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of all this thesis is written in the purpose to look into the Vinaya School that the today Korean Buddhism has handed down and Tao-hsüan(道宣:AD.596-667) that was completed it. Also it considered what the true tradition of Vinaya genealogy for this generation is and about the necessity of Vinaya genealogy. As the result of contemplation, which Tao-hsüan was figure trying for Ssŭ-fen lü 四分律(T1428) to build the firm position in the China Buddhism was discovered through his life and work. In China Shih-sung lü 十誦律(T1425) focused on Kumārajīva(鳩摩羅什: AD.344-409) was not only translated uppermost but also was prevalent earlier. However at translation of another Vinaya Pitaka the comparative study of the Vinaya Pitaka was made actively and Ssŭ-fen lü 四分律(T1428) that organized the best with the support of this became pivot of the Vinaya School. Looking into the regional, the study of Shih-sung lü 十誦律(T1425) in the south area, Mo-ho-seng-ch'i lü 摩訶僧祇律(T1425) in the middle area was active. Just after that, precepts study being active gradually and the Vinaya School being valid the study of Ssŭ-fen lü 四分律(T1428) was enlarged around the north area. Whereas other Vinaya Pitaka became lost its position by degrees. Every Vinaya School continuously didn't keep Vinaya genealogy. Mostly they became merged to one side or destroyed themselves being weakened. When it happened only the Nan-shan School of Tao-hsüan was occupied with the firm position on the base of China Buddhism as the institutionalized Buddhist group. Korea Buddhism was also under the influence of the Nan-shan School The Nan-shan School established like this handed down the genealogy until now. Generally something like pedigree or genealogy was started from the mind longing for pupils placing emphasis on the authority of teacher to stick from the teacher. Also the attitude of chinese to revere the old and raise the authority of the teacher made this. The deed that made and listed the Vinaya School genealogy and insisted the system was which became the value to emphasize legitimacy of me and my teacher. This idea of genealogy focus made the Buddhism identity that was compositive and varied because of religious principle simple. And then it played a part to make the organized Buddhist monk group and made the old traditional Buddhism history illustrious. Though the excessive attitude of genealogy focus builds the wrong connection and is concerned to work exclusively about the certain people. This is irrelevant to the original lesson of Buddhism. Therefore we shouldn't place emphasis the Vinaya School of family but keep the accent on the recovery of religious precepts mind. In other words, the suggestion of the universal lesson of Buddhism religious precepts is more important. And right this will be the attitude of desirable religion practically.
한국어
본고는 오늘날 한국불교가 전승해오고 있는 율종과 그를 완성시킨 도선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이 시대에 맞는 진정한 율맥의 전승은 무엇이며, 율 계보의 필요성에 대해 숙고해보려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고찰의 결과, 남산도선(南山道宣:AD.596-667)은 사분율이 중국불교에서 확고한 위치를 구축할 수 있도록 힘썼던 인물이라는 것이 그의 생애나 저술활동 등을 통해 밝혀졌다. 중국에서는 구마라집(鳩摩羅什:AD.344-409)을 중심으로 한 십송율이 가장 먼저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서 성행하였다. 그러나 다른 율장들이 번역됨에 따라 율장의 비교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에 힘입어 가장 잘 정비되었다고 하는 사분율이 율종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남부지역에서는 십송율, 관중(關中)지역에서는 마하승기율의 연구가 활발하였다. 뒤늦게 자리 잡은 사분율은 초기에는 그다지 연구되지 않았다. 다만, 그 후 계율연구가 점차 활기를 띠게 되고, 율종이 성립되면서 사분율의 연구가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어갔다. 그런 반면, 그 외의 율장은 점점 그 지위를 잃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비교적 늦게 연구되어진 사분율은 법총(法聰)이 깊이 연구하면서 율종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혜광(慧光)이 더욱 융성시켰는데, 그에 힘입어 법려(法礪)의 상부율종(相部律宗), 회소(懷素)의 동탑율종(東塔律宗), 도선의 남산율종(南山律宗)이 성립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법원(法願)을 개조로 하는 병부율종(幷部律宗)이 사분율종의 한 파를 이루었다. 하지만 모든 율종이 다 지속적으로 율맥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대부분 한쪽으로 통폐합되거나 힘이 미약해져 자멸해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도선의 남산율종만큼은 제도화된 승가집단으로서 중국불교의 기반 위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불교 또한 그러한 남산율종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있다. 이와 같이 성립된 남산율종은 지금까지도 그 계보가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족보나 계보라고 하는 것은 스승의 권위를 중시하는 제자들이 스승에게 인정받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또 옛것을 숭상하고 스승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태도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율종계보를 만들어 명단을 나열하고, 그 계통을 주장하는 행위가 곧, 나와 내 스승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가치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계보중심의 사고는 종파주의로 인해 복합적이고 다양해진 불교정체성을 단순화시켰다. 그리하여 조직화된 승단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했고, 오랜 전통의 불교사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종교집단이 가진 지나친 계보중심의 태도는 오히려 잘못된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특정인들에 대해 배타적으로 작용될 우려가 있다. 불교 본래의 가르침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따라서 자신이 소속된 문중의 율맥을 강조하기 보다는 계율정신의 회복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이해관계를 떠난 불교계율의 보편적 가르침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현실적으로 더 바람직한 종교인의 자세가 될 것이다.
목차
I. 들어가는 말 II. 도선율사에 대하여 III. 율종의 형성과 그 흐름 IV. 율종 계보를 바라보는 날선 시각 V. 나오는 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키워드
율종율종계보도선남산율종사분율The Vinaya Schoolgenealogy of the Vinaya SchoolTao-hsüanNan-shan SchoolSsŭ-fen lü
저자
임경미(원영) [ Im Kyung-mi | 대한불교조계종교육원 불학연구소 연구위원/ 동국대학교 선학과 강사 ]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