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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思想 [일본사상]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일본사상사학회 [Korean Association For Japanese Thought]
  • pISSN
    1229-9235
  • 간기
    연3회
  • 수록기간
    1999 ~ 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 십진분류
    KDC 153 DDC 181
제16호 (11건)
No
1

日本の仏教と戦争 - 鈴木大拙を中心として -

末木文美士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6호 2009.06 p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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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0원

近代日本は、天皇絶対主義の体制下で、一方でアジアに対する侵略を進めるとともに、他方で国内の批判勢力に対して厳しい弾圧で臨んだ。特に1931年の日中開戦から1945年の敗戦に至るまでの戦争の時期には、言論の自由が著しく制限された。このような情勢の中で、良心的な知識人はどのように発言し、行動したのであろうか。ここでは、仏教の立場に立つ知識人の代表として鈴木大拙(1870-1966)の場合を取り上げる。大拙は、若い頃の著作『新宗教論』(1986)においてすでに、一方では国家さえも否定するラディカルな主張をするが、他方では国家のための戦争を認めるという両義性を持っていた。このような曖昧さは、1931年以後の戦争の時期にも共通する。1941年にアメリカと開戦したときには、大拙は戦争批判の心情を強く持っていたが、それを公的に表明することはなかった。しかし、戦争末期の1944年になって、「日本的霊性」を主張することによって、ようやく戦争遂行のイデオロギーである「日本精神」を批判するようになった。

2

동아사아와 함석헌의 평화사상

박재순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6호 2009.06 pp.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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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0원

이 글의 목적은 동아시아 특히 일본, 중국, 한국의 평화공존과 공동체적 협력을 위한 평화의 철학을 모색하는데 있다. 동아시아의 전통문화와 역사의 성격을 평화와 관련하여 검토하고 한국의 역사적 고난 속에서 형성된 함석헌의 평화사상을 제시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평화 논의와 평화철학을 모색하는 실마리를 삼고자 한다. 오늘 경제․문화적으로 급속히 전개되는 세계화과정은 동북아시아를 넘어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지향하고 동아시아를 넘어서 세계평화공동체를 모색할 것을 요구한다.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주체와 주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고 대립시키는 이원론적이고 반신적이고 반공동체적인 서구기술문명의 경향성을 극복하고 통합적이고 영성적인 문명을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식민통치와 정치문화의 주종관계를 극복하고 민중의 관점에서 국가의 벽을 넘어서 세계평화의 이념과 전체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함석헌의 평화사상은 주목될 필요가 있다. 함석헌은 일제 식민통치의 고통과 외세의 정치․문화적 지배를 극복하고 민중의 관점에서 세계평화와 인류의 전체의식을 추구했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함석헌은 비폭력 평화의 원칙을 견지했으며, 세계평화의 길을 탐구하였다. 2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고 한국의 간디로 알려지기도 했다. 민족국가들의 갈등과 전쟁 속에서 평화사상을 형성하고 평화의 비전을 제시할 뿐 아니라 비폭력 평화의 원칙을 가지고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왔다. 그는 동서정신문화와 사상의 만남과 종합을 지향하면서 민주적인 세계평화사상을 형성하였다. 함석헌은 한국의 식민지 백성으로서 제국주의적 민족국가주의를 극복하고 민족의 정신문화적 주체성을 강조하면서도 배타적 민족주의를 벗어나서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는 세계평화주의를 추구했다. 씨 ‘씨’은 유영모와 함석헌에 의해서 민중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씨’는 씨앗을 ‘’은 알맹이, 알(egg), 맨(bare, net)을 뜻한다. (grassroots)을 평화의 주체로 세우는 함석헌의 평화사상은 침략적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의 갈등 속에서 형성 되었으며, 동아시아의 전통종교문화와 서구의 정신문화, 동아시아와 한국의 독특한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민족국가주의를 극복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적 미래를 열어 가는데 기여할 수 있다.

In order to build community of peace getting over the religious cultural disparity and economical discrepancy among the nations of East Asia, we need a philosophy of peace based on the perspective of people, deep spirituality and world vision. Hahm Sok Hon suggested a philosophy of peace based on the perspective of people and world vision. His philosophy of peace came out from the experiences of historical violences under colonial domination by Japan, division and war of north Korea and south Korea, and military dictatorship of south Korea. His philosophy is based on principle of spontaneity, weakness, tenderness of life and non-violence. He suggested world peace philosophy, getting over the barriers of nation states but appreciating the culture of 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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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본 연구 목적은 ‘한국과 일본의 사상․문화비교’를 통해 한국도시정체성을 근원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기반으로 21세기 한국문화도시의 컬쳐노믹스로서 가능성을 문제제기 차원에서 고찰함에 있다. 현재 글로벌차원의 초경쟁적 환경이 도래하면서, 수준 높은 문화 없이는 어떤 도시도 경쟁우위를 창출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한국의 서울도 고유한 문화로 특별한 브랜드가치 있는 도시를 만들어 경제를 선도하겠다고 하면서 컬쳐노믹스를 내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서울의 시정을 살펴보아도 ‘서울의 매력’이 막연하게 주장되거나 ‘디자인도시’ ‘한강르네상스’라는 외면적인 아름다움과 쾌적함이 강조되는 것이지, 도시를 하나로 묶어낼 통합적 이미지가 분명하지 않다. 한편, 로마,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 거점도시들은 고유문화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면서 컬쳐노믹스로 전환하고 있다. 파리하면 그 도시 고유의 자유스러움과 인간들이 금방 떠오른다. 파리는 그런 정체성을 바탕으로 예술의 도시를 만들었고, 관광의 도시가 되었다. 나아가 미래에 장소, 문화, 경제가 공생하는 파리의 브랜드를 더욱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제 도시는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이미지’이며 마음속의 ‘공간’이다. 도시 이미지가 주는 풍부한 상징은 경제와 공생하게 되며, 결국 장소, 문화, 경제가 복합된 개념이 브랜드로 표시되어 가장 신뢰도 높은 상품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국도시는 컬쳐노믹스를 이룩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야 한다. 유명한 세계도시를 모방하거나 마치 문화재 관광사진을 찍어내는 것처럼 표피적으로 한국적 정체성에 접근해서는, 매혹적인 이미지를 창출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문화예술 공연을 늘리고, 한강르네상스 등의 프로젝트를 한다 할지라도,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심층적 접근 없이는 탁월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외면적 쾌적함은 그저 세계 유명도시에서 접할 수 있는 하나에 불과하여, 인간의 감성을 깊이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적인 자금의 투입이 기획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한국의 정체성문제는 도시관광학, 건축학 등 실용학문에서 단편적으로 논의되는데 그치고 있으며, 인문학계에서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문화도시를 가로지르는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 그 매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해 온 사상과 문화를 빼놓고는 말하기 어렵다. 사상과 문화에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지역의 생각, 미의식이 담겨있고, 이는 어떠한 인위적인 화려함보다도 그 자체로 강한 감동과 울림을 준다. 한국의 매력도 오랜 세월 형성되어 온 사상과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의 정체성 안에는 인류보편적인 것을 기반으로 하고, 동양의 특징을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적 세계가 생생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세월에 녹아져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온 것이기에, 모방 불가능하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쟁력을 지닌다. 더구나 한국문화 안에는 ‘기능과 분석’의 근대적인 것을 뛰어넘어 ‘영성과 자연’, 그리고 ‘평화’라는 21세기를 열 수 있는 자산이 풍부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고유의 특징은 일견 알기 쉬운 듯이 보이지만, 핵심을 짚어내기가 무척 난해하다. 필자는 일본역사를 전공해오면서, 한국과 일본이 정반대의 사상적 특징을 지니고 있고, 그 때문에 한국문화는 일본이라는 타자와 비교할 때 그 특성이 명료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졸고,『한국인의 일본사』(현암사, 2008) 이 글에서는 한국문화의 특징을 일본이라는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역사 속에서 형성된 ‘문화와 인간’은 하나의 관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속에서 투영되어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재료가 된다. 한국의 ‘문화와 인간’이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일본도시와의 비교, 올림픽, 월드컵 등을 통해 살펴보겠다. 이상의 주제는 하나의 논문으로 요약해내기가 너무나 방대하여, 치밀한 실증적 작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본 논문에서는 큰 틀에서 한일사상과 문화의 특성을 유연한 문체로 논의해 보고, 이러한 한일의 특징이 어떻게 도시 속에 투영될 수 있는지 문제제기 차원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미래 한국 도시가 ‘문화와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무엇을 추구할 지 분명해질 것이며, 다른 지역과 비교하기 힘든, 한국적 독특함 속에 21세기가 지향하는 정신과 풍부하게 맞닿아 있음을 확인하면서, 컬쳐노믹스로서의 한국 문화도시에 대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本稿は今までほとんど取り上げられることのなかった韓国の都市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韓日思想と文化比較」を通じて根源的に考察し、これを基に韓国文化都市のカルチャーノミックスとしてその可能性を提示した。日本の思想と文化には集団と形式美が強く現われており、これらを基盤として日本の都市も各地域の固有性を徹底した管理を通じて体系的に可視化させ見せるなど他の追随を許さない形式的機能として人々を感動させているということを確認した。これに反して韓国の思想と文化には人間の本質の深層追求、奥妙な自然美が強く現われており、これを基盤として韓国の都市は「自然さ」を醸し出すデザインで、また万人を一つにする楽しく興がつきない広場、度重なる苦難を切り抜いた平和精神を盛り込むことが可能であること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自然さ、楽しく興がつきない広場、平和」という韓国の都市に現われた文化は21世紀の時代精神と密接に相接しており、カルチャーノミックスとして韓国文化都市への力強い可能性を提示することが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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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0원

The sample researches the broadcasting power of empire Japan which boils the fact that in the goal. Drew the shape of the broadcasting power which becomes known from network formation process inside of namely empire Japan and, the radio wave’ propagation led and to observe features radio broadcast as the sending person of cultural shaking tried. Specially the cultural power the political events which confirm the overwhelming power of broadcasting, cultural (Berlin Olympic) makes the real value of radio broadcast confirm from event inside. The concept which is a cultural power the entity which is concrete is visible in the eye knows at is symbolic appears from culture and line of authority (Image) with to be bitter the person and the person, the group and the group, operates from the nation and national etc. various territory. By the way cultural power accommodating the masses is logical or refuses the reaction which is scientific and wants unconscious accommodating. The means of accommodating which is natural consequently rightly is to be a cultural medium. The electric wave of political event of domestic propagation trust of political power and believing in the citizens, as the zoom to do to make plant notification makes a political national ceremony, the electric wave of sports relay broadcasting propagation the citizen of empire Japan becoming, to stamp culturally. The citizen the manifestation of natural national ceremony is to be a state which the cultural power prefers most. In order to complete like this intention the cultural power of empire Japan broadcasting system (Media System) thoroughly, intervened. To the inside of course with intention of broadcasting power planning was ent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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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의 ‘일본’인식

林泰弘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6호 2009.06 pp.9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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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0원

中山みきは、「日本」を、外國人が統治している所として、この世界の中心として、そして拡大する神の空間として認識していた。こうした認識は、『おふでさき』や「泥海古記」の中から読み取れる。 みきは「外国」を「から」と、「外国人」を「からびと」・「とうじん」と表現していた。そうした「外国人」には古代の朝鮮半島の人々だけでなく、中国人や西洋人も含まれている。ところがみきが、「とうじんが、日本の地へ入ってきて、日本の高山、すなわち支配層になり、またその中心的な指導者(しんばしら)になっている」と言ったときの「とうじん」は、古代に朝鮮半島から移住してきた百済の人々を指すに違いない。 「から」はいままで、日本をままにしてきた国である。しかしこれからは、日本がままにする対象になる。すすんでは、「から」の地はこれから日本の地になる。こうしたみきの認識はどこから来ているものだろうか?それは基本的には、日本はこの世の中心であり、日本という神の聖なる空間は、常に拡大される空間であるという基本的な信念の上で成立されたものである。 そのような信念は、本稿では、自ら「親神」として自認していたみきが、日本人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の危機を克服する過程において生まれたものであると分析した。アイデンティティの危機とは、具体的には、「日本」という国、「日本人」という人々は、もともと外から入ってきた人々ではないかという疑問から出た危機である。結局、みきにおいては、そうした民族的アイデンティティの危機を「泥海古記」を通じて克服しようとしていた。「日本」は、この世の始まりから存在し続けてきた国であり、この世の中心地である。そして世界の人々は「日本」の大和国の地から生まれはじめた。そうした人々が食べ物を探して「から」にも渡っていた、という神話が「泥海古記」である。こうした発想は「記紀神話」からの影響が窺える。 みきの神話や記紀神話には、周辺の国の人々が日本に入ってきて「日本人」を統治したり、あるいは「日本」という国をたてうる余地はない。むしろ日本の人々が周辺の国々へ渡り、統治をしたり支配することが当然のこととなる。周辺国の人々が日本に入ってきて統治者になったり、支配層になることは、それは「天理」に合わなく、「神のりいふく」になる。中山みき流の「征韓論」は、このようにして正當化されるのである。結局、アイデンティティの危機の克服から「征韓論」の論理が生まれていたということが指摘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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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 소라이(荻生徂徠)의 고문사학(古文辞學)

이기원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6호 2009.06 pp.12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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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本稿は、徂徠学の思想的土台である、古文辞学とは何だったのかを明らかにするところに目的がある。徂徠の古文辞学は、二つの構造と構成されている。徂徠も言っているように、中国と日本の空間的差異を無くす方法が「訳学」であり、古と今の時間的差異を解消する方法が、「古文辞学」である。この場合の「古文辞学」とは、狭義の意味としての「古文辞学」であろう。徂徠が『訳文筌蹄』や『訓譯示蒙』などで、虚字(動詞、形容詞)、助字(助詞、副詞)、唐音学習などに多くの関心を寄せたのは、六経の言語に接近して、言語の背後にあるとされる「道の世界」を把握する方法の発見にあったと思われる。徂徠は、日本語と中国語研究を通じて、聖人の言語である中国語に近づいていく。そこで、古文辞と出会うことによって、「物」として存在しているとされる、六経の世界を見ることになる。六経の世界は、古言や古語を通じて把握された世界である。 徂徠学は、日本思想史で結果的に経世学と経学へと発展していく道を用意した。政治改革に主な関心を表明するグループも、経学に学問の主な関心を見せるグループも、多くは一時期徂徠学を学んだ知識人であった。徂徠以後の徂徠学の衰退、折衷学の隆盛と衰退、また正学派朱子学グループの出現と、寛政異学の禁による朱子学への復帰に至る思想史の 変動過程は、こうした徂徠学の遺産を整理し、新しい学問の基礎を作っていく過程として理解できるだろう。

7

7,800원

筆者は伊波普猷の思想を時系列的に追いながら、伊波普猷が構築した沖縄学がどのように形成されたのかを明らかにした.結論を先取りしていえば、伊波普猷は比較言語学を主な方法論として活用し、日琉同祖論を主張し続けた.いやむしろ比較言語論という方法を通して、日琉同祖論を証明し続けたとも言えるだろう.それは,当時の学問的雰囲気を充分活用したが、特に、鳥居龍蔵と白鳥庫吉、金沢庄三郎、上田万年などであった.よく知られているように、鳥居龍蔵は日本人種のルーツを確認するために周辺の国々の人種を現地調査しながら、歴史的な文献をつなぎ合わせる方法をとる学者であった.鳥居は沖縄の調査も見逃すことなく調査し、その人種の特長を明らかにしようとした.鳥居はマレイ系統とは異なる人種として沖縄人種を位置づけた.これに示唆を受けた伊波普猷は、日本と沖縄の神話の構造と神話に現れている‘ノロ’の役割などを提示し、鳥居の人種論と結び付けることを試みていた.これは両方ともイギリスの日本研究者であるチャンバレンの理論をベースにしいて行った論理でもあった.まず、伊波普猷は白鳥庫吉が言語的比較によって証明した論理を用いた.つまり、ツングス人種がアイヌを追い出す過程を考えることで、ツングスが南下したことを確認した.これもアイヌの言語とウラル․アルタイ民族との言語比較を通して得た結論であった.伊波普猷はこれを敷衍して、上田万年のp音理論を加えた.奈良時代に使用されたp音が同心的に辺鄙に拡大されていったが、それを比較することで日本内地と沖縄の過去の同一性が証明されたのである.また、金沢庄三郎の日本語、朝鮮語の単語の比較を元にして、沖縄の「前」という言葉を説明し、人種がやはり、北から南へ南下したことを主張した.柳田は、沖縄と日本は同祖ではあるが、それが南から北へと登ってきたと主張したのである.この柳田の論理には、伊波普猷が活用可能な「同祖論」が共通分母として存在したが、それを拡大する戦略をとったのであろう.伊波普猷は、沖縄の古代を再現する方法として「オモロ」に関心を傾注した.オモロは、神歌も含めていたが、そこに沖縄の開闢神話があることに注目し、沖縄人の宇宙観を説明した.つまり、日本内地の『古事記』に見られるように、高天が原はアマミキヨの例をもって、根の国は「ニライ」をもって説明した.そして沖縄でも日の神を崇拝したが、それがテダコとセノミ等の単語であり、天照大御神と同じ意味をもっていることを証明した.このように神話比較をもって、伊波普猷は、日本人種が日本内地から分派して移住してきたと‘南進論’を打ち立てることができた.これは、また、東アジアに広がっているシャーマンとノロの比較を通じてもっと核心を得ることができた.つまり、シャーマンとノロの役割とか,装身具などが朝鮮の石槨壁画などと似ていることから、北方と結び付ける事ができた.それで、沖縄の最高の神職者である聞得大君の位相を明らかにすることが可能であった.このように、伊波普猷は、日琉同祖論を主張し続けたが、それには、日本帝国主義を容認し、その論理受容したとの批判が存在した.ところが伊波普猷の論法には一面的に解釈出来ない部分があった.伊波普猷は、沖縄人の特性を‘適応能力’の優秀性であると言った.だから日本が廃藩置県によって沖縄を日本へ編入させたことは、沖縄人はそれを逆に応用し、新しい沖縄人として蘇生すべきであると見ていたのである.これは、違う表現を借りれば主体は沖縄にあって、日本は「招待された帝国」であり、その文明的な力をかりて、沖縄の改造を成し解けるべきだと見たのである.このような認識に基づいた伊波普猷を明らかにすることにより、時代とともに進化を追い求める沖縄を探りだし沖縄学の創出構造を浮かび上がらせ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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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현의 임란포로에 관한 연구

노성환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6호 2009.06 pp.18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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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長崎は日本人には歷史とロマンのある地域だというイメージがある。ところが壬亂を経験した我々には決してそうではなかった。壬亂捕虜においては特にそうである。日本人たちが自分たちの不幸の原因を朝鮮捕虜の呪いだと解釋するほど、彼らにとって長崎県は、冷酷な苦痛を与えられた所だった。それで時には小麦様のように子供を捨て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し、また兵士出身だったら敵の部下になる受難を受けざるをえなかった。その中では能力を発揮し、武士として出世しても、大村の秀山のように、主君が死亡すれば、追腹の殉死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それからアンとオ コレアのように欧米商人に売られ、日本からまた遠い海外に奴隸市場に放り出される人々も多かった。  その一方日本に残った朝鮮捕虜の中では、早くから長崎地域に入っていた西洋の宣敎師の影響を受けキリシタンになる人たちも多くあった。彼らは力を合わせて自分の所で敎會を立て、信仰を堅く守って行った。しかし日本のキリシタンに対する激しい迫害が始まると、朝鮮捕虜だと言って例外に入ることではなかった。彼らは日本人と同じく過酷な拷問を受け, 殉敎する人も続出した。そうした拷問に耐えられず佛敎徒に改宗しても、彼らは當局の監視と管理の對象になった。またマクセンシアとイサベラのようにあらゆる厳しい拷問に屈せず信仰を守った朝鮮女性もあったのである。 長崎県には壬亂と朝鮮捕虜たちと関連のある遺跡が多い。その代表的な例が朝鮮井戸と高麗碑, 高麗橋, 高麗町という遺物や地名である。そうした名前の裏には朝鮮捕虜の苦痛, 離別, 屈辱, 殉死, 奴隸, 迫害という言葉で點綴される過酷な試鍊の歷史が刻まれている。こうした意味から見ると、長崎県は韓國人たちが歷史とロマンのある観光地としてただ通りすぎるところではない。そこには祖国から保護されなかった哀歡を担いで生きていた壬亂捕虜たちの悲しい歷史の現場だっ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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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建命の伝承が何時、誰の手によって今の古事記․日本書紀にみるような形に整えられ、新しい伝承として統合․再編されたかは定かではない。定かではないということは、可能性としていろいろな推定ができるということだ。倭建命は、大和政権の皇統譜から消されてしまった天皇であったかも知れず、権力争いに敗れてしまった皇族将軍の幻影であったかも知れない。もしくは、日本国内の征服と統一の時期に活躍した古代の英雄だったかも知れない。我々が倭建命伝承に心を打たれ特別な意味を与えているのは、天皇の世界を日本国全体に拡めたという忠実な皇族将軍として活躍する倭建命のつくられた英雄像からではなく、時空を超越して人間の弱さと限界を体験し自分の運命を諦念して死んでいくという、一人の古代人の不遇な生がそこにあるからであろう。不純な意図によって首尾一貫した"死んだ伝承"よりは、多少は整合に欠け粗悪な古伝承のままでも、古代の様々な可能性を与えてくれる伝承の多元化こそ、古伝承のもつ一番大きい魅力ではないだろうか。「非合理的」あるいは「歪曲した歴史の創出」といって罵倒するよりは、かえってテキスト万能主義が見逃しかねないテキストの外部の魅力、即ち、古代の一元化によって埋まってしまいがちのテキストの外部の多様な古代性こそ、古事記․日本書紀を貫通する古傳承の一番の魅力であるということを、ここでいま一度考え直してみたいも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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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徒然草』157단과 정토 사상의 신앙론

松本真輔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6호 2009.06 pp.239-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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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は、『徒然草』157段の記述と、その背後にある浄土宗の思想について論ずるものである。『徒然草』の仏教修行論は、心の状態より、修行(念仏)という行為を重視する。行為が正しければ、それに従って内面が形成されるという考え方だ。一方、阿弥陀仏の慈悲によって浄土に生まれることを願う浄土思想――これは『徒然草』の筆者兼好と深い関係がある――は、阿弥陀仏への信仰心が前提となり、浄土への往生を約束する。浄土思想において、阿弥陀仏と衆生を媒介するのが念仏という行為ではあるが、信仰心を持たない念仏は否定される。心の内実が伴わない念仏は、往生を保証しない、というのである。むろん、最終的には心と行為が一致すると説明されるのだが、前提になるのは心の優位性だ。しかし、『徒然草』は、これを逆転させ、行為の優位を主張する。157段の修行論は、行為が人間の心を生み出すことを易しい比喩で説明した文章だ。39段において疑心往生説を引用しているのも、この思考方式が、『徒然草』の立場に近かったからと考えら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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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의 연인으로 유명한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는 메이지(明治)시대에 다양한 형태로 조선과 조선 문화를 소개한 소설기자이다. 그는 사이쿄신문(西京新聞),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의 신문기자로 활약하면서 기사를 통해 조선과 조선 문화를 소개하였으며, 일본에서 최초로 춘향전을 번역하여 신문에 연재하고 조선소설 『胡砂吹く風』를 발표하였다. 춘향전을 『雞林情話 春香傳』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연재함에 있어 도스이는 「조선의 풍토와 인정」을 소개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나카라이 도스이는 1822년 6월 25일자「大阪朝日新聞」에 『雞林情話 春香傳』1회를 연재하면서 본문 앞부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나라(일본-인용자주)가 조선과 관계를 맺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지만 아직 조선의 풍토나 인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하여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제공한 것을 보지 못하여 이 점을 항상 유감스럽게 생각했는데, 최근에 우연히 조선의 연애담을 기록한 소책자 하나를 얻었다. 마침 조선의 풍토나 인정에 관한 것을 충분히 알도록 하여 통상무역을 활발히 하고자 하는 지금 이 때에 가장 필수적인 책이므로 번역하여 연재한다. . 『雞林情話 春香傳』뿐만 아니라 조선을 배경으로 한 소설 『胡砂吹く風』의 집필의도 역시 조선 문화소개에 있었다. 도스이는 『胡砂吹く風』머리말에 「조선의 토지, 풍속, 인정의 변화, 제도, 문물, 공예의 차이에 이르기까지 전부 기록한다. (중략) 무엇보다도 기이한 습관과 같은 것은 그 때마다 매회 끝에 덧붙여 적을 것이다」 이하 『胡砂吹く風』의 본문은 半井桃水 『胡砂吹く風』 前․後編 (今古堂 1892. 12․1893. 1)에서 인용한다. 또한, 『胡砂吹く風』본문 인용문 중, 시작 꺽쇠(「)에 대응하는 끝 꺽쇠(」)가 없는 것은 원문 그대로임을 밝혀둔다. 라며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과 조선 문화에 대해서 소개할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雞林情話 春香傳』과『胡砂吹く風』는 모두 조선과 조선 문화를 소개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연재되었으나 다양한 조선 문화를 소개함에 있어『雞林情話 春香傳』은 번역이기 때문에 한계성을 지니고 있었던 반면, 『胡砂吹く風』는 비교적 자유로운 설정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조선을 배경으로 한 최초의 소설로 평가받고 있는『胡砂吹く風』를 통해서 메이지시대 조선과 조선 문화의 소개 및 평가양상에 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선행연구 가운데 『胡砂吹く風』에 소개된 조선의 모습에 관해서 분석한 것으로는 정미경(鄭美京 2005) 鄭美京「新聞小説『胡砂吹く風』に描かれた朝鮮」(「韓国言語文化研究」2005. 11) 과 권미경(權美敬 2006)權美敬「風俗小説としての小説ー『胡砂吹く風』、『小説東学党』での「附記す」の問題ー」(「일본어문학」2006. 2) 이 있다. 정미경은 논문제목을 「신문소설 『胡砂吹く風』에 그려진 조선(新聞小説『胡砂吹く風』に描かれた朝鮮)」이라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안에 그려진 조선상을 규명하는 것보다 작품집필 동기, 아사히신문 게재동기, 정치소설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논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권미경은 도스이가 매회 끝부분에 덧붙인 부기부분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胡砂吹く風』에 그려진 조선을 정치, 관광, 여자, 문학, 장례, 형벌의 6개 항목으로 분류․정리하고 이 소설이 가지는 풍속자료로서의 가치를 서술하였다. 이는 작품에 소개된 조선 문화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부기만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분류하고 작품내용에서 보이는 조선과 조선 문화의 소개양상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총체적인 연구라고 하기 어렵다. 조선소개양상을 구체적이며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일본인의 시선으로 좋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소설 본문까지 연구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부기와 더불어 소설 본문까지 연구대상에 포함시켜서 『胡砂吹く風』에 그려진 메이지시대의 조선 및 조선 문화소개 양상을 규명하기로 한다.

This article aims to find what culture Nakarai Tosui, who was interested in Joseon and tried to introduce the culture of Joseon, actually introduced, and how he understood and accepted by examining the annotations and text of his novel ‘Kosahukukaze’. In the book, he, without assessing their values, introduced various areas of Joseon's culture, including regular annual events, four ceremonial occasions, several districts of Joseon, and customs. That's why we consider the novel as a introducing book of Joseon culture, whether the facts he said were true or not. On the contrary, he sometimes assessed the values of some aspects of Joseon cultures. For example, he spoke highly of the affection between parents and their sons or daughters and women's bravery, while almost all the assessments were not in favor of Joseon's culture. He said that Joseon had no sanitary mind and established facilities for sanitation, and was based on the premodern Confucianism. He also mentioned the sorts and cruel scenes of Joseon's punishments of the criminal system, through which he described Joseon as uncivilized. Furthermore, Joseon's people were described as corrupted officials, stupid civilians, and harassed women. In those times, Japan tried to define Japan as civilization and Joseon as barbarious to dominate the advantageous position in Joseon after First Sino-Japanese War. ‘Kosahukukaze’ written before the War can be evaluated as the first book that described Joseon negatively and introducing book that mentioned various aspects of Joseon's culture without special assess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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