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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일본학 [THE HALLYM JOURNAL OF JAPANESE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Institute of Japanese Studies]
  • ISSN
    1738-5334
  • EISSN
    2466-1015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6~2017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일본어와문학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제15집 (10건)
No

<특집>제국일본의 문화권력

1

한국의 현대사적 '學知'에 대하여

지명관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5집 2009.12 pp.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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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0원

2

大日本帝国リベラールの問題ㆍ覚書

堀真清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5집 2009.12 pp.3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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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은 이유는 자유주의가 어느 한 계급이나 국민전체의 생활 철학 혹은 국가정책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 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가주도형 자본주의 발달사에 있어서 이데올 로기로서의 자유주의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자유주의를 제외하면 그 실상이 분명하지 않다. 때문에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언론인이나 연구자에 의해 자유주의자라고 여겨졌던 다섯 명, 즉 후쿠자와 유키치, 구가 미노루, 하세 가와 만지로, 바바 쓰네고, 가와이 에이지로 등의 담론을 각 사상의 독특한 발상과 표현 방법에 주의하면서 살펴보았다. 영국의 경제적 자유주의, 독일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자유주의 역시 1930년대 파시즘 대두 이전, 무력감과 성격적 애매함을 노출하고 있 다는 점에서 비슷한 추이를 보였는데 일본의 자유주의자의 행보를 살펴보 면 다음과 같다. 1.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만약 자유주의를 구습타파 · 미신타파 등 과 같은 비판정신의 발휘, 개인의 자립, 실험주의의 채용, 진취주의(서양문 화의 섭취 · 응용) 등을 포함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이해한다면, 후쿠자와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일본사회에 정착시키려고 한 제1의 자유사상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후쿠자와를 자유사상가로서 언급했던 로버트슨(J. M. Robertson)조차 자유사상을 “신권정치적 사상의 전통 등 광의의 종교 와 대결한, 사회의 진보를 촉구하는 사상”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일본에 서는 유럽에서처럼 자유사상이 신권사상=국체론과 선명한 대립축을 형성 하지는 못했다. 로버트슨이 지적하듯 후쿠자와는 종교적인 미신들(그 가장 절정이 현인신에 의한 국가통치)이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시대에 봉건제도 (구습)을 부모의 적과 같이 여기며 비판적 정신을 발휘하였으나, 자유사상에 대립하는 종교로서의 천황제를 정면에서 논의한 적은 없었다. 2. 구가 미노루(陸実) :구가는 일본의 자유주의가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특정 집단에 의한 것이라는 평가에 이견을 제기하고 일본의 독립과 진흥을 도모한 ‘일본혼을 가진 애국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메이지 민권론에서 일컫는 ‘우울민권론’, ‘쾌활민권론’, ‘번역민권론’, ‘절충민 권론’ 중에서 ‘쾌활민권론’(나카에 초민)을 자유주의의 맹아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유주의를 선호하면서도 편향적인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고 주장한다.(󰡔近時政論考󰡕) 구가는 선배 자유주의자인 후쿠자와를 ‘이상 없는 실리주의자’로 비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메이지기 자유사상가 중 에서 후쿠자와와 구가는 모두 원칙에 구속되지 않는 이른바 ‘자유로운 주 의’(Freeism)에 의거한 사상가였다. 이 두 사람은 국내의 정치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상황의 추이를 파악하고 의견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뛰어났 지만, 반면 근린 아시아와의 교제에 관해서는 국가이성이라는 원칙에서 벗 어나지 못한 사상가였다고 할 수 있다. 3. 하세가와 만지로(長谷川萬次郞): 하세가와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사 상적 중심인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정작 그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운동마 저도 실체로부터 유리된 관념적인 운동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실증적 정치 학의 입장에서 독일식 관료주의와 관념론 철학을 특히 싫어했고, 권위주의 와 특권을 경멸했다. 그는 자유의 속박, 타자로부터의 강제를 혐오한 자유 주의자였지만, 만주사변을 비롯한 급속하게 변화하는 일본사회의 분위기 아래서 무엇과 투쟁해야 하는지, 어떤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 상을 결여하고 있었던 ‘대일본제국’의 자유주의자였다. 역사적, 심리적 사실 로서 국가의 존재를 중요하게 본 그는, 식민지 존재 위에 핀 자유주의자, 침략전쟁을 비판하지 못한, 말하자면 국내소비용 자유주의자의 바탕을 드 러내고 말았다. 4. 바바 쓰네고(馬場恒吾): 바바는 군부의 대두, 만주국의 탄생, 히틀러의 탄생 등 국내외 정세가 정당정치의 존립을 뒤흔드는 시대에 의회정치론,정계인물론 등을 저술했던 인물이다. 그의 자유주의에 대해서, 아오노 스에 기치(靑野季吉)는 “인민이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옹호한다는 건전한 사상 이 일본이라는 국가를 강하게 하며 일본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회 정치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상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많 은 정치평론가들 및 연구자들은 바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몇몇 사료에서 보이는 ‘동아 신질서’를 기정사실화 하는 발언이나 한국병합에 대 한 그의 기술을 종합해보면, 식민지를 가진 일본,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 의 자유주의자들의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5. 가와이 에이지로(河合榮治郞): 가와이는 토마스 그린 類의 자유주의를 ‘제3기 자유주의’라 칭하고 이를 확산시키는데 힘썼다. 그는 고전적 자유주 의가 봉건주의에 대항하고,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이를 극복했 듯이, ‘현 단계의 자유주의’는 이미 개혁을 표방하는 마르크스주의를 극복 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한편으로 국가주의 파시즘과 대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공격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들 양쪽으로부 터 고립되었음은 물론 기존의 자유주의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 자신이 결국 사상탄압의 표적이 되고 말았는데, 이러한 ‘순교’에도 불구 하고 그의 사상은 실천적 주체의 부재, 식민지화된 민족의 긍정 등 한계가 뚜렷했으며, 이런 점에서는 다른 ‘대일본제국’의 자유주의자들과 크게 다르 지 않았다. 이상 다섯 명의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는 나름의 특징을 찾을 수 있지 만, 국가주권의 틀을 전혀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이들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국민의 영광으로 받아들여 국가이성의 전개에 편승했 다. 물론 식민지해방과 침략전쟁 반대 등의 싸움과 국내 노동자․ 농민 계 급의 정치적 자유획득과 생활옹호를 위한 싸움이 하나임을 생각하고 투쟁 했던 오야마 이쿠오(大山郁夫 1880-1955) 같은 사람도 있다. 이러한 자유 주의의 특징을 밝히고 영국과 독일의 경험과 비교해 보는 것, 또한 현재의 변모한 자유주의를 해명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6,900원

3

大伴家持の獨詠歌 : 万葉集巻20四三六〇~四三六二

朴相鉉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5집 2009.12 pp.6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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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모노 야카모치(大伴家持)는 755년에 병사(防人)를 검열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들은 주로 일본의 관동 지방 출신이었다. 근무지인 북구주(北九州)를 향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심경을 노래(歌)로써 남겼다.『만엽집(万葉集)』권20에는 총 84수나 실려 있고, 그 테마는 주로 가족과의 이별을 가슴 아파하는 것이었다. 병사들이 겪는 이별의 아픔에 공감했던 오토모노 야카모치는 그들의 이별을 주제로 한 장가작품을 3수나 읊었다. 권20・4331-4333(A), 권20・4398-4400(B), 권20・4408-4412(C)가 그것이다. 한편 병사들의 이별을 작품화한 A와 B의 사이에는 언뜻 보기에 병사의 노래나 병사를 테마로 한 야카모치의 작품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작품이 있다. 권20・4360-4362, 권20・4395-4397이다. 본고에는 이들 가운데 권20・4360-4362에 보이는 ‘難波に年は経ぬべく思ほゆ’(권20・4362)와 같은 표현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즉 권20・4360-4362는 ‘병사의 검열’이라는 공적인 임무를 맡은 야카모치의 ‘여행(旅)의 노래’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병사를 테마로 한 야카모치의 장가작품 A・B・C와는 차원이 다른, 또 하나의 병사의 노래에 관련된 야카모치의 작품이었다.

4,800원

4

日本の宮中樂舞と古代の韓半島 - 高麗楽「狛鉾」の発生モチーフを中心として -

朴泰圭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5집 2009.12 pp.7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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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는 중국에 통일 왕조인 수와 당이 등장하였고 한반도는 신라의 통일이라고 하는 일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많은 유민이 발생해 일본으로의 집단 이주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 일본은 고대 율령국가 체제를 완성해 가는 단계에서 외래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 그것의 수입에 외교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더욱이 일본 내에는 이미 한반도에서 건너 온 이주민이 거주하며 정치・사회・경제에 이르기까지 지도자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해 오는 이주민은 선진문물의 표상이자 발전적 미래를 알리는 존재였다. 삼의 터전을 뒤로 한 채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건너오는 이주민의 경우 오랜 항해 끝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하는 안도감이 우선이었겠지만, 선진문물의 상징인 그들을 맞이하는 일본의 기쁨과 희망 또한 적지 않았음에 틀림이 없다. 즉, ‘고마보코’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 정세의 변화와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일본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필연적으로 탄생하게 된 악곡이라 하겠다.

5,100원

5

地図の上から人々はみえるのか? ― ジェノ=テクストとしての「ヴァナキュラーな地図」―

藤井 紘司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5집 2009.12 pp.9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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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rticle examines the numerous and constantly updated tourist maps published in Taketomijima of Yaeyama Islands of Okinawa Prefecture. To date, these“Vernacular Maps” have been used but have drawn little attention. With distorted scale size and abstract representations of direction and distance, these topological maps are updated at random times, and some publishing houses do not produce updates for long periods of time. However, when viewed in another way, we can see that these maps are thought-provoking texts. In this article, I would like to consider the expressions that appear on these maps to be both a manifestation of“collective resources” and ethnographic text that is supported by social practice. Situated in between inertia of symbols and inertia of history, these maps are generative and are constantly renewed without ever becoming stereotyped. In this aspect, these texts easily traverse and pass through ethnographic issues (Ethnographic Present) brought about by stereotyped viewpoints. It would thus appear that these maps, as an outstanding resource that transcends stereotyped viewpoints, can in fact show us people.

5,700원

6

日本のマスメディアにおける 「北朝鮮」報道の一考察 - 「北朝鮮」単独呼称への切り替えと背景の分析を中心に -

森 類臣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5집 2009.12 pp.11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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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일본의 매스미디어(주요 언론기관)가 북한보도에 있어서 2002년9월부터 2003년 1월까지의 기간에 ‘기타초센(北朝鮮)’라는 단독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실태를 밝히는 것이다. 그 전까지 거의 모든 매스미디어가 ‘초센민슈슈기 진민쿄와코쿠(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기타초센(北朝鮮)’이라고 병렬하여 사용했던 호칭을 충분한 설명도 없이 돌연 “기타초센(北朝鮮)” 단독호칭으로 바꿨다. 소위 ‘북한보도’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변화에 대해 실태를 밝히고, 당시의 보도 자세에 접근하여 사회학적으로 분석했다. 고찰 내용은 (1)애초 남북분단 국가를 지칭하는 일본어 호칭으로 어떤 패턴들이 존재했을까. (2) 1945해방 이후 1948년의 남북분단국가 성립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매스미디어에 있어서, 한반도의 북부를 가리키는 호칭은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가. (3) 2002년9월부터 2003년 1월까지의 기간에 시작된 ‘기타초센(北朝鮮)’ 단독호칭에 대한 일본 매스미디어의 논리는 무엇인가. (4) 2003년 당시 매스미디어의 보도를 분석하고 매스미디어의 ‘기타초센(北朝鮮)’ 단독호칭에 대한 배경을 밝힌다 ―이러한 4개의 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고찰 결과, 단독호칭 변화에 대한 메스미디어의 주장에는 논리적인 일관성이 거의 없음이 나타났다. 또, 호칭 변화에는 일본 미디어의 납치문제 보도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도 밝혀졌다.

6,000원

7

일본 ‘전후문학’ 연구 - 다층성과 단순성을 중심으로 -

김현희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5집 2009.12 pp.143-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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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の戦後は1945年の敗戦を起点として、1950年の韓国戦争を第一次 「特需」, さらにはベトナム戦争を第二次 「特需」 として経済の建て直しを図ることとなったが、日本国内の政治状況は左翼陣営と右翼陣営の対決、さらに左翼の分裂をみるなど、激動の歴史に巻き込まれ、思想的にも様々な屈折状況が露呈する。このような屈折の戦後史は同時代の文学者たちにも大きな影響を与えた。それぞれの立場から現実をより明瞭に認識する努力がなされ、事の大小にかかわらず本質を見抜く姿勢が求められ、思想や芸術・文学運動として関わっていくのである。このような敗戦後の社会的変動の中で「戦後文学」の動き·在り方について考察してみた。  敗戦後の混乱が古典への回帰ではなく、かえって日本の戦後空間にアバンギャルド芸術運動の可能性を開かせたことは大きな特徴であった。それは既存の価値や伝統を否定し、「戦後」という新しい現実に十分応えるべき新しい「戦後文学」の誕生の契機を与えることでもあった。「右翼と左翼」の冷戦構造ではもう読み解くことはできなくなった新しい文学の創造、それが日本の「戦後文学」の最大の課題でもあった。本稿では、こうした状況を踏まえ、敗戦後・一九五〇年代の思想と芸術·文学運動との多層性というキーワードを通して「戦後文学」の再発見ないしは再照明を試みた。

6,300원

8

예술좌의 만선순업(滿鮮巡業)과 그 문화적 파장 - 시마무라 호게쓰의 신극론과 관련하여 -

홍선영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5집 2009.12 pp.16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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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は1915年における芸術座の「滿鮮巡業」の経緯と京城における芸術座の公演を検討し、芸術座の中心人物である島村抱月や松井須摩子の歩みが「帝国の領土」にどのような文化的影響をもたらしたかを考察した。とくに「内地」に限られた日本の近代演劇の研究とは異る視座に立ち、芸術座の滿鮮興行がいかに「帝国」の文化権力と関わっていたかという問題に焦点をあてた。ところが当時、日本国内においても名高い芸術座の「京城巡業」はいかに実現されたか。これは1915年「御大典」の最中に行われ、帝国の国民たる思想統合という問題と関わっていた。さらに「二元の道」という理念の変化を背景に芸術座を率いていた島村抱月は「外地」で新しい実践の原動力を発見するに至った。またそこに誇るべき「帝国」を表象する女優として「松井須摩子」がいた。芸術座の歩む「二元の道」は「帝国の領土」において新劇普及を実現する新しい地平を開くものになったのである。

6,100원

9

Taking off the ‘Big Mask’ : Understanding the Ancient East Asian Court Dance through investigation of a Korean Poem

Seo. Jung Rock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5집 2009.12 pp.19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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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硏究는 古代 韓國 춤의 特性들을 알아보기위하여 新羅 時代 다섯 가지 춤을 描寫하고 있는 崔致遠(857)의 「鄕樂雜詠五首」는 매우 重要하다. 이 詩의 內容을 자세히 分析해 본다면, 韓國의 古代 춤의 特性과 나아가 동아시아 宮中 춤의 전파 경로를 살펴볼 수 있는데 다섯 가지 詩들 중 하나는 「大面」이다. 만일 「大面」이 唐의 作品이라면 이를 '唐樂'이라 불러야 함에도 詩人은 이 다섯 가지의 춤을 '鄕樂'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이 춤이 唐代 以前 韓國에 傳來되어 韓國化 되었음을 보여주는 證據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韓國 作品이 中國의 것과 많은 差異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 詩의 첫번째 연을 考慮해 보면 詩人은 이 韓國의 춤이 中國과 聯關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詩人은 假面 뒤의 公演者의 모습을 궁금해 한다. 이 사실은 「蘭陵王」 古事에서 高長恭이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假面 뒤에 숨겼다는 이야기를 聯想케 한다. 이 句節은 이 춤이 中國과 關聯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結論的으로 이 詩에 登場하는 新羅의 公演은 衣裳과 假面의 色, 舞具 그리고 題目에서 뿐만 아니라 公演의 目的과 意圖에서도 類似點을 보인다. 이것은 新羅의 「大面」이 日本의 「蘭陵王」과 關聯이 있으며 日本의 「蘭陵王」은 中國에서 韓國을 거쳐 日本에 傳來되었을 可能性이 있음을 시사한다.

7,900원

10

先祖祭祀研究方法論ノート -通文化的比較研究と宗教民俗学-

岩田重則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한림일본학 제15집 2009.12 pp.229-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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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일본의 문화인류학・민속학에서 ‘비교민족학’, ‘비교민속학’ 등으로 일컬어져 온 통문화적 비교연구 방법론을 구체적인 민속사상(事象)을 통해 검토하는데 있다. 다른 민족-가령 일본과 한국-의 민속문화는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들을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비교를 행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기저가 동질적이지 않으면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문화적 비교연구가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할 때, 그 방법론적 가능성을 구체적인 민속사상을 통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이를 위한 기반연구로서 일본의 통문화적 비교연구의 대표작인 石田英一郎의『河童駒引考』(1948)와 鈴木満男의「盆にくる霊」(1972)을 예로 들어 이들의 방법론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두 저서 모두 복수(複數) 민속문화의 기저에는 동질성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분석을 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다른 민족의 민속 문화가 이질적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여, 일본 오본(お盆) 및 조상제사가 불교와의 습합(불교민속) 속에 존재하고 있는 점을 소개했다. 본고에서는 이점에 주목하여 통문화적 비교연구는 복수의 민족에 걸쳐있는 민속문화를, 동질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성을 전제로 하여 각각의 문화적 습합의 양상에 의해 비교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장했다. 따라서 민간신앙의 경우에는, 그 종교민속의 비교를 통해 민속 문화의 특징을 추출하는 것이 가능해 질 수 있다는 점을 결론으로서 제시하였다.

5,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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