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Home

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ISSN
    1229-1846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8~2018
  • 주제분류
    인문학 > 불교학
  • 십진분류
    KDC 220.1 DDC 294
제21권 (10건)
No
1

刊行辭

신규탁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1권 2014.06 pp.1-2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2

元曉의 彌勒淨土 上生의 信行觀 고찰 - 『彌勒上生經宗要』를 중심으로-

박성춘(여연)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1권 2014.06 pp.9-3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상생경』은 미륵육부경 중에 현존하는 유일한 상생신앙의 경전으로, 沮渠京聲이 운강석굴 축조시기인 460년경에 한역하 였다. 경전에서는 미륵이 염부제에 하생하기 전까지 도솔천에서 머무르게 되는 과정과 그곳에서 천인들에게 설법하는 모습 등 천상에서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위와 같은 내용으로 미륵보살의 도솔천 수행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 『상생경』에서는 미륵신앙 수행자가 도솔천에 상생하기 위해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聞名의 功德’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수행방법으로 ‘觀行 ’을 제시하고 있다. 원효는 이를 그의 『미륵상생경종요』에서 『상생경』이 『하생경』을 전제하고 설해진 것처럼, 3부경 전체의 이해 위에 논 의를 전개하였다. 그는 미륵의 이름을 듣기만 해도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다는 『상생경』에 의거하여, 二觀三行四果의 관행 인과를 무상도의 불퇴전 지위에서 노니는 보살도로 설명하였다. 그 과정에서 특히 원효는 제2행의 聞名으로부터 미륵의 중 생구제 원력의 덕을 강조하였다. 제2행의 문명이 “자씨 이름을 듣는다. 이 이름이 나타낸 덕을 신앙한다.”라고 하듯이, 원효 의 미륵상생신앙은 미륵의 이름이 나타내는 덕을 신앙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도솔천상생을 위한 3行과 依·正報 등의 2觀 의 결과로 무상도의 불퇴전지위에 오르게 됨을 설명하였다. 또한 원효는 『미륵상생경종요』에서 무상도의 불퇴전지위에 오르는 수행자를 삼품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상품인은 미륵 을 바로 친견할 수 있지만, 중품, 하품인은 도솔왕생을 위하여 참회, 십선, 관행삼매 등의 수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과정에 서 依報의 장엄과 正報의 수승함에 머무르지 말 것과 그렇다고 이것이 虛妄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 元曉는 다시 ‘報應會通’의 論理에 입각하여 미륵상생신앙의 수행도가 難行道가 아닌 곧 易行道임을 설명하였다. 원효가 이와 같이 보응회통의 논리로 미륵관법의 이행도를 중생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교리의 난해함과 실천수행 등의 어려 움으로 인하여 불교가 중생들에게 쉽게 정착할 수 없음을 직시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이로부터 원효는 중생들에게 현재 살고 있는 그곳에서의 중생구원을 말하고 있는 미륵상생신앙을 가장 이상적인 가르침으로 보고, 그는 일반 중생들의 손 에 닿을 수 없는 타방정토의 圓滿無缺한 이상세계가 아닌 현토에서 실현될 수 있는 미륵정토의 신행으로 정착하게 하였다.
The Maitreya urdhva-janma sutra is the only sutra about the ascension of Buddhists to Tusita Heaven of Maitreya Bodhisattva’s Pure Land among six scriptures dealing with Maitreya Bodhisattva. Jǔ qú jīng shēng(沮渠京聲) translated the sutra into Chinese around 460 CE while Yungang Stone Caves were being constructed. The scripture describes how Shakyamuni Buddha recognized a common sentient being as Maitreya Bodhisattva in front of his disciples and other beings and the bodhisattva ascended to the Tusita Heaven. It also explains how Maitreya Bodhisattva practiced for himself and what he taught to heavenly beings while at the heaven before he descends to this mundane Jambudvipa Continent in the future. It emphasizes the benefits for practitioners to obtain through listening to the name of Maitreya Bodhisattva and also the practice for them to visualize the bodhisattva’s image. Wonhyo developed his argument in his The Commentary of the Maitreya urdhva-janma sutra based on his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 three scriptures on Maitreya Bodhisattva. Based on the The Maitreya urdhva-janma sutra in which practitioners are able to ascend to the Tusita Heaven of Maitreya Bodhisattva’s Pure Land even if they just listen to the bodhisattva’s name, he expounded two visualizations, three practices, and four effects as practices that the bodhisattva who obtained the highest stage of practice (the non-backsliding stage of practice) should adopt. He referred to the second stage of practice obtained by listening to the name of Maitreya Bodhisattva and emphasized the benefits that Maitreya Bodhisattva obtains to save sentient beings. Just as the scripture explains the second stage from a sentence, “Practitioners listen to the name of Maitreya Bodhisattva and entrust themselves to the virtues manifested through the practice of listening,” Wonhyo argued that practitioners are able to ascend to the highest stage of practice (non-backsliding stage) through three practices and two visualizations of subject and object. Wonhyo categorized the practitioners who arrived in the highest stage into three sub-stages, the higher stage, the intermediate stage, and the lower stage. While the practitioners of the higher stage of the highest stage are able to immediately see Maitreya Bodhisattva, those of the lower two stages of the highest stage are required to practice confession, ten wholesome actions, and visualization concentration. He guided Buddhists to remove difficult doctrines and practices in various scriptures and adopt the easy way of doctrine and practice in the Scripture on Maitreya Bodhisattva’s Ascension to Tusita Heaven.

6,700원

3

원효의 미륵정토사상에 담긴 화쟁의 정신 - 『미륵상생경종요』를 중심으로 -

김영일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1권 2014.06 pp.37-69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미륵사상은 멀리 인도에서 성립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해졌다. 원효는 이 사상이 신라의 소박한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시 지를 주고 있음을 알고, 󰡔미륵상생경종요󰡕를 지어서 미륵사상과 신앙의 참뜻을 널리 알렸다. 그는 이 책에서 미륵사상을 논함에 있어서, ‘화쟁’이라고 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해 나아갔는데, 그 내용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간추 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륵계 경전’에 관해서는 󰡔미륵상생경󰡕이 대승경인지 여부와 미륵의 모습이과보신인지 여부를 논하고 있다. 󰡔미륵 상생경󰡕은 대승경이라고 단정하는 그의 태도에서는, 그의 화쟁론이 단순한 화해가 아니라 진리의 선언에 그 참뜻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미륵의 모습이 과보신인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양설 사이에 공방하는 모습이 들어감으로써 논의가 보다 실감 있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둘째, ‘미륵의 탄생’에 관해서는, 미륵이 태어난 장소와 시간과 대하여 논하고 있다. 장소에 관한 논쟁에서는 여러 방법을 동 원하고 2단계에 걸쳐서 회통함으로써, 최선을 다해 제설을 화해시키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시간에 대한 논의에서는 확신 에 찬 견해를 바탕으로 회통을 시도하는데, 시종일관 논쟁당사자의 마음에 깊이 자리한 무지와 오해를 바로 잡아주고자 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셋째, ‘미륵의 수행’에 관해서는, 미륵이 발심한 때와 성불한 때를 석가와 관련하여 논한다. 발심에 관한 논의에서는 ‘확정된 마음’과 ‘확정되지 아니한 마음’이라는 2개의 기준을 제시하여 회통하였는데, 이는 다른 저서에 종종 등장하는 방식이다. 또 한, 성불에 관한 논의에서는 ‘진실로 많은 행위로 … 드리워 보인다.’라는 매우 수준 높은 판단기준을 제시하여, 우리들이 경 전을 바로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넷째, ‘미륵의 교화’와 관해서는, 부처의 존재와 미륵불이 개최한 법회의 횟수에 대해서 논한다. 부처에 관한 논의에서는 ‘경 론의 내용은 근기를 따라 보고 듣는 바가 다르다’라고 하여, 자신의 경론관을 알려준다. 또한, 법회에 관한 논의에서는 양설 은 일정 부분을 주장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마치 맹인들이 코끼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각설이 일면의 진실을 가지고 있 기에 회통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Wonhyo knew that the thought of pure land of Meitreya could give the message of hope to the people. So, he let the people know the real meaning of the thought through writing the Essentials of the Ascent of Maitreya Sutra. In the book, we can taste his spirit of harmonization, one of his distinct theory. Firstly, on the scriptures of Meitreya, he wants to show the truthful facts to the persons concerned by declaring that only one theory is right. And we can feel that the whole discussing process of harmonization is real by inserting the debating part into the process. Secondly, on the birth of Meitreya, you can see that the opposing three theories are harmonized with many methods and steps. And he tries to disappear a lot of ignorance or misconception in the mind of persons concerned with the earnest efforts. Thirdly, on the cultivation of Meitreya, he solves the case on the basis of 2 criteria of 'the determined mind' and 'the not-determined mind'. And they can infer that the Buddhist scripture could be understood correctly on the basis of the very difficult sentence at the solving part. Lastly, on the teaching of Meitreya, he shows the fundamental opinion on the Buddhist scriptures that every scriptures could be different according to the hearers. And one can know that the questions can be solved although the assertion of theory includes the only small part.

7,500원

4

靜觀一禪의 생애와 정토사상 연구

한태식(보광)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1권 2014.06 pp.71-113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靜觀一禪(1533-1608)의 생애와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淸虛休靜의 上足弟子로 靜觀派를 형성하였다. 그의 생애 에서 자세한 행장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속리산과 덕유산에서 수행하였고, 󰡔法華經󰡕을 강독한 법화행자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연로함과 병을 이유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승려로서의 기본에 어긋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승려가 전쟁이라고 하여 속복을 입고 무기를 손에 들고 살생의 현 장에 참여하는 것은 불법에 벗어난 일로 보았다. 그의 師弟인 四溟惟政에게도 하루 속히 산중으로 환귀본처하여 승려의 본연 의 자세로 돌아올 것을 간곡히 권유하고 있다. 그는 시와 문장에 능하였으며, 교학에도 밝았던 대문장가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의 문장과 시에 대해서는 몇 편의 연구논 문이 있으나 그의 사상에 대해서 조명한 글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의 사상을 정리한다면, 詩文에 밝으면서, 선수행을 중심한 禪師이면서 정토신앙을 권장한 정토가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선사상은 看話禪을 주로 하면서도 불성사상과 自性淸淨論에 기 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것은 󰡔圓覺經󰡕과 󰡔涅槃經󰡕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는 화두를 百丈野弧話를 주로 하였으며, 다른 사람에게도 권장하였다. 이러한 화두를 참구하다보니 百丈이 중시하였던 󰡔열반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 진다. 다음으로 정토관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선사들이 중시하였던 自性彌陀 唯心淨土보다 指方立相的인 서방정토와 칭명염불을 중시하였다. 그는 박거사의 법명을 지워주면서 보낸 題號文에서 서방정토 왕생극락을 발원케 하고 있다. 즉 타력적인 정토신 앙과 염불수행을 중시하였다. 한편 그는 부모나 스승을 위한 薦度齋 를 올리면서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하고 있다. 영가들을 위하여 공덕을 짓고, 불사 를 하면서 그로 인해 왕생극락하기를 발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나라를 위해 전쟁으로 죽어간 영가와 각종 비명횡사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영혼들을 달래는 水陸齋를 베풀었다. 여 기서는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자세히 언급하면서 그들의 왕생을 발원하고 있다. 타력신앙의 교리적 근거는 정토삼부경을 중 시하였으며, 그의 교학적 기반은 󰡔法華經󰡕에 두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수륙재의 절차와 장엄 진행상황 읽은 경전 등을 기록 하므로 앞으로 불교의례 연구에 크게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즉 정간일선은 자력수행인 선수행과 타력신앙인 정토신앙을 겸수하면서 불교교단과 전통적인 수행을 지켜온 선지식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I looked into Jŏnggwan Ilsŏn's(靜觀一禪)(1533-1608) lifetime and thoughts. As the most beloved discipline of 淸虛休靜, he made 靜觀派, Jŏnggwan Sect. There has not been known a lot for the detailed past in his lifetime, but he practiced in the Mt. Sokri and Dŏkyu, and he can be considered as Byeophwa practitioner who read ‘The lotus sutra’. Even though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occurred, he wasn't participated in the war for the reasons of old and disease. The main reason why he wasn't participated in the war was because it got off the basis as a monk. He regarded that monks wore the clothing lay people wore, held a weapon on a hand, and were participated in the place to kill human beings as the thing gotten off the Buddhist law. Also to his brother in Buddhist law, 四溟惟政, 靜觀一禪 highly suggested him to come back his temple in the mountain as soon as possible and the original place as a monk. He was talented in poetry and writing, and also should be evaluated as a great writer who was brilliant in the study of doctrine. There were some research dissertations for writing and poetry, but the writing giving a light on his thoughts was just a start. When it comes to arranging his thoughts, he was brilliant to poetry, a Seon master who focused on the Seon practice, and a Jeongto practitioner who recommended the Jeongto faith. His idea of Seon was mainly focused on 看話 禪 and based on the idea of Bulseong and 自性淸淨論. It seems like influences of ‘The sutra of perfect enlightenment’ and ‘The sutra of Nirvana’. He frequently mentioned 百丈 野弧話 as a topic, and also recommended it to others. Investigating such a topic, it seemed like that it was influenced by ‘the sutra of Nirvana’ which Beakjang focused on. For the next, the point of view for Jeongto was generally regarded as the importance for Western Jeongto and Chingmyeong prayer which was 指方立相的, rather than 自性彌陀 唯心淨土 which our ancestors highly focused on. He let Mr. Park pray to be born into Western Jeongto in 題號文 which was sent giving him a dharma name. That is, he focused on Jeongto faith and Buddhist prayer practice by outside help. On the other hand, he devoted 薦度齋 for his parents and teachers, and prayed for deads to be born into heaven. Doing virtuous deeds, and giving helps to temple prospered, He prayed for deads to be born into heaven based on those actions. Above this, he devoted 水陸齋 to soothe the spirits who were dead in wars for the nation and the ghosts who were reluctantly dead and met unnatural death. Here, it mentioned a very horrible situation of the time in detail, and prayed their rebirth into heaven. The doctrinal basis of faith by outside help was from the fact that it focused on Jeongto Sambugyeong, it seems that his doctrinal basis was on ‘the lotus sutra’. Especially there were some records about the process and the progress of vyuha work of the water and land ceremony, the read sutras etc, so it would be helpful a lot to the research of Buddhist rituals for a head of time. That is, 靜觀一禪 should be evaluated as the chief abbot who had kept the Buddhist order and traditional practice doing simultaneously Seon practice by oneself and Jeongto faith by outside help.

9,000원

5

염불이 사상체질에 따라 심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 - 우울, 분노, 불안을 중심으로 -

배효상, 박성식, 김병수, 양승규, 이필원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1권 2014.06 pp.115-146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구조화 될수록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향성이 높아진다. 공황장애, 우울증, 조울증과 같 은 마음에서 생기는 질병들은 최근에 들어와서 개인의 질병을 넘어서 사회의 질병으로 여겨질 정도로 그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다. 명상은 이렇게 발생되는 마음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이며, 그 중에서도 염불 수행을 통한 명상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적어 바쁜 현대인들에게 유용한 수행방법이다. 본 연구에서는 염불 수행이 우울, 분노, 불안과 같은 심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과 체질에 따라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 지 를 확인하기 위하여, 천태종 산하단체 수련회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련회 시작 전에 사상체질분류검사를 통하여 체 질진단을 하였고, 우울 척도(BDI), 분노 척도(STAXI), 불안 척도(STAI) 설문지를 수련회 전 후에 작성케 하여 효과를 검증하였 다. 그 결과 우울, 불안, 분노가 모두 염불 수행 후에 감소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염불 수행은 우울과 불안의 경향성을 더 효과적으로 감소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불안 요인에 있어서는 소음인이 타 체질보다 효과적으로 감소되었고, 분노를 통제하려는 경향성에서 소음인이 더 증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태음인의 경우에는 상태불안 요인을 제외하고 염불 수 행 전 후에 차이가 나지 않아 염불 수행후의 변화가 가장 적게 나타났다.
When the society becomes more structured and complicated, people tend to complain of psychology pain. Panic disorder, depression, bipolar disorder such as mind disease resulting from psychology pain have recently come to be seen as beyond the community, so that the spread of the disease is very fast. Meditation is a method of governing effectively the problem of mind that you are experiencing and the Buddhist prayer training is a useful method to busy modern people. In this study, we researched the effect of the Buddhist prayer training to Depression, Anxiety and Anger. And the tendency of the effect depending on Sasang Constitution. Before the training session begins, people who took a part in the training session of the Tendai sect, was diagnosed with the Sasang constitution by Sasang constitutional questionnaire. In addition, we researched the effect of mind change by the Depression scale (BDI), Anger scale (STAXI) and the Anxiety Scale (STAI) questionnaire. As a result, We can confirm that Depression, Anxiety, Anger scale has decreased in Buddhist prayer training. In addition, the Buddhist prayer training has reduced more effectively the tendency of anxiety and depressive. In the anxiety factor, We found that Soeumin tends to reduce more effectively than other constitution and trying to control the anger has increased in particular. On the other hand, in the case of Taeumein, except the factors of state anxiety, the effect of the Buddhist prayer training does not showed.

7,300원

6

일요법회 의례 한글화 시론

신규탁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1권 2014.06 pp.147-193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종교에 있어서 의례의 중요성은 매우 중요하다. 불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불교의 역사 속에서 승려들은 이 점을 중요하게 인식하여 의례를 정비했고, 그것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한문으로 각종 문서를 작성하던 시대가 끝나고, 한글 시대가 시작되면서 한국 불교계의 의례는 많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첫째로, 의례와 음악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 그렇다고 전통을 무시하고 새롭게 한글로 의례문을 제작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둘째로, 전통적인 의례에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의례가 매우 세련되게 정비되어 있지만, 신도 대중들을 위한 ‘설법’ 의례는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신도 대중을 위한 ‘설법’도 필요하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전통을 고려하면서 한글 시대에 부합하는 의례의 제작을 실험적으로 시도했다. 그리하여 ‘공양’과 ‘법회’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의례를 모색했다. 필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삼보통청(三寶通請)’을 기본으로 삼고, ‘설법’의 의례를 거기에 첨가하여, 이 모두를 한글화로 구축해보았다.
The importance of rituals is tremendous in religion, and Buddhism is no exception. Throughout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Buddhist monks who recognized the significance of rituals have adjusted and maintained formalities of Buddhist rituals, which have been maintained up to this day. However, as Hangul has become the common orthography departing from the old custom of using Chinese characters in documents, Korean Buddhism has confronted various problems in its rituals. First of all, since rituals are closely related to music, simply translating Chinese characters into Korean cannot solve the problem. Still, composing new ritual phrases in Korean while discarding the tradition cannot offer a solution either. Secondly, in traditional ceremonies, the ritual of “Offering to Buddha” is carefully organized whereas the practice of “Buddhist Preaching” for the public was not considered a part of the ceremony. Yet, in the Buddhist culture of today’s society, the necessity for “Buddhist Preaching” to the public has arisen. In this essay, I attempt to suggest reforms and rearrangements in rituals that can accord with the needs of this era of Hangul more effectively, while still respecting tradition – a ritual in which both “Offering to Buddha” and “Buddhist Preaching” can be served. Adopting the “Calling on the Three Treasures,” Sambotongcheong” as the basis of the service, the ritual of “Buddhist Preaching” is added, all translated and revised in Korean.

9,600원

7

한국 탑돌이의 역사와 현황

한상길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1권 2014.06 pp.195-230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우리나라는 불교의 수용과 함께 탑을 조성하여 온 나라에 불국토의 장엄을 이룩하였다. 신라에는 “절과 절이 별처럼 들어서 고, 탑과 탑이 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듯”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풍수지리사상과 비보설에 따라 절은 물론이고 산꼭대기, 동네 어귀 할 것 없이 많은 탑이 들어섰다. 탑 자체가 부처님이었고, 불교였다. 불상의 조성과 함께 신앙의 중심이 옮겨갔으나 탑 은 여전히 귀의대상이었고, 가람을 이루는 필수 요소였다. 탑신앙의 대표적인 의례가 탑돌이이다. 탑돌이는 특별한 의례 절차나 의식구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합장하거나 등을 들 고, 때로는 발원문을 독송하며 탑을 도는 행위만으로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어렵지 않은 의례이다.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대중적인 기원신앙으로 성행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특히 신분제 사회에서 탑돌이는 빈천한 이들이 쉽게 행할 수 있는 기도였고, 의지처였다. 그런데 남아 있는 탑돌이 사례는 매우 적다. 불교가 민족의 종교로 정착하고, 민속화하면서 탑돌 이는 특별한 의례이기보다는 일상의례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라 보인다. 최근 들어 다양한 불교문화와 의례에 대한 연구가 시 도되고 있지만 탑돌이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에 본고는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불 교사의 전개과정에 나타나는 탑돌이의 성격과 특징을 고찰하여 탑돌이 문화의 복원과 재현에 관한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탑돌이는 주로 개인이나 소수가 아닌 집단적, 공동체적 의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대중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고려시대 많 은 사람이 운집한 각종 법회와 도량에서 탑돌이가 성행한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조선시대 원각사의 탑돌이도 연등회의 일환으로 진행되면서 많은 대중이 참여한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이러한 공동체적 성격이 바로 우리나라 탑돌이의 중요한 특 성이다. 조선시대 이후 등장하는 여러 탑돌이 노래 역시 이러한 성격을 반영한다. 노래는 혼자가 아니라 대중이 함께 하는 것 이므로 공동체 의식과 일체감을 고조시킨다. 현대 들어 법주사를 시작으로 월정사, 중원탑, 해인사, 만복사, 원각사지, 통도사, 불국사 등에서 탑돌이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들 탑돌이는 모두 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거나 지역 축제의 한 프로그램이 다. 탑돌이가 지닌 공동체적 성격이 축제라는 의미와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인 원형성이나 불교의례로서 의 신성성이 결여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우리 문화의 현재를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문화의 원형을 중시해야 하지만, 문 화는 고정불변하지 않는다. 대중의 생각과 행위가 다수의 공감을 받으며 보편화될 때, 비로소 문화가 된다. 전통에 기반을 둔 탑돌이의 변화와 창조적 계승을 기대한다.
Walking in a circle around a tap(pagoda) while meditating, chanting, prostrating and/or performing gido(ritual supplication prayer), usually while performing hapjang(hand-gesture of palms together over the heart), as a devotional practice. In Korea tapdoli(탑돌이) is generally done in the clockwise direction. Such circumambulation, a common practice in many religions, may be performed as part of a formal ceremony or as a private practice by one or more members of that temple’s seungga(sangha), by monks, laity or visitors. To overcome the pain and difficulty of the real popular thriving faith could origin in the background. Traditional society, the low-class status in society Tapdoli was easily doable people were praying and hopes. However, very few remaining examples. Because Buddhism was established as the religion of the nation and becomed folk, it was daily ritual rather than a special ritual. In recent years, research on a variety of Buddhist culture and rituals are being tried, but did not receive any attention tapdoli cause a little as well. Therefore, in this study, from ancient times to the present day appear in the process of the Korea Buddhist history of tapdoli to examine the culture of it become a help to restore and reproduceWhen Sakyamuni Buddha was alive, his followers paid him the greatest respect by walking around him while keeping him on their right(clockwise) three times. The Samguk Yusa(三國遺事) states that tapdoli was already a strong folk-religious tradition in the Silla Kingdom(57 BCE-668 CE), especially performed from the 8th to 15th day of the Second Moon by the Lunar Calendar and on Butcheo-nim Osin-nal(Birthday of Sakyamuni Buddha), now a national holiday. This ancient custom has continued for the rest of history, and is still widely practiced today; Beopju-sa, Woljeong-sa, Haein -sa, Tongdo-sa, regarded as a primary reverential and transformational behavior.

7,900원

8

五停心觀과 天台의 化法四敎

정광균(법상)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1권 2014.06 pp.231-272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불교는 본래 지혜와 자비를 위주로 수행을 통해서 생사의 강을 건너 해탈의 열반에 도달해서 성불을 원만하게 성취한다고 한 다. 그러나 여기에 도달하는 방편은 다양해서 어느 하나만을 선점하여 성취한다는 것은 곡해의 소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다 양한 선정을 통해서 지혜를 돕는 관조를 빌려서 대자대비를 성취한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이른바 두 가지 요긴한 수행법인 數息觀과 不淨觀이 있다. 나아가 보다 근원적인 방법의 對治悉檀인 五停心觀으로 선정을 돕는 수행문을 삼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들이 비록 선정을 닦는 수행문이지만, 또한 인간의 갖가지 병통에 대치하여 심성을 치료하는 방편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번뇌가 다른 문제에 첨예하게 대치해서 설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정심관은 선정의 본격 적인 수행방편인 四念處觀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각자의 개성에 맞는 번뇌에 對治悉檀의 가르침이 하나의 몸과 마음에 여 러 가지 측면으로 설정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천태의 교설에서는 五停心觀의 정의적 내용들을 제외하고 있으며, 행자들이 이를 채택할 수 있도록 하여 각 계위에 따라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五停心觀의 다양한 의미들을 드러냈다. 見道 이전, 즉 본격적인 수행에 들기 이전의 방편인 五停心觀을 원용하여 천태의 化法四敎에 배치하되 본체가 각각 달라진다는 관점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바로 이러 한 관점에 유의하여 五停心觀이 化法四敎에 의해 각각 달라지는 관점들을 고찰해 보려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교상을 각 四敎 에 의거하여 의미들을 파악한다는 것은 중요한 치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드리워진 스트레스성 질환들을 치유하는 법에 대치(對治)하는 방안들 역시 여기에 제시되어 있다. 때문 에 중국의 교상판석이 불교발달 과정에서 이루어진 현상이지만, 인간의 병통 치유에 대하여 四悉檀으로 검토하여 논의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천태의 화법사교에 내재한 오정심관의 효용성과 그 가치에 대해서 논할 것이다. 이는 곧 오정심관에 대하여 천태 화법사교의의 입장에서 분석할 것이다.
Buddhism is essentially carried out mainly through the wisdom and mercy of life and death to cross the river to reach the nirvana of the Buddha said to achieve enlightenment and smoothly. However, there are a variety of means to reach an achievement which means that only one occupation to be in possession of a perversion. In Buddhism, wisdom is important, because it is necessary for attaining liberation and buddhahood. Concentration supplements wisdom, and can be further subdivided into the “two ambrosias” (meditation on breathing and on the charnel yard) or the five types of calming meditation. Although these are considered to fall under the category of “concentration,” these can also be seen as expedients, each counteracting different problems. In Tiantai, the five types of calming meditation are used for the attainment of the various Tiantai stages, and include a wide variety of content. Similarly, as the five types are taken as preparatory expedients to the path of seeing, they would have different contents for each of the four types of teaching. This paper discusses the five types of calming meditation in terms of each of the four types of teaching. And the modern way to heal the disease of the heart to respond to China because the measures are presented here, although the bite is non-historical win as flagstone. Made in the course of the development of Buddhism, but how the construction of the doctrine of human diseases present in each of the pain and examine whether it is considered to be worth discussion. In conclusion, It is about relationships that Tendai four Gyobeop in other words three warehouses Gyobeop, a common Gyobeop, special Gyobeop, complete Gyobeop and the five types of calming meditation.

8,800원

9

國立臺灣圖書館所藏敦煌文獻『成實論義記』卷中 (臺北131) について (一)

池田將則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1권 2014.06 pp.273-315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전반, 즉 유송 劉宋ㆍ남제 南齊ㆍ양 梁 또한 북위 北魏에서 구마라집 鳩摩羅什(344?-413?) 역ㆍ하리발마 訶梨跋摩(4세기) 조 造 『성실론 成實論』(412년 번역 완료)의 연구가 융성한 것은 중국 아비달마 사상사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이다. 이 시기의 불교자들이 경량부 經量部 계통이라고 알게 된 『성실론』의 강의와 연구에 정력을 기울여, 『성실론』과 잇달아서 중국에 전해진 설일체유부 說一切有部의 논서들(「비담 毘曇」)에 그다지 주의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번역 자인 구마라집 자신이 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학을 비판하기 위해 『성실론』을 번역한 것과, 『성실론』이 설하는 가명심멸 假名心滅ㆍ법심멸 法心滅ㆍ공심멸 空心滅이라는 삼심멸 三心滅의 수행도가 대승의 「공 空」을 깨닫기 위한 실천도로 수용된 것 등이 큰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 지적되어 있지만, 당시의 『성실론』연구의 실태는 아직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되는 것이 전 前 세기 초두에 돈황 및 투루판에서 출토한 8개의 『성실론』주석서의 단편의 존재이다. 이 단편들은 모두 중국 남북조 시기 『성실론』연구의 실태를 말하는 중요 자료이지만, 어느 문헌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연구는 실시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이 가운데의 1개인 국립 대만도서관 소장 『성실론의기 成實論義記』권중 卷中(대북 臺北 131)을 주제로 삼아, 서지 書誌적인 기본 정보를 정리한 뒤 이 문헌의 성립 지역ㆍ성립 연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한 다. 본고의 고찰 결과는 이하와 같다. 1. 본 문헌에는 찬술자 撰述者나 서사 書寫 연대 등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식어 識語 등은 없지만, 본 문헌이 주석 대상으로 드는 『성실론』 텍스트가 현행 판본 대장경 중의 『성실론』텍스트와 일치하지 않는 예들이 간간이 보이기 때문에, 본 문헌 은 현행 『성실론』텍스트가 유포되기 이전에 성립한 주석서인 것을 알 수 있다. 2. 본 문헌의 주석 내용 가운데 심소 心所의 유무에 대한 해석은 『열반경 涅槃經』 「가섭보살품 迦葉菩薩品」의 교설과 그에 대한 『대반열반경집해 大般涅槃經集解』에 수록된 승종 僧宗(438-496)을 비롯하는 남송 宋ㆍ제 齊ㆍ양 梁의 스승들의 해석을 바탕을 두고, 삼수 三受ㆍ삼고 三苦의 대응 관계에 대한 해석은 『대반열반경집해』에 수록된 승량 僧亮(도량 道亮, 400경-468경)ㆍ보량 寶亮(444-509)의 해석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본 문헌 가운데 한 곳만 「량공소 亮公疏」에 설명을 미루는 부분이 있는데 이 「량공소」는 승량(도량) 혹은 보량이 찬술한 『성실론소 成實論疏』(산일 散逸)를 기리킬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증거들에서 본 문헌은 보량과 거의 비슷한 시기, 즉 대강 양초 梁初 쯤에 남조에서 찬술됬다고 생각된다.
The study of Harivarman’s *Satyasiddhiśāstra (or *Tattvasidd- hiśāstra), translated by Kumārajīva (344?―413?; the translation was completed in CE 412), flourished in the first half of the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that is, the southern Song 宋, Qi 齊, and Linag 梁 dynasties, and also the Northern Wei 北魏 dynasty. This is one of the most remarkable features of the history of Abhidharma thought in China. During this time, many Buddhist scholars focused their energies on lecturing on and studying the *Satyasiddhi―which was considered to belong to the Sautrāntikas―and seldom turned their attention to the Abhidharma treatises belonging to the Sarvāstivādins (pitan 毘曇), which were brought to China at around the same time as the *Satyasiddhi. Recent scholars explain the great influence of the *Satyasiddhi in China as follows: the translator Kumārajīva himself translated the *Satyasiddhi into Chinese and distributed it in order to criticize the doctrine of the Sarvāstivādin; the *Satyasiddhi describes “extinguishing three kinds of mind [gradually]” 三心滅, that is, “extinguishing the mind [that follows] all conceptions (prajñapti)” 假名心滅, “extinguishing the mind [that recognizes the five skandhas as] real existence” 法心滅 and “extinguishing the mind [that recognizes the five skandhas as] non-existence” 空心滅, as a path of Buddhist practice, and Chinese Buddhists adopted it as the method to realize emptiness 空 (śūnyatā) as Mahāyāna Buddhist truth. However, although these explanations are partially correct, the actual way in which *Satyasiddhi was studied at that time is still not known. In this research situation,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eight remaining fragments of a commentary on the *Satyasiddhi, which were unearthed at Dunhuang and Turfan at the beginning of the preceding century. Each fragment is extremely valuable to scholars, as they show the actual way that *Satyasiddhi was studied in the period of the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but nobody has researched these fragments intensively up to this point. Therefore, in the present study, I will examine one of the fragments, the Chengshi lun yiji (the Commentary on the *Satyasiddhi) Fascicle 2 󰡔成實論義記󰡕卷中 (taibei 臺北 131), belonging to the National Taiwan Library, to arrange basic information about the text, and also to provide a concrete estimate of the place where the text was composed and the date of its completion. The findings of the study of this fragment are as follows:1. The text does not have a colophon. Therefore, the author and the date when the manuscript was copied are unknown. However, the text mentions phrases from the *Satyasiddhi as a subject of commentary, and the phrases is sometimes different from the current textual versions of the *Satyasiddhi which is contained in the block-printed Chinese Tripiṭakas. Therefore, we surmise that the text was completed before the text of the *Satyasiddhi that is currently in use and has been circulated. 2. In terms of the details of the textual commentary, (a) an interpretation of whether there are thought concomitants (caitta) is based on the teaching of a chapter of the Bodhisattva Kāśyapa in the Mahāyāna Mahāparinirvāṇasūtra and a commentary on it written by scholars of the southern Song, Qi, and Linag dynasties, including Sengzong 僧宗 (438―496), as described in the Daban niepan jing jijie 大般涅槃經集解 (the Selected Commentaries on the Mahāyāna Mahāparinirvāṇasūtra). (b) The interpret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ree kinds of sensation (vedanā) and three kinds of pain (duḥkha) is almost same as Sengliang 僧亮 (or Daoliang 道亮, ca. 400―468) and Baoliang’s 寶亮 (444―509) commentaries on the Mahāyāna Mahāparinirvāṇasūtra, as contained in the Daban niepan jing jijie. (c) The text directly refers to the “Liang gong shu” 亮公疏 (master Liang’s Commentary [on the *Satyasiddhi]) instead of omitting the full explanation only once. This “Liang gong shu” probably refers to the lost Chengshi lun shu 成實論疏 (the Commentary on the *Satyasiddhi) composed by Sengliang (Daoliang) or Baoliang. According to these facts, I conclude that the text was composed in the south, and the date of its completion was around the same time as Baoliang’s activity, roughly at the beginning of the Liang dynasty.

9,000원

10

北宋 “文字禅” 出现 背景探究

赵炳活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1권 2014.06 pp.317-352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중국 선종의 언어관은 크게 “자교오종”에서 “교외별전”으로, “불립문자”에서 “불리문자”로의 변화를 겪었다. 언어관의 변화는 선종내외부의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며, 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이뤄졌다. 이 과정에 등장한 “문자를 여의지 않는” 문자선에 대해, 흔히들 선종쇠퇴의 한 징표로 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자선사상은 “불립문자”가 시대상황에 맞게 변화 발전하는 과정에 나타난 필연적 결과물로 파악한다. 시대적 역사적 산물인 문자선은 언어에 대한 선종의 관점을 심화 발전시켰고, 선문(禪門)의 자질(資質)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논문은 “불립문자”에서 “불리문자”로 변화하게 된 원인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했다.
One can argue that the concept of language of Chinese Chan Buddhism has experienced a general process of “denial of denial.” This process is exhibited by the alterations from “thanks to the teachings get Buddhist Enlightenment” to “learning the Buddhist thoughts without literary assistance”, from “non reliance upon the written words” to “not independent from the written words”, and from Literary Chan to KanhuaChan and MozhaoChan. This considerably long process of modification could be understood as a product of combination of both internal and external causes of Chan Buddhism. Although usually there is a tendency to interpret the advent of the Literary Chan, that is “not independent from the written words”, as a mark of Chan Buddhism’s decline, this writer does not agree with this tendency and interpretation. The appearance of the Literary Chan is understood as an inevitable turning point caused by the persistence of the motto of Chan Buddhism, “not independent from the written word.” The ideology of the Literary Chan is a blossoming of the times: it intensively developed Chan’s viewpoint of language, and in fact played a dominant role in eliminating the detrimental consequences resulted by “non reliance upon the written word”, if anything. This thesis analyzes from different perspectives the reasons for transformation from “not independent from the written word” to “non reliance upon the written word.”

7,900원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