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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일본학 [THE HALLYM JOURNAL OF JAPANESE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Institute of Japanese Studies]
  • ISSN
    1738-5334
  • EISSN
    2466-1015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6~2017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제28집 (8건)
No
1

平安朝物語における「遺言」の考察 :当時の社会的実状の反映という視点から

尹勝玟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28집 2016.05 pp.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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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 시대 작품 속에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최후 심경을 밝히는장면이 많은데 이 때 남긴 메시지가 바로 유언이며, 이 유언은 이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헤이안 시대의 유언의 양상을 보면, 임종을 앞둔 사람이 자기 자식의 장래를 염려하여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손의 후견을 맡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후견의 위탁에는 당시 일부다처제라고 하는 결혼제도에서 발생한 「계모담」이 그 바탕에 있다. 또 다른 패턴으로서는 딸의 불안정한 장래를 염려하는 부모의 심정에서 나온 유언도 존재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상반된 경향이 보여 진다. 일가의 번영을 기원하고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결혼이나 천황가에 시집가는 것을 명하는 유언이 있는반면, 결혼보다도 부모의 죽음 후 그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강력히 경계하는 유언도 있다. 이러한 유언이 나타난 배경에는 딸의 장래에 가문의 번영을 건 시대배경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섭관 시대가 최전성기를 맞이한 당시 시점에서 후지와라 미치나가가 강력한 권력을 잡게 되자, 황태자 및 천황과의 결혼을 통한 일가의 번영은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이 상기의 서로 상반된 유언을 탄생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유언은 작품의 구상과도 관련을 가지면서 예언이나 꿈과 같은 사항과 결부되어 모노가타리를 전개시키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유언은 모노가타리의 구상 하에서 작품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주제를 완성시키기 위한 포석 내지는 복선으로서의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유언의 묘사에는 헤이안 시대 당시의 실상이 폭넓게반영되고 있으며 본고의 고찰을 통해 이 점들이 확인되었다고 생각된다.
Heian narratives encompass a number of scenes evoking a grief or a sorrow of those who face a death and those who surround them. A “will” is the very final message written by a dying person to express his/her feeling or thought, and it deeply affects those who surround him/her. In Heian narratives, the most common pattern is where a person facing a death concerns his/her remaining child and asks his/her most reliable person to take care of the child. What underlies this type of commission is “Mamako Ijime Tan,” derived from the polygamy marriage system at that time. The word “Kouken” changed its concept around at the 11th century, and this meaning change presents itself through the depiction of “will” in the Tale of Genji. Another observed pattern is where a parent concerns his/her noble daughter. This type of will displays two differing tendencies. That is, whilst wills in some stories ask a daughter to get married for family-thriving purposes, wills in other stories strictly caution the remaining family not to dishonor the parents. The emergence of such wills is based on the social situations of the era, where the future of a family is dependent upon the future of a daughter. In the times of Fujiwara Michinaga, who grasped strong powers at the peak of the Sekkan Era, however, such a dependency no longer held, and this would be why the latter tendency arose. Wills are related to the structure of narrative, and, together with prophecy and dreams, it points towards a direction of a story. It also insinuates the theme of the story. Wills, as depicted in Heian narratives, profoundly reflect the social situations of the Heian Era.
平安朝物語作品のなかでは、死を前にした人とこの世に残される人々との悲しさや切なさ がよく感じ取れる印象深い場面が多い。その際、死を前にした人が最後に自分の心境を表す メッセージが遺言であり、残された人々に多大な影響力を持つ。平安朝物語における遺言の 様相をみると、まず最も一般的なパターンは、臨終に向かった人が我が子の身の上を案じ、 最も信頼できる人物に子孫の後見を依託する場合である。こうした後見の依託には、当時の 一夫多妻制という結婚制度から派生した 「継子いじめ譚」がその根底に流れている。そして 「後見」という言葉も十一世紀を前後してその概念に変化がみられるが、このような後見の意 味変化は 󰡔源氏物語󰡕では遺言を通して表れている。 別のパターンとして、姫君の不安定な境遇を案じる親心から行われた遺言も存在する が、そこには二つの相違する傾向がみられる。一家の繁栄を念願し、それを達成する方法と して入内や結婚を命じる遺言がある反面、入内や結婚よりも自分の死後の不名誉を心配し、 親の面目を潰さないように強く戒める遺言もある。こうした遺言が現れた背景には、娘の将 来に家門の繁栄を賭けた時代背景があると思われる。しかし、摂関時代が最盛期を迎えて藤 原道長が強力な権勢を握る時期になると、入内を通した家の繁栄はもはや不可能となり、そ れが上記の相違を生じさせた理由とも考えられる。 遺言は物語の構想とも関わりを持ち、予言や夢などと結びついて物語を展開させる一つ の原動力となっている。遺言は、物語の構想のもとで物語の方向性を決定し、主題を完成 させるための布石、伏線としてその役割を果たしている。そして、文学は時代を映す鏡とも 言われているように、こうした遺言の描写は平安時代当時の実状を色濃く反映しており、こ うした事実が本稿の考察を通して確認できたと思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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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Understanding the Court Dance Tradition and its Transmission in Korea and Japan : The Meaning of Siyong

Jung-rook, SEO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28집 2016.05 pp.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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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궁중춤의 전승에 대한 상이한 태도에 관해 심도있게 조사하고 그 차이점의 이유을 추정해 보고자 했다. 한국의 경우, 왕조의 교체 시, 이전왕조를 철저하게 배격하기 보다는 계승자임을 자처하곤 하였는데, 이러한 태도는 중국의 왕조 교체시 나타나는 현상과 매우 다르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왕조들은 이전 왕조의 전통 중 자신의 새로운 통치 철학에 부합할 경우 이를 전승하였는데, 이때 춤을 포함한 이전 왕조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 시대의 요구에 맞게이전 왕조의 전통들을 수정 혹은 재창작하였다. 반면 일본의 경우 만세일계의 믿음속에 왕조의 교체 경험의 부재로 궁중의 춤의 전승에 있어 보존에 초점을 맞추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양국의 시대에 따른 궁중 춤의 공연 레퍼토리의 변화와 또 여러 악서에서 보이는전문 용어 등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러한 차이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일본의궁중 춤 공연 러퍼토리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 전승에 있어 일본 궁중악이 성립된 헤이안 시대 이후 새로 추가된 작품이나 창작품의 거의 없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 시대에 따라 이전 시대의 작품들 중 일부가 전승되는 것과 함께 새로운 작품들이 창작되거나 재안무 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있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상당수의 춤 관련 문헌들에 보이는 ‘시용(時用)’이라는 용어는 한국의 궁중춤은 시대와 공연상황에 맞추어 변화가 가능하였고, 그 전승에 있어서도 유연하였음을 보여주는 예라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양국의 궁중 춤에 보이는 춤 레퍼토리의 변화에서의 차이점과 궁중악 관련 용어들의 비교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궁중악에 있어 전통을 대하는태도가 달랐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This study has delved into the different attitudes toward court dance transmission in Korea and Japan and tried to explain the reasons for them. To justify reformation, Korean rulers have often used the idea of the Five Virtues Cycle, specifically, the idea of generating. The application of this idea has created the notion that predecessors were considered producers, supporters and creators of the subsequent dynasties. The court dance transmission has been strongly influenced by this same idea. On the other hand, although the Japanese emperor was a nominal ruler, the Japanese believe they have had no experience of overthrowing any dynasty for more than 1000 years. This belief would have been decisive in influencing the conservative and passive attitude toward transmission in the Japanese court. The different attitudes are found in various ways, such as in the aims involved in the writing of performance theory books, terminology, and changes in the repertoires according to the period. While most old Japanese books of dance were written to preserve and transmit traditions and techniques, most Korean books like Akhak kwebŏm were written to serve purposes of innovation and re-creation. The main motivation to write Kyōkunshyō was to preserve gagaku performances. It may manifest the conservative tendency. In contrast, in Korean court dance the term siyong, ‘using by surrounding circumstances’, is commonly found. When we analyse changes in dance repertoires through the ages, we find a number of newly created and innovative pieces in the Korean court, reflecting the demands of the times, but it is hard to find new dance pieces in Japan after the Heian period. It suggests that attitudes toward court dance transmission in Korean and Japanese court dance are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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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본 연향악의 자국 내 재형성에 관한 연구 : 부가쿠(舞楽) <소마쿠샤(蘇莫者)>를 중심으로

박태규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28집 2016.05 pp.5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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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일본의 연향악 범주에 속하는 부가쿠 <소마쿠샤>를 중심으로, 그것의일본 내 재형성 등에 관해 살펴보았다. 서역의 <소막차>는 더운 지역에서 걸한발수 및 벽사를 기원하던 악무였다. 그러던것이 중국으로 전래돼 당나라 때에는 궁중과 민간으로 나뉘어 각기 다른 공연형태로발전하게 된다. 이후 중국의 <소막차>는 일본으로 전래돼 <소마쿠샤>로 정착하게 되는데, 일본에 전래된 것은 중국 궁중이 아닌 민간에서 공연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궁중악무로서 중앙에서 연행되던 <소마쿠샤>는 시텐노지의 전문악곡으로 정착하게된다. <소마쿠샤>가 시텐노지 전문악곡으로 정착하게 된 이유는 첫째, 본래 <소마쿠샤>가 지닌 12월의 걸한발수가 일본과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용신신앙에 근거한기우와 벽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악곡이 존재하였고, 둘째, 전래 당시 그 음악이 의식음악으로서 불교계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란 판단된다. 시텐노지 전문악곡으로의 이행 후 <소마쿠샤>는 시텐노지의 역사성과 오미네의 지역성이 반영된 일본만의새로운 모티브를 지니게 된다. 더불어 신선의 춤으로 재편되며 초기의 현실적이며직설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골계적이며 온화한 신선의 춤으로 변모해 가게 된다. 고대 한반도과 중국, 실크로드 문화를 근저로 형성된 일본의 부가쿠는 전파와 수용의 과정을 거친 후 다시, 모방과 자생의 경계에서 이른바 재형성의 길을 걷게 된다. <소마쿠샤>는 부가쿠 중, 일본 내 재형성의 과정을 거친 대표악곡이라 하겠다.
In its origin, Somakusha was an unique music/dance item derived from Central Asia region where it used to be performed to bring cold and rain as well as to ward off the evil in ancient time. Then it was spread to China and developed into two styles of the court and the folk at the time of Tang(唐) dynasty. Later, the folk style of Chinese Sumuzhe(蘇莫遮) was introduced into Japan to be settled as a court dance item named Somakusha. Afterwards, Somakusha became an exclusive dance number of Sitennoji(四天王寺) Buddhiat temple once after it stopped to be performed in the royal court. The reason for this change is that; first, its performance set in December to bring cold and rain was considered unfit for Japanese seasonal cycle, and there existed already a dance/music item for exorciam based on dragon-god worship. Second, it came to be applied as a ritual music/dance of Buddhist sort after it was introduced into Japan. Specially, once after it became confined to Sitennoji temple, Somakusha came to acquire new motif that reflects the historicalness of Sitennoji and the regionalism of Omine. Along with this, its nature and style are transformed into gentle hermit’s dance from the realistic, dynamic dance of earlier period. Likewise, Japanese Bugaku that had been formed out of ancient Silk Road culture including China and Korea followed the unique path of reformation in the boundary between imitation and creation after going through propagation and acceptance. Somakusha is a representative example that displays the process of reformation in Bugaku.
西域の<蘇莫遮>は本来乞寒潑水と辟邪を祈願する舞であった。それが中国に伝来して唐 の時代には宮廷と民間に分かれを持つようになる。以後、中国の<蘇莫遮>は日本に伝来し舞 楽<蘇莫者>になるが、日本に伝来したのは中国の宮廷ではなく民間のものであったと見られ る。 一方、宮中楽舞として雅楽寮で公演された<蘇莫者>は四天王寺の専門楽曲として定着す るようになる。<蘇莫者>が四天王寺の専門楽曲になった理由は、第一に、本来の<蘇莫者> の乞寒潑水が日本と合わなかっただけでなく、龍神信仰に基づく雨ごいと辟邪の意味を持つ 他の楽曲が存在し、第二に、伝来当時その音楽が儀式音楽として仏教界で使用されていたか らであると考えられる。四天王寺の専門楽曲になって以来<蘇莫者>は、四天王寺の歴史性 やの大峯の地域性を反映した日本独特の新しいモチーフを持つようになる。それから神仙の 舞として再編され、初期の現実的で直接的な性格ではなく滑稽で穏やかな神仙の舞として変 貌していくことになる。 古代韓半島や中国、シルクロードの文化を基にした日本の舞楽は伝播と受容の過程を経 て、再び模倣と自生の境界でいわゆる再形成の道を歩くようになる。<蘇莫者>は舞楽の中、 日本国内の再形成の過程を経た代表な楽曲であると言えよ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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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아사 가쓰에(湯淺克衛) 문학에서의 ‘조선시장’과 재조일본인 2세의 정체성

신승모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28집 2016.05 pp.8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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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사 가쓰에(1910∼1982)는 수원에서 자라 유소년시절을 보낸 재조(在朝)일본인2세 출신 작가로서, ‘이민’과 ‘개척’이라는 소재를 자신의 문학 안에서 형상화하면서그 누구보다도 조선을 다룬 소설을 많이 남긴 일본인 작가이다. ‘조선시장’은 수원을무대로 하는 유아사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보이는 중요한 모티프인데, 주목할 것은유아사 가쓰에의 작품에서 조선시장은 단순한 무대배경으로서 등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이자 서사 전개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등 거듭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공간으로 형상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유아사문학에서 조선시장이라는 시공간이 수행하는 역할과 의미를 규명하였다. 특히 본고는 조선에서 나고 자란 재조일본인 2세들이 점점 ‘조선화’되어가는 자신의 정체성을형성하는 과정과 조선시장이라는 시공간의 상관관계를 중점적으로 논의하였다. 그 자신 재조일본인 2세 출신인 유아사 가쓰에는 작품을 통해 조선이라는 장소에동일화하고 기존의 1세대들과는 구별되는 2세대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상화하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 조선시장은 점점 ‘조선화’되어 가는 재조일본인 2세들의 존재론적인 귀속의식이 긴밀히 연결되는 시공간으로서의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는것이다.
Katsue Yuasa(湯淺克衛, 1910∼1982) is a second-generation Japanese writer living in Korea who spent his childhood and adolescent years in Suwon, Gyeonggi Province. Yuasa as a Japanese writer dealt with and left behind more novels on Korea than anyone else by materializing the subjects, immigration and pioneer in his literary works. A “Joseon sijang,” or a Korean marketplace, is an important motif used by Yuasa as it appears in almost every work of his whose backdrop is often Suwon. What’s noteworthy is a Korean marketplace in Yuasa’s works doesn’t appear simply as a backdrop but plays an important role to materialize certain time and space; it is a place where important incidences take place or it becomes a turning point of an epic development. Thus, this study clarifies the role and meaning of a Joseon sijang as time and space in Yuasa’s literature. This study mainly discusses the process of their forming a sense of identity during which the second-generation Japanese who were born and raised in Korea become “Koreanized” and a correlation between a Joseon sijang and literary time and space. Through his works, writer Katsue Yuasa, the second-generation Japanese living in Korea, identifies his place with Joseon, the former name of Korea under Japanese rule, and materialized and expressed the collective identity of the second-generation who were differentiated from the former first-generation. Within in, a Korean marketplace holds a meaning and a role of time and space that closely connect the existential sense of belonging of the second-generation Japanese living in Korea becoming “Koreanized.”
湯淺克衛(1910∼1982)は水原で育ち、幼少年時代を過ごした在朝日本人二世出身の作家 として、「移民」と 「開拓」という素材を自分の文学のなかで形象化しながら、他の誰よりも朝 鮮を描いた小説を数多く書き残した日本人作家である。「朝鮮市場」は水原を舞台とする湯淺 の殆んどすべての作品で見られる重要なモチーフであるが、注目すべきことは湯淺克衛の作 品で朝鮮市場は単なる舞台背景として登場するに留まらず、重要な事件が起こる場所である と共に、叙事の展開において転換点となるなど、繰り返し重要な役割を演じる時空間として 形象化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そこで本稿では湯淺文学において朝鮮市場という時空 間が遂行する役割と意味を考察した。特に本稿では朝鮮で生まれ育った在朝日本人二世たち が次第に 「朝鮮化」していく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形成する過程と、朝鮮市場という時空 間の相関関係を主に議論した。  自分自身在朝日本人二世出身である湯淺克衛は作品を通して朝鮮という場所に同一化 し、既存の一世代たちとは区別される二世代の集団的アイデンティティを形象化し表現して いるが、その中で朝鮮市場は次第に 「朝鮮化」していく在朝日本人二世たちの存在論的な帰 属意識が緊密につなぎとめられる時空間としての意味と役割を持っている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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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3.1운동과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감수 「홍길동전」 번역 연구 : 홍길동 표상과 류큐정벌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김효순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28집 2016.05 pp.11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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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호소이 하지메가 감수한 일본어번역 「홍길동전」의 번역의 주체, 목적, 번역의 방법, 등장인물의 성격, 서사 구조 등을 살펴보았다. 「홍길동전」은 비록초벌번역은 백석중이라는 조선인에 의해서 번역되었지만, 실제로 《통속조선문고》 를 기획하고 「홍길동전」이라는 번역대상을 선택하고 그것을 해설하여 소개하고 결말부분의 류큐 에피소드의 개작 부분은 호소이 하지메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감안하면 그 번역 주체는 호소이 하지메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호소이 하지메는 1919년 3.1운동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주창 이후 변화된 국제정세와 일본의 식민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3.1운동을 일으킨 조선의 민족성을 분석함으로써 원활한 식민통치와 경영을 위한 정보, 자료를 확보하고 내선일체나 동근동조론 등과 같은 식민지배의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통속조선문고》를 기획하였다. 따라서 내용상 중국에 대한 조선인의 사대주의와 유교의 폐해를비판하고 중국과는 구별되는 조선의 언어나 문화, 풍속 등을 소개하거나, 당쟁이나탐관오리의 전횡을 기록한 서적의 번역을 통해 조선의 지배자들의 부패상과 모순을강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로 「홍길동전」은 작가 허균이, 당쟁과 전쟁으로 백성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대서얼차별이라는 신분제도의 모순과 유교사회의 폐해를 비판하고, 이상국가 건설의의지를 구현한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호소이 하지메의 기획의도에 정확히 부합한다고할 수 있다. 따라서 번역과정에서 이상과 같은 작가 정신을 구현한 홍길동의 인물상은 원작 그대로 번역된다. 즉 일본어 번역본의 홍길동 표상을 보면 한국어 원문과 마찬가지로, 천비의 배에서 태어나 호부호형을 하지 못 하며 차별을 받는 유교적 신분제 사회의 폐해에 대해 자각한 인물이며, 그가 조직한 활빈당은 지방 토호와 탐관오리 그리고 파렴치한 조정의 소인배들을 징계하여 빈민을 구제하고자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3.1운동이라는 민족 독립 운동을 탄압하고 조선민족 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홍길동을 소개할 수는 없었다. 호소이 하지메는 「「홍길동전」의 권두에」에서, 홍길동을 권모술수에 능하고 극악무도한강도로 소개하고, 그 활빈당을 본받아 활동한 의병들의 독립운동은 일본제국의 ‘근대의 합리적 정치의 혜택’으로 인해 백성의 고혈을 약탈하지 못 하게 된 조선 근대지식인들의 반항이라 해석한다. 그리고 1919년 3.1운동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확산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대만, 류큐, 조선의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허균의이상국가 율도국을 류큐처분에 의해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된 류큐로 표상하며, 형제의 나라 부모의 나라로서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결국, 호소이 하지메는 「홍길동전」 번역에 있어, 조선의 사대주의와 유교의 폐해를비판하고, 조선 지배층의 부정과 부패를 드러내고자 홍길동과 활빈당 표상은 원작에의지하고, 해설에서는 실존인물 홍길동이나 의병활동의 역사에 근거하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국제정세를 의식하여 동아시아 주변 국가의 지배에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원작의 이상향 율도국을 과감하고 노골적으로 류큐로 표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길동전」 번역에서 드러나는 이와 같은 호소이하지메의 모순적 태도는《통속조선문고》시리즈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1920 년대 일어난 조선문학,문화 붐의 실상과 허상의 한 측면을 드러낸다 할 수 있다.
本論文では、細井肇監修による日本語翻訳 「洪吉童伝」の翻訳の主体や目的、登場人物の 表象、叙事構造などを検討した。「洪吉童伝」は朝鮮人白石重によって翻訳されたが、実際に ≪通俗朝鮮文庫≫を企画し、「洪吉童伝」という翻訳の対象を選び、それを解説、紹介し、結 末部分の琉球エピソードを創作したのは細井肇であった。 細井肇は、1919年の3.1運動とウィルスンの民族自決主義の主唱の以後変化された国際情 勢と日本帝国の殖民政策に積極的に応え、3.1運動を起した朝鮮人の民族性を分析し、內鮮一 体、同根同祖論等の殖民支配イデオロギーを開発する目的からの為に ≪通俗朝鮮文庫≫を企 画した。したがって、その内容は、朝鮮人の中国への事大主義や儒教の弊害を批判し、党争 や貪官汚吏の專橫等朝鮮支配層の腐敗や矛盾を強調するものであった。「洪吉童伝」は作家許 筠が, 黨爭や戦争で民衆が生活に苦しんでいた時代 「庶孼差別」という身分制度の矛盾と儒 敎社會の弊害を批判し、理想國家建設の意志を具現した作品であるという点で、細井肇の企 画意図に好適な作品であった。したがって、上述した作家精神を具現した洪吉童と活貧黨の 活動は原作に充実に翻訳した。しかし、一方で, 細井肇は 「「洪吉童伝」の卷頭に」において は、洪吉童を權謀術數に長け極惡無道な强盜として紹介する。また、活貧黨に傚って活動し た義兵の独立運動は、日本諸國の 「近代の合理的政治の惠澤」のため民衆の膏血を掠奪する ことができなくなった朝鮮の近代知識人たちが日本の新政府へ反抗したものとして説明す る。さらに、1919年の3.1運動とウィルスンの民族自決主義が拡散される国際情勢を意識 し、栗島国を琉球として表象することによって暗暗裏に台湾、琉球、朝鮮の殖民支配の正当 性強調している。 つまり, 細井肇は 「洪吉童伝」翻訳においては洪吉童と活貧黨を原作に充実に表象し、解 説においては実存人物である洪吉同や義兵活動の歴史に基づいているという矛盾を露呈して いる。また国際情勢を意識し、東アジア諸国支配への正当性を主張するために栗島国を琉球 に変えて表象している。「洪吉童伝」翻訳におけるこのような細井肇の矛盾的な態度は ≪通 俗朝鮮文庫≫全体を貫いており、1920年代起こった朝鮮文学⋅文化のブーム現象の性格の 一端が窺える。

7,300원

6

갈등과 적응의 진자(振子)운동 : 올드커머 재일한인과 일본 사회

송석원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28집 2016.05 pp.147-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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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戰後) 모국으로 귀국하지도 하지 않고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도 않은 채 자이니치를 자각하며 산 올드커머 재일한인의 갈등과 조화 사이를 진자(振子)운동하는삶은 ‘재일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민족’을 표상하는 삶이었다. 취업, 공영주택입주조건, 재류권, 국민연금, 지문날인제도, 참정권 요구 등에서 우리는 이러한 ‘재일의 논리’가 일관되게 주장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재일한인은 일본사회에서 일본인과의 사이에서만 갈등과 적응의 진자운동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 재일한인 사이의 세대 간에서도, 같은 세대이면서도 모국의 정치현실이 투영된 이념대립의 영향을 받아 서로 반목하는 그룹들 사이에서도, 모국인 한국 및 한국에 거주하는 그들의 친인척과의 사이에서도 이러한 진자운동은 발견된다. 재일한인들은 이와 같이 다층적인 갈등과 적응의 진자운동 속에서 삶을 영위해야만 했다. 재일한인 사회 구성원의 세대교체 및 뉴커머 등장은 진자운동하는 재일한인의 삶에 질적인 변화를 초래했을 터였다. 국적법의 개정과 재일한인과 일본인 간의 국제결혼 건수가 증가함에 따라 재일한인의 일본인화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출생한 올드커머 2세, 3세 등의 재일한인에게 ‘민족’은 더이상 표상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초극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이들이 조국, 민족을 넘어서려 했을 때, 그것은 ‘배반’이 아니라 ‘초월’을 지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하튼 재일한인의 삶은 갈등과 적응, 조화와 저항을 반복하며 “싫어하고, 동경하고, 버려지고, 발견하고, 자각하는”(윤건차) 일상이었다. 일본을 동경하고 한국을 발견하면서 ‘자이니치’를 자각한 재일한인의 삶은 거꾸로 현대 한국과 일본의 민낯을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재일한인에게는 여전히 탈식민주의와 탈냉전이라는 이중적인 과제가 동시에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Old-comer Korean-Japanese have lived as ‘Zainichi’ and moved back and forth between conflict and harmony as they neither went back to their home country after the World War Ⅱ nor became naturalized as a Japanese citizen. Their lives represented ‘nationality’ and put forward ‘the logic of Korean- Japanese.’ We can find the evidence of ‘the logic of Korean-Japanese’ in getting a job, conditions for moving in public housing, the rights of staying, the national pension, the fingerprinting system, and requiring suffrage. Surely, Korean-Japanese did not make a pendulum movement of conflict and adaptation only between Japanese people in Japanese society. We can detect this kind of pendulum movement in three groups: between the same Korean-Japanese generations, the same generation but at odds among themselves due to ideological confrontations originated from their mother country’s political status, and their relatives living in Korea. Korean-Japanese should lead a life in the multi-layered pendulum movement of conflict and adaptation like this. A shift in generations of Korean-Japanese community and the appearance of new-comers brought about qualitative changes in the life of Korean-Japanese. As the nationality law has been revised and the number of international marriage between Korean-Japanese and Japanese has increased, Korean-Japanese have naturally become Japanese. To Old-comer second or third-generation Korean-Japanese, born and raised in Japan, ‘nationality’ is not what to represent but what to overcome. When they go beyond their country or even nationality, Korean-Japanese seem to pursue transcendence, not betrayal. Anyhow, the life of Korean-Japanese is nothing but routine that ‘hates, admires, is abandoned, identifies, and realizes (Yoon, Keun Cha)’ in a circle of conflict and adaptation, harmony and resistance. Korean-Japanese live a life that admires Japan, identifies Korea, and eventually realizes ‘Zainichi’ and their lives mirror the naked truth of modern Korea and Japan. And at the same time, Korean-Japanese still have a twofold problem: post colonialism and post-Cold War.
戦後、母国に帰国もせず日本の国籍に帰化もせず在日を自覚しながら生きてきたオールド カマー在日韓国人の葛藤と調和とのあいだを振り子のように揺れ動く生き方は ‘在日の論理’ を前面に打ち出して ‘民族’を表象する生き方であった。就職、公営住宅への入居条件、在 留権、国民年金、指紋押捺制度、参政権の要求などで、我々はこうした ‘在日の論理’が一 貫して主張されてきたの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むろん、在日韓国人は日本社会で日本人 とのあいだでのみ葛藤と適応とを繰り返してきたわけではなかった。在日韓国人同士の中の それぞれの世代のあいだでも、同一世代でありながらも母国の政治現実が投影されたイデオ ロギーの対立の影響を受け反目し合うグループのあいだでも、また母国である韓国および韓 国に居住している彼らの親戚や姻戚とのあいだでも、こうした振り子の状況は見受けられる のである。在日韓国人は、このように多層的な葛藤と適応のあいだを揺れ動く振り子のよう な生活を余儀なくされてきたのである。 在日韓国人社会の構成員の世代交代およびニューカマーの登場は在日韓国人の生活にも 質的な変化をもたらした筈である。国籍法の改正、在日韓国人と日本人のあいだの国際結婚 の増加などによって在日韓国人の日本人化現象は自然なもの、であると受け止められるよう になったからである。日本生まれのオールドカマー2世、3世などの在日韓国人に ‘民族’はも はや表象すべき対象ではなく、むしろ超克すべき対象でしかなかった。彼らが民族のカベを 越えようとした際、それは ‘裏切り’ではなく ‘超越’を志向したのではなかったであろうか。 いずれにせよ、在日韓国人の生活は葛藤と適応、調和と抵抗を繰り返しながら、“嫌い、あ こがれ、捨てられ、発見し、自覚する”(尹健次)日常であったといえる。日本をあこがれ韓国 を発見しながら‘ザイニチ’を自覚した在日韓国人の生活は現代の韓国や日本の素顔を写す鏡 でもあるといえよう。しかも在日韓国人には依然として脱植民主義や脱冷戦という二重の課 題が立ちはだかっているとい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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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재생의 도시 드라마 : 오키나와 나하 신도심 개발을 중심으로

조정민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28집 2016.05 pp.17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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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오키나와 나하시의 도시 역사의 변천을 검토하고, 신도심 개발에 대한지역적 문제제기와 대응,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실천 등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현재 나하 신도심이라 불리는 공간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격전이 벌어졌던 장소이자 패전 후에는 미군 군용지로 강제 접수되어 1987년 전면 반환되기 전까지 미군의주택지로 사용된 곳이다. 반환 이후에는 오키나와현과 나하시, 그리고 지주회의 의견을 바탕으로 주거와 상업, 행정과 문화 시설을 두루 갖춘 도시 속의 또 다른 도시를조성하였다. 세련된 신축 건물과 잘 정돈된 가로, 적당한 높이의 나무와 화초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미관상으로도 훌륭한 신도심은 그 외관과는 다르게 죽음, 망령, 유령, 망자와같은 불안이 내재한 공간이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전사한 일본군 혹은 오키나와 의용군의 유골이 수습되지 않은 채 미군의 주택지가 조성되고 이어서 신도심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도시 내에서는 여전히 유령 담론이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망자에 대한 태도는 과거 미군들이 주택지를 개발할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기에 맞추어 사업을 완결 짓기 위해 망자의 흔적을 부대자루에 쓸어 담거나 묻거나 하는 방식은 과거에 미군들이 자신들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점령지를 불도저로 거침없이밀고 지나갔던 것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비극적인 경험은 시멘트와 콘크리트, 철근에 묻힌 듯이 보여도 여전히 망자의 혼은 나하 신도심을 배회하며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그럼에도 나하 신도심은일본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꾸준히 인구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집값도 올라가고있다. 오키나와 전투의 경험과 죽음은 소문으로만 경험될 뿐 쾌적한 물리적 주거 조건과는 분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창조되는 공간으로서의 나하 신도심은 박제된 죽음(고분군)과 살아있는 유령 담론 공간으로서의 나하신도심과 서로 유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This study examines the changes in the urban history of the city of Naha, Okinawa, brings up the regional problems, suggests the response to them, and looks at the memory and practice of the local people who are rushing into the actual problems. The new downtown of Naha is a place where fierce fights were fought during the Okinawa Battle and at the same time is a place which, after Japan’s defeat in the World War Ⅱ, was forcingly requisitioned as the land for a U.S military purpose and used as a residential district of the U.S. Armed Forces until 1987 when it was fully returned to the Japan authority. Currently, there are rows of large shopping malls, public offices, newly constructed apartment buildings and mansions, and business hotels in this area. This area may be an attractive new town and the space ridden with anxiety at the same tome to those with the experience and knowledge of its history. The hill across T galleria of duty-free shops is called Kirama chiji in its local name and is the place where the Japanese and U.S. army fought severe battles with each other during the Okinawa Battle, producing a countless number of casualties. After the war, the area was developed into the residential district for the U.S military, but at that time remains of the Japanese soldiers were not collected unlike those of the U.S. soldiers, which is why their remains are even now being collected mainly by some Japanese private organizations. For this reason, its surrounding area is well-known even in Naha as the place where psychic phenomena are often witnessed. As stated above, the new downtown of Naha is the place presenting a new life style, but at the same time is the place where ghost discussions, composed of the experiences of a ferocious battlefield, are roaming about. The distribution process of the two-fold discussions well show how inorganic urban space and its directly-opposed memory compete with and rushes into each other.
本稿は沖縄の那覇新都心開発をめぐる地域的な問題提起や対応、そして戦争記憶の風化 などについて検討したものである。 約214ヘクタールに大型商業施設や映画館、ホテル、美術館、博物館、地方合同庁舎など の行政施設、公園が立ち並ぶ那覇新都心は、沖縄県を代表する繁華街であり観光スポットと して注目されている。しかし、この場所は沖縄戦最大の激戦と評される 「シュガーローフの 戦い」の舞台でもある。戦闘があまりにも激しく、また厳しかったために、1,280人の米軍が 精神的な病に悩まされたとされており、死傷者は2,660人余りに上る。日本軍や沖縄儀容 軍、それから住民の被害はいまだに明らかになっていない。 敗戦後、米軍はこの土地を強制収容し 「牧港住宅地区」という住宅街を建設した。米軍は 遺骨収集することなく、ブルドーザーとローラー車で土地を慣らし、巨大なタウンを作り、 約34年間も使用していたのである。1987年にこの地区は全面返還され、現在のような商業地 区や行政地区、住宅地区に開発され那覇新都心という新たな空間が完成された。しかし、こ の地域は戦死や亡霊、幽霊、亡者のような不安な存在がまだ生きている空間でもある。沖縄 戦で戦死した人たちの遺骨が収拾されないまま米軍住宅地や新都心が造成されたために、市 内では依然として幽霊言説が浮遊しているのだ。そして、新都心周辺ではいまだに民間団体 を中心に遺骨収集作業が続いている。 洗練された町並みや快適な住居空間、そして便利なショッピング施設は新都心を通して 新たなライフスタイルを欲望するよう提案している。その風景は戦争や死、幽霊言説と程遠 いようにみえる。しかし、このような新しい空間(新都心)へのこだわりや崇拝は逆説的に戦 争や幽霊がこの空間の深層に眠っており現在も深く関係していることを裏付けている。結 局、過去の死と現在の再生は断絶されないものであり、再生のなかに死は持続的に介入して いる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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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의미에 반영된 사회적 가치관에 관한 대조연구 : 한일 국어교과서를 예로

강경완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28집 2016.05 pp.20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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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한국의 중학교 교과서에 출현한 사람을 나타내는 명사(人名詞)를 대상으로단어의 의미에 반영된 사회적 가치관에 관해서 대조연구를 실시했다. 본고에서 밝혀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의미범주의 출현빈도에 있어서 한일 모두 <가족>을 중시하는 경향은 동일하다. 그러나 일본교과서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자 하는 특징이 두드러져 사제간⋅학우간의 바른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교과서와 대립한다. (2) 의미범주별로 사회⋅문화적 의미를 추출하였다. 「母」는 자식을 필사적으로 지켜주는 존재이며, 「父」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희생한다. 「私たち」는 자연과의공생을 상실하고 선입관⋅편견에 사로잡히는 비도덕적인 존재이며, 「人間」은 정신세계가 빈약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잔인하고 냉담하다. 한일 모두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가치관이 두드러져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경계심을 고양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友だち」 「先生」은 행복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나를 인도해주는 존재이다. 「子供」는 미숙하지만 호기심이 가득한 순수한 존재이며 「大人」는 매사를 스스로정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 존재이다. (3) 신문코퍼스, 균형코퍼스와의 비교를 통하여 교과서가 보급하려는 특징적인 가치관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가능성을 검토하였으며, 특정 형식에 주목하면 단어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보다 효과적으로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예시하였다. 이상, 교과서에 출현한 사람을 나타내는 명사에 부여된 사회⋅문화적 의미를 통하여 한일 간의 사람을 향한 사회적 가치관의 차이에 관하여 분석하였다. 본고의 결과는 비판적 사회분석이나 언어정책, 이문화 비교연구 등의 사회학⋅문화연구 등의 분야에 실증적인 연구재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In this paper I made a contrastive study of social values which are reflected on word meaning of personal noun in Japanese and Korean middle school texts. The use of relative nouns is the most prominent in both textbooks. The nouns indicating Human beings, age and sex are widely used in the Japanese textbooks. It can be interpreted as a feature of the Japanese textbooks supposed to establish right human values. On the other hand the noun meaning hierarchy to exchange at school is widely used in the Korean textbooks. I think it reflects in the Korean values to give weight to correct relationship between the teacher and pupil and classmates. I extracted socio-cultural meanings of relative nouns for each category. HAHA, OMONI imply a person who is protecting his children desperately. TITI implies a person who works hard for his family or a person who sacrifice himself for his family. WATASITATI, URI imply beings who lost coexist with nature, who is highly influenced by his prejudice or stereotype, and immoral. NINGEN, INGAN imply beings who is poor mental, egocentric, untrustworthy, and also cold and aloof. CHINGU, TOMODATI imply a person who is sharing joys and challenge. KODOMO implies a person who is full of curiosity, immature, pure. OTONA implies a person who determines everything himself and works faithfully. Also I investigated about the possibility the characteristic values to be spread over a textbook through the comparison of newspaper and balanced corpus and illustrated a particular form of words can be used to extract a social and cultural meaning more efficiently. This study is significant to provide an empirical resources to the sociology and cultural studies such as critical social analysis, language policy, cross-cultural comparative studies etc.
日本と韓国の中学校教科書に出現した人名詞を対象に単語の意味に反映した社会的価値 観についての対照研究を行った。本稿で明らかになったことは次の通りである。 (1) 人名詞の意味範疇の違いにおいて、基本的に、家族を重視する傾向は類似しているが、 日本の教科書は人間に対するい関心と正しい価値観を定立させようとする特徴があり、師弟 間⋅学友間の正しい関係を重要視する韓国教科書と対立している。 (2) 意味範疇ごとに人名詞の社会⋅文化的意味を抽出した。「母」は子供を必死に守ってく れる存在であり、「父」は家族のために一所懸命働く、犠牲する存在である。「私たち」は自然 との共棲を失い、先入観⋅偏見に囚われる非道徳的な存在であり、「人間」は精神世界が貧弱 で自己中心的な不信の存在であり、残忍で冷淡である。日韓両方とも人間本来の姿を見失っ た存在としての人間に対する否定的な価値観を通して警戒心を高めようとする意図があるよ うだ。「友だち」 「先生」は、楽しみ⋅苦しみを分かち合い、私を導いてくれる存在である。「子 供」は好奇心いっぱいの未熟で純粋な存在であり、「大人」は物事を自分で決め、ちゃんと働 くべき存在である。 (3) 新聞コーパス、均衡コーパスとの比較を通じて、教科書が普及しようとする特徴的な 価値観が存在する可能性について検討した。また、単語の特定の使用形式に注目すれば、社 会⋅文化的意味をより効果的に抽出できるということを例示した。 以上、日韓国語教科書における人名詞の社会⋅文化的意味の違いの分析を通じて両社会 の価値観の相違について把握することができた。これは、今後、批判的社会分析や言語政 策、異文化比較研究などの社会学⋅文化研究の分野に実証的な研究材料を提供できるとい うところに意義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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