일이자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처하는 일이요, 생사문제를 존재론적으로 성찰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예수재는 이처럼 내세에 대한 기대와 죽음을 극복하려는 마음을 적극 수용하면서,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하도록 이끄는 가장 체계적이고 수승한 의례라 할 수 있다. 예수재에 담긴 신행관의 핵심은 수행(修行)과 보시(布施)이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에 경전을 보지 못한 빚과 금전적인 빚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이때 경전 빚은 수행을 이끌고, 금전 빚은 보시를 이끄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수행과 보시의 공덕을 빚을 갚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참회를 이끌기 위함이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업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마음에서 참된 기도와 수행이 시작된다고 본다. 참회로 악업을 녹이고 공덕을 지어 선업을 쌓는 것이기에, 실천하는 보살행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참회이다. 따라서 올바른 신행은 참회에서 출발하여 행으로 이어지며 이때의 행은 곧 나를 향한 수행이요, 나 이외의 존재를 향한 보시로 귀결된다. 또한 예수재에서는 윤회를 전제하는 불교의 세계관에 따라 전생과 현세와 내세의 삼세(三世)가 펼쳐진다. 예수재에 모시는 9단의 신위체계는 만다라적 특성을 드러내며, 삼신불에서부터 지천(地天)을 오가는 말에 이르기까지 초월적 세계의 다양한 존재들이 중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례공간에 강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만다라적 신위체계’와 ‘삼세육도의 윤회관’은 살아서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는 이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예수9단의 초월적 존재들은 보편적 종교심성에서 볼 때 우주만물에 깃든 엄정하고 피할 수 없는 섭리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둘째, 인과응보와 윤회는 생을 달리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매 순간의 삶에 적용되는 것임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는 윤회의 굴레 속에서 지은대로 받는 인과를 새기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자리에서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것이 예수재의 가장 큰 목적이라 하겠다.
Ye-su-jae has its core purpose to deliver my own afterlife ceremony. There are a number of death preparations in traditional culture such as preparing a shroud and a coffin, Ye-su-jae which is a funereal delivered before a death for the deceased, a San Ogu-gut, a funeral for the alive and etc. Preparing for a death is not only to cope with own destiny and to have peaceful afterlife, but also is to reflect the question of life and death ontologically. Ye-su-jae is the most constructed ceremony which leads to reflect one's life through the death while allowing one to accommodate a heart to overcome a death and an expectation for the afterlife The key points within the view of Buddhists in Ye-su-jae are an asceticism and an offering. Every people has financial debts and debts of not reading Buddhist scriptures. Debts of not reading Buddhist scriptures leads to an act of asceticism and financial debts lead to an act of offering. Expressing deeds of asceticism and an offering as an act of repayment is to allow one to confess his or her sins. In Buddhism, a real prayer and asceticism start from a heart of penitence by looking back one's sins. Sins can be mitigated with a penitence and good works can be cumulated with good deeds. Therefore, the most active penitence is practicing good deeds. A rightful belief and practice start from a penitence and lead to an act and thereby concluded as an asceticism for me, and an offering for the others. Ye-su-jae describes a life comprised of three lives with a previous life, current life, and after life as Buddhistic view of life. 9-level ancestral table in Ye-su-jae is borrowed from the Mandala style and is for Trikaya and various being on everywhere to descend down to solve problems in middle life. This Mandala style ancestral table and the view of samsara of three lives and six beings unfolds an important teaching. First, transcendental beings on the 9-level ancestral tables represents a strict providence within a universe in the light of general religious viewpoint. Second, punitive justice and samsara is not only applied to life and death problem but also to everyday life. It throws a question of how to live with comeuppance resulted from one's own action under a universe where samsara, life and death and current and after life are coexisting. Allowing one to reflect his or her own life at the scene of death is the biggest purpose of Ye-su-jae.

6,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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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예수재 발전방향에 대한 제언

노명열(혜일명조)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7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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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란 죽은 뒤에 행할 불사(佛事)를 살아 있을 당시에 미리 닦아 사후(死後)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한 것으로, 비로자나ㆍ노사나ㆍ석가모니 부처님을 위시하여 지장보살ㆍ육광보살ㆍ육대천조ㆍ도명존자ㆍ무독귀왕ㆍ대범천왕ㆍ제석천왕 등을 증명으로 모신 후 전생에 진 빚을 명부시왕(冥府十王)과 시위권속(侍衛眷屬)인 판관ㆍ귀왕ㆍ장군ㆍ동자 등에게 헌공(獻供), 이를 명부세계 고사ㆍ판관에게 헌납(獻納)하여 누구라도 이 세상을 하직할 때 쾌락한 곳에 태어나길 발원하려는 목적으로 설행하는 재 의식을 말한다. 이와 같은 생전예수재는 조선시대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윤(閏)달이 드는 해에 전국 모든 사찰에서 설행해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불자에게 있어 영산재(靈山齋)ㆍ수륙재(水陸齋)와 더불어 매우 친숙한 재 의식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현행 생전예수재는 전생의 빚을 갚는 목적보다 상세선망 부모님을 비롯한 인연 있는 망자(亡者)를 청해 공양을 베푸는 천도재(薦度齋)와 같은 역할로 전환되는 느낌을 들게 한다. 의식의 절차 중 절반 이상을 망자를 청하고 모시는 시련(侍輦), 대령(對靈)과 목욕시키는 관욕(灌浴) 그리고 공양을 베푸는 시식(施食)에 할애하고 있음이 이를 대변한다. 그 결과, 본래 목적에 필요한 다양한 의식의 절차가 축소, 생략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생전예수재가 본 목적에 부합해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전한 목적의 재 의식 절차가 무엇인지 확인하여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1장에선 현행 생전예수재의 절차가 정립되는데 큰 영향을 준 『예수재의범』을 비롯한 각종 『요집』의 절차를 분석하고 아울러 송강스님의 증언과 필자의 경험을 통해 현행하는 보편적인 의식의 절차를 알아봤으며 제2장에선 『석문의범』에 실려 있는 조선시대,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의 절차와 내용을 확인함으로써 설행목적에 부합하는 의식의 구성이 무엇인지 확인하였다. 제3장에서는 현행 생전예수재 절차에서 들어난 문제점을 진단했으며 제4장에서는 제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시간과 장소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였다. 생전예수재의 발전을 위한 대안은 기존의 것을 유지시키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불필요한 부분은 수정하고 필요한 부분은 복원하며 완성도 높은 재현을 실천해야 한다. 수정과 복원 그리고 재현이 곧 생전예수재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Saengjonyesujae(the commemorative rites for oneself: 生前預修齋) is to pray for the repose of one's soul after death by conducting a Buddhist ritual while alive in advance. In other words, the ritual commences with VairocanaㆍNosanaㆍSakyamuni Buddha and after Ksitigarbha BodhisattvaㆍYukkwang BodhisattvaㆍYukttaecheonjoㆍDaomingㆍMudokgwiwangㆍMahabrahmanㆍS'akrodevandra are enshrined, Myungbushiwang and Siwigweonsok including PangwanㆍGwiwangㆍJangunㆍDongja are served to pay of Karmic Debts and Myungbusekye such as GosaㆍPangwan are dedicated so that anyone wishes to be born in comfortable place when he leaves this world. Saengjonyesujae has been conducted in every temple throughout the country when a leap month sets in a year from the Joseon Dynasty until now; therefore, it is one of the familiar rituals as well as Yeongsanjae(靈山齋)ㆍSuryukjae(水陸齋). However, from some point, the purpose of Saengjonyesujae seems to have transformed paying of Karmic Debts from holding service for the deceased related one including parents, same as Cheondojae(薦度齋). It is represented in that more than half of the ritual procedure consists of Shiryun(侍輦), Daeryung(對靈), Gwanyok(灌浴), that is giving a bath, and Shisik(施食), presenting an offering. As a result, it has produced side effects of contracting and cutting a ritual variety of procedure which is essential for original purpose. It is necessary to confirm and establish a ritual procedure of whole purpose in order to develop it in accord with its original purpose. As an alternative, in chapter 1, the procedures in a variety of 『Yojip』 as well as 『Yesujaeeuibyum』 have been analyzed which greatly influenced the establishment of current Saengjonyesujae procedure and a general procedure at present has been identified on the basis of Monk Songang’s demonstration and the writer’s experience. In addition, in chapter 2, the construction of ritual corresponding to performance purpose have been confirmed by checking the procedure and contents of 『Yesusiwangsaengchiljaeuichanyo』 in 『Seokmuneuibyum』 from the Joseon Dynasty. In chapter 3, the problems of Saengjonyesujae procedure have been diagnosed and in chapter 4, the ways applicable depending on certain time and place based on the suggested contents have been introduced. It is not enough to stay in existing alternative for the improvement of Saengjonyesujae. Unnecessary parts should be modified, essential parts should be restored and reproduction should be realized in higher quality. Modification, restoration and reproduction will lead to the improvement of Saengjonyesujae.

10,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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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생전예수재의 역사와 의의

성청환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129-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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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다른 의례들이 죽은 자를 위한 것인 반면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는 살아있는 사람, 그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생전예수재는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 구분하지 않는 불교적 사유가 잘 드러나는 의례이다. 본 논문은 현대한국불교에서 광범위하게 실행되어지고 있는 생전예수재의 역사와 의미를 특징 사찰 조계사를 중심으로 하여 역사적 기록과 변천의 과정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 예수재의 의미와 형식의 변천과정을 밝혀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시대에 조계사예수재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조계사라는 공간의 상징성은 종교가 갖는 ‘성스러움’의 중심성으로 표현되고, 그 속에서 생전예수재는 의례 참여자에게 단순한 믿음의 체계만이 아니라, 수행을 통한 개인의 참회와 정진이 집단적인 유대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심리적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자리이타의 불교적인 회향을 통해서 사회 공동체 형성의 토대가 된다. 즉 조계사의 생전예수재는 불교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로서 보존되고 계승되어지는 진행의 과정에서, 근․현대에 불교의례의 중심의 한축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1974년의 기간 동안 확인 가능한 조계사 생전예수재는 우선 윤달을 맞이하여 거행하고 있으나, 그 기간이 일정하지 않다. 이시기의 조계사 예수재는 종단주도의 생전예수재이며,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행사였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종정스님과 총무원장스님 등을 비롯한 당대의 고승들이 참석하였다는 사실이다. 1976년∼2001년 기간 동안 조계사의 예수재는 다양성에서 점차적으로 정형화되는 체계를 갖춘다. 1982년을 전후로 윤달을 전후한 7.7의 49일로 정형화되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윤달을 전후로 한 삼사순례의 종교성지 순례가 예수재와 결합하여, 의례를 통한 종교의 공동체 경험의 기간을 연장하면서 예수재가 이렇게 불교의례로서 정형화되어 가고 있다. 2004년∼2014년 시기의 조계사 예수재는 사회적 회향과 신행의 예수재로 성격을 변화하고 있다.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실천과 참여, 그리고 사회적 회향으로 변화된 생전예수재는 하나의 의례가 단순한 기복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수행과 타인을 위한 나눔의 정신을 되살린 불교의례로 승화시키고 있다. 조계사의 생전예수재는 불교의 고유한 문화의식과 전통의례가 지닌 원형의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그 바탕 위에서 시대와 사회에 맞게, ‘신앙에서 신행’으로 새로운 수행의례를 창출하여 종교적 문화의 유산이 지금 이 시대에서 통용되는 기능과 효과를 도출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조계사의 예수재는 보편적인 불교 공통의 역사적 사실의 기억과 영향력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의 한국사회의 시대에 따른 예수재에 대한 공통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As the chief temple of the Jogye Order, the Jogyesa Temple has been a symbol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Buddhism. Established in 1910 as "Gakhwangsa" in 1910, renamed “Taegosa,” in 1937, and finally given its current name in 1955, the temple has come to represent a sacred space in the midst of the profane city of Seoul.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plore a funeral ceremony conducted at the Jogyesa temple, in advance of the subject’s death, in terms of its historicity and significance from 1960 to present. Translated as “advance funeral ceremony during one’s lifetime” (生前預修齋, shēngqián yù xiū zhāi), the ceremony is unique to Korean Buddhist rites as it is a funeral inclined toward the living subject, in contrast to other funeral ceremonies that are, of course, focused on mourning the deceased. As a temple on the forefront of Korean Buddhism, Jogyesa’s advance funeral ceremony during one’s lifetime has been so popular, and considered so suitably Buddhist, that it has changed rites across Korean Buddhism from the modern period onward. Based on the scope of research in the Buddhist newspaper Bulgyosinmun, the advance funeral ceremony in one’s lifetime in the Jogyesa temple has been categorized under three periods based upon its changing characteristics: 1960∼1974, 1976∼2001, and 2004∼2014. During first period the Jogye order is characterized as having played a leading role in performing the ceremony. During this time, the Supreme Patriarch and President of the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participated in and performed a role in rites such as dharma talks. During the second period, the Jogyesa temple formulated and standardized the rite in terms of its practical timing and its synchronization with ritual cycles. Since 2004 the advance funeral ceremony at the Jogyesa temple has changed direction and purpose dramatically. The rite is not merely a public religious ceremony but has also transformed into an act to be carried out by solitary Buddhists. In addition, during the ritual period of the advance funeral, Buddhists of the Jogyesa temple directly practice return of their profits to society as a form of communal reciprocity almsgiving.

8,200원

토론논평

6

「한국불교 생전예수재의 특성」의 토론논평

정광균(법상)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16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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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0원

寄稿 論文

7

범패의 위격과 율조 변화 - 영남범패와 대만범패를 중심으로

윤소희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187-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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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의 진행에 종속되는 범패는 촘촘하게 읊는 율조 에서부터 모음을 한없이 늘이기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음은 중국․대만이나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중 범패의 율조 유형을 비교해 보면 중국은 경전을 낭송하는 일자일음의 송경율조부터 한 자에 여러 음으로 모음을 장인하는 찬류 악곡과 투곡식 범패까지 각각 독립된 장르를 이루고 있다. 중국 범패의 이러한 성격은 대부분의 범패를 승려와 대중이 함께 노래하기 때문이다. 즉 일정한 패턴이 있어야 다 함께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한국은 한 곡을 촘촘히 낭송할 수도 있고, 염불조․반염불조․홑소리․짓소리까지 자유롭게 늘이거나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유연성은 승려 혼자 노래하는 의례 상황에서 비롯된다. 한국의 범패를 승려가 혼자 부르는 경우가 많으므로 줄이고 늘이는 것이 자유롭지만 여기에는 의례와 관련된 엄중한 차별이 있다. 즉 부처님이나 불보살께 직접 인사를 올리거나 예를 올릴 때는 선율을 장엄하게 지어 부르고, 기도와 축원의 뜻을 지닌 사설조 가사들은 염불처럼 촘촘하게 읊거나 민요조로 빠르게 줄여 부르는 것이 자유롭다. 이러한 제반 내용들을 간추려 볼 때, 한국 범패 악곡이 염불조냐 홑소리냐 짓소리냐는 것은 의례의 성격과 범패의 위격에 따른 결과이지 음악적 동기나 목적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범패의 음악적 변화나 율조의 차이는 그 범패가 지닌 의례적 기능과 위격에 의한 결과이다. 오늘날 점차 짧아져가는 범패의 흐름에서도 범패의 위격에 맞추어 장엄하거나 줄여서 부를 줄 알았던 옛 사람들이 법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부처님이나 불보살께 예를 올릴 때 장엄하게 갖추어 불렀던 옛 사람들의 자세는 오늘날 문화재나 예술적 대상이 되어버린 범패에 대한 자세를 반성하게 한다.
Korean Buddhist Beompae chants are subordinate to the ritual process and have various patterns of melody, from short syllabic to long melisma, in the same way as Chinese or Taiwanese chants. But if we look in detail, we can find different features. Chinese chants have distinct forms, such as sutra recitation, poetic chanting, and the long suit form. They are usually sung or chanted all together during a ceremony. But Korean monks might sing different song patterns according to the ritual. A professional monk would sing the chants, as he is able to change the pattern freely in the ritual. Korean Buddhist monks freely reduce or extend the melody by vowel tones. But this might be done according to the meaning of the song. If the contents of the text are for bowing or expressing deep honor to Buddha or Bodhisattva directly, the chant is never reduced. So the triple refuge Samguieoi and Buddha feet Jisimsinlye usually feature a full melody with Jissori. But the vowel melody line of play or blessing songs are short and simple, and so often sung in a folk melody style. And so we know there are several styles, like Yeombul, Hotsori or Jissori. These forms are determined by the character and meaning of the song text, and relate to the importance of ritual rather than the goal of musical beauty. So if we seek to study or understand them well, we first need to take note of the role or the meaning of the chants in the ritual, because they were born out of the desire to express a religious message rather than a musical impulse.

7,200원

8

寬淨의 淨土禪 수행법에 관한 연구

서길수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21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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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淨土禪의 원리와 수행법을 연구한 논문이다. 淨土禪은 중국의 寬淨 법사(이후 관정으로 줄임)가 1987년 싱가포르에서 처음 펴낸 『淨土禪精義』에서 펼친 수행법으로, 그 뒤 미국, 대만, 한국에서 여러 차례 발행되어 보급되었다. 1. 정토교리사에서 정토선ㆍ염불선ㆍ선정쌍수가 모두 가까운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정토선은 다른 염불선의 수행법과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첫째, 禪淨雙修는 정토와 선 수행을 함께 닦지만 정토선은 먼저 칭명염불을 하고 자성염불이 되면 선으로 들어가는 선후 단계가 있다. 둘째, 염불선의 대표적 수행인 관념염불법은 부처님을 관하며 염불을 하는 것이지만 정토선은 칭명염불을 하면서 귀로 그 염불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데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셋째, 念佛公案法은 참선하는데 염불을 화두로 이용할 뿐이지만 정토선은 칭명염불로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자성염불로 일관되기 때문에 크게 차이가 난다. 2. 관정은 불교의 수행법을 크게 ① 생각을 쓸어 없애는 법(掃念法: 알아차리는 법) ② 내버려 두는 법(任由法) ③ 미리 차지해 버리는 법(占領法)으로 나누었는데, 정토선은 ‘미리 차지해 버리는 법’에 들어간다. ‘미리 차지해 버리는 법’에도 ① 觀想法 ② 參話頭法 ③ 念佛法 ④ 身性覺法 같은 4가지가 있는데 정토선은 ③, ④를 합친 수행법으로 염불법을 통해 신성각을 이루는 수행법을 말한다. 身性覺이란 몸으로 자성을 깨닫는 법을 말하는 것으로, 염불을 통해 몸속에서 염불소리가 나는 自性念佛을 이루고, 그 자성염불 소리를 통해서 一念에 이르고, 無念을 이룩하는 것을 말한다. 3. 정토선 수행은 3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① 염불에서 자성염불 단계, ② 자성염불에서 一念단계, ③ 일념에서 無念단계라는 3단계의 로드맵이 뚜렷하다. 둘째, 다른 수행법은 법력이 높은 스승이 있어 증득한 상황을 수시로 점검해 주지 않으면 위험한데 반해 정토선은 3단계가 모두 한마디 염불소리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 쉽고 안전하다. 셋째, 자성염불을 통해서 염불수행만 해야 수행자와 염불에 이어서 禪을 할 수 있는 근기를 분별할 수 있다. 바로 그 바로미터가 자성염불이다. 4. 이 염불법은 관세음보살이 일러주신 것으로 능엄경에서 말하는 관세음보살의 耳根圓通과 같은 원리이다.
The Pureland Zen is a practice first revealed by the Chinese master Kuanjing in Singapore in 1987. After its revelation it has been discussed and practiced in USA, Taiwan and Korea. The thesis of Kuanjing and related literature are discussed in this study. Further the real practices of Pureland Zen and the community of Pureland Zen are also described in this study. The key points of Pureland Zen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The name of Pureland Zen appeared first in Chinese literature ≪淨土或問≫ in 1354, and the name was also used quite often in the periods of Ming and Ching Dynasties. According to the Pureland History Pureland Zen, Amitabha Recitation Zen, and Co-practice of Pureland and Zen referred to almost the same idea. According to the instructor of Pureland Zen, Master Kuanjing, Pureland Zen is simply a gathered chanting of Amitabha in two groups, while the members in one group are chanting the name of Amitabha, the members in the other group are listening and in meditative silence. They change their chanting and listening periods alternatively. Three stages in the practice of Purelad Zen can be expected, namely: 1. Self-chanting stage: If one practises Pureland Zen deeply and habitually, he chants Amidaba automatically, or his ears, his body are chanting Amidaba automatically. This is called the First stage self-drive chanting. 2. One-Desire Stage: By self-drive chanting one gradually reaches the second stage of one pure desire to be in Pureland. 3. No-Desire Stage: The second stage finally leads to a third stage of no desire, in this stage one even forget to chant Amidabaor desire to be in Pureland. The Pureland Zen differs from other known practices by: 1. The essential part of Pureland Zen is coupled chanting and listening; 2. The practice of Pureland Zen pays attention to both the mind and the body. In the practice the three interactions are kept aware: body-background, body-mind, mind-background. 3. The followers are aware of the limited power of human being, but they are anxious to apply the modern science and technology for creating Pureland for humanity. In other words, they don’t ignore their current exist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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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재의 효율적 전승과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에 관한 연구

심상현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25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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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무형문화재 제50호인 영산재는 한국불교의식의 정화로서 2009년 9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룬바 있다. 그런 만큼 전승과 그 가치를 공유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본 논문에서는 연구 주제를 ‘영산재의 효율적 전승’과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정하고 몇 가지 방안을 강구해 보았다. ‘효율적 전승’에 관한 문제로는, 연중행사인 시연에서 三日靈山을 하루로 압축하여 거행하는데 따른 문제점을 예상하고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해 보았다. 부작용으로는 시간의 단축으로 인해 난이도가 높거나 비인기 항목은 축소 및 기피하는 경향이 발생, 해당 의식의 변형 내지 소멸될 우려가 있음에 주목했다. 이에 대해 시연의 형태를 2~3가지로 정리하여 순차적으로 거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에 대해서는, 영산재를 체험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지루하다’ 또는 ‘의미를 알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점에 주목했다. 소통부재에서 오는 부작용이다. 이에 대해 새로운 개념의 팸플릿을 고안해 보았다. 4개 국어로 작성된 기존의 팸플릿에서 탈피하여 국가별로 만드는 한편 내용에 충실을 기하여 자료나 학술적으로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소통의 원활을 위해 의식의 각 항목에 일련번호를 부여할 것도 제안했다. 아울러 의식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희적 요소를 가미할 것도 함께 강구해 보았다. 유명무실해진 維那所의 위용과 역할을 되살려 소통의 원활을 기하는 동시에 종교적 신비감을 더해보자는 것이 그것이다. 영산재는 교리․사상․문화․예술․역사가 어우러진 거대한 산이다.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위치를 달리하며 살펴보고 또 경험해야 한다. 효율적 전승과 원활한 소통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는 이유다.
Youngsanjae is the most prominent buddhist ceremony of Korean intangible heritage #50 and recorded as Unesco world heritage in 2009. So we have to gather the wisdom for efficient transmission and communication methods. There is a problem to make 3days performance in 1day content. The problem is that some high level performing parts and non popular parts are skipped and evaded. To solve this problem, it is suggested that performance types should be rearranged to 2-3 types and should be performed step by step. Concerned about smooth communication with audience, most audience said that it is boring or difficult to understand what it means. so we need a new concept of pamphlet. we avoid the existing pamphlet with 4 languages and have to make it with many languages along to many countries. we have to supplement the pamphlet with academic information to raise up its academic value and give serial numbers to performing items to communicate smoothly. We also add entertaining factors to Youngsanjae as far as it doesn't damage the original form. Merely nominal role of Yunaso should be rebuilt to communicate smoothly and raise up religious mystique. Youngsanjae is the great mountain mingled with religious dogma, idea, culture, arts and history. So we have to watch and experience it in various ways to catch its profound meaning. We try to do our best to get the efficient transmission method and the smooth communication skill of Youngsanj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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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조(共命鳥)에 대한 관념의 기원과 변천

김성옥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29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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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조는 산스트리트어 jīvajīvaka를 번역한 새의 이름이다. 이 새는 히말라야 설산 지역에 서식하는 목소리가 아름다운 새로 알려져 있다. 󰡔아미타경󰡕을 비롯한 많은 불교경전에서는 극락정토에 있는 여러 가지 진귀한 새들의 이름을 나열할 때 공명조도 함께 언급된다. 공명조에 대해서는 또한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갖고 있다는 전설이 따른다. 󰡔잡보장경󰡕이나 󰡔불본행집경󰡕 속에 나타나는 본생담에서 공명조에 대한 설화를 찾아볼 수 있다. 공명조 설화는 인도의 서북부 지역에서 불교경전 속에 편입된 이후 경전의 번역과 석굴벽화의 조형을 매개로 하여 동아시아에 전파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공명조 설화는 실크로드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유포되었던 대표적인 불교설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극락이나 설산 기슭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새, 하지만 중국에는 살지 않는, 이 새에 대하여 중국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공명조는 새의 몸에 인간의 머리를 하고 있는 가루빈가와 함께 소개되면서, 어느새 새의 머리가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한 형상으로 혼용되기 시작한다. 또한 세월이 지남에 따라 ‘가루빈가는 곧 공명조’라는 혼동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인도나 서역에 존재하는 특이한 동식물이 중국에 전래되면서 생겨나는 문화적 변형의 한 가지 사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후대에 저술된 󰡔아미타경󰡕의 주석 가운데에는 이러한 혼용은 잘못이며, 가루빈가와 공명조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This paper is about the Gongmyungjo(共命鳥) and its story. Gongmyungjo is a translation of jīvajīvaka. It is known a mythological bird which lives in snow mountains of Himalayas. The bird is appeared in many Buddhist scriptures including Sukhāvatīvyūha(阿彌陀經). It is a translated word of jīvajīvaka or jīvaṃjīva by Kumarajīva in 402. According to Sukhāvatīvyūha, jīvajīvaka lives in the Buddhist paradise, namely the land of happiness(sukhāvatī, 極樂淨土), together with swans, peacocks, parrots, shrikes and kalaviṅka. This bird is also characterized in the Buddhist scriptures by the appearance with two heads. We can find the jīvajīvaka story in Saṃyuktaratnapiṭakasūtra(雜寶藏經) and Abhiniṣkramaṇasūtra(佛本行集經). It seems that the story of jīvajīvaka was transferred into the Buddhist scriptures in the area of northwest India. Through the translation of scriptures and the moulding of cave paintings, the ideas on jīvajīvaka was spread around the Silkroad. It can be said that the story of jīvajīvaka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Buddhist tales. Well, how did the Chinese understand the jīvajīvaka, a bird does not live in China? The mythological bird jīvajīvaka was introduced together with kalaviṅka. Kalaviṅka is an imaginary animal, its upper is a human and the rest is a bird. Jīvajīvaka and kalaviṅka are mentioned together in the names of rare birds live in sukhāvatī. And in many Buddhist paintings they are classified into one group, dancing around the Buddha and flying in the sky. They were accepted with a pair in China, so jīvajīvaka became to understand with two heads of human, not bird. In accordance with the years went by, it was confused that kalaviṅka is jīvajīvaka. This is a case of cultural transformation, when the rare animals or plants was introduced into another country. It shows one case of many confusions and misunderstandings in China, when accept the unfamiliar things from India and the west areas. In the commentaries of Sukhāvatīvyūha, we can find the statements that kalaviṅka is not jīvajīvaka, and this confusion is a mis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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荷澤神會의 修證論에 관한 고찰

김경숙(지은)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3권 2015.06 pp.319-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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荷澤神會(684-758)는 북종의 漸修적이며 習禪적인 선법을 비판하고 單刀直入 直了見性하는 頓悟禪만이 달마 이후의 정법이라고 하였다. 그는 모든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음을 자각함과 동시에 즉각적 구현을 강조하는 頓悟見性禪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修로부터 悟로 점차적으로 수행해가는 기존의 수행법에 대한 급격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頓悟禪의 근본사상인 無念․無住․定慧等學을 논하고 있다. 무념과 무주는 인위적으로 깨달음 등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 번뇌심이 없는 마음이지만 그 마음에는 항상 공적한 성품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定慧等學은 무념과 무주의 실현을 위한 수행법으로서 선정과 지혜는 등과 등불의 관계처럼 서로 떨어 질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논하고 있다. 그리고 신회의 修證論에서는 그의 수행법이 頓悟漸修인가? 頓悟頓修인가? 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신해의 수증론에는 “단박에 불성을 보고 점차로 인연을 닦는다(頓見佛性 漸修因緣)”라고 하는 등 몇 곳에서 점수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면 신회의 수증론은 頓悟頓修로 보아야 할 것이라는 논지이다.
Heze Shenhui (荷澤神會 684-758) criticized teaching the gradual and habitual way to enlightenment as the Northern Chan School did. Instead he insisted that direct sudden enlightenment is the only true method, as Bodhidharma taught. He believed in ‘directly seeing nature through sudden enlightenment (頓悟見性禪)’ in which one sees one's own originally enlightened mind and immediately beholds the Buddha-nature within oneself. This assertion shows the drastic change in the teaching of gradual practice at the that time, emphasizing ‘sudden awakening or realization rather than gradual 'practice’. Here he contended the fundamental thoughts of free from false thought (無念)․notion of non-abiding (無住)․equal theory of meditation and wisdom (定慧等學). The absence of false thought and notion of non-abiding are the state of mind without the afflictions that does not seek the artificial enlightenment. However, the mind of emptiness and tranquility always function inside. The equal theory of meditation and wisdom, as a mean of practicing method to realize the absence of false thought and notion of non-abiding, explains that the inseparable relationship between meditation and wisdom. In addition, Heze Shenhui discussed in his theory of practice and realization whether his practice method is sudden enlightenment and gradual practice or sudden enlightenment and sudden practice. In his theory of practice and realization, he mentioned that “sudden realization of Buddha nature and gradual practice of causal situation (頓見佛性 漸修因緣).” Even though there are a couple of cases of gradual aspects in his theory, his theory of practice and realization, as a whole, might be classified as sudden enlightenment and sudden practice 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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