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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중기 이후 유교적 예교주의와 고려율에 나타난 효문화 검토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1집 2010.04 pp.1-26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고려사회의 유교적 예교주의와 고려율에 나타난 효문화를 살펴본 것이다. 고려사회는 비록 불교국가를 표방하였지만 유교적 예교(禮敎)와 인효(仁孝)사상 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고려유학은 단조롭고 편협한 조선유학에 비해 깊이는 못하지만 포괄적이고 실천적이며, 특히 국가사회의 현실과 인민들의 실제 생활에 입각하여 불교·도교의 낭비와 허탄함, 그리고 백성들의 미신적 의식을 비판하고 깨우치는데 크게 기여한 합리적인 사상이었다. 고려의 유교사상은 조선의 성리학과는 달리 일상적인 삶의 요소를 중시하였는데, 그것은 효제충신(孝悌忠信)의 강조로 드러났다. 효제 충신은 본원 유가가 특별히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고려의 유교사상은 송명대 성리학 보다 본원유가의 원리에 더 가까이 갔다. 실천윤리이자 생활윤리로서 강조된 고려의 효문화는 불교지도자들의 관심을 돌리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불교를 효의 종교로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다. 유교와 불교의 자연스런 만남도 이로부터 가능했다. 효문화가 이질적 두 문화를 화해·소통시킨 것이다. 권보에 의해 편찬된 효행록은 훗날 조선의 여러 효관련 도서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울러 고려의 효에 대한 강조는 법률에도 적용되었다. 효가 단순히 윤리 도덕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반드시 실천해야할 덕목임을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효도하지 않으면 엄한 형벌을 받게 하여 효실천을 진작했던 것이다.
From the very beginning of the Koryo Dynasty, academies for the Confucian scriptures were built up in the capital and in provinces with the aim of establishing the Confucian political ideas. Koryo endeavered ceaselessly to win loyal subjects through stressing the central virtue of Confucianism, the filial piety. To encourage the Confucian filial piety and to push ahead with Confucian policy, a special vacation system was introduced for officials who had parents to serve, filial sons were praised and rewarded, and a penalty was imposed on the unfilial. Koryo was eager to unify the political ideology through the Confucian Virtue of filial piety, being confident of that the virtue of filial piety might be the precondition of the virtue of loyalty.
신유학은 선진유학과 구별하여 송명이학을 일반적으로 지칭한다. 송명이학이란 송대의 주자학과 명대의 양명학을 통칭한다. 이것이 중국 이학에 관한 기본 서술이다. 조선유학(이학)은 송대 주자학을 정통으로 삼고 명대 양명학을 이단시했다. 이것이 조선 이학에 관한 기본 설명이다. 양명학이 조선에서 이단시되는 과정에서 퇴계의 양명학 평가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고 그의 양명학 비판은 <전습록논변>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학계에서 퇴계의 양명학 비판에 관한 연구는 상당한 양에 달하고 있지만 주된 연구태도는 퇴계학을 옹호하는 관점이거나 양명학을 변호하는 관점에서 상대방을 포용하거나 배척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본 연구는 <전습록논변>을 분석하면서 양명의 본의와 퇴계의 우려가 사실은 동일한 성인지학을 추구하는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퇴계와 양명은 모두 도덕실천을 강조한 유학자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퇴계가 양명학을 배척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통상적으로 제시하는 “일반적 오해”나 “적극적 곡해” 혹은 “정통한 비판”이라는 도식 외에 본 논문은 본체(심체)에 대한 분석을 통해 퇴계 비판의 이유를 제시한다. 여기서 설정한 심체는 장경심체와 열락심체이다. 퇴계는 주자학의 도덕보편주의를 바탕으로 자신의 도덕실천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양명이 주자학의 공리주의화를 비판하면서 제시한 도덕실천주의의 제학설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퇴계는 장경심체의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열락심체의 경향이 강한 양명학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를 하고 있었다. 이점이 퇴계가 양명학을 배척한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本论文是关于韩国著名朱子学者李退溪对阳明学之批判的研究。李滉(字:景浩,号:退溪,1501-1570)是朝鲜李朝(1392-1910)的著名朱子学者,被称为“朝鲜的朱子”、“东方百世之士”。笔者在本文里要解释、疏通退溪批评阳明的理由以及找寻退溪学的特色。为了这个目标分析了退溪的《传习录论辩》中的“至善”论辩和“知行合一”论辩。通过分析,可知退溪学有批判的正当性,而阳明学也有自身的正当性。那么,退溪着重道德实践的立场为何激烈反驳阳明着重道德实践的学说?这是本文着重讨论的问题。 解决这个问题仅靠“性即理”和“心即理”的图式,没有理想的作用。故笔者从他们的“庄敬本体(心体)”和悦乐本体(心体)“里,尝试找出线索。 庄敬状态是《诗经》所谓“昭事上帝”的庄敬严肃的心态,悦乐状态是《论语》所谓“风咏舞雩”的和悦快乐的心态。本来,就工夫完成者而言,两者是统一不分的,可是就工夫过程者而言,过重一面颇有所谓过不及的片面性。就是从悦乐本体强调的人而看,庄敬本体会有把变动不居的本体当成典要,固执形式而不灵活,从而伪道德的君子等的嫌疑。相反,从庄敬本体强调的人而看,悦乐本体会有把告子的“生之谓性”即禅家的“作用之性”当成本体,放弃工夫而躐等,猖狂放恣而无纪律,从而无忌惮的小人等的嫌疑。 总之,退溪认为,根据朱子学可以实现他所想的为圣之学。所以退溪反对阳明违背朱子的格物说而建立“心即理”,提倡为圣之学。尤其是,退溪拥有庄敬心体的倾向,很可能歧视阳明的悦乐心体是放荡心体,就是等于“禅”。就这样,阳明学被退溪学所激烈批判,在韩国迟迟不振,几乎没有机会给韩国儒学添加悦乐本体的传统。
본 논문은 최흥원(崔興遠, 1705∼1786)(호는 百弗庵)이 夫仁洞과 漆溪에 樂土를 건설하기 위해 제시한 規範에 대해 살피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백불암은 향촌사회와 동성집단의 유교적 이상향을 만들기 위하여 ‘공동의 가치’, ‘도덕적 품격’ 및 ‘좋은 법도’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 「訓」ㆍ「箴」ㆍ「銘」ㆍ「家訓」ㆍ「節目」ㆍ「規約」 등이며, 修身ㆍ齊家ㆍ族內ㆍ族外및 堂號관련 등 네 가지 규범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여러 규범 중에서 修身‧齊家와 관련된 규범, 다시 말해서 훈잠명류 8종(敬ㆍ孝悌堂銘ㆍ讀大學箴ㆍ齋居箴示學者ㆍ傳事說,ㆍ書與諸兒訓ㆍ願習說ㆍ廣居 庵銘), 家訓1종 및 立春帖1종 도합 10종에 대하여 각 규범의 내용과 특징을 검토하였다. 백불암은 규범을 통해 개인, 문중과 향촌인을 규율하거나 자율적으로 따르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행동양식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추상적ㆍ관념적인 토론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에서 모든 규범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實學的이며 그의 핵심 실천사상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修身‧齊家관련 규범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敬」의 수행을 통해 겉으로 언행을 제어하여 속마음을 길러 모두가 中庸의 中和의 경지, 즉 모든 것이 제자리에 서고 만물이 무럭무럭 자라는 상태가 되어 가문과 향촌이 유교적 이상사회가 건설되기를 바라는 여망을 담은 것이다. 둘째, 「太極圖說」과 「西銘」의 萬物一體論에 많은 영향을 받아 평등주의적‧인도주의적 생활철학이 체득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셋째, 각 규범들을 각 처소마다 揭示하여 시각적이며 반복훈련이라는 특징을 보이며, 언어에 의한 훈도를 줄이고 無爲之治의 경지, 즉 간섭과 지도가 적어도 자연스럽게 실천되고 涵養되어 지행합일을 이루려는 방법을 백불암은 선택하였다. 넷째, 백불암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은 孝悌와 仁義를 바탕으로 한 程朱學이며. 여러 규범 에서 先知後行이 중시되고 있어 陽明學의 知行合一說과는 약간의 거리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이 백불암은 선대(先代)의 ‘무가(武家)에서 문가(文家)로 전환’하며 가격(家格)을 올리는 과정에서 가문의 병폐, 즉 협기(俠氣)와 패술(覇術)과 미생지신(尾生之信)과 같은 맹목적인 신념을 고치고 지행합일의 가풍을 만들려 노력한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수신(修身)부문 6종과 제가(齊家)부문 4종[효제당명ㆍ가훈ㆍ전사설ㆍ입춘첩]의 규범을 철저히 정착시키고 유교적 가치체계에 의한 칠계낙토(漆溪樂土)를 만들려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This paper is a study on Baek-Bul-Am(Choi- Heung-Won, 百弗庵, 崔興遠 1705~1786)'s Norm(規範) based on Confucianism, which he established for the purpose of constructing his hometown(Otgol & Buindong-Dong) as a paradise. Baek-Bul-Am's attention was paid to setting up 'moral dignity’, ‘common value’ and ‘exemplary legislative custom’ which are thought to be the most important points needed for the society of clan and country as a confucian utopia. The instructions(訓), the admonition(箴), the vigilance(銘), the family motto(家訓), the regulations(節目) and the rules(規約) were made to meet his belief and the Norm can be classified into four categories : moral cultivation and home regulation(修身·齊家), the clan(族內), the country(族外) and Dangho(堂號). And the Norm can be said to be the practical core of his thoughts because it was established on the rather practical and pragmatic level instead of monotonous discussion and ideological disputes. This paper discusses the total 10 items of the Norm related to moral cultivation and home regulation(修身·齊家) and analyzes its contents and features. Also the features are well reflected in the following messages which Baek-Bul-Am intended to deliver through his Norm. First, he expected that the people in his clan and country could control the speech and the action through practicing 'Mindfulness(敬)', eventually reaching 'the states of equilibrium(中和)' of 'the Doctrine of the Mean(中庸)'. He thought that the Confucian paradise he dreamed of could be established therethrough, in which all things would be nourished and flourish in the right places. Second, Baek-Bul-Am's Norm was mostly influenced by the Diagram of Supreme Ultimate(太極圖說) and the Sameness of All Creation(萬物一體論) of Western Inscription(西銘) and showed practical philosophy with egalitarian and humanistic values. Third, each item of his Norm was posted on many conspicuous places for visual effects and repeated training. Baek-Bul-Am chose the governing way of 'letting nature be-Wuwei'(無爲之治) to reach the unity of knowledge and conduct through spontaneous practice and cultivation with minimum discipline, instruction and intervention. Fourth, the main factors which had influence on his Norm were filial piety and brotherly love(孝悌之道) and benevolence and righteousness(仁義) based on Neo-Confucianism, and put emphasis on former learning and latter behaviour(先知 後行), which is quite different from the Unity of Knowledge and Behaviour(知行合一說) directed in the philosophy of Wang Yangming(陽明學). Baek-Bul-Am had tried to eradicate traditional ways of family ills(gallant and get-up-and-go spirit, and blind belief) to have unity of knowledge and conduct(知行合一). Also he had tried to establish his hometown as a paradise(ethical pleasure) with his Norm based on confucian traditional values, and to meet his ancestral injunction calling for replacing the traditionalized martial arts by literary arts(變武爲文) together with enhancing the dignity of his family tradition with filial piety and brotherly love(孝悌之道). Further studies on this Norm will be performed in the near future in comparison with those of some other families in the Chosen Dynasty.
凡父 김정설의 ‘政治哲學’과 ‘國民運動’ -『政治哲學特講』을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1집 2010.04 pp.85-13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凡父金鼎卨의 政治哲學特講의 분석을 통해 범부의 현실인식 및 그 대응으로서 나타난 그의 정치철학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범부의 사상이 1960년대 이후 정책적으로 실시된 ‘재건국민운동’, 나아가서는 ‘새마을 운동’ 등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검토한 것이다. 범부의 '정치철학특강'은 ‘건국정치의 성격’이라는 제목으로 기존에 강의자료를 바탕으로 동래에 칩거하면서 저술하고, 사후 20년이 지나서 범부재조명의 일환으로 후학 이종후에 의해서 책으로 편찬된 책이다. 정치철학특강에 나타나는 시대의 모습은 당시 범부의 눈에 비춰졌던 시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범부는 1950-60년대 당시를 ‘막다른 현실’이라고 인식했으며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한 개의 자각 운동’ 즉 <국민운동>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1950년대 초반에 행해진 「국민윤리특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바로 이 「정치철학특강」이라고 할 수 있다. 범부는 <국민윤리>를 정신적인 측면의 건국이념으로, <국민운동>을 실천적인 측면의 건국이념으로 제시한 것이다. 범부는 외국의 국민운동의 전례를 제시해 시사점을 던져 주면서 우리 국민의 자각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운동>의 기본 정신을 우리 고유의 에토스인 ‘풍류도’에서 찾았다. 1960-1970년대에 이르러 ‘국민운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국민운동의 제창자였던 범부는 <재건국민운동 중앙위원회> 50인에 위촉되고 <오월동지회>의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이와 같은 사실들로 인해 이제까지 범부는 군사정부에 이론을 제공한 어용학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객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범부가 박정희 정권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단편적인 자료들에서 확인할 수 있으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재건국민운동 중앙위원회> 50인에 위촉된 사실도 타의에 의해서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범부의 총체적인 화랑도 이해와 정책적으로 이용된 화랑도는 그 출발에서부터 다른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범부는 화랑이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경계했고, 독재에 대해서 반대했다. 범부가 당시 박정희에게 기대했던 것은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하고 새로운 국가를 이룩하고자 하는 염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김지하가 언급한 ‘제3의길’ ‘네오휴머니 즘’ 등의 용어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범부의 ‘국민윤리’·‘국민운동’은 독재와 미국의 신식민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권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바탕으로 제기되었던 것이다.
The aim of this paper is to analyse 'the theory of political philosophy' that based on Bum-Boo(凡父) Kim, Jeong-Seol(金鼎卨)'s lecture on political philosophy(政治哲學論特講) and figure it's relationships out with 'National Movements' and 'Performance of saemaul movements'. It was written in the 1960s. The name was The character of nation's founding politic. It based on his lectures about political philosophy. However, he couldn't publish that book. After he died, It was published under the name of lecture on political philosophy by Jong Hoo, Lee(李鍾厚)who was Bum-Boo's student in 1980. In the book, Bum-Boo realized the critical crisis of Korean situation. For overcome that crisis he thought we have to awake our national ethics and need national movements. lecture on political philosophy's main idea is the series of his theory of national ethics. Bum-Boo put national ethics on the part of national ideal and put political philosophy on the part of practice. He thought They should be together, and they influence each other steadily. Basing on that kind of thinking, he showed foreign examples of National movements. He wanted to awake self-consciousness and start our national movements that should base on An Llegant Spirit(風流精神). In the 1960s, the worried about Korean situation was widen among Korean. <the National Movements for Reconstruction(再建國民運動)> was established by government in 1961, and then <Ohwoldongjihoe(五月同志會)> was established by Park Chung-Hee(朴正熙) in 1963. Bum-Boo was included both organizations. It caused that thinking people regard him as a government-patronized scholar. That thinking interrupt studying Bum-Boo up to now. This thesis shows Bum-Boo's national movements influenced on 'Performance of saemaul movements’ and what influence it had on political powers in the 1960's and the 1970's based on lecture on political philosophy. We kept track of these connections to know the circumstances at that time. Bum-Boo, though he was out of political powers, brought the concept of filial piety and national movements to take publish sentiment into the right direction and provide the new vision. The theory, however, used a idea for justifying Park, chung-hee administration's policy without his will after he died. reviewing the changing of Park's policy after 1970, we can notice how it was distorted.
Confucian View on Family and Society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1집 2010.04 pp.135-162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本論文에서는 儒家의 家族槪念이 形成되고 儒家的인 家族社會내에서 家族倫理의 構造를 살펴봄으로써 家族社會와 國家政治가 家族倫理意識을 共同準則으로 하고 있음을 서술하였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개인화가 특징인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儒家의 家族觀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 출현과 이에 따른 현대인의 인식 변화와 같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또한 儒家는 지금까지 존재해 온 대부분의 사상과 문화가 그러하듯이 남성중심의 가부장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가가 인륜의 근원으로서 孝悌를 말하고 그 방법으로 孝ㆍ悌ㆍ․慈를 주장하지만 자애로 자식을 지도․ㆍ양육하는 행위는 위엄으로서 지배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자식은 순응과 복종으로 지배당한다고 보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비판에 설득력 있게 반박하기 위해서는 가족과 사회에 대한 유가의 개념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儒家사상에서 인간은 곧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며, 인간관계의 원초적 형태가 家族共同體이다. 모든 사물에 존재의 秩序와 法則이 있듯이 인간관계에서도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 도리, 즉 人倫이 있으며, 人倫原則이 家族倫理意識의 원칙이 되어 對人하는 관계에 따라 다양한 德目과 德行으로 나타난다. 이 원리의 구체적인 형태를 孔子는 孝悌로 구체화시켰으며, 이후 五倫의 德目으로 이어졌다.『禮記』에서는 十倫의 德目과 德行으로까지 확장되지만 그 근본은 家族倫理意識의 기본인 孝意識에 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근본 역시 인륜을 밝히는 것이며, 그 원리는 바로 孝․ㆍ悌ㆍ慈의 가족 윤리의식이다. 儒家의 家族社會觀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家族意識을 근본으로 하며 인간관계의 영속성이 보장되고 親愛意識이 가장 절실하게 구현되는 장소로 서 家族의 가치를 인정한다. 즉, 나와 가정, 家族社會, 國家와 天下를 연장선상에서 파악하여 國家社會의 질서와 人倫을 밝히는 기초는 家族임에 틀림없다. 儒家는 이러한 家族社會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家族倫理를 중시하고 家族主義를 표방하게 되었다.
This thesis discusses that a family society and national politics have family ethic sense in common by studying how Confucian norm on family is formed and what the Confucian structure of family ethics are. Confucianism understands that human beings are social beings that are connected with others, and the basic form of human relationship is a family since a constituent family including parents and siblings is the universal and fundamental form of people, therefore, Confucianism make its thought up focusing on familism. There is a righteous way of humans with others, moral laws, and these moral laws originate from ren仁. Ren is explained concretely as filial piety and brotherly love by Confucius and is linked into moral rules to govern the Five Human Relations. Later it was extended into virtuous deeds of ten moral rules, however, the foundation is a sense of filial piety. The basis of the moral training․home management․ruling a nation․ruling the world peacefully is lightening the moral laws and the principle is the sense of family ethic, filial piety․ brotherly love․parental affection. Even though, there are a lot of debates over family, whatever they issue, they cannot delete the importance of family value. Confucian view on family society has a foundation on the family as they believe family gives the natural and universal sense of love. Still individual, family, family society, nation and the world are in the same line. Their rules also have a common basis. It cannot be denied that the common basis is family ethics. This is the reason Confucianism advocates familism.
이상사회를 제시하고 있는 다른 논의와는 달리, 예기 「예운」편은 추구해야 할 이상사회를 ‘소강’과 ‘대동’이라는 두 가지 형태, 즉 이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특별하다. 그렇다면 다른 이상사회론과 구별되는 「예운」편의 이러한 이중성은 도대체 왜 생겨난 것이고, 그것이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상사회를 대동과 소강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제시하고 있는 「예운」편의 이상사회는 도대체 어떤 모습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이 논문에서는 세 가지 측면, 곧 예기나 「예운」편의 저술 혹은 편집배경, 「예운」편의 논의 구조, 대동과 소강의 내용적 특징으로 구분하여 살펴봄으로써, 최종적으로 왜 「예운」편에서는 최선과 차선의 세계를 대동과 소강이라는 이중적인 형태로 제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각기 지향한 이상사회는 어떤 모습인지를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예운」편의 이중적 구도가 갖는 기본적인 의미는 이상이란 결코 그것 자체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현실과 뒤섞여 하나가 된 이상은 현실을 현실답게 하고, 이상과 뒤섞여 하나가 된 현실은 이상을 이상답게 한다는 것이 「예운」편의 정신이다. 소강은 이상과 현실이 만나는 긴장의 장이며, 이상과 현실이 조화롭게 들려주는 이중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실과 이상(대동)이 만나는 것은 소강을 통해서다. 소강은 이상(대동)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이다. 현실은 소강을 통해서 이상(대동)에 접근하여 그것을 최대한 실현하려 하고, 이상(대동)은 소강을 통해 자신을 구체적이면서 제한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Unlike other kinds of discussion dealing with Utopia, the section of Liyun in Liji is extraordinary in that it suggests Utopia in a dual way with two kinds of worlds, ‘United Society’ and ‘XiaoKang Society’. Then, how was such duality of Liyun differentiated from other Utopian theories created, and what is the meaning of it? Moreover, how does the Utopia look like, which is suggested in Liyun with two kinds of worlds, United Society and XiaoKang Society? Regarding these questions, this article has researched separately into three parts: the background of writing or editing Liji and the section of Liyun , the structure of discussion in Liyun , and the content features of ‘United Society’ and ‘XiaoKang Society’. And lastly, this study has investigated why the section of Liyun suggests the best and the second best worlds dually with the kinds of ‘United Society’ and ‘XiaoKang Society’ and how the Utopia pursued by Liyun looks like. Through this, it can be understood that the basic meaning of the dual structure of Liyun , in fact, emphasizes a point that the ideal can never be realized by itself. In other words, the spirit of Liyun is that the ideal mingled and unified with the real makes the true reality and the real mixed and unified with the ideal makes the true ideality. XiaoKang Society is a tense field where the ideal and the real encounter and is the duet harmoniously played by ideality and reality. In this sense, the real and the ideal, United Society, get to meet through XiaoKang Society. XiaoKang Society is a medium connecting the ideal, United Society, with the real. Reality approaches to ideality, United Society, through XiaoKang Society and makes it come true in reality while the ideal, United Society, exposes itself limitedly as well as concretely through XiaoKang Society.
이 글은 순자 「권학편」에 담겨있는 순자의 교육철학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의 학문을 비판적으로 종합한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학문의 전승과 보급에 크게 공헌한 교육자이자 교육사상가로 평가된다. 순자는 중국의 철학자 가운데 누구보다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철학 체계 속에서 성악(性惡)의 이론과 관련하여 교육을 가장 근본적인 개념으로 수용하고 있다. 「성악편」과 표리 관계를 이루며 순자철학의 기본적 성향과 궁극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권학편」에 교육에 대한 순자의 열정과 확신이 그대로 드러난다.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의 극심한 정치사회적 혼란의 원인을 귀납적으로 추구(追究)하여 ‘인성은 악하다’는 명제를 제시하고, 인간의 악한 성(性)을 바로잡아 정치사회적 혼란을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교육이라고 주장한다. 인성에 대한 부정과 학습능력에 대한 긍정에서 순자의 교육론은 시작된다. 순자는 교육을 통해 인간은 도덕적으로 완성될 수 있으며, 사회의 문화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다. 「권학편」은 이러한 순자의 교육관을 구체적이며 체계적으로 보여주는데, 교육의 의미와 필요성, 교육의 목적, 교육의 내용, 교육의 방법, 교육의 기능과 효과 등을 기술하고 있다. 특징적으로는, 순자는 학습의 가장 편리한 방법은 스승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여 스승의 학습 지도를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그리고 사(思:사변)보다 학(學:구체적이며 경험적인 학습)을 강조하여 ‘경험의 재구성을 통한 학습’을 강조하고, 지(知:앎, 지식) 보다 행(行:행동), 즉 실천을 더 중시하여 ‘행(行)’을 인식·학습의 최고 단계로 파악하고 행위를 통해 비로소 투철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여 ‘행동에 의한 학습’을 강조한다. 특히 추호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해 지속적이고 전일한 학습을 강조하여 교육의 가치지향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순자의 교육철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인간행위의 주관적 능동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으며, 교육의 의미와 원리를 탐구하는 하나의 출발점을 제공해 준다.
この文は荀子勸學篇に入っている荀子の敎育哲學に對して硏究したものである。荀子は戰國時代末期の學問を批判的に綜合した代表的な哲學者として、學問の傳承と普及におおきく貢獻した敎育者であり敎育思想家として評價される。荀子は中國の哲學者の中でだれよりも敎育の重要性を强調し、自身の哲學體系の中で性惡の理論と關聯して敎育をもっとも根本的な槪念で受容する。性惡篇と表裏關係を成すとともに荀子哲學の基本的性向と窮極的志向點を見せてくれる勸學篇に敎育に對した荀子の熱情と確信がそのままあらわれる。 荀子は戰國時代末期のはげしい政治社會的混亂の原因を歸納的に追究して‘人性は惡い’という命題を提示し、人間の惡い性をなおして政治社會的混亂を解決する最善の方法は敎育だと主張する。人性に對した否定と學習能力に對した肯定から荀子の敎育論は始まる。荀子は敎育を通して人間は道德的に完成させることができて、社會の文化的發展を成せると確信した。勸學篇はこのような荀子の敎育觀を具體的で體系的に見せてくれるのに敎育の意味と必要性、敎育の目的、敎育の內容、敎育の方法、敎育の機能と效果等を記述している。 特徵的には、荀子は學習のいちばん便利な方法はししょうにならうことだといってししょうの學習指導をなによりも重視する。それから思[思辨]より學[學習]を强調して‘經驗の再構成を通した學習’を强調し、知[知識]より行[行動]、卽實踐をもっと重視して‘行’を認識·學習の最高段階として把握し行爲を通してはじめて透徹した知識をえることができるし眞情の理解に到達することができるといって‘行動による學習’を强調する。特に秋毫も不足がない完全に到達するために持續的で專一の學習を强調して敎育の價値指向性をよくみせてくれる。このような荀子の敎育哲學は根本的に人間の無限の可能性と人間行爲の主觀的能動性に對した信賴を土臺にしている點からその價値を評價することができて、敎育の意味と原理を探究する一つの出發點を提供してくれる。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1집 2010.04 pp.22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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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廟佾舞는 추모의 대상에 대한 敬意를 표현하기 위해 音樂[樂]・樂章[歌]・佾舞[舞]가 三位一體가 된 儀式舞이다. 또한, 일무의 춤동작은 매우 논리적이며, 철학적・미학적으로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일무의 악장가사와 춤동작[述語]에 나타난 미학적 특징에 대해 春官通考(1788)의 초헌례 악장과 춤동작[文舞]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일무의 춤동작에 나타난 陰陽및 三才思想과 공자의 學德인 ‘溫良恭儉讓’의 정신이 어떻게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었는지에 대해 검토하였다. 일무는 형식적으로는 다수의 舞員이 ‘行列形式’으로 춤을 추는 樂舞이며, 내용적으로는 神明에 대한 인간의 畏敬과 謙虛함을 표현하는 동시에 先聖[先師]의 學德에 대해 송축하는 일종의 종합예술이다. 일무는 ‘樂舞一致[樂舞合一]’의 원칙에 따라 실시되며, 추모와 경배라고 하는 儀禮的・宗敎的성격이 융합되어 있다. 이처럼 일무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유교사상・문화의 예술적 총화인 동시에 孔子의 學德과 禮樂思想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禮의 기본모형[典範]이다. 또한, 일무를 통해 堂上과 堂下가 상징하는 陰陽의 합일 및 天地人의 합일, 樂舞의 합일, 禮樂의 합일, 時空의 합일 등이 구현된다. 舞譜에 나타난 일무의 춤동작은 初・中・終3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述語는 총 96字[96동작]로 되어 있다. 96개 춤동작은 ‘一字一音一舞’의 원칙에 따라 노래가 사[字]가 음률[音]이 되고, 그 음률이 춤동작[舞]이 되는 樂・歌・舞의 合一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악장가사를 통해 살펴보면, 1)초헌례 악장가사는 天地人三才중 ‘天’을 상징하며, 形而上的・抽象的・神的존재로서의 聖人을 추모[경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아헌례의 악장가사는 天地人三才중 ‘地’를 상징하며, 形而上과 形而下의 상호교류와 구체적인 행위를 상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3)종헌례의 악장가사는 天地 人三才중 ‘人’을 상징하며, 形而下的・具體的인 실천자로서 공자의 인간교육과 문화 계승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이상의 내용을 기초하여 볼 때, 論語에 나타난 공자의 학덕인 ‘溫良恭儉讓’의 정신은 일무의 춤동작에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을 초헌례의 악장가사와 춤동작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溫: 공손한 모습으로 우아하게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긍정적인 온화한 마음 표현 2) 良: 뒤로 물러나 존경의 표하며 내면의 부드럽고 선량하고 진실한 마음 표현 3) 恭: 몸을 낮추어 공경을 표하며 神明에 대한 감탄과 찬양・송축의 마음 표현 4) 儉: 감정을 절제하고 조용히 禮를 갖추어 신중하게 기다리는 마음 표현 5) 讓: 舞員의 겸양을 통해 천지만물이 모두 神明께 겸양하는 마음 표현
文廟佾舞是一種音樂[樂] 樂章[歌] 佾舞[舞]三位一體的儀式舞, 為追悼對象表達敬意. 而且佾舞的舞蹈動作富於邏輯, 並包含哲學美學深層的內容. 本論文以春官通考(1788)之初獻禮樂章與舞蹈動作[文舞]為中心, 探討了呈現於佾舞樂章歌詞與舞蹈動作[述語]中的美學特徵. 尤其討論了呈現於佾舞動作的陰陽、三才思想與孔子的學德-‘溫良恭儉讓’的精神-如何予以藝術性的形象化. 佾舞的形式為: 多數的舞員以‘行列形式’舞蹈的樂舞; 內容為: 表示人類對神明的畏敬與謙虛, 以及頌揚先聖[先師]的學德的一種綜合藝術. 佾舞根據‘樂舞一致[樂舞合一]’的原則進行, 並融合了追悼與敬拜的儀禮宗敎的性格. 如此, 佾舞不僅是一種舞蹈, 而且為儒家思想文化的藝術精華, 進而為象徵性的體現孔子學德與禮樂思想的禮的典範. 並且通過佾舞體現出代表堂上與堂下的陰陽合一、天地人合一、樂舞合一、禮樂合一、時空合一等. 舞譜中的佾舞動作有初中終三個樂章, 述語有96字[96個動作]. 96個動作根據‘一字一音一舞’的原則, 體現樂歌舞合一的特徵, 即歌詞[字]成為音律[音], 音律成為舞蹈動作[舞]. 通過樂章歌詞我們可發現: 1)初獻禮的樂章歌詞象徵著天地人三才中的‘天’, 包含著追悼[敬拜]聖人-即形而上抽象神的存在 -的內容. 2)亞獻禮的樂章歌詞象徵著天地人三才中的‘地’, 包含著形而上與形而下的相互交流與具體行為的內容. 3)終獻禮的樂章歌詞象徵著天地人三才中的‘人’, 包含著頌揚形而下具體的實踐者孔子, 其對教育與文化繼承的內容. 根據上述內容, 呈現於論語的孔子的學德-即‘溫良恭儉讓’的精神, 乃象徵性的表現在佾舞動作上. 若把這一點放在初獻禮樂章歌詞與舞蹈動作上思考, 可整理出如下內容. 1) 溫: 以恭敬的姿態, 優雅地前進, 以表示積極、溫和之心. 2) 良: 往後退, 以表示尊敬, 以及內面的溫柔、善良、真實之心. 3) 恭: 屈身顯示恭敬, 以表示對神明的敬歎、讚美之心. 4) 儉: 表示節制感情, 平靜地、謹慎地等待. 5) 讓: 通過舞員的謙讓, 表示天地萬物皆向神明具謙讓之心.
등에(蝱, gadfly)관으로 본 동서철학사의 이해와 주희 격물의 의미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1집 2010.04 pp.253-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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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고대철학에는 철학하기의 태도를 상징하는 아주 작은 곤충이 함께 나온다. 그것은 곧 말이나 소에 붙어서 사는 등에(蝱, gadfly)이다. 동양철학사에서 등에는 장자(莊子)가 명가(名家) 혜시(惠施, 370-318 B.C.)의 철학하기를 모기와 함께 하잘 것 없다고 비아냥거리는데서 처음 등장한다. 서양철학에서는 고대 희랍철학의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를 받았던 재판에서 변론하는 가운데서 살찐 게으른 말 같은 아테네 시민을 일깨우기 위해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를 등에에 비유하는 가운데 처음 등장한다. 즉 등에는 서양에서는 철학자의 철학하기의 기본을 설명하는 긍정적인 비유였으나 동양에서는 반대로 쓸데없는 짓을 하는 하찮은 비판적 상징물로 쓰였다. 이런 철학하기의 태도는 그 뒤 동서철학사가 달라진 이유의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인류 현대문화는 과학적 사고에 기초한 합리적 문명의 성과이고 동서를 막론하고 모두 그 철학은 이 문화 창조의 길로 나아왔으며 그 직접적 계기는 근대철학의 등장이다. 그런데 근대철학의 정신은 등에의 자임에 더 가까웠다. 등에 역할을 자임하는 소크라테스의 방법이 다른 희랍철학자들과 더불어 서양의 근대 과학문명과 근대 사회를 이룩하는 초석이 되었다면, 사물을 관찰하여 과학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혜시를 등에 같은 하찮은 것으로 여겨 달관하려는 장자의 방법은 적어도 서양의 베이컨이 명료화한 근대 사상의 방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근대정신은 베이컨과 비교할 때 4세기 반 이전에 신유학의 주희가 발휘하였으니 그의 격물론이 그것이다. 주희는 동아시아철학사에서 처음으로 대학의 격물의 의미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것을 인류 지성사상 제일 먼저 인류 공통의 근대철학의 방법으로 다듬어 그 철학의 전면에 세웠다.
What is the symbolic clue that philosophies of the East and West became different? It can be explained by one insect - gadfly being found in ancient philosophies of the East and West together. Zhuangzi denounced Huishi who had many ingenious notions and five carriages of writings as a gadfly like this: "If we look at Hui Shih's ability from the standpoint of Heaven and Earth, it is only like the restless activity of a mosquito or gadfly." On the other hand, Socrates who had a great effect on western modern philosophy fancied himself a gadfly like this: "I am that gadfly which God has attached to the state, and all day long and in all places am always fastening upon you, arousing and persuading and reproaching you." After the arising of modern philosophy, human beings are going the way established by rational scientific thinking both in the East and West. However the way of Zhuangzi who denounced Huishi as gadfly have no connection with this way. The reason why Zhuxi arranged The Great Learning(大學) at the beginning of Four Books(四書) when he select them as confucian classics is that it starts from Ge-wu(格物) which means investigation of human affairs and natural things. He said Ge-wu is better than investigation of Li(窮理) as a method because Ge-wu let us reach things and affairs using our sensations directly. I believe this has the same meaning as F. Bacon's inductive methods appeared in the western modern philosophy.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1집 2010.04 pp.28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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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고전(경전)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문제 제기는 학술적 연구 대상으로서의 고전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일상적 반려가 되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려면 고전을 어떻게 재해석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나 불교 등 기성 종교의 경전처럼 동양 고전을 삶 속에서 활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는 잘 번역하고, 재해석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 한글로 된 교재(자료)를 편찬하는 일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물론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동양 고전이라 하면 넓게 보면 한문으로 되어 있는 동북아시아 유교문화권의 모든 전적이 다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범위를 좁히면, 동북아시아의 유․불․도 삼교의 전적이 중심이 되고, 중요한 역사서나 문학 작품이 일부 포함될 것이다. 이들 고전은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말하면, 중국의 전통문화에 들어 있는 前近代的인 것, 또 中華主義이념이 강한 내용 등은 새로 가치 평가하여 인류문명에 보편적인 것을 발췌해 내어야 고전의 가치가 살아날 것이다. 이 작업 역시 재해석 작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발췌, 재편집한 자료를 한글로 번역하여 현대 한국인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일이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 철학계에서도 ‘철학상담치료’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이것을 동양에 응용한 ‘經典치료’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의 발달로 의학적 측면에서 정신과 치료가 있지만, 이것과 다른 영역에서 과학적 방법을 응용한 것으로 심리학에서 또는 교육학에서 ‘상담심리’라는 학문이 일찍이 개척되어 ‘상담심리사’ 자격증이 주어지고 있고, 또 교육학에서는 교육심리학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동양의 소위 ‘수양’도 이것과 같은 것은 아니더라도 혼자서 자기치료하는 의미에서 일종의 철학치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방법이란 ‘經典’을 읽고 수양하는 일이다. 유교문화권에서 이러한 자기수양, 자기치료의 전통이 있는 만큼 그 수단으로 쓰인 동양 고전에 대한 새로운 조명은 이 시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동북아시아 문화전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유․불․도 고전(경전)에서 훌륭한 현대인의 삶의 지침서를 만들어 일상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요청된다. 여기에서 기존 번역서를 검토하면서 한글 고전교재의 편찬의 방향을 한번 제시해 보려고 한다.
東洋の古典(経典)の現代的な再解釈という問題の提起は、学術的な研究の対象としての古典ではなく、一般の大衆に日常的な伴侶となり助けようとすると古・経典のように東洋の古典を生きている活用するように作ることが目標である。このため、翻訳し、再解釈することも重要であるが、もっとも大事なのは編纂することである。ここには無論、創意的な努力が必要である。 東洋の古典と言えば、広く漢文で書かれている東北アジアの儒教文化権の全ての典籍に含まれている。しかし、少し範囲を狭くすると、東北アジア需․仏․道の三教の典籍は全部漢文で書かれていることが特徴である。また、わが国を中心とすると、中国の伝統文化に含まれている前近代的なもの、また、中華主義の理念の強い内容などは、新たに価値を評価し人類文明に普遍的なものを抜粋し出すことで、古典の価値が生きるはずだ。この作業もやはり、再解釈作業の一環と言える。このように抜粋․再編集した資料をハングルで翻訳して現代の韓国人が自然に読むことができる資料を作ることが、私達にとっては非常に重要である。 最近、哲学系でも哲学相談治療という言葉を使いはじめ、これを東洋に応用した経典治療という言葉をしたりする。精神分析学の発達による医学的な側面で精神科の治療があるが、これと別の領域で科学的な方法を応用したもので、心理学で、あるいは、教育学では教育心理学を必須科目で教えている。東洋の言わば、修養もこれと同様ではないものの、自ら自己治療をする意味で一種の哲学治療とでも言える。無論、その方法とは経典を読み、修養することである。 儒教文化圈でこのような自己修養、自己治療の伝統があるほど、その手段として書かれた東洋の古典に対して新たに焦点を当てることで、この時点でとても望ましい。東北アジアの文化伝統でもっとも大きな比重を占めている需․仏․道の古典(経典)で現代人の生きた手引きを作り、常に活用しようとすることが究極の目的として求められている。そこで既存の翻訳書を検討しながらハングルの古典教材の編纂の方向を提示してみたい。
SOME MAIN CHARACTERISTICS OF VIETNAMESE CONFUCIANISM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1집 2010.04 pp.315-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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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acteristics of Vietnamese Confucianism are investigated from several aspects. Firstl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role of Confucianism for the independence and sovereignty of the feudal society of Vietnam, the author comes to the following conclusions: Confucianism as an exotic ideology was received and transformed but still retained all its essential principles. Confucianism as the ruling theory had contributed to the promotion of Vietnamese feudal society toward the centralization and unification. It was also a useful theoretical tool for thinkers in validating the patriotism and national independent movements. It also had a strong influence on Vietnamese cultural life. Secondly, from the dimension of the direction and motivation of the development of Vietnamese Confucianism, the author argues that, although feudal royal courts as well as intellectuals were aware of consolidating and developing Confucianism, their activities could only resulted in the stability of institutions. Theoretically, all these conditions were not enough to bring about any turning-point or advance. There was no great school, no discussion, and no self-reflection. Vietnamese orthodox Confucianism could not escape from the stronghold of conservatism. Thirdly, from perspective of thinking style, the author claims that almost all Vietnamese Confucians were only attracted to practical and utilitarian elements, avoiding the metaphysical; liked simplicity and conciseness whose impacts were the simplicity in thinking and working and the evasion of meditative and creative issues; revered deities; had the eclectic and combinative method of thinking which easily accepted the mixture of three teachings –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etc. Thence the author attempts to find some reasons behind these characteristics of Vietnamese Confucianism. According to him, during the history, Vietnamese Confucianism experienced many unfavorable stages: in the Chinese domination period, it was an ideology strange to Vietnamese; in the early independent period, it yielded to Buddhism; up to the period of centralizing and autocratic feudal system, it was under the influence of Confucianism of Han and Song Dynasties which were dogmatic and inflexible, and moreover must develop in the only direction of serving the feudal governance, and thus had no room for the creation. Above all, the backwardness in economy and society itself hampered the progress of Confucianism. In sum, due to the particular historical situation, the spread, study and creation of Confucianism in Vietnam only reached to the ordinary level. In the thousand-year history of Confucianism as the orthodox ideology in Vietnam, there emerged only some great thinkers.
유학연구소 휘보, 충남대학교부설 유학연구소 운영세칙, 先賢硏究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원칙, 유학연구소 편집위원회 운영 규정, 연구윤리 및 진실성확보를 위한 규정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1집 2010.04 pp.366-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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