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日本思想 [일본사상]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일본사상사학회 [Korean Association For Japanese Thought]
  • pISSN
    1229-9235
  • 간기
    연3회
  • 수록기간
    1999 ~ 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철학
  • 십진분류
    KDC 153 DDC 181
제18호 (12건)
No
1

日本社会における他者認識の課題

阿満利麿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8호 2010.06 pp.3-1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4,300원

多くの日本人にとって、異質な文化と社会に対する客観的で理性的な認識をすることは、グローバル化の進行にもかかわらず、けっして得手とはいえず、今もって、多文化の共存を積極的に推進するだけの思想的根拠を構築しているとは言い難い。そのような現状をふまえて、小論は、その原因として、日本の伝統社会(ムラ)の構造に起因する事大主義と、近代思想史における、「普遍」への関心の希薄さに求めて、問題点を整理してみた。とくに、自ら依拠している思想を、つぎつぎと「乗り換える」のではなく、それを「普遍的」レベルに鍛え上げる思想的エネルギーの必要性を強調したい。

2

5,800원

本稿では、近代の日本や中国の哲学、とりわけ日本の京都学派の創始者である西田幾多郎と中国の新儒家の代表である牟宗三との視点から、共死と共生における主体性及び共存を考察しておきたい。近年、共生という言葉及び概念は、グローバル化世界による文化の多様性への対策が見られ、しばしば言及されている。一方、共生を究明する際、それと表裏一体の概念である共死はあまり触れておらず、忘却されている。しかし、両者は共に検討すべきだと思われる。その中に生及び死は、生物的な意味を取り扱うことではなく、哲学的に、いわゆる死と生の普遍性を追求しようとする。また、その二つの概念において、文字通り単なる死と生のみならず、「ともに」ということから断裂できない。つまり、誰が共に生きるという主体の問題がさらに見出され、どのように共に生きるのか、また共に生きることができるのかという共存の課題である。したがって、共に自己否定として共死の意味により、共生が可能になると過言ではないだろう。それは、和辻哲郎が指摘したように、個人を否定して全体性を成立する一方で、他方では、全体性を否定して個人を成立する。そのような否定の両面性によって、共存することもでき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る。

3

5,800원

동아시아의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동아시아 사상에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철학적 사유가 있는가? 이 물음을 염두에 두면서 나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레비나스의 사상을 그의 대표적 저서 가운데 하나인『전체성과 무한자』에서 읽어 내어 보고자 한다. 나의 독해는 이 책의 서문 가운데서도 첫 여덟 문단에 제한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 외의 레비나스 텍스트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할 것이다. 오직 첫 여덟 문단속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레비나스 사상이 어떤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되도록이면 자세하게 읽고 알아보는 일에 이 글의 범위를 나는 한정하고자 한다. 여기서 나는 레비나스 철학이 ‘전쟁에 근거한 평화’와는 전적으로 다른 영원한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모색한 철학임을 보여줄 것이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배울 수 있는 평화의 가능 조건을 찾아 볼 것이다. 먼저 레비나스에게 과연 정치철학이 있는가 하는 물음을 다루고, 이어서 전쟁에 대한 레비나스의 이해를 다룰 것이다. 그렇게 한 뒤, 레비나스가 말하는 ‘메시아적 평화의 종말론’이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 살펴 볼 것이다. 결론 부분에서 동아시아 삼국이 평화를 세우기 위해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로 정리해 볼 것이다.

This paper tries to read first eight paragraphs of Emmanuel Levinas's masterpiece, Totality and Infinity, very closely with purpose to find an adequate idea for peace in East-Asia. It will be shown that these paragraphs contain the essential thought of Levinas on peace and war and that the ethical and metaphysical orientation of Levinasian philosophy is motivated by his concern for peace among humans and that philosophy of Levinas is a political philosophy. The contrast between 'peace on the basis of war' and 'eschatology of messianic peace' is crucial in this discussion on peace and war. Levinas shows that peace is possible if and only if the other is accepted as the other who can't be reduced to any form which humans can manipulate. This paper is concluded by the observation that hospitality towards others rather than laying emphasis on common heritage will be more important condition for the possibility of peace in East-Asia.

4

5,800원

대승불교는 열반의 세계와 일상의 세계, 승려와 재가신도 간의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으로서 발생했다. 대승불교는 삼사라를 포기하라고 가르치지 않으며 오히려 세속과 초월의 세계를 구별하는 것이나 상좌불교의 이원상대적인 사상을 극복하고자 한다. 진정한 초월의 세계는 삼사라와 니르바나의 구분을 극복하는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상의 세계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근본적으로 일상의 변형을 통해서 얻고자 한다. 이렇듯이 승․속의 구분이 없어졌다고 할지라도 신란(1173-1262)이나 원효(617-686)가 출현할 때까지 귀족적. 학문적. 사원 중심의 일본과 한국의 불교는 일반 대중에게는 접근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초기 불교 시대부터 승려중심, 종교적 엘리트주의에서 유래하는 승. 속의 구분을 완벽하게 극복하고자 하는 대승불교 정신의 절정을 우리는 신란과 원효의 사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신란과 원효 두 개혁가의 비교연구를 통해 불교가 승려나 대오(大悟)한 사람에게만 국한 하는 것도 아니며 세속을 부인하거나 피안의 세계만이 아닌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민중/대중 불교의 타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After the inception of Buddhism, followed a period of clericalism or religious elitism, after which the two great reformers bridged the divide between the monastic and lay, and made available Buddhism for all, establishing a new grassroots level of followers. This article will analyze these two exemplar reformers selected from the two contrasting traditions: On the basis of my comparative studies, Shinran and Wonhyo, I argue for a description of grassroots Buddhism as a “Buddhism for all”, not solely for monastics, for enlightenment and not world denying or otherworldly alone. By disregarding the Sitz im Leben (place in living), the context in everyday life of Buddhism, scholars risk succumbing to abstractions about the Buddhist ideal or misrepresentations of its practice. Thus any generalization based on textual sources or library research alone poses a serious problem for the earnest study of Buddhism.

5

전후 일본의 단일민족론과 상징천황제

박진우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8호 2010.06 pp.81-10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6,700원

21세기에 들어와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이 갖가지 형태로 국가와 국경을 초월한 연구교류를 모색하고 있는 것은 냉전체제 하에서 분단되고 봉인되어 왔던 갖가지 역사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이며 그것은 또한 동아시아에 평화와 공존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러한 동향에 대한 반동으로 역사수정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네오내셔널리즘 운동이 대두했다. 오늘날 일본의 국민국가 사고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단일민족론이나 일본문화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주장들은 네오내셔널리즘 운동 속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현상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물론 글로벌리제이션의 국제적인 추세 속에서 자민족의 우월성과 자민족 문화의 연면한 전통을 강조하는 것은 일반적인 동향이라 하더라도, 일본의 경우 이러한 주장이 과거의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역사인식과 불가분의 관계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그것이 또한 상징천황제의 존속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패전 전의 일본은 천황제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국민통합을 강화하고 근린아시아의 타민족지배와 억압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이데올로기정책이 일본의 패전으로 한차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네오내셔널리즘은 또 다시 일본민족의 기원과 전통에 대하여 유난히 집착하고 있으며 그러한 주장의 한 가운데 천황제가 자리하면서 일본인의 역사인식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이와 같이 패전 후 일본에서 단일민족론의 전개는 천황제의 존속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것이 또한 일본의 역사인식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데 있다.

本稿の目的は、敗戦後の日本における単一民族論の展開は天皇制の存続と不可分の関係にあり、それはまた戦後日本の歴史認識とも密接な関係にあるということを明らかにするところにある。戦後日本にあける単一民族論の展開が天皇制に対する認識と密接な関係にあるということについては、既に多くの先行研究がある。したがって、本稿ではこれまでの研究成果を基にして、戦後日本の単一民族論がどのような時代的な状況のなかでどのような意味を持って現れており、またそれが今日に至るまでどのようなイデオロギー的な役割を果たしてきたかを象徴天皇制との関係のなかで捉えるところに重点をおいた。それは、日本の単一民族論は天皇制という鏡を通じて見るときこそ自民族中心的な他者認識の矛盾がより明確に姿を現わすと思うからである。また、本稿では敗戦後の日本の単一民族論が天皇の戦争責任を否定し、日本の侵略戦争と植民地支配を正当化する歴史認識とも密接な関係にあるということを強調した。つまり、日本は単一民族であるという認識は近代日本の侵略戦争と加害の歴史を否定するばかりでなく、そうした歴史過程で天皇制が重要な役割を果たしていたことを隠蔽し、平和概念と結び付ける問題点を孕んでいるということができよう。本稿では以上のような基本認識にもとづいて、第一に敗戦直後に台頭する単一民族論が象徴天皇制の誕生とどういう関係にあるかを調べ、そうした過程で日本社会の中における他者認識がどのように現れているかを考察した。第二に、日本の伝統文化に積極的な意味を与えながら登場する「日本文化論」のイデオロギーのなかで単一民族論と象徴天皇制がどのように位置づけられているかを検討し、第三に1990年代以後のネオナショナリズムの台頭のなかで単一民族論と象徴天皇制が日本の右派の歴史認識でどのように解釈され、また利用されているかを考察した。こうした本稿の究極的な目的は、単一民族論そのものに対する批判にあるのではなく、単一民族論の背後にある思想的な根拠やそれは孕んでいる矛盾を明らかにする所にある。それはまた、単一民族論が日本の戦争責任の問題や歴史認識の問題とも決して無関係ではないことを強調することでもある。

6

6,000원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은 조선건국(1392년) 이후 태조 3년(1394)에 신생 조선왕조를 정통왕조로써 확립하고자 했던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저술하였다.『주례(周禮)』의 육전체제(六典體制)를 모델로 한 『조선경국전』에는 먼저 총론에 해당하는 「정보위(正寶位)」, 「국호(國號)」, 「정국본(定國本)」, 「세계(世系)」, 「교서(敎書)」가 있고, 이어서 「치전(治典)」, 「부전(賦典)」, 「예전(禮典)」, 「정전(政典)」, 「헌전(憲典)」, 「공전(工典)」이 차례로 서술되어 있다. 이것은 성종대의『경국대전(經國大典)』으로 이어져, 서구로부터 새로운 문명이 들어오기 전까지 조선왕조의 기본적인 통치 원리로 작용하였다. 한편『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는 남북조 동란기인 1339년에 남조를 정통왕조로 설정한 기타바타케 지카후사(北畠親房, 1293-1354)가 집필하였다(1343년에 수정됨). 먼저 신도(神道)와 관련하여 저술의 목적을 밝히고 있는 서론이 있고, 이어서 천지의 생성으로 시작되는 신대(神代),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부터 시작되는 지신(地神)의 시대, 그리고 진무(神武)천황부터 시작하는 인황(人皇)의 시대가 서술되어 있다. 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남조가 정통왕조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은 이후 일본의 국가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세기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기반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 본고는 14세기 조선과 일본에서 탄생하여 양국의 국가관 형성에 큰 영향을 준『조선경국전』과『신황정통기』에 나타나는 국가관의 차이를 왕조의 정당성, 국호, 국토, 국교, 왕위계승, 재상의 보좌, 국제질서 등의 항목을 설정하여 비교하고자 한다

本稿は、14世紀に朝鮮と日本で誕生し、両国の国家観の形成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鄭道傳(1342-1398)の『朝鮮經國典』と北畠親房(1293-1354)の『神皇正統記』とに現れている国家観の差異を、王朝の正当性、国号、国土、国教、王位継承、宰相の補佐、国際秩序などの項目を設けて比較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朝鮮經國典』における国家は「仁」という原理によって民と、「禮」という原理によって他国と連関されている。つまり国家を媒介として個人から中国の天子に至るまで儒学的な普遍主義をもって互に連関されているのである。それに対し『神皇正統記』では「神」によって聖域化された神国日本は民と他国から断絶されている。それこそが他国に比べて神国の優越性を主張する根拠となっている神道的な国家主義といえるだろう。

7

2009년도 일본의 유학, 고학, 국학연구 동향

임태홍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8호 2010.06 pp.131-167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8,100원

이 논문은 2008년도에 일본, 중국어권(중국과 대만), 영어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일본 에도시대 사상가들에 대한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분석한 것이다. 대상 범위는 일본 주자학, 일본 양명학, 고학(古学), 미토학(水戸学) 그리고 국학(国学)에 한정하였다. 유학사상과 다소 거리가 있는 국학을 포함한 것은 국학이 에도시대 사상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으며, 에도시대 사상사 연구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학에 대한 연구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사된 연구 성과는 주로 학술논문과 단행본이며, 에도시대 사상가 저작물의 번역본이나 연구 성과물의 번역본, 나아가 일반 잡지에 투고된 에세이 형식의 글도 포함하였다. 또 조사 대상 사이트에 등록된 논픽션 시리즈물이나 대담형식의 보고서도 포함시켰다. 이렇게 순수 학술적인 성과 외에도 다양한 성과물을 소개한 것은 에도 시대 일본사상을 둘러싸고 학계 내외에서 어떠한 논의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전모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This report introduces the papers on Japanese Confucianism, Kogaku, Kokugaku thought written in Japanese, Korean, Chinese language and English during 2009. In this paper the data is based on the periodicals index databases of the digital libraries such as the National Diet Library of Japan, the China Academic Journal of China, the National Central Library of Taiwan and the National Assembly Library of Korea and so on. The report is divided into 4 chapters, such as Chapter 1 - Syusigaku School, Chapter 2 - Youmeigaku school or Yangming school, Chapter 3 - Kohaku School and Mitogaku School and Chapter 4 - Kokugaku School. In each chapter, the writer introduces the articles in brief. There were 68 articles published on the Japanese Confucian School. In the articles, 35 ones were written in Japanese, 13 in Korean, 13 in Chinese, and 7 in English. 42 articles were published on Youmeigaku School, 34 written in Japanese, 1 in Korean, 5 in Chinese, 2 in English. 43 ones also published on Kohaku School or Mitogaku School. In the articles there were 19 ones written in Japanese, 13 in Korean, 7 in Chinese, 4 in English. And 46 ones on Kokugaku School were published, 38 were written in Japanese, 5 in Korean, 2 in Chinese, 1 in English. Totally 199 articles were written in Japanese, Korean, Chinese, or English language in 2009.

8

일본식 근대호적기술의 전개과정과 이에(家) 및 이에제도

임경택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8호 2010.06 pp.167-19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7,300원

본고에서는 무엇보다도 “메이지민법의 가족법이 이에제도를 기초로 하여 제정되었다”(伊藤, 1982:11)고 할 정도로 기본적인 존재이면서 메이지 민법에서 이에가 정의되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왜 현실적인 법해석에 있어서 이에에 호적이 선행하는 관계가 생겨난 것인가 그리고 왜 메이지민법에 그 실질적인 관계가 명시적으로 쓰이지 않았던가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그를 위해 우선 근대일본국에서 특이한 발달을 이룬 호적이라는 국민서기기술에 대하여 그것이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선 호적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일본의 이에의 속성과 그것을 기록한 문서에 대해 분석하고, 그것이 호적이라는 전혀 새로운 서기기술로 인해 겪게 되는 변화를 통해 호적이라는 서기기술과 근대일본국의 이에의 성격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무엇보다도 본고가 일차적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근대일본국의 ‘이에’제도가 실은 호적이라는 서기기술을 원리로 하는 제도였다는 것을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本稿は、日本における家という社会単位がいかなる基準によって設定されるか、そしてその実体と同一性は何をもって確保されるかを解明しようと試みている。これは日本の家がもち続けてきた独自的な性格を解き明かすこととも関わっている。これまでその性格を十分に把握できなかった原因は、主として家の内部的属性の分析に集中してきたからである。ここではその視点を変えて、対外的に家を規定する制度に焦点を当てることにする。そこで、近代日本国の戸籍に注目する。これこそ、家を対外的に規定する重要な装置である。そのため、戸籍以前に家の属性を記録した文書を分析し、戸籍というまったく新しい書記技術によって起きる変化を追跡していく。近世における家は、領主と村に対して一定した権利と義務をもつ資格が認められた社会単位といえる。つまり、領主と家との関係の下で本百姓と従属農民という身分が発生する。また、村は領主による農民支配の末端組織としての意味をもつのである。そのような状況は、「人別帳」に現れている。ところが、明治時代になると、これが「戸籍」という新しい書記物に代わる。この「戸籍」は天皇を中心とした統一的国家建設を目的として、国民たちを新たに書記した技術であり、それによって国民という観念が作られ、同時に国民のあり方も決められたのである。「戸籍」の特徴は、集団管理、生涯管理、親族管理、国籍管理、氏の管理などが挙げられる。また、書記の原理は一枚の用紙に、国民個体の複数書記を許容したことにその特徴がある。1868年、最初に作られた戸籍は、その後5回にわたる改正が行われる。この戸籍は統治者によって導入された技術である。これが国民に認知されるまでにはどのような背景があったのか。それは何よりもこの技術が徴兵という行政技術に応用されたからである。戸籍の書記技術を利用して国民たちは徴兵免除も可能だったのである。このような過程を経て、父系血縁原理と決別し、1戸籍=1氏の原則で近代日本国の戸籍が完成されたのである。戦後には、「家」が放棄され、戸籍のみが残っている。その編成の原理は多少変わっているものの、1戸籍=1氏の原則は保たれ、用紙=戸という論理的構造は変わっていない。つまり、近代日本国の「家」は、戸籍という書記技術によって作られた戸という単位を、そのまま、明治民法の基本的な単位である「家」として追認したものである。これが日本の家を規定する一つの重要な要素になってきたのである。

9

전시기 라디오 방송콘텐츠와 방송극 연구

엄현섭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8호 2010.06 pp.199-21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5,500원

근대 라디오방송은 제국일본의 질서구축과 문화 전파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였다. 또한 현재의 한일문화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제국일본의 연구는 정치․경제사 중심으로 편향된 경향이 있다. 제국일본의 문화매체가 식민통치체제의 구축에서 정치권력과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기능을 수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면에 관한 지식과 연구는 불충분하며 문제설정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온 것이다. 특히 報道, 敎養, 慰安이라는 3대 목적을 갖고 있었던 라디오방송의 연구는 기타 신문, 잡지, 연극, 영화연구에 비해 너무나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고는 전시기(戰時期) 라디오 방송콘텐츠와 방송극의 성격을 분석하고자 한다. 특별히 ‘전시기’라는 시간적 배경은 라디오방송과 권력과의 관계를 가장 극명히 파악할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논의 될 방송콘텐츠, 즉 위안방송이란 대중문화 콘텐츠를 지칭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따라서 위안방송은 보도, 교양의 방송종목에 비해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짙게 깔려 있으며 위안방송 중에서 가장 문학적인 것은 방송극이다.

This manuscript is a war representation of consolation broadcast, especially focusing on the broadcast play of the radio looked at the character of radio broadcast carefully with the time background, period of war. The work which directly beautifies war rather many number it was, but as for the work of many quantities the Japanese race soul, the work which has native love was many. In addition by all means enjoyment also the element became addition. The fact that the power characteristic which sound of the radio broadcast play has appears considerably until you say, is under wartime without. As for especially Asia with intensification of war national spiritual all temporary system being done package announcement, radio broadcast received strict management. The hearing taking person when it is truth, believing the sound which flows out from the radio hard, reached the point where you feel one bodily sensation of nation strongly. Because of `country which is not the difficult terminology where as for nation nationalism with you say', for the sake of the 'home' in the slogan having patriotic note in the people, the patriotism is ventilated to the hatred heart for the enemy simultaneously. The sample with the base point which will select the approach which is systematic is necessary about hereafter Japanese warfare intention to fight radio drama. About Japanese or Korean or warfare intention to fight radio drama is a condition where is becoming neither the arrangement which is fundamental is a condition where also the text analysis is wholly lacking. The sample boils consequently and as the base point of the research will be the possibility of having a questionable matter.

10

夏目漱石の『趣味の遺伝』の構造に対する一考察

夫伯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8호 2010.06 pp.219-24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7,000원

本稿では、第1章で、中心人物であり語り手である<余>が、過去の出来事について叙述しながら、読者に語りかけ・働きかけるという状況を検出し、『趣味の遺伝』の作品世界は、<<余>が過去の体験を書いている過程>であることを把握した。そして、第2章では、<余>に叙述されている話の内容の様相をできる限り詳細に把捉し、この作品が<<余>が過去の体験を書いている状況が記述されている過程>であることを検証した。またさらに、第3章では、このような作中世界をさらに精密に分析し、この作品が、<自己の才気性の社会的な評価を強く求める学者であり・恋愛感情の遺伝の理論を考案したという過去の体験を持つ <余>が、小説という形態を通じて、かような過去の体験を題材とする成功譚を書いてみたところそれがうまくいかず、結局は、前半部にインファスィスした日露戦争の戦死者・遺族のモチーフと終局部の叙述を至妙に縫合し、厭戦性の光輝する小説への転換を取ることを以て、プロットと自己顕示的な欲求の調整をは図ったという話>を中心的な事件と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考察した。『趣味の遺伝』は、以上のように、<過去の体験をもとに功利的な成功譚を書こうとして小説を書いている<余>が人道的な厭戦性を帯びた小説へと書き換えて行く転換の過程>が記述された作品であり、転換点が位置する終焉部以降と、前半部が連結されることで、厭戦的な構えと筋が生じている。つまり、この作品は、叙述する<余>の意識を中心として考えるならば、戦争を厭う主旨と目的を持って書かれた厭戦文学であるとは言えず、その構成に重点を置いて考慮するならば、厭戦的であるとも言える。このように『趣味の遺伝』を厳密に探究する限り、この作品は厭戦小説と言うべきなのではなく、厭戦性を帯びた創作であると論定されるべきなのであろう。

11

西鶴 浮世草子에서의 老

정형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8호 2010.06 pp.249-269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5,700원

본고에서는 그간 사이카쿠의 작품론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근세기 세속에서의 노(老)의 문제를 고찰하고자 한다. 인간의 본연적, 본능적 표출로서의 성(性), 세속적 영위의 물적 토대로서의 금전과 물욕, 근세봉건사회의 근간으로서의 충효와 가족제도 등에는 인간의 숙명적 현상으로서의 노(老)에 관한 집단공동체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의 파악이야말로 그간 다루어지지 않았던 근세기 일본의 사상사적 기반의 일단(一端)을 밝혀내는 것이며, 사이카쿠 텍스트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에 있어 노(老)라는 현상은 육체의 생물학적인 노화를 동반하고 죽음을 암시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인류에게 있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숙명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음은 일정 부분 불가피한 측면일 것이다. 그렇지만 각 민족공동체의 종교나 민속 등에 의거한 사생관이나 세속적 영위의 특수성에 의해 노(老)에 관한 인식은 반드시 부정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노(老)에 대한 인식이 단순히 죽음으로 향해가는 ‘늙음’의 범주에 있는가 아니면 ‘나이듦’이라는 인간의 완성된 경지의 ‘노경(老境)’의 범주에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이상의 검토를 전제로 본고에서는 사이카쿠가 활약했던 근세전기 이후의‘노(老)’에 관한 문화사와 민속학의 연구성과의 검토와 더불어 사이카쿠 텍스트에 나나타고 있는 작가의 ‘노(老)’에 관한 인식과 각 작품의 주제와의 구조적 관련성에 관해 시론적(試論的) 고찰을 행하고자 한다.

本考察では近世日本の多様な実存的世態に関する作者の認識が写実的に描かれている西鶴の浮世草子の作品研究に今まで取り扱われなかった<老い>の問題を考察してみた。近世の都市文化において性と金銭という世俗的営為の要素にならざるを得ないこの二つの主題は近世期の日本人の<老い>の認識と密接に関連するものである。彼らが認識した<老い>には単に肉体的老化やいわば長幼有序という儒教のイデオロギーにおける年輩のイメージとは異質の、成熟と知恵が伴われる完成の境地としての<老い>のイメージが込められており、西鶴の浮世草子には以上のような<老い>に関する世態が描かれているのである。『好色一代男』における主人公世の介の成功的な性愛談は年齢順に展開される全作品の構造の中で中年期から老年期に集中されており、全体のほぼ半分に近い。とりわけ老年期での性愛談は遊楽の典範的美意識といわれる粋とその主体である粋人の世界を描いているかのごとくであり、主人公に内在する<老い>のイメージは性生活の主体的、安定的段階に導かれているのである。一方、『日本永代蔵』巻頭一節での作者の言説、巻1ー1とその他の作品の成功的な致富譚等を見る限り殆んどの致富は老年期になってから可能だったのであり、成功的な致富とそれへの認識は<老い>の時期、即ち老年期になればこそ可能であることを作者は示唆している。言い換えればこれは世俗での<老い>の役割と意味合いを積極的に認識しようとする作者の写実的視角の表明にほかならない。『日本永代蔵』におけるより具体的な分析はこれからの課題にしたいと思う。

12

전시하(戦時下)의 분라쿠(文樂)에 대한 고찰

한경자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제18호 2010.06 pp.269-289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5,700원

전시하의 대중예능(大衆藝能)에 대해서는 영화, 다카라즈카(宝塚)와 대중가요, 로쿄쿠(浪曲), 라쿠고(落語), 만자이(漫才)등의 분야에 관한 선행연구는 다수 확인할 수가 있으나, 분라쿠(文楽)와 노(能), 가부키(歌舞伎)에 관해서는 거의 연구가 되어 있지 않다. 이 시기 어떤 사건, 배경으로 인해 분라쿠 작품이 만들어지고, 그 작품들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호소하고자 했는지, 분라쿠측에서의 시국적 대응에 대한 동행을 살펴보고자 한다.

本稿では戦時下に新作、上演された所謂「軍国物」といわれる文楽作品について、同時代の伝統芸能界の動向、軍国物が作られた背景、素材となったエピソードなどを中心に考察した。文楽界は幕末、明治、大正、昭和期を通じ、浮沈の激しい業界であった。文楽座が植村家から松竹の経営にかわったことにより、観客数の確保に様々な工夫をこらすようになるが、その一つが時局に応じた「軍国物」を製作、上演することであった。人形の構造上、軍服を着せることの目新しさ、戦闘機、機関銃の音の工夫、時局的な内容などから観客の好評を得た。早くは乃木将軍を素材とした『国之華大和桜木』が上演されるが、このような軍国物は1932年初演の『三勇士名誉肉弾』が爆発的な人気を得た後、1940年以降多数製作されている。多くの作品は検閲などのあった時代でもあり、陸軍や海軍の指導のもと作られたものである。また、作者、演出として多くの作品に関わっている食満南北は国柱会のメンバーということから注目される人物でもある。観客数の確保、戦勝祈願、戦意高揚、戦勝祝賀などの様々な目的により作られた軍国物は時事性を持ち、古典物とは全く異りほぼ会話で展開する形式を持つ、わかりやすいものであったと推察される。当時の評論家、作家なども演劇、芸術としての価値の低いものという懐疑的な評価を下しているが、一般にはどう受けられていたのか、また、同時代芸能である歌舞伎とは様相を異にしているが、その違いなどについては今後の課題とする。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