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Home

시민인문학 [Citizen and Humanit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 ISSN
    2005-7164
  • 간기
    반년간
  • 수록기간
    1990~2019
  • 등재여부
    KCI 등재후보
  •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 십진분류
    KDC 331.05 DDC 301
제19호 (11건)
No
1

아나키즘과 공동체운동

김성균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제19호 2010.08 pp.9-29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졸고는 역사주의적 관점에 국한되었던 아나키즘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운동의 국내외 경향과 흐름에 대하여 살펴보고, 향후 아나키즘 이 모색하여야 할 방향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국내외 공동체 운동의 특징은 은둔형 공동체에서 관계지향적 공동체로, 자기성찰적 공동체에서 지구적 시민으로서의 공동체의 성향과 내용을 분 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들의 과정은 아나키즘이 지향하는 정부와 국가의 권위보다는 개인과 집산주의를 추구하고 있으며, 거대화된 위계구 조보다는 평등과 자발성이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집중에 대한 저항 이면에 분산과 분권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전문성ㆍ경쟁성에 대응한 보편성ㆍ상호부조의 지향이다. 이러한 현상은 내생적 생태주의 가치를 지 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 운동은 분권, 자치, 자주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특징 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아나키즘은 공동체 운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학습을 통하여 학문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social meaning of communities movement through reanalysis of anarchism. The communities provide the significant suggestions to the civil society movement and regional society movement; In a closed community to community relations-oriented, and as a citizen in the global community beyond self-reflection community. The commuities has been emphasized National and hierarchy of authority rather than individual and collectivity, equality and autonomy, and distributed and are pursuing decentralization. Specialization and competition is emphasized rather than as a universal recognition is important to be cooperative. This phenomenon is endogenous ecological value-oriented means. Community movement has the characteristics of autonomy and decentralization, reflected soicety. Thus, Anarchism is a scholarly reconstruction needs through a new understanding of community study.

5,700원

2

페미니즘, 에코-페미니즘, 아나키즘

구승회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제19호 2010.08 pp.30-63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글은 페미니즘과 그 변종인 에코 페미니즘이 아나키즘으로 수렴되고 있으 며,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글이다. 1960년대 초반 유럽의 여권 신장을 위한 운동으로 등장한 페미니즘은 그로부터 20년 쯤 지난 후 생태이론과 결합되어 에코 페미니즘으로 확장되었다 페미니즘과 . 에코 페미니즘은 아나키즘에 포함된 개념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여성용 아나키즘’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모든 아나키스트는 페미니스트다.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신념은 모든 개인은 의사결정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인간의 자유의 기초다. 그런데 권력관 계가 이런 개인의 능력을 잠식해 버렸기 때문에, 아나키즘은 권력ㅡ권력관계 에 저항하는 것이다. 타협할 줄 모르는 철학으로서 혹은 정치운동으로서 아 나키즘은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그것을 넘어선다. 권위와 권력을 가차없이 비판하는 것, 그것이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신념이다. 아나키즘의 이런 비판은 실존으로서, 개인들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자유의 정신 에서 나온다.
This paper asserts, that feminism and its expanded theoretical form, eco-feminism is conversing, and have to be converged in anarchism. Feminism are appeared as a movement for the extension of womens right at the 60’s last centuries in europe. And about 20 years thereafter, combining with ecological theories, feminism is expanded to the eco-feminism. Feminism and eco-feminism is included in anarchism. So I would appreciate feminism as a ‘female-anarchism’ All anarchists are feminist! The basic belief of anarchism is that, they have a strong conviction in the ability of decision making of individuals, which are the groundwork of humane freedom. But the social power-relations have encroached these ability of individuals, so that anarchism resist against all sort of authorities and authoritarianism. As a philosophy and political movement Anarchism expropriating feminism and pass it over. Obstinate criticizing social power and authoritarianism, the philosophy of anarchism have its origin in dem freien Geist for the free living of indiciduals as a existence.

7,600원

3

대안교육, 아나키즘적 자유를 통한 성찰 - 지역 공동체에 근거한 자유교육 -

박연규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제19호 2010.08 pp.64-97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아나키즘에서의 자유에 대한 물음은 항상 공동체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자유의 외연이 넓을 뿐만 아니라 그 질적 의미도 자유주의자들의 자유 개념과 많은 차이를 갖는다. 즉 개인의 자유에 있어 소극적이고 부 정적인 차원을 벗어나 적극적이고 사회화된 자유를 주장한다. 이 글에서 는 국내 대안학교에서의 자유교육의 의미와 한계를 아나키즘적 자유를 통 해 비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장에서는 대안학교에서의 자유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2장에서는 아나 키즘에서의 공동체적 자유를 살펴보고, 3장에서는 국내 대안학교에서의 자유교육의 현황을 점검하며, 4장에서는 아나키즘적 자유가 대학교육 정 책과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지적한 뒤 5장과 6장에서는 자유의 재구조화와 그 의미를 확인하고자 한다. 대안학교의 자유교육이 많은 부분 아나키즘에 입각한 자유교육과 일치 하기는 하지만, 학교를 공동체와 연결시키고자 하는데 있어 의식은 약한 편이다. 즉 국내 대안학교가 지역공동체와의 관계 맺기를 중요 이슈로 삼 고 있긴 해도 그 관계를 직접적이고 강하게 나타내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 아나키즘교육의 입장에서 학교 없는 공동체, 공동체 없는 학교를 상상할 수가 없다. 학교공동체를 넘어서 학교와 마을이 하나가 된 교육커 뮤니티의 중요성을 아나키즘에서는 주장한다. 한편 대안학교에서 주장하는 자유가 학교공동체에서 한정되고 좁은 의 미에서의 교육의 자유를 주장한다면 아나키즘교육론에서 주장하는 자유는 사회화된 자유, 즉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 공동체의 자유의식을 강조하고 나아가 이러한 공동체들의 연대를 주장하는 식으로 그 자유의 외연 을 넓히고자한다 대안학교의 . 자유교육이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는 수준 이 아니라 아나키즘에서 말하는 자유사회로 가기 위한 역할을 하기 위해 서는 자유에 대한 이해를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All issues of anarchistic freedom have significance in relation to the meanings of local community, and so the scale of freedom is relatively large than the libertarian freedom and, in result, holds its own unique difference. That is, the anarchism considers freedom as positive and socialized freedom but not as a passive and negative way. In this article, by the views of the anarchistic freedom I want critically to search the meaning and limits of free education of the existing alternative school in Korea. In chapter one, I reconsider the meaning of freedom of alternative school in Korea, in chapter two and three, I examine the communal freedom of anarchism and the present situation of free education of alternative schools. And then in chapter four, I point out the relation of anarchistic views and college education administration, lastly, in chapter five and six I confirm the re-constructive meaning of anarchistic freedom. Although the free education of alternative school meets in many parts the anarchistic free education, it does not give much attention to the positive relationship of school and community. Since the advocates of existing alternative school consider such relationship, they still have limits to present strongly and immediately it. According to anarchistic views of free education, there is no alternative school without community. Anarchists insist that school and community must be one. While Freedom of existing alternative school is limited in views of school-community itself, anarchistic freedom is sort of socialized freedom in which freedom is extended to the commune and federates all different communities. Therefore we need a new understanding of freedom so that the problems of the current educational system and even alternative schools as well are rightly solved, by which we gradually succeed to the aim of free society.

7,600원

4

감성공동체의 실현 - 대학과 지역사회 -

최호준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제19호 2010.08 pp.101-125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대학교의 참된 발전이란 겉만 번지르르한 물량적이고 외형적인 발전이 아니라 속이 건실한 질적이고 내향적인 발전을 의미한다. 한국의 대학들은 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정부의 개발드라이브 정책에 힘 입어 성장과 개발에 치중하여 대학을 대형화하는 데 급급해 왔다. 이런 개발․성장논리는 대학의 역사가 길건 짧건 간에, 그 규모가 크건 작건 간 에 그대로 적용되어 왔다. 이로 인해 우리는 ‘개성 있는 대학‘, ‘혼과 얼이 배어있는 대학’ 즉 그 대학만이 가지고 있는 대학다움을 찾아보기 가 힘들게 되었다. 한 시대의 올곧은 이념․가치․논리를 제공해주어야 할 대학이 역사적 경관이건 자연적 환경이건 간에 주변 환경을 희생시키며 추구되고 있는 개발․성장논리에 젖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안타깝게 하고 있다. 앞으로는 사회나 대학은 역사적 건축물이나 문화유산이 그 소중한 가치 를 지키기 위해서 주변 건물을 신축할 때 이에 대한 신중한 배려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역사적 경관이나 자연환경이 개발을 저해하는 하나 의 요소라는 잘못된 종래 생각에서 벗어나 개발은 그 속에 보존을 담고 있을 때만이 비로소 참된 개발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달리 말하면 지나친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 그리 고 우리들 선조가 물려준 역사적 환경(문화유산)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 우고, 편리만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작은 불편쯤은 기꺼이 받아들이며 속도전이 아닌 느림의 미학을 즐길 줄 아는 삶으로 돌아서야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기능제일주의 양적충족시대를 벗어나 아름다움, 쾌적성 정취나 정감이 , 깃들어진 동시에 역사와 전통, 혼과 얼이 배어있는 대학교다움의 감성캠퍼스를 지역공동체와의 연대 하에서 조성하는 일이라 고 생각한다.
The real development of college has its own meaning when it is developed by the inner and qualitative growth but not external and quantitative growth. Most of Korean college administrators only concern increasing the scale by supporting their colleges with the development policy of government since 1960. The logic of development or growth has been made no matter what the history of college is long or short, and no matter what its scale is small and large. The results are what we cannot easily find the collegiate uniqueness and its right academic implication of college spirit. As an example, colleges have destroyed many historic and natural things all in the name of development given over to just developing logic. College and society as well need consideration to such historic structure and cultural heritage when new buildings are made. First of all we have to change our wrong idea that such structure and heritage are an obstacle for development. The real development has its right meaning when it has the spirit of preservation. We have to learn the way of the co-living together with the beautiful nature and the cultural heritage that our ancestors left us. Then we have to return back to the real life in which we might enjoy the aesthetics of slowness readily holding uncomfort instead of comfort. Overthrowing the legacies of technology and quantity satisfaction we recover our college in that college-like campus, namely, of the sensibility community, is constructed where beauty, comfort, sentiment, and artistic effect get woven. And all of the things must be achieved with the federation of the local community.

6,300원

5

지력인력개조에 관한 배움학적 연구

최항석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제19호 2010.08 pp.126-159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본 연구의 목적은 포스트모던의 지식기반사회를 이끌어 갈 인력자원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 으로서 지력인력개조를 제시하기 위함에 있다. 포스 트모던의 지식기반사회를 이끌 인재는 단순히 교육받은 인간이 아닌 지력 인이어야 한다. 지력인이란 전생애를 통해 스스로의 배움본능을 실현시킴 과 동시에, 이를 근거로 삶과 일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결과 새 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와 같은 교육의 시스템으로는 지력인을 양성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래지향적인 지력인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력자원개발의 전략이 필요하다. 본 연구에서는 그 전략으로서 지력인력개조론(HER, Homo Eruditio Reformatting)을 제시했다. 또한 지력인력개조를 위해서는 새로 운 교육의 패러다임으로서 배움학이 필요함도 언급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propose the HER(Homo Eruditio Reformatting) as the new paradigm of the field of Human Resources development to lead the post-modern Knowledge-based society. A person who lead the post-modern society should be the knowledgian as homo eruditio, not the educated men. The knowledgians as homo eruditio meant to actualize the instinct of erudite by themselves through the lifelong, at the same time,,to solve problems in their lives and working fields and to demonstrate the creativities. However, it was impossible to cultivate the knowledginas in the current educational system. To cultivate the future-oriented knowledgians, we need the new strategy for Human Resources Development field. In this study, the researcher produced to HER(Homo Eruditio Reformatting). In addition, it was referred to make useful HER we need the science of erudition as new paradigm for education.

7,600원

6

상담철학이란 무엇인가 - 상담철학에 대한 과학철학적 접근

이운형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제19호 2010.08 pp.160-190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나는 상담철학을 첫째, 상담의 본질, 상담의 성격 등에 관한 철학적 반 성, 둘째, 상담학의 과학적 정당성을 묻는 과학철학의 한 분야라고 정의 하였다. 상담철학을 그와 같이 정의하면서 상담철학에서는 어떠한 문제들 이 논의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먼저 나는 상담과 심리치료의 의미를 명확히 구분하였다. 상담과 심리치료라는 두 용어는 호 환적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 나는 심리치료를 두 가 지로 해석하였다 하나는 . 마음에 관한 치료를 위한 심리학적 접근, 다른 하나는 가치관, 인지, 정서 등의 마음상태(심리상태)의 치료라는 의미이 다. 이렇게 구분하면 심리치료는 상담의 과정에서 심리학적 이론을 토대로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 상담과 심리치료를 동 일한 것으로 파악하지 않게 된다. 상담학을 심리학의 아류로서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은 상담은 곧 심리치료이며, 심리치료의 기반은 심리학이라는 언어인식에서 오는 오해 탓이다. 이러한 구분에 의해 철학 상담은 마음을 치유하는 상담 방법의 하나로서 심리학적 상담과 어깨를 견주게 된다. 철학 상담은 상담 방법의 하나라고 보는데 반해, 상담철학은 다음과 같 은 세 가지 주제를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로 이해하였다. 첫째는 상담의 본질을 묻는 것이었다. 상담이라는 용어에는 마음에 관 한 치료개념이 함축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여기서의 치료는 “시간은 모 든 슬픔을 치유한다.”라는 말에서처럼 치유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심리치료는 마음에 관한 치료의 한 수단이며, 이러한 의 미에 기초하여 철학 상담의 접근 방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둘째는 상담자의 가치관을 다루는 것이었다. 상담의 주된 목표는 내담 자가 상담의 경험을 계기로 행복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내담자를 변화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담자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상담이어야 하고, 상담자의 가치관 정립을 전제해서만 그러한 상 담이 효과적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는 상담윤리학의 큰 과제였다. 셋째는 상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한가라는 상담학의 정당성 문제를 다루 는 것이었다. 상담학은 상담에 관한 이론과 방법 등을 기술하지만, 상담철학은 상담현상을 설명하는데, 여기서의 설명은 인과적 설명이 아니라, 합리적 설명이라는 이해의 방법이 사용되어야 한 다고 보았다.
I, in this article, want to define the philosophy of counseling as a philosophical reflection for finding the essence and character of counseling, and do it as a part of scientific philosophy for questioning its meaning of scientific justification. According to the definition of mine, several arguments follows. First of all, I clarify the difference of counseling from psychotherapy. To show that the concepts are different and not interactive each other, I interpret the psychotherapy in two ways. One is about the psychology of therapy of mind, the other about therapy of psychologic state of value, cognition, emotion and the like. The merit of my clarification is what psychotherapy becomes 'a way of mind' (beyond all psychological states, covering the holistic state of us) based on the psychological theory of the counseling process, and what counseling and psychotherapy is not the same. Most of misunderstanding that counseling should be explained only by psychology are due to one's prejudice that counseling is psychotherapy and that psychotherapy then depends on psychology. Thus philosophical counseling has its own meaning as a method of counseling with the psychological counseling as well. Philosophical counseling is against the philosophy of counseling that is understood three philosophical ways as follows. First, philosophy of counseling is for questioning the essence of counseling. It is in the concept of counseling that therapy of mind is included. The concept of therapy must be understood a healing as the proverb "time heals all sorrows" goes. Psychotherapy so becomes a way of 'mind therapy' and in this way all my understanding is to criticize the established method of philosophical counseling. Second, philosophy of counseling is for values of counselor. The significant meaning of counseling for the counselor is to help the clients find a happy life through counseling. To do it, the counseling aims at changing the way of life of clients and positioning the value correctness of them. This time the intended counseling is effective and is setting as a thesis of ethical counseling. Third, philosophy of counseling is about the justification of counseling in which the objective and scientific research is able to be established. While counseling as a part of an academic science is to describe the theory and method of counseling, philosophy of counseling is to explain those theory and method. Here the explanation must be considered as an understanding of rational explanation, but not just a way of causal explanation.

7,200원

7

韓ㆍ中외래어 수용 방식 대조 연구

전락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제19호 2010.08 pp.191-222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한국어와 중국어의 외래어 수용 방식을 소리에 의한 수용과 뜻에 의한 수용으로 분석하고 대조하는 데에 있다. 3장에서 통시적 차원에서 한국어나 중국어에 수용된 외래어 유형을 살피 면서 각자의 수용 특징을 살펴보았다. 즉, 한국어에 비록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중국에서 한자어 또한 한자로 번역된 외래어를 수용했으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영어를 수용하는 데에 한글이 표음적 기능을 발휘하고 또 중요 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 한자는 표음적 기능이 떨어져서 가능한 한 음역을 피하고 의역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4장에서 영어의 소리를 취하는 수용 방식을 분석하고 대조하였다. 영어 원음의 생략, 첨가, 형태통사적인 변용에 의한 수용 방식을 대조하였는데 한국어가 중국어에 비해 영어를 수용하는 범위, 풍사 유형 등이 훨씬 많음 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글이 원래 표음 문자라서 표음 문자인 영어 문자를 표기하기에 편리하고 중국어는 단음절 문자로서 더 이사 음소로 분해할 수 없어 음을 표시하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5장에서는 ‘뜻만 중시한 번역’과 ‘뜻과 소리를 중시한 번역’의 방식을 분 석하고 대조하였다. 우선 한자의 발음을 나타내지만 자동적으로 이에 따른 의미까지 나타나기 때문에 번역을 중시하는 이유를 기술하였다. 한국어는 비록 중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의역어가 있긴 하지만 그 양이 음역어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그 다음에 ‘諧音’의 언어 현상과 4개의 성조로 인해 한 발음 에 해당되는 글자가 수없이 많다는 이유로 영어의 어음과 어의를 동시에 표 출하는 방식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한국어는 이 방식을 거의 못 쓰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어는 자국어로 번역하는 방식이 더 편리하고 한국어는 외 국어를 음으로 표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make an analysis and contrast between the different method of Korean and Chinese which accept the loanword. As a result, to form a conclusion that it is more easy for Korean to make a phonetic transcription with the Korean alphabet and Chinese has a great notion to use Chinese character to accept loanword. It is because even the culture and the race felling could effect the notion of Korean and Chinese, the character of them is a more important cause when accept loanword. In chapter 3, I showed the acceptance transition of loanword of Korean and Chinese by many historic evidences, and it bear out the different method of Korean and Chinese to accept loanword. The Korean alphabet is a phonetic symbol which has an excellent ability to make a phonetic transcription, and it is very convenient. In chapter 4, I showed many evidences of the two methods and enumerate many concrete example, so as phoneme omission, phoneme addition, practical using of morphology. On the contrary, the Chinese character is a kind of letter that one syllabic has one meaning, so the Chinese character doesn't represent a pronunciation. In addition, it is a kind of pictograph, so it is difficult and inconvenient to make a phonetic transcription directly when accept loanword. The common method of Chinese representing the loanword is translating it. In chapter 5, I showed the difference of the two methods with many evidences and examples.

7,300원

8

감성적 지성인 양성을 위한 감성교육

김철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제19호 2010.08 pp.225-234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4,000원

9

4,500원

10

인문학의 정체성, 그리고 인문학 즐기기

오세정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시민인문학 제19호 2010.08 pp.251-260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4,000원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