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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문화 [Visual Culture]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국영상문화학회 [Korean Association for Visual Culture]
  • pISSN
    1598-1088
  • 간기
    연3회
  • 수록기간
    2000 ~ 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복합학 > 학제간연구
  • 십진분류
    KDC 660 DDC 770
제16호 (10건)
No
1

영화에서 사물의 미학 - 로베르 브레송 영화를 중심으로

서정아

한국영상문화학회 영상문화 제16호 2010.12 pp.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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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0원

본 논문은 영화의 존재에 대한 사유를 사물에 관한 분석을 통해 드러내 고자 한다. 영화에서 사물은 세트의 부분으로서, 혹은 상징적ㆍ내러티브적 인 의미를 갖는 드라마의 구성요소로 간주되어 왔다. 알프레드 히치콕, 야 스지로 오즈, 에른스트 루비치, 로베르 브레송 감독 등은 영화에서 사물을 비중있게 다룬 대표적인 감독들이다. 히치콕은 서사구조 내에서 사물의 내 재적인 의미를, 오즈는 사건의 변화의 기저에 놓인 반복적인 일상의 항상 성의 의미로, 루비치는 정서적인 효과와 미장센의 의미로 각각 사물들을 다르게 사용했다. 이에 반해 로베르 브레송은 위의 의미에서 더 나아가 영화서사의 연속 성과 일관성을 해체함으로써 영화 속 사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 다. 브레송의 영화는 사물의 내러티브적인 의미를 생산하는 대신 사물자체 의 물질성, 질료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점에서 사물은 이야기와 인간의 부재, 사물의 물질성과 현재의 순간성을 드러내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 화와 유사성을 띤다. 그러나 브레송 영화가 토대로 하는 불연속적인 몽타 주는 행위와 사물, 내러티브와 비내러티브, 현재성과 부재성을 분리시켜 양자 간의 간격을 심화시킨다. 이 간격은 하이데거의 존재의 드러남이라는 실재개념과 유사한 브레송의 실재가 드러나는 장소이다. 물질적이고 비서 사적인 사물은 하이데거의 반 고호의 신발에 관한 분석처럼 그 자체로 형 이상학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 간극에서 형이상학적인 물음 을 던진다. 본 논문은 영화에서 이러한 사물의 분석을 통해 영화가 실재를 어떻게 철학적으로 사유하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This paper aim to reveal the presence of the reality through the analysis of the object in the movie. The object in the cinema has considered as a set of decor or as symbolic meaning in the narrative drama. The cinema of Robert Bresson is constantly in the negativity of the represented image. The object in the cinema of Bresson, without pressing on the narrative role and the symbolic meaning, contributes to split up the coherence and the continuity of the cinematic narrative. Compared to the Dutch still life in the XVIIth century, the peculiarity of the object in the films of Bresson, is his non narrative presence. The material and concrete object turns generally towards both aspects : on one hand, the object disconnects from the act and from the event, and the disconnection involves in the question of discontinuity. On the other hand, by the composition with a part of the body, the object produces the act and the event which create the narrative in a fragmentary way. This discontinuity and the fragment is the way, for the object, of presenting the reality. Our study will devoted to approach how the material and not narrative object contribute to the appearance of the reality.

2

1930년대 한국 언론의 중국 영화 인식

한성구

한국영상문화학회 영상문화 제16호 2010.12 pp.4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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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0원

본 논문은 1930년대 한국 신문에 실린 중국 영화에 대한 평론 보도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인식한 중국 영화에 대한 입장을 서술하고 의미를 분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일제 강점기라는 문화적 침체기에 놓여 있던 한국 영화계에서는 당시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헐리우드 영화를 능가 하는 국산 영화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자본의 열악함과 제작 인프라의 부족, 총독부의 검열 정책 등으로 조선의 영화는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조금씩 소개되어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 영화는 동양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던 조선의 입장에서 볼 때 참고 대상으로 기대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의 국내 언론 기사를 살펴보면, 대 체로 한국 영화보다는 중국 영화가 우수하고, 중국 영화보다는 서양 영화가 우수하다는 취지의 기사들이 많다. 물론 이것은 식민지의 입장에서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에 대해 갖게 되는 열등감, 혹은 자조적인 심리를 반영하 는 것이기도 하지만 점차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중국 영화의 발전 가능성을 전망하고 한국 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했다는 점은 고무적인 것이라 하겠다.

This paper focuses on describing and analyzing Korean interpretation about Chinese movies in 1930s as examining critiques articles about Chinese movies. Under Japanese Ruling Era, Korean movie world had a duty to make more excellent films than Hollywood ones that were sensationally popular to overcome cultural depression. However, Korean movies failed to make a breakthrough because of lack of funds, infrastructures, and censorship of Japanese Government General, etc. Under these backgrounds, Chinese movies started to be introduced gradually, and those were expected to be Korean models for identities of Eastern traditional values. But there were many articles which said Chinese movies were better than Korean ones, and Hollywood’s movies were better than Chinese ones. This, of cause, may reflect complex or self-mocking feeling to U. S. and other Western countries as a colonial people, but in other word, it can be very encouraging on account of expecting Chinese movies’ development through objective analysis and seeking Korean movie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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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mparison of Two Adaptations of Romeo and Juliet (1968 & 1996)

Yong-Won Choi

한국영상문화학회 영상문화 제16호 2010.12 pp.8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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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원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표적 각색(adaptation)인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 감독의 1968년판과 바즈 루어만(Baz Luhrmann) 감독의 1996년판을 비교해 보았다. 우리에겐 각각 올리비아 핫세와 레오나 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훨씬 잘 알려져 있다. 두 각색에는 분명 큰 차이 가 있다. 28년의 세월 동안 배경은 이탈리아 중세 도시에서 현대의 멕시코 풍 메트로폴리탄으로, 칼은 총으로, 편집 커트는 훨씬 짧아졌으며 배경음악 은 낭만적 발라드에서 강렬한 비트의 MTV 록 스타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버전은 똑같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특히 후자는 디카프 리오를 최고의 스타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둘다 시공간을 뛰어 넘어 활자 문학(Written Literature)을 영상문학(Visualized Literature)으로 성공시킨 대 표적인 예라 하겠다.

4

Two Dangerous Liaisons: a Korean twist on the French classic Dangerous Liaisons

Christophe Gaudin

한국영상문화학회 영상문화 제16호 2010.12 pp.11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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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0원

본 연구는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하여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이재용 감독의 영화작품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 사>을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위험한 관계>와 비교ㆍ분석함으로써 자 부심, 사랑, 수치 등의 보편적인 감정들이 동ㆍ서양의 문화적 차이와 서로 다른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되는가를 분석하고 있 다. 이 글은 메르퇴이 부인, 발몽, 투르벨 부인 등 원작소설의 주요 등장인 물에 대한 분석을 축으로 하여 두 편의 영화에서 이들이 그려지는 방식과 감정이 드러나는 방식의 차이를 고찰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유교 중심 의 문화와 기독교 중심의 문화에서 상이한 형태로 발현되는 윤리적 종교 적 이념적 가치의 대비를 보여준다. <스캔들>은 한국영화가 서양문화의 다양한 측면들을 얼마나 효과적으 로 소화할 수 있는지를 증명함과 동시에 유럽과 미국의 고전들의 독창적 재해석이라는 탁월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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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영상기구, 카메라 옵스쿠라의 문화사적 의미

이상면

한국영상문화학회 영상문화 제16호 2010.12 pp.13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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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0원

본 논문은 그동안 국내에서 연구가 미흡했던 최초의 영상기구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를 영상이론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근대문화에 서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르네상스 이후 카메라 옵스 쿠라의 역사ㆍ문화ㆍ과학적 발전과정을 추적하고, 화가들의 미술작업과 연관되며 사용된 사례를 검토한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는 중세이후 천문학자들의 개기일식 관찰과정 에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르네상스 이후 다 빈치와 델라 포르타의 영상 실험, 아타나지우스 키르허, 요하네스 차안 등과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이 론적으로 발전되었다. 17세기 후반에는 ‘휴대용 카메라 옵스쿠라’가 제 시되고 실용화되기 시작했으며, 화가들이 스케치와 드로잉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인간 스스로 世界像을 관찰하려는 점에서 탈 중세적이고 시각중심주의적인 근대 과학정신을 반영하는 매체이며, 자연 세계의 모습을 인공적 이미지로 보여주는 점에서 최초의 영상기구이다. 국내에 카메라 옵스쿠라는 조선 후기 正祖 때 北京을 갔다온 燕行使들 에 의해 유입되었으며, 정약용을 비롯한 서구 학문에 개방적인 실학자들에 의해 적극 수용되었고, 당시 초상화의 대가 이명기는 카메라 옵스쿠라를 이용해서 功臣像을 그리기도 했다.

This thesis investigates the cultural meanings of the first optical instrument, Camera obscura, in the pre-modern age, while it explains the development as well as the use of the Camera obscura in Europe and Korea. For this purpose the thesis traces the significant phases of the historical developments of the Camera obscura from L. da Vinci, G. B. della Porta, D. Barbaro, A. Kircher to J. Zahn etc. The Camera obscura was not only the symbolic instrument of the modernism in the sense that human being wanted to observe the outer world by himself and to be freed from the viewpoint of the christianity, but also was the forerunner of the modern visual culture, because it first time reproduced the artificial image of the natural world. Since the second half of the 17th century the box-type reflex Camera obscura had been produced, it began to be used as aid to drawing for painters like J. Vermeer, A. Canaletto and J. Reynolds etc. throughout Europe. It tells the evidence of the close relation between art and technology in the pre-modern age. Around the end of the 18th century the Camera obscura was brought to Korea, the closed country of the Fareast, by the scholars of the so-called ‘Realist school’ (Silhak-pa) who went to Beijing to acquire knowledges on the Western science from the European priests. In 1780s 최초의 영상기구, 카메라 옵스쿠라의 문화사적 의미 161 Yak-yong JUNG, one of the representative scholars of the Realist school, experimented the Camera obscura, and then, it was used for sketches of higher aristocrats’ portraits by the supreme portrait painter of that time, Myoung-ki LEE. Those were possible only under the reign of the culturally liberal and reformative King, Jung-jo (ruled 1776-1800), and after his retreatment the inquiry of the Camera obscura had been dimished. It is not a historical coincidence that the Camera obscura could be examined and used in the period of the Enlightment both in Europe and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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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0원

프랑스 고유의 비판적 토론정신, 그리고 교육과 문화보급의 가치를 중 시하는 사회정신은 프랑스적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요인들로, 이러한 토론성과 문화적 가치 중시와 같은 프랑스적 지적 전통 문화는 20세기 중반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적 매체로 자리 잡은 텔레 비전의 발전 과정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 텔레비전은 1949년 국영 텔레비전으로 출발하여 1959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줄곧 공영방송의 위치를 고수 하였는데, 초기에 프로그램 편성과 제작 방식을 ‘발명’해 가면 서 프랑스적 텔레비전의 얼개를 마련한 이들은 바로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었다. 이들 제작자 대부분은, 텔레비전은 시청자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 드는 ‘이성적인’ 프로그램을 방송해야 한다고 여기는 동시에 TV가 문화와 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좌파적 의식을 지닌 지식인들이었다. 이러한 방송인들의 문화와 교육에의 지향성에, 방송은 국 가 주도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민영방송 설립을 불허해 온 국가의 의지가 더해져 공영방송의 기초가 탄탄히 다져졌고, 이 속에서 문화 지향 적이며 ‘이성적인’, 프랑스적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프 랑스 텔레비전은 이렇게 초기부터 ‘이성적 TV’로의 발전 구도를 갖추어 성 장해왔던 만큼 상업적인 민영채널이 들어선 1980년대 이후에도 흔들림 없 이 ’이성적‘ 콘텐츠의 제작ㆍ기획 전통을 이어나가게 된다. 프랑스 텔레비 전이 ‘이성TV’의 모델로 발전해 나간 반면 한국 텔레비전은 ’감성TV‘의 형 태로 발전해 나간다. 1950년대 설립 초기부터 상업 텔레비전 모델에 입각 한국 텔레비전 방송의 정체성 193 하여 성장해 온 한국 텔레비전은 방송사의 생존이 시청률에 걸려 있었던 만큼 그 프로그램 제작과 기획이 시청자의 관심을 가장 쉽게 끌 수 있는 방식인 감정에 대한 호소와 자극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이유로 한국 텔레비전에서는 오락장르와 드라마 픽션 장르가 타 장르에 비해 양 적, ‘질적’으로 두드러진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후 1990년대 자본개방으로 광고시장의 극대화를 초래한 세계화 정책, 그리고 2000년대 드라마 중심의 ‘한류’ 열풍과 함께 한국 텔레비전은 ‘감성적인 오락TV’로 확고히 그 발전 구도를 굳히게 된다. 반면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된 권위주의적 정권의 방송정책이 ‘사회적 토론장 형성의 억압, 오락의 증진’ 이었던 만큼 한국 텔레비전에게 ‘감성적’인 오락 프로그램의 발전과 비례되는 ‘이성적‘ 프로 그램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권위주의적 정권이 물러난 1990년대 이후에는 신경제주의 정책과 함께 방송사들 간의 경제적 경쟁관계가 극대 화되어 방송의 오락성이 더욱 심화되어지고, 결국 한국 텔레비전에게 ‘사 회 문화적 공익추구’ 라는 사회적 매체로서의 임무는 당장은 실현되기 어 려운, 하지만 언젠가는 풀어야 할 추상적인 개념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La culture de discussion, une des cultures les plus françaises parmi d’autres, a eu une influence sur la formation et le développement de la télévision française. Inaugurée en tant que service d’Etat en 1949 puis devenue service public dès 1959, cette télévision, “inventéé” par les réalisateurs télévisuels de gauche avec l’idée claire d’instruire la population et de l’amener à penser, se concentre sur la production des programmes rationnels et éductifs, c‘est-à-dire bien bénéfiques à l’égard du peuple français. Ainsi les émissions de discussion bien rationnelles et celles de divertissements à la fois éducatives se développent. A l’époque la rationalité n’hésite pas à se manifester même dans les fictions dont les réalisateurs avaient en effet l’intention d’éloigner le téléspectateur de l’émotionnel tout en traitant les sujets bien divers et parfois bien sérieux, lesquels feraient finalement penser et réfléchir face au petit écran. Avce l’idée, ou plut̂ôt le désir des professionnels de construire une télévision aussi culturelle que rationnelle, les programmes progressent et adoptent petit à petit la forme de discussion comme concept basique de production et ce quelque soit leur genre. Bien que les chaînes commerciales apparaissent dès les années 1980, cette culture de “rationaisation” est bien gardée par les 한국 텔레비전 방송의 정체성 195 professionnels de télévision, puis on la voit, cette culture, soutenue et réconfortée par l’Etat qui créent par la suite deux chaînes éducatives et culturelles, France5 et Arte, dans les années 1990. Ainsi la télévision française se constitue comme une “télévision raionnelle”. Contraiement à la télévision française, celle de la Corée progresse vers un model de “télévision émotionnelle” qui est en fait un corollaire du dévéloppement de la télévision commerciale. En effet, la télévision coréenne se dévelppe dès le début selon une logique concurrentielle et se concentre alors sur la production des séries des fictions, dites dramas en Corée, genre qui attire facilement l'attention du téléspectateur et qui attire donc celle des annonceurs également. La télévision coréenne évolue ainsi vers une télévision de divertissement et d’émotion d’autant que l’Etat autoritaire, perdurant jusqu’à la fin des années 1980, interdit toute discussion sociale sur ce petit écran et n’y intervient qu’à l’occasion d’exercer la répression sur les programmes qui dérangent l’autorité étatique. Depuis les années 1990, avec la logique concurrentielle du marché accrue avec la libéralisation, la télévision se concentre essentiellement sur le développement du divertissement qui ne provoque alors que des rires et des pleurs et qui force le public à se plonger dans l’émotion, éléments fondamentaux pour faire augmenter l’audimat. La télévision coréenne se voit constituer ainsi une “télévision d’émotion”, laquelle a tendance de délaisser ses fonctions siociales en tant que lieu de l’affrontement de l’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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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0원

본 연구에서는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아이돌의 활동상을 브랜 드 포트폴리오의 개념을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수적 우위를 보이고 있는 21 세기 아이돌 그룹의 특징은 리드 보컬을 중심으로 구성되던 이전의 그룹과 달리 구성원 모두가 그룹 전체 브랜드를 구성하는 하부 브랜드로서의 역할 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데뷔초기에는 그룹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에이스 멤버를 중심으로 팀의 인지도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팀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면 구성원 전체로 그 활동이 확대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이들의 활동 영역은 위에서 분석했듯이 드라마와 예능, 영화, 뮤지 컬 등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10 대들만의 지지층을 확보했던 이전 그룹과 달리, 전 연령층에서 고른 인기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 아이돌 그룹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는 이들의 방송 출연 영역이 일부 가요 프로그램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비롯하여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 다. 뿐만 아니라, 아이돌의 방송 출연 등 다양한 경력 개발은 이전에 인지도 제고를 위해 마케팅의 한 수단으로 방송활동을 하던 일회적 홍보활동과도 양상이 다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들은 꾸준히 연기 또는 예능 프로그램 에 몰두한다. 이는 그룹의 생명력이 길다는 특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On this study, I have analysed the divers career of Korean “idol star” by the portfolio concept. Compared with the former group which is leaded by a vocal performer, recent Korean idol group is characterized that each member played an important role : an ace has been followed by other members. Particularly, each member played in different media genres : TV dramas, variety programs, movie, and musical by their capability not for just marketing strategy but for continuous career. It’s different from what the former group had done. Furthermore, they gain popularity in every ages, from teenager to middle ages. This is also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Korean recent idol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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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 Constellations: Imagining the City with Walter Benjamin

Graeme Gilloch

한국영상문화학회 영상문화 제16호 2010.12 pp.227-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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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0원

본 연구에서 필자는 유태계 독일 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 문화이론가로 20세기의 중요한 사상적 토대가 된 발터 벤야민의 저작들에 대한 몇가지 사유를 제시한다. 특히 현대성의 발현지로서의 도시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연구들에 초점을 맞추어 벤야민의 ‘도시적 상상’의 측면에 대한 탐구를 전 개하고 있다. 이러한 탐구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벤야민 의 베를린 시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게오르그 짐멜의 사유와의 관계에서 진행되며, 다른 하나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리듬애널리시 스’ 개념과의 연관 속에서 파악되고 있다. 논문은 도시에 대한 벤야민의 저작들 중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마르세 이유와 독일의 베를린에 관한 글들을 바탕으로 두 도시에 관한 그의 글에서 현대성 및 현대적 경험, 이미지와 상상에 관한 이론적 성찰을 이끌어낸다.

9

9,900원

본 연구는 필자가 프랑스의 중등학교에서 20년 이상 교사로 재직하며 얻은 풍부한 실제적 경험과 구체적 문제의식을 토대로 90년도 이후 교육부 에 의해 시행된 정보화 교육 시스템 및 디지털 통신ㆍ영상매체 교과과정에 대해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학생들의 미디어 기기 활용실태가 교육관련 정부기관이나 교사, 학부모 협의회 등의 기대수준과 격차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소년들의 유희 적 욕구와 교사 및 부모의 교육적 관심의 간극을 이해하기 위해 필자는 마 샬 맥루한, 에드가 모랭 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인문학적 성찰과 담론을 매개로 디지털 미디어의 비약적 변화양상과 프랑스 교육시스템에 대한 접근 을 시도한다. 본 연구는 또한 19세기 후반부터 이루어진 프랑스 공교육의 비 종교화 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행된 주요 교육법안과 정책들을 일목요연 하게 제시하며 프랑스 교육시스템에 대한 심도있는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사이버네틱스를 비롯한 인터넷 정보통신 신기술이 교사ㆍ학부모ㆍ 학생의 관계 및 교육행정 전반에 미치고 있는 변화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함으로써 이미지를 통한 미디어 교육의 새로운 전망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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