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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양명학과 선학의 현대적 만남과 융화 및 소통 가능성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를 위하여 세 가지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첫째, ‘만남, 융화, 소통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점을 규명하였다. 이를 통하여 양명학과 선학 간에 이러한 점에 대하여 어떻게 접근해가야 하는 지를 논하였다. 둘째, 현대 한국양명학 담론의 전개과정을 소개하고, 이를 통하여 양명학과 선학의 만남과 소통의 논리가 무엇인지를 밝혔다. 셋째,‘양명학과 한국선학의 구체적인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하는 구체적인 물음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한국 선학을 대표하는 지눌의 사상과 양명의 사상과의 비교를 통하여 두 사상 간의 만남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What I wish to show in this paper is to explore the modern meeting, harmony and possibility of mutual understanding within Yangmyeong-hak, t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and Seon-hak, Korean Seon Buddhism. I raised three questions for the purpose of this paper. First, I looked into the meaning of meeting, harmony and mutual understanding minutely. Through that searching, I discussed the way how we have to approach those problems with Yangmyeong-hak and Seon-hak. Secondly, I introduced the development process of discussion on modern Korean Yangmyeong-hak. So I inquired the logic of the meeting and mutual understanding with Yangmyeong-hak and Seon-hak. Thirdly, I brought up a concrete problem, 'How should the meeting of them accomplished?'. And I instituted the possibility of their meeting through the comparison with Jinul's thought as a representative Korean Seon and he doctrines of Wang Yang-ming.
이 논문은 왕양명(王陽明. 1472∼1528. 이름은 守仁)과 도교(道敎)의 관련성에 주목하면서 양명학(陽明學)과 도교(道敎)의 회통(會通)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도가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주축으로 하지만, 도교는 노자의『도덕경』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경전화하는 등 민간 신앙적 종교를 구축한다. 따라서 도가와 도교는 사상과 신앙의 관계로 맺어져 중국 사회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동아시아 사회에서 유교와 불교 도교는, 정도의 차이가 있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혼합주의(Syncretism)의 성격을 띠는 형태로 전개한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한 이래, 기존의 도교와 유교가 합세하여 삼자(유불도)의 갈등, 대립, 화해, 상호침투가 자연스레 이뤄진다. 이러한 종교 간의 융합과 소통을 토대로 명대 중엽 양명 심학은 혼합주의 절정을 보여주게 된다. 왕양명은 중국 역사상에서 그 어떤 다른 사상가보다도 유교와 다른 종교 즉 도교나 불교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가졌던 인물이다. 특히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도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성장 하면서 차츰 도교(道敎) 수행(修行)에 관심을 가지며 나아가서 평생을 통해 도교와 깊은 관련을 가지게 된다. 양명의 도교 수행은 실제 신체적 단련이며 그의 신체적 병약(病弱)과도 연관된다. 이러한 도교 수행은, 오랜 기간 중국 전역의 수많은 사찰 방문 등을 통한 불교 수행과 맞물려, 치양지학(致良知學)의 구축과 완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왕양명은 도교든 불교든 궁극적으로는 모두 양지의 활동 가운데에 있으며, ‘양지를 벗어나 양지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치양지학은 왕양명의 학문이 도교(넓게는 도가 포함)와 얼마나 깊이 소통을 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사상적 ‘심장’이라 해도 좋다.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relationship between Wang Yang-Ming(王陽明. 1472∼1528) and Taoism(道敎). I, moreover, try to explain the syncretism in Yangmingxue(陽明學). He is in poor health after injured his chest by mistake that fallen his horse in his early days. After that, he suffers from consumption till to his death. And so he wants to heals his body by Taoistic self-discipline what is called Daoyinfa(導引法) that is a rules for one´s health exercises or physical training. Wang yang-ming is opened, while that of Zhuzixue(朱子學) is closed. He has opened mind to the religious world, Buddhism etc. He wants fusion Confucianism with Buddhism and Taoism in his Chiliangzhixue(致良知學) which is the doctrine on human's intelligence, wisdom, or conscience innately. By this a new angle on the problem, so he success by his philosophical idea. This is the Chiliangzhixue(致良知學) as a creative Neo-Confucian syncretism theory. The syncretic character of Yangmingxue(陽明學), have expressed a essence of chinese mind philosophy(心學, Xinxue), shows a new possibility could not find in the others thoughts in china history.
양명학과 심리학의 만남과 소통 - 융, 프랑클, 불교, 양명학의 비교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19집 2009.08 pp.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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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후 철학 종교 등,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 만남은 서양 것들의 유입에 대한 동양의 대응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동도서기’(東道西器), ‘중체서용’(中體 한글요약문 中文提要西用) 등의 단어들이 주는 의미와 같이 과학기술 분야의 뒤처짐을 정신적 영역에서 채우려고 하였다. 그 가운데 ‘마음’의 수양을 통한 이상적 인간의 모습을 구현하려했던 동양 사상의 방향은 서양의 인간의 이해와 차이가 너무 크고 이성적이 아닌 신비적 경향을 띤다는 비난과 함께 서양 체계의 학문 영역에서 비껴서 있었다. 서양에서의 ‘마음’에 관한 연구는 심리학(psychology)이라는 학문 분야로 자리매김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서양에서 심리학은 철학에서 분화되어 인간의 정신 작용과 행동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적 학문분야로 이론적이고 실증적인 성격을 띠고 발전하였다. 그러나 동양의 경우 마음의 이치를 객관적으로 밝히려는 이론적·실증적인 심리학은 없었고 따라서 서양의 심리학을 고스란히 수용하여 적용하여 왔다. 특히 프로이드 이후 심리학의 영역이 정신치료 분야로 확대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인간을 비합리적이고, 결정론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전개한 인간에 대한 분석은 동양의 인간에 대한 인식과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발전하여 왔다. 그러나 프로이드적 접근은 심리적 삶의 중요한 부분들, 즉 특별한 종교적 체험이나 ‘의식의 확장된 상태’와 관련된 부분들을 설명하지 않고 외면하였다. 그럼으로써 너무 연역적이고 생물학적인 편향을 보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심신 이원론에 바탕을 둔 서양의 제 사상들은 인간의 의식과 자기인식에 관해 적절한 답을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위기에 직면하여 동양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인간 이해를 모색하게 된다. 그 가운데 서구의 확고부동한 정통성에 가장 강력한 도전을 받은 분야가 바로 심리학 영역으로써 전일주의(Wholism)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론들의 자양분은 대부분 동양 사상들이 제공하고 있다. 동양 사상 가운데 특히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사상은 불교사상인데, 심리학 분야에서는 융이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내면의 직관을 통한 깨달음, 깨달음을 통한 의식의 해방이나 해탈을 추구하는 도교나 불교의 사유체계에서 융은 자신이 추구하는 자기실현의 패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융이 추구한 자기실현은 결국 개체로서의 개인의 자기실현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었고, 의미로 충만한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고 여기는 일련의 학자들이 나오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프랑클이다. 프랑클은 삶의 원동력은 삶의 의미를 찾는 데에 있고, 이러한 삶의 의미는 책임감의 자각을 통해 드러난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마치 양명이 불교가 사회적 실천을 외면하고 개인의 해탈만을 추구한다고 비판하고 인간의 본질을 실천적 주체로 규정하고 실천할 것을 강조한 양명학의 정신과 궤를 같이 한다. 심리학의 역사는 인간 개체의 심성을 객관적으로 해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양식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던 단계에서 자기 인식, 자기실현을 목표로 삼는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인간을 고립된 개인으로 보았고, 자기실현도 결국 개인의 자기실현에 머무르고 말았다. 그 결과 소외와 생태계 파괴 등 실존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를 유기체로 보고 고립된 이웃, 개인의 의식을 초월한 존재들과의 일체감을 회복을 주창하게 되었다. 양명은 자기를 자각하고 반성하며 검증할 수 있으며 동시에 타자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게 되는 영명성의 양지로 자기를 구성하고 세계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자신이 세상을 구성할 때 비로소 세상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명확한 책임의식이 있어야만 실천이 필연성을 띠게 되고 우주와 더불어 자기실현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양명학적 사유는 자칫 신비적 체험에 기대고 영성 차원으로 접근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실천적 동력의 부족을 해소하여 새로운 심리학의 방향설정에 계시가 될 수 있다.
邁進19世紀以後, 在東·西方之渠會如哲學, 宗敎等各方面, 一般來講, 東方對應於西方學問的穿入而開始且進行的. 對於傳播西方近代文明,爲東方文化的近代化, 開始講‘東道西器’, ‘中體西用’等語詞, 意在融合東方的傳統思想和哲學, 運用西方先進的技術和工具來實現東方文化的新進展. 結果給西方文化傳播大開了方便之門, 東方則接收西方傳統哲學和思想, 讓‘道’和‘體’的地位也給它們, 結果成了‘西道西器’, ‘西體西用’的局面, 而且‘東道西器’, ‘中體西用’等語詞, 給我們餘留下來的印象, 只能會是阿Q式的精神. 尤由修心養性來呈現理想人格, 再實現萬物一體來圓滿和諧整個世界爲目標的東方思想的志向, 是與西方傳統有懸隔的間隙, 而且被認爲帶着神秘主義傾向, 所以不能夠進入知性爲主的西方學問領域, 而躲在學問領域的邊界. 在西方傳統, 關於‘心’的探索, 進行在‘心理學’(psychology)領域. 字面上看, ‘心理學’到了19世紀末, 開始脫離哲學以來, 定之爲主要研究人的精神作用與行動關係的一門科學, 而帶着理論的·實證的特色, 朝着以事實來驗證理論的方向進行發展. 可是在東方傳統裏, 從來沒有研究心理現象和心理規律的那種客觀且實證的‘心理學’那樣學問, 所以全幅受容西方心理學來適用探求東方人的心性問題. 尤其是弗洛伊德(Sigmund Freud)把心理學的領域擴大到精神分析及精神治療, 以潛在意識作爲硏究對象, 開闢了心理學硏究的新紀元, 把人類看待非合理的, 決定論的存在來進行分析的心態, 正好相反於東方傳統理解人的方式來發展的. 可是他把一切問題都歸因爲‘里比多(Libido)’, 總是把里比多當做人行爲的眞正動機, 因而忽視了生活主要部分, 則忽視了如特別的宗敎體驗或意識的擴張等的問題, 所以不可避免太偏於演繹的, 生物學的傾向. 這樣, 基於心身二元論來進行的西方諸思想, 終於失敗了給人於的意識以及自己認識有適當的回答. 他們面對喪失人性的危機狀況, 把視野轉向東方傳統, 而開始對人摸索新的理解. 現代西方思想當中, 在於其正統性, 最受挑戰的學問領域就是心理學. 目前基於整體主義(Wholism)性思考進行的理論滋養分, 大多從東方思想給與的. 在東方思想當中, 最發揮影響力的, 就是佛敎思想. 在心理學方面肯定接受佛敎思惟形態, 可說榮格(Carl Gustav Jung)扮演着先驅者的角色. 在道敎與佛敎, 由直觀心地來覺悟, 由解悟追求解放意識或解脫的思惟形態, 榮格充分看到了他自身畢生追求的自己實現(Self-relization)的格局. 可是榮格所追求的自己實現, 只能停留於個體實現自己一個人, 而被批評沒有足夠的力量擴大到整個社會, 冷眼旁觀充滿意識的這世界. 因此, 一批學者反對榮格的那樣意識形態, 强調對社會責任意識, 乃主張通過完成人對社會的任務, 而達到人生目標才眞正實現自己. 其中之一, 就是傅郞克(Viktor E. Frankl). 他認爲生活的原動力從找出生命的意義來的, 而且生命的意義由自覺責任意識來見的. 這樣的思路好比王陽明批判佛敎別頭傍觀對社會的實踐, 只追求解脫個人, 而把人的本質定爲實踐的主體, 強調人對自身以外的其他事物負責,不論是社會·全人類以至整個世界. 西方心理學的發展正朝强調人的責任, 强調‘此時此地’以至萬物一體之化境, 這個方向前進, 而這樣的思路是儒家本有的. 心理學的歷史自從對人的心性作解體硏究開始, 根據於此科學的方法來分析人的行動樣態, 轉向發展至認識自己, 實現自己爲目標的. 可是西方傳統終是把人看做孤立的個體, 結果自己實現的理念只能停留於個體的各自實現而已. 因此, 面臨了人性異化, 生態破壞等的實存性危機. 爲了挽救這樣危機, 以整體性觀點看全生態系統, 開始主唱超脫孤立於他者的個體意識, 而回復與整個存在的一體感. 王陽明則以可覺知自己, 可反省且驗證自己, 同時把他者的痛苦作成自己的痛苦的靈明性來規定良知來構成自己至於整個世界. 只能自己構成世界, 世界才對自己有意思. 構成世界就是意味着覺知對世界責任意識. 我們有明確的責任意識, 實踐才有必然性, 有必然性, 可以完成自己實現以達到萬物同體之境. 若這樣看, 陽明學的思惟, 對依賴着神秘主義, 接近於靈性層次的解釋而因起不足實踐的動力的西方心理學的發展方向, 能夠成爲啓示的作用.
왕양명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근본적으로 ‘치유의 철학’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입각점을 가지며, 이에 접근하는 두 사람의 방법이 상이한 가운데에서도 공히 균형감각을 상실한 인간 사유가 빚어내는 병적 증세에 주목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체계를 세우는데 집착하여 오히려 ‘철학자의 병’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철학과는 달리 그의 철학적 작업은 ‘철학적 치료philosophical treatment’임을 분명히 하고, 철학자는 임상의와 마찬가지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이해와 오해에 대한 통찰력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왕양명은 ‘병이 깊어져 죽음을 눈앞에 둔 때’와 다름없는 당대의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공부를 통해 강화하고 확충시켜야 할 측면과 버리고 극복해야 할 측면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함으로 해서 혼란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치유를 위해서는 본래성과 비본래성에 대한 갈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그의 철학체계에서 자기 치유를 이룰 수 있는 내적 근거로 제시되는 ‘양지’의 활동으로서의 ‘깨어있음’의 시간성인 ‘현재’는 공부를 함에 있어서 ‘어디에 힘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왕양명의 대답이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후기철학의 대표적인 저서인 『철학적 탐구』에서 ‘기억하다’와 ‘기대하다’의 예가 가지는 문법(grammar)을 밝히는 과정에서 어떻게 우리가 언어의 문법에 의해 현실을 오도하는지를 밝히면서 ‘현재’로부터 우리를 격리시키는 매우 전형적인 ‘생각의 방식(The form of thought)’을 보여준다.
Wang Yang-Ming and Wittgenstein adopted basically the same standpoint in terms of 'healing philosophy'; With different approaches, they both paid attention to morbid symptoms caused by human thinking which was out of proportion. Unlike existing philosophers who sticked to building systems and rather made 'philosopher's disease', Wittgenstein made it clear that his philosophical works were 'philosophical treatment' and explained the philosophers, as same as the clinicians, should give insight into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to the suffering people. Wang Yang-Ming judged that people of the day, nearly 'facing death from disease', couldn't escape confusion and suffering while not distinguishing between one side to be strengthened by learning and other side to be thrown away. He said it was important for healing, to clearly know the point where authenticity and inauthenticity divide, and 'the present', the time-variant of 'awakening' when 'Liang-chih' acts, which was presented as an inner ground to enable self-healing in his philosophical system, is his answer for the question; 'where to put forth efforts' in studying. Besides, Wittgenstein pointed out how grammar in language misleads us about the present, in his representative book,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in the process of defining grammars in examples such as 'remember' and 'expect', to finally show a very typical 'form of thought' that isolated us from 'present'.
이논문은유교의조상숭배를우상숭배로보는견해를비판적으로검토한것이다. 유교의조상숭배는부모에대한극진한마음―효(孝)―의연장이며조상제사는조상 과자손의거리를좁히고자손들이일체감을갖기위한퍼포먼스이지, 어떤우상을 숭배하는행위가아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일부크리스트교도들에게유교의조상숭 배가우상숭배로비춰진것은①유일신교의편견, ②서구문화와서구종교의우월감, ③의례의상징적의미배제에기인한다. 유교의조상숭배와제사행위에담겨있는상 징적 의미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본질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This paper contains a critical review about the idea that identifies the Confucian ancestor worship with idolatry. We consider the Confucian ancestor worship as extended filial piety, and Confucian sacrificial rites as performances aiming at shortening the distance between ancestors and offsprings, far from practicing idolatry. The investigator found three factors that influenced Christians to take Confucian ancestor worship as idolatry. Those factors are ①the biases of the monotheistic religions, ②the arrogance of the Western culture and religions, and ③lack of understanding of the symbolic meanings of the Confucian rites. To know the true nature of the Confucian ancestor worship it is necessary to pay full attention to the symbolic meanings involved in them.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19집 2009.08 pp.13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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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令」(예기)에서는 만물의 생동변화 양상을 절후에 따라 인식하면서 천자의 일상을 통해 정형화시키는 한편, 농업과 관련한 시기적절한 고려와 조치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속에 내포된 전통적 사유와 일상은 유교를 표방하던 지식인들이 일상에서 사유하던 하나의 표준으로 활용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월령」에서 제시된 사유가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疏通’시킨다는 관점, 특히 소통의 방식과 그 중심 고리로서 ‘祭祀’에 주목한 것이다. 「월령」의 체계와 내용은 하늘의 지표인 별자리 중심의 천문 현상으로부터 시작하여 각 절기마다 감지될 수 있는 자연현상을 천문 ․ 자연 ․ 인간의 모든 영역에 걸쳐 유비적으로 대응시켜 기술하고 있다. 그 중 郊祭祀에서 보이듯 하늘에 대한 천자의 제사가 상징하는 것은 하늘의 아들이자 인간의 대표자로서 천지의 대자연과 소통을 의미한다. 또한 천자의 의․식․주, 특히 明堂制度와 계절의 한 중앙에 土를 배치하는 것은 五行思想에 기초한 전통적 사유가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절기마다 제사를 통해 천지자연과 소통하려는 천자의 의례는 농경을 토대로 하는 전통사회에서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는 계기로 이어진다. 풍년을 기원하는 祈穀祭와 농경의 시작을 알리는 親耕禮 등은 농사의 소중함을 공감하고 근면성실을 독촉하는 효과적인 방안이기도 하였다. 특히 이러한 의례는 민생과 직결될 뿐만 아니라 선왕에게 바칠 제수를 준비하는 과정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매우 중시하였다. 이처럼 농경의 시작에서 마무리과정까지 자연의 절기에 따른 제반조치들에서 제사는 자연과 소통하면서, 그 변화양상에 순응하도록 하는 등 노동을 활성화하는 촉매제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하늘-땅-인간을 소통시키려는 「월령」의 체계는 제사를 통해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운용된다. 그러나 五行思想이나 災異 등 「월령」에서 제시하는 사유는 오늘날에 있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고 가로막는 또 하나의 틀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인간의 유비적 대응양상을 폭넓게 해명하려는 「월령」의 사유를 통해 소통부재에 직면한 현대문명에 반성적 시각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Wolryung」(月令) that is one of part of the Book of Rites(禮記) that recognized all aspects of everything according to the change of nature and standardized it through king's routine life. Also it included many adequate methods that are related with agriculture. The thoughts and routine life that are included in the book was utilized as a norm among the intellectuals who intended to the Confucianism. This article focus on the vies that the thoughts are suggested in the 「Wolryung」 lead to mutual understanding between human and nature. In addition, it is also important that the main method to perform a religious service(祭祀) As a son of Heaven and representative of human, the king understands the nature through Gyochunrye(郊天禮) and Myoungdangje(明堂制). Also he applied the nature's rule and power to human life when he distributed government orders and led to obey and follow change of nature. Especially, King's ceremony was utilized to encourage the will to produce through Gigokje(祈穀制) and Chinkyungje(親耕禮) that are both kind of ceremony to wish a fruitful year in the traditional society. The system of thought of 「Wolryung」(月令) leads harmony and understanding of Heaven, Land, and human. However, it also becomes a tool that obstructs and divides the Western and the Eastern because it also includes thinking based on five phase(五行) or disaster(災異). In spite of the this disadvantage, we can find out one way to understand nature and other existence through this thought that try to explain the harmony and deep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human.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19집 2009.08 pp.15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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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 성현은 기호(畿湖) 지역 재야 역학자이다. 사승(師承)도 뚜렷하지 않고 후학(後學)의 맥도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생존시 역학(易學)으로 상당한 명망을 떨치고 있었다. 그의 문집 회재집(懷齋集)은 대부분 역학 관련 저술로 채워져 있다. 그의 역학은 주로 소강절 역학과 이천 역전 그리고 주희의 본의 그리고 민간에 전승되어오는 역술서적들을 독학으로 익혀 형성된 듯하다. 그는 역괘 해석에 있어서 서괘·단·상을 중시하고 있고 의리적 해석의 줄기를 놓지 않는다. 한편 특유의 물상론을 지니고 납갑을 겸한 해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인체와 우리말 성음 등에 역의 원리를 적용하고 또 발견한다. 그의 ‘주역 인문학’은 이러한 산물로서 독학(獨學) 창견(創見)의 맛이 있다. 그러나 그의 역학(易學)은 낯선 개념도 많고 논리도 생소하다. 필자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그가 자득한 것의 열의 하나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역학은 이후 기호지역의 一夫易 也山易 등 독특한 역학(易學)의 면면한 줄기를 짐작하게 한다.
Sung Hyun who has been lived in Chung -cheong province was one of I-Ching scholars. He had no any famouse teachers nor eminent academic successors. But he enjoyed good reputation of outstanding scholar of I-Ching in his age. The book written by him was fulled with the articles about I-Ching Studies. His I-Ching Studies was formed by self studing the the book of Shao- Wong's, Cheong-I's I-Chuan, Chushi's Bun-I, and some kind of traditional manual book of divination. In interpreting the hexagrams, he stressed on the order, the judgement, the image of the hexagrams, and also he could not fail the philosophical and ethical meanings of that hexagrams. In addition this, he had tried to apply his own image of things and the sexagenary cycle of heaven and earth to study that. And also he had applied the principle of I-Ching to study our bodies and voices. His studies of our bodies and voices in terms of I-Ching, are some strange to us. The logics and concepts in his book of his self acquired painfully that I could understand could be no more than one of ten. But we could view the ceaseless stream of I-Ching Studies unique in the Chung-Cheong province such as Ilbu Jeong Yeok, Yasan Yeok
본 논문은 퇴계 이황의 예학사상의 특성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퇴계의 예학사상은 인간의 도덕주체 확립을 위한 경(敬)의 수양론을 기반으로 전개되었다. 퇴계는 경에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를 관통하는 우주론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수양론의 측면에서 퇴계는 원론적이고 도덕적인 사회 질서를 추구하였고, 이것이 그의 예학사상에 그대로 반영되어 예가 인간 도리의 근본이 된다고 보았다. 퇴계의 예학사상은 주자가례(朱子家禮)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고례(古禮)와 시속(時俗)을 조화하려는 의례관(儀禮觀)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퇴계 예학사상의 특성은 예의 기본적인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사회의 관습(慣習)을 인정하고, 이러한 관습에 따라 개인의 예에 대한 실천의지를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퇴계의 예학사상은 주자가례를 근본으로 하면서도 세세한 예의 적용에서는 시의성(時宜性)을 강조함으로써,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퇴계의 영향을 받은 영남학파의 예학이, 비교적 주자가례에 충실하려는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예학과 구별되는 특성을 갖고 전개되었다고 하겠다.
This thesis studied the characteristics of Toegye, Lee-hwang(退溪 李滉)`s Li-thought. Toegye emphasized on establishing a theory of the moral subject of human being by developing a theory of moral culture based on 'Jing(敬;Respect)'. In view of this, Toegye pursued of a principled and moralistic social discipline, which was also developed in the direction of admitting the courtesy of the manners and ways of the age in Li-thought as a rule. So, the Li-thought of Toegye has a characteristic that admits the social custom, hence emphasizes on the individual's volition practicing the courtesy according to this custom. The Li-thought of Toegye focused on the Zhuzijiali(朱子家禮;The book of the customary formalities of a family, written by Sung) and old manners, yet stood in the position that the procedure of carrying out the courtesy could be done following humanity within the range that did not harm its courtesy-originated meaning. In other words, it can be said that it pursued a rational practice of courtesy.
韩国江华阳明学派泰斗郑齐斗良知本体论和致良知功夫论和致良知功夫论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19집 2009.08 pp.209-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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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 강화 양명학파의 태두인 정제두의 사상을 양지 본체론과 치양지 공부론의 도식으로 탐구하였다. 정제두는 선악과 시비를 즉각적으로 분별하는 도덕판단, 도덕정감, 도덕의지인 양지를 천리로 규정하였는데 이는 양명의 양지 본체론과 동일하다. 또한 그는 주자가 <대학> 주석에서 주장한 외부세계에 즉하여 이치를 궁구하는 즉물궁리의 공부론을 반대하고 양명이 제창한 치양지가 진정한 공부론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 또한 양명의 치양지 공부론과 일치한다. 한편 구체적으로 양지를 ‘치’하는 공부를 두고 양명 후학내에 이견이 존재하는데 사욕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양지의 명각에 의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양지의 명각이 제대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욕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자의 입장은 왕기를 대표로 들 수 있고 후자의 입장은 섭표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제두는 이에 대해 섭표의 입장에 근접한 “充其实”과 왕기의 입장에 근접한“顺其体”라는 개념으로 조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식의 주장은 단장취의하는 오류의 위험은 있지만 최소한 정제두가 치양지 공부 안에 존재하는 이견에 대해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신빙성이 높다. 현재 학계에서 정제두와 양명 후학과의 관련성에 주목한 논문들이 나오고 있는데 연구자가 정제두 사상과 왕양명 사상의 유사와 차이를 분명히 하고 양명 후학자 개인의 종설에 대한 교판이 정립된 후에야 이른바 ‘단장취의’나 ‘망문생의’ 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본 논문은 작성 동기상 정제두의 양명학 사상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특정 논의를 깊이 있게 전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다만 본 논문에서 정제두의 사상 면모를 양지 본체론과 치양지 공부론의 도식으로 탐구한 것은 학계에서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정제두의 사상을 양명학의 한국적 전개라는 큰 밑그림에서 평가하고자 한다면 양명학의 기본 도식인 양지 본체론과 치양지 공부론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정제두 사상의 특성을 밝혀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On this paper, I searched Jeong Je‐du as a Yang Ming scholar, analyzing Xin‐Ji‐Li(The heart is a reason), Liangzhi‐Benti(intuitive knowledge), and Zhi‐Liangzhi‐Gongfu(fulfillment of intuitive knowledge). We found out the fact that his theory is similar to the Yang Ming study of Ming Dynasty concerning on Yang Ming’s core theory, which is Xin‐Ji‐Li(The heart is a reason) , Liangzhi‐Benti(intuitive knowledge), and Zhi‐Liangzhi‐Gongfu(fulfillment of intuitive knowledge). Being as far as Korean philosophy history be concerned, the position of Zhu Zi ’s Li Study being aware of state as the ideology did not change in Cho Seon dynasty nearly more than five hundred years. During whole Cho Seon dynasty, Yang Ming philosophy already had entered Korea in the early of A.D. 16 centuries, but it took Zhu Zi School’s criticizing, and regarded as erroneous doctrine. Therefore, under the circumstances in which studying other thought was extremely not easy, Jeong Je‐du deeply studied Yang Ming’s study, building his own thought, and became Jiang Hua school’s ancestor. On this paper I adopted the scheme of Liangzhi‐Benti(intuitive knowledge), and Zhi‐Liangzhi‐Gongfu(fulfillment of intuitive knowledge). The first, intuitive knowledge: Jeong Je‐du had a regulation that intuitive knowledge is morality judgment, which is to know the justice or evil, and morality emotion which loves the good and hates the evil. It was inherited from Wang Yang‐ming‘s intuitive knowledge. Jeong Je‐du also frequently used the concept of Sheng‐Li when he expresses his own idea about Liangzhi‐Benti(intuitive knowledge). Second, fulfillment of intuitive knowledge: Jeong Je‐du disagreed with Zhu Zi's Ji‐Wu‐Qiong‐Li. So he relied on fulfillment of intuitive knowledge as a theory of moral accomplishment. But early in the Yang Ming School, it is not easy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fulfillment under the practical circumstance, so it caused Yang Ming School divided in many groups. Concerning to this point, his theory gave a light to reconcile their conflictions among Yang Ming Disciples. Unfortunately, the data supporting this hypothesis is not enough, so it is necessary to wait any research results in the afterwards.
이간의 심론에 대한 고찰 -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통하여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19집 2009.08 pp.23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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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은 신의 양태이며 인간의 정신은 신의 무한지성의 일부이다. 인간은 정신과 신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개별적인 사물들은 각기 다르다고는 하더라도 모두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은 다른 사물과 마찬가지로 신의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소유한다. 이간은 모든 인간이 선험적으로 똑같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마음의 본체가 선하다는 것을 구명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이로써 그는 모든 인간이 똑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본질에 따라 행동하고 존재할 수 있는 선한 인간이 되는 것은 인간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스피노자와 이간에게서 우리는 많은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생각은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인간 정신의 본질은 태어나기 전에 절대자에 의해 결정되어있으며 각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생각에 따르면 선하게 행동하고 행복하게 존재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 또는 정신에 달려 있다. 인간은 누구나 본성을 타고난다. 그러나 이간의 이러한 본성을 밝히는 마음, 또는 스피노자의 그것을 인식하고 사랑하는 정신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도달한 개인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Nach der Meinung des Spinozas ist das Wesen des Menschen als ein Modus Gottes und der Geist des Menschen als ein Teil des unendlichen Verstandes Gottes. Der Mensch besteht aus Geist und dem Koerper und alle Einzeldinge haben einen Geist, wenn auch der Geist je verschieden ist. Der menschliche Geist hat adaequate Erkenntnis des ewigen und unendlichen Wesen Gottes. Lee Gan bemueht sich um das gute Wesen des menschen Geistes zu begruenden, das alle Menschen aprori haben. Damit konnte er behaupten, dass alle Menschen das gleiche Wesen haben und dass es vom Menschen haengt, einen guten Menschen zu werden, der nach dem eigenen Wesen sein und handeln kann. Spinoza und Lee Gan haben eine gleiche Idee des menschen Geistes, die vor der Geburt von einem Absoluten bestimmt ist und in jedem Menschen immanent ist. Nach ihrem Gedanken haengt es vom Geist jeses Menschen, gut zu handeln und gleuckselig zu sein, weil es die Sache des Menschen ist.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19세기 조선에서 동서의 학술을 종합하여 “기학(氣學)”이라고 하는 독창적인 사상체계를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진 실학자이다. 최한기는 “심학(心學)을 전공하는 자는 제규제촉(諸竅諸觸; 감각기관)을 비루하게 여기고 성명(性命)의 이치를 탐욕스레 추구한다.” 라거나 “심학의 사람은 안을 지키고서 밖을 잊고…….”라고 하듯이 심학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많이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저술을 자세하게 검토해 보면 그는 오히려 심학에 조예가 깊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왕양명(王陽明)의 사구교(四句敎) 해석을 둘러싼 소위 “천천증도(天泉證道)”는 중국 양명학파가 분열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지만 최한기는 이것에 대해 그 당사자인 왕기(王畿)와 전덕홍(錢德洪) 양자의 설을 조정하는 안을 제시했다. 그는 또 심성의 선악허실(善惡虛實)을 둘러싼 기존의 의논에서는 사람이 태어난 후의 경험이 무시되고 있는데 경험 이전의 인간 본성에 대한 의논은 본질적으로 불가지론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람이 양지(良知)를 타고난다고 하는 설은 기질의 편벽됨을 살피지 않는 채 자기 기질에 따라 판단한 것을 “양지”라고 착각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점에서 그는 아프리오리인 천부(天賦)의 앎은 존재하지 않고 사람이 그것으로 여기는 것은 기실 태어난 후의 견문에 의해 얻어지는 것일 따름이라는 생각을 도입한다면 심학에 계발하는 바가 있게 되고, 후세 사람들의 노고도 줄여서 “심학지후(心學之後)” 즉 “포스트 심학”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한기가 말하는 “기(氣)”의 개념은 동양의 전통적인 그것과는 매우 이질적인 것이지만 기학의 근간인 “기”, “신기(神氣)”의 기원에 대해서는 종래 그다지 많이 연구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양명학의 “양지”로부터 천지만물을 일체로 삼는 우주의 본체라는 측면과 몸의 주재로서의 측면을 이어받은 한편으로 사람이 타고난 도덕성의 측면을 제거한 것이었다. 최한기는 감각기관으로부터 받은 자극이 영혼에게 전해지고 지각과 판단, 그리고 호오의 감정이 일어난다고 하는 생각을 한역 스콜라철학의 아니마론에서 배웠다. 한편 본질적으로는 순수하고 맑디맑은 질을 가지고 있으나 감각적 경험에 “습염(習染)”되는 것으로 지각과 판단, 호오의 감정을 일으키는 인식의 기반으로서의 사람의 신기는 정제두(鄭齊斗)를 비롯한 조선양명학(朝鮮陽明學; 강화학파)의 사람이 타고난 것으로 선에도 악에도, 요순(堯舜)도 범부(凡夫)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간직하는 생지리(生之理)로서의 “순기(純氣)”, “정신진기(精神眞氣)”의 사상으로부터 이어받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崔漢綺(1803~1877)は、19世紀の朝鮮において、東西の学術を綜合して「氣學」という独創的な思想体系を作り上げたことで知られる実学者である。 崔漢綺は「心學を專攻する人は諸竅諸觸を以て卑屑と爲し、性命の理を貪究す」とか「心學の人は内を守りて外を遺し……」などと心学に対し批判的な意見を多く述べている。しかし、彼の著述を仔細に検討してみると、彼はむしろ心学に造詣が深かったことが分かる。たとえば王陽明の四句教の解釈を巡る所謂「天泉証道」は、中国陽明学派が分裂する契機となった事件だが、崔漢綺はこれについて、当事者である王畿と銭徳洪の両者の説を調停する案を提示している。彼はまた、既存の心性の善悪虚実をめぐる議論で人が生まれた後の経験が無視されているため、経験以前の人間本性についての議論は本質的に不可知論であると主張した。また人が生まれながらに良知を有するという説は、気質の偏りを反省しないまま、自己の気質に基づいて判断したことを「良知」と思いなす危険性があると指摘した。 これらの点から彼は、アプリオリな天賦の知は存在せず、人がそれとみなすものは、実は生まれて以後の見聞によってもたらされるものに過ぎないという考え方を導入するならば、心学に啓発するところがあり、後の人々の労苦をも減らして、「心学之後」すなわち「ポスト心学」が興るだろうと主張した。 崔漢綺のいう「氣」の概念は東洋の伝統的なそれとはかなり異質なものであるが、氣學の根幹をなす「氣」「神氣」の起源については従来あまり研究されてこなかった。 だが実は、それは陽明学における「良知」から、天地万物を一体と為す宇宙の本体という面と、一身の主宰という面を受け継ぐ一方で、人が生まれつき持つ道徳性という面を取り除いたものである。 崔漢綺は、感覚器官からうけた刺激が魂に伝わって、知覚と判断、および好悪の感情を生じるという考え方を漢訳スコラ哲学のアニマ論から学んだ。一方、本質的には純粋で澄み切った質を持っているものの、感覚的刺激に「習染」することで知覚や判断、好悪を生じる、認識の基盤としての人の神氣は、鄭斉斗を始めとする朝鮮陽明学(江華学派)の、人が生まれながらに持っている、善にも悪にも、尭舜にも凡夫にもなる可能性を秘めた生の理としての「純気」「精神真気」の思想から受け継がれたものと考えられる。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19집 2009.08 pp.29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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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王陽明(1472-1528)의 心學 사상 가운데 心卽理說(37세) 제창한 이후인 知行合一期(38세)에서 보이는 ‘心’의 意味를 재검토하여 그의 심학체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려는 것이 목적이다. 陽明의 심학은 어느 특정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생의 전체를 통해서 단계적으로 변천하여 나아가게 된다. 양명은 心卽理說을 제창하고 그 이듬해인 38세 때 ‘知行合一說’을 제창하게 되는데, 이러한 知行合一說은 陽明의 생애 가운데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心卽理說이 朱子의 格物說과 性卽理說에 대한 반론이라면, 知行合一說은 주자의 ‘先知後行說’에 대한 반론으로 볼 수 있다. 陽明에게 있어 知行合一說은 ‘知’와 ‘行’이 바로 ‘心’의 활동이며, 또 이러한 ‘心의 활동은 다름이 아닌 理의 드러남’이라는 心卽理說에 입각하여 卽知卽行의 知行合一說을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陽明의 知行合一說은 ‘知行本體’가 곧 良知本體’라는 점에 기초하여 전개되는 것으로 이는 실질적으로 心卽理의 전제하에서 논해지는 것이다. 양명의 知行合一說에서 보이는 ‘心’은 知․行을 주체적으로 총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단순한 행동이나 실천적인 영역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감정까지 포함하는 ‘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은 王陽明의 知行合一期에 보이는 ‘心’의 의미를 傳習錄��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知行合一說의 成立과 意味, 그리고 知行合一期에서 나타나고 있는 ‘心’의 구체적인 의미를 순차적으로 고찰하여 인간 행위 주체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중점을 두고 知와 行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consider the meaning of ‘Xin’ which is shown in chin-hsing ho-yi, which was after Lu, Chiu-Yuan among the Wang Yang-Ming(1472-1528)'s mind theories. Yang-Ming’s Mind theory is not fixed in a certain period but is establishing by stages through his whole life. Yang-Ming expressed Lu, Chiu-Yuan and next year, his age 38, demonstrated chic-hsing ho-yi. Like the theory of chic-hsing ho-yi was concluded when he was doing with full of vigor in his life. It seems that Lu, Chiu-Yuanis against ChuHsi Keok Mul and seong jeuk ri, chin-hsing ho-yi is against ChuHsi seon ji hu haeng. What meant chic-hsing ho-yi theory to him, he asserts ‘Immediately Chin Immediately hsing’ which is based on ‘Lu, Chiu - Yuan’ theory that is ‘Chin’ and ‘ hsing’ is the action of ‘Xin’ and that action of ‘Xin’ is revelation of ‘Li’. His chic-hsing ho-yi theory is based on the point of ‘Chin - hsing Reality’ is ‘Liang-zhi Reality’ that is obviously considered by an assumption of ‘Lu, Chiu - Yuan’. In his chic-hsing ho-yi theory, ‘Xin’ seems to manage ‘chin’ and ‘hsing’ subjectively. But ‘Xin’ is shown not only limited in simple actions or practical fields but also implicated human being’s mentality and emotions. Therefore, this thesis tried to find out the meaning of ‘Xin’ which is shown in Yang-Ming’s chin-hsing ho-yi through ‘Chuan Shi Lu’. For that, chin-hsing ho-yi establishment and its meaning, the specific meaning of ‘Xin’ which is revealed in chin-hsing ho-yi in order. And it tried to look over the relation of ‘chin’ and ‘hsing’ focusing on where is the subject of human being’s behavior.
근세 일본의 사유구조의 치료학 - 소라이학의 경계인식을 시야에 넣고 -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제19집 2009.08 pp.31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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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상사에서 고학파(古學派)의 출현은 정주학의 해체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학파는 이토 진사이(伊藤仁齋)를 거쳐 오규 소라이(荻生徂徠)의 고문사학(古文辞學)에서 정점에 달한다. 주자학의 극복과 해체의 끝에 출현한 학문이 소라이학이라고 볼 수 있다. 소라이는 주자학의 사서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육경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육경에 제시된 성인의 도를 예악으로 간주하면서 원시 유학으로의 복고를 주장했다. 소라이는 주자학적 사유 위에 출발한 도쿠가와 시대를 ‘제도 없는 시대’라 단정하면서 예법 질서위에 정치 사회 문화를 포괄한 제도의 제정을 역설했다. 본고는 소라이 당대의 사회 문화 풍속에 시선을 고정해두고 소라이가 주자학적 사유 구조의 병폐를 치료하여 고대 성인이 제작한 예법 질서로 돌아가려한 이유를 분석했다. 소라이는 전 민중을 토착화시키고 그 위에 예법 질서를 구현하여 문화 풍속을 치료하려는 구상을 가졌다. 소라이는 예법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서 주자학적인 수양론을 비판하고 선왕이 제작한 예악이라는 외부적 힘에 의한 수양을 강조했다. 인성 내부에는 도덕적 판단 기준이 없기 때문에 고대 선왕이 제작한 성인의 도에 판단 기준을 둔 것이다. 소라이가 구상했던 것은 집단을 어떤 환경에 노출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와 그 해결책의 모색이었다. 소라이의 시선은 개인보다는 사회 전체를 시야에 넣은 전체적 관점에서의 사회 문화 풍속의 교화에 있었다. 본고는 사상 문화의 집단적 치료라는 관점에서 유학의 기능을 모색해 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시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日本思想史における古学派の出現は、程朱学の解体過程として理解できるだろう。古学派は伊藤仁斎を経て荻生徂徠の古文辞学の誕生で頂点に立った。朱子学の克服と解体に強い働きを懸けたのが徂徠学である。徂徠は朱子学の四書中心主義から離れて、六経中心主義を標榜し、六経に載せている聖人の道を「礼楽」と見なし、原始儒学への復古を主張した。徂徠は朱子学的思惟の土台の上で出発した徳川時代を「制度なき時代」と断定して、礼法秩序の上に政治、社会、文化を包括した制度の制作を強調した。 本稿は、徂徠当代の社会文化風俗を視野へ入れて、徂徠が朱子学的思惟構造の問題点を治療して、古の聖人が制作した礼法秩序に戻ることを主張した理由を分析した。徂徠は、全民衆を土着化させ、その上に礼法秩序を作り、文化風俗を治療する方法を構想していた。徂徠は誰もが聖人になるために設けられた朱子学的修養論を批判して、先王の制作した「礼楽」という「外部的力」による修養を強調した。人性内部には道徳的判断基準がないので、古代先王が制作した聖人の道に判断基準を置いたのである。徂徠の視線は、個人よりは社会全体を視野へ入れた全体的観点からの社会文化風俗の教化にあったと思われる。本稿は、思想文化の「集団的治療」という観点から儒学の機能を考えられる方法についての試論とも言えるあ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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