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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寺誌 편찬과 한용운의 『乾鳳寺 事蹟』
Compilation of Temple Magazine and Han Yong-Woon’s 󰡔Geonbongsa Sajeok󰡕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일제강점기 사지 편찬과 한용운의 『건봉사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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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정토학연구 KCI 등재후보 바로가기
  • 통권
    제14권 (2010.12)바로가기
  • 페이지
    pp.325-355
  • 저자
    한동민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5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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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1928, Gangwondo Geonbongsa Temple published a temple magazine 󰡔Geonbongsa Sajeok (乾鳳寺 事蹟)󰡕. The book published by Han Yong-Woon led a large flow which was compilation of Bonmal temple magazin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with Ahn Jin-Ho’s 󰡔Bongseonsaji󰡕in 1927. It is a real case showing the strengthening of Bonmal system in the center of each Bonsan under the system of Buddhist Temple Act prescribing Joseon Buddhist world as 30 Bonsan. With Ahn Jin-Ho, a representative of temple magazine compilation, and Pogwang Kim Soo-Young who compiled characteristic temple magazin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Manhae Han Yong-Woon’s 󰡔Geonbongsa Sajeok󰡕 was a new origin and challenge of compilation of Bonmal temple magazin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which made diverse Bonmal temple magazines compiled. Nevertheless, Han Yong-Woon’s 󰡔Geonbongsa Sajeok󰡕 is a temple magazine in relatively a simple form in comparison with other temple magazines including 󰡔Bongseonsaji󰡕. It was caused by Han Yong-Woon’s critical mind of Bonmal system, his attitude to select only data faithful to reasonable and historical facts and loss of data due to a fire of Geonbongsa in 1878. In addition, he could not help making omission and simple description because of censorship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His description of Manilhoi showing features of Geonbongsa well was simple and he didn’t refer to diverse data such as Eupji extensively. However, considering that he didn’t use Japanese era name in the way of year indication and minimized description related to Buddhist Temple Act, a core of Japanese Buddhist policy, the study could see that they showed Han Yong-Woon’s intention of compilation well. Such a limit was caused by a way of arranging year mark in the way of compilation of 󰡔Geonbongsa Sajeok󰡕, its short period of compilation, loss of data by a fire in 1878 and his attitude of ‘Describe, but don’t draw’ to exclude the compiler’s position. However, Han Yong-Woon’s pride for compilation of 󰡔Geonbongsa Sajeok󰡕 based on historical facts was proved right now after 30 years. A lot of Buddhist temples including Geonbongsa, Simgoksa in Yanggu and Myeongjusa inYangyang were burn by the Korean War in 1950, which proved why it was necessary to compile temple magazines. On the other hand, Han Yong-Woon was distinguished as a character in the Buddhist world arguing Buddhist reformation by publishing 󰡔Korean Buddhist Theism󰡕 and as a racial poet by publishing collection of poems 󰡔Silence of You󰡕. In addition, Han Yong-Woon was appreciated that he opened a new prospect in the research on Buddhist histor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by compiling 󰡔Geonbongsa Sajeok󰡕
한국어
1928년 강원도 건봉사는 󰡔건봉사 사적(乾鳳寺 事蹟)󰡕이라는 寺誌를 간행하였다. 만해 한용운이 편찬한 이 책은 1927년 안진호의 󰡔奉先寺誌󰡕를 뒤이어 간행됨으로써 일제강점기 本末寺誌 편찬이라는 큰 흐름을 이끌었다. 이는 조선 불교계를 30본산으로 규정한 사찰령 체제 아래 각 본산을 중심으로 하는 본말 체제의 강화를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사지 편찬의 대표자였던 안진호와 특징있는 사지편찬을 했던 포광 김수영 등과 더불어 만해 한용운의 󰡔건봉사 사적󰡕은 일제 강점기 본말사지 편찬의 새로운 기원과 도전이었고 이로 인해 다양한 본말사지가 편찬되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용운의 󰡔건봉사 사적󰡕은 󰡔봉선사지󰡕와 이후의 다른 사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소략한 형태의 寺誌라 할 수 있다. 이는 본말체제에 대한 한용운의 비판적 의식과 합리적이고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사료만을 선택하려는 태도와 1878년 건봉사 화재로 인한 자료의 일실에 따른 것이다. 또한 일제 총독부 당국의 검열에 따른 누락과 소략한 서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다. 또한 건봉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萬日會 서술 등이 소략하고 邑誌 등 다양한 자료를 광범하게 참조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연도표기 방식에서 일본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점, 일제의 불교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寺刹令 관련 서술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은 만해 한용운의 편찬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건봉사 사적󰡕의 편찬방식이 연표식 정리방식과 짧은 편찬기간 그리고 1878년 화재로 인한 자료의 일실과 편찬자의 입장을 배제하려는 述而不作의 태도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건봉사 사적󰡕 편찬에 대한 자부는 30년이 채 되지 않아 여실히 증명되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건봉사를 비롯하여 양구 심곡사와 양양 명주사 등 사찰들이 불타면서 사지편찬이 왜 필요한가를 웅변적으로 증명하였던 것이다. 한편 만해 한용운은 󰡔불교유신론󰡕의 발간으로 당대 불교개혁을 주창하는 불교계 인물로 부각되었고, 시집 󰡔님의 침묵󰡕의 발간으로 민족적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더하여 󰡔건봉사 사적󰡕을 편찬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불교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목차

요약문
 I. 서론
 II. 일제강점기 사지 편찬 현황
  1.『奉先寺誌』와『乾鳳寺 事蹟』발간 이전의 사지편찬
  2.『奉先寺誌』.『건봉사 사적』발간과 이후의 사지편찬
 III.『건봉사 사적』의 편찬
  1. 본말사지 편찬 동기와 과정
  2.『건봉사 사적』편찬 체제와 특징
 IV.『건봉사 사적』의 한계와 의의
 V.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한용운 건봉사 건봉사 사적 본말사지 편찬 Han Yong-Woon(韓龍雲) Geonbongsa(乾鳳寺) Geonbongsa Sajeok compilation of Bonmal temple magazine(本末寺誌) 韓龍雲 乾鳳寺 本末寺誌

저자

  • 한동민 [ Han Dong-Min | 수원박물관 학예팀장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설립연도
    1988
  • 분야
    인문학>불교학
  • 소개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 간기
    반년간
  • pISSN
    1229-1846
  • 수록기간
    1998~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20 DDC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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