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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일본학 [THE HALLYM JOURNAL OF JAPANESE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Institute of Japanese Studies]
  • ISSN
    1738-5334
  • EISSN
    2466-1015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6~2017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제18집 (9건)
No
1

제국일본의 문화권력과 학지(學知) - 연구사적 고찰

임성모, 박상현, 조규헌, 유병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8집 2011.05 pp.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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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서의 제국일본 연구는 식민본국과 식민지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고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문화권력의 쌍방향적 역학관계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며,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한국 학계에서의 작업 또한 아직 문제제기 수준을 벗어나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 일본의 문화권력과 학지에 대한 향후의 연구는 동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진행되는 학제적 공동 연구가 되어야 하며, 식민정책학, 동양학, 민속학 등 제도화된 학지뿐 아니라 사회운동, 문예운동의 영역까지 포괄하여 문화권력의 생성 및 전개 과정을 역동적으로 고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은 그러한 공동 연구의 기초 작업으로서 학지 개념을 통한 근대 일본의 문화권력을 분석하기 위한 몇 가지 핵심적 주제들을 설정하고 각각의 최근 연구동향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권력지향적・체제구축적 학지로서 식민정책학과 번역의 문제, 반권력적 운동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민족혁명/문화론과 아나키즘의 문제를 다루며, 이 양자에 중첩되는 학지의 동향으로서 관학/민간학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이를 통해 종래의 정치사, 경제사 중심의 단편적 시각을 극복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공하여, 제국일본의 문화권력에 대한 동태적 양상을 총체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最近、日本における帝国日本の研究傾向は、植民本國と植民地のあいだの相互作用に注目することを標榜し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文化權力の双方的な力學關係が明確にされていると言いがたい。また、こうした問題點を認識している韓國學界の研究も、問題提起のレベルにとどまっており、本格的な研究にまでは進んでないのが現状である。したがって、今後、近代日本の文化權力と學知に関する硏究は、東アジア地域の全體的な視点の學制的な共同硏究が望ましいといえよう。とりわけ、植民政策學、東洋學、民俗學など制度化した學知だけではなく、社會運動、文藝運動の領域にまでを含んだ文化權力の生成および展開過程をいっそう力動的に考察する必要がある。本稿は、こうした問題意識のもと、共同硏究の基礎作業としての學知槪念を通じて、近代日本の文化權力を分析するいくつかの核心的主題を設定し、それぞれの最近の硏究動向を檢討したものである。まずは、権力指向的・体制構築的な学知としての「植民地政策学」と「翻訳」の問   題について、次に反権力的な運動としての「マルクス主義の民族革命または文明論」と「アナーキズム」の問題についても考えた。なおこれらに交わる学知の動向として「官学と民間学」の問題についても検討した。このような検討方法は従来の政治史または経済史中心の一面的な見方から脱し、多様なスペクトラムを提供できるとともに帝国日本における文化権力という研究テーマについて動態的な様相を総体的に照らし出すことができると考えられる。

8,500원

2

근대 일본, '진보'에서 '발전'으로 - 제국주의성립기의 역사ㆍ사회의식

박양신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8집 2011.05 pp.4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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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대 초 일본에 수용되었던 ‘진보’ 개념이 ‘사회문제’의 대두를 계기로 점차 그 영향력을 약화하고, 대신 그 유사개념인 ‘진화’ ‘발전’이 일본 제국주의 성립기의 역사ㆍ사회의식을 표상하는 개념으로 전개되는 양상에 대해 고찰한다. 근대 초기 일본사회를 풍미했던 ‘진보’는 1880년대 중반 이후 서서히 그 문명화의 함의를 희석시켜 일반용어로 정착하고, 대신 ‘진화’와 ‘발전’이 그 사회를 표상하는 개념으로 활성화된다. 1880년대 초 일본에 수용된 진화 개념은 그 생존경쟁의 논리가 정부의 근대화정책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그것이 19세기말 이후가 되면 대외팽창을 뒷받침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 한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공격 무기로도 활용된다.
本稿は明治初期受容された「進歩」概念が「社会問題」の登場をきっかけに次第にその影響力を弱めていき、代りにその類似概念の「進化」「発展」が順々に帝国主義成立期における日本の歴史・社会意識を表象する概念として展開していく様相について考察している。 明治初期、日本の社会を支配していた「進歩」の理念は一八八○年代半ば以後次第にその文明化の含みを弱めていき一般用語として定着し、代りに「進化」と「発展」が相次いでその社会意識を表す概念として活性化してくる。一八八○年代初め、日本に入ってきた「進化」概念は、一九世紀末以後になると、その生存競争の原理が対外膨張を支える帝国主義イデオロギーとして働く一方、帝国主義を批判する社会主義への攻撃の武器としても活用される。すなわち、社会主義の追求する平等社会においては「競争」がなくなり、社会が停滞し退歩していくだろうという批判である。 これに対して社会主義者は「進化」についての再解釈をもって応じた。すなわち、生存競争は社会主義の社会においても生き続けるが、ただその競争の中身が物質的なものから理想的なものへとかわるだけだという。社会主義者はそれにとどまらず、いままで社会が変化してきたのと同様に、これからも必然的に社会主義へ「進化」していくだろうと展望することによって、「進化」を社会変動を押し進める理念として掲げたのである。  このような明治社会主義が示していた歴史「進化」の概念はマルクス主義の唯物史観の受容とともに展開していく「発展」概念を媒介することになる。またこの時期になると、「史学」においても歴史は「発展」するものだという認識を見せ始める。しかし、「発展」概念の登場は必ずしも西洋思想の受容から始まったわけではない。すでに二○世紀初め、帝国主義の実行と関連して言論において対外「発展」と「開発」が盛んに謳われていたのである。

7,200원

3

식민통치와 지식/권력 - 일본형 식민대학의 비교사회학

정준영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8집 2011.05 pp.7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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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학계에서는 제국일본의 문화권력이 식민지공간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해명하는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경성제국대학 연구도 이런 문화권력에 관한 고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본 논문은 식민지배와 지식/권력의 상관관계를 보다 세계사적인 시각에서 분석하기 위해 식민대학의 탄생에 관한 비교사회학적 고찰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먼저 식민대학의 개념을 추적하는 한편, 19세기 이후 아시아 식민지에 설립되었던 식민지대학 중 인도의 영국형 식민대학과 인도차이나의 프랑스형 식민대학의 특징을 분석했다. 이들 식민대학은 식민모국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된 ‘근대대학으로의 발전’을 반영하면서도, 식민지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근대대학을 활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비서구국가 중에서도 유일하게 제국으로 성장했던 일본의 식민대학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된다. 그런데 이 일본형 식민대학은 몇 가지 점에서 서구열강의 식민대학과 차별화된다. 첫째, 서구열강의 식민대학이 명백히 식민모국의 대학에 비해 열등한 위상에 놓여 있는데 반해, 일본형 식민대학은 식민모국의 최고대학을 모델로 삼고 있으며, 위상과 특권에서도 동일했다. 둘째, 서구열강의 식민대학이 철저하게 현지엘리트 자제들의 고등교육에 집중했던 반면, 일본형 식민대학은 식민지에 대한 학술적 지식의 창출에도 주력했다. 이러한 차별성은 일본식민주의의 특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最近、韓国学界では帝国日本の文化権力が植民地空間にどのように作動してきたのかを解き明かす多様な論議が展開されている。京城帝国大学研究もこのような文化権力に関する考察の一種だと言える。本論文は植民地支配と知識/権力の係わり合いをより世界史的な視覚で分析するために植民大学の誕生に関する比較社会学的考察を試みる。このために本論文は先に植民大学の概念を追跡する一方、19世紀以後アジア植民地に設立された植民大学の中でインドのイギリス型植民大学とインドシナのフランス型植民大学の特徴を分析した。これらの植民大学は宗主國で個別に行われた「近代大学への発展」を反映しながらも、植民地統治のための手段として、近代大学を活用しようとしたという点で共通点を持つ。そして、これらの特徴は、非西欧諸國の中でも唯一の帝国に成長した日本の植民大学でも同じように確認される。ところが、この<日本型>植民地の大学には、いくつかの点で、西欧列強の植民大学と差別化される。第一に、西欧列強の植民大学が明らかに宗主國の大学に比べて劣った地位に置かれているのに対し、<日本型>植民大学は宗主國の最高学府をモデルとしており、その位相および特権においても同じてあだった。第二に、西欧列強の植民大学が完全に植民地におけるエリート子弟のための高等教育に焦点を合わせていたのに対し、<日本型>植民大学は、植民地に対する学術知の創出にも力を注いだ。この点は、日本植民地主義の特徴と密接な関連を持つという視座から注目する必要がある。

6,100원

4

일본어잡지『조선공론(朝鮮公論)』(1913-1920)의 에세이와 한국인식

김청균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8집 2011.05 pp.1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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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잡지 『조선공론(朝鮮公論)』은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대표적인 잡지의 하나로 일본의 다양한 담론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 본 논문은 시대적으로는 초기의 1910년대를, 내용적으로는 각호에 게재된 에세이를 중심으로 하여, 일본의 한국인식에 대한 담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특히 본 논문에서 대상으로 삼은 것은 「新羅崔致遠行脚印象」(『朝鮮公論』第1巻第1号、1913年1月)、「倭寇の歷史と李王家」(『朝鮮公論』第5巻第2号、1917年2月)、「米人の観たる朝鮮人」(『朝鮮公論』第8巻第11号、1920年11月)로,이들 에세이에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일본의 조선인식이라는 것은 부정적 역사인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新羅崔致遠行脚の印象」에서는 조선의 역사가 선조의 위업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실패한 역사라고 하며, 지배자의 무능으로 인해 발전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재능과 능력이 있어도 그 재능을 발휘하기 힘든 사회였다는 내용이 다수 등장하고 있다. 「倭寇の歷史と李王家」도 마찬가지로, 역사왜곡,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한 정당화를 미화하거나, 한국 지배계층이 지닌 무능함을 조선역사에 보이는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인의 조선인식 뿐 아니라, 미국인이 본 조선인이란 제목의 「米人の観たる朝鮮人」에서 조차도조선인은 열등하여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는 인식을 강하게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식민지기 대표적인 일본어 잡지 『朝鮮公論』 부정적인 한국사관과 한국인식에 기초하여 일본의 식민통치를 정당화 하는 논리를 대변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本稿では日本語雑誌 『朝鮮公論』に掲載されたエッセイ 「新羅崔致遠行脚の印象」(『朝鮮公論』第1巻第1号、1913年1月)、「倭寇の歷史と李王家」(『朝鮮公論』第5巻第2号、1917年2月)、「米人の観たる朝鮮人」(『朝鮮公論』第8巻第11号、1920年11月)を中心に日本の韓国認識について考察した。まず、「新羅崔致遠行脚の印象」は、韓国の歴史が先人の業績を保存し発展させることに失敗した歴史だという否定的認識を示すことを把握した。また、韓国はリーダーの無能によって発展できなかったという否定的韓国史観、韓国は人材が生まれてもその能力を発揮しにくい社会だという否定的韓国史観が、このエッセイの中に内包されたことを考察した。また、「倭寇の歷史と李王家」は歴史の歪曲、日本の韓国侵略の正当化と美化、韓国のリーダーは無能だという否定的韓国史観が結合したエッセイだということを分析した。さらに、「米人の観たる朝鮮人」は朝鮮人を劣等だと見なし、卑下する観点が現れており、朝鮮が日本の植民地になったことを当然な結果だという立場から日本の朝鮮統治を擁護する観点が見られると分析した。以上の考察を通して、植民地時代の代表的雑誌 『朝鮮公論』は否定的な韓国史観と韓国認識に基づいて、日本の植民統治の論理を代弁する役割を果たしたことが把握できた

5,400원

5

녹지 않는 빙하와 청년의 취업상황 - 경기회복기의 도쿄를 중심으로

김영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8집 2011.05 pp.12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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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회복기인 2000년대에 도쿄의 청년노동시장에서 발생한 변화를 검토한 이 논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쿄 청년의 전반적 고용상황은 다른 지역에 비해 양호하다고 할 수 없으며, 경기회복기에도 청년의 고용상황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경기회복기에도 청년의 고용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은 청년고용의 악화가 경기적 요인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에 의한 것임을 시사한다. 둘째, 학력과 성별이 고용형태와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최근으로 올수록 학력이 고용형태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지고 있어 고졸자 및 중퇴자의 고용안정성이 심각하다. 이와 같이 고용에 대한 높은 학력효과는 도쿄 청년들의 고학력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 셋째, 불황기에 시작된 청년의 장시간 노동 문제가 경기회복기에 더욱 심각해져, 노동조건뿐 아니라 노동시간의 면에서도 청년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분절이 강하며, 공적 복지제도가 취약하고 가족과 기업을 중심으로 사회성원의 생활이 보장되는 일본사회에서 노동시장이 고용유연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은 일본의 생활보장체계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편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景気回復期の2000年代に東京の青年労働市場で発生した変化を検討した本稿の内容をまとめると、次のようである。一、東京青年の全般的な就業状況は、他の地域より良好とは言えず、景気回復期にも青年の就業状況はあまり改善されない。景気回復にもかかわらず青年の就業状況が改善されないのは、青年雇用の悪化が景気的要因のみならず労働市場の構造的変化によるものであるのを意味する。二、雇用形態へ及ぼす学歴とジェンダーの影響力が大きい。特に学歴の影響力はますます大きくなっており、高卒者及び中退者の雇用安定性の問題が深刻な状態になっている。また、就業状況への高い学歴効果は、東京青年の高学歴化傾向を強化している。三、不景気に始まった青年の長時間労働問題が景気回復期にさらに悪化し、労働条件だけではなく労働時間の面でも、青年労働市場における格差が大きくなっている。雇用形態による労働市場の分節が強く、公的福祉制度が弱く、家族と企業を中心に社会メンバーの生活が保障される日本社会において、労働市場が雇用柔軟性を拡大する方向に向かって根本的変化を経ているのは、日本の生活保障システムの根本的再編の必要性を提起する。

7,500원

6

『정조미담 룻기(貞操美談 路得記)』論

尹福姬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8집 2011.05 pp.15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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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は旧約聖書 『ルツ記󰡕を読む内村鑑三の独特な読み方について彼の残した『貞操美 談路得記󰡕を分析しながら考察したものである。この作品を執筆していた当時の鑑三は、個人 的にはいわゆる 「不敬事件」の後、人生の一寸先の道さえ見えない暗黒の真っ只中に置かれて いた。にもかかわらず、将来への希望は失うことなく、忍耐しつつ三番目の妻を通して娘を得た 幸不幸の重なった時期であった。一方、時代社会的には日清戦争を間近にした現実の中、軍 国主義に走る祖国の実状を完全に把握できないまま、沸き上がる愛国心だけで気を揉んでいた 時期であった。結局、鑑三は後日、日清戦争の結果として明らかになった為政者たちの偽善と 偏狭な愛国心に絶望してしまう。 興味深いのは、そのような祖国の状況を予見したかのように、『貞操美談路得記󰡕を執筆しな がら作品を通して当時の日本社会にあふれていた、特権意識に捕らわれた偽善者たちの本質を 「パ リサイ主義」と言って告発している点である。鑑三はさらに家庭内でも自分の果たすべき任務は放 り投げて、「女権」、つまり女としての権利だけを主張する女性たちを 「パリサイ婦人」と呼んで、 非難して止まないのである。 結論的に、『貞操美談路得記󰡕は旧約聖書 『ルツ記』の登場人物の話を教訓として東西の 姑媳関係を照明し、家庭内人間関係のあり方を示した作品である。とともに、より根本的には隠 れて見えない日本の実際問題、すなわち男女を問わず、傲慢と偽善にとらわれ国を駄目にする 「パリサイ主義」的人間の危険性を厳しく警告した作品であるといえる。結局、「下に立つもの」に 比べ、一層 「パリサイ主義」に汚染された 「上に立つもの」をまず先に改革し、家庭や国家の 正常なあるべきあり方を回復しようとしたのが、鑑三の主張の核心であったといえよう。

5,500원

7

落語「二階の間男」の戸籍調べ -東アジアにおける笑話の伝播と共有

琴榮辰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8집 2011.05 pp.175-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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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語의 典拠를 일본소화와 중국소화에서 찾는 연구는, 새로운 자료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다지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落語 「이층의 딴사내」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1842년에 일본에서 간행된 한문체 소화집 『奇談新編』에 그 유화가 보인다는 사실을 선학이 규명한 이후, 지금까지 연구의 새로운 진척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지금으로부터 약 270년 전에 성립한 조선한문소화집 『破睡録』과, 약490년 전에 성립한 수필문집인 『慵齋叢話』에도 그 유화가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서, 落語 「이층의 딴사내」의 뿌리가 대륙에서 건너 온 소화에 있을 가능성을 새롭게 추정해 볼 수 있었다. 필자는 특히 『慵齋叢話』에 보이는 바보사위이야기와 계통적으로 가까운 소화가 일본최초의 소화집인 『醒睡笑』에도 보인다는 점과, 1723년 서문이 보이는 『訳言拾遺』라는 일본의 문헌에 『慵齋叢話』의 書名이 보이는 점 등을 들어, 『慵齋叢話』가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약290년 전에는 이미 일본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落語 「이층의 딴사내」의 원거로 보이는 소화가 『慵齋叢話』를 통해 일본에 전파되었을 가능성과, 「오치(웃음을 유발하는 결말부분)」의 형성에 조선 또는 중국에서 전파된 소화로부터의 영향의 가능성이 인정 된다면, 우리는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의 소화의 전파와 공유가 落語 「이층의 딴사내」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東京落語「二階の間男」(上方落語では「茶漬間男」)の典拠に関しては、これまで『奇談新編』(1842年序)にその類話が見えることが知られているだけで、それ以前までは遡られなかった。 ところが今回、その類話が『破睡録』(파수록、1742年頃成立)なる朝鮮漢文笑話集および、『慵齋叢話』(용재총화、1525年刊)なる朝鮮の随筆文集にも存することを新たに確認できた。  日韓両国にその類話が見られることや、その話型および落ちが中国愚夫譚の典型的なそれと類似することから、筆者はこの話がいち早く東アジアで共有されてきた国際的な笑話である可能性を想像している。  ただし、中国の原話がまだ確認されていないことから、この話がこれらの朝鮮資料を通じて日本にもたらされた可能性はないのか考察したところ、少なくとも『奇談新編』が成立する100年ほど前にはすでに、『慵齋叢話』が朝鮮から日本にもたらされていたであろうことを示す新たな証拠を確認できた。すなわち、『慵齋叢話』の書名が1723年に成立した『訳言拾遺』なる日本の書物にも見えることがそれである。  さらに、『慵齋叢話』に見える阿呆婿話と系統的に一致する話が日本最初の笑話集である『醒睡笑』(1623年序)にも見えることなどから、筆者は落語「二階の間男」の成立に影響を与えたであろうこの笑話が、朝鮮を経由して近世初期にはすでに日本にもたらされていたのではないかと推定している。そして、筆者のこうした推定が認められれば、われわれは、落語「二階の間男」の源を、今から485年前に成立した『慵齋叢話』なる朝鮮の随筆文集にまで遡られるわけである。

5,700원

8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 『게잡이 공선(蟹工船)』의 복자(伏字)(Ⅱ)

황봉모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8집 2011.05 pp.197-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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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잡이 공선]은 고바야시 다키지가 1929년 5월 6일 잡지 『戦旗』상에 [게잡이 공선 그 두번째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게재 발표한 작품이다. 당시는 검열이 존재하던 시기로, 발표 전에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위험할 듯 한 곳에는 복자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게잡이 공선 그 두번째 이야기] 또한많은 복자를 사용해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녕을 위해 검열에서는 발표 금지 처리를 받게 된다. 이후 [게잡이 공선]은 10개의 단행본에 수록되었다. 이 [게잡이 공선] 판본들 또한 잡지와 같이 많은 복자를 그대로 간행하였다. 본문의 문장을 바꾸지 않고, 무사히 검열을 통과하기에는 복자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잡이 공선]에 보이는 복자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중요시 여겨지는 4개의 판본, 『게잡이 공선 개정판』(戦旗社),『게잡이 공선 공장세포』(改造社), 그리고 『게잡이 공선 태양없는 거리』(三笠書房)의 복자를 조사, 판본의 연대가 뒤로 가면 갈수록 복자가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그 당시 검열의 엄격함을 반증하는 것이고, 이는 1930년대 후반이 되면 오히려 역효과로 작용하여, 복자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小林多喜二 「蟹工船」は、一九二九年五月と六月の 『戦旗』誌上に発表された。この中で、「蟹工船 其の二」が載せられた 『戦旗』六月号は多くの伏せ字が行われたにも関わらず、安寧のために、発売禁止に処せられた。「蟹工船」は、『戦旗』誌上に発表された後、全部十個の単行本に収録された。これら 「蟹工船」板本はいずれも、多くの伏せ字をもって発行された。危ないだろうといったところがあるなら、伏せ字を行って検閲に当るのが、その当時の一般的な状況であった。本文の文章を変えずに、無事に検閲を通すには伏せ字しかなかった。しかし、多くの伏せ字が行われても、たやすく検閲を通すわけにはいかなかった。本稿は、小林多喜二の 『蟹工船』の伏せ字の具体的な内容について調査したものである。ここでは、四つの重要な『蟹工船』板本の伏せ字の具体的な内容を調べた。それは、『蟹工船 改訂版』(戦旗社)、『蟹工船 工場細胞』(改造社)、そして 『蟹工船 太陽のない街』(三笠書房)の板本である。また、各種板本の発売禁止の前後事項について調べて見た。要するに、これらの板本の比較検証から 「蟹工船」板本は、発行の後期になるほど、伏せ字と各種板本の発売禁止が増えていったことが分かる。これは、当時の検閲が厳しさを増していったことを物語っているのであろう。一九三六年の後半になると、伏せ字がむしろ逆効果を生じるとして、その一掃が命じられた。ついに伏せ字さえターブになる時代が来たのである。

6,100원

특집

9

한림 일본학DB <아사히신문 외지판 (朝日新聞外地版)> 기사명DB - 1936.7~1936.12

서정완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8집 2011.05 pp.22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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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외지판 기사명DB〉는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일본학DB 사업의 하나로, 연구소장이 중심이 되어 기획, 추진하였다. 연구소 연구보조원들이 분류 및 입력 작업을 수행하였다. 1차 입력을 마친 후 두 차례에 걸쳐서 오타와 판독이 어려운 글자 등에 대한 자체검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전체 구성에 대해서는 심재현 연구원이, 데이터 입력창의 개발과 관리는 최형섭 연구보조원이 담당하였다.

16,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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