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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연구 [STUDIES IN CONFUCIANISM (The Journal of Confucianism Research Institute)]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CONFUCIANISM RESEAT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 pISSN
    1229-5035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3 ~ 2020
  • 주제분류
    인문학 > 유교학
  • 십진분류
    KDC 151 DDC 181
제22집 (12건)
No

연구논문

1

秋巒 鄭之雲과『秋巒實記』

정경훈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1-21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天命圖說󰡕의 작자 秋巒 鄭之雲(1509~1561)과 후대에 간행된 그에 대한 저서를 밝힌 것이다. 현재 정지운의 문집은 전해지지 않고 󰡔천명도설󰡕만 전해지고 있는 형편이다. 정지운이 처음 제작한 천명도는 󰡔天命圖解󰡕라는 題名으로 최초 간행되었고 정지운의 自序, 鄭秋巒先生天命圖, 圖解 9節, 雜解와 河西金先生天命圖가 전반부에 수록되어 있다. 후반부에는 退溪李先生天命圖와 圖說 10節과 退溪 李滉의 後叙가 수록되어 있다. 이후 간행된 󰡔天命圖說󰡕은 정지운의 自序와 天命舊圖와 天命新圖, 圖說 10節과 이황의 後叙와 澤堂 李植의 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天命圖解󰡕와 다른 점은 정지운의 천명도가 이황에 의해 수정되기 이전의 舊圖와 수정된 新圖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고 이식의 跋文이 수록되어 있다. 󰡔천명도설󰡕은 임병양란 이후 일본까지 전파되었다. 1651년 일본에서 간행된 󰡔천명도설󰡕은 조선의 󰡔천명도설󰡕과 큰 차이점은 없지만 마지막에 수록된 羅山人 道春의 발문을 보면 이미 일본에서 학자들의 수요에 따라 상업적 목적으로 대량 출판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1900년 대에 간행된 󰡔貞肅公秋巒先生實紀󰡕는 「貞夫人順興安氏語錄」·「慕先蹟有感」·「家狀」·「行狀」 등 정지운의 宣揚과 家系를 부각시키기 위해 당시 후손들이 만든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황의 「묘갈명」과 박순의 「묘지명」, 이식의 「천명도설발문」 내용과 많은 부분에서 상이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정지운의 諡號와 贈職문제, 後嗣의 여부 문제가 상반되고 있는데, 󰡔貞肅公秋巒先生實紀󰡕에서는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93년에 간행된 󰡔秋巒實記󰡕는 󰡔貞肅公秋巒先生實紀󰡕와 비슷한 체계로 구성되어있지만 모두 5권으로 󰡔貞肅公秋巒先生實紀󰡕보다 풍부한 양이다. 이 책은 이황의 수정을 거치지 않은 󰡔천명도해󰡕의 초간본부터 정지운에 관련된 모든 기록을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貞肅公秋巒先生實紀󰡕에 수록된 2편의 「序文」과 「貞夫人順興安氏語錄」·「慕先蹟有感」·「家狀」·「行狀」·「神道碑銘」 등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권1에 수록된 정지운의 한편의 한시 작품은 주목을 요한다. 이 작품은 정지운의 현전하는 한편의 시로 그동안 소재가 불분명 하다가 󰡔사재집󰡕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시를 살펴보면 道學詩風과 田園詩風을 느낄 수 있고 만물의 순행을 통해 철학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陰谷幽居의 전원적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어 정지운의 문학을 살필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 이 시의 발견은 그동안 전무했던 정지운 작품의 소재 발견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도학가 문학을 밝힐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This study is on Jung Jiwoon(1509~1561) who is the author of the book, ChunMeyngDoSul, presenting a basis for SaDanChilJung in Chosun Dynasty. He first explained the Neo-Confucianism principles of Heaven-man Unity through making ChunMeyngDo. His books were distributed when he was alive and his first book was not ChunMeyngDoSul but ChunMeyngDoHae. They were published not only in Korea but also in Japan. ChunMeyngDoSul was commercially issued and distributed in Japan and recognized that it was better than GonJiGi of China. His books were not published until coming out JungSukGongChuManSunSaengSilGi in about 1990 and ChuManSilGi in about 1993. There is a big difference between JungSukGongChuManSunSaengSilGi and previous publications, which is that JungSukGongChuManSunSaengSilGi contains forgeries created by descendants. On the other hand, ChuManSilGi(1993) contains Jung Jiwoon's Chinese peom which is originally contained in MoJaeGip. It is important that ChunMeyngDoSul is no long the only work of Jung Jiwoon.

2

의암 손병희의 심성 수양론 연구

송봉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23-4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의암의 심성론과 수양론을 연구하는 것이다. 심성론을 연구하는 이유는 우리 마음의 구조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동학의 논리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은 한울님을 모신 순수한 것인데 그렇다면 현실에 악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의암은 사람의 마음중에 물정심(외부 사물에 물든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악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 마음의 근원지를 거슬러 올라가면 혈각성(화복으로 인과를 삼아 선도 있고 악도 있음)이 있는데 이 혈각성 때문에 물정심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암의 마음구조를 살펴보면 마음안에 순수한 마음과 사물에 물든 마음이 같이 공존하고 이 뿌리를 살펴보면 이 두 마음을 존재하게 하는 성품도 존재한다. 그 성품을 전자는 원각성이라하고 후자를 혈각성이라 한다. 마음의 구조가 이렇게 밝혀지면 남은 과제는 이 마음을 수양하여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여 순수한 성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 공부의 과정을 수양론이라 한다. 의암의 공부방법 역시 마음을 스승을 삼아 21자 주문을 독실하게 외우는 것은 두 분 스승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한 공부의 방법을 살펴본 결과 두 분 스승과 다른 공부 방법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방법론을 살펴보면 얼마나 마음을 세밀하게 살폈기에 이와 같은 공부 방법론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스승들이 남겨놓은 공부방법을 더욱 세밀하게 발달시킨 것이 의암 공부방법의 특징이고 그리고 그 방법이 맹자와 주자의 공부방법론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 이번 논문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This article is to study Euam's idea of mind and cultivation of the mind in order to understand the structure of mind. It seems that Donghak's idea is that there doesn't exist vice because Hanul is in the human body. But this is not true of the real world. How did Euam explain this? He thought that human nature has two features, one is Wongakseong and the other Hyeulgakseong. Wongakseong stands for the pure mind and Hyeulgakseong the impure mind. And Hyeulgakseong creates Muljeongsim(the mind stained with the external objects) in the human mind. Vice arises from this very Muljeongsim. Then how should people cultivate the mind to attain to the human nature after they realize Euam's idea of the structure of the mind? Euam's way of cultivating the mind is to keep on reciting the 21 words with sincerity, which is not different with that of his two masters, Su-un and Haewol. However, he also presented a new way other than his two masters. His new way reminds us how minutely he searched the human mind. The goal of this article is to show that Euam developed two masters' way of cultivating of the mind and his new way has the connection with Mencius and Chu-tzu.

3

湖南地域 書院의 敎育活動 - 『竹樹書院誌』를 통해 본 유교교양의 수용 -

한예원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45-71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유교문화공간 중, 國公立의 成均館과 鄕校,그리고 私立의 書院은 모두 교육과 享祀의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초기의 書院은 주로 圖書館 및 교육의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주자학이 체제교학으로 자리 잡은 임진왜란 전후로 내려오면, 교육활동 외에 제향공간으로서의 비중이 높아졌다. 급기야 肅宗代에 이르러 京鄕 각지에 다수의 서원이 세워지면서, 교육과 藏修는 뒷전인 채 祭享과 향촌정치의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이후 書院濫設에 따른 폐해가 표면으로 부상되면서, 서원에 관한 평가는 부정적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黨爭의 소굴’로 보는 인식도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70․80년대 들어오면 역사학계에 서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이런 연구에 힘입어 서원에 관한 부정적 인식도 상당히 수정되었다. 아울러 교육학분야에서도 교육제도로서의 서원연구가 진행되었지만, 구체적 사례를 통한 교육의 내용에 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이에 이 논문에서는 호남지역의 유교문화공간 중 사립교육기관인 書院의 교육활동을 󰡔竹樹書院誌󰡕를 통해 살펴보았다. 죽수서원은 전남의 화순에 위치하는 서원으로 1570(선조3)년 기묘사화로 능성현에 귀향와서 죽은 趙光祖(1482~1519)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세워졌다. 書院誌를 통하여 서원의 운영임원진과 또 운영상 필요한 행동규범들을 알아보았고, 교육활동으로서 講會가 열리는 공간의 좌석배치도, 講會에 참가하는 諸生들의 준비과정, 그리고 강회에서의 집단교육체제를 고찰하였다. 특히 「相揖禮笏記」에 보이는 ‘告語’를 통하여 서원교육이 추구하였던 교육목표와 실천방안을 살펴보았다.

In Korea, the traditional institutions of confucianism remain through out the nation. Sungkyunkwan and hyanggyo, the Confucian temple and school to teach local students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are the national institutions. Seowon is the private school. This paper focuses on understanding situation and education of seowon. Seowon had been the library and schooling space in previous Joseon Dynasty. However, it was of great importance as the space of the memorial service afte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Many seowon was built in 17th century and its main goals were memorial service and country's politics instead of education after all. Heungseon-Daewongun phased out seowon to prevent harmful effect from taking place, so only 47 seowon was left. Seowon was rated very negatively and was supposed to a den of party strife, but historians studied seowon actively in 1970s,80s. Therefore, negative cognition of seowon was modified more than a bit. However, the studies of educational activity of it still lack in part of Chinese-education. In this paper, I organize concrete examples of education activity in official seowon, which have data in Jeoun-Nam Province. This study indicates how developing confucianism in local community. The scale of Jeoun-Nam's seowon is smaller than Yeongnam's or Kiho's. Because of financial pressure, ‘Gujeop’ which means preparing for an classical examination system for the government service in old time Korea in seowon was less operated. While some Confucian scholars attended lectures in the first and the fifteenth days of the lunar month. This paper consider lecture of Jucksoo seowon in Jeoun-Nam province.

4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관한 철학적 고찰

김명숙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73-10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죽음은 삭막하다. 병원에서 맞이하는 죽음의 과정과 장례는 대개의 경우 망자가 살아 온 삶의 과정에서 소중한 경험을 나눈 사람들과의 의미 있는 이별이 되지 못하고 차갑기 그지없다. 이는 한국사회가 산업화 ․ 도시화 ․ 핵가족화되면서 야기되는 결과이며, 무엇보다 당장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문명의 소산이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과정이다. 떠나는 사람은 존엄하게 삶의 최후를 맞고 떠나보내는 사람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이별이 삶의 의미로 살아나야 한다. 노화는 필연적으로 죽음으로 진행되며 다른 어느 시기보다 노년은 죽음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 대화를 회피하며, 자기 죽음의 의미에 대해 직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죽음에 대해 어떤 인식과 태도를 지니는가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치관의 핵심이며, 정신생활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따라서 노년 인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줄 수 있는 노화 및 죽음과 관련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논의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 논자는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적 연구를 통해 알아보려 했다. 관련 학자나 전문가의 시각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점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살펴보았다. 청년기의 대학생과 중 ․ 장년기의 일반 성인 표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분석 ․ 조망하면서 한국인의 죽음관이 유래하고 있는 사상적 근거와 그것이 담고 있는 철학적 함의를 찾아보고 이를 ‘좋은 죽음’과 관련시켜서 논의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서 죽음을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나 인생의 고난에 봉착하면서 죽음을 연상하는 경향이 높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한국인들에게 죽음은 단지 생물학적인 생명의 단절로서의 끝이 아니라 심리적 ․ 철학적 ․ 종교적인 측면이 통합적으로 얽혀 있는 복합적인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죽음의 원인으로는 노화나 수명이 다함 혹은 자연의 섭리와 같은 천명의식과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개인적으로 통제 가능한 요인을 비슷하게 많이 들고 있었다. 죽음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나 ‘끝’이라는 생각과 내세나 천국과 같은 다른 생으로 넘어간다는 인식이 비슷한 정도로 공존하고 있었다. 끝으로, 한국인들은 좋은 ‘죽어 가는 과정’ 및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고통 없이 육체적으로 편안한 죽음이어야 한다. 둘째, 후회와 집착이 없는 죽음이어야 한다. 셋째, 내 집 내 방 혹은 좋아하는 장소에서 죽는 죽음이어야 한다. 넷째, 가족들 가운데 죽는 죽음이어야 한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실존이다. 좋은 ‘죽어가는 과정’과 ‘죽음’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준비가 필요하고, 준비된 죽음은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일반인들의 인식에 바탕을 둔 실천적인 철학적 논의가 필요하다.

Death and dying of modern people is dreary. Dying in hospital, dead people cannot share the precious experiences with the people whom they lived together. This is from the industrialization, growth of city, and trend toward nuclear families. Outcome of modern civilization that put values on immediate comfort. However, death is final process of life. The one who dies should die with some dignity, and those who send off the dying one should accept with significance of life. Aging inevitably leads to death and in declining age people often think about death. Yet many people taboos talking about death, and do not face the meaning of death. Though weather an individual has a perception and attitude towards death is core part of the value system. Moreover it is essential factor that determines quality of mental life. Korean society is moving towards the aging society. Thus there should be argument about death and aging to raise the quality of life in declining aged people. For the beginning of the argument I tried to study the cognition and attitude toward death on average people with qualitative research. I tried to show the perspective of average people not the experts of scholars. How they perceive death and what kinds of attitude they show. This thesis states about the idea about death and philosophical significance to relate with ‘good death’ by surveying and analyzing the University students and sample of adult peoples in the middle age. Koreans has a tendency to picture death as other people’s tragedy ending on a suffering of life. Not as ontological self-examination. However on the other hand, death to Korean is not just a biological end of a people. Psychological, philosophical, and religious aspect is complicatedly involved in the Perception of Korean. For the reason of death many people think about aging and end of a life span or many people think about God’s will and accident. There was similar amount of people between the ones who believe that there is nothing after death, and there is life after death. Lastly Korean had these kinds of ideas about ‘good death’. First, there should be no physical pain. Secondly, there should be no regrets. Third, the place of death should be ones house or somewhere one liked. Fourth, one’s family should be there to send them off. Death is an inevitable existence. There should be preparation of ‘death’ or ‘process of dying’ for the individuals and the society. Prepared death will enable the good death. For this reason there should be philosophical discussion with an average people’s perspective.

5

古代 中國의 宗法制度에 관한 硏究

조원일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109-13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고대 중국의 종법제도를 분봉작위와 정치제도 및 경제제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한 글이다. 고대 중국에서 발생하였던 종법제도와 종법사상은 의미상에 있어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종법사상이란 혈연관계를 근원으로 형성된 관습적인 관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가족 관념이나 효제(孝悌)나 윤리 등을 그 예로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가족단위의 소규모 농업경제 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봉건시기 전반에 걸쳐서 유구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는 별도로 종법제도라는 것은 일종의 제도로서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제도적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제도를 유지시켜주는 동력원으로서의 경제적인 바탕은 토지 소유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봉건제도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그 경제적 기초가 되는 토지제도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종법관계 역시 이에 상응하는 변화가 수반된다. 종법사상은 일종의 의식형태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제도로 만들어져 봉건사회시기에 출현하게 되었을 때 종법은 정치체제를 이루는 주요한 성분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의식형태로서의 종법사상과 백성을 통치하기 위한 정치제도로서의 종법제도는 경제적 기초가 없이는 모두가 그 존재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宗法制和宗法思想涵義不同。宗法思想指源於血緣關係而形成的一種習慣勢力, 諸如家族觀念孝悌倫理等。這種思想不同小農經濟有着密切聯係, 因而在整個封建社會時期具有一定生命力, 很長期持續不衰。宗法制指一種制度, 有明文規定, 它服從於一定政治需要。它由以産生最終根源, 經濟基礎是封建土地所有制。中國封建社會兩千餘年, 土地制度的體現形式因時代而不同, 宗法關係也因之發生相應的變化。本文主旨在於分析西周的宗法制, 尤其是它和當時政治經濟的關係, 它是怎樣從屬於封建領主制的。關於這樣一個重要問題, 迄未有人進行深入硏究。宗法原屬於意識形態範疇, 但當他作爲一種制度出現於封建社會時期, 它又變成爲政治機構的一個組成部分。作爲意識形態的宗法思想和作爲統治百姓的政治制度, 均屬於上層建築範疇。是從屬於一定經濟基礎的。但它旣已形成並鞏固之後, 它又在維護和鞏固經濟基礎方面發揮巨大功能。

6

공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효 관념 비교

박재주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131-16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효도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불효의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효의 진정한 의미 내지 효심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이 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효도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의 효 관념들을 비교하면서 네 가지 측면들에서 효의 의미들을 살피고자 한다. 첫째, 효도가 이루어지는 가정의 의미이다. 공자나 유가들이 강조했던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나 가정이 가지는 특수성과 중요성은 항상 강조되어야 할 것이지만, 가정을 일종의 공동체로 간주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 현대사회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효의 근거도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의 관점과는 약간 다르게, 효도의 출발점이자 근본인 효심의 근거는 자연성으로, 효도의 실천인 효행의 근거는 공익성으로 간주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효심은 도덕적 의무로 철저하게 강조되어져야 하는 반면, 그것의 실천방안들인 효행은 도덕적 책임으로서 행위자들의 선택과 상황에 기반을 둔 책무여야 할 것이다. 넷째, 효도의 근본인 효심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효심이며, 그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실행하는 방식이 효행이다. 효행을 통해 효심을 기르고, 기른 효심을 더욱 다져서 효행으로 나타나게 하는, 수신(修身)교육으로서의 효도교육이 필요하다.

We are experiencing the serious crisis of filial obligation. A lot of incidents violating the filial obligation have been of frequent occurrence around us, but it is more important for us not to find the true meanings of filial piety in our society. Therefore we have to set up the new meanings of filial piety to overcome the crisis. I try to examine them thoroughly by means of the comparison of Confucius' ideas of filial piety with Aristotle's. First, In relation of family in which filial piety is practiced, We have to give emphasis to the uniqueness and importance of the parent-child relations and family, but Aristotle's view in which the family is considered as a kind of community would be suitable for our society. Second, when we have to consider the basis of filial piety, our standpoint should be a little different from Confucius' and Aristotle's. The basis of filial piety in the mind and heart is by-nature, that of filial piety practiced in actions is utility. Third, the former should be considered as a moral duty, the latter as a moral responsibility. Fourth, filial piety in the mind and heart is the respectfulness to the parents.

7

유교제례에서의 악(樂)의 의미 - 한국의 문묘와 종묘제례악을 중심으로 -

이희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165-18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유교제례는 예에 속하고 예술은 악(樂)에 해당되는 범주이다. 이 둘의 관계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를 분리하여 봄으로써 예의 정신을 악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본다면 예의 실체를 보지 못할 우려가 있다. 예와 악이라는 개념은 서로 분가분의 관계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은 음양의 개념과 같이 서로 보완적이라는 점일 것이다. 유교제례에서의 악(樂)의 의미를 다룸에 있어서 바로 악(樂)이란 다름 아닌 음악으로 예술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제례는 예이기 때문에 이미 유교제례는 예술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음악과 예술의 악(樂)을 통해 온갖 사물들이 화합하며 예의와 격식이 있는 까닭에 예술적 행위를 통해 하늘과 땅에 제례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유교제례인 종묘제례와 문묘제례에서는 음악과 무용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쓰이는 악기는 편종, 편경, 방향과 같은 타악기가 주선율이 되고, 여기에 당피리, 대금, 해금, 아쟁 등 현악기의 장식적인 선율이 부가된다. 이 위에 장구, 징, 태평소, 절고, 진고 등의 악기가 더욱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고 노래가 중첩되면서 종묘제례악은 그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중후함과 화려함을 전해 준다. 제례에서의 음악은 음의 질서이기도 하려니와 인간과 인간사이의 위계질서와 상응하여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음악의 조화는 다름 아닌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분간의 조화와 질서를 상징하기도 했던 것이다. 악(樂)은 인간의 심성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움을 악기나 노래나 춤으로 표현하는 예술행위이며 이는 인간을 기쁘게 하는 예술행위일 뿐만 아니라 제례에 있어서 신성한 존재에 대한 봉헌행위의 예술이다. 유교제례는 예술을 통해 숭고한 대상을 추모하는 것이 목적이요 부수적으로는 그런 행위를 통해 인간의 심성을 바로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신성한 존재 나아가서 인간과 인간끼리의 화합을 모색하는 것이 제례로서의 악(樂)의 본질이었다. 음악과 무용으로 표현되는 악은 제례행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결여되기 쉬운 감성을 진작시켜 속화된 인간성을 정화하는데 이른다.

The concept of lǐ(禮) and lè(樂) is an inseparable relation like a Yin and Yang. In concern of Confucian rituals as a lè(樂), we know Confucian ritual linked to art deeply due to lè(樂) belong to music and art, while rituals is a kind of lǐ(禮). In perform of rituals, people have held ritual through artistic activity. lè(樂) doing role such as play musical instruments and dances. The rites of Royal ancestral shrine and Confucian shrine perform with music and dance, through these event attendants share the emotion of nobleness and reverence. lè(樂) is an activity of art that make pleasure to human beings through music and dance. It is also an activity of devotion for holy beings through rites. The rites of Royal ancestral shrine and Confucian shrine play percussion instruments such as a carillon, a stone carillon mainly. Added string instruments melodies such as bamboo flutes, seven stringed instruments. Futhermore, play various drums. The dance of Confucian rituals show the reverent mind to subjects of rites through body motions. The dancing is not only inseparable relation to music. Traditional Confucian rituals goal is not only memorial service to holy subjects but also purify human minds through artistic activity. The essence of lè(樂) in Confucian ritual seek to harmony between human beings and s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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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과 체육학의 만남과 소통

권오륜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189-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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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陽明學과 체육학(스포츠)의 소통에 관한 논의이다. 체육학과 양명학의 시대적, 학문적 성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학문의 소통에 관심을 표명하는 이유는 두 학문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사회의 통합’이나 ‘大同社會 구현’ 즉 인간학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중심이 된 공동체 삶 속에서 성현과 군자의 도리를 추구하는 양명학이나 사회구성체의 도덕과 윤리의 가치체계를 수렴하거나 환원하는 체육학은 현재 한국이라는 좌표를 기준으로 交遊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 연구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첫째, ‘양명학과 체육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양명학과 체육학의 논리적 접점에 대한 철학적 탐색과 지금까지 체육학 분야에서 발표된 양명학관련 연구의 성과를 분석하고자 한다. 둘째, ‘양명학과 체육학의 소통’이라는 주제로 두 학문간 학제적, 융복합적 연구의 가능성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미래지향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양명학과 체육학의 접목은 권오륜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당시 체육학의 핵심과제였던 心身觀의 문제를 양명학의 철학적 관점에 찾으려는 연구로서 구체적 연구내용은 양명학에 내재된 심신관의 규명 그리고 양명학에 내재된 신체사상이 미래 체육학의 신체사상을 정립하는 대안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한편 최근에 김부찬의 연구는 권오륜의 연구를 기초로 진일보된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또한 왕양명의 修養論과 체육학의 武道論의 접목을 시도하는 연구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준비 중에 있는 등 체육학에서의 양명학 연구는 최근에 들어 새로운 연구자와 연구주제가 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두 번째 양명학과 체육학의 소통에 관해서는 양명학은 지와 행의 일치성으로 성립되는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지와 행, 이념(정신)과 행위(신체)가 분리되거나 선후의 문제, 작용과 피작용의 관계로 간주하는 서양철학의 이원론적 관점을 초월한 신체성의 가치로서 체육학과 소통하는 핵심과제로 손색이 없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처럼 두 학문 간의 소통은 이론(지식)이 현실적용(실천, 行)으로 발현될 때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양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대동사회 구현은 양명의 사상(양지)이 우리사회의 구석구석에 전이되어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것(치양지)이라고 한다면, 결국 과학적 지식을 포함한 모든 학문과 소통할 수 있고 소통해야 하는 당위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양명학의 근본취지가 제 학문과 접목되어 오늘날 우리사회에 구현되기 위해서는 양명사상의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양명학(자)과 그 사상을 응용하여 보다 나은 삶에 적용하는 제 학문(학자)간의 부단한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

本の研究は陽明学と (スポーツ)との疎通に関する論議である。 体育学と陽明学の時代的、学問的な性向の差があるにもかかわらず二つの学問についての疎通に関心を表す理由は二つの学問が持っている窮極的な指向点が 「社会の統合」や「大同社会の具現」すなわち人間学にあるという事である。人間が中心になっている共同体である生の中で聖賢と君子の道理を追い求める陽明学または、社会構成体の道徳と倫理の価値体系を收斂または、還元されている体育学は現在、韓国という座標を基準として交遊することが可能であるがらである。 ここに本の研究者は次のように具体的な研究内容を中心として探った。 第一、「陽明学と体育学との出会い」というテーマで陽明学と体育学の論理的接点に対する哲学的探索、また、今まで体育学の分野で発表された陽明学関連研究の成果等を分析しようとする。 第二、「陽明学と体育学との疎通」というテーマで二つの学問の間の學制的、融合または、複合的研究の可能性と生の質の向上のための未来指向的な代案を提示しようとする。 第一、陽明学と体育学を繋ぎ合わせたのは権五輪によって始めて試みされ、当時の体育学においての核心的な課題であった心身観についての問題を陽明学の哲学的観点で探そうとする研究として具体的な研究の内容は陽明学に内在されている心身観の糾明、または陽明学に内在されている身体思想がこれからの体育学の身体思想を定立していく代案としての役割に関するものであった。一方、最近 金富讚の研究では、権五輪の研究を基礎として進一歩された研究を試みているということに注目したい。また、王陽明の修養論と体育学の武道論の繋ぎ合わせを試みる研究が博士学位論文として研究中であるなど、体育学の中での陽明学についての研究は最近、新人研究者や研究主題として登場しつつある。 第二、陽明学と体育学との疎通については陽明学は知と行の一致性として成立される内在的価値を持っていて、知と行、理念(精神)と行為(身体)が分離されたあり、先後の問題、作用と非作用の関係として見なされる西洋哲学の二元論的観点を超越した身体性の価値として体育学と疏通していく核心課題として劣らないという点に注目した。 このように二つの学問の間の疎通は理論(知識)が現実適用(実践、行)として発現されると完成されるのである。そして陽明が窮極的に追い求めようとしていた大同社会の具現は陽明の思想(良知)がげん現在の社会の隅々に転移され具体的に発現されること(致良知)と言うなら、結局、科学的な知識を含んでいるすべての学問と疏通することができ、必ずしも疏通しなければならない当為性が存在するのである。 但し、陽明学の根本主旨が私(本研究者)の学問と繋ぎ合わせられ現在の社会の中で具現されるためには陽明思想の理論的な基盤を提供する事の出来る陽明学(者)とその思想を応用し、より良い生になるように適用できる多くの学問(学者)との間の絶え間ない自らの努力が必要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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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의 ‘한 몸’ 이미지에 대한 여성주의 이해

김 세서리아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207-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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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 몸 이미지’가 통일성, 전체성을 강조하는 맥락으로 환원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이루고자 한다면 동일성의 추구하지 않아야 함을 전제로 한다. 논문에서 진정한 소통이란 차이나는 것을 차이나는 대로 두면서 그것을 인정하고 그들 간의 상호관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본 논문은 이 같은 문제의식을 양명학의 ‘한 몸 이미지’를 통해 논의한다. 전통 유가 철학의 한 몸 이미지와 양명학의 그것이 다른 차원은 무엇인지, 그것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이러한 양명학의 한 몸 이미지는 현대 여성주의의 소통의 의미와 어떤 맥락에서 만나거나 결별하는 것인지 등을 탐구한다. 이러한 논의를 효과적으로 풀어가기 위해 본 논문은 양지를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느낌의 주체로서의 양지, 앎이 인식의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강한 실천의 의미를 동반하는 것으로서의 양지라는 두 측면에서 접근한다. 또한 양명학의 몸 은유 방식에 주목하여 여성 주체성에 관하여 논의한다. 이와 같은 양명학적 특성을 통해 양명학의 한 몸 이미지가 현대 여성주의와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를 모색한다.

This report recognizes the danger of restoring 'one body' image in the context of emphasizing unity and totality. The report bases on the premise that in order to achieve the real meaning of communication, one must not set pursuit of identity as a premise. Real communication is not restoring through identity but acknowledging the fact that different things are different and asserting that we must keep in mind their mutual relationship. This report discusses the awareness of this issue through Yang-ming Studies’ one body image. It concentrates on the one body image produced by the theory of all things in one. The report will also observe how this is a different dimension from the traditional Confucian philosophy’s one body image. After that, the report will explore where this one body image of Yang-ming Studies meets or separates from the effort for modern feminism’s communication. To effectively interpret this kind of discussion, this report focuses on Liang-Chih as the subject of sympathizing with others’ pain, Liang-Chih as in practice carrying the meaning of strong practice and knowledge not staying as a perceptive dimension, metaphoric method of Yang-ming Studies’ body starting from Liang-Chih, and so on. And through this Yang-ming Studies’ characteristics, the report will grope for the point where Yang-ming Studies’s one body image can meet with the modern fem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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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門二溪思想形態之比較研究

高瑋謙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233-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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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g Long-shi and Luo Jin-shi were two outstanding followers of Wang Yang-ming. Both maintain the doctrine of “xian-zai liang-zhih”(virtue in presenting), only articulate it in different modes. According to the comment of Hwang Tzong-shi, Long-shi’s written words is better than his speech, and Jin-shi’s speech is better than his words. This comment apparently does not reach to the level of thought. Mou Tzong-san holds that the thoughts of Wang Long-shi are more transcendental and more aloof, however, the thoughts of Luo Jin-shi are more refreshing, penetrating and comprehensive. Although this view can delineate the stylistic difference of their thoughts, but the essential differences of their thoughts are still in the dark. This study professes to undertake a comprehensive comparison of the modes of thoughts of the two philosophers, including the manifold aspects of their teaching styles, their visions of the ontological substance and their theories of cultivation as a whole, in order to present a more clear picture of the genealogical development of the school of WangYang-ming.

王龍溪與羅近溪並稱王門「二溪」,兩人皆主張「見在良知」之說,不過表現出來的思想形態卻有所不同。根據黃宗羲的評論:「龍溪筆勝舌,近溪舌勝筆。」由此吾人可以得知龍溪文筆比口才好,而近溪口才比文筆好。然而僅僅依據這兩句描摩兩人才調的評語,似乎很難窺知彼二者在思想形態方面究竟有何異同。對此,牟宗三先生嘗評論道:「如果以羅近溪與王龍溪相比,王龍溪較為高曠超潔,而羅近溪則更為清新俊逸,通透圓熟。」這樣的說法似乎已能勾勒出二者思想風格的差異,但是具體的內涵又是什麼呢?依筆者所知,目前學界對於王門二溪思想之比較研究,似乎仍停留在類似上述這樣簡括評論的階段,至於全面性地展開兩者思想形態之比較研究,似乎仍未之見。這對於王陽明之後兩個最重要流派的代表人物彼此之間思想同異的了解,不能說沒有遺憾。因此,如果能對於二溪之思想形態,包括論學風格、本體觀、工夫論等諸多面向,進行更為全面的比較研究,應當更能彰顯陽明後學義理開展之豐富與精微,從而使吾人對於整個陽明心學譜系有更為清楚而深入的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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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明學 및 東亞 공동체 - 東亞 공동체의 陽明사상의 지탱 및 구축

方浩范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2집 2010.08 pp.279-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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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공동체의 제출은 “구라파공동체”(歐盟) 에 대한 반성과 밀접히 관계가 있으며 이 또한 지리적으로 인접된 東亞 각 나라가 장기적인 상호 합작과 一體化 발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긴밀한 整體를 희망하는 것이다. 東亞공동체의 구축을 에워싸고 東亞 각 나라의 태도는 각작의 입장에서 부동한 해석을 하고있다. 그러나 한가지 명확한 것은 東亞에 속하는 대다수 성원국들이 東亞공동체에 대해 인정하는 태도다. 본문은 “東亞공동체”의 구축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려는 것이 아니라 東亞를 하나의 “공동체” 로 가설하고, 陽明學의 핵심사상이 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과 陽明學의 현대적 의의에 대해 고찰 하였다. 첫째, “良知” ——東亞 공동체의 출발점. 陽明心學은 멀리로는 孔孟과 이어졌고 가깝게는 程顥와 陸九淵의 心學전통을 계승하였으며, 朱熹의 성리학을 비판하하는 과정에서 창립되었다. 王陽明 “良知說”의 중요한 특성은 “良知”가 인심에 보편적으로 존재함을 말하였다. 물론 양명의 관점에서 볼때, 양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꼭 “聖人”오로서의 특정된 인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덕”을 갖춘 사람으로, 인간으로서 수치심을 알아야 하며, 인간으로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알아야 하며, 인간으로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한다.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 동아공동체 구축의 출발점으로 될 수 있다. 둘째, “致良知”——東亞 공동체의 가능성. “致良知”說은 일종 완전무결한 도덕적 수양과 실천체계이며 善惡의지를 모범으로 하여 도덕의 주동성과 실천성을 강조한다. 王陽明은 致良知를 良知에 의해 행동하여야 하며, 또 사물에서 致良知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王陽明의 “致良知”는 구체적인 실천 중에서 理想적인 人格에 도달하자면 “致”에 큰 공을 들여야 하며, “立志”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聖人이 되려면 성찰(省察)과 극기(克己)를 하여야 한다. 이러한 입지와 성찰 그리고 극기를 하여야만 동아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다. 셋째, “知行合一”—東亞 공동체를 실현하는 根本渠道. 양명에 있어서 “知行合一”은 知중에 行이 있고 行중에 知가 있다. 때문에 知과 行은 합하여야 하며, “兩截”로 나눌 수 없다. 그리고 知行合一의 중점은 “行”에 있고 행동과 실천이 중요한 것이다. 東亞공동체에 대한 ‘知”에 대해 중한일포함한 동아세아 대 다수 나라들은 공통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넷째, “天地萬物一體” ————東亞공동체의 前提와 결과. 王陽明이 先秦 儒家와 宋明理學家의 “一體”와 “合一”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하여 “与天地萬物爲一體”의 중요한 명제와“仁者以天地萬物爲一體”의 “一體之仁”의 사상을 제출하였다. 萬物을 一體로 보는 경지에 이르려면, 반드시 가리워진 私慾을 버리고萬物을 사랑하고 아끼고 萬物을 대함에 있어서 자신의 가족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萬物을 사랑여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고 생태의 발전이 평형 되는 境況에 도달할 것이다. 王陽明의 “与天地萬物爲一體”의 사상은 현재 조화로운 사회의 구축과 생태문명의 건설에 흡수할 수 있는 거대한 가치를 제공하며 귀중한 자원을 제공하였다.

东亚共同体的提出是与欧洲在反省第二次大战之后提出的“欧洲共同体”(欧盟)有密切的关系,它建立在共同利益和地区认同的基础上,并非一个排他性的集团,也不针对任何区域外国家。围绕着东亚共同体的构建,东亚各国的态度并非完全统一,各国存在着不同的解读。然而有一点是明确的,那就是东亚所属成员国对东亚共同体持认可的态度。本文的重点不是探讨“东亚共同体”的建构问题,而是把东亚当看作一个“共同体”整体,想利用阳明学的核心思想来探讨其对东亚共同体的影响。 第一,“良知”——东亚共同体的出发点。阳明心学遥接孔孟,是在对程朱的批判的过程中产生,他继承了程颢和陆九渊的心学传统,并在陆九渊的基础上进一步批判了朱熹的理学。 王阳明的这种“良知说”具有遍在性,即良知遍在于人心。良知说认为,人之成就道德的依据即是作为人之性的良知,而良知也是遍在于人心的。根据王阳明关于“良知”的观点,我认为人应该懂得“知耻”、“知愧”和“知恩”,这是我们东亚人构筑共同体的出发点。 第二,“致良知”——东亚共同体的可能性。王阳明经受了深重的磨难,也使他超越了生死、荣辱与功败,深化和完善了“致良知”说,并使之外显和最终提出。“致良知”说是一种至善至美的道德修养和实践体系,以善恶意志为范导,强调道德的主动性和实践性。 为此,非得在“致”上下一番苦功不可,而且经常省察和克己。只有这样,才有可能实现东亚共同体。 第三,“知行合一”——实现东亚共同体的基本方法。所谓“知行合一”有两层意思,一是,知中有行,行中有知;二是,“以知为行,知决定行。”““知”永远是目的,是被追求的主要目标,“行”永远是工具,是附从的、追求的过程。也就是说,只有通过只行合一的办法,才能够实现东亚共同体。 第四,“天地万物一体”——东亚共同体前提和结果。王阳明继承和发展了先秦儒家和宋明理学家的“一体”与“合一”思想,提出了“与天地万物为一体”的重要命题和“仁者与天地万物为一体”的“一体之仁”思想。但是,因为人的“灵明”,人便会产生崇高感和亲近感,产生了对万物的护惜之心而合理取用万物。这种护惜之心是发自内心的、自发的,是出于“万物一体之仁”的自然情感,是“不假外求”的“良知”所指引的道德情感。因此,王阳明的“万物一体”说,不仅可以成为东亚共同体的出发点,而且又是实现东亚共同体的必然结果。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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