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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三和尙(지공ㆍ나옹ㆍ무학)의 위상과 추념
The Status and Tribute of Three Great Masters (the Reverend Jigong, Naong, Muhak) in the Joseon Korea
조선시대 삼화상(지공ㆍ나옹ㆍ무학)의 위상과 추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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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정토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7권 (2017.06)바로가기
  • 페이지
    pp.117-147
  • 저자
    황인규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0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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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is for the study dealing with status and tribute of the three great masters, the reverend Jigong, Naong, and Muhak, who worked in the late period of Goryeo and the early period of Joseon Korea. Since the time, from the late period of Goryeo and the early period of Joseon, the reverend Jigong and Naong had been called as the incarnation of Buddha and the living Buddha. And the reverend Muhak was the teacher for the King, Lee Seong'gye, and in the lineage of the reverend Naong. Their schools mainly led the buddhist world in the early period of Joseon Korea and were admired as the representative high priests also in the time of Mountain buddhism, the late period of Joseon Korea. The reverend Naong and Muhak were not only nominated as the eighteen abbots with the sixteen national teachers of the Song'gwang monastery, the place of Three Jewels, but the three great masters were also admired as the buddhist dharma teachers whenever the buddhist rituals were performed. Moreover their portraits were placed and worshiped nationwide including the Hoe'am monastery, the best place of the three great masters.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the movement of reconstructing the nation was developed and the status of the King Seongjo, Lee Seong'gye, was reviewed again. Simultaneously the status of the reverend Muhak was also re-explored with the his teacher Jigong and Naong together. As the best three great masters, Jigong, Naong, and Muhak became the figures for admiration and tribute in the Joseon Korea and the buddhist world.
한국어
본고는 여말선초기에 활동하였던 지공․나옹․무학 삼화상의 위상과 추념을 다룬 연구이다. 지공과 나옹은 여말선초 당대부터 부처의 화신 혹은 생불로 불렸으며 무학은 이성계의 왕사요, 나옹의 적통이었다. 이들의 문도가 조선전기 불교계를 주도하였으며, 조선후기 산중불교 시대에도 대표적인 고승으로 추앙되었다. 나옹과 무학이 승보도량인 송광사의 16국사와 더불어 18주지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삼화상은 불교의식에 있어서 최고의 증명법사로 신앙 되었으며, 진영도 최고의 삼화상 도량인 회암사를 비롯하여 전국에 봉안되어 추념되었다. 삼화상은 임란 후 국가재조운동이 전개되면서 성조 이성계의 위상이 제고되었으며, 무학의 위상도 더불어 부상하였으며, 무학의 스승 지공과 나옹도 삼화상의 함께 하였다. 이렇듯 지공․나옹․무학은 조선시대, 나아가 불교계의 최고의 삼화상 으로서 추념되었다.

목차

한글요약
 Ⅰ. 들어가는 말
 Ⅱ. 조선초기 무학의 삼화상 계보 확립
 Ⅲ. 조선후기 무학의 위상과 삼화상 추념
 Ⅳ. 조선후기 의식집ㆍ진영과 삼화상
 Ⅳ.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황인규 [ Hwang, In-gyu | 동국대 서울캠퍼스 역사교육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설립연도
    1988
  • 분야
    인문학>불교학
  • 소개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 간기
    반년간
  • pISSN
    1229-1846
  • 수록기간
    1998~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20 DDC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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