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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려관과 근대 제주불교의 중흥
Annbongryogwan and the revival of Modern Jeju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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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정토학연구 KCI 등재후보 바로가기
  • 통권
    제14권 (2010.12)바로가기
  • 페이지
    pp.247-287
  • 저자
    한금순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5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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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Annbongryogwan who has founded ‘Gwan Eum Temple’ in 1908 was incessantly oppressed by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because of his anti-Japanese movement as a Buddhist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By establishing ‘Gwan Eum Temple’ in 1908, he finally created sturdy basis of Jeju Buddhists’ major activities in 1930s. He finished his practice in ‘Daeheung Temple’ and became a Buddhist monk in 1907. Next year, he moved to Jeju-island. He met great master Woon, in other name Kim Seok Yoon. Annbongryogwan established ‘Gwan Eum Temple’ in virtue of Kim’s supports such as robe succession. Kim stayed in Yonghwa Temple for his practicein 1910, it enabled him to maintain a good relationship with Yonghwa Temple’s Yeongbong and Andowal Yeongbong and Andowal helped to enshrine their statue and altar portrait of Buddha in GwanEum Temple. It paved the way for foundation of ‘Gwan Eum Temple’. In 1918, as Bup Jeong Temple’s anti-Japanese movement carried out, Gwan Eum Temple became under controlled by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until 1930s. Annbongryogwan had continuous efforts to resist Japanese imperialism and resolve repressions. In 1942 Japanese government started to control religious activities as a part of culture repressing reign. Jeju Buddhist Association was founded against suppression. Annbongryogwan newly established Jeju Buddhist Mission which enabled setting up a base of their activities. Annbongryogwan and Gwan Eum Temple’s efforts led a main stream of activities. Being indebted to his effort, Gwan Eum Temple played a key role of Jeju Buddhism in 1930s. Gwan Eum Temple has already been recognized and opened to public. Whether related to Buddhism or not, Gwan Eum Temple offered places for public activities. To be focused on these point of view, Annbongryogwan’s contributions for foundation of GwanEum Temple and renovation of modern Buddhism should be noticed. He is a major figure who contributed to history of Jeju Buddhism moreover he is taking some part of history of Jeju-island.
한국어
1908년 관음사를 창건한 안봉려관은 일제강점기 제주불교의 항일이력으로 인한 일제의 통제를 이겨내고 1930년대에 이르러 제주불교 인물들의 주도적 활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1907년 대흥사에서 출가한 안봉려관은 1908년 제주도로 내려와 운대사인 김석윤에게서 가사를 전수 받는 등의 도움을 받으며 관음사를 창건하였다. 1910년 용화사에서 안거 중이던 김석윤과의 인연으로 용화사의 영봉화상과 안도월이 용화사의 불상과 탱화를 관음사로 이운 봉안하여 관음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이 결행됨으로 인해 관음사는 1930년까지 일제의 통제를 받게 되고 안봉려관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하게 된다. 1924년 일제의 문화정치의 일환으로 종교활동이 관리되면서 제주불교협회가 결성된다. 안봉려관은 제주불교포교당을 신설하여 제주불교협회 활동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안봉려관과 관음사의 노력은 제주불교협회 활동의 중심이 되었고 그 노력에 힘입어 1930년대에 이르러 관음사는 제주불교를 주도하게 되었다. 안봉려관과 관음사의 노력은 곧 제주불교 활동의 근간이 되었다. 관음사는 불교활동은 물론 불교활동과 관련 없이도 제주도민들이 이용할 정도로 사회에 인식되어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봉려관은 관음사를 창건하였다는 것만으로의 가치가 아니라 근대 제주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로 조명할 가치가 충분한 제주불교사 더 나아가 제주도 역사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목차

요약문
 I. 머리말
 II. 개항기 제주불교와 안봉려관의 출가
  1. 개항기 제주불교
  2. 안봉려관의 출가
 III. 안봉려관의 제주불교 활동
  1. 관음사 창건
  2. 안봉려관의 제주불교 활동
  3. 관음사와 근대 제주불교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근대 제주불교의 중흥 제주불교의 항일 이력 안봉려관 관음사 창건 김석윤 운 대사 제주불교협회 법정사 항일운동 영봉 화상 가사 전수 The revival of Modern Jeju Buddhism Jeju Buddhist’s anti-Japanese movement records Annbongryogwan Foundation of Gwan Eum Temple Kim Seok Yoon Great master Woon Jeju Buddhist Association Bup Jeong Temple’s anti-Japanese movement Yeongbong Robe succession

저자

  • 한금순 [ Han Guem-soon | 제주대 문학박사 한국사 전공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설립연도
    1988
  • 분야
    인문학>불교학
  • 소개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 간기
    반년간
  • pISSN
    1229-1846
  • 수록기간
    1998~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20 DDC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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