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통사적 유학사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저술은 1882년에 나온 송병선의 『패동연원록』이다. 조선말기에 시작된 유학사의 편찬은 식민지시기에 들어서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화되었다. 식민지시기에 편찬된 ‘유학사’는 장지연의『조선유교연원』과 하겸진의 『동유학안』이 대표적 이다. 본 연구에서는 장지연과 하겸진의 사상을 조명하고『조선유교연원』과『동유학안』에 내 포되어 있는 저항의식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장지연의 『조선유교연원』은 그 서술방식에서부터 ‘근대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 학파나 연원으로 분류하지 않고 유학사의 시대구분을 하고 있다는 점, 시대별 주요 논변과 학문적 사건을 제시한다는 점, 학파적·지역적 입장을 가능한 한 탈피하여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실학자나 양명학 자, 성리학에 비판적인 학자들까지 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패동연원록』보다 적극성을 띠고 있 다. 더구나 『조선유교연원』에서 제시하고 있는 학문적 사건과 논변들은 대부분 후일 유학 연구 자들의 핵심 연구 주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하겸진의 『동유학안』은 위정척사의 입장에 있는 도학자의 관점에서 서술된 학안체의 유학사이 다. 『동유학안』에서는 새로운 학파분류 방법과 아울러 그 학파별 특징을 잘 제시해 주고 있으며, 학문적·당파적 분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또 사화와 당쟁 등 유학이 정치 와 결합되어 나타난 부작용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하겸진은 장지연보다 전통적인 입장에서 유학을 되살리고자 하는 입장에 있었다. 이는 그가 유학적 예의를 국성(國性)으로 제시하 고 국성을 보존함으로써 국체를 되살릴 수 있다고 보는 관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두 저작에는 한계점도 존재한다. 이들은 조선시대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학자들까지 포용하고 있지만, 둘 다 퇴계 영남학의 학통에 속하는 유학자로서, 자파 중심의 유학사 서술에서 완전히 탈 피하지는 못했다. 또한 둘 다 조선왕조 개창의 이론적 바탕을 제시한 정도전을 ‘조선유학사’에서 완 벽히 배제함으로서 그들의 내면은 여전히 조선왕조의 신민임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유교연원』과 『동유학안』은 서술방식도 다르고, 구체적인 방법은 달랐지만 이 두 사람 모 두 우리민족의 정신적 바탕을 유학에 두고 민족정신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 한 점에서 볼 때 피식민 민족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어 저항을 무력화하고자 식민지배를 정당화하 려는 일제의 식민정책에 대한 강한 저항 의식이 이 두 유학사 저술의 촉발점이었다고 하겠다.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CONFUCIANISM RESEAT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설립연도
1993
분야
인문학>유교학
소개
유학연구소는 유학의 연구를 통해
(1) 先儒들의 학문과 사상을 연구한다.
(2)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킨다.
(3) 국내·외의 유학을 비교 연구하여 한국 유학을 심화시킨다.
(4) 학술문화 창달에 이바지한다.
(5) 유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21세기를 준비하는 인적자원을 배출한다.
간행물
간행물명
유학연구 [STUDIES IN CONFUCIANISM (The Journal of Confucianism Research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