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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일본학 [THE HALLYM JOURNAL OF JAPANESE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Institute of Japanese Studies]
  • pISSN
    1738-5334
  • eISSN
    2466-1015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6 ~ 2025
  • 주제분류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309 DDC 300
제41집 (10건)
No
1

5,500원

이 연구는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에서 AI/Robotics 기술 도입이 진행되고 있는 배경과 필요성, AI/RPA 도입 과정, AI/RPA 기술을 활용한 행정업무 자동화 현황을 살펴본다. 그리고 AI/ Robotics 도입의 효과, 일본의 지방행정, 지역경영에 주는 함의를 분석하였다. 일본 지방자치단 체에서 도입 분야를 살펴보면, 매칭, 최적 방안제시, 화상인식, 미래예측 분야에서 도입이 증가 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AI는 행정업무의 효율화, 주민 서비스 향상 그리고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AI/RPA 도입 효과는 정량적, 정성적 효과로 측정되고 있다. 지방자치단 체에서 AI/RPA 도입은 실제로 고참 공무원과 신임 공무원 간 업무처리 시간을 2.6배에서 1.2 배로 감소시켰다. 행정업무 도입에 따른 시간 절약 효과도 주민 28.3만 시간, 공무원 1.78만 시 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AI/RPA 도입으로 지역주민에게 생기는 시간 절감 효과 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에서 AI/RPA 도입 가이드 라인」 을 중앙정부가 책정하였다. 가이드라인에는 도입 배경, 목적, 사업 개요, 활용 방침, 데이터, 보 안대책, 기대효과, 추진 체계, 추진 일정, 예산 계획 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방자치 단체에서 AI/RPA 도입을 위해서는 전문 인력 충원, 자치단체 간 협력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 다. AI/RPA 도입에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전문 인력 충원은 연수, 외부 전문과정 참여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그리고 민간 기업과 협업체계를 구축하여 대응할 필요가 있다.

This paper analyzes the back ground, process and impact of AI and robotics technology adoption in Japanese municipalities. In Japan local government have seen a surge in AI and Robotic technology adoption since two thousand twenty. local government are using AI technology as a way to solve problems such as population decline, aging, economic decline and lack of financial resources. The goals of AI and robotics technology are to increase administrative efficiency, improve resident services, and ensure local sustainability. Japanese municipalities adopt AI and robotics technologies Mobilization varies by prefecture and city. The characteristic is that the request from the administrative organization is bigger than the responsibility of the chief of the local government. Especially in municipalities, several municipalities are cooperating as a means to solve the problems of insufficient financial resources and insufficient learning data. In Japanese local governments, RPA systems are mainly in the fields of finance, accounting and local tax. The RPA system is effective for routine work in which the same work is repeatedly processed. The effects of the introduction of AI and robotics technology are shown in the areas of administrative efficiency and resident services. In the accounting area, the working hours of civil servants have been reduced by 90 per cent. In addition, in relation to the working hours of civil servants, the processing time of veteran employees and newly appointed employees has been reduced from 2.6 times to 1.2 times. It has been reduced. The introduction of AI and robotics technology in Japanese municipalities is recognized as an optimal and new way to solve local problems.

この論文は、日本の地方自治体におけるAI・Robotics技術導入が進められている背景・必要性、 導入過程、AI・Robotics技術の活用分野、自治体業務の自動化がもたらす効果及びその課題を考 察することが目的である。最近、都道府県だけではなく、市町村でもAI・Robotics技術が積極的に導 入されている。特に、2018年以後、AI・Robotics技術導入が増える傾向が見えるが、2020年には急 増する。自治体でAI・Robotics技術導入が増える背景には、高齢化・少子化問題、地域経済の衰 退、財源不足、社会福祉需要の増加などのような地域が直面した課題解決の新しい試みという認識 がある。日本の地方自治体におけるAI・Robotics技術導入は、行政の業務効率化・住民サービスの 多様化・地域の持続可能性の確保という政策目標を掲げている。 自治体内部の業務自動化・効率化と関連してAI・RPA技術は財政・会計・財務のような定型化され た業務に導入が先に進んでいるが、職員の職務・児童福祉・育児・健康・住民票関連分野でも利活 用が急増している。導入効果は、職員の超過勤務の減少、業務の正確性が高まり、働き改革にも 貢献している。AI・RPA技術導入は、業務処理の時間短縮や住民の信頼性確保という効果もある。 例えば、地方税業務では94%の時間削減の効果があった。住民サービス分野でも365日、24時 間、行政情報やサービスの提供は可能となった。結局、AI・Robotics技術導入は地方自治体におけ る業務効率化・住民サービスの高度化の手段である。 しかし、地方自治体における行政業務の自動化・効率化の手段としてAI・Robotics技術を導入 し、それが効率的に機能するためには、課題も少なくない。自治体は財源・人材・行政データの側 面で状況が異なる。この格差を縮めるためには情報共有・導入ガイドラインの普及などの支援が必要 である。AI・RPA技術導入や運用に関わる人材の育成・研修、民間企業との協力が可能なガバナン スシステム構築も欠かせない課題である。AI・RPAシステムの効率的な学習・モデル構築のため、自 治体間の協力・共有は不可欠である。特に、個人情報保護と関連して制度整備が必要である。条 例・制度整備の支援からみると、地方議会の役割も活性化が必要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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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0원

일본에서 내각 총리 대신을 맡은 아베 신조가 2022년 7월 9일에 총격되어 사망했다. 이에 대해 전세계에서 많은 의견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대만(중화민국)은 특히 강한 애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애도도 대만의 신문보도 등을 보면 순수한 애도보다는 대만의 안보에 큰 손 실이 있기 때문이라는 측면이 크다. 본고는 이 점을 소재로 하여 아베 신조 총격 및 사망 사 건으로부터 일대 관계를 재검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만에서의 아베 신조의 평가는, 일찌기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높은 평가가 모여 있다. 이는 2015년 헌법 위반이라고 지적을 받으면서도 아베 신조 주 도로 제정된 안보법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요건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대만의 보도나 대만의 정치가는, 대만 유사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일본이 대만 방위에 협력하는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아베 신조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본고는 지적한다. 하지만, 안보법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존립이 위기에 빠지거나, 일본에 중요한 영향이 생기 지 않는 한 타국의 무력 행사에는 개입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안보법에서 는 이러한 요건을 부과하고 있어 더욱 위헌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도 높게 남아 있다. 그리고 대만에서는 안보법 제정시에는 「일본의 입헌주의는 붕괴했다」등과 비판적인 보도가 많았음에 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총격 및 사망 사건 발생시에는, 아베 신조는 비판에 굴복하지 않았다 고 호의 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도 지적한다. 본고의 결론으로서는, 대만은 일본 헌법상 할 수 없는 가능성이 있는 집단적 자위권에 의한 일본의 대만 방위에 대한 협력을 아베 신조의 「대만 유사는 일본 유사」라고 하는 말로부터 기 대하고 있어, 일대 관계는 서로의 “착각” 위에 성립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Shinzo Abe, who served as Prime Minister in Japan, was shot dead on July 9, 2022. There were many opinions about this from all over the world. Among them, Taiwan (Republic of China) expresses particularly strong condolences. However, judging from Taiwanese newspaper reports, it seems that the condolences are not pure condolences, but rather a major loss to Taiwan’s security. Based on this point, this article reviews Japan-Taiwan relations from the shooting and death of Shinzo Abe. And looking at Shinzo Abe’s evaluation in Taiwan, he once said that “an emergency in Taiwan is an emergency in Japan.” This seems to be a reference to the requirements for the exercise of the right to collective self-defense under the Security Law, which was enacted under Shinzo Abe’s leadership, despite being accused of being unconstitutional in 2015. This paper points out that Taiwanese media and politicians highly value Shinzo Abe for creating a path for Japan to cooperate with Taiwan’s defense in the event of a Taiwanese emergency. The conclusion of this paper is that even if Taiwan is made possible by the Security Law, cooperation with Japan’s defense of Taiwan through the right of collective self-defense, which is highly likely to be unconstitutional and invalid under the Japanese Constitution, is Shinzo Abe’s “Emergency in Taiwan is an emergency in Japan.” He has high expectations from his words, and says that there are aspects of Japan-Taiwan relations that are built on mutual “misunderstandings.”

日本で内閣総理大臣を務めた安倍晋三が2022年7月9日に銃撃され死亡した。これに対して世界 中から多くの意見が発された。その中でも台湾(中華民国)は特に強い哀悼を示している。しかし、そ の哀悼も、台湾の新聞報道などを見てみると、純粋な哀悼というよりかは台湾の安全保障にとって大 きな損失があるためという側面が大きいように見える。本稿はこの点を素材にして、安倍晋三銃撃お よび死亡事件から日台関係を見直すものである。  そして、台湾での安倍晋三の評価は、かつて 「台湾有事は日本有事」と発言したことに対して 高い評価が集まっている。これは、2015年に憲法違反だと指摘を受けながらも、安倍晋三主導で制 定された安保法の集団的自衛権行使の要件について述べているものと思われる。ここから台湾の報 道や台湾の政治家は、台湾有事が発生した場合には日本が台湾防衛に協力する道筋を作ったため に安倍晋三を高く評価し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本稿は指摘する。  しかし、安保法はあくまで日本の存立が危機に陥ったり、日本に重要な影響が生じない限り他 国の武力行使には介入できないようになっている。そして、あくまで安保法ではこのような要件を課し ており、さらに違憲無効と判断される可能性も高く残されている。そして、台湾では安保法制定時に は 「日本の立憲主義は崩壊した」などと批判的な報道が多く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安倍晋三銃撃 および死亡事件発生時には、安倍晋三は批判に屈しなかったと好意的に報道していることも指摘 する。 本稿の結論としては、台湾は日本国憲法上できない可能性のある集団的自衛権による日本の台 湾防衛に対する協力を安倍晋三の 「台湾有事は日本有事」との言葉から期待しており、日台関係は 互いの 「勘違い」の上に成り立っている側面があると述べ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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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0원

본 논문은 일본의 근현대문학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초기 단편 소설 「담배」(1946)를 분석 대상으로 하여, 「담배」의 동성애 표상이 가면의 고백(1949)을 거쳐 금색(1951-53)으로 발 전해가는 양상을 포괄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담배」가 미시마의 문학 세계에서 갖는 의의를 탐 구한다. 「담배」에서는 미시마가 훗날 복수의 작품에서 표현하게 되는 동성애 및 동성애자의 모습과 이와 관련된 비극, 회한, 화재의 모티프가 프로토타입의 형태로 나타나 있다. 특히 「담배」는 남성 간의 전근대적인 성애 관계를 일컫는 남색과 근대적인 동성애 개념의 과도기적 형태를 그리고 있다. 한편, 가면의 고백의 주인공은 서구 성과학의 동성애 담론에서 볼 수 있는 선 천적인 동성애자로 조형되어있는데, 가면의 고백이 어디까지나 주인공 개인의 이야기라면 금색은 동성애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시선과 차별적 발언, 동성애자 집단의 모습을 묘사한 다는 차이가 있다. 「담배」를 시작으로 가면의 고백과 금색으로 이어지는 동성애 표상의 계보를 정리해보면, 작품의 발전 과정이 일본 사회에서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 변화와 궤를 같 이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작품 창작 시기 작가의 관심과 사회적 동향의 변화에 연동하여 텍 스트가 진화해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담배」에 처음 묘사되었던 회한의 감정과 현실과 꿈의 경계에 있는 화재의 정경은 가면의 고백과 금색으 로 계승되면서 주인공의 캐릭터 조형 변화에 맞춰 진화한다. 따라서 「담배」는 가면의 고백과 금색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말하기에 손색없는 작품으 로, 미시마 소설의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

This study analyzes Yukio Mishima’s early short story Tobacco(1946), comprehensively examining how the representations of homosexuality in Tobacco develop in Confessions of a Mask(1949) and Forbidden Colors(1951– 1953), thus explores the significance of Tobacco. Specially, Tobacco presents homosexuality in transitional phase of the concept of Japanese pre-modern sexual relationships between men, that calls Nanshoku, and of modern same-sex love. While Confessions of a Mask describes an innate homosexual found in Western sexology, and Forbidden Colors depicts the social gaze on homosexuality, discriminatory remarks against homosexuals, and customs of homosexual groups. Starting with Tobacco, and looking at the history of representations of homosexuality that lead up to Mishima’s later works, the process of the development of these works coincides with changes in the perception of homosexuality in Japan. This is an example of the process of a text evolving in conjunction with changes in the author’s interests and social trends at the time of the works’ creation. Further, the motifs o f tragedy, r emorse a nd f ire w hich a re f irst d escribed i n Tobacco, evolved in line with the changes in the characters as they are inherited in Confession of Mask and Forbidden Colors. Therefore,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Tobacco is an esquisse of Confessions of a Mask and Forbidden Colors. It is a seminal text for studying Yukio Mishim’s novels.

本論文は、日本の近現代文学作家である三島由紀夫の初期短編小説「煙草」(1946)を取り上 げ、「煙草」に見られる同性愛の表象が 仮面の告白を経て、禁色へ進歩していく様相を包括的 に考察することで、「煙草」という作品が三島の文学世界においてどのような意味を持つか追究したも のである。 「煙草」では、三島が後年、複数の作品に表現する同性愛および同性愛者の様子や、これに関 連する「悲劇」ㆍ「悔恨」ㆍ「火事」のモチーフがプロトタイプの形で表れている。とりわけ「煙草」 は、前近代における男同士の性的関係を指す男色と、近代的な同性愛の概念とが混ざった、過渡 期的な同性愛を描いている。一方で、仮面の告白の主人公は、西欧の性科学の同性愛をめぐる 言説に見られる生まれつきの同性愛者として形作られている。仮面の告白があくまで個人的な性 倒錯を描いているのに対して、禁色では同性愛者に向けられる社会的な眼差しや差別的な暴 言、同性愛者の集団などが描写されている。「煙草」をはじめ、仮面の告白や 禁色へつながる 同性愛の表象の系譜をまとめてみると、作品の発展過程が、日本社会における同性愛に関する認 識の変化と軌を同じくするのが分かる。これは、作品の創作時期における作家の関心や社会動向の 変化というコンテクストにともなってテクストが進化していく過程を示す一つの事例だと言える。それだ けでなく、「煙草」ではじめて描写された「悔恨」の感情と、現実と夢の境界にある「火事」の情況 は、仮面の告白と禁色へ継承されつつ、主人公のキャラクター造型に合わせて進化する。 したがって、「煙草」は仮面の告白や禁色のエスキース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作品であ り、三島由紀夫の小説を研究するに当たって重要なテクストの一つだと言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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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

본고에서는 일본 근대초기 대표적 여성작가로 활약했던 다무라 도시코에 주목하여 당시의 작가 자신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소설 「여작자」를 분석했다.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존재로서 의 ‘여작자’를 도시코는 어떤 전략으로 전경화(前景化)하였으며 또한 어떤 함정을 유발하는지, 그 역설적 이면까지 추적했다. 도시코는 스스로 여성작가를 ‘여작자’로 개칭함으로써 ‘(남성)작 자’와 대칭되는 위치를 확보하려고 했다. 원제인 ‘유녀’가 여자의 직업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여자의 영역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듯이 ‘여작자’는 성별을 명기함으로써 여자의 또 하나의 직업명과 범위를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당당히 ‘여성’임을 강조하고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며 기존의 남성들과는 다른 묘사기법을 구사한 것은 (남성)작가와의 차별된 전략으로 해 석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생존 전략은 (남성)문단에서 기대하는 ‘여작자’의 역할을 연기하 면서 결국에는 불완전하고 모순된 존재로서의 ‘여성’을 노정(露呈)하는 함정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여작자 도시코의 ‘여작자’로서의 선도적 시도는 일정 부분 평가받아 마 땅할 것이다.

In this paper, Tamura Toshiko’s “Female Writer” is considered. Toshiko is one of J apan’s l eading female w riters i n the early modern p eriod. A nd h er n ovels provide a glimpse into the real life of her Toshiko. Toshiko described herself as a ‘woman’ and presented a new image of a woman. She used a description technique that was different from that of (male) writers. This is interpreted as a strategy differentiated from (male) writers. At the same time, such a survival strategy is to play the role of the expected ‘female writer’ in the (male) literary world. In conclusion, it brings the trap of representing ‘woman’ as an incomplete and contradictory existence.

本稿では日本近代初期の代表的女性作家として活躍した田村俊子に注目し、当時の作家自身 の一面をうかがえる小説 「女作者」を分析した。不安定で不透明な存在としての 「女作者」を俊子は どういう戦略で前景化し、またどういう陥穽をもたらすのか、その逆説的裏面までを追跡した。俊子は 自ら、女性作家を 「女作者」と改称することで(男性)作家との対照的位置を確保した。元の題名 「遊 女」が女の職業を指す固有名詞で女の領域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ているように、「女作者」は性別を 明記することで女のもうひとつの職業と範囲を表記している。このように、堂々と 「女性」であることを 強調し、新しい女性像を提示し、既存の男性とは違う描写技法を駆使したのは(男性)作家との差別 した戦略として解釈される。しかし、同時にそのような生存戦略は(男性)文壇から期待される 「女作 者」の役割を演じながらも結局不安定で矛盾した存在としての 「女性」を露呈する陥穽を招いている。 とはいえ、女作者俊子の 「女作者」としての先導的な試みは一定の部分評価されるべきであ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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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원

본고는 근대 일본의 팽창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조선의 ‘속방’과 ‘자주’에 대한 일본의 대 응이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특히 조선 ‘속방 자주’ 에 대한 일본의 전략을 임오군란 사후처리와 갑신정변 사후처리를 위한 협상 속에서 포착하여 그 성격을 규명하고자 했다. 일본의 근대국제체제로의 이행은 조선과 중국과의 조공책봉관계를 타파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으며, 이는 곧 조선과 중국의 관계 속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지역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쟁점이 된 조선의 ‘속방’과 ‘자주’ 논쟁은 중국과 일본이 전통적인 조공관계를 상투적으로 이용했던 사례 중 하나일 뿐이 며, 양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 의 근대국제체제로의 능동적인 대응은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꿈꾸게 되 는 효시로 작용하게 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how Japan’s response to Joseon’s “dependent” and “independent” issues has changed the international order in East " issues has changed the international order in East Asia. Japan’s transition to modern times was a process of breaking down the traditional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China. At the same time, Japan sought to establish a new regional order centered on its own country. The issue of “dependent” and “independent” that became an issue in the process is only one of the cases in which Japan and China used traditional tribute relations. The ultimate purpose of Japan and China was to secure influence over Joseon. This paper aims to identify the nature of Japan’s response to “dependent” and “independent” in negotiations for the post-treatment of the Im-O Military Revolt and the Gapsin Coup.

本稿の目的は、朝鮮の 「属邦」と 「自主」問題に対する日本の対応が東アジアの国際秩序をどの ように変化させたかを考察することである。日本の近代への移行は、朝鮮と中国の伝統的な関係を 打破する過程であった。同時に、日本は自国を中心とした新たな地域秩序の構築を追求しようとし た。 その過程で争点になった 「属邦」と 「自主」の問題は日本と中国が伝統的な朝貢関係を常套的 に利用した事例の一つに過ぎない。日本と中国の究極的な目的は朝鮮に対する影響力を確保する ことにあった。本稿は 「属邦」と 「自主」に対する日本の対応を壬午軍乱と甲申政変の事後処理のた めの交渉の中で捉え、その性格をあきらかにしようと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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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0원

일본의 중세는 다른 시대에 비하여 귀천(貴賤)의 구별이 훨씬 강조되었고, 그러한 신분의 귀천이 출신 혈통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고 하는 ‘종성관념(種姓觀念)’이 존재한 시대로 알려져 있다. 본고에서는 종성관념과 관련된 용어로서 귀종(貴種)과 대비되는 낮은 신분을 가리키는 말인 ‘범종(凡種)’에 주목하여 중세 귀족사회 속 계층의식을 확인하고 그러한 신분 인식이 등 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본다. 특히 12세기에 활동한 섭관가(攝關家) 출신 상류 귀족인 후지와라 노 요리나가(藤原賴長, 1120-1156)의 일기에 ‘범종’의 용례가 집중되어 있어 그 사례들에 대한 분석을 연구 방법으로 삼는다. 요리나가의 일기에서 범종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미요시(三善) 가문, 나카하라(中原) 가문 출 신 실무직 관료들이나 다이라노 다다모리(平忠盛) 같은 지방관을 역임하는 무사 가문 출신자 였다. 이들이 특정 관직에 임명될 때 그 관직에 오를 자격을 지녔는지 문제시되는 장면에서 ‘범종’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범종은 대신ㆍ공경의 벼슬에 대대로 도달하는 귀종 가문과는 구별되어 공경에 진출하기 어려운 귀족층, 권문세가에 봉사하는 입장에 있는 집단의 신분을 가 리키는 말이라 하겠다. 반면 귀종도 범종도 아닌 중간지대의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었다. 범종이 유독 요리나가의 일기에만 보이는 것은 그가 당시 귀족사회의 신분 질서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상황(上皇)이 실권을 쥐고 통치 행위를 하던 원정(院政)의 시대였고,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고위 관직에 진출하여 기존의 신분 질서를 흔드는 집단 이 등장하였다. 이처럼 새로 대두한 집단의 원래 신분을 분명히 하고, 섭관가를 중심으로 하는 계층의식을 뚜렷하게 드러내려는 의도가 ‘범종’이라는 용어에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범 종관은 요리나가 개인뿐만 아니라 섭관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었다.

Medieval Japan is known to be the age when the distiction between high and low status was much emphasized than those of other historical periods. There was a conception of gotra(lineage), that the status of a person was fixed by descent or birth, in the medieval period. This study is to find out the background of the emergence of hierarchical consciousness, by researching the word ‘bonshu(humble birth)’ which refers to a low status in contrast to kishu(noble birth), and bonshu and kishu both are related to the conception of gotra. In particular, the case of bonshu is concentrated in the diary of Fujiwara no Yorinaga(1120-1156), an upper-class aristocrat from the Sekkan family. In Yorinaga’s diary, the people called bonshu were from the Miyoshi family and Nakahara family, which are the clans of working-level officials, and Kanmu Heishi family as governors and warriors. The word ‘bonshu’ was used when someone is recognized as an unqualified person to be appointed to a specific position of official. Bonshu means the status of a group that is in a position to serve the noble class of kishu, and bonshu people were difficult to become court nobles. On the contrary, noble family of kishu could reach the posts of court nobles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n the 12th century, the latter Heian period, there was a newly emerging group that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Emperor Emeritus who took power and ruled Japan, and entered high-ranking posts of court nobles to shake the status order. The word bonshu was intented to clearly reveal the class order centered on the Sekkan family, and the view of bonshu was shared among people surrounding Yorinaga.

日本の中世は、他の時代に比べて、貴賤や尊卑の概念がもっと強調され、そのような身分の貴 賤が出自や血筋によって固定されているという 「種姓観念」の存在した時代とされる。本稿では、種 姓観念に関わる用語として、貴種とは対照的に、低い身分を表す言葉にあたる 「凡種」に着目し、 中世の貴族社会における階層意識を把握し、そのような身分認識が登場するようになった背景を考 察する。特に、摂関家出身の上流貴族である藤原頼長(1120∼1156)の日記に 「凡種」の用例が集 中しており、その事例の分析を主な研究方法とする。 頼長の日記 台記では、三善氏や中原氏のような実務官僚の家柄の人々、そして平忠盛のよう な受領を歴任する武士の家の出身者が 「凡種」と呼ばれている。彼らがある官職に任じられようとす る時、その官職に就く資格を持っているかどうかが問題視される状況の中で 「凡種」の語が出てく る。凡種は、大臣ㆍ公卿の高官に代々到達するような 「貴種」の家とは区別され、公卿への進出が 難しくなっている貴族層の人々、権門に奉仕する立場にいるグループの身分を指す言葉といえる。 一方、貴種とも凡種とも呼ばれないグレーゾーンの人々の存在も確認される。 凡種の用例が頼長の日記にのみ集中されるのは、彼が当時の貴族社会の身分秩序を強く意識し ていたからであろう。上皇が実権を握って統治を行った院政期において、上皇との密接な関係を通 して高位高官への進出を果たし、それまでの貴族社会の身分秩序を揺るがすグループが登場したた め、こうした新たに台頭したグループのもとの身分を明らかにし、摂関家を中心とする階層意識を顕 著にすることが 「凡種」の語に含まれた意図であると考えられる。このような凡種意識は、頼長だけで なく、摂関家を中心とする貴族社会の人々の中で共有され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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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과 『사진주보(写真週報)』

김영숙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41집 2022.12 pp.155-190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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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전쟁 개전 이전에는 미국과 영국의 장제스 원조 루트를 저지하거나 파괴하는 데 중점을 두고 특히 버마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지역에 주목했던 일본은 동남아시아 국가 사 이의 분쟁을 조정하면서 ‘대동아의 맹주’로서의 위상을 일본 국민들에게 과시하고자 했다. 이 후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동남아시아지역을 점령하자 서구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활기찬 대동 아공영권’의 사회상을 홍보하는 기사를 사진주보에 게재했다. 1943년에 들어 일본의 전황이 본격적으로 불리해지자 도조 수상은 동남아시아 국가를 시찰 하며 결속을 다지는 한편, ‘대동아공영권의 맹주’로서의 이미지도 부각시켰다. 그 방편으로 일 본은 버마와 필리핀에 독립을 부여하고, 자유인도 임시정부를 승인했다. ‘대동아공영권’의 독립 국인 태국에 대해서는 과거의 영토를 회복시키고 특별히 사진주보의 지면을 할애하여 홍보 를 해주었지만 끝내 대동아회의에 피분수상이 불참한 것은 ‘대동아공영권’ 내부로부터의 붕괴 를 의미했다. 사진주보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정책을 국민에게 홍보하고 전의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담 당하는 프로파간다 저널이기 때문에 일본의 패전 상황에 대해서 보도하지 않았지만 지면에서 사라지는 동남아시아 관계 기사와 전쟁기사는 일본의 불리한 전황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사진주보에 나타난 ‘대동아공영권’ 기사는 기본적으로 식민지 기사의 비중이 적고, ‘만주 국’, 난징정부에 비해서도 동남아시아 관련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만큼 경제공동체를 지 향하는 ‘대동아공영권’ 안에서 동남아시아가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Before the Asia-Pacific War, Japan focused on blocking the U.S.-British Chiang Kai-shek aid route, especially Burma and French Indochina, tried to show off its status to the Japanese people by reconciling disputes between Southeast Asian countries. Later, when the Asia-Pacific War took over Southeast Asia, an article promoting the social image of "vibrant Daedonga public sphere" liberated from Western imperialism was published in the Syasinsyuhou. When Japan's war situation became unfavorable in earnest, Prime Minister Dojo visited Southeast Asian countries to strengthen solidarity, while also highlighting his image as a "leader of the Greater East Asian public sphere." As a way, Japan granted independence to Burma and the Philippines and approved a provisional government for free people. Since Syasinsyuhou is basically a propaganda journal that promotes Japan's policies to the public and enhances its fighting spirit, it did not report on Japan's defeat, but articles on Southeast Asian relations and war articles disappearing from the ground revealed Japan's unfavorable situation. Among the articles on the Greater East Asia Common Territory in the Syasinsyuhou there are overwhelmingly many articles related to Southeast Asia, indicating that Southeast Asia was very important within the the Greater East Asia Common Territory aimed at an economic community.

日本は、アジア・太平洋戦争以前には援蒋ルートを絶つことに重点を置き、特にビルマと仏印に 注目し、東南アジア国家の紛争を調停することで、'大東亜の盟主'としての位相を日本国民に見 せびらかした。アジア・太平洋戦争の開戦と共に東南アジアを占領した後は、西洋の帝国主義国家 から解放された'活気あふれる大東亜共栄圏'の姿を『写真週報』に載せた。 日本の戦況が本格的に不利になると、東條首相は東南アジアを視察して結束を図る一方、'大 東亜共栄圏のリーダ'としてのイメージを強調した。また、ビルマとフィリピに'独立'を与え、自由 印度仮政府を承認した。大東亜共栄圏の独立国であるタイ国に対しては特別に礼遇したが、ピブン 首相は大東亜会議に欠席した。そのことは大東亜共栄圏が内部から崩壊されていることを意味し た。 『写真週報』は基本的にプロパガンダ雑誌であるために、日本に不利な敗戦に関する記事は報 道しなかったが、紙面から消された東南アジア記事や戦争記事から状況を隠しきれなかった。 『写真週報』に表われた'大東亜共栄圏'記事は基本的に植民地関連記事の割合が少なく、 満州国および汪兆銘政権より東南アジア関連記事が多い。'大東亜共栄圏'の中で東南アジアが もっとも重要であることが窺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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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能樂史의 일부로서 植民地能樂史 연구를 제창하는 필자가 제국일본의 식민지라 는 공간에서 노(能)와 우타이(謠)가 어떤 전개를 보였으며, 어떠한 문화장치로서 작동하였는가 를 밝혀내려는 연구의 일부분이다. 이 연구의 특성상, 식민지 공간에 형성된 노와 우타이에 관 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우선될 것이며, 이를 통해서 동아시아 근대사 또는 예술사 로서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연구는 최종적으로는 총력전 시기에는 ‘日本精神의 国粋’라는 선전전 아래에서 국체(國體=천황) 수호를 위한 국민통합과 보국(報国)에 동원되었던 노와 우타이가 1945년 이후에는 그러한 역사를 지워버리고 일본의 전통예능, 고전(Canon)으로서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의 위관(偉觀)을 표상(表象)하는 장치로 자리 잡은 현실에 주목할 것이다. 바로 ‘제국의 예술’이 제국 해체 후에 새로 건설된 국민국가의 ‘전통예술’로 변신한 과정에 대한 문제이다. 대한제국보다 15년 먼저 제국일본의 식민지가 된 대만에서는 항일운동이 진압된 1902년 이 전에 이미 우타이 모임을 중심으로 하는 요코쿠계(謠曲界)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주된 담당자 는 식민지 대만을 이끄는 일본인 지도자/지식인층이었다. 대만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통치가 자 리 잡아가는 초기에 대만에 진출한 일본인 사회에서 요코쿠계 활동이 시작된 것인데, 이는 1905년 경성에 통감부가 설치되어 여기에 파견된 일본인 관료와 군인, 교사들 사이에서 요코 쿠계가 형성된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1930년대가 되자 팽창주의로 치닫는 대일본제국은 동아 시아를 격동의 시대, 파쇼와 전쟁의 시대로 몰아넣었다. 대만에서는 무사사건(霧社事件)이 진 압되어 식민통치가 안정기를 맞이했으나, 중일전쟁 발발은 국민=신민 통합을 부추겼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노와 우타이의 장려는 ‘일본정신의 국수’를 확산하고 달성하기 위한 문화장치의 동원이었다. 1938년 5월에 타이난(臺南) 고등여학교 수양(修養) 과목에 요코쿠(우타이)가 설치 되어 있었다. 이 학교에서는 요쿄쿠 외에도 일본의 다도 등을 교내에 있는 ‘작법의 집(作法の 家)’이라는 건물에서 교육했는데, 이 건물에서 사쓰키카이(皐月会), 난포카이(南寶会) 등 교외 일반 성인들의 우타이 모임 활동도 전개되었다. 이는 여느 식민지에서 공회당(公會堂)에서 우 타이 모임이 열렸던 점을 보면, 학교 시설이 공공재로 사용된 예라 할 수 있다. 이처럼 1930년 대 제국의 노와 우타이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혈통적 일본인과 제도적 일본인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기능을 넘어서 모범적인 식민지 출신 신민(臣民)을 양성하고 전쟁 수행을 위한 국민통합 의 문화장치로서 동원되기 시작했다.

As part of ‘A History of Noh’, this paper sets up the research of ‘A Colonial history of Noh’ by illuminating the development of Noh and Utai, and what Cultural Apparatus they functioned a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Reconstructing the circumstances behind the formation of Noh and Utai in the colonies is vital to determine how they should be interpreted as modern and art history. The research shed light on the establishment of Noh and Utai as the traditional performing arts ‘Canon’, which was to express the greatness of Japan as a nation-state from 1945 onwards by obliterating their history of mobilization for national integration and patriotic service to defend the national polity(=Emperor, Tenno) under the propaganda warfare ‘Japanese spirit/Nihon Seishin’ during the total war. The point is to understand the process of the arts of the empire’s transformation into the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n the newly founded nation-state subsequent to the dissolution of the empire. In Taiwan, a country which became a colony of the Japanese empire 15 years prior to Imperial Korea, the Yokyoku circles were already actively led by the Japanese intelligentsia before the suppression of Anti-Japanese movements in 1902. Their presence within the Japanese society at an early stage of colonialism in Taiwan is similar to the formation of the Yokyoku circles at Keijyo(Seoul) in 1905 among the Japanese bureaucrats, military officers and teachers who were sent to the Resident General of Korea. In the 1930s, Japanese expansionism reached its peak and East Asia was driven into an era of turbulence, fascism and war. While the repression of the Musha Rebellion in 1930 stabilized the colonization in Taiwan, an outbreak of the Second Sino-Japanese War had encouraged nation integration and Noh and Utai were mobilized as a Cultural Apparatus to inculcate ‘Japanese spirit/Nihon Seishin’ in students. Such development of Noh and Utai influenced the regular courses in high schools. The Tainan Girl’s Senior High School added Yokyoku to the subject called Shuyo in May 1938. A Japanese Tea ceremony was taught in the school building ‘House of Manners’ where the outsiders could also run circle activities such as Satsuki-Kai and Nanpo-kai. The utilization of schools is a unique example compared to other colonies where public halls were used for gatherings. The role of Noh and Utai in the 1930s went beyond drawing a line between the ruler and the ruled, the ‘true’ Japanese and the ‘institutional’ Japanese and functioned as a Cultural Apparatus to raise disciplined and competent subjects for the conduction of war missions from the colony.

この論文は能樂史の一部としての植民地能樂史研究を提唱している筆者が帝国日本の植民という 空間において能と謡が如何なる展開を見せ、如何なる文化装置として作動したのかを探求する研究 の一部である。この研究の特質上、植民地空間に形成された能と謡の実態を再構成する作業が優 先され、それによって東アジア近代史あるいは芸能史として如何に解釈するのかという問題にアプ ローチすることになる。さらに、この研究は最終的には総力戦の時期に宣伝戦の下で「日本精神の 国粋として国体(=天皇)を護持するための国民統合と報国に動員された能と謡が1945年以降に以前 の歴史を消し去り日本の伝統芸能、古典(Canon)として日本という国民国家の偉觀を表象する装置と して定着している現実に注目することになろう。いわゆる「帝国の芸術」が帝国解体後に新たに建 設された国民国家の「伝統芸能」として変身した過程の問題である。 大韓帝国より15年早く帝国日本の植民地となった台湾では抗日運動が鎮圧された1902年以前に 謠曲界の活動が始まっており、主だった担当者は植民地台湾を主導する日本人指導者ㆍ知識人総 であった。台湾における日本の植民地統治が始まる初期に台湾に進出した日本人社会で謡会が胎 動したのであるが、これは1905年に京城に統監府が設置されてここに派遣された日本人官吏や軍人 あるいは教師などによって謡曲界が形成されたのと似ている。 ところで、1930年代になると膨張主義に走る大日本帝国は東アジアを激動の時代、ファシズムの 時代、戦争の時代への追い遣った。台湾では霧社事件が鎮圧され植民統治が安定期を迎えたが、 日中戦争の勃発は国民=臣民の統合を促し、学生を対象とする能や謡の奨励は「日本精神の国 粋」を拡散し達成するための文化装置との動員であった。1938年5月に臺南高等女学校の修養科目 に謡曲が設置されていた。この女学校では謡曲以外にも日本の茶道などを構内の「作法の家)」な る建物のなかで教育したが、ここには皐月会や南寶会などの学外の一般j人の謡会も催されている。 どの植民地でも公會堂にて謡会が催されていたことを考えると、学校施設が公共財として使われたの であろう。このように、1930年代の帝国の能と謡は支配者と被支配者、決闘的日本人と制度的日本 人の間に境界線を引く機能を越えて、模範的植民地出身の臣民を養成し、戦争遂行のための国民 統合の装置として動員されることにな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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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링고노우타’라는 전후 일본 최초의 유행곡을 중심으로 히키아게샤들의 귀환의 기억에 대해 검토하고, 그 속에서 비균질적으로 결정화되어 있는 ‘소리 기억’이 동일한 지점으 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여러 갈래로 분열되는 비균질적인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링고노우타는 소위 ‘종전 후 폐허의 백그라운드 뮤직’(終戰後の焼け跡のBGM)으로서 패전 직 후 일본 사회에서 희망과 부흥의 상징으로 전유되었다. 그 파급효과는 비단 내지의 일본사회 뿐만 아니라 식민지 일본사회로까지 힘을 미칠 정도로 강력한 것이어서 히키아게샤들에게 링 고노우타의 선율은 전쟁과 귀환의 기억을 소환하는 청각적인 매개물로 기능했다. 그들에게 링 고노우타는 ‘희망의 노래’가 아니라 모국으로부터 버림받은 현실을 통감하게 하는 ‘잔혹한 노 래’였으며, 일본 국민이라는 거대한 집단으로부터 배제되고 분리된 ‘이방인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요컨대 링고노우타는 소리 기억의 균열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하는 일본 전후의 특수 한 소리풍경이며, 더 나아가 그것은 대지진이라는 국가적 재난의 국면 속에서 희망과 부흥의 상징성을 재전유함에 따라 동시대 일본 사회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 중에 있다. 이러한 고찰 을 통해 본 연구에서는 히키아게샤에 대한 논의를 ‘소리’를 통해 새롭게 접근하고, 지금까지 기억 연구 분야에서 크게 다뤄지지 못한 청각의 일상사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In this article, I tried to examine the memories of Hikiagesha, focusing on ‘Ringo no uta’ or ‘the Apple Song’, which was the first popular song of post-war Japan. As a so-called background music of devastated ruins, this song had been appropriated as a song of hope and reconstruction after the Pacific war. Its effect was so intensive that not only in the mainland Japan, but also in colonial societies outside of the Japanese Archipelago had been under its influence, and therefore, to Hikiageshas, the melody of this song had functioned as an auditory medium of summoning the memory of war and return. For them, Ringo no uta, which made themselves realize the status of being forsaken by their own motherland, had rather been a song of heartlessness than a song of hope, and this fact activated the sensation of alien, who had been exlcuded by Japanese people. In summary, Ringo no uta is a peculiar soundscape which should be reconstructed through the fissure of sound memory, and furthermore, this song is still conducting specific purpose through re-appropriating the symbolism of hope and reconstruction in the midst of national scale disasters or earthquakes. In this study, I tried to re-analysis the discourses around Hikiagesha by the methodology of sound studies, and re-examine the microhistoric daily life of auditory sense which has not been noticed so far among memory studies.

本稿では「リンゴの唄」と言う戦後日本の最初の流行曲を中心として、引揚者の帰還の記憶につ いて検討して、その中で非均質的に結晶化されている「声の記憶」が、同じ地点に収斂される事で はなく、別の様々な分岐に分裂される非均質的なもの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リ ンゴの唄は言わば「終戦の後の廃虚のBGM」で、敗戦の直後の日本社会で、希望や復興の象徴 で専有された。その波及効果は単に内地の日本社会だけではなく、植民地の日本社会までも影響 を及ぼすほど強いものであって、引揚者達にそのリンゴの唄の旋律は、戦争と帰還の記憶を召喚す る聴覚的な媒介物で機能したのである。彼らにリンゴの唄は、「希望の唄」ではなく、祖国から捨て られた現実を痛感させる「残酷な唄」であって、日本国民と言う巨大な集団から排除されて分離され た「異邦人の感覚」を覚醒させるものであった。つまり、リンゴの唄は、声の記憶(サウンド・メモ リー)の亀裂を通じ再構成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日本戦後の特殊なサウンド・スケープであって、そ れであの唄は大震災と言う国家的な災難状況の中で、希望や復興の象徴性を再専有することによっ て、同時代日本社会で特定な役目を成し遂げている。こう言う考察を通じ、本研究では、引揚者に 対する議論を「声」を通じ、一層新たに寄り付き、今までの記憶研究の分野であまりに手に掛る事 のなかった聴覚の日常史を再照明しようと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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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41집 2022.12 pp.25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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