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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ISSN
    1229-1846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8~2018
  • 주제분류
    인문학 > 불교학
  • 십진분류
    KDC 220.1 DDC 294
제14권 (12건)
No
1

한국정토학회 학술세미나

한국정토학회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5-6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2

刊行辭

이도업 합장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7-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3

제불의 정토

이행구(도업)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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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불의 정토 세계」에 대하여 첫째, 정토란 무엇인가? 둘째, 제불의 정토에는 어떤 정토가 있는가? 셋째, 정토의 세계는 어떻게 건립되었고, 그 장엄은 어떻게 되어 있으며, 정토에의 실천 행은 무엇인가? 등에 관해 살펴보았다. 첫째, 佛敎敎學上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淨土란, 말 그대로 ‘깨끗한 國土’ 또는 ‘淸淨한 佛 國土’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淨土의 이름과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왜 그렇게 다양한 이름과 종류의 정토가 나타나게 되었을까? 그것은 佛陀觀의 전개상에서 보면, 佛身說에 一身說, 二身說, 三身說, 多身說 등이 나타나게 되었고, 多身佛 사상이 생겨나면서 불의 국토(정토)도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에 따라서 淨土의 이름과 종류 또한 다양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대승불교시대에 多佛 사상이 주장되면서 수많은 부처가 나타나지만 크게 역사상의 부처인 釋迦牟尼 佛과 진리의 부처인 비로자나 法身佛의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정토에도 他方淨土, 十方淨土, 唯心淨土 등 다양한 정토가 있지만 요약하면 마음 밖의 특정한 장소에 있다고 하는 他方淨土와 오직 마음에 있다고 하는 唯心淨土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타방정토는 신앙성에, 유심정토는 합리성에 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불국토인 정토는 대승보살의 이상세계다. 우리는 그 정토세계를 어떻게 건립할 수 있을까? 정토는 대승보살의 願과 行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 하겠다.‘고 하는 대승보살의 誓願과 실천 行과 功德 쌓음에 의해서 佛國淨土는 건립된다. 그러나 彌陀淨土에의 실천 행은 具足十念과 稱名念佛과 往生願이 강조되고 있음은 미타정토 사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Regarding [The pure land of Buddhas], we studied about following three things. First, what is pure land? Second, what kind of lands we have in the pure land of Buddhas? And third, how has it been built, how is it decorated and what is practice for the pure land? First, according to the education and academy of buddhism, the general meaning of 'Jungto' is literally, 'a pure territory' or 'a clean buddhist's territory'. However, there are various names and kinds of 'pure land' for this. What produced those many names and kinds of pure land? From the viewpoint of Buddhism development, the theory of multiple buddhas has come along after theory of one buddha, two buddhas, three buddhas of Budda theory and the idea of multiple buddha has led to the multiple lands of buddhas. And accordingly there came about a lot of names and kinds for the pure land. Second, although we've seen a lot of Buddhas from the theory of multiple Buddha in the age of Mahayana Buddhism, we can narrow down to two main Buddhas of a historical buddha, Sakyamuni and a buddha of truth, Vairocana. Like this, We can sum up to two main pure lands from various pure lands like Tabangjungto, shibangjungto, Eushimjungto, etc. One is Tabangjungto and this shows the idea that Sukhavati is in a certain place outside of buddhist's mind. The other is Eushimjungto, with which we believe Sukhavati is in buddhist's mind. Tabangjungto and Eushimjunto are characterized by religionism, rationality respectively. Third, the pure land of buddha's territory is an ideal world for Mahayana Bodhisattive. How can we establish that land? The pure land has been built by pray and practice of Mahayana Bodhisattiva. The buddhist Elysium has been built by the vow of Mahayana Bodhisattiva that he would look for enlightenment upward and save the people downward and his practice and his practicing good deed. But the practice of Mitajungto is characteristically emphasizing Kujokshipyeom (chanting ten buddha names), Chingmyungyeombul(reciting the prayer) and Wangsaengwon (wishing to reborn).

8,100원

4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존재에 관한 연구

한태식(보광), 강동균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4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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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서방정토극락세계와 아미타불의 존재와 장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러한 국토와 부처님은 법장비구의 출가와 발원에서 시작되었다. 그 동기는 이상국가의 건설과 지도자의 탄생을 갈망하는 마음이었다. 48대원의 발원과 오랜 수행으로 극락정토가 이루어졌고, 아미타불이 탄생하였다. 극락정토의 依報莊嚴은 대지와 寶樹와 法音樹, 蓮池, 功德水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세간적인 장엄은 물질적인 장엄이다. 극락정토는 물질적은 절대적으로 풍요로운 세계이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세계, 완전히 만족한 세계를 표방하고 있다. 그 근거로 각 경전에서 설하는 증거를 제시하여 실존함을 증명코자 하였다. 다음으로 아미타불과 성중들에 대한 正報莊嚴을 살펴보았다. 아미타불은 10겁전에 성불하였으며, 無量光, 無量壽의 부처님이다. 영원한 지혜광명의 부처님이고, 영원한 생명의 부처님인 것이다. 이에 대해 각 경전과 논서들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그 존재와 실재를 증명코자 하였다. 이는 정신적인 장엄이며, 안락의 세계이다. 마지막으로 指方立相的인 정토와 아미타불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밝혔다. 극락정토는 서방으로 십만억불토를 지난 곳에 분명히 존재한다고 정토계 경전에서는 설하고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중생들은 이에 대해 의혹심을 가지면서 믿고 있다. 이를 반신반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邊地에 胎生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특히 원효는 정토와 아미타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부처님의 五智를 의심하는 것이므로 邊地에 태어난다고 하엮다. 그러면서 그는 仰信, 應信, 伏信을 설하고 있다. 그 경지는 중생의 알음알이로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니므로 부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다. 오늘날 불자들 가운데에는 의혹중생이 많으며, 唯心淨土로 이해하여 관념론적인 정토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참으로 경계해야 할 신행방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We studied about the land of Sukhavati(the buddhist elysium, the pure land of Amitabha) in this paper. We also looked into the existence and decoration of Amitabha. This land of Buddha and Buddha have originated from the renunciation and pray of Dharmākara ( Amitabha's name before he became Buddha). The motive has come from his earning for establishment of an ideal land and the birth of a leader. Prays and long practicing of 48 temples have accomplished the land of Amitabha and made possible the birth of Amitabha. Euibojangeum (the decoration of land) is expressed with terms like, Bosu(a tree of treasures), Beopumsu(sounding tree), Yeonji(a lotus pond) and Gongduksu(water). The decoration for land is a physical decoration. The land of Amitabha is a land of an absolute abundance materially. It claims to a wantless and completely satisfied world. And this paper was aimed at proving the existence of it by showing evidences that every sutra preaches as grounds for that. And then we studied about Jungbojangeum (the decoration of Buddha's body) for Amitabha and Bodhisttvas in the pure land of Amitabha. Amitabha became a Buddha kalpa ten ago and he is a buddha for Mujooryang(ceaseless light) and Muryangsoo(ceaseless life). He is a buddha for eternal light of wisdom and eternal life. and for this, we also aimed at proving his actual being by providing every sutra and discussing theory. This is a mental decoration and the world of comfort. And finally we ascertained the existence of the land and Amitabha in terms of directional orientation. The Sukhavati sutra says Sukhavati surely exist about hundred thousands of a hundred million west. But the foolish people have a doubt about this even though they believe in it. We can say it 'half in doubt'. They are said to be born in the borderland. Especially Great Master Wonhyo said doubting about the existence of pure land and Amitabha is nothing less than a doubt about the five wisdom of Bhudda and the people who doubt it would be born in the borderland. Then he preaches Angsin (belief without doubt), Eungsin (belief with responding) and bosin(belief with respect). He also said the stage of belief cannot be obtained with acquaintances other than believing in Buddha's words. Today, we can see a lot of foolish people who believe with doubt and many people understand it as Eushimjungto(the idea that Sukhavati is in buddhist's mind) and interpret ideally. We cannot help but say this is a way of belief that we must be wary of.

10,500원

5

『화엄경』의 연화장세계

김천학, 신규탁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10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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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화엄경󰡕에서 설해진 정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연화장세계에 대해서 고찰하고 그 의미를 추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동안 󰡔화엄경󰡕의 중심사상은 유심, 무애, 보살도 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반면에 󰡔화엄경󰡕 정토의 상징인 연화장세계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화엄경󰡕의 정토에 대한 고찰은 향후 󰡔화엄경󰡕 사상에 대한 논의의 영역을 확대시키고, 󰡔화엄경󰡕이 설해진 궁극적 목적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연화장세계는 󰡔화엄경󰡕을 기반으로 하며 보살들만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보살들은 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무한한 방법을 통원하여 설법한다. 보살들이 보여주는 연화장세계는 광명으로 가득찬 광명 자체의 사바세계이다. 따라서 광명으로 인해 비로소 인식되는 세계이다. 󰡔화엄경󰡕의 주정토인 연화장세계는 타방 정토가 아니다. 보리수 하를 상징한 세계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에 터전을 두고 명상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부처세계를 상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This article purports to study the World of the Lotus Sanctuary among pure lands in the Avatamsaka Sutra, probing its significance. Heretofore, the central thought of the Avatamsaka Sutra has been understood to comprise mind only, no hindrance, and Bodhisattva way, while the World of the Lotus Sanctuary as the symbol of pure land in the Avatamsaka Sutra has been given no serious attention as a matter of fact. The investigation of the pure land in the Avatamsaka Sutra is essential in expanding the area of discussion about the thought of the Sutra in the future and understanding the ultimate purpose of the preaching of the Sutra for our practice. The World of the Lotus Sanctuary, based upon the Avatamsaka Sutra, is essentially the world recognized only by Bodhisattvas, while the Bodhisattvas in the world preach through limitlessly various types of method in order to save all the sentient beings. The World of the Lotus Sanctuary, shown by the Bodhisattvas, is a Saha-loka-dhatu full of light as the light itself. Therefore, this world is recognized at last through light. The World of the Lotus Sanctuary as the main pure land in the Avatamsaka Sutra is not a pure land segregated from our world but a world symbolized from the world under the Bodhi tree. The world is a symbolization of the Buddha world recognized through meditation on the basis of the Saha-loka-dhatu where we are living now.

6,900원

6

천문학에서 본 불교우주관

이시우, 심산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139-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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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천문학과 유사한 불법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유의 생주이멸과 성주괴공에 대한 이법을 다루면서 만유의 제법실상에 대한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고 또한 실제적 경험과 현실을 중시한다. 따라서 불교는 자연중심적인 사상에 따른 연기법과 중도원리에 근거한 만물의 본성적 우주관을 내포함으로 인간중심적인 여타 종교와 달리 객관적 진리를 중시하는 과학적인 우주적 종교이다. 그러므로 불법은 과학적 탐구 동기를 부여하는 우주철학이며 동시에 현실적인 과정철학이다.
The Buddha-dharma is closely related to the astronomy which is applied to the nature. And so the dharma deals with the natural laws of Seongjuimyeol(the four phases of form) and SeongjuGoigong for all things in the universe including human being, looking for the universal validity of Jebeop Silsang(the real state of all elements), and also it attaches much importance to practical experience and actuality. The Buddhism has the natural view of the universe which is based on Yeon-gi and Jungdo(The Middle Way or Path) according to the dominating thought for the nature, and so it is basically different from other religions based on the human intelligence. In this respect, the Buddhism is the scientific and universal religion, attaching great importance to the objective truth of all things. Therefor the Buddha-dharma can be thought as the philosophy of the universe giving rise to a motive for scientific investigation and the philosophy of actual process.

8,100원

7

法界의 의미 - 대승경론과 화엄교학을 중심으로 -

서해기(정엄)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1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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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界 즉 dharma dhātu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법(dharma)과 계(dhātu)가 합하여 만들어진 용어이다. 법계의 의미에 대하여 초기의 논서와 대승의 경논, 화엄경, 그리고 화엄학자들에 의해 완성된 四法界와 事事無碍法界의 궁극적인 표현으로 정의된 十玄門과 六相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법계는 󰡔잡아함경󰡕 등 초기 경전에서는 현상세계인 18界 내지는 온 우주를 의미한다. 초기 논서 󰡔대비바사론󰡕과 󰡔변중변론󰡕에서 법계는 부처님이 되는 법의 인(聖法因)이라고 정의한다. 󰡔대반야경󰡕에서는 ‘공(空)’ 사상에 입각하여 법계를 설명하고 있다. 또 󰡔열반경󰡕에서는 ‘열반의 세계’가 바로 법계라고 한다. 󰡔기신론󰡕에서는 법계를 내적인 본질을 의미하며, 이를 眞如․法性․心性․마음(心)이라고 표현한다. 밀교에서는 大日如來의 三昧身이며, 法界宮이라고 한다. 천태에서는 모든 법계는 十法界에 총괄된다고 한다. 또 ‘마음이 곧 법계’이며, ‘止觀이 곧 법계’라고도 한다. 󰡔화엄경󰡕에서 법계는 일반적으로는 세계․우주를 의미하기고 하지만 이 외에도 三昧의 의미와 본질을 중시하여 ‘法界性’이라고 한다. 「입법계품」에서는 법계를 탐구해야 할 대상 내지는 진리와 동일한 의미로 보고, 끝없는 보현보살을 통해 법계의 바다로 들어간다고 한다. 법계에 들어가기 위해 ‘普賢行’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다. 화엄종의 학자들은 법계를 事法界, 理法界, 理事無碍法界, 事事無碍法界의 四法界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현상계와 이상세계가 아무런 걸림이 없는 깨달음의 세계는 事事無碍法界라고 한다. 이러한 이치에 의하여 一心法界의 교설을 세운 것이 화엄경의 특징이다. 사사무애법계를 가장 잘 설명한 十玄門과 六相門은 화엄사상의 핵심내용인 一乘圓敎와 頓敎의 법문을 나타내기 위하여 화엄종 학자들이 세운 교리체계이다. 즉, 근원적인 면에서 만물의 본체(體)와 모습(相)은 하나이고, 주객이 구분이 없고 걸림이 없는 진리의 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Dharma dhātu(法界) is a word made by joining the two different words, dharma and dhātu. This paper investigates the meaning of Dharma dhātu with early Buddhist commentaries, Mahayana sutras and commentaries, the Garland Sutra, and with technical terms like the four dharma-dhātu(四法界), and the Ten mysterious gates(十玄門) and the Six appearance gates(六相門) as the ultimate expression of the dharma-dhātu of the non-obstruction of phenomena and phenomena(事事無碍法界), all of which were completed by the scholars of Hua-yen schools. Dharma dhātu means in early sutras like Tsa a-han ching(雜阿含經), the 18 dhātu as a phenomenal world or the entire universe. It is defined as the cause of dharma leading to be a Buddha(聖法因) in early Buddhist commentaries like Dapiposhalun(大毘婆沙論) and Bianzhongbianlun(辨中邊論). Daboluoxinjing(大般若經) explains it in the aspect of Emptiness(空) thought. And in Nieh-p'an ching(涅槃經), the world of Nirvana is regarded as the very Dharma dhātu. In Awakening of Faith(起信論), Dharma dhātu means the innate essence, and it is described as chen-ju(眞如)․Dharma -nature(法性)․mind-nature(心性) and mind(心). In Esoteric Buddhism it is described as samādhi body(三昧身) of Mahāvairocana(大日如來), and fa-chieh kung(法界宮). In Tiantai(天台), the mind is Dharma dhātu, and chih-kuan (止觀) is Dharma dhātu. In Avataṃsaka sūtra, Dharma dhātu means the world and cosmos in general, and further means fa-chiehsing(法界性) as an expression stressing the meaning and essence of the samādhi. In Rufajiepin(入法界品) Dharma dhātu is regarded as the object to investigate or as the same meaning with the Truth, and it is said that one enters into the ocean of Dharma dhātu through endless Samantabhadrā bodhisattva(普賢菩薩). To practice P'u-hsien hsing(普賢行) is said to be the most important to enter Dharma dhātu. The scholars of Hua-yen schools(華嚴宗) explains Dharma dhātu with four, I.e. the phenomena dharma dhātu(事法界), the noumenon dharma dhātu(理法界), he dharma-dhātu of the non-obstruction of noumenon and phenomena(理事無碍法界), the dharma-dhātu of the non-obstruction of phenomena and phenomena(事事無碍法界). And the last one decribed as the ultimate world of Bodhi without any hinderance between phenomenal world and ideal world. Based on this reason is founded the One mind dharma-dhātu(一心法界), which is the characteristic of Hua-yen schools. The Ten mysterious gates(十玄門) and the Six appearance gates(六相門), usually regarded as the best in explaining the dharma-dhātu of the non-obstruction of phenomena and phenomena(事事無碍法界), are a doctrinal system founded by the scholars of Hua-yen schools to represent the teaching of the One vehicle the Perfect Enlightenment School(一乘圓敎) and the Sudden Enlightenment School(頓敎), the kernel of Hua-yen thought As it were, both represent the world of the Truth, where all beings' nature(體) and appearance(相) are one, and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subject and object, and no hinderance.

7,900원

8

10.27법난의 역사적 교훈과 사회적 과제

김광식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217-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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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찰은 10.27법난 발발 30주년에 즈음하여 법난의 역사적 교훈과 사회적 과제를 살펴 본 글이다. 필자가 본 고찰에서 제시한 것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우선은 법난연구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광범위한 자료 수집을 촉구하였다. 이제라도 법난 위원회, 총무원은 그 문건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불교 내부에 있는 자료도 찾고 정리해야 한다. 이런 성과물을 총 집대성하여 추가적인 자료집을 발간해야 한다. 동시에 구술증언 채록도 불교인들이 주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역사의 성찰 차원에서 법난연구소를 출범시켜야 함을 강조하였다. 법난 연구의 활성화는 연구소 출범에 성패가 달려 있다. 그렇지 않고 명예회복과 건물만 짓는 불사에만 매진한다면 그에 대한 비판이 초래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전제하에서 사회적 과제의 실천으로 조계종 연구소 설립, 역사교육관 설립, 다양한 사회문제에 불교의 사상과 불교적인 방법으로 적극 참여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 같은 실천적 움직임이 수반되지 않을 때에는 진정한 법난의 극복, 법난의 역사적 의의를 만들기는 어렵다. 이런 필자의 의견이 10.27법난 연구에 참고가 되고, 법난의 기념사업, 명예회복 사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This consideration is paper researching historical lesson of 10.27 Dharma Difficulty and social task on the occasion of the 30th anniversary for 10.27 Dharma Difficulty outbreak. My suggestion in this consideration is as following contents. First of all I urged vast materials to collect in premise to study of Dharma Difficulty has to become newly. From now on the Dharma Difficulty Committee and administrative office of the Jogye Order should secure the documental materials. And To the next I emphasized the Dharma Difficulty Research Institute should be established in dimension of historical introspection. The Vitalization of researching Dharma Difficulty depends on whether the establishment of the institute is successful or not. Otherwise regaining the impaired reputation and constructing buildings are only conducted, there will be caused to blame for that. Therefore in premise I insisted active participation on the establishment of the Jogye Order Research Institute as practice of social subject, historical educational school and various in buddhist thoughts and a buddhist way. If such practical movement is not accompanied, it is difficult to make real overcoming Dharma Difficulty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Dharma Difficulty. I expect my opinion can be reference to study on 10.27 Dharma Difficulty and help a bit for commemorative project of Dharma Difficulty and regaining the impaired reputation.

6,900원

9

안봉려관과 근대 제주불교의 중흥

한금순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247-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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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관음사를 창건한 안봉려관은 일제강점기 제주불교의 항일이력으로 인한 일제의 통제를 이겨내고 1930년대에 이르러 제주불교 인물들의 주도적 활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1907년 대흥사에서 출가한 안봉려관은 1908년 제주도로 내려와 운대사인 김석윤에게서 가사를 전수 받는 등의 도움을 받으며 관음사를 창건하였다. 1910년 용화사에서 안거 중이던 김석윤과의 인연으로 용화사의 영봉화상과 안도월이 용화사의 불상과 탱화를 관음사로 이운 봉안하여 관음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이 결행됨으로 인해 관음사는 1930년까지 일제의 통제를 받게 되고 안봉려관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하게 된다. 1924년 일제의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종교활동이 관리되면서 제주불교협회가 결성된다. 안봉려관은 제주불교포교당을 신설하여 제주불교협회 활동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안봉려관과 관음사의 노력은 제주불교협회 활동의 중심이 되었고 그 노력에 힘입어 1930년대에 이르러 관음사는 제주불교를 주도하게 되었다. 안봉려관과 관음사의 노력은 곧 제주불교 활동의 근간이 되었다. 관음사는 불교활동은 물론 불교활동과 관련 없이도 제주도민들이 이용할 정도로 사회에 인식되어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봉려관은 관음사를 창건하였다는 것만으로의 가치가 아니라 근대 제주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로 조명할 가치가 충분한 제주불교사 더 나아가 제주도 역사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Annbongryogwan who has founded ‘Gwan Eum Temple’ in 1908 was incessantly oppressed by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because of his anti-Japanese movement as a Buddhist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By establishing ‘Gwan Eum Temple’ in 1908, he finally created sturdy basis of Jeju Buddhists’ major activities in 1930s. He finished his practice in ‘Daeheung Temple’ and became a Buddhist monk in 1907. Next year, he moved to Jeju-island. He met great master Woon, in other name Kim Seok Yoon. Annbongryogwan established ‘Gwan Eum Temple’ in virtue of Kim’s supports such as robe succession. Kim stayed in Yonghwa Temple for his practicein 1910, it enabled him to maintain a good relationship with Yonghwa Temple’s Yeongbong and Andowal Yeongbong and Andowal helped to enshrine their statue and altar portrait of Buddha in GwanEum Temple. It paved the way for foundation of ‘Gwan Eum Temple’. In 1918, as Bup Jeong Temple’s anti-Japanese movement carried out, Gwan Eum Temple became under controlled by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until 1930s. Annbongryogwan had continuous efforts to resist Japanese imperialism and resolve repressions. In 1942 Japanese government started to control religious activities as a part of culture repressing reign. Jeju Buddhist Association was founded against suppression. Annbongryogwan newly established Jeju Buddhist Mission which enabled setting up a base of their activities. Annbongryogwan and Gwan Eum Temple’s efforts led a main stream of activities. Being indebted to his effort, Gwan Eum Temple played a key role of Jeju Buddhism in 1930s. Gwan Eum Temple has already been recognized and opened to public. Whether related to Buddhism or not, Gwan Eum Temple offered places for public activities. To be focused on these point of view, Annbongryogwan’s contributions for foundation of GwanEum Temple and renovation of modern Buddhism should be noticed. He is a major figure who contributed to history of Jeju Buddhism moreover he is taking some part of history of Jeju-island.

8,700원

10

食이 깨달음에 미치는 영향

김민희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289-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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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건강하며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최근의 자연환경이나 불규칙한 식생활, 인스턴트식품의 증가로 음식의 심각성은 식생활 자체의 불균형을 만들고 나아가서는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잃는 것은 삶 자체를 잃는 것이다. 그래서 食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확인하여 음식[食]의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食이 心身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해서 몇 가지로 나누어보면 첫째는 배고픔을 해결하는 음식이고, 둘째는 깨달음을 위한 고행식이다. 셋째는 안락식의 법식이 된다. 먼저 음식은 생명을 지키고 배고픔을 해결하는 기본식이며 고행식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근원적인 식이 된다. 안락식은 心身을 안락하게 하고 三寶에 대한 믿음과 복덕과 善法을 윤택하게 한다. 그러므로 食의 변화와 食을 因으로 하는 깨달음의 양상을 世間食과 出世間食으로 나누고, 食과 識의 변화의 연관성은 깨어있는 삶을 위한 緣起의 도리임을 밝혔다. 경전에서 여러 가지의 因중에서 맛의 因으로 깨달음에 이르게 된 것을 第一로 하고 있는 점과 佛家의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나 동양의학의 양생법에서 사계절과 조화를 이루는 일상의 삶을 살펴보면 祖師들의 日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깨달음의 行과 食을 평등하게 배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음식과의 인연을 신중하게 여기고 만족한 음식으로 삼륜공적을 이룬다면 일상적인 음식도 精進食의 모양을 가지는 것이다. 항상 겸허한 자세로 受食과 作法을 如法하게 하게 된다면 법희선열의 충만된 식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食의 의미와 중요성을 「食이 깨달음에 미치는 영향」에서 밝히는 것이다.
Everyone wants to have a healthy life. But recently we are threatened by unhealthy environment, irregular meals and varieties of instant food, so our eating habits have been changed badly. Losing a healthy body and mind means losing life itself. We have to know the importance of eating habits and focus on the choice of food. We can classify how the food(eating) affects to the body. First, food is the solution of our hunger. Second, food is an ascetic practice for perception. Third, food is the ritual of comfort. Food saves our lives and our starvation. Also it helps us to realize the perception and makes our body and mind comfort. Therefore, the progres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eating and realizing leads the awaken lives and perceives of the karma. In the Sutras, it is said that realizing from the cause of taste is the first rank. Food is treated as an important thing in the temples and also the balance of the food and the seasons is accepted very important matter in the oriental medical field. As a fact, the role of food and relations should be considered the most effective way to realize and the meaning and importance of the food we eat leads the pleasure of emanci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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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寺誌 편찬과 한용운의 『乾鳳寺 事蹟』

한동민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32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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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강원도 건봉사는 󰡔건봉사 사적(乾鳳寺 事蹟)󰡕이라는 寺誌를 간행하였다. 만해 한용운이 편찬한 이 책은 1927년 안진호의 󰡔奉先寺誌󰡕를 뒤이어 간행됨으로써 일제강점기 本末寺誌 편찬이라는 큰 흐름을 이끌었다. 이는 조선 불교계를 30본산으로 규정한 사찰령 체제 아래 각 본산을 중심으로 하는 본말 체제의 강화를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사지 편찬의 대표자였던 안진호와 특징있는 사지편찬을 했던 포광 김수영 등과 더불어 만해 한용운의 󰡔건봉사 사적󰡕은 일제 강점기 본말사지 편찬의 새로운 기원과 도전이었고 이로 인해 다양한 본말사지가 편찬되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용운의 󰡔건봉사 사적󰡕은 󰡔봉선사지󰡕와 이후의 다른 사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소략한 형태의 寺誌라 할 수 있다. 이는 본말체제에 대한 한용운의 비판적 의식과 합리적이고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사료만을 선택하려는 태도와 1878년 건봉사 화재로 인한 자료의 일실에 따른 것이다. 또한 일제 총독부 당국의 검열에 따른 누락과 소략한 서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다. 또한 건봉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萬日會 서술 등이 소략하고 邑誌 등 다양한 자료를 광범하게 참조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연도표기 방식에서 일본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점, 일제의 불교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寺刹令 관련 서술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은 만해 한용운의 편찬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건봉사 사적󰡕의 편찬방식이 연표식 정리방식과 짧은 편찬기간 그리고 1878년 화재로 인한 자료의 일실과 편찬자의 입장을 배제하려는 述而不作의 태도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건봉사 사적󰡕 편찬에 대한 자부는 30년이 채 되지 않아 여실히 증명되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건봉사를 비롯하여 양구 심곡사와 양양 명주사 등 사찰들이 불타면서 사지편찬이 왜 필요한가를 웅변적으로 증명하였던 것이다. 한편 만해 한용운은 󰡔불교유신론󰡕의 발간으로 당대 불교개혁을 주창하는 불교계 인물로 부각되었고, 시집 󰡔님의 침묵󰡕의 발간으로 민족적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더하여 󰡔건봉사 사적󰡕을 편찬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불교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In 1928, Gangwondo Geonbongsa Temple published a temple magazine 󰡔Geonbongsa Sajeok (乾鳳寺 事蹟)󰡕. The book published by Han Yong-Woon led a large flow which was compilation of Bonmal temple magazin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with Ahn Jin-Ho’s 󰡔Bongseonsaji󰡕in 1927. It is a real case showing the strengthening of Bonmal system in the center of each Bonsan under the system of Buddhist Temple Act prescribing Joseon Buddhist world as 30 Bonsan. With Ahn Jin-Ho, a representative of temple magazine compilation, and Pogwang Kim Soo-Young who compiled characteristic temple magazin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Manhae Han Yong-Woon’s 󰡔Geonbongsa Sajeok󰡕 was a new origin and challenge of compilation of Bonmal temple magazin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which made diverse Bonmal temple magazines compiled. Nevertheless, Han Yong-Woon’s 󰡔Geonbongsa Sajeok󰡕 is a temple magazine in relatively a simple form in comparison with other temple magazines including 󰡔Bongseonsaji󰡕. It was caused by Han Yong-Woon’s critical mind of Bonmal system, his attitude to select only data faithful to reasonable and historical facts and loss of data due to a fire of Geonbongsa in 1878. In addition, he could not help making omission and simple description because of censorship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His description of Manilhoi showing features of Geonbongsa well was simple and he didn’t refer to diverse data such as Eupji extensively. However, considering that he didn’t use Japanese era name in the way of year indication and minimized description related to Buddhist Temple Act, a core of Japanese Buddhist policy, the study could see that they showed Han Yong-Woon’s intention of compilation well. Such a limit was caused by a way of arranging year mark in the way of compilation of 󰡔Geonbongsa Sajeok󰡕, its short period of compilation, loss of data by a fire in 1878 and his attitude of ‘Describe, but don’t draw’ to exclude the compiler’s position. However, Han Yong-Woon’s pride for compilation of 󰡔Geonbongsa Sajeok󰡕 based on historical facts was proved right now after 30 years. A lot of Buddhist temples including Geonbongsa, Simgoksa in Yanggu and Myeongjusa inYangyang were burn by the Korean War in 1950, which proved why it was necessary to compile temple magazines. On the other hand, Han Yong-Woon was distinguished as a character in the Buddhist world arguing Buddhist reformation by publishing 󰡔Korean Buddhist Theism󰡕 and as a racial poet by publishing collection of poems 󰡔Silence of You󰡕. In addition, Han Yong-Woon was appreciated that he opened a new prospect in the research on Buddhist histor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by compiling 󰡔Geonbongsa Saj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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彙報

한국정토학회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14권 2010.12 pp.357-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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