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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연구 [STUDIES IN CONFUCIANISM (The Journal of Confucianism Research Institute)]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CONFUCIANISM RESEAT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 pISSN
    1229-5035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3 ~ 2020
  • 주제분류
    인문학 > 유교학
  • 십진분류
    KDC 151 DDC 181
제29집 (16건)
No
1

남명학파와 양명학의 민본적 실천사상 연구

권인호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1-2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작년에 있었던 대선(大選)의 관권개입의 부정선거 시비로,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재정위기, 일본의 재무장과 미일의 공동방위(집단자위권) 문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등이 이 슈가 되고 있다. 전쟁과 부국강병 정책은 서양의 진화론적 적자생존의 논의와 가깝다. 평화와 상생조화의 생명사상 과 자연환경에 대한 담론들은 유·불·도교 등 동양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왕양명의 만물일체의 생명철학이나 지행합일 이야기가 넘쳐난다. 꺾어진 나무와 깨어진 기와조각에서도 마음 아파한 것 은 왕양명의 ‘지행합일’의 구체적 실천이라 생각한다. 남명 조식은 당시에 부정부패와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생각하고 탄식하였다. 구체적으로 낮에는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고 밤에는 눈물 을 흐리는 휼민(恤民)의 마음은 민본적 실천사상이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철학은 ‘시대정신 정화’ 이면서 정치사상과 동전 의 양면이다. ‘퇴계는 정주성리학을 의양조술(依樣祖述)하고, 남명은 성리학을 포함한 육왕사상(陸 王思想)적 요소를 지닌다’는 등의 일반적인 논의가 있다. 이 논문에서 이를 확인하면서 구체적으로 남명학과 양명학의 실천사상을 연구하였다. 중국에서는 송대 이후 명·청 시대에, 한국에서는 려말선초 이후 조선중기 시대에 성리학에 대한 시 각과 실천성 문제는 출처대의(出處大義)에 연결된다. 유학이나 주자성리학에서 바라본 이른바 ‘이 단(불교, 노장, 심학 등)’에 대한 수용태도에서 학문과 실천사상에도 차별성이 보인다. 남명학파와 왕양명은 출장입상(出將入相)과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실학적 모습을 보였다.

Recently, there have been issues about controversy of rigged presidential election last year in Korea and the U.S. fiscal crisis, Japan's rearmament and Japan-U.S. joint defense, internationally. The thought of warfare and enhancing the wealth and military strength of a country is bound up in the theory of evolution and the survival of the fittest in the West. The thought of peace, harmonic and natural coexistence is bound up in Eastern philosophy like Confucianism, Buddhism, Taoism, etc. There are many thoughts about life philosophy of 'all things as in one' and 'knowledge and conduct is united' in Wang Yangming's philosophy. We can think about another practicing to unite knowledge and conduct by Wang Yangming who care about a broken branch and a piece of broken tile. Also, we can think about Nam-myoeng's mind of relieving the people that was thinking about the people who suffered from corruption and extortion. There is a saying, "Reformation is difficult than revolution". Philosophy, as the essence of Zeitgeist, and political thoughts is like the face and back of a coin. There was general discussion that "Toe-gye just imitated Zhu Xi's Neo-Confucianism and Nam-myoeng had factors of Lu Jiuyuan and Wang Yangming's philosophy including Neo-Confucianism". This thesis try to confirm that and study on practical thought of Nam-myeong and Wang Yangming's Philosophy, concretely. The era of Ming and Qing dynasty after Song dynasty in China, the middle age of Joseon after late Goryeo to early Joseon in Korea, the view about Neo-Confucianism and the issue about its practical factor are connected with 'working for the government and living in seclusion(出處)'. Nam-myeong and Wang Yangming's Philosophy were different for attitude about 'heresy (Buddism, the thought of Laotzu, School of Mind, etc.)' and practical thoughts as well as study. Nam-myeong School and Wang Yangming had the factor of practical thoughts like the thought of 'to become a general outside, to become a prime minister inside(出將入相)'and 'having both literary and military accomplishments(文武兼全)'.

2

박세당의 『思辨錄・論語』에 대한 一考

김용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25-6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의 經學 연구는 주로 ‘哲學’ 영역을 다루는 ‘經世之學’ 방면에 치중하여 온 반면, ‘經文’ 그 자체가 갖는 해석학적 의미와 위상, 그리고 訓詁와 考證 등에 대해서는 활발한 논의가 진 행되지 못하였다. 설령 그러한 연구가 다소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朱子學’ 중심의 『集注』연구 에 천착하는 단편적인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경전 註解 연구의 활성화를 위하여 , 조선의 儒者를 선정하고 다양한 주해를 남긴 부분을 천착한다는 데에 연구의 일차적 목표가 설정 되었다. 이에 본고는 17세기 전후가 당시 획일화되어 있던 학풍이 다양한 물꼬를 트게 되는 시점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전제하고, 그 선두주자로서의 유자로 ‘서계 박세당’을 거론할 수 있다는 점에 착 안하였다. 그런데 서계 박세당에 대한 선행연구를 분석한 결과, 그에 대한 평가가 천양지차로 조사되었고, 이 에 그의 사상사적 위상에 대한 심도 깊은 再고찰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그를 ‘反주자학’ ‘脫주자 학’ ‘陽明學’ 성향을 가졌다고 이해하거나, 혹은 형이상학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였다는 점을 강조하여 ‘實學的’ 학풍을 가진 유자로 인정하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들도 표출 되었다. 이러한 박세당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경전 주해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연구의 단초라고 여겨, 그가 남긴『思辨錄論語』를 저본으로 본 연구를 수행하였다.

For a long time the research on "gyeong-hak (經學)" in our country has put emphasis mainly on the aspect of "study of government (經世之學)" which dealt with the 'philosophical' realm, while there was not any heated discussion about either significances and positions of hermeneutics contained in classical texts (經文), or ancient work explanation (訓詁) and textual criticism (考 證) etc. ['gyeong(經)' in 'gyeong-hak' has two meanings: the classical texts, and the ruling activities, the governance; 'hak' means 'study']. Even if there was some research on this subject, it would always follow an incomplete way named 'variorum (集注)' in which the study of Zhu Xi (朱子學) was considered the center. Thus in this paper, in order to activate the research on documentaries interpreting the classics, the author sets the primary goal of selecting Confucian scholars in Joseon Dynasty and inquiring into parts (of their works) which included various interpretations of classics. Hence this paper sets the time around the 17th century as the premise, since in this time the academic feature (means the study of Zhu Xi and the 'variorum') which was almost seen as the standard had reached the starting point of philosophical meditations; and pays attention to scholar Seo-gye Park Se Dang as a forerunner of this trend. However the results of preceding research on Seo-gye Park Se Dang as well as the evaluations of his thoughts are totally different, thus it is necessary to thoroughly re-examine his academic position. Especially there are some opinions according to which Park Se Dang had the inclination toward the opposition or evasion of the study of Zhu Xi and tended to the study of Yang Ming (陽明學), or he was a scholar with practical academic features which did not only stop at the metaphysics but also emphasized the necessity of reality. In this paper the author would examine those various evaluations of Park Se Dang by analysing his work named "Record of Meditations - the Analects (思辨錄論語)".

3

李漵 『筆訣』의 학술사상적 이해와 王羲之 인식

전상모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61-86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玉洞 李漵는 『筆訣』서예에서 正統性, 時中性, 中正性을 강조한다. 본고는 이러한 세 가지 관점에서 그의 서론을 학술‧사상적으로 분석해 보고, 이 세 가지 방면에서의 왕희지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옥동의 서예미학은 『주역』과 『중용』, 성리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자연의 생성과 변화와 발전의 규율이 내재된 서예의 구현이었다. 옥동이 『주역』과 관련하여 서예가 하도와 낙서에 근본 한다는 것과 글자의 형태는 팔괘와 홍범구주를 본 뜬 것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적 측면은, 經權論‧中正論과 연계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中正性을 띤 서예였다. 중정은 不變과 變易의 통일이며 無過不及의 『중용』적 사유이다. 옥동은 이기의 관계를 음양의 측면에서 이가 발한 것은 正體에 근원하여 陽氣가 발한 것이라고 보고 정체에 근원한 서예를 正統性을 띤 것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形氣에 구속되는 것, 외부의 유혹에 끌리는 것, 습속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한다. 옥동은 서예의 본질을 易과 관련해서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이해한 것은 외양에만 치우쳤던 당시 서단에 대한 비평의식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으로, 隨勢處變하되 權而合宜한 서예를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相反相成하면서 균형을 찾아야 함을 강조하여 時中性을 강조한다. 요컨대 옥동의 서예미학은 자신의 시대에 맞는 서예세계의 구현이었다.

李漵(玉洞)在《笔诀》中强调着书法的正统性、适时性及中正性。本文从上述三种观点对其书法论的学术思想进行分析,并对其对王羲之的认识进行了了解。玉洞的书法美学以《周易》、《中庸》及性理学思想为基础,是内含自然的生成、变化和发展规律的书法表现。玉洞关于《周易》“书法源自河图洛书”以及“字形来自八卦和洪范九畴”的形而上学主张,与其经权论及中正论有关,他最终所追求的是带有中正性的书法。中正是不变与变易的统一,亦是无过不及的《中庸》性思想。对于理和气的关系,玉洞认为在阴阳方面理源于正体,因而带有阳气,坚持着源于正体的书法带有正统性这一观点。因此他对拘于形气、惑于外部、困于习俗等现象十分警戒。玉洞将书法的本质与“易”联系起来,将其理解为形而上学的层面,这源自他对当时书坛只注重外形的一种批判意识,他主张“随势处变”和“权而合宜”。因此,他强调着一种相反相成且平衡的适时性。总之,玉洞的书法美学是对自身所处时代的书法世界的一种体现。

4

남당 한원진의 『大學』觀과 인간이해

민황기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87-11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남당 한원진의 『대학』관과 인간이해에 대하여 연구한 것이다. 남당은 공자와 맹자 그 리고 주자를 道學의 정통으로 삼고 율곡 이이로부터 사계 김장생-우암 송시열-수암 권상하로 이어 지는 기호유학을 집성하였으며, 人物性相異論이라는 거대한 철학적 담론을 전개하였다. 그는 일찍 이 탁월한 재능으로 사서삼경을 비롯한 성리학 서적은 물론 두루 諸家의 서책들을 널리 섭렵하고 그 강령을 모두 체득하였다. 특히 남당이 남긴 『경의기문록』과 『주자언론동이고』는 조선조 후 기 성리학의 최대 위업으로 평가된다. 남당은 성리학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대학』의 주요 내용 과 쟁점을 주자의 학설을 중심으로 하여 분석하고 있다. 남당은 그의 학문적 연원에 대해 공자로부터 주자에 이어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을 거쳐 스승 수 암 권상하로 이어져 내려오는 도학의 정통임을 규정하고 있다. 남당의 『대학』에 대한 뚜렷한 입장은 그의 대표적인 저술인 『경의기문록』과 『주자언론동이고』에 잘 나타나 있다. 남당은 그의 「대학도」에 대해 주자의 『대학장구』를 바탕으로 하여『주자어류』에 있는 도표 중에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누락된 것을 보충하여 작성한 것이며, 조선조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던 양촌 권근의 도설과 차이를 드러낸 것이라고 표명하고 있다. 또한 그는 『대학』의 대지를 주자의 말을 인용하여 敬이라는 한 글자에 두고 있다. 남당은 주자의 견해를 충실히 따르며 明德의 근원을 하늘에 근본 하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명 덕을 心의 광명한 점을 가리킨다고 규정한다. 또한 명덕과 심 사이에는 분별성과 동일성이 있는데, 허령과 광명불매의 측면에서는 명덕과 심이 동일한 것이나, 기품의 측면에서는 명덕과 심이 변별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심체의 측면만을 보면 성인과 범인의 심이 같지만, 기품의 측면을 고려하면 기품으로 인해 성인과 범인의 심이 다르다고 보았다. 남당은 범인에게는 탁·박한 기품이 드러난 악념·부념·편념의 세 가지 ‘心術之病’이 있다고 진단한 다. 이를 없애는 수양 공부로 그는 惡念의 제거에는 誠意 공부가 필요하고, 浮念의 제거에는 正心 공부가 필요하며, 偏念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修身 공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성 의·정심·수신의 세 장의 구도에 대하여 정심장을 본령으로 보아 중심에 두고, 心之用에 해당하는 意와 情을 앞뒤로 배열하여 각각 성의장과 수신장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경하여서 그것을 곧게 한다’는 것이 정심 공부이며, 그것이 곧 ‘안으로 바르게 한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를 통해 聖人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本文是有关南塘韩元震的『大学』观和人间理解的研究。南塘撰写的 『经义记闻录』和 『朱子言论同异考』被评价为朝鲜朝后期性理学最伟大的业绩。他以朱子的学说为中心对 『大学』的主要内容和争论点都做了分析。南塘认为自己在学术渊源上主要是继承了孔子,朱子,栗谷李珥,尤庵宋时烈,遂庵权尚夏等人的道学正统。南塘对 『大学』的立场主要反映在他撰写的 『经义记闻录』和 『朱子言论同异考』两本书里。南塘认为他的 『大学图』是以朱子的 『大学章句』为基础而完成的,同时纠正和补充了 『朱子语类』中的图表上的错误和遗漏的内容。他还自我表白说,跟朝鲜朝性理学早期代表人物阳村权近所做的图说相比,两者之间有不同的差异。另外,他引用朱子所说的"敬"字来概括了 『大学』的主旨。 南塘继承了『中庸』和『孟子』把性和道直接跟天联系起来的做法,他一再证明朱子在『大学』里把明德和天联系在一起的事实。他把作为人的本性的明德规定为光明,同时认为明德和心之间存在着分别性和同一性。从虚灵和光明不昧之侧面来说,明德和心是同一的。但是从气禀之侧面来说,明德和心又应辨别。仅从心体之侧面来说,圣人和凡人之心相同,但是从气禀来考虑的话,由于气禀的原因圣人和凡人之心又不相同。南塘诊断说,凡人身上存在着因浊驳的气禀而出现的恶念,浮念,偏念等三种"心术之病"。消除这一病症的修养工夫如下: 如果要去除恶念,则需要诚意工夫; 如果要去除浮念,则需要正心工夫; 如果要去除偏念,则需要彻底的修养工夫。他还断定通过这一途径可以达到圣人的境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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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학과 현대 기호유학 - 오래된 미래를 위한 몇 가지 제언 -

김경호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111-137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다음의 세 가지 물음으로부터 출발한다. 첫째, 기호유학의 범주에서 한원진을 중심으로 한 철학사상은 어떠한 위상을 갖고 있는가? 둘째, 한원진의 학술사상은 체계적인 ‘남당학’으로 정립될 수 있는가? 셋째, 한원진의 학술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이러한 문제의식을 전 제로 필자는 먼저 기존의 연구 성과를 수렴하여 남당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학술 용어의 가능성을 탐색하였다. 그리고 현대 기호유학의 영역 설정과 관련해서는 ‘호남유학’을 ‘기호유학’에 포함할 것 인지의 여부에 대해 재고할 것을 제안하였다. 다음으로 필자는 남당학의 가능성을 남당의 학술사 상이 갖는 독자성과 학문적 위상, 그리고 당대의 정치적 위상을 통해서 확인하였다. 한원진의 학술 적 독창성은 ‘因氣質’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여 성리학 이론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유 학사적으로는 문헌 해석학 작업을 통해 󰡔朱子言論同異考󰡕를 저술함으로써 조선유학의 위상을 동아시아적인 지평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한원진은 ‘洪洲’에 거주하는 호서의 일개 학인에 불과하였지만 기호유학을 넘어 율곡학파를 대표하였고, 당대 유학의 춘추대의를 표상 하는 인물이었다. 이처럼 한원진은 한국유학의 전개 과정에서 새로운 학술적 의제를 제안하였고, 율곡학파의 성리학 이론을 심화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필자는 한원진의의 학술사상은 체계적인 ‘남당학’ 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한원진의 철학적 사유가 파국의 지점 에서 타자를 배제하는 독단의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개연성에 대해서는 숙고의 필요성이 제기 된다.

This essay inquires into three issues. First, what philosophical significance does Namdang’s theory have in Kiho Confucianism? Second, can his theory be developed as a systematic Namdang studies? Third, what meaning does his theory have in contemporary times?Starting with these three questions, I discussed a possibility that ‘the Namdang studies’ can be established on the basis of the previous studies regarding his philosophy. I also proposed reconsidering whether it is right to include ‘the Honam Confucianism’ into ‘the Kiho Confucianism’ with regard to the scope of ‘the Kiho Confucianism’. Lastly, I proved the possibility of ‘the Namdang studies’ through the originality, and academic and political significance of Namdang’s theory. The originality of his theory is to deepen Neo-Confucianism by reestablishing the concept of “issuing from temperament (inkijil).” He also provided an opportunity to view Choseon Neo-Confucianism in the context of East Asia by interpreting ‘The Research of the Similarities and Dissimilarities in Zhu Xi’s Theories(Chujaonrondongigo)’. In addition, he went beyond the Kiho school and represented the Yulgok school although he was just one of the Hoseo Confucianists to live in the area of Hongju. He was also one of the representative philosophers to stand for the Confucian thought of righteousness. In this way, Namdang proposed a new academic issue in the process of developing Korean Confucianism and contributed to deepening the theories of Yulgok Confucianism. Accordingly, I thought that his ideas can be developed as the Namdang studies. However, we should also consider that his ideas ruled out other philosophical schools and proceeded as a “dogma.”

6

간재 전우의 이단 비판의 기준과 근거

김세정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139-16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간재 전우(1841~1922)는 正學과 異學, 聖學과 異端을 나누는 기준과 異學‧異端을 비판하는 근거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正學‧聖學과 異學‧異端을 나누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心 이 天을 근본으로 삼으면 聖人의 학문이고, 心을 근본으로 삼으면 異學이다. 둘째, 天理를 爲主로 하여 心으로 보좌하도록 하고 性을 높이고 理를 궁극적 준칙으로 삼으면 正學이지만, 心을 聖君으 로 삼고 性을 낮추어서 心으로 하여금 性을 부리게 하고 자신이 믿는 心을 궁극적 準則으로 삼으면 異端이다. 셋째, 心을 배우면 異端이고 性을 배우면 正學이다. 넷째, 理와 性이 主宰한다고 보면 正 學이고, 氣와 心이 主宰한다고 보면 異學이다. 다섯째, 心이 性을 높이는 것은 聖學이지만, 心이 스 스로를 높이고 性을 높이지 않는 것은 異學‧異端이다. 간재가 다양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주자학만이 正學이고 이외의 학문들은 모두 異學‧異 端이라는 한마디 말로 귀결된다. 주자학의 핵심 명제인 ‘性卽理’‧‘心卽氣’만이 옳고 ‘心卽理’는 그르 다. 無爲의 형이상자인 天‧理‧性를 근본으로 삼고 이를 높이는 학문이야말로 진정한 聖學이자 正學 이며, 氣인 心을 근본으로 삼고 이를 높이는 학문은 오히려 이러한 聖學을 그르치는 異端이라는 것 이다. 전우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하고 올바른 학문은 性은 높여서 궁극적 준칙과 표준으로 삼고 心은 낮추어서 性을 본받고 性을 존중하고 性에 순응하도록 하는 性師心弟의 학문이다.

In this paper, we want to present the solid viewpoint of Ganjae Jeon Woo (1841~1922) on the criteria for distinguishing the orthodox studies(正學) from the heretical ones(異學), the study of the Saints(聖學) from the heterodoxies(異端), and on the bases for criticizing heretical studies. The criteria for distinguishing orthodox studies and study of the Saints from the heterodoxies are as followed. First, the study of the Saints is the one according to which the mind(心) considers the Heaven(天) the foundation, if the mind is considered the foundation, then this study is heretical. Second, the study which understands the Heaven's principle(天理) as the master and the mind as the assistant, enhancing the nature(性) and regarding the principle(理) as the criterion can be called the orthodox study; while the study which thinks the mind as the holy king(聖君), lowering the nature, making the mind control the nature, and considering the mind the extreme rule is heretical. Third, the study which follows and believes in the mind is heretical, the study which follows and believes in the human nature is orthodox. Fourth, the study which considers the principle and nature the masters is orthodox, while the study which considers the energy flow(氣) and mind the masters is heretical. Fifth, the study in which the mind enhances the nature is the study of the Saints, while the study in which the mind enhances itself and makes light of the nature is heterodox. Ganjae puts forth various reference points but the last conclusion is that in his viewpoint, only study of Zhu Xi can be regarded as orthodox, and any other theories are heterodox. Only the core proposition of the study of Zhu Xi according to which 'the nature is the principle, the mind is the energy flow(性卽理‧心卽氣)' is right, while the argument that 'the mind is the principle(心卽 理)' is wrong. Only the study which regards the Heaven-the principle-the nature(天‧理‧性) - means the static metaphysical substances - as foundations and enhances them can be called the true study of the Saint and the orthodoxy; on the contrary, the study which regards the mind - the energy flow - as the foundation and enhances it is called heterodoxy. The study about which Jeon Woo thinks as the most desirable and correct is the one according to which the nature is considered the highest criterion and the mind the lower, the mind must imitate and respect the nature as a disciple does to his master(性師心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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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통사적 유학사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저술은 1882년에 나온 송병선의 『패동연원록』이다. 조선말기에 시작된 유학사의 편찬은 식민지시기에 들어서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화되었다. 식민지시기에 편찬된 ‘유학사’는 장지연의『조선유교연원』과 하겸진의 『동유학안』이 대표적 이다. 본 연구에서는 장지연과 하겸진의 사상을 조명하고『조선유교연원』과『동유학안』에 내 포되어 있는 저항의식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장지연의 『조선유교연원』은 그 서술방식에서부터 ‘근대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 학파나 연원으로 분류하지 않고 유학사의 시대구분을 하고 있다는 점, 시대별 주요 논변과 학문적 사건을 제시한다는 점, 학파적·지역적 입장을 가능한 한 탈피하여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실학자나 양명학 자, 성리학에 비판적인 학자들까지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패동연원록』보다 적극성을 띠고 있 다. 더구나 『조선유교연원』에서 제시하고 있는 학문적 사건과 논변들은 대부분 후일 유학 연구 자들의 핵심 연구 주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하겸진의 『동유학안』은 위정척사의 입장에 있는 도학자의 관점에서 서술된 학안체의 유학사이 다. 『동유학안』에서는 새로운 학파분류 방법과 아울러 그 학파별 특징을 잘 제시해 주고 있으며, 학문적·당파적 분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 사화와 당쟁 등 유학이 정치 와 결합되어 나타난 부작용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하겸진은 장지연보다 전통적인 입장에서 유학을 되살리고자 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는 그가 유학적 예의를 국성(國性)으로 제시하 고 국성을 보존함으로써 국체를 되살릴 수 있다고 보는 관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두 저작에는 한계점도 존재한다. 이들은 조선시대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학자들까지 포용하고 있지만, 둘 다 퇴계 영남학의 학통에 속하는 유학자로서, 자파 중심의 유학사 서술에서 완전히 탈 피하지는 못했다. 또한 둘 다 조선왕조 개창의 이론적 바탕을 제시한 정도전을 ‘조선유학사’에서 완 벽히 배제함으로서 그들의 내면은 여전히 조선왕조의 신민임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유교연원』과 『동유학안』은 서술방식도 다르고, 구체적인 방법은 달랐지만 이 두 사람 모 두 우리민족의 정신적 바탕을 유학에 두고 민족정신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 한 점에서 볼 때 피식민 민족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어 저항을 무력화하고자 식민지배를 정당화하 려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대한 강한 저항 의식이 이 두 유학사 저술의 촉발점이었다고 하겠다.

朝鮮末, 宋秉璿著述『浿東淵源錄』(1882), 這是最初的‘朝鮮儒學通史’. 韓國儒學史之編纂於植民地 時期, 更多積極的和明確的. 韓國植民地時期之代表的朝鮮儒學史, 是張志淵之『朝鮮儒敎淵源』(1917)和河謙鎭之『東儒學案』(1943). 筆者試圖照明張志淵和河謙鎭之思想, 與試圖揭示『朝鮮儒 敎淵源』和『東儒學案』固有的抵抗意識.『朝鮮儒敎淵源』, 徵求近代的敍述方法. 不分類學派和淵源, 試圖儒學史的時代區分, 而提示時代的 主要論爭與學問的事件, 寻求逃生學派的色彩和地方色彩. 还這是書提示時代的主要論爭與學問的事 件, 后来成为了核心的研究课题, 意义在这方面. 河謙鎭之『東儒學案』是學案體的儒學史. 河謙鎭一个是谁支持衛正斥邪的学者.『東儒學案』提示 新的学術分类和學派的特色. 他還揭示批判的觀點對於學術和黨派的分裂, 還必須表示憂傷對於士禍 和黨爭. 河謙鎭提出儒敎的‘禮義’就是韓國人的‘國性’, 而他提出為了復活‘國體’應該受到保護‘國性’『朝鮮儒敎淵源』與『東儒學案』都有一個缺少粘性. 張志淵與河謙鎭都屬於嶺南學脈, 不能完全逃脫 自己的學術地位. 還他們都完全排除鄭道傳, 鄭道傳是朝鮮的一個開國功臣. 這一事實證明是他們不 能完全逃脫朝鮮之正統道學者的位置. 可以確定的是『朝鮮儒敎淵源』和『東儒學案』, 這肯定是表示抵抗意志對於日本帝國主義的植民 政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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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會之心의 존재원리와 정보통신기기 존재구조 원리의 융합적 접근

김창경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193-226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우주자연의 변화원리와 인간 삶의 능동적 조화를 추구해온 儒家哲學思想은 오늘날 첨단 과학기술 기기의 운용원리와 상호 밀접한 소통점이 있다. 이에 본 硏究에서는 성리학에서의 존재론인 ‘統會 로서의 心’의 원리구조가, 현대과학기술의 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기의 운용원리 및 존 재구조와 상호 소통되어짐을 융합 접근하여 究明하고자 한다. ‘統會之心’의 존재론은 유가철학의 전통적 존재론인 ‘太極論’에서 비롯하여 宋明시대 성리학의 인간심성을 구명하는 ‘心統性情’의 존 재원리로 이어져 왔다. 또 조선성리학에서는 栗谷이 ‘心統性情論’을 잇고 ‘理通氣局論’으로 계승하 고 있으며, 구봉(龜峰) 송익필(宋翼弼),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등은 ‘統會之心’으로 인간의 심 성세계를 존재론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儒家철학에서는 천지자연의 變化之道에 참여하고자 一貫 視하는 인간의지의 실천적 능동성을 긍정하지만, 形氣를 지닌 국한된 존재로서 그 인간행위의 결 과는 오늘날 자연환경 파괴와 인간성 상실을 초래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부작용과 같이 ‘相濟’작용 과 ‘相病’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곧 인간의지의 善하지 못한 不德함의 결과로 서, 형기의 국한됨으로부터 기인한 심성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통회지심의 존재원리를 살펴 그 구조를 도식화하고, 과학기술기기의 운용원리와 그 구조를 도식화하여 상호 융합 접근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성리학의 존재원리와 과학기술기기 운용원리의 상호 소통점을 究明하고, 인간행위의 소산물인 현대 과학기술기기의 병폐적 부작용이 인간심성에서 발생하는 상 병작용과 같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는 과학기술의 병폐적 부작용의 문제해결을 위한 한 방법이 되며, 儒家철학사상이 21세기 현대 과학기술과 상호 소통하는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活物性을 갖는 보편적 원리임을 究明하는 意義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Philosophical ideology of Confucian has features that could be closely communicated with operational principles of cutting-edge scientific technology devices today as it has continuously sought an active harmony with principle of change in cosmological nature and human being's lives. Thus, this study aims to take an integral approach to principle and structure of 'mind in convergence and ruling', as an existence principle of Confucian philosophy, with the structure operational principle of data communication equipment, which is an advanced scientific technology today. Existence principle of 'mind in convergence and ruling ’ has been connected from including ‘the Great Ultimate theory’, a traditional ontology, through the existence principle of ‘the communicated convergence of nature’ in the neo-confucianism of Sung and Ming Dynasty, looking deep for human being's mind. Even it was more developed as a existence principle of 'mind in convergence and ruling' by Gubong Ikpil Song in the neo- confucianism of the Joseon Dynasty. The discussion on the mind in convergence and ruling continued till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and came up by Myeonu Jongseok Gwak. This study was motivated to newly focus on ‘human being's mind’ of confucian tradition. Confucian philosophy is, however, positive about human will's practical activeness in which holistic view to participate in the principle of change in natural phenomenon is confirmed. In fact, however, results of human's behavior as a limited existence with materialistic body with a shape has led to the operation of ‘being helpful each other’ and that of ‘being harmful each other’ just like side effects of scientific technology causing destruction of nature and loss of human nature. These are the results of human will's immorality, eventually, cause by the operation of virtue due to restricted materialistic body with a shape. Thus, this study explores existence principle of mind in convergence and ruling and schematize it. On top of that, this study also schematize the structure of operational principle of scientific technology equipment with an integral approach. In specific, this study finds out and emphasizes a link between existence principle and operational principle to prove that side effect of modern scientific technology and equipment, a product of human's behavior, is the same with operation of being harmful each other which are brought from scientific function of the virtue. In short, this study implies that philosophical ideology of Confucian is a universal principle with active and practical living characteristic communicating with modern science technology in the 21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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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나타나는 ‘꽃’에 대한 고찰 - 일연의 「찬(讚)」을 중심으로 -

최재목, 김은령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227-257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고려시대에 활동한 선승 일연(一然, 1206-1289)의 저작물로 알려진『삼국유사(三國遺事 )』에 기록 된 일연의「찬(讚)」중에서 꽃이 언급되는 조항과 그 내용을 살펴보고, 그 꽃의 상징성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일연의 불교관(佛敎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삼국유사』는 전 5권 9편목으로 묶여져 있으며, ‘왕력’편을 제외하고 전체 138조항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중 「찬(讚)」은 기이(奇異-1편), 흥법(興法-7편), 탑상(塔像-13편), 의해(義解-12편), 신주(神呪-2편), 감통(感通-7편), 피은(避隱-6편), 효선(孝善-1편)의 각 편목에서 총 49편이 등장한 다. 그리고 「찬」에서 꽃의 등장은 총 9편에서 보인다. ‘꽃’은 불교의 육공양물(불교 의례 중 부처님 전에 올리는 공양으로 6가지인 꽃(花)·차(茶)·향(香)·과일)果·초(燈)·쌀(米) 등)에 속하는 불교 의례 의 상징물 중 하나이다. 이 논문에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일연의 찬」 부분에서 좀 더 미시적으로 접근하여 몇 몇 부 분에서 등장하는 ‘꽃’과 꽃을 지칭하는 ‘화(花‧華)’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뜻을 살펴보고, 일연이 선 택한 단어인 ‘꽃’이 상징하는 것을 통해 일연의 불교관을 짚어 보았다. 불교에서 ‘연꽃’이란 꽃의 생장 형태를 통해서 비유 하고 있는데 그 논리는 자성청정(自性淸淨), 처 염상정(處染常淨) 임과 더불어 인과동시(因果同時) 의 의미를 논하고 있다. 자성이 청정하면 그곳 이 처염상정한 세계이며, 인간세의 고통이 없는 바로 불국토의 세계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천화( 天花)’라 함은 모든 인간을 수호하고, 관장하는 왕들이 사는 곳, 또한 모든 인간이 생노병사, 희노 애락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나기를 소원하는 낙토(樂土)에서 내려주는 ‘꽃’이다. 즉, 그 꽃 내림을 목격하거나 받는다는 것은 그 꽃이 내려온 장소인 ‘천’과 관계 맺음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 다. 그러므로 부처의 생애나 선승들의 생애에 나타나는 ‘천화’는 그들을 수호자(전법자)로 인증하 는 매개물이라 할 수 있다. 일연의 찬에 나타나는 ‘연꽃’ 또한 ‘자성청정’인 주체(我)를 가지고 ‘계율 과 자비’를 펼치는 법석(法席)을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곳에서 ‘연화장 세계’를 열어가는 한 줄기 ‘법’을 피력하는 매개물로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연꽃은 ‘자성청정(自性淸淨)‧처염상정(處染 常淨)’을 상징하며 불법의 위력이 만들어 내는 ‘연화장 세계’이다. ‘연화장 세계’란 실체가 없는 허 공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을 수행하여 스스로 청정해지는 ‘나(我)’가 주재하는 그 곳이기에 『삼국유사』의 꽃도 이 점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This paper study on the symbol of Flowers(花‧華) in Ilyeon(一然, 1206-1289)’s Samgukyusa(三國 遺事). And also through it, examine his viewpoint on Buddhism. Samgukyusa is the book that tells well the situation of the Koryo Dynasty, buddhist country. In the text, we can find a kind of storytelling buddhist doctrine. So he used in it many buddhist symbols, materials and tools. The flowers is one of them. Because of people are easily to understand Buddhism. In Buddha and Buddhism, flower is an important symbol. In particular, the lotus(蓮花) is just a symbol of Buddhist enlightenment. Flowers, lotus flower appeared a lot in the Samgukyusa, such as in the major buddhist texts are. A lotus grows in the pond is dirty. But the flowers are very pretty and fragrant. Like the lotus, the world we live in is very complex, messy and painful. But human nature is like a lotus is not dirty. Human nature is clear and clean never pollution. So the inside of the human did not dirty at all. So if the human mind is very clear, then we can say, the land where human lives are all pure place no pollution. Ilyeon wanted to tell it by the symbol of Flowers in Samgukyusa. He considered the country who korean lives is all just pure Buddha land, Chengjeng-Bulgukto(淸淨 佛國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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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철학적 관점에서 본 박중빈과 송규의 심신관 비교

임병규, 김부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259-28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체육철학은 인간의 몸과 활동에 대한 사변적, 규범적, 분석적인 학문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몸을 통한 신체적 활동은 인격함양의 중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본고는 체육철학적 관점에서 원불교의 심신관을 다루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원불교 사상은 교 조인 소태산 박중빈과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에 의하여 정립되었다. 송규는 박중빈의 심신관을 계 승하는 한편 차별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몸과 마음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동시에 수양론 (양생론)의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본고에서 아래과 같은 내용을 고찰함으로서, 박중빈과 송규에 의하여 체계화된 원불교 심신관의 내용과 그 특징을 다루고 있다. 첫째, 박중빈과 송규의 심신관과 수양론을 통하여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 였으며, 그들이 목표로 하는 인간의 이상적인 경지와 이에 이르기 위하여 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규명하였다. 둘째, 박중빈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를 고찰하였다. 셋째, 정산은 인간이 영(靈)과 기(氣)와 질(質)의 세 요소로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정 산의 영기질론은 박중빈의 심신관을 어떠한 점에서 계승하였으며, 어떠한 점에서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지를 밝히었다

Sport philosophy is an academic scope which studies human body and activities theoratically, normatively and analytically. Since a human being consists of body and mind, physical activities through the body must be one important tool to build one's characteristics. This study purposes to investigate the view of body and mind stated by Won Buddhism as referring to the perspective of sport philosophy. Ideas of Won Buddhism are developed by the founder, Sotaesan Park Jong Bin, and the second master monk, Jungsan Song Gyu. Song Gyu succeeded Park Joong Bin's view of body and mind, but also shows differentiated view on the other hand. The different understanding of body and mind derived the difference of theory of self-cultivation. As exploring the contents below, this study treats the contents and characteristics of Won Buddhism's view of body and mind which was developed by Park Joong Bin and Song Gyu. First, through the theory of self-cultivation and view of body and mind developed by Park Joong Bin and Song Gyu, this study attempted to investigate how they understands human beings, and to define the roles of the body to achieve ideal stage of human being. Second, this study explored how Park Joong Bin understands the human body and mind. Third, Jung San claimed that a human being consists of three factors, which are spirit, energy and material. This study attempted to investigate how the concept of spirit, energy and material succeeded Park Joong Bin's view of body and mind, and how it is differentiated from such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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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老子』이해와 번역 -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

이재권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281-31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노자』원문과 그 주석서의 현대 한글 번역서에 대한 사료적 정리와 특히 한국 기독교 인들의 『노자』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번역에 대하여 분석하고 정리한 것이다. 2장과 3장에서는 『노자』와 그 주석서의 한글 번역서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서지사항을 정리했다. 해방 이후 1980 년대까지의『노자』번역은 대부분 한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그 숫자도 많지 않다. 본격 적인 번역은 1990년대부터 도가철학 전공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번역된 책의 종류를 분류하면 다섯 가지로 나누어진다. 통행본 『노자』번역, 지하에서 출토(발굴)된 『노자』번역, 중국인의 『노자』주석서 번역, 현대 중국인들이 현대중국어(백화문)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것, 한국인의 『노자』주석서를 번역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4장에서는 현대 한국기독교인들의 『노자』이해와 한글 번역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유영모 ‧ 함석 헌 ‧ 박영호 ‧ 장일순 ‧ 이현주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순수 한글 번역을 시도했다. 그들은 노 자를 석가‧예수와 함께 3대 성인으로 평가하며, 석가 ‧ 예수 ‧ 노자의 사상이 궁극적으로 일치한다 고 이해했다. 5장에서는 이현주 목사가 번역한 초횡의 『노자익』번역서에 드러난 번역의 문제점 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잘못 번역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밝혀, 이 책의 수정본 출간과 향후 다른 번역자들이 참고할 수 있게 하였다.

本论文分析整理了《老子》原文和其注释书即现代韩文版译书史料,特别是韩国基督教徒们对《老子》的理解和翻译。在第二章和第三章中整理了对《老子》和其注释书的韩文版译书的历史考察和书誌事项。解放后到1980年代对《老子》的翻译大部分是由汉学家来完成,而且从事翻译的人员也不多。有规模的翻译是在1990年代开始,是专业的道家哲学们完成的。已经翻译的书,按类可分为以下五种:通行本《老子》、发掘出土的《老子》、中国的《老子》注释书、现代中国的白话文《老子》、韩国的《老子》注释书。在第四章中考察了现代韩国基督教徒们的对《老子》的理解和韩文翻译。其代表人物有刘永模、咸锡宪、朴永浩、张壹淳、李贤周等,他们试图要以全韩文来翻译。他们把老子、释迦和耶稣尊称为三大圣人,认为释迦·耶稣·老子的思想终归是一致的。在第五章中集中分析了李贤周牧师的翻译焦竑的《老子翼》的译书中存在的问题。具体指出了翻译有误的部分,使得给此书的修订本的出版,以及今后其他译者们的翻译提供了参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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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의 존재론에 대한 칸트의 선험철학적 해석

박종식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311-349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中庸』에서는 내재된 인간 본성을 따르는 것이 곧 天命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본 성과 양심에 따르는 것이 바로 中庸이며, 이것이 天命을 따르는 것이다. 내재적 본성을 따르는 것 이외에 따로 天命을 따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칸트적 해석에 따르면 天命은 객관적인 자연법칙이 아니라, 인간 본성이 外在化된 법칙일 뿐이다. 天命이란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 구성된 법칙이라는 것이다. 또한 모든 사물은 인간의 마음, 또는 자아가 구성한 것이지, 인간의 마음과 독립적으로 존 재하는 사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陽明의 心外無物 사상이며, 이것은 칸트가 수행한 ‘코페르니 쿠스적 전회’와 일치한다. 칸트에게 인식활동은 외부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소극적 활동 이 아니라, 인간의 선천적 인식틀을 통해서 외부 대상을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활동이다. 인식 대상 이 객관적으로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적 인식틀을 통해서 인식 대상이 비로소 구 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대상 중심의 인식론으로부터 주관 중심의 인식론으로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수행한 것이다. 형이상학적 실재론으로부터 선험적 주관주의로 전환한 것 이다. 따라서 이제는 인간의 마음 또는 자아가 자연을 구성하고 해석하는 입법자가 된다. 그런데 中庸과 時中은 단순한 중간이 아니라, 때와 상황에 맞게 그 中을 잡는 것이다. 君子의 中庸은 時中 을 하는 것이고, 小人의 反中庸은 원칙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거리낌 없이 마구 행동하는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듯이 小人들은 법칙이나 원칙을 무시한 채 자기 기분에 따라 마구 행동 하는 것을 中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덕법칙이나 원칙을 무시하고 마구 행동하는 것과 도덕 법칙이나 원칙을 염두에 두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원칙에 따라서 상황 을 해석하고 행동하는 것과 원칙없이 자기 소신이나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中庸 의 本體가 논리적으로, 존재론적으로는 선행하지만 中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時中의 과정이 필요 하다. 時中을 통해서만 中의 體가 드러난다. 선천적인 未發之中이 發而皆中節하는 과정은 칸트의 도덕법칙이 자연 인과율로부터 벗어나 자유 인과율의 계열을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中庸』은 未發之中의 性을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이 時中임을 밝혀준다. 時中은 상황에 맞게 中 을 찾아서 행하는 隨時以處中이다. 時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처럼 단순한 중간을 의미하는 것 이 아니다. 中의 體 자체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時中의 행위를 통해서만 中의 體가 실현 되고 구체화된다. 따라서 時中이야말로 中庸의 핵심이다. 모든 진리는 시간과 상황 속에서 현현한 다. 시간성이 배제된 이념이나 진리는 환상에 불과하다. 시간성이야 말로 진리가 드러나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구체적인 감성적 형식 속에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이 논문에서는 『中庸』의 구조와 의미를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중용의 내용을 칸트의 선험철학적 입장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中庸』과 칸트철학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드러 낼 것이다.

In this paper, I investigate the relation between The Mean(『中庸』) and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y, namely, the problem how to apply the principle of universal to individuals in specific situations. Of course, from a philosophical point of view The Mean and Kant's critical philosophy have no direct correlation. However, the problem how to apply the principle of universal to individuals in specific situations is a concern of all of philosophers. The paradigm of transcendence and immanence in The Mean and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y deals with the moral law. In this respect, I will prove that they have internal relationship. I investigate the way of materialization of ‘The ordinance of Heaven’(天命) and ‘human nature’(性) in The Mean and that of ‘transcendental subject X’(Ding an sich) in Kant’s philosophy from a episthemological point of view. In particular, I compare the process to be presented outside the emotions of delight, anger, sadness, pleasure(喜怒哀樂之情) in The Mean with the process for things to be presented to our five sense(Sinnlichkeit) and to understaning(Verstand) in Kant’s philosophy. I show that human nature(性) and the thought that there is only mind, there is no object(心外無 物) in The Mean is to match the theory to constitute cognition through Kant's transcendental ego. The theory that our episthemological objects don’t exist by themselves, but they are constituted by us is called Copernican Revolution. When we pursue the unconditional unity beyond the limits of our cognition, then the transcendental ideas occurs. ‘The ordinance of Heaven’ and Kant’s transcendental idea is the foundation of morality. The transition from the mean which isn’t presented out(未發之中) to the mean which is presented out as just right in moderation(發而皆中節) is similar to that from causality of nature to causality of freedom in Kant's moral law. The way to realize human nature as the mean in mind is to act the mean in time and specific situations. Therefore, in this paper I don’t try the systematic interpretations in The Mean, but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ical interpretations of the contents in The 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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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 인 개념의 자연생명론적인 의미

황종원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35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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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연생명론적인 시각에서 주자의 인 개념이 지닌 함의를 분석하고 그것이 인간 덕성이라는 측면에서의 인과 어떤 의미에서 일치될 수 있는지 논증하고 평가함을 목적으로 한다. 주자는 천지가 생명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그것을 내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여 인이라 규정한다. 천지를 인으로 규정하면 천지도 인간처럼 마음이 존재하느냐는 물음이 생기는데 그는 이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취하지만 천지의 생명 산출이 인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한다. 그는 정명도의 ‘생의’ 개념을 운용하면서 개별생명이 지닌 ‘생의’의 실현은 천지의 만물을 살리는 이치와 기운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여겼으며, 그런 의미에서 천지의 ‘물을 낳음’은 ‘살림’이라는 심층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으로 규정할 수 있었다. 나아가 주자는 이렇게 정립된 자연의 인 개념이 인간 내면의 그것과 일치함을 주장하는데 그 논증은 주로 천지의 원·형·리·정이라는 기준에 인간의 인·예·의·지를 맞추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형’에 인의 외적 표현인 ‘예’를 맞추고 생명을 거두어들이는 ‘리’에 차가운 이성에 의한 판단인 ‘의’를 맞추며, 종자의 형태로 생명을 간직하는 ‘정’에 수많은 이치를 지식으로 간직하는 ‘지’를 맞추는 식이다. 엄밀히 말해 이들 개념은 이미지의 유사성만 갖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이에 비해 ‘원’과 ‘인’의 일치에 대한 논증은 성공적이다. 천지의 ‘생’처럼 인간의 ‘인’도 타자를 측은히 여겨 ‘살림’이 핵심이기 때문이고, 또한 생명의 산출·성장·성숙·재생을 위한 준비의 전 과정에 걸쳐 생명산출과 살림이 지속되는 것처럼, 사양·수오·시비의 정감 중 어느 것이든 측은의 정감이 그 전제 혹은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주자는 생명 개념을 매개로 ‘원’과 ‘인’을 사유했기 때문에 양자의 일치를 훌륭히 논증했으나 의·예·지의 경우에는 이미지의 유사성에만 착안했기 때문에 형·리·정과의 연결이 부자연스럽다 하겠다.

作者在本文中从自然生命论的角度分析朱子仁概念的内涵,并着重探讨了天地之仁与人性之仁的同一性问题。朱子认为,天地生养自然生命,在此意义上天地自有内在价值,被称为仁。如果说天地有仁德,就必然产生天地到底有无“心”的问题。虽他对此坚持保留的态度,却明确表示天地生养自然生命的活动有仁的价值。朱子运用程明道的“生意”概念,并认为每个生命要实现“生意”,就必需天地体恤万物的“理”和“气”,在此意义上天地之“生物”具有体恤万物的深层含义,也因此之故他就把天地规定为仁。在此基础上,朱子还进一步论证自然之仁与人性之仁的同一性,而这个论证主要采取了按照天地“元亨利贞”的标准选择并调整“仁义礼智”的方式,比如说,按“亨”的标准选择“礼”并调整它的意义;按“利”的标准选择冷冰冰的理性判断即“义”;按“贞”的标准抽出“智”蕴藏众理的意思。但严格地讲,这些论证都只是形象的的相似性,有一定的局限性。与此不同,对于“元”与“仁的同一性问题,朱子的论证是非常成功的。如同天地之“生”物,“仁”的中心意义乃在于同情、救活别人;又如,在天地生养万物的全过程中,天地生出万物、体恤万物的活动没有被中断过,同样,辞让、羞恶、是非之情都以恻隐之情为前提或基础。总之,由于朱子以生命概念为主去思考“元”与“仁”的关系,这个论证就得到了成功;对于“义”、“礼”、“智”,他只考虑形象的相似性,所以它们与“亨、利、贞”的结合并不自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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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과 무늬; 주희 예술철학의 특징과 현대적 의의

김범수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379-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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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은 미(美) 원형의 세계를 지칭하는 기호(무늬)다. 기호를 통해 기호 속에서 기호가 지칭하 는 그것(바탕)을 파악하고 표현하는 것이 감상과 창작의 본질이다. 바탕(道‧理)은 현상 사물을 존재 하게 하는 근원적 존재자다. 그리고 무늬(文)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무늬의 가치는 바탕의 구현 여부에 달려있다. 엄밀히 말하면, ‘바탕의 구현’은 무늬로 바탕을 표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바탕의 자연스런 현현이 곧 무늬라는 말이다. 이때의 무늬는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성인이 만 들어낸 무늬를 가리킨다. 감흥과 상상은 감관의 한계를 초월하게 하는 힘이다. 이미 경험한 것을 미래에 투사(metaphor)함 으로써 바탕에 대한 인식과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바탕에 대한 인식과 실천은 자아실현에 있어 중 요한 관건이다. 인지와 정서라는 두 차원이 상호 결합되어 이루어진다. 은유적 방식을 그려지는 그 자득과 회통의 경지는 예술적 이상이다. 자연적 경험을 예술화하는 과정 속에서 정감(warmth)은 형상의 의미를 드러내주는 상징물을 선택하는 기능을 한다. 다시, 사물의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것 을 초월하여 정신적 평안을 이루는 인생 최고의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 이 경지는 도덕과 예술이 구별되지 않는 경지다. 주자에게 있어서 심미활동의 궁극적 목적은 바로 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다. 그것은 삶의 목적이자 예술의 지향점이다. 인격정신의 원형을 실현하고 미의 이상을 구현하는 일은 이성적 자각과 감성적 인식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주자 예술철학의 목표는 ‘수양을 통한 삶의 예술화’다. 바탕의 현현은 무늬 꾸밈의 목적이다. 이 목 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혜와 의지력은 수양공부를 통해 습득되거나 또는 길러진다. 도덕감과 심미감을 타인과 심미대상에 확대 적용함으로써 일체를 이루는 상태(豁然貫通)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상징적 사고와 감흥이 중시된다. 격물(格物)과 유예(游藝)는 이성과 감성, 인지 와 정서, 사고와 표현, 도덕과 예술의 조화를 달성하는 일반적 방법으로 중시된다. 진리와 예술의 조화 문제에 대한 주자의 해결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전개된 것이다. 문도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주자 예술철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조 화미(中和美)를 추구한다. 도덕과 예술, 작가의 성품과 작품의 품격, 감정과 이치, 몸과 마음, 개인 과 사회, 인간과 자연의 조화 등이 그것이다. 실재에 대한 체험과 이해를 성공적인 표현의 선결요 건으로 삼는다. 정감은 생생한 느낌과 합리적 사고의 결과물을 무늬로 표현해내는 동력이다. 공감 과 소통을 지향한다. 도덕정감의 표출을 강조한 까닭은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을 베풀도록 하기 위 해서다. 실재감을 중시하고 진솔한 표현을 강조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진리 인식과 실천을 통해 삶을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수양 공부에 기초한 학문과 예술의 일치화는 삶과 예술 의 의미를 찾고 그것의 목적을 파악함으로써 스스로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는 시도에 도움이 된다.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수양 공부를 강조한다. 예술의 사회적 효용가치를 중시한다. 예술작품의 가치는 미적 원형(본체)과의 관계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 다고 믿는다.

The world Zhu-Xi(朱熹) aimed for was one of a non-dualistic balance of ethics and art. He placed different importance on each aspect. He considered the importance of the instrumental value of art when he painted focusing on the ethical aspect. On the other hand, he placed importance on the value of art itself when he painted focusing on the aesthetical aspect. He believed the aesthetic world was completed only when the two aspects became one. The colors of art would make the ethical rough sketches flavorful to form the world of qingliheyi(情理 合一), wendaoheyi(文道合一), and tianrenheyi(天人合一). Moreover, Zhu-Xi emphasized that the expanded application of spiritual and practical inference and interest of moral and aesthetic senses upon the aesthetic subject will form the state of wholeness in all that exists: huoranguantong(豁然貫通). Perception and emotion are both valued methods in Gewu(格物) and Youyi(游藝). Distinct characteristics of Zhu-xi's philosophy of art is that he sought for an idealistic acme of character through both rational and sensuous cognition as well as aspects of perception and emotion of the harmony of moralism and aestheticism. Seeking harmony of moralism and aestheticism can stand out especially as a virtue of the whole-person education. However, the aesthetic acme Zhu-xi proposed is truly a noble world that can only be attained with extreme sincerity and continuous development. The standard of value evaluation is the realization of moral sense. The controvers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moral sense and wen can not fully be contributed to the intensified difference between the depth and way of thinking of philosophical thoughts. There are three reasons as to this point. First, because Zhu-Xi made it his responsibility to succeed the daotong(道統) of Confucians, he completely separated any surrounding existences from those that existed in the center. Second, Zhu-Xi dreamed of a culture that fulfilled the Confucian ideology in its entirety. Therefore, he was not liberal to any work of art that did not exalt morality and ethics. Last, although paleographers were targets for criticism to Zhu-Xi, their poetry and prose earned positive reviews by him. If the fulfillment of moral senses through discipline of the mind is considered as a desirable attitude towards art, one can question, "Does art automatically become better through character building?"Another controversy related to the proposition of the standard of value evaluation is that it makes us aim for a fixed objective. People today neither believe in nor feel the need for the existence of an ultimate and singular standard. These days, people do not believe there is a standard that separates art from what is not art. The American philosopher, Nelson Goodman, once said that we needed to think about when something becomes art. Arthur C. Danto, an American art critic, said art itself was dead. According to Goodman, aestheticians are now merely people who work to describe an object as a work of art. However, the need for a standard exists no matter the activity and area work. Additionally, even though a standard may restrict the freedom of expression, it helps with knowing what values to seek. One may wonder, "Is Zhu-Xi’s method to fulfill his deals realistic?" or "Is it necessary?" I would like to put emphasis on the fact that Zhu-Xi considered not only moral ideals but also aesthetic ideals important. The experience of union comes from the integration of perception and emotion as well as moral ideals and aesthetic ideals. Based on Zhu-Xi’s theory of self- cultivation, it is within bounds to say that the interpretation of signs and the success and failure of the process of producing relies on learning to disengage oneself from worldly things. Corresponding and communicating with other people also falls under the premise that it reduces the practical need for learning to disengage oneself from worldly things. Taking into account these points, the theory of study and methods of studying Zhu-Xi proposed are practical and absolutely necessary to enrich and mature one’s life. Through an analysis of relation of nature(道‧理) and design(文) Zhu-Xi’s art theory philosophy as follows : seven kinds of features can be summarized. Beauty of harmony(中和美) to pursue : Morality and art, the artist’s personality and the dignity of work, emotion and reason, mind and body, the individual and society, such as the harmony of man and nature that will. Emphasis on real-life experience and the understanding. It is a prerequisite for the successful expression. A lively feeling of warmth and rational thought design to express the results out of power. Empathy and communication oriented. Why is an expression of warmth that emphasizes care for others, and is intended to show benevolent on others. Through awareness and practice of true artistic dimension of life, the sublime character. Study of science and the arts and want to match looking for the meaning of life and art by identifying its purpose to promote the stability of their own mind and body to help you. Problems in the area of culture and art in the discipline of the cultivation the fundamental solution. Taking note of the social usefulness of art to highlight the need for arts education. Aesthetic value of a work of art is to be evaluated in relation to the circular and bel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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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환경윤리 정립의 기본 원칙과 방법론에 관한 試探

황갑연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42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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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윤리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약 50년 역사에 불과하다. 환경윤리는 1979년에 국제학술지인 Environmental Ethics 창간되면서 비로소 정식 학술명칭으로 등장하였다.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환경윤리학이 국내에 소개되고, 자연적 존재에 도구적 가치만을 부여하는 서구의 인간중심적 환경윤리의 대안을 동양의 전통철학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자 국내의 학술계에서도 이에 상응하여 전통적인 동양철학의 세계관과 자연관을 기초로 새로운 환경윤리관을 소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중에서 유가철학 전공자들은 주로 ‘환경에 대한 유가의 이념을 어떻게 규정하는 것인가’에 관하여 집중적인 담론을 전개하였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환경윤리에 관한 유가철학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성찰해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환경윤리 정립의 기본원칙과 방법론을 제시할 것이다. 왜냐하면 환경윤리는 응용윤리의 한 분야로서 유가철학의 이념을 현대의 환경문제에 적용하여 문제의 갈등에 대한 시비선악을 판단하고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비선악을 판단하려면 윤리의 기본원칙이 제시되어야 하고, 이 원칙에 의거하여 방법론이 정립되어야 한다. 만일 지금처럼 유가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근거로 윤리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고, 확장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강조하고, 이에 관한 철학적 근거만을 제시하는 것에 그친다면 유가의 환경윤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식전환만을 요청하는 단순한 계몽운동 차원에만 국한될 뿐 응용윤리 출현의 본래 목적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環境倫理學的討論始自1960年代後期, 其歷史不至50年. 1979年國際學術期刊Environmental Ethics創刊, 才正式爲這一項領域的學術硏究定名. 環境倫理學1990年代介紹於國內, 西歐以自然爲人類工具的價値的想法, 他們維持人類中心主義. 因此要把相反的觀點找於東方的傳統哲學. 國內學術界相應於這潮流, 則根據於儒佛道的世界觀與自然觀, 指出另一種新的想法. 但目前爲止, 硏究儒家哲學者主要探究對於環境的儒家理念如何規定? 筆者在此論文, 一面省察到現在出現的儒家環境倫理學的種種觀點, 另一面要指出建立儒家環境倫理學之基本原則與其方法論. 環境倫理本屬於應用倫理的一個學術, 因此把儒家哲學的理念應用於現代的環境問題以判斷是非善惡, 並解決此問題. 要判斷是非善惡, 必先建立決定是非善惡的基本原則, 又據於此原則指出方法論. 假如根據儒家哲學的自然觀與世界觀, 只肯定儒家倫理領域之擴張可能性, 强調擴張的當爲, 儒家的環境倫理只不過是要請人類對於自然的存在之認識轉換的啓蒙運動. 如此與應用倫理學之出現目的, 並無本質的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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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유학의 사상사적 특이성

김성범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9집 2013.12 pp.449-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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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베트남의 유학을 사상사적으로 검토하여 베트남 유학의 특이성에 대해 드러내고자 하였 다. 베트남 유학에 대한 사상사적 연구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학계의 상황에서 관련 연구에 대한 하나의 기초 연구로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우선 북속시기(北屬時期)에 유학의 유입과정에서 빚어지는 한화와 반한화의 경향을 살펴보고, 시 니엡(Sỹ Nhiếp: 137-226)과 리 남 데(Lý Nam Đế: 503-548)의 유학 경향을 소개한다. 이후 리-쩐 왕조 시기 유학의 전개 양상을 소개한다. 리 타이 또(Lý Thái Tổ: 973-1028, 재위 1009- 1028)는 ‘치에우 저이 도(Chiếu dời đô: 遷都詔)’를 통해 유교의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리 타인 똥(Lý Thánh Tông: 1023-1072, 재위 1054-1072) 시기인 1070년에 탕롱 문묘가 건설되었다. 리 년 똥(Lý Nhân Tông: 1066-1128, 재위 1072-1128) 시기인 1075에는 ‘명경박학(明經博學)’이라는 이름 으로 과거제가 실시되었으며, 1076년에는 국자감이 설치되었다. 이로서 베트남에서 유학이 본격적 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쩐왕조 시기에는 쩐 꾸옥 뚜언(Trần Quốc Tuấn: 1228-1300)의 애국사상과 3 차례에 걸친 대몽항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에 대해 살펴보면서 힉 뜨엉 시(Hịch tướng sĩ: 諭諸裨 將檄文)에 대해 알아보았다. 레 왕조 시기는 베트남 유학의 발전기로 볼 수 있는데, 대명항쟁을 승리로 이끈 응웬 짜이(Nguyễn Trãi: 1380-1442)의 사상과 평오대고(平吳大誥)에 담긴 응웬 짜이의 사상적 면모를 개괄적으로 살 펴보았다. 이후 레 타인 똥(Lê Thánh Tông: 1442-1497, 재위 1460-1497) 시기에는 탕롱 문묘에 본 격적으로 진사비가 설립되었고, 3년에 한 차례씩 과거제가 정례화되었으며, 억불숭유정책도 실시 되었다. 1802년 응웬(Nguyễn)왕조가 건설되어 유학을 왕조체제의 근간으로 삼아 나라의 발전을 도모했으 나, 1885년 이후 프랑스의 침략으로 왕조는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유학자들이 스스 로 사상적 개혁을 통해 당대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였던 경신사상이 대두되었고, 이후 프랑스의 침략으로 근왕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유신운동과 티엔 단(Thiện Đàn)운동이 일어나면서 베트남의 유학은 인민들이 머물고 있는 마을로 들어가 불교를 비롯하여 민간사상과도 융합되면서 반프랑스 반식민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사적 관점에서 유학을 살펴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점은 북속시기와 근대시 기이다. 이 시기를 통해 우리는 베트남 유학의 사상사적 특이성을 감지할 수 있다. 한국에서 유학 연구가 주로 조선시대 성리학적 경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베트남에서 유학은 성리학적 경 향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깊은 이론적 전개가 없는 것은 베트남 사상의 한 특징인데, 이는 이론 적 논쟁이 없이도 현실적으로 매우 잘 유학을 실천할 수 있었다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반증한다. 한 편 이러한 유학을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주체로서의 베트남의 고유한 사상적 흐름을 상정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베트남 유학사상의 특이성을 감지할 수 있다.

Mục đích của nghiên cứu này là khảo cứu về tư tưởng Nho học của Việt Nam và đưa ra tính khác biệt của Nho học Việt Nam. Trong bối cảnh hạn chế về nghiên cứu tư tưởng Nho học Việt Nam tại Hàn Quốc, nghiên cứu này có ý nghĩa đóng góp một nghiên cứu nền tảng về chủ đề này. Trong nghiên cứu này, đầu tiên tôi tìm hiểu xu hướng Hán hóa và Phản Hán hóa trong quá trình Nho học du nhập vào giai đoạn Bắc thuộc (北屬時期), trong đó tôi giới thiệu về xu hướng Nho học của Sỹ Nhiếp (137-226) và Lý Nam Đế (503-548). Tiếp đó tôi giới thiệu hình thức phát triển của Nho học vào thời kỳ Lý - Trần. Lý Thái Tổ (973-1028, trị vì từ năm 1009 đến 1028) thể hiện tư tưởng Nho học qua bài Chiếu dời đô(遷都詔). Vào năm 1070, thời vua Lý Thánh Tông (1023-1072, trị vì từ năm 1054 đến 1072), Văn Miếu được dựng ở Thăng Long. Vào năm 1075, thời vua Lý Nhân Tông (1066-1128, trị vì từ năm 1072 đến 1128), kỳ thi khoa cử có tên là Minh Kinh bác học (明經 博學) được thi hành; năm 1706, Quốc tử giám được xây dựng. Như vậy, Nho học tại Việt Nam đã xuất hiện một cách chính thức. Vào thời Trần, tôi khảo cứu về động lực của 3 lần chiến thắng chống quân Nguyên Mông cùng tư tưởng Ái quốc của Trần Quốc Tuấn (1228-1300), đồng thời khảo cứu bài Hịch tướng sĩ(諭諸裨將檄文). Thời nhà Lê có thể nói là thời kỳ phát triển của Nho học Việt Nam. Tôi khảo cứu một cách khái quát về nhà tư tưởng Nguyễn Trãi (1380-1442) – người dẫn dắt nhân dân Việt Nam tới thắng lợi của cuộc chiến chống quân Minh và diện mạo tư tưởng của ông trong bài Bình Ngô Đại Cáo(平吳大 誥). Vào thời Lê Thánh Tông (1442-1497, trị vì từ 1460 đến 1497), bia tiến sỹ chính thức được dựng tại Văn Miếu ở Thăng Long và kỳ thi khoa cử được quy định tổ chức 3 năm 1 lần, chính sách sùng Nho ức Phật được thực thi. Năm 1802, nhà Nguyễn thành lập, lấy Nho học làm thể chế của vương triều và phát triển đất nước. Từ sau năm 1885, cùng với sự xâm lược của Pháp, vương triều Nguyễn trở nên hữu danh vô thực. Vào cuối thế kỷ 19, các nhà Nho đã thông qua phong trào tư tưởng Canh tân với mục đích cải cách tư tưởng để khắc phục vấn đề đương thời. Tiếp đó nổ ra phong trào Cần Vương khi Pháp xâm lược. Về sau còn diễn ra phong trào Duy tân và phong trào Thiện Đàn, cho thấy xu hướng Nho học Việt Nam trở lại các khu làng nơi người dân thường sinh sống, dung hòa với Phật giáo và các tư tưởng dân gian để phát triển phong trào chống Pháp, chống thực dân. Khi xét Nho học từ quan điểm tư tưởng này, có thể xác định rằng thời kỳ quan trọng nhất là thời Bắc thuộc và thời Cận đại. Qua thời kỳ này, ta có thể quan sát được đặc điểm khác biệt về tư tưởng của Nho học Việt Nam. Tại Hàn Quốc, các nghiên cứu về Nho học thường đặt trọng tâm vào xu hướng nghiên cứu Tính lý học của thời Joseon còn ở Việt Nam, Nho học không thể hiện xu hướng Tính lý học. Không phát triển theo hướng lý luận sâu sắc là một đặc trưng của Nho học Việt Nam, nhưng nó cũng phản ánh ngược lại một thực tế là không có các luận tranh lý luận nhưng Nho học được thực hiện trong hiện thực đời sống. Mặt khác, để thực hiện được Nho học trong thực tế, không thể không thiết lập nền tảng là dòng chảy tư tưởng vốn có của Việt Nam. Ở góc độ này, ta có thể cảm nhận được tính khác biệt của tư tưởng Nho học Việt 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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