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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像의 두(修己的-治人的) 系譜 탄생에 대한 고찰 - 退溪像의 원형과 분화에 대한 試論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7집 2012.12 pp.1-38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현존하는 퇴계의 네 점의 초상화(조선시대 1점, 일제강점기 1점, 해방 이후-현대 1점)를 통해서 修己-治人이라는 두 가지 ‘退溪’像, 다시 말해서 <治人的- 外王的퇴계상=대외용>과 <修己的-內聖的퇴계상=대내용>이 존재하게 된 사상적 이유를 계보적으로 밝혀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퇴계는 '퇴계선생언행록'에서 보듯이 이미 생존 당시부터 이른바 ‘성자적’ 흔적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초연한, 비범한 일상적 모습에서 우리는 유교에서 지향한 긍극적 경지의 ‘爲聖(성인 되기)’ 즉 超凡入聖의 단면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 근저에는 居敬과 窮理의 균형을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그의 투호와 혼천의를 동시에 강조한 데서 찾을 수 있었다. 한편 그는 居敬과 窮理의 균형을 넘어서서 居敬을 더욱 심화시켜간다. '언행록' 에서 보듯이 퇴계의 일상적 행위와 처신은 비범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선천적인 성품이 반성적‧성찰적인 기질에 기인한 점도 있겠으나, 그가 일생 독실하고 깊이 있게 추구했던 유학의 도덕적 원리들을 그 나름으로 매뉴얼화하고 이를 실천적으로 내면화‧신체화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퇴계의 인간적, 인격적 이미지는 조선시대, 그리고 그 이후 한국의 근현대기라는 굴곡의 역사를 거치면서 초상화에 반영이 된다. 다시 말해서 현재 전하는 퇴계의 초상 네 점 즉 조선시대 1점, 일제강점기 1점, 해방 이후-현대 2점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조선시대의 퇴계 초상은 현재 천원권 지폐에서 보여지는 병약함, 유순함, 노인-원로의 이미지와도 다르며, 아울러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기에 나온 청년 혹은 무인적인 강인함의 이미지의 초상화와도 다르다. 다시 말해서 엄정함과 위풍당당함, 건장함, 강인함, 그리고 내면적 깊이와 인격적 무게 등등 유교가 지향하는 修己治人의 양면성을 균형있게 보여주는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언행록'에 제시된, 治人的면모(→‘理學지향적 면모’)와 修己的면모(→‘心學지향적 면모’)가 매우 잘 결합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퇴계의 원형적 두 이미지는 근대 이후에 두 가지로 분화된다. 우선, 퇴계를 국가의 질서 건립, 국가의 再建‧復興, 자국에 대항하는 타자(외세와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외면적 ‘理學’的측면을 부각하려 할 때는 강한, 엄정한, 청년적 이미지가 요구되었다. 이것은 외향적-치인적 이미지(대외용에 무게) 로서,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 이승만 정권기(건국후의 남북한 대립기)의 퇴계 초상에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다음, 퇴계를 국가 내의 지역적, 계층적, 정치적 분열을 지양하는 의미에서 화합과 超黨的 대동단결에 활용하고자 내면적 ‘心學’的측면을 강조할 때에는 온화함, 유순함, 노인-원로의 이미지를 앞세우기 마련이다. 이것은 내향적-수기적 이미지(대내용에 무게)다. 이것은 남한 체제의 공고화 및 남한의 국론 분열과 당파적 대립을 배경으로 한 박정희 정권기의 퇴계 초상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퇴계는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하게 읽히고 이해되어 왔다. 따라서 고정된 퇴계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퇴계는 존재해왔고, 또 존재할 것으로 이해된다. 텍스트 속에 고정된 퇴계는 없으며,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미지에 의해 퇴계 새롭게 재현되는 것이다.
Until now, the Toegye Yi Hwang(1501-1570)' Chosanghwa, a portrait, is not found. So today, we usually imagine Toegye' shape really so through the 1,000 won bill's, created by a modern painter Hyeon Cho Lee Yutae(玄艸李惟台). However, a few years ago I discovered that was a new portrait of Toegye, is made by someone during Japanese Ruling Era of Korea. Then I wrote a paper. titled A Study on Tyoegye's Portrait of Korea in Toegyehaknonjip. However, I recently have knew, in addition to this, a new two portrait of Toegye of Joseon Dynasty and modern era are existed in our country. So I decide to improve them on the basis of these data. In addition, I think, through these portraits of Toegye reconsider a Toegyesang, Toegye image, as a Sonbi(士, a true confucian gentleman) in korean confucian context. This paper is written in awareness of these issues. Catching how to transform the image of Toegye, through portraits of Toegye, is very meaningful work, apart from studying the text of Toegye who is left. We know, In the period of our modern and contemporary, in political and social context, had needed to be established a new Toegye image for the public enlightenment, education, and governance. As shown in this paper, Toegye portrait of that era had asked each of imagination and ideology is reflected in it. So there is no one fixed Toegye image, but Toegye image have produced depending on the situation of our country. Toegye image, in common, through the Joseon Dynasty, modern, contemporary, was a senior Confucian scholars(國老) who represents Korea society. However, the image portrayed in the Joseon dynasty and modern times are hardy dignified appearance. On the other hand, we feel the image as a weakness scholars. Such this, Toegye creation of the image is currently underway, is not done. Toegye images as Sonbi, so called a true gentleman in Korea, still open in the door to whatever is new.
『三賢手簡』을 통해서 본 구봉‧우계‧율곡의 道義之交와 學問交遊 - 구봉을 중심으로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7집 2012.12 pp.3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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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조선조 龜峰宋翼弼은 牛溪成渾과 栗谷李珥와 함께 道義之交를 맺고 학 문을 講磨하며 실천궁행하였던 유학자이다. 세 사람의 편지글 모음인 『 三賢手簡』에는 三賢이 責善으로 붕우지도에 힘쓰며 도학적 실천의 삶을 살아온 모습들이 드러나있다. 편지를 통해서 삼현은 유학자의 길을 절차탁마해가는 학문적 인간적 성숙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 속에서 세 사람은 변치 않는 존경과 따뜻한 인간미를 나누면서도, 준엄한 비판과 충고를 통하여 서로를 勸勉하고 講磨하면서 敎學相長의 도리로써 벗하고 있다. 이들의 우정은 宋代의 朱子, 張南軒, 呂東萊의 講磨之交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후일 구봉이 父親의 累로 인해 신분적 굴레를 쓰게 되지만, 세 사람의 의리실천은 평생 변치 않아서 孟子가 말한 ‘不挾長‧不挾貴’의 儒家본연의 道義之交로서 후세의 귀감이 된다. 삼현의 편지 내용을 분석하여 절차탁마한 학문적 同異를 고찰하여본 바, 구봉과 우계가 주고받은 글들은 성리와 예학 그리고 수기에 관한 내용이 많고, 구봉과 율곡이 주고받은 글들은 三代之治를 위해 국가기강의 방책을 대비하고 世道와 정의를 바로잡으라고 권면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는 依樣과 규범적인 우계와, 自得과 變通이 많은 율곡과, 직선적이면서 준엄했던 구봉의 기질과 품성에 따라 삼현이 각각 輔仁의 도학적 교유를 통해 교학상장 하였다는 것이라고 論究되어 진다. 이들의 학문적 동질성을 살펴보면, 구봉과 율곡은 太極陰陽理氣論과 ‘七包四’ 구조의 心性論에서 대부분 견해를 같이 한다. 다만 구봉은 ‘理氣之發’을, 우계는 ‘理氣一發’을 말하였는데, ‘性發爲情’의 의미로서 구봉과 우계의 학설이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養心’ 또는 ‘治心’을 수기론으로 강조하는데서 삼현이 이해를 같이한다. 학문적 차이성은 심성론에서 구봉이 ‘統會의 心’을 중요시하여 인간의 의지를 더 강조하는 意에 대한 이해에서 율곡과 달리하여 人心道心論또한 견해가 다르다, 또 율곡 庶母位次문제의 行禮와 관련하여 우계와 구봉과는 다른 율곡의 견해 차이를 찾을 수 있다. 道義之交의 의리를 실천하고 학문을 강마한 구봉의 정신적 근저에는 直사상이 자리하는데, 우계와 율곡과의 벗함을 ‘神交’라고 하였다. 이와같이 「삼현수간」을 통해 드러난 ‘不挾長‧不挾貴’, ‘神交’의 삼현의 道義之交와 學問交遊는 三門을 자유로이 배운 후학들에 의해 기호예학을 창출하는 밑거름이 되어서 조선유학사상 큰 의의를 갖는다.
龟峰(宋翼弼)是十六世纪朝鲜时期与牛溪(成浑)、栗谷(李珥)结为道义之交,共同讲磨学问、实践躬行的儒学者。《三贤手简》将来往于三人之间的书信汇集成册,展现了三贤力求以责善作为朋友之道,追求道学实践生活的方方面面。三贤通过书信展示了切磋琢磨儒学之道,在学问及人性方面走向成熟的过程。三人在此过程中一方面互相尊敬、温馨相待,另一方面严肃批判、彼此忠告,他们相互劝勉、共同讲磨,结为教学相长之友,三人之间的友情还曾被喻为宋代朱子、张南轩与吕东莱间的讲磨之交。后来龟峰因父亲连累,虽然在身份上受到了一定的限制,但三人之间的义理实践却终身未变,这正是孟子所说的“不挟长、不挟贵”的儒家基本道义之交,是后世学习与借鉴的典范。通过分析三贤的书信内容,考察三人切磋琢磨学问的异同点,我们可以发现来往于龟峰与牛溪之间的书信多数与性理、礼学及修己有关;然而来往于龟峰与栗谷之间的书信,则主要涉及劝勉制定国家纪纲防策及纠正世道与正义,以实现三代之治的相关内容。这可认为是注重依样与规范的牛溪、多于自得与变通的栗谷、性格直率与严肃的龟峰,他们三人根据各自的气质与品性在辅仁性的道学交游基础之上所进行的教学相长。若分析三人学问的相同点,我们可以发现龟峰与栗谷对太极阴阳理气论及“七包四” 结构心性论的看法是一致的,但龟峰称“理气之发,牛溪称“理气一发”,这从 “性发为情”的意义上来看,可以说龟峰与牛溪学说的意思是相同的。不仅如此,三贤还都将“养心”与“治心”强调为“修己论”。若分析三人学问的不同点,我们则可发现龟峰在心性论上重视“统会之心”,强调理解人的意志,这与栗谷有所不同,而且对人心道心论的见解也不尽相同。另外,栗谷和牛溪、龟峰对庶母位次问题行礼的看法也具有不同之处。龟峰的精神是实践道义之交的义理与讲磨学问,其根基是“直思想”,他将与牛溪、栗谷之间的友情称为 “神交”。由此可见,《三贤手简》中所体现的“不挟长、不挟贵”与“神交”的三贤道义之交与学问交游是后生自由学习三大家学问创立畿湖儒学的基础,这在朝鲜儒学史上具有重大的意义。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7집 2012.12 pp.91-132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본고는 16세기 호남의 성리학자인 高峯奇大升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현재 남 아 있는 유물과 유적을 차례로 조사하였다. 이는 앞으로 운영될 유물전시관에 대한 기초자료조사 차원에서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도한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박물관 등 공신력이 있는 기관에서 체계적인 자료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봉의 유물로는 『高峯集』, 「陶山記」, 『兩先生問答帖』, 『兩先生往復書』, 『海東歷代名家筆譜』과 『槿墨』에 수록된 친필 등이 있다. 고봉의 유적으로는 출생지 龍洞, 신혼살림터 斗洞, 은행나무와 白雲亭, 歸全庵, 樂庵, 高峯墓所, 月峯書院등이 있다. 월봉서원의 현대적 계승을 위해서는 문화콘텐츠 활용방안이 중요하다. 서원이 한낱 과거시대의 잔재가 아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가 있음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콘텐츠를 통한 적극 활용이야말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한 활용이 아니라 끊임없은 아이디어의 확대 재생산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존의 경우처럼 일회성에 지나고 마는 한계를 답습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민의 인식 제고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 지원, 그리고 학계의 연구성과 등이 골고루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高峯奇大升의 생애 그리고 학문과 사상에 대해 새로운 조명이 가능하리라 본다. 따라서 월봉서원의 유교적 문화공간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 또한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유교적 가치를 함양하여 현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윤리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으로 까지 파급될 수 있을 것이다.
Paper relics and ruins remain current in order to raise awareness about the Neo - of the 16th century Hunan, Gobong Kidaeseung then investigated. Purpose in the attempt to provide the basic materials research in terms of the future will operate on the relic exhibition. Such systematic data on public confidence in institutions, such as museums, but also the investigation is deemed necessary. Ko's relics to the and 『高峯集』, 『陶山記』, 『兩先生問答帖』, 『兩先生往復書』,contained 『海東歷代名家筆譜』 and 『槿墨』 on handwritten. Koh ruins of the birthplace Yongdong-龍洞, honeymoon place Dudong-斗洞, ginkgo and Baegunjeong-白雲亭, Gwijeonam-歸全庵, Nakam-樂庵, Gobong graveyard-高峯墓所, Wolbong Seowon-月峯書院. Modern factorial wolbong vow plan to take advantage of the cultural content is important. Newly recognized vow is but still valid today, not the remnants of a bygone era that is worth to be necessary. The cultural content through leveraging think that could be an alternative. However, the mere use of the idea of continuous never-if that does not work should not be expanded reproduction. I think that Obama passed in the one-off, as in the case of reassurance to the limitations of the existing concerns. Residents' awareness and active support of local governments, academia, and research and must be made evenly. Thus Gobong Kidaeseung life andideas about science and new lighting will look. Wolbong vow of Confucian cultural space for the interest of the residents can be high. Chapter to cultivate the Confucian values that can solve the ethical problems that our modern society has had will be a ripple.
본고는 조식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방법론으로서 그의 學記類篇에 있는 學記圖 의 도상학적 특징과 그 내용을 분석하고자 한다. 논의의 출발점은 取象歸類의 방식에 입각한 易圖學과 그 해석의 문제에 있으며 그 대상은 그 속에 담겨있는 성리학의 사유방식이다. 이는 그의 역학관을 이해하는 관건일 뿐만 아니라 그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초가 된다. 기존의 성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조식도 윤리도덕관의 가치론적 본령, 즉 자아성찰 및 그에 따른 실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그는 역도학의 도식들을 재구성하고나 재편집하는 도식화의 과정을 거쳐서 도상학적 세계관을 제시한다. 그는 이를 통해 수양론 혹은 공부론의 본령을 포괄적으로 제시하여 궁극적으로 ‘천인합일’의 보편적 이념을 계도하고자 했다. 그는 특히 誠과 敬의 개념을 중시한다. 人道의 덕목인 敬은 바로 天道의 원리인 誠과 통함으로써 안과 밖이 中和가 되는 도덕수양의 道가 된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도상학적 논법과 그에 따른 해석의 기제를 활용했다. 더 나아가 그 속에서 그는 인간 삶의 실천강령을 기반으로 하는 ‘道學’의 正法즉 修養經의 진정한 취지를 설파하고 있으며, 인간의 구체적 삶, 그 지향성 및 실천방법의 전형을 간명하고도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The essay is focused upon analyzing the iconological content of Hakgi-yupyeon selected by Jo Sik, which can be regarded as a methodology of understanding his Confucian world-view. It starts from a science of diagram and its understanding, and the point of argument is a thinking way of Confucianism in it. As a clue to understanding a science of diagram, I try to analyze some diagrams in . This holds the key not only to Jo Sik's view of Changeology but also to his world-view of Confucianism. As Confucianists argued, he attaches importance to the axiological essence of ethical view, that is, self-introspection and its practice. He emphasizes Confucian concepts of Sincerity and Respect. Given the unity of the heavenly and the humane, he seeks an ideal stage that Respect, as a virtue of Humane Way, is in accordance with Sincerity, as a virtue of Heavenly Way. Here, it seems to me that he uses a device of allegorical understanding projected in images of diagrams. Consequently, he effectively argues the canon of self-cultivation as justifiable law for a learning of Way, and simply and easily reveals an archetype of life practice.
주체와 도덕의 관점에서 본 강화학파의 진가(眞假) 담론 - 주체와 도덕의 관점에서 본 조선후기 진가(眞假) 담론Ⅱ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7집 2012.12 pp.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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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강화학파에서 전개된 진가론(眞假論)을 심성론적 토대 위에서 검토한 것이다. 그러면서 조선후기 사회에서 전개된 도덕이념의 변화와 주체의 자각이 강화학파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결론에서, 역시 진가담론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낙론(洛論)과 북학파의 경우와 비교해서 진(眞)‧가(假)의 개념과 주체의 특징의 차이를 분석해 보았다. 진가론은 양명좌파와 공안파, 특히 이탁오의 「동심설(童心說)」을 통해 조선사회에 수용되었는데, 시대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맞물려 주체의식과 도덕에 대한 반성적 담론의 틀을 제공하였다. 강화학파는 정제두가 양명학과 주자학을 절충하여 실심(實心)과 실리(實理)를 강조함으로써 도덕의 주체성과 실천성을 강화한 이후로 실심의 학문을 전승하였다. 그리고 진가담론을 통해 도덕 주체의 진정성에 대해 반성하고 도덕원리의 보편성을 추구하였다. 정제두는 진리(眞理)를 보편도덕의 근거로 요청하였고, 이충익은 「가설(假說)」을 통해 주자주의자들의 위선과 사욕을 비판하였다. 진가론을 통해 나타나는 강화학파의 주체관은, 도덕을 본질로 하면서 세계일원적이며 공적(公的) 참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북학파가 양명좌파와 도가철학에 사상 연원을 두고, 탈도덕적이고 상호적이며 사적(私的) 주체의식으로 전향해 나간 것과 상반된다. 강화학파는 도덕성을 주체의 본질로 추구하는 보수적 질서 강화의 경향을 보여준다.
In this research I reviewed Jingaron(The Discourse about Truthfulness) developed by the school of Gangwha(강화학파) based on the theory of the nature of the human mind. And then I tried to find out how the change of moral ideology and the awareness of the subject which developed in the society of late-Joseon Dynasty appeared in the school of Gangwha. In addition to the conclusion, I analyzed the difference of ‘the concept of truth and falsity’ and ‘the characteristic of the subject’ comparing the school of Bukhak(북학파) with Rakhak(낙학파), who also discoursed about truthfulness. Jingaron(The Discourse about Truthfulness) was accepted through the leftist Scholars of Yangming philosophy and Gonganpa(공안파), especially The Childlike Mind(동심설) of Li Zhi(이지), and then it offered the structure of reflective discourse about a sense of identity and morality, combined with the criticism of the times and the society. In the school of Gangwha, Jeong Je-du(정제두), compromising between the theories of Wang Yang-ming and the Zhu Xi,emphasized the Real Mind(실심) and Real Principle(실리) and fortified moral identity and practice. Therefore, the school of Gangwha succeeded on the studies of the sincere mind. And through the discourse of truthfulness they reflected the sincerity of the moral subject and then pursued universality of moral principles. The standpoint of the school of Gangwha shown through Jingaron had morality in essence, world-monism and public consciousness of participation. This conflicts with the school of Bukhak, based on the leftist Scholars of Yangming philosophy and Taoism philosophy, which converted to morality-free, commutative and private identity. The school of Gangwha shows its tendency of reinforcement of the conservative order pursuing morality as the essence of the subject.
맹자 왕도정치론의 虛와 實 - 王道政治論의 긍정적 가치 그리고 유감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7집 2012.12 pp.219-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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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정치철학의 핵심 이론은 王道政治論이다. 왕도정치는 숙세제민(叔世濟民)의 외왕(外王) 사업으로서, 맹자가 지향하는 정치의 이상적인 형태이다. 중국정치발전 사에서 민본으로 대표되는 맹자 왕도정치론과 비교될만한 분량을 차지하는 정치이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대 이후 유가철학이 관방정치의 중심 이데올로기로 정립된 이후 신권(臣權)계급과 지식인 계급은 맹자의 왕도정치론으로써 왕권을 부단히 견제해왔고, 왕권계급에서도 맹자의 왕도정치론에 극도의 불안감을 드러내 실질적인 권력으로써 압제하기도 하였다. 송명이학 이후 맹자학은 공자와 증자 그리고 자사로 이어지는 道統의 계승자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맹자학의 지위 때문에 지금까지 맹자철학에 대한 연구는 동아시아 전통학술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주제의 하나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의 논문과 학술서적이 맹자철학의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서 전개되고 있다. 맹자의 인성론을 순자의 성악설과 비교하기도 하고, 의리지변(義利之辨)을 묵자(墨子-墨翟)의 공리주의와 비교하기도 하며, 계발중심의 공부론을 순자의 학습중심의 공부론과 비교하고, 또 맹자의 민본과 현대의 민주정치론을 비교하면서 저술된 연구저작이 있기도 하지만, 주류는 맹자학의 긍정적 가치를 발굴하고 當代철학계에서 재조명하는 것에 기본 방향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곳에서 맹자철학에 대한 정면(正面)적인 방향에서 이탈하여 부면(負面)적인 방향에 초점을 두고서, 지금까지 간과되었던 맹자철학에 대한 유감을 왕도정치론을 소재로 하여 전개하였다.
衆人所知, 孟子政治哲學的核心在於王道政治. 在儒學哲學, 王道政治是屬於叔世濟民之外王事業, 亦是儒學一向所追求的政治理想. 在中國政治發展史, 雖然出現過多樣形態的政治觀, 然而難找可比孟子王道政治的另外一個政治論. 在漢代儒家哲學登上於政治的中心理念之後, 知識分子據於孟子的王道政治觀來不斷地抵抗專制王朝之絶對權力. 同樣, 專制王朝對於孟子的王道政治有不安之感而實質的權力一直不斷地壓迫下去. 宋明理學以後, 孟子被認識爲孔子與曾子以及子思學統之傳承者. 也就是說, 孟子學成爲儒學之正統地位. 由此緣故, 在東亞傳統學術界, 孟子哲學是最熱門硏究的學術主題之一. 依筆者的調査, 到目前爲止, 孟子學的硏究成果, 大都從肯定的立場來探究的. 有比較孟荀人性論, 有比較孟子的義利之辨與墨子的功利主義, 有比較以啓發爲中心的孟子之爲學論與以學習爲中心的荀子之爲學論, 有比較孟子的民本理念與現代民主政治論之論文亦不少, 但主流是探索內在於孟子哲學的肯定的成分, 並且找出孟子學的某種成分而適用於現代政治或學術. 然而在此論文, 筆者硏究的基本方向, 並不如此. 筆者亦不能忽視孟子政治論的正面價値, 但筆者認爲孟子的政治理論裏負面的成分亦不少. 此篇論文之主題, 可說爲孟子王道政治論之遺憾.
이 논문은 『주역』에서 읽어낼 수 있는 기본적인 이론들이 무엇인가를 검토함으로써, 총체적으로 『주역』이라는 텍스트의 성격과 사상적 의미를 파악하는 단초 마련에 목적을 둔다. 『주역』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이론을, 중정의 논리‧음양의 대대와 교감의 논리‧극즉반의 논리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中正의 논리란 내괘의 중심인 2효에는 음효가 외괘의 중심인 5효에는 양효가 위치하는 것임을 말한다. 64괘 가운데 이러한 중정을 이루기 위한 괘의 구체적인 조건과 구조 그리고 중정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내용들을 제시하였다. 음양의 교감과 대대의 논리에서는 음괘와 양괘가 어떻게 상괘와 하괘에 배치되어야 교감하게 되는가와 대성괘를 이루는 6효에 있어 각 효들 간의 상응조건을 정리하였다. 하강하는 기운을 지닌 음괘가 상괘에 위치하고, 상승하는 기운을 가진 양괘가 하괘에 위치할 때, 하괘와 상괘 간의 기운이 상호 교감‧소통될 수 있다. 아울러 1효와 4효, 2효와 5효, 3효와 5효 간의 호응관계가 중요한데, 상호 호응 관계가 이루어지려면 음효와 양효가 짝을 이루어야 한다. 주역의 논리를 구성하는 기본요소가 음양이며, 이 둘은 서로 다르면서 의존하는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주역』은 음양을 근본으로 하여 존재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닌 존재라는 측면에서 동일한 것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 對이고, 음과 양 둘 간의 상호의존과 영향의 침투를 통한 운동과 변화를 단적으로 말한 것이 待이다. 결국 對待의 논리란 서로 다른 성질의 차이와 이들 간의 상호 의존성을 동시에 묶어 표현 것임을 알 수 있다. 극즉반의 논리에서는 64괘의 전개과정과 자연의 운동변화 그리고 하나의 사태와 상황은 어떻게 전개‧전환하게 되는가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극즉반이란 하나의 상 황이 정점에 이르게 되면 상반된 상황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논리 속 에는 끝인즉 시작이라는 의미 또한 내포 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本稿では『周易』から読み取れる基本的な理論を検討し、『周易』の性格と意味を把握することを目的とした。『周易』の基本を成している理論を、中正の論理調和と相互感應の論理極卽反と終則始の論理陰陽二元と對待の論理に分けて考察した。『中正の論理』では中正の意味を整理し、中正の条件を備えている卦の構造と中正を直接的に言及している内容を提示した。『陰陽の對待と交感の論理』では陰卦と陽卦は、どのように上卦と下卦に配置されている時に交換できるのかを分析し、六爻の各爻の間の相應關係を整理した。『周易』の論理を構成する基本要素が陰陽であり、これらはお互いに異なりながらも依存している関係を有することを確認した。『極卽反の論理』では64卦の展開過程と自然の運動変化、そして、一つの状況はどのように展開転換されるのかを考察した。
본 연구의 목적은 『周易』을 활용하여,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탈현대적인 대안을 발굴하고자 하는 것이다. 『周易』은 질문자가 던지는 질문에 따라 해답을 줌으로써, 질문자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 가능성과 활용 가능성을 풍부하게 내포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현대사회에 나타나는 사회문제 가운데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周易』에서 어떤 지혜를 빌려올 수 있는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국가, 민족, 종교 등 각 영역에서 심각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인의 삶은 불행에 직면해있다. 본 연구에서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갈등의 원인은 바로 현대 세계관을 토대로 하는 관계관의 한계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 세계관은 모든 존재를 분리‧독립된 개체로 전제하고, 사회는 그런 개체들의 합으로 보고있다. 이에 현대사회의 관계관은 근원적으로 분리‧독립된 개체들이 자신과 분리된 세계로부터 생존하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갈등하고 투쟁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본다. 이상의 현대사회의 관계관을 전제로 지금까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법적‧제도적으로 다각적인 노력이 있어왔다. 이런 노력들은 갈등을 해결하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자는 갈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현대사회의 관계관의 한계를 극복한 새롭고 실천적인 해답을 『周易』에서 모색해 보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the post-modern answers to resolve the social problems of modern society using 『I-Ching(周易)』.『I-Ching(周易)』 can give the answer to us by the question. Therefore, if we ask how to resolve the social problems of modern society, 『I-Ching(周易)』can provide the answer to the question. In this paper, we will focus to social conflicts among many social problems. Nowadays the social conflicts between nations, religions, and regions have been frequently occurred. Because of social conflicts, our contemporaries are unhappy. In this paper, we regard that the modern view of confrontation is the fundamental cause of the social conflicts. In terms of the modern view of confrontation, all the confronting subjects should fight each other to fulfill their own desire. There have been many efforts to resolve the social conflicts. But these efforts have obvious limitations. The limitations are that the efforts stand on the same ground with the conflicting subjects. Therefore, we are looking for the ways to resolve the social conflicts based on 『I-Ching(周易).』
한비자(韓非子)는 중국철학사에 있어서 법가(法家)의 집대성자로 알려져 있다. 그 는 자연을 인식함에 있어서 인간 내면의 도(道)를 의식하였다. 그의 ‘도’에 대한 인식은 노자(老子) 사상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황로학(黃老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는 외면적 자연의 질서를 위하여 ‘법’(法)의 이론을 전개하였다. 한비자는 인간이란 본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 파악하였다. 이익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상호 협의와 조절에 의한 도덕보다는 상(賞)과 벌(罰)의 강압적 수단을 효과적인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효과적 통치를 위하여 인민에게 공포되어야 하는 ‘법’, ‘세력’[勢] 그리고 ‘술책’[術]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한비자에 의해서 체계화 된 법가철학은 ‘춘추전국’이라는 제한된 시기에는 통용되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이 사상이 보편성을 지니고 통시대적 역할을 담당하기에 무리라는 점은 통일을 성취한 진(秦) 제국이 단숨에 무너진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여기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인식 차이에 상당한 간격이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유가철학은 ‘법’에 의한 통치보다는 인간의 마음에 의한 합의 내지 설득을 기반으로 한다. 그 효과가 단기간에 적용되지는 못하는 점이 있으나, 장구한 시간과 넓은 공간에 적용될 수 있는 사상임을 확인한다. 사상사의 측면에서는 유가와 법가는 상호보완하여 인간의 문제에 대응하는 관계로 인식해야 하겠다.
Han Fei-tze(韓非子) was a thinker in old China. He was regarded a synthesizer of Legalism in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He understood the ‘Dao’(道) as a basic being of the world. The ‘Dao’ was the term which used by the Daoists(道家). Han Fei-tze recognized that the world must be unified under the ‘law’(法). He understood the human being as interest-seeker by nature. So he insisted that the Junzi (君子) should rule on the basis of law not of the moral value. For him what is most important was the rule by strict sense of law not by morality which was stressed by Confucian thinkers. What Han Fei-tze put stressed upon were the power or authority which was insisted by Shen-Dao(愼到) and the art of conducting affaires(i.e. statecraft) by Shen Pu-Hai(申不害) and law or regulation by Shang Yang(商鞅). He synthesized these three elements of Legal theory. Han Fei-tze’s philosophy was recognized as a failure case because of sudden collapse-down of Unified Chin(秦) dynasty. This proved the fact the Confucian theory which was based upon the thought of Confucius(孔子) was theoretically right through the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이 글은 「전습록논변」에 나타난 퇴계의 비판이, 양명의 사유 특히 지행합일을 읽 어내는 데 매우 적실한 아이디어를 주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였다. 지행합일에 대한 퇴계 비판의 초점은, 감각과 도덕을 양명이 동일하게 보고 있는 점이다. 그는 양명이 고자의 생지위성(生之謂性)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생리적 차원과 도덕적 차원을 동일시하여 지행합일을 주창했다고 결론짓는다. 퇴계의 지적대로, 양명은 자연성의 차원과 도덕성의 차원을 동일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이는 맹자의 불일치하는 이원적 사유 때문이었다. 맹자는 때로 ‘자연성과 도덕성의 불일치(生≠性)’를 이야기하고, 때로 ‘자연성과 도덕성의 일치(生=性)’를 이야기 하였다. 이러한 이원적 사유는 퇴계와 양명이 각기 자신의 입장에서 “맹자 다시 읽기”를 하도록 만들었다. 퇴계는 주희의 입장을 따라, 현실의 인간을 노력이 요청되는 탕무(湯武)와 같은 불완전자로 파악했다. 때문에 현실적 인간은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탕무와 같이 몸을 닦고 도를 실천하는 공부가 요청되므로, ‘타고난 자연성과 도덕성을 불일치(生≠性)’하게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양명은 현실 인간의 위치를 요순(堯舜)과 같은 완전자로 파악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이미 자연성이 그대로가 도덕성으로 일치하는(生=性) 완전자들이기에, 본성대로 하기만(性之)하면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에게 지(知)는 후천적 노력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닌 타고나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양지(良知)였다. 따라서 지행합일은 “앎은 행동은 실천되어 야 한다”는 당위명제(當爲命題)가 아니라, “우리는 요순과 같이 양지양능(良知良能) 이 합일되어 있는 존재다”라는 사실명제(事實命題)이다. 다시 말해, 지행합일은 자연성과 도덕성이 융합되어 있는 인간의 양지양능에 대한 실제적 표현이다. 양명이 제안하는 교육은 인간의 완전성을 확신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러하기에 교육자가 해야 할 일은 외적 강압이나 훈련이 아닌, 주체의 도덕성(良知)이 자발적으로 발현되도록 유도하고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다.
This paper starts with the supposition that Toegye(退溪) appropriately criticized Yangming(陽明)'s "the unity of knowledge and action(知行合一)". He harshly criticized Yangming's viewpoint on which the sensible knowledge and action is equal to moral knowledge and action. Toegye brought to the conclude that Yangming had the same perspective with Kaotzu(告子)'s opinion which "life is to be seen as nature (生之謂性)." As Toegye rightly pointed out Yangming regarded samely the natural level as the moral level. But, He didn't understood that Yangming was influenced by Mencius, not Kaotzu. Mencius had the dualistic thinking which was out of focus. Mencius sometimes maintained that "naturality is not eqaul to morality(生≠性)," but he sometimes claimed conversely "naturality is eqaul to morality(生=性)." encius's unclear dualistic thinking made Toegye and Yangming read differently in their own ways. As Toegye had the same view of Zhuxi(朱熹), he comprehended human as incomplete being like Tang Wu(湯武) who required a great deal of cultivation. So, he recognized that "human naturality is not eqaul to morality(生≠性)." But, Yangming comprehended human as complete being like Yao Shun(堯舜). So, he understood that "human naturality is eqaul to morality(生=性), " and that human didn't need to make efforts to cultivate. He conceptualized the knowledge as the liangzhi(良知) which omniscient without studies. refore, "the unity of knowledge and action(知行合一)" didn't means that "knowledge had to transform action", but that "human is being had the unity of liangzhi and liangneng(良能)." In other words, "the unity of knowledge and action(知行合一)" is not the proposition of sollen, but the proposition of sein. And, that is the realistic expression which human had the liangzhi and liangneng, the combination of naturality and morality. The education, Yangming dreamed, start with the point that assured the human's completeness. So, Teacher had to create the environment which students' morality manifest by itself, but didn't have to coerce and train compulsory.
왕양명 정신의 양면적 특성 이해 : 양명은 道德君子인가? 狂者인가?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7집 2012.12 pp.373-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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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 정신은 두 가지 경향성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도덕실천을 강조하는 측면과 개성‧정감을 발휘한 측면이다. 가령 도덕실천을 강조하는 측면은 양명이 담감천과 나정암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처럼 당시의 “功利化한 주자학”(俗學)을 비판하는 태도에서 살필 수 있다. 한편 개성‧정감을 발휘한 측면은 양지의 “無知”를 통해 典要(인습)와 格套(격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양지의 무집착성을 강조한 대목에서 살필 수 있다. 그런데 도덕실천에 치중하여 양명 정신을 이해하는 것과 개성‧정감에 치중하여 양명 정신을 이해하는 태도는 개별적으로는 타당해 보이지만 共時的으로는 상호 용납할 수 없는 주장처럼 보인다. 이 문제를 본 논문에서는 양명 정신의 이중적 특성으로 규정하고, 양지의 眞誠惻怛을 통해서 이중적 특성이 상호 저촉되지 않고 통일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아울러 양지의 진실함(誠)은 이후 왕학 분화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王阳明的精神方向可分为两种方面,即侧重于道德实践的方面和发挥个性、情感的方面。就侧重于道德实践的方面而说,阳明寄给湛甘泉和罗整庵的书信里表示对当时功利化的朱子学,即俗学的批评态度,由此可以看到他的基本立场。就发挥个性、情感的方面而讲,阳明提出无知之良知,强调没有典要、格套的良知之无执着性,从此能以看到他的立场。其实,两种对阳明精神方向的理解方案各自有理,而难免似凿枘之势。本论文对此规定为阳明精神的两种倾向,通过良知之真诚恻怛来,要说明他的道德实践的方面和发挥个性、情感的方面融合在一起。并且提出良知之诚可以理解为阳明后学分化的主要原因之一。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27집 2012.12 pp.397-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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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王龍溪의 사상에 대한 양명 후학들의 의난(疑難)과 논변에 대해서 고찰 한 것이다. 왕용계는 浙中의 학자로서 나름의 독특한 사상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특히 良知心體는 先天적이며 無欲無雜하고, 虛靈한 明覺을 지니며 寂感一體이고 自然스러움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기에 良知란 곧 當下卽是로서 見在를 자각하는 즉시 곧바로 드러난다고 보았으며, 또 이러한 선천적인 양지심체에 의거하여 無善無惡한 心意知物을 강조하고 本體가 곧 工夫인 無工夫의 工夫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王龍溪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陽明의 다른 後學들은 疑問과 批判을 하게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龍溪와의 論辯으로 이어진다. 양명후학들이 왕용계와 가졌던 다양한 論辯중에서도 浙中의 錢緖山은 왕용계의 四無가 너무 超越的인 측면에 치중된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經驗的인 측면의 心意知物에 의거하여 四有를 주장함으로써 두 사람사이에는 자연스럽게 四有와 四無의 논변이 시작된다. 또한 江右學者인 季彭山은 왕용계의 見在良知가 지니는 自然스러움에 의문을 품고 오히려 良知心體의 主宰적인 성격을 주장함으로써 良知心體의 性格규명에 대한 왕용계와의 논변이 전개된다. 이밖에도 江右의 대표적인 학자인 聶雙江과 羅念菴은 양지심체를 已發과 未發로 나누고, 오직 미발의 寂體만을 진정한 양지심체로 규정하며, 공부에 있어서는 未發의 寂體를 구하는 歸寂이나 守寂을 致知의 工夫의 본질로 간주함으로써, 왕용계가 주장한 寂感一體로서의 양지와 當下卽時하는 見在良知를 부정하게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本體와 工夫에 대한 인식에 대해 疑問과 詰難으로 이어져 지속적으로 논변이 펼쳐진다. 陽明後學들의 왕용계에 대한 疑難과 이로부터 전개된 논변들은 먼저 본체인 양지 심체에 대한 상호간의 견해 차이로부터 촉발되어, 자연스럽게 工夫에 대한 相異한 이해로 연결되고, 이것은 결국 本體와 工夫, 見在良知, 無善無惡, 그리고 致知工夫 등의 다양한 견해 차이를 惹起하면서 지속적으로 논변이 전개되며, 그 속에 각자의 견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本論文是關於陽明後學對王龍溪思想之疑難與論辯的考察.王龍溪是浙中之陽明後學而持有自己獨特的思想體系.尤其是他主張的良知心體,包含先天和無欲無雜而虛靈明覺寂感一體與自然的性格.因此龍溪以爲良知心體是當下卽時的實體,所以吾人自覺良知的見在時它卽時呈顯.而且王龍溪主張先天的無善無惡之心意知物,以此進一步主張本體卽工夫的無工夫之工夫. 不過對於王龍溪之如此的主張,陽明後學保持疑難與批判的態度,此自然地引發陽明後學與龍溪之間許多而多樣的論辯.尤其是浙中學派之錢緖山,以爲王龍溪之四無就是太置重超越的側面,因此他反而以經驗側面的心意知物來主張四有,由此引發了王龍溪和錢緖山兩人之間四無四有之論辯. 又江右學派之季彭山,亦保持王龍溪的見在良知之自然的性格,而主張良知心體之主宰的性格,因而彭山與龍溪之間,展開對於良知心體之性格的論辯.另外,江右之陽明學者聶雙江與羅念菴,以良知心體分爲已發與未發,以此以爲未發之寂體,是唯一的良知心體,而又認爲歸寂或守寂是唯一的致知工夫. 總以上的觀點來看,吾人可知陽明後學對於王龍溪思想之疑難與論辯,其主要之重點在良知心體之理解之差.而此不同理解,又自然地連結不同的工夫問題而引發更多的疑難與論辯.
본 논문은 이지의 동심설(童心說)을 통해 현대 대중음악을 고찰하려는 목적을 가 지고 있다. 이지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긍정과 주체의 발현을 주장하였고, 이러한 점은 현대 문화에서도 유효하다. 필자는 이를 위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나타난 욕망과 그 표현을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살펴보았다. 먼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강남스타일’은 창작자의 자유로운 표현 욕구가 실현된 장(場) 즉 동심이 깃든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뮤직비디오에서 말춤을 추며 도심을 뛰어다니는 퍼포먼스와 직설적인 가사와의 결합은 이언(邇言)에 함의된 일상의 삶과 괴리되지 않은 통속적인 표현과 부합된다. 마지막으로 ‘강남스타일’의 패러디 현상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조하고 싶은 현대인들의 강한 욕구를 대변하고 있다. 이지는 인간의 욕망이 서로 상이함을 전제로 개인의 이익과 욕구를 자각하고 그것을 사회에 요구하는 점에서 주체의 존재의미를 찾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은 ‘강남스타일’ 패러디의 현상과의 접점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논의는 동심설의 현대적 의의를 ‘강남스타일’을 통해 조망하고 한 것이다.
本论文通过李贽的童心说,以考察现代大众音乐为目的。李贽对于人类欲望主张肯定和主体性,此观点在现在文化中也有所表现。笔者为此,则通过歌词和音乐录影带对PSY的‘江南Style’中表现出的欲望进行分析。首先从PSY 的经验来说,起初是以率真的感情表现‘江南Style’的创作者以自由的表现欲望实行的场,即童心寄寓的歌。并且从音乐录像带中,边跳舞边跳跃在城市的行动与直说的歌词相结合,迩言的含义是日常的生活和不悖离。从这通俗的表现,可以看出内涵的人类根本的价值。还有‘江南Style’的模仿现场则让强调自己是明星的现代人的强烈欲望得以表现。李贽肯定了这样人类相互不同的欲望。所以他个人的利益和欲望,在社会需求中寻找主体的存在意义。具有与‘江南Style’模仿现场的接点的可能性。
장횡거 철학에서 전후 맥락 없이 제시된 ‘心統性情’은 주자에 이르러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주자철학 ‘심성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주자철학에서 情은 氣이고, 性은 理다. 性은 至善이지만 情에는 선한 情도 있고 악 한 情도 있다. 情이 性을 따르면 선한 정이 되고, 性을 따르지 않으면 악한 정이 된다. 그러나 情은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고, 또 性을 지각할 수도 없다. 性을 知覺할 수 있는 능력은 心에 있다. 心이 性을 지각하여, 情으로 하여금 性을 따르도록 주재해야 한다. 따라서 ‘統’을 ‘주재하다’ ‘겸하다’ ‘포괄하다’ 등의 의미로 해석할 때, 心이 情을 주재하여 性을 따르도록 주재할 수 있고, 겸할 수 있고, 포괄할 수 있다. 그러므로 ‘心統情’은 가능하다. 그러나 ‘心統性’은 안 된다. 왜냐하면 性은 形而上이고 心은 形而下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심통성정’설에서 心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것이 주자의 ‘心統性情’설이다. 마일부의 ‘심통성정’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자와 마찬가지로 ‘心卽理’라고 하면 情을 둘 곳이 없기 때문에서 ‘心卽理’설에 대해 비판적이다. 둘째, 주자와 마찬가지로 性을 ‘心의 본체(心之體)’로 情을 ‘心의 작용(心之用)’으로 파악했다. 셋째, 天命之性(횡거의 義理之性)‧氣質之性을 ‘心統性情’으로 이해했다. 즉 氣質之性을 변화시켜 본연의 선 즉 天命之性을 회복하는 것이 ‘심통성정’의 의미다. 天命之性과 氣質之性을 하나의 性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주자와 같다. 그러나 주자는 天命之性‧氣質之性을 ‘心統性情’과 연결시키지 않았다. 넷째, 주자철학에서 ‘虛靈不昧’는 ‘心의 오묘한 작용(氣)’을 형용하는 개념이지만, 마일부는 둘로 구분하여 ‘虛靈’을 氣로, ‘不昧’를 理로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허령불매’를 理氣를 ‘兼’해서 한 말이라고 했다. 이 또한 ‘심통성정’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다. 이와 같이 마일부는 ‘심통성정’에 대한 해석 방식을 天命之性‧氣質之性에도 적용시키고, 또 ‘허령불매’ 해석에도 주자와는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在張橫渠哲学里前后连不上的‘心统性情’,直到朱子被接受为绝对的真理,因而它在朱子哲学心性论的范畴中占有很重要的地位。朱子哲学里的情是气,性卽是理。性代表至善,情则可分善情与恶情。若情从性,便成为善情,若不从性则成为恶情。然而情不会控制自己,又无法知觉到性。究竟能否知觉性,全靠心的。应该由心知觉性,并要情从性。因此,要是把‘统’字解释为‘主宰’,‘兼作’,‘包括’等的意思,心就主宰情从性,也就可以兼作性,又可包括性。在此意义上,心能统情。但不可能有心统性。因为性是形而上,而心则形而下。像这样,在‘心统性情’理论中心占有极其重要的位置。这就是朱子的‘心统性情’。马一浮的‘心统性情’主要有如下的内容: 第一,由于若与朱子相同说‘心卽理’,就没地方放情,所以对‘心卽理’持有批评的态度。第二,有如朱子把性视为心之體,把情解为心之用。第三,把天命之性(橫渠之義理之性)与氣質之性都视为‘心統性情’。改变氣質之性而恢复它原有的善即天命之性,这就是‘心統性情’之涵义。他把天命之性与氣質之性看成一个性,这一点是与朱子相同的。但朱子并没有把天命之性氣質之性此两者与‘心統性情’连在一起的。第四,朱子哲学里所说的‘虚灵不昧’一般是一个形容心之用的概念,但马一浮却把它分成两个,把'虚灵'视为气,把‘不昧’则解为理。他基于这点指出'虚灵不昧'是兼作'理气'而说的。这也是根据‘心統性情’解释的。总上所述,马一浮既重释‘心統性情’与天命之性,又给'虚灵不昧'以新的解释。
중국과 대만의 경전읽기운동은 1994년 대만 왕차이구이(王財貴) 교수에 의해 시 작되었다. 청소년의 중국문화 조기교육을 위해 민간단체 주도로 시작된 경전읽기운동은 최근 중국과 대만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점차 실시범위와 추진내용 면에서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경전읽기운동은 글로벌시대에 중화문화권 청소년의 도덕교육과 문화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은 1949년 이후 사회주의체제 하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탈피를 주장해 왔다. 특히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 중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한 유교전 통문화를 철저하게 배격했다. 반면 대만은 대륙으로부터의 撤退이후 중화민족의 嫡統과 중화문명의 자존심 확보를 위해 중국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을 도모해 왔다. 그러나 최근 경전읽기운동이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추진되는 과정에서 사업의 본래취지가 변질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대만의 경우에는 경전읽기운동이 국민당의 국내선거 홍보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측면이 있으며, 중국의 경우에는 사회통합을 위한 애국주의교육의 일환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본 논문은 중국과 대만의 경전읽기운동의 현황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 전개양상에서 나타난 특징을 검토함으로써 정치적 함의와 현대적 의의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中國與台灣的經典誦讀(讀經)運動起源於1994年台灣王財貴教授的兒童讀經運動, 其旨在青少年的中國文化教育. 當初在民間發起的這一系列運動, 最近得到中國與台灣政府的支持, 其實施範圍與內容逐漸擴大. 在全球化時代裏, 經典通讀運動對中華文化圈的青少年道德教育與文化認同上具有積極的作用. 中國自1949年在社會主義體制下曾對傳統文化進行全面批判與排擊. 尤其在文化大革命時期(1966-1976), 主要對以孔子為中心的儒家傳統文化進行猛烈攻擊. 在台灣方面, 國民黨政府自從大陸撤退以後, 為確保中華民族的嫡統與中華文明的自尊心, 試著繼承發展中國傳統文化. 然而經典誦讀(讀經)運動最近得到兩岸政府的大力支持後, 其活動漸呈政治色彩. 例如, 台灣的國民黨在總統競選廣告中運用了讀經活動的片断, 中國政府則運用為愛國主義教育. 本論文試圖比較中國大陸和台灣地區的經典誦讀運動現況, 並通過具體事例探討其特徵和政治含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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