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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연구 [STUDIES IN CONFUCIANISM (The Journal of Confucianism Research Institute)]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CONFUCIANISM RESEAT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 pISSN
    1229-5035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3 ~ 2020
  • 주제분류
    인문학 > 유교학
  • 십진분류
    KDC 151 DDC 181
제26집 (11건)
No
1

晦齋李彦迪과 良洞마을

權容玉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1-3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良洞마을은 2010년 8월 1일 유네스코(UNESCO)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儒敎風習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형적 班村으로, 慶尙北道 慶州市 江東面에 위치하고 있다. 2010년 現在 135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그 중 月城孫氏 30여 가구, 驪江李氏 90여 가구가 남아 兩大 門閥의 同族 集團村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도 月城孫氏의 宗孫인 孫成熏(孫昭의 20代孫)이 그의 종가에 거주하고 있고, 驪江李氏의 宗孫인 李址洛(李彦迪의 17代孫)도 현재 종가에 거주하며 500여 년 동안 후학들에게 문화유산을 전수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필자는 본연구의 2장에서는 회재 이언적의 생애와 사상을 중심으로 살펴, 유년기부터 6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학문과정과, 역저 및 사상을 고찰해 보았으며, 3장에서는 양동마을에 현재 보존되고 있는 대표적인 양대 가문의 大宗家 無添堂과 書百堂 그리고 派宗家인 香壇과 觀稼亭에 대해 고찰했으며, 4장에서는 회재 이언적 철학의 출발과 사상 및 한국 유학사에서의 회재의 위상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언적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있고, 또 그를 보존하려는 후손이 있는 한 양동마을은 영원한 문화유산으로 남을 것이라 본다.

Yangdong Village, with Hahoe Village, was registered by the UNESCO World Cultural Heritage at the 34th World Heritage Committee Council held in Brazil on August 1, 2010. The present Yangdong Village, which used to be called Yangjwa-dong in ancient times, is located in Gangdong-myeon, Gyeongju-si, Gyeongsangbuk-do. It is a typical Korean aristocratic village with indicates the well-kept Confucian manners and customs of the times. Yangmaegong Sohn-So (1433-1484), the founding father of Yangdong Village, is a son-in-law of Yu Bok-Ha (Pyeongdeok Yu) who took up the government office of Manho. He came to reside in this village and formed the founding family of Weolseong Sohn with an ensuing connection with Yi-Beon, father of Yi Eon-Jeok of the Yeogang Yi family. These two families of Weolseong Sohn and Yeogang Yi have handed down the tradition of Yangdong Village to their descendents even until today. What the author explores in this study is the fundamental reasons for the well-kept reputation of Yangdong Village until today. How much cultural heritage, of which the world recognizes their values, are maintained in Yangdong Village? By focusing on the scholarly attainments and philosophical ideas of Yi Eon-Jeok, the spiritual mainstay of Yangdong Village, this paper aims to reach a deep understanding of the Village registered at the World Cultural Heritage.

2

栗谷과 重峰의 道學精神

황의동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31-56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율곡은 한국유학사에서 󰡐도학󰡑에 관해 가장 체계적이고 정밀한 이론을 전개한 유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도학의 개념과 성격 그리고 그 범주에 관해 명쾌한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도학을 인륜의 범주안에서 보고, 인륜의 도리를 극진히 하는 것이 곧 도학이라 하였다. 율곡은 또 도학을 格物致知로서 선을 밝히고 誠意正心으로서 그 몸을 닦아, 이것이 몸에 쌓이면 天德이 되고, 이것을 정사에 베풀면 王道가 된다 하였다. 이처럼 도학은 修己와 治人, 內聖과 外王을 겸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도학적 관점에서 그는 선유들을 평가한다. 圃隱 鄭夢周를 가리켜 사직을 편안케 한 신하이지 진정한 유학자는 아니라 하고, 우리나라 도학의 시작은 靜庵 趙光祖부터 라고 규정한다. 또한 晦齋 李彦迪에 대해서도 경세의 자질이 부족하고 을사사화 때의 처신을 문제 삼아 도학으로 추존하기는 곤란하다고 평가하였다. 아울러 東國 18賢의 文廟從祀에서도 薛聰, 崔致遠, 安珦은 도학과 거리가 있으므로 문묘종사는 문제가 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율곡의 도학적 관점에서 중봉의 도학정신을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중봉은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 위기를 당해 의병장으로서 의리를 몸소 실천하다 금산전투에서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이러한 중봉의 의리적 실천은 조선유학사에서 하나의 전범이 되기에 족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중봉은 조선 실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북학파 실학의 朴齊家는 『北學議』 自序에서 중봉의 개혁정신과 개방적 태도에 감동하여 그를 추앙하고 있으며, 磻溪 柳馨遠도 『磻溪隨錄』에서 중봉의 말과 글을 소중하게 인용하고 있다. 특히 중봉은 그의 생애에서 강한 실천성을 보여 주었다. 일반적으로 도학을 의리중심으로 보아 온 것은 분명하지만, 율곡의 도학개념과 성격으로 볼 때 실용, 실천, 진실을 중시하는 중봉의 실학정신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요컨대 율곡과 중봉의 이러한 도학정신은 內聖과 外王, 義理와 實利의 具足을 이상으로 삼는 유학 본연의 정신에 충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Learning of the Way means either Confucianism or neo-Confucianism. In specific, Yulgok made the most detailed explanation about definition, features, and system of it. According to his claim, Learning of the Way is a self-cultivation and also a social participation. For example, Learning of the Way is to be faithful for self-discipline and, furthermore, to serve the nation and people. In this light, Yulgok valued Jeongam Gwangjo Jo as a founder of Learning of the Way. On the one hand, Jungbong Heon Jo was evaluated as an exemplary Confucian scholar due to his defending justice as he raised an army in the cause of loyalty and was killed in Japanese Invasion of Korea courageously in 1592. While Learning of the Way is based on loyalty, in the case of Jungbong he inherited the philosophy of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Some scholars of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valued Jungbong’s philosophy high. For example, Jega Park, a scholar of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who was focused on the Bukhak School, had a great regard for Jungbong’s idea of innovation, openness, and practice. Thus, Park evaluated Jungbong as a pioneer of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In addition, Hyeongwon Yu, another scholar of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made a frequent quotation from and referred to Jungbong’s writings while he was writing 『Ban Gye Su Rok』. As was shown from the previous supporting examples, true philosophy of Learning of the Way can be said to be more fully complete when it includes not only the loyalty but also the idea of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As such, on the perspective of Yulgok’s idea of Learning of the Way, this study emphasizes Jungbong’s idea of Learning of the Way should not neglect the idea of the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though it was based on loyalty.

3

尤庵 宋時烈의 禮訟의 特徵과 意味

孫興撤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57-79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송시열(宋時烈. 1607 - 1689)의 예론을 중심으로 조선중기의 예송(禮訟)의 배경과 현대적 의미를 연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먼저 예송(禮訟)은 비정상적인 왕위계승과 능력이 부족한 왕의 역할 때문에 일어났음을 밝힐 것이다. 다음으로 예송은 노론의 독주가 아닌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대립과 왕권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是非)에서 비롯되었음을 논증할 것이다. 그 결과 우암의 예론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우암은 적장자계승(嫡長子繼承)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2. 王士同禮를 주장하였다. 3. 우암의 예론의 이론적 근거는『朱子家禮』와 『儀禮』이다. 4. 왕통과 종통을 분리함으로써 왕가의 권위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이는 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함으로써 결국 몰락의 원인이 된다. 이 연구를 통하여 조선 중기의 예송은 단순한 黨爭이 아니라, 각 정파의 사회이념이며, 정치적 소통(疏通)의 방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这个文章目的是研究朝鲜中期礼讼的背景和现代的意味以宋时烈(號,尤庵. 1607 - 1689)的礼讼。首先,要证明禮訟的发生原因是非正常的王位继承和无能力的王权。 再次,要论证禮訟并不是老论独走,而是由王权和臣权之对立与王权的正统性的问题上引起了。整理尤庵礼论的特竟如下 ; 一,他主张"嫡长子继承"的原则。二,王士同礼的礼法。三,他的理论的根据是『朱子家礼』和『仪礼』。四,他分以离王统和宗统引起了强下王权,这惹人王的念头,而且就是他没落的原因。 结果,通过这个研究,我们确认朝鲜中期的礼讼并不是简单的党争,反而是各正派的社会理念和政治上的疏通方法。

4

명재 윤증의 유학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李紅軍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81-106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명재 윤증(1629-1714)선생이 처한 17-18세기 조선사회는 내우외환의 시달림에 국가발전과 민족부흥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시기였다. 병자·정묘호란으로 인한 민족적 자존심 상실과 주체성의 흔들림, 당쟁으로 인한 형평성의 상실, 부친 윤선거의 江都之事로 인한 심적 갈등 등은 충분히 명재로 하여금 덕성을 상실케 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명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국가적 차원에서는 충신양민으로, 학문적으로는 실천유학자로, 가정적으로는 효자로 평생을 재야에서 깨끗하게 살아온 순유였다. 본 논문은 명재의 유학사상을 리기론, 심성론, 수양론 3개 측면에서 살펴보고, 그 현대적 의미를 전개하였다. 리기론에서 명재는 자신의 특징적인 관점이나 이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는 理氣二元의 존재관을 기본으로 하면서 리와 기의 관계를 주자와 율곡의 입장을 견지하여 ‘理氣不相離不相雜’의 리와 기의 묘합을 주장한다. 리와 기의 발용에 있어서, 기의 발용만을 주장하여 율곡의 ‘氣發理乘’의 논리를 계승한다. 또한 사물의 변화 과정에 있어서, 리는 보편성을 갖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에 구애되지 않고, 기는 천차만별하여 차별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국한된다고 하여, 율곡의 ‘理通氣局’의 논리를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명재의 리기론은 율곡 리기론의 입장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성론에서는 명재는 인심도심에 대한 논의를 가장 심도 있게 전개한다. 이는 명재가 심을 중시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심을 중시한다고 하여 심학인 것은 아니다. 명재는 도심, 인심, 인욕은 모두 일심의 발현이며, 본연의 마음이 과불급으로 인해 가려져 인심이 된다고 하였다. 인심은 성인도 없을 수 없으며, 인심은 불선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땅히 욕구할 것을 욕구하는 것은 상지의 인심이고, 마땅히 욕구해서는 안 될 것을 욕구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인욕이라는 것이다. 본심이 과불급이 없이 바르게 작용한 것이 도심이고, 과불급하여 잘 못 작용한 것이 인심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심을 도심, 인심, 인욕 삼층으로 설명하였는데 이는 명재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명재의 수양론은 內實과 內修에 힘써 實心을 함양하고 발휘하는 실천적 修養學이라 하겠다. 명재는 독서 궁리의 학문방법을 제시하고, 입지를 수기의 기반으로 한다. 입지가 서면 실심이 서고, 실심이 서면 실공에 힘쓸 수 있고, 실덕에 이를 수 있다는 무실적 수양론이다. 명재의 이와 같은 유학사상은 현대사회의 민족모순, 종교전쟁, 인성위기, 교육위기 등 현대적 병폐를 해결함에 지혜와 방법을 제시한다. 명재의 일심, 본심에 대한 강조는 본원에서 인간의 마음은 성인과 보통 사람에 차이가 없으며, 보통 사람도 후천적 수양을 통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명재의 인간 평등사상의 기초적인 논리라고 하겠다. 또한 학문함에 있어서 명재는 지행합일의 전인적 교육을 주장한다. 이는 인간의 평등은 인류사회의 최종목표이며, 인간이 인간다워야 함은 가장 기본적인 학문이다. 이에 명재의 유학사상은 현대사회 더욱이는 그 어느 시대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평등이념이며 교육이념이다.

明斋尹拯(1629-1714)所处的17-18世纪的朝鲜社会是在内忧外患的双重压力下苦思国家发展和民族复兴的抉择期。丙子·丁卯胡乱带来的民族自尊心的丧失和主体性的动摇、党派之争带来的社会公德的丧失、父亲尹宣挙的江都之事带来的心的矛盾,这三者任何一个都是让明斋失去德性的契机。但是明斋一生在民间毫不动摇地度过了在国家层面上是忠臣良民、在学问上是实践儒学家、在家庭中是当孝子的纯儒生活。 本论文从理气论、心性论、修养论等三个方面考察了明斋的儒学思想并展开了其现代意义。在理气论上明斋没有提出自己特定观点和理论。在理气的关系上明斋继承朱子和栗谷的立场,主张理气二元的本体论,坚持‘理气不相离不相杂’的理气之妙合。在理气的‘动静’上只承认气的动静,继承栗谷的‘气发理乘’的逻辑。明斋认为在事物的变化过程中理具有普遍性的特点,所以不局限于时间和空间,但气是千差万别具有差别性,所以局限于时间和空间,坚持了栗谷的‘理通气局’思想。如此,明斋的理气论忠实地继承着栗谷理气论的立场。在心性论上明斋着重阐述‘人心道心论’,这是明斋重视‘心’的表现。但是重视心不一定是‘心学’。明斋认为道心、人心、人欲都是一心之发,因本然之心被气所蔽过不及而变成人心。圣人也不能没有人心,人心有善有恶,不是本不善。欲当欲是上智的人心,欲当不欲是普通人的人欲。本然之心无过不及的是道心,有过不及的是人心。在这里明斋以道心、人心、人欲三层说来解释‘心’呈现了自己的特色。明斋修养论是致力于内实和内修的涵养和发挥实心作用的实践修养学。他提出读书穷理的学问方法,把立志作为修己的基础。认为立志而后立实心,立实心才能勤于实践达到实德的务实的修养论。现代社会面临着民族矛盾、宗教战争、人性危机和教育危机等社会问题,对这些问题的解决明斋的上述儒学思想提供智慧和方法。明斋对一心、本心的特别重视,这是因为他认为在本原上人心没有圣人和凡人的差异,凡人也通过后天的修养可以成为圣人。这就给人类提供了平等的前提,是明斋人类平等思想的思维前提。在教育上明斋主张‘知行合一’的全能教育。他认为单单掌握理论不可以,必须把理论付诸于实践才能成为真正地知识,才能实德。人类的平等是人类社会的最终目标,人之为人是最基本的学问。为此,明斋的儒学思想是现代社会以至任何时代都要坚持的平等理念和教育理念。

5

조선 후기 유학의 가족 인식 - 농암의 여성 가족에 대한 정서적 기억 서사를 중심으로 -

김세서리아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107-135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 논문은 조선 가족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종법제 수용, 가부장제 가족 이념의 확산, 여성 지위의 하락 등에만 주목하였던 것을 비판적으로 인식한다. 가족 문제가 이념이나 제도의 문제를 벗어나서 논의될 수는 없겠지만, 그와 동시에 가족 관계와 개인의 정체성이 감성적 기억에 의해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본 논문은 17세기 이후 조선 후기 유학자인 농암 김창협의 감정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 이에 기반하여 죽은 여성 가족에 대한 기억과 가족 감정을 논의함으로써 조선 유학의 가족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죽은 여성 가족에 대한 남성 유학자의 기억을 통해 가족 감정과 여성 인식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단지 이념이나 제도적 측면에서 가족 문제를 논의하는 한계를 넘고자 하는 것이다. 논의의 효과적인 전개를 위하여 논문은 다음과 같이 단계적 접근을 시도한다. 우선 농암의 철학 안에서 감정 인식의 주자학적 특징과 탈주자학적 특징을 구분하여 논의한다. 또한 망자를 위해 지은 글 속에서 농암의 여성 가족, 특히 두 딸과 누이에 대한 기억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그의 가족 감정과 가족 서사를 분석해본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조선 후기 감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국면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에 기반하여 가족 감정에 기초한 가족 인식의 틀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조선 유학의 여성에 대한 문제에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할 수도 있다.

This report starts from critically recognizing the limitations produced from pre-existing Chosun family research, which just focuses on the system of clan code, spread of patriarchic family ideas, and the fall of women's social position. Although the family problem cannot be discussed without considering the issue of idea or institution, at the same time, the fact that family relationship and individual's identity are constructively connected by emotional memory should not be overlooked. Under such critical mind, this report attempts to discuss family emotion that centers around the understanding on Nong-am Kim Chang-Hyup, a Confucian scholar from the late Chosun dynasty, as well as the family emotion embodied in an essay on the memory of a dead female family. It will try to overcome the limitation on discussing family just through ideological or institutional aspects by examining family emotion and cognition on woman through a male Confucian scholar's memory on a dead female family. To effectively approach these discussions, the report will be dealt with in these three stages. First, it will observe how the understanding of emotion is handled in Nong-am's philosophy. Next, by analyzing Nong-am's essays for the female family, the report will examine Nong-am's family emotion on female family. Through these discussions, it is possible to discover a new understanding condition on the late Chosun dynasty's family and based on this, it can approach the understanding on female in Chosun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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遜志 洪在龜의 『正俗新編』硏究

鄭敬薰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137-164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고는 해외로 밀반출된 저서로 알려진 『正俗新編』에 대한 연구이다. 이 책의 저자는 華西學派 중 重庵系列인 遜志 洪在龜(1845~1898)로 華西 李恒老의 위정척사 이론을 충실히 계승한 인물로 重庵·省齋 柳重敎(1832∼1893) 이후 화서학파의 선두적 입장에 선 인물이었다. 그는 1876년 開港 협상 당시 강화 반대 상소를 주도적으로 전개했고 1880년 복합 상소 운동 당시 상소문을 작성하였으며 1896년 고종을 환궁시키기 위한 계획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홍재구는 화서학파의 주요인물로 중암과 성재 사후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았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문집과 저서가 소개되지 않아 거의 전무한 편이다. 본고에 소개된 홍재구의 『正俗新編』은 현재 프랑스 교육부 직속 파리 제3대학 주관 하에 있는 도서관(Bibliotheque interuniversitaire des Langues orientales)에서 운영하는 古文書庫에 소장된 자료이다. 이 책이 국내 학계에 소개된 것은 여진천 신부의 공로가 크다. 교회사를 연구하던 여진천 신부는 2002년 橫城敎案과 관련된 연구 중 이 책의 소재를 프랑스에서 확인하여 최초로 소개한 것이었다. 그러나 『正俗新編』에 대한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아 본격적인 연구와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고찰보다는 당시 천주교와 서양 기술 인식에 국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완역을 통해 『정속신편』을 통해 화서학파의 시대 인식과 나아가 홍재구의 현실 인식에 대해 고구하고자 하였다. 『正俗新編』은 홍재구가 직접 경험한 천주교의 빠른 유행과 서양기술 등 西勢東漸을 통해 철저한 척사론 입장을 대변한 책이다. 그는 1862년 晉州民亂 등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農民抗爭 이후 대외적으로 이전부터 세력을 키워온 천주교의 교세 확장과 강제적 개항에 따른 외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이질적 문명의 서양열강의 도전을 받았던 시기에서 外攘을 주장하고 있었다. 홍재구가 보고 경험한 서양기술의 비판은 주관적 견해가 강한 면도 있다. 그러나 결과론적이지만 그의 주장은 서양의 기술이 결국 조선백성들의 利用厚生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열강들의 효과적 침략과 천주교 등 문화적 확산에 기인할 뿐임을 확인 할 수 있었고 나아가 시대의 위기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 할 수 있다. 『正俗新編』의 내용은 대체로 『小學』이나 『大學』의 학문방법과 대체로 근사하지만 그 마지막이 사람의 處世之義를 나타내는 處世를 제외하면 正家와 居鄕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은 이 책이 經世的인 목적보다는 鄕里의 주변을 단속하는데 더욱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고 당시 중암의 유배와 함께 중암과 성재·의암 계열의 학문적 견해로 분화되는 학파의 내적 원인도 있었기 때문이라 추정할 수 있다.

This research is the study of 『Jungsoksinpyeon』 has been exported overseas to sneak. The author of this book is Songi Hong Jae-gu. The school of HwaSeo as he thorough was the successor to the school. In 1876, Hong Jae-gu was negative in the open position of the conservative. The school of HwaSeo as he HwaSeo major figure introduces the research and writings about him, but did not. Introduced in this paper Hongjaegu's book have in the Library of Paris (Bibliotheque interuniversitaire des Langues orientales), the French Ministry at the University of. Until now, translated this book be made is not. Fashion fast direct experience of the Catholic Church and Western techniques, and Hong Jae-gu of 『Jungsoksinpyeon』 was a thorough reform who opposed the book. Described in this book are as follows. Technology and the expansion of the Catholic Church and forced the opening of foreign forces that it came illegally since 1862. Strongly criticized Western technology on the basis of the experience, the fact that he reported directly. Western technology, he argued for the invasion of our country. Therefore, this book, the book is to rectify the discipline of the village. For the forward to this book, hoping to steady research.

7

易의 先後天에 관한 硏究 - 鶴山 李正浩 先生의 易哲學을 중심으로 -

柳七魯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165-197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 논문은 鶴山先生의 ‘先後天觀’을 통하여 그의 역철학을 밝히고자 한다. 『易』은 六經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경전의 원리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경전 중의 경전으로 그 위상을 점하여 왔으며, 이후로도 한문 문화권의 모든 나라에서 전시대에 걸쳐 줄기차게 해석되고 연구되어 왔다. 따라서 그 이름도 여러가지이고, 해석하는 방법도 다양하여 그 종류도 헤아릴 수 없다. 대개 易學의 계통으로는 ‘유가계통의 역학’과 ‘도가계통의 역학’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易術’로 응용되는 ‘占術’계통도 빼놓을 수 없다. 따라서 그 연구의 방향도 참으로 다양하여 『역』을 점서나 예언서로 보거나, ‘圖象易’, ‘象數易’, 또는 ‘義理易’이나 ‘性理易’으로 구별할 수 있다. 도상역이나 상수역은 대체로 ‘伏羲八卦’나 그의 河圖를 易理의 원천으로 보아 ‘先天易’을 주제로 하고, ‘의리역’은 ‘文王八卦易’인 洛書를 현실 실현원리로 보아 ‘後天易’을 주제로 한다. 또한 ‘성리역’은 ‘完成易’인 一夫의 ‘正易’을 주제로 한다. 鶴山先生은 위의 세 易에 근거하여 伏羲의 역을 先天易으로, 文王의 역을 後天易으로 간주하지만, 제 3의 역인 일부의 『정역』을 연결하면서 후천역인 문왕의 역이 선천역으로 바뀌고, 일부의 『정역』이 후천역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세 역은 ‘生․長․成’의 생성적 유기관계를 가지고, 복희의 역은 문왕의 역에 대한 선천역이고, 문왕의 역은 선천의 후천이 된다. 결국은 후천역인 일부의 『정역』에 대하여는 복희의 역과 문왕의 역은 함께 선천역이 된 셈이다. 先儒들 일반이 상수역학적 이해를 소홀히 하던 중, 그래도 소옹이 선후천을 드러내어 生長의 역을 말하고 있지만, 理想을 선천에 두기 때문에 ‘선천’과 ‘후천’이 유리되는 단조로운 선후천인데 반하여, 학산은 一․二易을 통하여 三易인 『정역』(未形未顯者)을 「설괘전」 6장에서 드러냄으로써 제1역(伏羲八卦), 제2역(文王八卦), 제3역(一夫八卦)이 서로 유리될 수 없는 생․장․성괘로 연결하여 1역을 통하여 2역을, 2역을 통하여 3역을 해석할 수도 있고, 역으로 제3역을 가지고 제2역을, 제2역을 가지고 제1역을 해석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될 뿐 아니라 크게는 제2역과 제3역이 하나가 되는 完成卦圖로 실현되는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In this treatise, I will make clear the philosophy of ‘Yì(易)’ through the ‘Theory of XiānHòutiān(先後天論)’ of Haksan(鶴山). The ‘Yì(易)’ is the oldest of ‘Liùjīng(六經)’, and is called the Scriptures of Scriptures because of the other Confucianism Scriptures on the basis of this book, as before that is still being studied Throughout the era of in all countries. Usually Confucianism and Taoism are make up the main part of a school of the study of ‘Yi’, on the one hand we can’t forget about the art of divination. So the Research Directions are very various - for example, Yi is considered to be a book on divination or the prophetic books, ‘Túxiàng-Yi(圖象易)’, ‘Xiàngshǔ-Yi(象數易)’, ‘Yìlǐ-Yi(義理易)’ and ‘Xìnglǐ-Yi(性理易)’ and so on. Generally the ‘Túxiàng-Yi(圖象易)’ and the ‘Xiàngshǔ-Yi(象數易)’ are based upon the theme of ‘Xiāntiān-Yi(先天易)’, because that considers ‘FuXi's bāguà(伏羲八卦)’ and ‘Hétú(河圖)’ a source of ‘Yì-lǐ(易理)’. The ‘Yìlǐ-Yi(義理易)’ is based upon the theme of ‘Hòutiān-Yi(後天易)’, because that considers ‘Wén-Wáng's bāguà(文王八卦)’ and ‘Luòshū(洛書)’ a principle of reality. Also the ‘Xìnglǐ-Yi(性理易)’ is is based upon the theme of YīFú(一夫)'s ‘Zhèng-Yi(正易)’- that is ‘Finished-Yi(完成易)’. Haksan(鶴山) regards the FuXi's Yi as the ‘Xiāntiān-Yi(先天易)’ and the Wén-Wáng's Yi(文王易) as the ‘Hòutiān-Yi(後天易)’, on the basis of upper three Yi. But if the ‘Third Yi’ - YīFú(一夫)'s ‘Zhèng-Yi(正易)’ - was became ‘Hòutiān-Yi(後天易)’, Wén-Wáng's Yi(文王易) is changed the ‘Xiāntiān-Yi(先天易)’. Thus these three Yi has an organic relationships between the ‘birth’, the ‘growth’ and the ‘achievement’. And ‘FuXi's Yi(伏羲易)’ is ‘Xiāntiān-Yi(先天易)’ vis-a-vis ‘Wén-Wáng's Yi(文王易)’ and ‘Wén-Wáng's Yi(文王易)’ become ‘Hòutiān-Yi(後天易)’ vis-a-vis ‘Xiāntiān-Yi(先天易)’. Finally ‘FuXi's Yi(伏羲易)’ and ‘Wén-Wáng's Yi(文王易)’ are became ‘Xiāntiān-Yi(先天易)’ vis-a-vis Yi'-YīFú(一夫)'s ‘Zhèng-Yi(正易)’. The greater part of classical scholars of the old days paid no attention to ‘Xiàngshǔ-Yi(象數易)’ but Shàoyōng(邵雍) exposed XiānHòutiān(先後天), and suggested ‘birth’ and ‘growth’. However, his XiānHòutiān(先後天) is disengaged Xiāntiān(先天) and Hòutiān(後天) by reason of cherish ideals of Xiāntiān(先天). But Through the First and the Second Yi, Haksan(鶴山) exposed the Third Yi - ‘Zhèng-Yi(正易)’ - in Chapter 6 of 「Shuōguàzhuàn(說卦傳)」. Thereby he establish a link between the First, the Second and the Third Yi as the Guà(卦) of the ‘birth’, the ‘growth’ and the ‘achievement’. And he made way that can interpret the Second Yi through the First Yi, can interpret the Third Yi through the Second Yi, can interpret the First Yi and the Second Yi through the Third Yi. Besides largely, he suggested world view that is the Second Yi and the Third Yi unite into one and ‘finished GuàTú(完成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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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原 柳承國 선생의 學問과 思想 ― 道原思想 연구의 序說的 一考 ―

崔英成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199-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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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광복 이후, 한국 동양철학계의 제1세대 학자로 활약했던 도원 류승국의 삶과 학문, 사상에 대해 개괄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먼저 60여 년에 걸친 학문 역정을 살폈다. 열린 사고와 회통적(會通的) 정신으로 일관된 삶을 부각시켰다. 이어 평생토록 연구 주제로 삼았던 한국사상의 정체(正體)와 현대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상과 중국사상의 차이점, 그리고 유학사상과 도가사상의 형성이 한국사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학설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폈다. 끝으로 현실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시대적 요구를 소홀히 하는 철학은 산 철학이 아니라는 소신과 지론을 소개하고, 현실 문제에 대한 진단, 인류 미래에 대한 철학적 전망을 고찰하였다. 특히 인간주체 문제 등 여러 철학적 대안을 중점적으로 논술하였다.

This study conducts recapitulative investigation on Dowon Ryu, Seung-Guk's life, studies and thought who was the first generation scholar in Eastern philosophy after Korea's independence from Japan. I, the author, first review his journey on studies and find out that he lived his life in an open-minded and synthetic way. After that, I investigate the identity of Korean thought which was his lifelong study topic and its modern meaning. Throughout the process, I concentrate my study on the difference between Korean and Chinese thoughts and studies suggesting that the development of Confucianism and Taoism was an inseparable relation with Korean thought. Lastly, I introduce an opinion that neglecting real problems or needs of the times is not a living philosophy and contemplate diagnosing of practical problems and philosophical prospects about the future for mankind. I mainly describe various philosophical alternatives such as an issue on a human being as a main agent,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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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儒敎における宗敎性認識の問題

유성선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23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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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敎는 生死觀에 대해 다른 宗敎와 달리 硏究振作이 부족하지만, 삶과 죽음을 大자연의 법칙에 의한 神鬼課程으로 봄으로써 形而上學的 問題로 돌렸다. 따라서 그들은 生死때문에 앞뒤로 연장될 수 있는 인식보다는 현실중심주의적인 세계관을 주목하였다. 孔子의 󰡔論語󰡕 문답 중 ‘敬而遠之’나 ‘宰予와의 3년상의 문답’은 인간과 현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투영한 것이다. 유교는 조상숭배의 사상과 직결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 문제를 조선조 통치론인 성리학이 형식논리로 예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중심으로 본 논고의 차제는, 유교의 종교성 문제, 유교의 생사관 기초, 한국유교의 통치이론과 조상숭배를 기본으로 전개하였다. 유학자들은 性善說의 입장에서 仁과 義의 범주를 지켜야 할 덕목으로 인정했다. 특히 맹자가 강조한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이 五倫이다. 그리고 동중서가 親, 義, 別, 序, 信에 부합하는 五性의 仁, 義, 禮, 智, 信을 지목하여 五常이라고 했다. 三綱은 오륜 등의 범주와 함께 전해졌지만, 송나라에 이르러 주희 등이 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 등의 3가지 범주로 확립하여 삼강오륜의 도덕적 체계가 세워진다. 삼강오륜은 한국에 󰡔朱子家禮󰡕의 도입과 더불어 禮로 내면화되고 형식화된다. 특히 삼강오륜은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중요한 요인이 된 유교문화적인 자산이다. 삼강오륜을 부정적인 외연으로만 확대하여 序列主義, 緣故主義, 集團主義 등의 비난도 검증할 문제이다. 어떤 사상과 종교에는 순기능과 역기능, 허와 실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그 폐해가 있다면 사상과 종교의 시스템을 운용했던 인간에게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유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孝의 강조이다. 효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모든 면에서 우선순위에 놓이게 된다. 가문 또는 집을 유달리 중시한 우리 조상들은 이 혈연집단을 기본으로 사회의 다른 집단을 파악했다. 효의 강조와 가족 또는 가문 우선주의는 사당과 서원, 족보발달로 혈연과 친․인척의 문제를 확대하기도 하였다. 공자가 재여와의 문답에서 강조한 3年喪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유교가 죽음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면서도 오히려 자손들의 번성으로 죽음을 극복하려고 한 宗敎的 敎育과 儀禮인 意圖였다.

Confucianism lacked study compared to other religions relating to view of birth and death. Confucianism sees birth and death as course of transforming to spirits by natural law, so birth and death became issue in metaphysics. Accordingly, they gave attention on view of the world focusing on reality rather than recognition on extension of life. Confucius says ‘respect spirits while keeping distance away from the spirits’ or ‘funeral for three years discussed with Jaeyeo’ in his Analects of Confucius. This reflects his interest and love for human and reality. Confucianism discusses about problems directly related to thoughts of belief in ancestor worship. It can be known that the problems became funeral rite system through formal logic of Neo-Confucianism which was governing doctrine in Chosun. This study, focused on this, basically developed religious aspect in Confucianism, basis of view of birth and death in Confucianism, governing doctrine and belief in ancestor worship in Korean Confucianism. Confucian scholars recognized categories of humanity and righteousness as virtues to be kept from perspective of doctrine of the innate goodness of human beings. Especially, the virtues are five moral imperatives such as 父子有親(Between father and son, there should be affection.), 君臣有義(Between ruler and minister, there should be righteousness), 夫婦有別(Between husband and wife, there should be attention to their separate functions), 長幼有序(Between old and young, there should be proper order (or hierarchy), 朋友有信(between friends, there should be faithfulness) which were emphasized by Mencius. And Dong Zhongshu called humanity, righteousness, propriety, wisdom, and belief(仁,義,禮,智,信) as Five Constant Virtues, which correspond to Chin, Uoi, Byul, Seo, and Sin(親,義,別,序,信). Three Bonds had been transmitted along with categories of five moral imperatives and Zhu Xi etc. in Song dynasty established three categories such as Gunwisingang(君爲臣綱), Buwijagang(父爲子綱), Buwibugang(夫爲婦綱). As a result, moral system of Three Bonds and five moral imperatives were made. With introduction of 󰡔Code of Family Propriey(朱子家禮)󰡕, Three Bonds and five moral imperatives was internalized and formalized. Especially, Three Bonds and five moral imperatives is asset of Confucian culture which is an important factor of East Asian economic development. To criticize Three Bonds and five moral imperatives as rank conscious, personal connection conscious, group egoism etc. would be a problem to be tested - Three Bonds and five moral imperatives was expanded to negative extension. Any thoughts and religion has function and dysfunction, weakness and firmness. And if there was evil influence, it would be attributed to human who operated system of thoughts and religion. The most prominent characteristic of Confucianism is emphasis on filial piety. And family is put in top priority. Our ancestors who put importance on family or home thought of other group in the society compared to the blood ties group as a basic. Emphasis of filial piety and priority of family sometimes expanded problem of blood ties and relative because of development of ancestral hall, private academies, and Clan Register. Funeral for three years Confucius stressed in the dialogue with Jaeyeo is same case. Confucianism accepts death as truth of nature but rather is closer to religious education and ceremony which aimed to overcome death by prosperity of off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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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종교생활 2 - 상식철학으로 읽는 불교의 문제들과 대안들 -

김의수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25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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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종교생활은 종교다원주의의 모범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는 고래로부터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다수의 종교인들이 많은 문제들을 노정한다. 필자는 한국의 종교와 종교인들이 보여주는 양면성을 주목하고, 종교가 사회에 순기능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하고자 한다. 기독교를 다룬 논문에 이어서 본 논문은 불교의 경우를 다룬다. 본 논문은 상식철학의 관점에서 불교의 문제들을 진단하고 대안들을 찾아보려 한다. 상식철학은 과학적 상식, 윤리적 상식, 문화적 상식을 기반으로 한다. 종교학, 사회학, 불교학 등에서 지적된 불교의 문제점들은 다양하지만, 필자는 몇 가지 기본적인 이슈들로 정리한다: 1. 기복신앙과 신비주의 2. 파벌과 부패 / 종권 다툼과 비리 3. 정체성 혼란과 문화적 허약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처방을 제시하는 글들을 소개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글들은 불교학 전문 논문들도 있고, 대중들을 대상으로 쓴 것들도 있다. 상식철학의 눈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서 필자는 대중적 글들을 중요시한다. 이렇게 상식철학으로 접근하는 이유는 실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논리와 이론을 세우고, 담론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세계가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상식철학적 담론은 개별적 집단적 실천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가 제시하는 지향점이다.

There were and are many good religious leaders in Korea. But the Koreans' religious life has duplicity. This paper will analyse the problems in Korean Buddhism and seek the ways to solve them. The researchers in religion, sociology and Buddhism provide lists of problems in Korean Buddhism, but I summarize them in three terms: conservative mysticism, trouble and corruption, identity confusion and cultural infirmity. We find hot tip for overcoming the problems in Korean Buddhism in popular books and essays which are read by the citizens. Aproaching with common sense philosophy it shows the importance of practice and solidarity by 4 groups in Buddhism(bhikku/bhikkuni/buddhist/buddhist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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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중국에서의 과학 담론 : 진독수와 양계초를 중심으로

이용주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6집 2012.08 pp.277-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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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근대기 중국에서의 과학 담론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스케치한다. 19세기 중엽부터 중국은 서양의 과학 기술을 수입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서양의 과학기술을 수입하던 초기에, 중국인들은 과학기술의 긍정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가짐으로써, 거의 종교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에 대한 일방적인 존경과 찬양을 보낸다. 군사무기와 경제력으로 무장한 서양의 제국주의 열강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 무기와 경제력의 배경이 되는 과학기술을 수입해야 하고, 그 과학기술의 수입이 곧 중국의 근대화와 부강화의 길이라는 확신이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과학 수입 초기 중국인을 지배하던 과학기술 신앙을 대표하는 사상가로 우리는 엄복을 기억할 수 있다. 엄복에 의해 시작된 서양 과학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의 태도는 20세기초 신문화운동기에 낡은 중국을 전면 개조하고 전면적으로 서양의 문화와 과학기술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덕수나 호적에 의해 계승되고, 확대되어 간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과학만능에 대한 신앙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과학기술의 도입을 시작하던 19세기 중엽부터 과학기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평가하던 보수적인 인사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반대는 과학기술을 앞세우고 밀려오는 서양의 정신문화가 결국은 중국의 전통적인 도덕주의와 사회질서, 정치질서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정치적 보수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20년에 들어서면서, 진독수 등의 과학만능주의에 대항하는 과학만능 비판론은 단순한 전통주의나 정치적 보수주의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다. 양계초로 대표되는 과학비판론자들은 기본적으로 근대과학의 강점을 이해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과도한 과학 발전 혹은 무비판적인 과학 발전이 오히려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의 증가, 국가 간의 갈등의 증가, 그리고 전쟁의 확대라는 세계사적 현실에 착안한다. 그 결과 그들 비판적 과학론자들은 과학이 제공하는 유토피아적 희망이 지닌 허구성에 주목하고, 과도한 과학 신앙, 맹목적인 과학기술 발전론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그런 과학만능론과 과학비판론은 그 어느 쪽이든 상대방의 극단적인 면만을 바라보는 극단론으로서 한계를 가지지만, 20세기의 20년대와 40년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과학과 철학의 가치와 한계를 둘러싼 대논쟁, 그리고 중국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의 차이를 규명하고자 하는 문화논쟁, 민족성 논쟁, 역사발전 논쟁이라는 근대 중국을 형성하는 중요한 사상적 논쟁을 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논문은 그런 후대의 사상 논전을 이해하기 위한 머리말, 실마리로서, 근대 중국을 장식하는 대논전의 서론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This article sketches the process of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the discourse on science in modern China. From the middle of 19th century, China tries to import western science and technology. At the very beginning of importing science and technology, the Chinese valued and revered science and technology something like a religion. They have convinced that to overcome and rival the western countries which equipped with science and technology China also have to learn science and technology which was thought to be the basis of western powers. They also have the conviction that the import of science and technology is the only way to accomplish modernization and success of China. We can remember Yan Fu as a thinker who represents ‘science religion’(科學宗敎) which prevailed at that time. This kind of science religion which supported by Yan Fu was furthered by Chen Duxiu and Hu Shi who advocated the merits of western culture, and science and technology. But sooner or later there appeared the criticiser who see science critically. Surely, from the middle of 19th century, there existed the cultural and political conservatives who criticised science and technology from the stance that western spiritual culture which represented by science would destroy chinese traditional values. The dissenters of ‘science faith’ of early 20th century China, such as Liang Qichao, affirmed the benefits of science and never denied the import of science as science. They attacked, however, the increase social risk, troubles between countries, wars which excessive development of science would bring. As a result, the criticiser of science gave attention to the fictive aspect of the utopian hope which science faith have advertised, and started to criticise science faith and reckless advocates of science. The controversy between Chen Duxiu and Liang Qichao can be considered as a forerunner of “Science and Philosophy Controversy”(科玄論爭) which begins at 1923, and other big controversies, such as Culture Controversy(文化論戰) aiming at clarify chinese way of thinking vs. western way of thin, etc. This article could serves as the introduction to understand great controversies of moder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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