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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 논자는 비교철학을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철학에서 차이를 찾는 행위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또한 차이를 적극적으로 철학함으로써 비교철학의 영역이 지역이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 어엿한 하나의 철학행위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비교 담론을 구성하는 방법론으로서 기능해야 됨을 밝히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 국내에서 관습적으로 해오고 있는 비교철학의 논의가 차이보다는 같거나 닮은 점, 비슷하거나 유사한 점에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는 점, 그리고 이러한 공통점 찾기의 비교철학 연구의 관례가 동서철학의 조화라는 철학 외적인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실의 문제점을 비판하고자 한다. 논자는 동서양의 철학이 직관 대 이성으로 고정되어 온 점을 문제로 삼으면서, 한국의 비교철학 풍토가 차이를 비판적으로 철학했다기보다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당위에 관습적으로 대응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비교철학의 다양한 접근 방법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하고 정밀하지 못함을 지적하면서 비교를 함에 있어 적절한 방법론이 있어야 함을 제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비교는 서로 다른 두 철학의 관계의 내재율을 찾아내는 작업이 되어야 함을 밝히고, 비교는 차이를 보되 문화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면서 각자 처한 입장을 보편화할 수 있는 철학의 기본 구조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In this article I attempted to define the comparative philosophy as activities to discover a difference of two or three philosophies. And I also emphasized that through actively doing philosophy of the difference the comparative philosophy should be a meaningfully methodological way escaping from the limits of a given locality or time, and clarified that it must be functional as a method constituting a comparative discourse. In this context, I first pointed out that the various arguments of the comparative philosophy only has been focused on finding a sameness or similarity rather than difference itself. Then I criticized a problem in which our common practice of finding a sameness from the different philosophies has been falling in making harmony of east and west philosophy. As regards the comparative method of the east and west philosophy a consideration, that is, whether intuition or reason arguments for east and west philosophies, would be problematic. In our country the atmosphere of the studies of comparative philosophy did not satisfy for a long time appropriate conditions for the sound way of comparison; not criticizing the difference of them but depending upon a conventional way of a given matter of course. And pointing out that there were not enough for various and delicate discourses for the comparative philosophy to us, I emphasized many ways of comparison again. In result, comparison of the comparative philosophy must be a work to find the inner relation of them. For the good comparison, I think, a difference would be disclosed from the philosophies. Concerning the limits of coluturalism a standpoint of a philosophy should be open again to find a universal context, namely, the original right of doing philosophy.
栗谷의 更張論은 儒學者인 동시에 官僚로서 16세기 朝鮮의 당면과제는 무엇이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서 도출한 결론이었다. 栗谷이 제기한 更張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董仲舒가 최초로 제기했던 更張은 단순히 제도 개혁을 개념적으로 제시한 것에 비해, 栗谷의 更張은 『周易』을 바탕으로 하는 본체론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둘째, 更張의 기준·내용·시기를 제시함으로써 개념을 매우 구체화시켰다. 栗谷은 國是-公論-綱維를 하나의 체계 안에서 통합하여, 更張의 내용 및 기준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更張이 恣意的으로 誤用될 수 있는 부분을 차단하였다. 셋째, 治亂을 순환론적 역사관에 따른 것으로써 해석하는 동시에,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영역을 확보함으로써, 인간의 분발을 자극하여 更張을 모순되지 않게 설명하였다. 이러한 측면은 결국 栗谷이 當代를 中衰期로 해석하고 비판하는 동시에,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방책이 되었다. 넷째, 更張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는 실현가능한 부분부터 점진적으로 更張이 이루어져야 하며, 更張의 대상은 현실에 있어서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弊法이다. 그리고 이러한 更張이 君主의 修己와 立志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更張에서의 君主가 가져야 할 결단력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栗谷의 更張論은 이론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更張을 충분히 해명하고 있으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國是와 時宜의 측면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하였다. 더욱이 그는 更張의 當爲性과 指向點을 제시함으로써, 當代에 실현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更張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순수 학자들이 갖기 쉬운 지나치게 이상화된 모델을 제시하는 오만함을 범하지도 않았다. 栗谷의 更張論이 갖는 최대의 장점은 인간에 대한 긍정과 희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治世와 亂世의 반복이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그 가운데에서 인간이 주체적 자각과 적극적 노력을 통해서 亂世를 治世로 바꿀 수도, 治世를 亂世로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栗谷은 君主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며, 끊임없이 修己와 更張을 요청했다. 이러한 측면은 栗谷의 更張論이 특수한 하나의 선택된 인간인 君主의 修己가 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믿음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栗谷の更張論は儒学者と同時に官僚として16世紀朝鮮の当面課題は何であり、それを解決できる方案は何かに対する深い省察を通じて導き出した結論だった。 栗谷が提起した更張は次のような特徴を持つ。一、董仲舒が最初に提起した更張は単純に制度改革を概念的に提示したことに比べて、栗谷の更張は『周易』を土台にする本体論的な根拠を提示した。 二、更張の基準・内容・時期であることを提示することによって概念を非常に具体化させた。栗谷は国是-公論-綱維を一つの体系中で統合して、更張の内容および基準を明確に提示することによって、更張が恣意的で誤用できる部分を遮断した。 三、治乱を循環論的歴史観に従ったことで解釈すると同時に、これに対応する人間の領域を確保することによって、人間の奮発を刺激して更張を矛盾しないように説明した。このような側面は結局栗谷が当代を中衰期と解釈して批判すると同時に、よりましな未来に進む方策になった。 四、更張が指向しなければならない方向を提示した。彼は実現可能な部分から徐々に更張が成り立つべきで、更張の対象は現実において国民らに苦痛をあたえる弊法だ。そしてこのような更張が君主の修己と立志から出発するという点を強調することによって、更張での君主が持たなければならない決断力の重要性をいった。 栗谷の更張論は理論的な側面にも更張を十分に解明していて、その内容にも国是と時宜の側面に対して十分に考慮した。さらに彼は更張の当為性と指向点を提示することによって、当代に実現可能な最善の方法で更張を提示したという点で、純粋学者らが持ちやすい過度に理想化されたモデルを提示する傲慢さを犯すこともなかった。 栗谷の更張論が持つ最大の長所は人間に対する肯定と希望にあるといえる。彼は治世と乱世の反復が歴史の流れというものに対して否定することはなかったが、その中で人間が主体的自覚と積極的努力を通じて乱世を治世に変えることも、治世を乱世に変えることもできると考えた。そういう過程で栗谷は君主の重要な役割を強調して、絶えず修己と更張を要請した。このような側面は栗谷の更張論が特殊な一つの選択された人間の君主の修己が正に世の中を変え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強い信頼から出発したという点を如実に見せる。
칸트의 비판철학에서 취미판단의 선험적 종합성 - 대상판단, 행위판단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동국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철학사상문화 제11호 2011.01 pp.5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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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비판철학에서 오성에 의해 자연세계를 입법하는 대상판단과 이성에 의해 자유세계를 입법하는 행위판단은 공히 선험적 종합판단이다. 칸트는 심의능력들의 관계를 통해 대상판단과 행위판단의 이와 같은 선험적 종합성을 증명함으로써 자연과 자유의 영역에서 새로운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수립했다. 하지만 자연과 자유의 세계는 서로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판단력이 자연과 자유를 목적의 개념에 따라 매개하여 입법하는 능력임을 보임으로써 자연과 자유의 형이상학을 하나의 지반 위에 세우고자 했다. 따라서 반성적 판단력의 작용을 통해 결과하는 취미판단 역시 선험적 종합성을 지니는 것이 되어야 했다. 취미판단은 대상판단과 행위판단을 내리는 중에 수반된 쾌․불쾌의 감정에 관해 내려지는 판단이며 그 술어로 취미의 개념이 자리하게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취미판단의 주어는 상상력과 오성의 관계라는 선험론적 기제에 따르는 것이므로 선험적이며, 그 술어가 반성적 판단력이 고안해 낸 ‘아름다움’의 술어가 결합된다는 점에서 종합적이다. 문제는 감정의 주관성과 그에 따른 취미의 술어가 어떻게 객관적인 보편성을 갖는가 하는 점이다. 칸트는 이 문제를 여러 주관들이 이러한 취미의 선험적 종합성에 관한 전달가능성의 기제, 즉 공통감을 통해 소극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Both of the judgements, of object which legislate the world of nature through understanding and of action which legislate the world of freedom through practical reason, are synthetic a priori judgement. Demonstrating synthetic a priority of those judgement, had Kant established the possibility of new metaphysics in each of worlds, namely, of nature and freedom. But these two different world still remain as different domain that are dominated by totally different two laws, that are law of nature and of freedom. Kant had made an attempt to mediate these two different laws dominating metaphysics through the reflective faculty of judgement in his third critique, the Critique of Judgement. This faculty of judgement, which also has transcendental formality like other cognitive faculties of subject, legislates by mediating the domain of nature and freedom through concept of purposiveness. By showing this mechanism of the faculty, had he thought that would be possible to establish on the one and only ground of new metaphysics. In this respect, must the judgements of taste, which are made by reflective faculty of judgement, also have the synthetic a priority. Therefore a judgement of taste is synthetic a priori judgement, which is made about the accompanied feelings of pleasure or unpleasure when judgement of object or action is on making, and its concept of predicate is of cocepts of taste. These judgements are a priori because their subject terms are originated in the transcendental mechanism of the relation of imagination and understanding, and are also synthetic because their predicate terms are sythesized by the concepts which is delivered through the effects of reflective faculty of judgement. A remained problem is of that how judgement of taste could get the universal validity. Kant had tried to solve passively by choosing the way of that the 'common senses' of the cognitive subjects which communicate those synthetic a priority of the judgements of tastes.
자원고갈,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자연재해와 생태계교란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과도한 경제성장으로 인류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이제 ‘인류의 지속가능성’은 경제성장을 위한 수식어가 아니라 인간의 존립과 안녕을 위한 핵심어가 되고 있다. 오늘날 가장 큰 화두가 ‘인류의 지속가능성’이라 한다면, 자연을 간과해온 전(前) 생태적 사회에서의 효용성, 생산성, 합리성 등의 평가 기준들은 재고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인류의 지속가능성 문제와 관련해서 합리주의를 두 가지로 나누어보았다. 하나는 편협한 인간중심적 입장에서 인간이 자연과 환경을 지배할 수 있다는 ‘지배적 합리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류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요인을 고려한 합리적 선택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태적 합리주의’이다. 지배적 합리주의는 자원고갈,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등 생태적 비합리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환경과 생태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배적 합리주의를 넘어선 확장된 합리주의로서의 생태적 합리주의가 필요하다. 지배적 합리주의는 자연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자연을 지배하려다 실패하였다. 인류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풍요로운 자연은 잘 보전하고, 이미 파괴된 환경과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자연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자연을 가장 잘 경영할 수 있다. 생태적 합리주의는 자연과 생태계의 복잡한 유기적 인과성을 파악하고, 자연의 도구적 가치뿐만 아니라 비도구적 가치도 고려하며, 미래세대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의 안위도 헤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태적 합리성을 고려하면서 지구를 생태적으로 경영할 때 인류의 지속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The natural disaster and the ecological disturbance are getting worse because of environmental pollution, climatic change, natural resource depletion etc. We invited these problems with the excessively high growth of economy. The sustainability of mankind is not the rhetoric for the growth of economy but the key word for the survival and welfare of mankind. If we recognized that the sustainability of mankind is the most important topic, we should reconsider the valuation bases for utility, productivity, rationality in pre-ecological society. I split rationalism into two groups in relation to the sustainability of mankind. One is the dominant rationalism that human beings can control environment and may dominate nature from the narrow anthropocentrism, and the other is the ecological rationalism that human beings must make rational choices considered ecological factors for the sake of their sustainability. The ecological irrationality has increased greatly by the dominant rationalism. In other words, the dominant rationalism has only made environmental pollution, climatic change, and natural resource depletion worse. Therefore, the ecological rationalism as the extended rationalism has been made the urgent demand for the solution to ecological problems. The dominant rationalism has failed because it tried dominating nature without full understanding of her. For the sake of the sustainability of mankind, we have to preserve abundant nature, and restore destructed environment and eco-system. The person who fully understands nature can manage her well. The ecological rationalism insists that we have to grasp the complicated organic causation of nature, evaluate the non-instrumental values as well as instrumental values of nature, and consider the welfare of non-human beings as well as human beings. If we managed the earth with the ecological rationality, we could raise the sustainability of mankind.
동국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철학사상문화 제11호 2011.01 pp.10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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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엇이든 단순히 ‘인간의 행위’가 아닌 ‘인간적인 행위’라면 그 행위에는 하나의 전제되는 조건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행위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의 추구’라는 것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것이고 대부분의 고․중세 철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행복을 ‘진리에 대한 관조’로 보았고, 중세철학자들은 ‘최고선’으로 규정하면서 이를 ‘신적 존재’와 동일시하였다. 하지만 고․중세 철학에서는 ‘행복하다’는 것이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혹은 행복의 존재론적인 특성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고 있으며, 또한 행복이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이들의 결론은 ‘행복지수’를 통해 드러나는 현대인의 행복개념에는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현대인이 ‘행복지수’라는 것을 통해서 고려하고 있는 ‘행복’이란 지금 ‘현재의 개별적인 삶’ 안에서 유기적이고 총체적으로 고려된 ‘실존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조건들 안에서 고려하고 있는 것은 특히 근대철학자들에 있어서인데, 이는 칸트의 사유 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지속적인 발전”이나 “새로운 완성” 등과 같은 삶의 진보를 헤겔은 “현재의 만족한 상태에 대한 지속적인 확신”을 나아가 니체는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내적인 힘”에 대한 느낌 등을 행복의 조건으로 고려하였다. 즉 근대철학자들은 인간의 행복에 대한 조건으로서 ‘한 개인의 개별적인 삶의 다양한 조건들’을 특히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로부터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 두 가지 차원에서 규정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에 요구되는 모두에게 유사한 ‘존재론적인 질서로부터의 조건’과 자아가 형성된 이후에 요구되는 ‘자기 동일성에 의한 조건’이다. 본 논문에서는 현대 실존주의자들의 개념을 빌어 전자에 의한 행복을 ‘존재의 충만’으로 그리고 후자에 의한 행복을 ‘자아실현’으로서의 행복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에서는 ‘존재의 충만’과 ‘자아의 실현’이 어떻게 주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논하고 있는데, 이를 ‘관계성’에 대한 올바른 정립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에서는 개인의 동일성이란 <너>에 대한 <나>의 관계를 통해서 주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관계정립’을 통한 ‘자기 동일성의 획득’ 없이는 결코 ‘내적인 충만’을 획득할 수 없는 것이 인간됨의 조건과 같기 때문이다. 나아가 본 논문은 이러한 관계성의 확립을 위한 방법론에 대해서 현대 유신론적인 실존주의자인 ‘가브리엘 마르셀’의 ‘상호주관성’의 개념과 ‘모리스 네동셀’의 ‘의식의 상호성의 개념을 통해서 논하고 있다. ‘의식의 상호성’이나 ‘상호주관성’은 기능주의에 의해 실추된 개인(인격)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데 이는 <너>에 대한 <나>의 열림을 말하는 것으로 ‘자기에 대한 이해’와 ‘너에 대한 이해’라는 상호적 이해를 통해 인격의 소통과 일치를 유발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인격적 차원의 일치는 곧 나의 깊은 자아와 너의 깊은 자아가 서로 교감을 하고 소통을 하며 일치를 이루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격과 인격이 소통하는 진정한 인간적인 삶 안에서만 한 개인의 가치가 최고로 빛을 발할 것이며, 곧 진정한 ‘행복감’을 유발 할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행복한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인 조건으로서 <최소한의 복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의지>, <인문학적 가치를 존중하고자 하는 시민의식>, <개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함께’라는 공동체정신이 살아있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의 ‘개별성 그 자체’를 존중하는 똘레랑스의 정신> 등을 제시하며 결론 맺고 있다.
S'il est un acte humaine non pas un acte d'homme, tous les actes présuppse une condition. Cette condition est que son but final est la recherche du bonheur. Cette position est celle d'Aristote et présque tous les philosophes au moyen-âge sont en accord ave lui. Aristote a considéé ce bonheur comme 'la contemplation de la vérité', et les philosophes médiévaux sont l'apellé 'le bien suprême' et identifie avec Dieu. Or, les philosophes antiques et médiévaux ne précisent pas l'état de ce bonheur, et leurs conclusion que le bonheur n'arrive que comme finalité, ne conforme pas avec la notion moderne du bonheur. Parce que le bonheur moderne qui resort du 'indice du bonheur' signifie l'état existentiel comprnant tous les conditions au présent. C'est pour les philosophes modernes qui considére la bonheur dans la vie pésente, en particulier chez Kant. Et pour Leibniz le développement contiu ou l'achèvement nouvel, et chez Hegel la convition sur l'état satisfait au présent, et chez Nietzsche la force intérieur qui peut surmonte la difficulté, ce sont les conditions du bonheur. C'est-à-dire les philosophes modernes sont concidère 'les conditions diveres dans la vie individuelle d'un homme' comme condition du bonheur humaine. De cette considération nous pouvons définir la condition du bonheur en deux dimentions. Le prmière est 'la conditon de l'ordre ontologique' qui est exigée à tous les hommes en resemmblance avant avoir l'identité de soi, et le seconde est 'la condition par l'identité de soi' aprés avoir l'identité de soi. Dans cette recherche nous avons définie par les termes des existentialists le bonheur de la prmière condition comme 'plénitude de l'être' et celui de la scende comme 'bonheur de l'achèvement de la conscience de soi'. Puis nous avons essayé comment celles-ci sont possible. Nous avons le considéré tout d'avord à la constitution de la relation humaine. 'La philosophy de l'autre' chez Lévinas manifeste que l'identité de soi ne possible que par la relation avec 'toi'. Et la consition humaine ne nous permet pas 'la plénitude intérieur' sans cette relation du 'toi' et 'moi'. Finalement nous avons recherché le moyen d'établir cette relation humaine qui est comme condition de la plénitude ontologique. C'est la notion de 'la subjectivité réciproque' chez Gabriel Marcel et celle de 'la réciprocité des consciences' chez Maurice Nédoncelle que sont le moyen véritable de celu-ci. 'La subjectivité réciproque' et 'la réciprocité des consciences' sont pour eux la seule chose qui peut rétablir 'la dignité humaine' tombée par la fonctionalisme moderne. Ce sont l'ouverture du moi vers le toi, et la porte qui permet la communication au niverau de la personalité. Cette communication est aussi ce qui permet l'unité intérieur du moi et du toi par la connaissance réciproque de du moi et du toi. Cette connaissance et cette unité sont ce qu‘on appelle l'amour. Dans cette véritable de vie humaine où il y a une communication de la personne à la personne, le vrai vealeur de la personne est illumine est le vrai bonheur est possible. Dans la conclusion de cette recherche nous avons également manifesté les conditions sociales qui peut permettrait cette condition de réciprcité humaine ainsi : <la volonté des civiles qui veulent la prospérité sociale>, <la conscience des citoyens qui respecte la valeur des humaines>, <Les ambiences qui respecte l'esprit communautaire de 'avec'>, et <l'esprit de tolérence qui respecte les personalités elles-mêmes des indidvidus> etc.
영지주의는 현대에 와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서양의 고대종교다. 1945년도에 발견된 영지주의 문헌은 고대 종교사 연구, 특히 초기 기독교 연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 왔다. 이전에도 영지주의에 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알려진 내용 대부분이 2세기에 영지주의를 탄압하고 말살시켰던 교부들에 의해 언급된 것이었고, 영지주의 문헌은 없었다. 이에 근거한 많은 주장 중에 특히 새로운 것은 초기 기독교의 모습이 동양의 종교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이 유사성을 영지주의에 나타나는 궁극적 실재의 기원과 그 특성을 살펴보고, 동양의 궁극적 실재와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를 밝혀다. 기원 문제는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고대 그리스 철학 연구자인 콘포드의 주장과 라다크리슈난의 주장을 비교해 보고, 거기서 나타나는 영지주의의 궁극적 실재가 어떻게 규정되었는지를 설명하였다, 이러한 규정에 근거해 영지주의 궁극적 실재가 문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신과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가졌으며, 오히려 동양의 궁극적 실재와 같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구원의 의미도 영지주의자들은 오히려 동양 종교에서 주장되는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을 밝혔다.
The original Christian did not see Jesus as an historical man. They viewed Jesus as the mythical hero of a symbolic teaching story, which represents the spiritual journey leading to the experience of awakening they called 'gnosis', or 'knowing'. Such teachings of awakening are not exclusively Christian. Throughout history man of all faiths have woken up to oneness and love. I use the broad term 'Gnostic' meaning 'knower' to refer to all such individuals because, although they express their insights in the various languages of their diverse cultures, they all talk about the experience of awakening or gnosis. Gnoticism is sometimes called 'the perennial philosophy' because it has been found in all cultures and all times. It is not that Gnotics all say exactly the same thing. they do not. It is rather that their teachings like fingers pointing from different perspectives to the samr experience of gnosis. Unfortunetly, most people focus on the fingers and missed point. This is Literalism. 'Literalists' take the Jesus story as a literal account of historical events. Literalist religions are club for people who want to worshipthe finger of their founder as one true finger, but who have no understanding of experience of awakening towards which it points.
동국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철학사상문화 제11호 2011.01 pp.150-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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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생사관은 불교로 대표되는 종교적 요인과 유교․도교로 대표되는 사상 철학적 요인의 영향 하에서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인의 생사관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불교적 요인의 작용은 덜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적 요인은 현실적 관념에 영향을 주었다 기 보다는 내세적, 즉 죽음 이후의 관념에 많이 작용했고, 이에 비해 유교․도교적 요소는 절대적으로 중국인들의 생사관에 영향을 미쳤으니, 이러한 생사관은 이후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순국관념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즉 중국인들의 순국관은 모두가 유교사상의 본질, 즉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이야말로 인덕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라는 가치관을 그대로 의식화한 것이고, 그러한 이론적․정신적 구도 하에서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들을 이용하였으며, 그러한 가운데 희생되는 이들에게 순국이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던 것에 불과했다고 하겠다. 이에 비해 일본인들의 생사관에 영향을 준 것은 불교 쪽이다. 이는 幕府時代의 사회적 배경과 관계가 있는데, 막부시대의 武士道는‘죽는 것’으로 인식될 만큼 언제나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이는 봉건적 관계 하에서 자신의 영주를 받들려면 생에 집착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점점 강화되면서 죽음은 곧 자신의 책임이나 잘못을 면해주는 免罪符와 같은 것으로 생각되게 되었다. 이처럼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이 갖는 의미는, 첫째, 자신의 잘못을 죽음으로서 사죄한다는 의미가 있고, 둘째, 이 세상에서의 살 권리를 포기하는 것에 의해 책임을 다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셋째, 이 세상에서는 실패를 했지만, 내세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현세의 생활이 괴로우면 괴로울수록 사후의 세계에 대해 꿈과 희망을 갖고, 현세에서 아무런 희망을 느끼지 못할 때는 스스로 생명을 끊고 내세에서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인들의 순국은 모두가 현실참여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성취코자 한 죽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내적인 환경적 요소에서 생사관이 정립되었다 기 보다는, 대외적 요소의 비중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한 가운데에서 전체 형세의 움직임을 조절하면서 그에 적응해 살아와야 했던 한국인은 언제나 피해의식 속에서 한스런 삶을 영위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죽음에 대한 인식도 현실 탈피나 내세에 대한 기대 등을 생각하기도 전에, 하루하루를 어려움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야 했던 한국인은 죽음조차도 한이 맺혀서 나타난 결과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한 최후 수단으로서의 죽음은 저항의식으로 승화되어, 역사적으로 그 수많은 침략과 수탈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왔고, 또한 오늘날의 부흥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들의 순국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中國人の生死觀は佛敎で代表される宗敎的要因と儒敎․道敎で代表される思想哲學的要因の影響の下で形成された。しかし、中國人の生死觀が形成される所で、佛敎的要因の作用は微弱であるといわれる。佛敎的な要因は現實的觀念に影響を与えたというよりは、來世的、卽ち、しんだ以後の觀念に多く作用した。これに比して儒敎․道敎的な要素は絶對的に中國人の生死觀に影響を及ぼし、國家のための犧牲する殉國觀念にも大きな影響を与えた。換言すれば、中國人の殉國觀は儒敎思想の本質である“人德の價値を追求する”という價値觀がそのまま意識化されたことであり、そのような理論的․精神的な構造の下で、統治者は自分の理想を實現させる過程の中で犧牲されたひとびとに与えたのが殉國という呼稱である。すなわち、中國でいわれる殉國という意味は統治者のための犧牲であるという意味に過ぎなかったのであろう。 これに比して、日本人の生死觀に影響を与えたのは佛敎の方であった。これは幕府時代の社會的な背景と關係があった。幕府時代の武士道というのは‘しぬこと’であると認識されたほど、いつても‘しぬこと’に對する準備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これは封建的關係の下で、自分の領主を仕えれば、‘いけること’に執着しては自分の責任を果すのができなかったからであった。このような意識が段々强化されながら、‘しぬこと’は自分の‘責任’や‘眞違い’を免れる免罪符のように考えることになった。日本人にとって、‘しぬこと’が持っている意味には、自分の眞違いを‘しぬこと’で謝罪するという意味があり、この世の中でいける權利を抛棄することによって責任を果すという意味があり、この世の中では失敗したが、來世にはうまくいけることを期待するという意味も含まれている。そのため、日本人は現世の生活が惱まければ惱むほど、死後の世界に對して夢と希望を持ち、現世でどのような希望も感じられなかった場合には自分で命を絶ち切り、來世での幸わせを祈ることになった。 これに比して韓國人の殉國意識には、現實參與を通じて自身の目標を成就しようとする意識がある。卽ち、對內的な環境的要素で生死觀が定立されたということよりは、對外的な要素の比重がもっと大きか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東アジアの眞中で位置されている韓半島のひとびとは、全體的な形勢の動きを調節しながら、この動きに對應しながらいけるべきであったので、韓國人の意識の中にはいつも被害意識が持たされていた。それから‘しぬこと’に對する認識も現實の脫皮や來世に對する期待等を考える前に、苦しさを耐えながらいけるべきであったから、‘しぬこと’さえも現實克服のひとつの方法として考えた。このような最後の手段としての‘しに’は抵抗意識に昇華され、歷史的に數多い侵略を受け取ったにもかかわらず、國家を守りつずき、また今日の復興も起こした精神的な役割をしたのであった。かかる点で韓國人の殉國は現實的であり、具體的な效果を目的とする行爲であったといえろう。
漢詩를 통한 서울의 도교문화 玩賞 - 조선 전기 사대부의 한시에 나타난 昭格殿의 情景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철학사상문화 제11호 2011.01 pp.17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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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 漢陽에 소재했던 道觀인 昭格殿(昭格署) 및 그 주변 지역의 情景에 관해 고찰한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科儀道敎와 修煉道敎가 함께 존재하였고, 중․후기에는 수련도교와 도교문학이 굳건한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적지 않은 유학자들도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는 도교에 대해 호의적이었거나 적어도 배타적이지 않았음을, 그들이 남긴 漢詩를 통해 분명히 확인해 볼 수 있다. 조선조의 과의도교가 남긴 유적과 문화는 대개 현재의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서울의 역사 문화에 관한 연구에서 도교 유적의 발굴 및 그에 대한 탐구는 儒․佛에 관한 것에 비해 현저히 소략하고 도외시되는 실정에 있다. 우리의 전통 철학사상은 물론 문화 차원에서 서울의 균형 잡힌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조선조 과의도교의 실상에 관한 도교학적 검토와 연구를 보다 다양하고도 종합적으로 이루어 내야 한다. 조선조 과의도교의 중심이었던 소격전의 景觀이 불러일으킨 당시 문인들의 情緖와 情意는 漢詩 속에 농축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 한시에 담겨 있는 情景의 일단을 玩賞해 볼 때, 거기서는 인간의 사회 현실과 이상 세계가 다름 아닌 인간의 지극한 精誠․誠敬에 의해 소통․합일되는[昭格]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들 한시 속에 농축되어 있는 정경을 완상함으로써, 우리는 오늘날의 우리 자신을 위한 또 다른 긍정적인 정경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인간의 상상력은 주로 물질적 목적에 집중됨으로써 인간 자신의 행복을 이루는 바탕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각종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근원으로 전락하고 있다. 삼청공원에다 조선조의 도교 문화를 반영하는 詩碑라도 세워 그 정신을 음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볼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先人들이 보여준 개방성과 자유 의식 그리고 융화의 정신을 확충할 수 있는 바람직한 상상력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This essay deals with ‘the transcendental unity of subject and object’ of the Taoist monastery and their related sites located in Han-yang, the capital during the Jo-seon dynasty. During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ritual Taoism and internal alchemistic Taoism existed in harmony, and the Taoist internal alchemy and literature still kept their traditions until the mid and late periods. In addition, we find a surprising fact through the examination of the classical verses composed by several famous Confucianists: that they personally showed a favorable attitude, or, at least, not exclusiveness, to Taoism at that time. Most historic sites and heritages of the ritual Taoism of the Jo-seon dynasty are concentrated in Seoul. In studying the history of Seoul, however, the excavation and research of the Taoist ruins in the present time have been noticeably disregarded in comparison with the research of Confucianism and Buddhism in the same area. In order to produce a well-balanced image of Seoul in the sphere of our traditional and philosophical thought and culture, the research of the essence of ritual Taoism should be considered comprehensively from all viewpoints and in the various fields. The feelings of our ancestors stimulated by the scenery of the two representative Taoist monasteries, So-gyeok-joen and Sam-chung-jeon, which were the centers of the ritual Taoism of the Jo-seon dynasty, has survived in the classical verses. 'The transcendental unity of subject and object' of the Taoist monasteries expressed in the classical verses reveals that the aspects of both the real world and the ideal world are unified in human's perfect devotion. Through the appreciation of 'the transcendental unity of subject and object' expressed in the classical verses, we can develop another 'the transcendental unity of subject and object' for ourselves. Nowadays, the imagination of human beings, focusing on the pursuit of sensual pleasures, has degenerated into being the cause of various conflicts in society instead of being the origin of real happiness. Thus, I can confirm that if we can erect a monument of the classical verses possessing the Taoist spirits of the Jo-seon dynasty in the Sam-chung Park and can appreciate them, it will provide us a great benefit of learning a desirable imagination to cultivate our ancestors' spirits such as an open-mind, free-will, and har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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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철학사상문화 제11호 2011.01 pp.22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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