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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ISSN
    1229-1846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8~2018
  • 주제분류
    인문학 > 불교학
  • 십진분류
    KDC 220.1 DDC 294
제27권 (9건)
No
1

삼보와 승보신앙의 소고(小考)

최경만(정인)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7권 2017.06 pp.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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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 법 승 삼보는 불교 신앙심의 예배 대상물임과 동시에 해탈성불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의 귀의해야하는 그야말로 보배이다. 시간과 지역 구분없이 원시 부파 대승 그리고 남방 북방으로 전법되면서도 삼보 귀의심은 변함이 없다. 즉 삼보는 승가신앙의 중심사상이라 할 수 있다. 2. 불보 법보는 불멸 후 정형화 되었으므로 승보가 불법을 계승 전법하는 의무에 서게 되었으므로 승가승보의 모범적인 수행의 책임을 살펴보았다. 그 내용으로는 삼보의 성립, 삼보귀의당위성, 승보역할의 중요성, 승가 교단의 본질, 승가 번영을 위한 불퇴법, 청정한 승보의 자격, 승보 덕행의 힘, 복전사상의 발전 등으로 요약하였다. 3. 원시불교시대의 복전사상이 재가신도의 시주물 공양으로 활성화되면서 승가는 자연스럽게 한 곳에 정주하면서 수행에 전념하게 된다. 그 대신 승보는 공양물 시주자에게 법전으로 안심입명을 얻게 한다. 아울러 생천복락을 얻은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았다. 4. 복전사상의 발전으로 대승불교로 내려오면 보시물 바라밀의 공덕으로 더욱 활성화되었다. 그것은 승가에 대한 보시종류와 물량이 점점 많이 불어났다는 사실이다.
Three jewels, the Buddha, the Dharma, and the Sangha, are the objects for worship of Buddhism and simultaneously, the treasures that we should rely as refugee until accomplishing the goals of Nirvana and the Buddhahood. Regardless of time and regions, Buddhism was transmitted from the original school of buddhism into the northern areas, which is called Mahayana buddhism, and the southern areas which is called the Hynayana buddhism. Meanwhile the faith of the three jewels has not changed. Three jewels can be considered as the main ideology of the faith of Sangha. After the death of the Buddha, the jewels of the Buddha and the Dharma were stereotyped and the jewel of the Sangha played a role to succeed and transmit the dharma. Hence, I examined what buddhist practices the Sangha has implemented: the establishment of three jewels, the justification of homage to three jewels, the importance of the Sangha's role, the essence of Sangha religious body, the dharma of non regression for the prosperity of Sangha, the qualification of pure Sangha, the power of Sangha's virtuous actions, and the development of the ideology of a field of merit. As the thought of a field of merit in the time of the fundamental buddhism emphasized on the Pujana of lay persons, the Sangha naturally stayed on a fix place and concentrated on their practices. In the response of offerings, the Sangha conveyed the dharma to the donor. For the examples of merits of offerings, I looked into some cases that donors were borned in the heaven and received the good merits. As the development of the ideology of a field of merit, the Mahayana buddhism was activated with the merit of offering paramita. According to this flow, the kinds and numbers of offerings to the Sangha were getting increa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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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토신행에 드러난 조사신앙

정광균(법상)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7권 2017.06 pp.4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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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삼보 중에 승보에 중점을 두고 고찰하였다. 일반적으로 승보는 최초로 5비구가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 성립하였다. 이러한 승보는 신앙의 대상이면서 복전이었고, 전법의 계승자로 인도와 중국, 한국에 그 불교의 전문가이면서 신행의 지도자, 정법의 계승자로써 정토교학과 신행의 전법에 충실한 분들을 추천하여 존숭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네 가지로 간략히 고찰하였다. 먼저 정토신행의 내용검토로 󰡔유마힐소설경󰡕에 드러난 유심정토의 신행개념과 내용을 바탕으로 넓은 의미의 정토와 좁은 의미의 실유정토인 서방극락정토에 대해서 검토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불국토에 대해서 중국의 각 종파에서 말하는 내용도 아울러 고찰하였다. 왜냐하면 중국의 정토신행의 조사는 순수하게 극락정토만을 추구하는 조사들이 아니기 때문에 제교제종의 국토와 정토의 내용을 추적해 보았던 것이다. 다음에 중국에서 정토종이 성립되어 전개되는 역사를 간략히 검토해 보았다. 정토신행의 조사는 그 근간이 되는 종파가 어떻게 중국에서 성립되고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 살펴봄으로써 중국 정토신행조사 선정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중국 정토신행의 조사는 수수하게 극락정토만을 추구하지 않았고 크게 3가지 유파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즉, 결사염불을 최초로 신행한 여산의 혜원류와 순수하게 삼경일론(三經一論)에 의거한 도작선도류, 그리고 제경과 제행을 결합하여 실천한 자민류 등이다. 셋째로 중국의 정토신행 조사가 선정되고 존숭되는 과정을 추적해 보았다. 이러한 과정은 아주 복잡하게 전개되었지만 그 내용의 확정은 현대에 이르러 인광법사에 의해서 12조사가 결정되고 확립되었음을 추적해 보았다. 그런데 일본에서 추앙하는 조사로 담란과 도작을 배제한 점은 앞으로 제고할 여지가 있다고 여겨진다. 일본에서는 담란과 도작, 그리고 회감을 조사로 신봉하는데 중국에서 이들을 정토조사에서 제외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인광은 삼학을 고루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결과 중국의 정토조사는 순수하게 극락정토만을 추구하지는 않았음을 검토하였다. 넷째로 한국의 정토신행 조사는 아직 확정된 조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애 정토종이 성립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토신행조사를 설정하기란 매우 곤란한 점이 있다. 하지만 시험 삼아서 논자의 어리석은 견해로 한국의 정토신행조사를 선정하여 제시해 보았다. 중국의 정토신행조사가 순수한 극락정토만을 추구하지 않았듯이 한국의 정토신행조사도 그런 측면에서 설정하여 존숭하는 것이 어떨지 제안해 보았다. 앞으로 이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This paper focuses on saṅga ratna among the sambo. In general, saṅga ratna was established by the teachings of the Buddha for the first time, the five bhikkhus. This saṅga ratna was the object of faith and the future, and was recommended as a successor of the law, a Buddhist expert in India, China, and Korea, and a leader of faith and a successor of the law. These contents were briefly reviewed in four ways. First, we reviewed the contents of pure-land. Based on the concept and contents of pure-land, which is revealed only in the Yumah Hill novels, we examined pure-land in broad sense, a pure-land in the narrow sense. In addition, I examined the contents of each country's denomination against the. Because China's pure-land guru is not a pure-land guru who pursues purely pure-land, it has traced the territory and pure-land content of the species. Next, I briefly reviewed the history of Pure-Land sect in China. This is because the pseudo-guru can identify the nature of the Chinese pseudo-guru by examining how the underlying sect is established and developed in China and reached today. The contents of the Chinese pure-land sect did not pursue only pure-land, but could be summarized in three major ways. That is, Hewon grub of Yeosan, which first performed the Buddhist monk Buddhism, and Dojak, Seondo grub based on a purely three sutras, and Jamin grub, which combined all scriptures and all practices. Third, we traced the process of establishing and honoring pure-land guru in China. This process has been very complicated, but I have tracked down to the present day that 12 pure-land guru has been determined and established by Phosphorus. However, it is considered that there is room for improvement in the point that pure-land guru which we admire in Japan excludes burial and drawing. In Japan, they are believed to have investigated gilt, drawing, and glee, but they have been excluded from the pure-land guru in China. For that reason, he said that he was not equipped with three schools. As a result, China's pure-land guru did not pursue purely pure paradise. Fourth, Korea's pure-land guru has not yet established a guru, and it is very difficult to set up a pure-land guru in the absence of Pure Land sect. However, I tried to set up a pure-land guru of Korea with the stupid opinion of the writer as a test. Just as China's pure-land guru did not pursue pure paradise, I suggested that the pure-land guru of Korea should also be set up in that respect. I hope that this will be discussed in depth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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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종에서 조사신앙의 유형과 그 특징

김호귀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7권 2017.06 pp.8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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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조사는 이해와 실천이 상응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조사는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이어서 유지시키고 전승시키는 책임을 지닌 당사자로서 불조의 혜명을 계승하는 삶을 지향한다. 이 조사에 대한 신앙의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누어 고찰한다. 첫째는 조사들의 계보에서 정법안장을 계승한 조사로서 보리달마와 조계혜능에 대하여 고찰한다. 둘째는 현묘한 불법을 실천하는 조사로서 대의도신과 백장회해에 대하여 고찰한다. 셋째는 선종 종파의 개산조에 대한 무한한 숭모의 측면으로서 출가자 및 재가자를 막론하고 보여주었던 귀의와 신앙의 모습에 대하여 조동종의 조사들에 대하여 고찰한다. 넷째는 조사가 입적한 이후에 그 덕화를 계승한 제자들이 보여준 스승에 대한 신앙의 모습에 대하여 고찰한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유형의 조사들을 통해서 선종에서 조사의 의미를 비롯하여 그들에 대한 신앙의 모습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고찰한다. 특히 조사 자신이 신앙의 대상자이면서 더불어 정법안장의 계승하고 구현하는 인물로서 부처님을 신앙하는 주체, 집단생활을 영위하면서 일상의 행위가 수행으로 간주되고 그것이 청규로 정립, 법맥의 상승에 대한 조동종의 신앙, 조사의 유지를 받드는 노력 등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대하여 고찰한다.
The notion of patriarch in zen buddhism means accord with enlightenment and educational work. They take aim at maintenance and succession for anuttara-samyak-sambodhi,(正法眼藏) i.e. The highest supreme enlightenment of Buddha. The Patriarch belief in Zen Buddhism can be divided into four types. First, the belief for persons that immediately concerned of anuttara –samyak-sambodhi. Bodhi-dharma(菩提達磨) was the father of China zen sects who handed down anuttara–samyak–sambodhi from India to China. Caoxihuineng(曹溪慧能) was the very man who take firm hold Patriarch zen in the ground of China. Second, the belief for persons that educational work about sentient beings by Buddhist teachings. Dayidaoxin(大醫道信) made the zen order for zen practices for the first time in China. Baizhanghuaihai(百丈懷海) formulated the rule for zen trainee for the first time in China, so called Qinggui(淸規). Third, the belief for persons that founders of zen sect and zen family. For example, Dongshanliangjia(洞山良价), Caoshanbenji(曹山本寂) and Yunjudaoying(雲居道膺) were regarded with deep respect by Zhongchuan(種傳) who the king of Nangping(南平). Dongshanliangjia, Caoshanbenji and Yunjudaoying were the founders of Caodongzong(曹洞宗). Forth, the belief for persons that ancestors zen master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Patriarchs of zen sect were looked back upon the memory by the person enter priesthood and lay man. First of all, the zen masters were object of veneration generation after generation till now. For instance, Zushidian(祖師殿) is the center for Patriarch belief in Zen Buddhism.

6,900원

4

조선시대 三和尙(지공ㆍ나옹ㆍ무학)의 위상과 추념

황인규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7권 2017.06 pp.117-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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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여말선초기에 활동하였던 지공․나옹․무학 삼화상의 위상과 추념을 다룬 연구이다. 지공과 나옹은 여말선초 당대부터 부처의 화신 혹은 생불로 불렸으며 무학은 이성계의 왕사요, 나옹의 적통이었다. 이들의 문도가 조선전기 불교계를 주도하였으며, 조선후기 산중불교 시대에도 대표적인 고승으로 추앙되었다. 나옹과 무학이 승보도량인 송광사의 16국사와 더불어 18주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삼화상은 불교의식에 있어서 최고의 증명법사로 신앙 되었으며, 진영도 최고의 삼화상 도량인 회암사를 비롯하여 전국에 봉안되어 추념되었다. 삼화상은 임란 후 국가재조운동이 전개되면서 성조 이성계의 위상이 제고되었으며, 무학의 위상도 더불어 부상하였으며, 무학의 스승 지공과 나옹도 삼화상의 함께 하였다. 이렇듯 지공․나옹․무학은 조선시대, 나아가 불교계의 최고의 삼화상 으로서 추념되었다.
This paper is for the study dealing with status and tribute of the three great masters, the reverend Jigong, Naong, and Muhak, who worked in the late period of Goryeo and the early period of Joseon Korea. Since the time, from the late period of Goryeo and the early period of Joseon, the reverend Jigong and Naong had been called as the incarnation of Buddha and the living Buddha. And the reverend Muhak was the teacher for the King, Lee Seong'gye, and in the lineage of the reverend Naong. Their schools mainly led the buddhist world in the early period of Joseon Korea and were admired as the representative high priests also in the time of Mountain buddhism, the late period of Joseon Korea. The reverend Naong and Muhak were not only nominated as the eighteen abbots with the sixteen national teachers of the Song'gwang monastery, the place of Three Jewels, but the three great masters were also admired as the buddhist dharma teachers whenever the buddhist rituals were performed. Moreover their portraits were placed and worshiped nationwide including the Hoe'am monastery, the best place of the three great masters.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the movement of reconstructing the nation was developed and the status of the King Seongjo, Lee Seong'gye, was reviewed again. Simultaneously the status of the reverend Muhak was also re-explored with the his teacher Jigong and Naong together. As the best three great masters, Jigong, Naong, and Muhak became the figures for admiration and tribute in the Joseon Korea and the buddhist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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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염불선과 선정계위 - 청화스님의 염불선 위차 사상과 관련한 비판적 검토 -

조준호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7권 2017.06 pp.165-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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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에서 염불은 선 또는 삼매의 수행범위로 나타난다. 이는 이후 인도불교 전통과 현재의 다른 불교권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에서 염불 이해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정토종에서 염불은 칭명으로 극락왕생을 목표로 수행되어 온 것이 그것이다. 선정의 선종과 양립하여 전개된 이유이다. 이 같은 논의는 최근 본 논자에 의해 규명되었다. 때문에 염불과 선정계위에 대한 논의는 더욱 생소하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동아시아에서 염불은 선정계위와는 상관없는 정토사상과 관련해 주로 논의되어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선정계위는 선종의 간화선이 채용한 염불화두법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예외적인 경우로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있어 금타화상과 청화(1923-2003)는 염불을 선정계위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 사상사 또는 불교 수행사에 있어 염불과 선정계위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초기불교에서 본래 염불은 칭명보다는 선정으로 수행되었고 선정계위로 연결되어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붓다의 반열반 이후에 전개된 여러 부파에서도 초기경전의 ‘염불이 선정’이라는 정도까지는 인정한다. 그렇지만 부파불교는 염불을 초기불교의 근본선인 사선 등과 관련시켜 설명하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교리의 엄밀한 정합성을 따지는 아비달마 불교에서 염불과 선정과 관련한 교리[禪理]적인 문제에 직면하였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염불선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구두(口頭)의 칭명(稱名) 신앙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수행되었다. 신행 상에 있어 현재 상좌불교권이나 대승불교권 에서도 칭명염불이 기본이 되어 있는 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초기경전에서 근본선인 사선의 초선은 말[vācā]이 소멸하는 경지로 설명된다. 더 나아가 제2선에서는 무심무사(無尋無伺)로 언어적 사유가 소멸하는 단계이다. 따라서 부파불교는 기본적으로 말 즉 칭명이 개입된 당시의 염불은 초선은 물론 제2선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고 본 것이다. 초기경전에서 염불은 선정계위로 설명되는 것에 반해 후대 부파에 이르러서는 본선정인 초선 이전에 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결국 부파불교는 초기불교에는 나타나지 않는 초선 이전의 삼매 개념을 고안하여 염불을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 것이다. 이는 부파불교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와 달리 칭명의 염불에 따른 염불 선정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Buddha-recollection is the category of meditation(dhyāna) in early Buddhism, This is the same with later Indian Buddhist traditions and various Buddhist countries also. However, such discussions in the Buddhist academic circles in Korea have been conducted recently. This has been discussed in academic circles by my presentation. The discussion about relation of Buddha-recollection and meditative steps in succession are more unfamiliar in Korea and of East Asia. This is because Buddha-recollection has been discussed mainly in relation to thought of Pure Land which is not related to meditative succession. In particular, Buddha-recollection in the School of Pure Land has been centered around a vocal invocation of the names of Buddhas. Pure Land School in Korea and East Asia accepted mainly Buddhānussati as only invocation of the names of Buddhas. At tradition of Chan School, we can not find any case of meditative steps of Buddhānussati in Chan‘s way of Buddhānussati. However, as an exceptional case, the master Geumta and his disciple master Cheonghwa (1923-2003)in the modern period of Korean Buddhism taught meditative steps of Buddhānussati. Then, how did Buddhānussati and meditative steps are explained in history of Buddhist thought or history of Buddhist practice? Buddhānussati in the early Buddhism was practiced as meditation rather than invocation of the names of Buddhas and also appeared as meditative steps. Sectarian Buddhism after Buddha‘s demise also inherited Buddhānussati as meditation of early scriptures. According to them buddhānussati is not simply regarded as a vocal invocation of the names of Buddhas. However, Sectarian Buddhism did not explain Buddhānussati in relation to the four meditative absorption, which is the original meditation of early Buddhism. The main reason is that Abhidharma Buddhism, which pursues the strict consistency of doctrines, faces problems with Buddhānussati and meditation. Buddhānussati-meditation[念佛禪] in early Buddhism was transmuted by the vocal invocation of the names of Buddhas from time to time. This is well shown from the Theravada Buddhism in the tradition of early Buddhism and the vocal invocation of the Buddhas in Mahayana texts also. In the early Buddhist scriptures, however, the first meditative absorption of the four meditative absorption is explained as the original meditation. And the invocation[vācā] is disappeared in this step of meditation. Furthermore, in the second step of meditative absorption is a state free from applied and sustained thought which based on state of the invocation. Therefore, buddhānussati at that times was regarded as not to advance the second meditative absorption as well as the first meditative absorption. This means that Buddhānussati proceeds to meditative steps in the early scriptures, while sectarian Buddhism of late phases explained that Buddhānussati cannot proceed even the first meditative absorption. Consequently, late Buddhists devised a new concept of meditative steps, such as preparatory concentration(parikamma samādhi), neighbourhood concentration (upacāra samādhi) and attainment concentration(appanā samādhi). This kind of concentration before the first meditative absorption can not be found in the early scriptures. This is a new understanding of buddhānussati according to practice for verbal chanting of the names of Buddh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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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륵의 명호와 미래불로서의 사상적 기반

박민현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7권 2017.06 pp.199-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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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미래불로서의 미륵의 명호와 그 사상적 기반에 대해 고찰해 본 것이다. 먼저 미륵은 미륵이라는 이름 외에도 아일다(阿逸多, 아지타)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언제부터 미륵이 아일다라는 이름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아함경』을 비롯한 초기 불전들을 중심으로 그 둘의 상관성을 고찰해 보았다. 첫째로 『아함경』에는 총 다섯 개의 소경에 아지타란 이름이 등장하고, 미륵이라는 이름은 열다섯 개의 소경에 등장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아지타는 크게 부처님의 제자, 이교도 사문 만두의 제자, 그리고 6사외도의 아지타케사캄발리로 구분된다. 하지만 이들은 전혀 미륵과는 상관성이 없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륵은 수행과정에 따른 지위에 따라 네 가지 경우로 분별되어 독립적으로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즉 부처님의 제자, 삼세 수행자로서의 미륵보살, 도솔천에 거주하는 일생보처보살로서의 미륵보살, 미래에 출세할 미래불로서의 미륵불이다. 특히『중아함경󰡕「설본경」에서는 아지타와 미륵이 동시에 등장하지만, 이 둘은 전혀 상관성이 없는 각각의 부처님의 제자들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최소한 『아함경』 단계에서는 아지타와 미륵은 별개의 인물로서 설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숫타니파타』와 『현우경』은 그 이야기의 구조와 내용의 유사성으로 인해 이 둘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는 훌륭한 자료들이다. 만일 이 두 경전이 동일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면 삥기야는 빈기기에 대응하고 아지타는 미륵에 대응하므로 아지타와 미륵을 동일인물로 간주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하지만 이 두 경전이 제작된 시기에는 어느 정도 시간적 차이가 존재하고, 두 경전의 동일성을 입증할 문헌학적, 역사학적 고증이 아직은 불충분하기 때문에 아지타와 미륵을 동일 인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유추해볼 수 있는 가장 초기의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로 『법주기』에서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16명의 대아라한이 등장하는데 이 중 열다섯 번째 인물이 바로 아지타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아지타에 대한 내용은 보편적인 미륵사상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기도 하고 전혀 상반되는 사상이 혼재되어 있다. 따라서 『법주기』의 내용만으로는 아지타와 미륵이 동일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설출세부의 율장에서 분리된 『마하바스투』에는 명확히 아지타와 미륵의 동일성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마하바스투』는 B.C 2세기부터 제작되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승경전들보다 그 제작시기가 앞선다고 볼 수 있으므로 아지타와 미륵의 동일성을 입증할 최초의 경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제작 시기는 최대 A.D 4-5세기까지 이어지므로 쉽사리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미륵불이 석가모니불을 이어 다음 세대의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인증절차나 그를 입증할 사상적인 기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수행중인 불제자에 불과한 미륵이 스스로 미래의 부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상적 기반 중의 하나가 바로 석가모니불 외에도 삼세에 걸쳐 수많은 부처가 존재한다는 삼세제불 사상이다. 과거불 사상은 석가모니불의 본생담 으로부터 비롯되어 그것이 일반화되고 정형화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과거에 셀 수 없이 많은 부처가 존재했었다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대중부를 통해서는 시방의 모든 불국토에 현재 수많은 부처님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현재불 사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아미타불은 현재 극락정토에 거주하고 있는 부처님이며, 이후 ‘4방불’, ‘6방불’, ‘10방불’ 등 시방의 무수한 불국토에 무수한 부처님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미래불 사상으로 가장 대표적인 사상은 성수겁천불 사상이다. 그리고 현겁천불은 구류손불부터 석가모니불까지의 과거불 사상뿐만 아니라 미륵불을 포함한 995명의 미래불 사상이 혼재되어 있다. 이렇듯 삼세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사상을 토대로 본다면 미륵은 얼마든지 미래의 부처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미 부처를 이룬 석가모니불의 수기와 부촉은 의심할 바 없는 확실한 인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일체지광명선인경』이나 『중아함경』「설본경」, 『비화경』 등에는 미륵에 대한 부처님의 수기가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금첩가사나 자신이 입었던 분소의를 미륵에게 전해 주는 과정을 통해 그 수기에 대한 확실성을 담보하였다. 『잡보장경』이나 『현우경』, 『중아함경』「설본경」, 『아육왕경』 등에는 미륵을 자신의 대를 이을 미래의 부처로 모두에게 보증하였다. 즉 미륵은 결코 스스로 자신이 미래의 부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미륵은 불교 사상사에 있어서 삼세제불 사상 그리고 수기와 부촉사상을 통해 미래불로서의 그 지위와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Maitreya has a different name in various Mahayana Sutras(大乘經典) including the Maitreya urdhva-janma sutra(彌勒上生經) that is a contemplation of Maitreya Bodhisattva ascending to the Tusita Heaven. It is the very ‘阿逸多’ that does a transliteration of Ajita. It is an important concern to we know when he becomes this name and comes to the same thing with it. Ajita is found in the Agama(阿含經), the early Buddhist scriptures. However, this name has nothing to do with Maitreya and is just the disciple of Buddha or a person of non-Buddhist way. Therefore, I suggest that Maitreya and Ajita are different people at the Agama. It is also difficult to find the definitive answer about their relationship through 『Sutta-Nipāta』, 『賢愚經』, 『法住記』, 『Mahāvastu』 etc. Maitreya is the future Buddha, and therefore he will succeed Buddha as the Buddha of the future. It means that Maitreya needs the official process or ideological foundations in order to become the future Buddha. One of them is ‘the thought of all Buddhas’(三世諸佛). It is no question at all that Maitreya is the future Buddha because Buddha already exists three times over the past, present, and future. Moreover, there are conclusive evidences; one is the permission(授記) that receives a prediction of enlightenment, and the other is request(咐囑) that is the verbal promise for the transmission of the Buddha-dharma. According to this, Maitreya is firmly to establish the status of the future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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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산재 문화콘텐츠화의 전개 양상과 과제 - 프로그램 내용을 중심으로 -

손인애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7권 2017.06 pp.24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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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불교 재의식이 보다 나은 전승과 전파를 위해 불교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 문화 상품으로 거듭 나야하는 시기이다. 이에 본고는 현재까지 이루어진 영산재 문화콘텐츠화의 역사적 전개 양상을 면밀히 살펴보고, 이를 통해 앞으로 지향해야할 공연 내용적 과제와 방향을 논의해보았다. 영산재 문화콘텐츠화의 전개 양상을 정리하면, 1985년 최초의 무대화를 계기로 2001년 스토리텔링이 있는 최초의 콘텐츠화가 시작, 체계화되고, 2003년 ‘니르바나(열반)’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영산재 콘텐츠 작품이 만들어진다. 니르바나는 2006년 대표적인 세계 무용제 참가를 기점으로 영산재와 한국무용이 결합되는 콘텐츠 작품이 되고, 2011년 다양한 해외 순방을 통해 한국 전통연희도 첨가되며 소위 ‘거대 전통 예술 공연물’이 된다. 비록 재의식 관련 프로그램의 순서가 바뀌거나 탈락되며 불교적 성격이 약화되는 측면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한국 불교문화와 예술의 혼魂과 미美를 세계에 전파하는 문화 사절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공연 상황과 여건에 맞게 끊임없이 프로그램과 내용을 변화시키는 유연성을 보여주며, 불교 재의식의 콘텐츠화 작업에 선구자 역할을 나름대로 해냈다. 이상 논의를 토대로 향후 영산재 문화콘텐츠 작품의 내용적 과제와 방향을 프로그램의 다양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크게 전통 영산재 내용의 콘텐츠 작품, 다른 한국 예술 장르와 결합된 소위 퓨전 콘텐츠 작품, 영산재를 근거로 한 새로운 창작 콘텐츠 작품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것은 이른바 원형, 퓨전, 창작의 세 단계로 콘텐츠 작품을 분류하여, 그 고유한 역할과 내용적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전통 영산재 콘텐츠 작품은 영산재의 역사와 정신, 그 내용을 온전히 전승하는 성격이 있어, 이른바 불법의 ‘전통적 보급’이란 뿌리 같은 역할이 있다. ‘종교 예술’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퓨전 영산재 콘텐츠 작품은 소위 일반 대중 및 세상과 보다 원활한 소통 및 교감을 위해 다른 예술 장르들과 결합된 작품으로, 불법의 ‘대중적 보급’의 역할이 크다. 현재 ‘니르바나’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향후 다른 예술 장르와의 절묘한 조화와 균형이 지속적이며 성공적인 보급의 관건으로 보인다. 창작 영산재 콘텐츠 작품은 소위 원형(전통)을 초월하는 단계로, 21세기 감성과 대중성을 반영하며 불법의 ‘현대적 소통과 교감’의 역할이 크다. 최근 세계 문화계에서 추구하는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를 롤 모델로, 내용적 혁신과 혁명이 요구되는 콘텐츠다. 궁극적으로 불교의식 콘텐츠 작품들은 21세기 코드에 맞는 불교 의식문화 및 정신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지향점으로 삼는다. 그래서 참여 대중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 매뉴얼들을 만들고, 시도하는 것이다. 영산재 문화콘텐츠 작품도 다른 예술 작품들처럼 역사와 대중을 통해 엄정하게 옥석이 가려질 것이므로, 끊임없는 창조와 도전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 불교의식의 시대적 과제이며,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발현이라 생각된다.
This paper aims at studying the historical development aspects and the directions of the cultural contents of Yeongsanjae, which is the challenges of the 21st Century in the Korean Buddhist ritual. The following are the results. It was the first time in 1985 for Yeongsanjae to attempt popularization for public as a stage performance. As a result, the first cultural contents of Yeongsanjae, named Nirvana(涅槃), which had been developed and completed as the representative korean cultural contents, was created in 2003. Since then, Nirvana had extended its stages to all over the world, while the contents of it had changed little by little, adding new korean dance and music. Henceforth task of the cultural contents of Yeongsanjae has been largely discussed on three programs: (1) The ‘traditional’ cultural contents, which succeed to the characteristics and the contents of the original form of Yeongsanjae as a role of root: (2) The ‘fusion’ cultural contents, which is assimilated with the original form of Yeongsanjae and the other arts genre for public dissemination: (3) The ‘Killer’ cultural contents, which is the new creation beyond the tradition, even though it is built on the tradition of Yeongsanjae as the method of active communication with the public. In the 21st Century, the change of the Korean Buddhist ritual into the various cultural contents is the needs of the times for the successful trans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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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분야 종교의례 등재 현황과 연등회 등재의 과제

이재수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7권 2017.06 pp.28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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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의는 연등회의 의의와 가치를 검토하여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제언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술되었다. 논자는 먼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홈페이지에 공표된 인류무형문화유산 366건의 목록을 검토하였다. 이 가운데 종교의례의 성격을 지니는 목록을 아시아 18, 유럽 13, 아메리카 10, 아프리카 4건 총 45건을 검토하였다. 이 가운데 종교의례 유산 7건을 선정하여 세부적으로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특징을 도출하였다. 첫째, 대부분 종교의례는 공연예술적 요소를 가지고 있고, 둘째, 각 의례의 예능 및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주체는 수행자 집단만은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셋째, 무형유산의 의미는 각각의 문화적 전통과 사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문화다양성의 입장에서 모두 존중되어야 하고, 넷째, 대부분의 종교의례가 전통의 단절없는 계승보다는 다양한 활용과 확산을 위한 교육과 대중적 소통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대부분의 종교의례는 축제적 요소를 지니고 있고, 여섯째, 각각의 종교의례에 사용되는 도구나 공예품은 특색있는 상징과 문화상품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일곱째, 종교의례의 전승과 확산의 성패는 보존 주체의 조직적인 역량이 좌우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연등회는 등불을 밝혀 내면의 무명을 깨고 지혜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으며, 내면의 밝은 환희심으로 세계를 향해 소통하고 온 생명이 함께하는 열린 축제이다. 지금까지도 대중적인 인기와 관심 속에서 연등회의 가치와 의의가 구현되고 있다. 연등회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충분한 가치와 의의를 가지고 있다. 논자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등재 절차를 검토하고,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대표목록 등재기준에 연등회는 부합되는가를 살펴보았다. 총 5가지의 기준 가운데 4가지 기준은 현재 충분히 부합된다. 기준 4인 등재의 광범위한 신청의 참여는 등재 추진의 과정에서 충족될 수 있다. 연등회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를 첫째, 연등회 등재를 추진할 주체 설정, 둘째,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 수립, 셋째, 연등회의 복합적인 문화적 가치를 정리해 실질적인 신청작업을 위한 체계적 준비, 넷째, 등재를 위해 관련 기관들과 유기적인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속적인 미디어 활동, 다섯째, 연등회보존회를 중심으로 다양한 조직들과 연계하여 등재를 위한 자발적인 참여방안 모색 등으로 제안하였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를 교육문제, 미디어 기록화 문제와 아카이빙 및 복합적 활용 등으로 정리하였다. 본 논의를 통해 연등회의 참다운 가치를 확산하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길에 함께 하길 바란다.
The purpose of this discussion is to review the meaning and value of Yeon Deung Hoe (Lotus Lantern Festival) to suggest its inscription on the UNESCO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CH). This paper begins by reviewing the 366 ICH elements listed on the website of the Korea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 Among the list, a total of 45 elements bearing the characteristics of religious rituals were reviewed, with 18 from Asia, 13 from Europe, 10 from the Americas, and 4 from Africa. This paper then selects seven types of the religious rituals for further detailed analysis to identify the following characteristics. First, most of these religious rituals have an element of performance art. Second, this paper highlights the fact the rituals’ practitioners do not function as the exclusive principal agents for the artistic and functional aspects of the rituals, but, rather, that people from a variety of social classes engage in these rituals. Third, because the meaning of intangible heritage can vary across cultural traditions and cases, all rituals must be respected in terms of cultural diversity. Fourth, most religious rituals are shown to be exerting efforts to propagate engagement with the community through various applications and educational promotion, rather than insisting on the continuation of the strictly traditional ritual alone. Fifth, most of these religious rituals have a festive element. Sixth, the tools and handicraft used in each ritual act as unique symbols and cultural goods. And lastly seventh, the transmission and propagation of religious rituals depend largely on the organizational capability of the party safeguarding each ritual. The purpose The purpose of Yeon Deung Hoe is to break the Avidyā within and shed light on wisdom by physically lighting lanterns. The lanterns also represent the internal delight with which the participants seek to commune with the world and all life in this open festival. Such value and meaning of Yeon Deung Hoe continue to this day while garnering popular support and interest. Yeon Deung Hoe bears sufficient value and meaning to be considered as an ICH. This paper reviews the procedures of the inscription on the UNESCO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nd examines whether Yeon Deung Hoe meets the criteria for the inscription. Among the five requirements, Yeon Deung Hoe currently meets four. The fourth requirement that calls for nomination “following the widest possible participation of the community, group or... individuals” can be fulfilled throughout the inscription registration process. This paper identifies tasks that need to be urgently met to enable the inscription of Yeon Deung Hoe. First, establish the primary agent for pursuing the inscription. Second, establish a specific action plan for the inscription. Third, make systematic preparations for the actual nomination by organizing the composite cultural value of the element. Fourth, engage in continuous media activity to encourage organic cooperation from relevant agencies to support the inscription. And lastly fifth, network with various organizations with the Yeon Deung Hoe Preservation Society at the center to explore ways for voluntary participation of parties in support of the inscription. This paper also presents educational issues, media documentation and archiving, and comprehensive utilization of the inscription as long-term tasks for the effort. This discussion seeks to contribute to the promotion of the true value of Yeon Deung Hoe and, thereby, help pave the path toward its inscription on the UNESCO list of 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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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불교장엄과 의례에 수용된 정토사상

송법엽(보운)

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 제27권 2017.06 pp.33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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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장엄은 세존의 가르침인 사상적인 내용을 구체화하는 절차를 통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는 구체적인 행위이며, 정토사상에서는 대승불교의 이념을 실천하는 보살사상을 논장 등으로 확대하였다. 또한 의례는 종지(宗旨)가 지닌 의미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재해석되고 고유한 형식으로 정형화되는 것이고, 이러한 의례를 실천하는 방법으로서 의식으로 체계화되면서 공덕, 설법, 공양, 계율, 지혜, 감응, 청정 등으로 여러 측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토삼부경』에 나타나는 정토장엄은 초기경전인 『장아함경』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율장에서도 회화와 건축 등의 요소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데, 밀교경전에서는 국토장엄과, 법장엄이 정진으로 승화되는 과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후기 불교의 장엄이 여러 시각을 강조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은 당시에 사상적 기반이 유학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까닭으로 일반 백성들을 위하여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현상은 시각적 효과와 청각적 효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제약이었다. 따라서 불교문화는 건축과 탱화, 의례의 형태로 발전하였던 현상은 조선후기의 시대적인 특징이었다. 불교건축은 미학적인 측면과 사상적 측면을 사상적 측면을 조화롭게 생각하여 사찰의 여러 요소들의 조화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단순한 의례의 공간적인 형식에서 벗어나서 기능이 확대되었다. 불상과는 다른 형태로 발전한 조각의 부류인 불감은 조각과 회화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종합적인 불교미술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회화는 신행을 위한 공간을 이용하려는 목적에서 수용되었다. 사찰의 장엄과 불보살에게 예경하려는 목적과 대중에게 불교의 교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되었으나, 사상적인 부분에서는 정토신앙을 중심으로 밀교, 지장신앙과 화엄신앙과 습합이 일어났던 도상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정토사상이 수용된 의례로는 수륙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의례의 전체적인 구성은 정토신앙을 현실화하는 성격을 잃지 않고 일정한 신앙체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유형적 불교문화와 무형적인 불교의례에서는 여러 사상을 수용한 조선후기의 정토사상은 큰 범주에서 여러 전통적인 신앙과 당시의 민간신앙까지 융화시켜 신앙의 조화를 지향하였다. 이런 정토사상과 민간의 관습적인 내용과 유교와 도교의 내용까지 융합시키는 장엄사상과 정토사상은 단순한 융합이 아니라 역사와 시대의 반영이면서 불교의 중도적인 관점에서 사상적 조화와 현재하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졌으며 오늘에 전해지고 있는 주목할 역사적 불교의 변용이었다.
The decoration of Buddhism is a specific act that informs the general public through the process of embodying the idea of the Bhagavat's teachings. In the idea of pure-Land, the idea of Bodhisattva practicing the ideology of Mahayana Buddhism was extended to disputes. In addition, rituals are reinterpreted in the process of actualizing the meaning of the teachings of religion, and they are formalized in a unique form. Such rituals have been systematically organized as consciousness as a way to be practiced, and are spreading in various ways, such as virtue, sermon, food, godliness, wisdom, response, and cleanliness. The ornaments of the Pure-Land appearing in “Sutra of the Amitabha group” are also found in the early scriptures, “long of the Agamas”, and the elements of painting and architecture can be examined in detail. In the esoteric Buddhist scriptures, the decoration of the land and the grandeur of the dharma are expanding into a process of sublimation. However, the majesty of Buddhism in the late Joseon dynasty emphasized various aspects because the ideological foundation was based on Confucianism at the time, and the phenomenon that was actively developed for the general people was a reality that could accommodate visual and auditory effects It was a constraint. Therefore, Buddhist culture developed in the form of architecture, painting, and consciousness was characteristic of the late Joseon period. The architecture of Buddhism pursues the harmony of various elements of temple and harmony with nature in harmony with the aesthetic aspect and the aesthetic aspect, and the function is expanded by deviating from the spatial form of simple ritual. The Buddhist sculpture, which is a kind of sculpture developed in a different form from the Buddhist statue, shows the form of comprehensive Buddhist art including sculpture and painting elements. Buddhist paintings were accepted for the purpose of exploiting the space for new activities. It was created with the purpose of worshiping the majesty of Buddhist temples and Buddhism, and the purpose of conveying the Buddhist doctrine to the public easily. However, in the ideological part, the image of the esoteric thought and guardian ideology, and the combination of Huayan and the idea of Pure-land are also centered on the idea of Pure-land. Also the ceremony of accepting the idea of the Pure Land occupies an important place in the ritual of water and fire. The whole composition of the ceremony has a certain belief system without losing the character of realizing the faith of the Pure-Land. Therefore, the ideology of the clean earth in the later Joseon period, which accommodated various ideas in tangible Buddhist culture and intangible Buddhist rituals, aimed at harmonizing the faith by integrating various traditional beliefs and the private beliefs of the time in a large category. The ideas of this clean earth, the customary contents of the civilization, and the ideas of decorating Confucianism and Taoism are not merely a fusion but a reflection of the history and the time, and the ideological harmony and the present environment And it is a remarkable historical Buddhist transformation that is being conveyed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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