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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역사기록학 [The Journal of SDDH]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The Dance Society for Documentation & History]
  • ISSN
    2383-5214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2014~2018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예술체육 > 무용
  • 십진분류
    KDC 685.1 DDC 796
제46호 (10건)
No

서문

1

우수학술지로 향하는 길목에서

김호연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무용역사기록학 제46호 2017.09 pp.2-3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에 따라 개인회원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특집 : 한국근현대무용사의 쟁점들

2

‘무용(舞踊)’, ‘신무용(新舞踊)’ 용어의 수용과 정착 :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이종숙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무용역사기록학 제46호 2017.09 pp.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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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의 신문인 <매일신보>,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기사를 통해 ‘무용’과 ‘신무용’이라는 용어가 한반도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가, 또 어떻게 정착되어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 확산하게 되었는가를 파악하려는 논문이다. ‘무용’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무용’이라는 단어는 서양적이며 일본적이기를 희망하는 새로운 형식적 특성을 함축한 말로서 세상에 등장했다. 기존의 것보다 새로운 형식의 춤이라는 의미의 ‘신무용’이라는 말을 동시 함유하며 탄생했다. 서양 대국과 동등 교류할 수 있는 일본의 새 무용 창조를 내세운 성과가 신무용이었다. 한반도에서 ‘무용’이라는 말이 발견되는 시점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10월 7일의 <매일신보> 기사에서이다. 일본 예기(藝妓)의 춤을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동아일보>에서는 1920년대 유럽의 극무용을 소개하면서 무용이라는 말이 서양의 dance를 대신했다. 대개 철학적이며, 예술성을 갖춘 서양무용을 가리킨 말로 사용되었다. <조선일보>에서는 1927년 10월 7일자 「근일(近日)의 구미(歐米)무용(舞踊)」이라는 기사에서 처음 볼 수 있다. 이후, 1928년 초반까지 ‘무도’와 무용이 혼용되어 기재되었는데, 1928년 후반부터는 ‘무용’이라는 말의 빈도수가 신문지상에서 급격히 높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무용’이라는 말이 일반화되었다. 우리의 전통춤인 검무와 같은 고전을 ‘무용’으로 처음 표기한 기사는 <동아일보> 1927년 5월 12일자 김동환의 「조선무용진흥론」에서 볼 수 있다. 신무용이라는 단어는 1930년대에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는 창작무용이라는 말로 한반도에서 인식되었다. 즉 신무용이란, 유럽식 현대무용의 기법을 토대로 ‘예술적’이며, ‘창작성’을 갖춘 신작무용, 창작무용, 창작예술무용과 통용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상으로 ‘무용’과 ‘신무용’이라는 용어가 한국 역사 속에 수용되고 정착하며, 확산하게 된 사실을 점검해 보았다.
This study aims to understand how the terms ‘muyong (dance)’ and ‘shinmuyong (new dance)’ were initiated, used, and established in Korea through newspapers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such as the Maeil Shinbo, the Dong-A Daily news, and the Chosun Ilbo. The term muyong was first used in Japan, as suggesting a new formal characteristic of being not only Western and but also Japanese. It was simultaneously born with shinmuyong, a term indicating a type of dance newer than the existing one. Shinmuyong indicated an achievement of creation of new Japanese dance that was regarded as being compatible with that of the Western powers. It was an article on the Maeil Shinbo dealing with Yeki, a Japenese dance, on October 7, 1913 that introduced the term muyong to Korea for the first time under Japanese imperialism. In the Dong-A Daily news, muyong represented the term ‘Western dance’ when European tanz theater in 1920s was introduced; it was used to indicate a type of Western dance with philosophy and artistry. The Chosun Ilbo first used the term muyong in its article titled “Western Dance Nowadays” on October 7, 1927. Since then, both mudo and muyong had been used to refer to dance until early 1928, but since late 1928, the use of muyong had increased rapidly in the newspapers and then became generalized. The first article describing classical dance such as geom-mu (a sword dance), a Korean traditional dance, as muyong was the one written by Kim Dong Hwan dated May 12, 1927. The term shinmuyong was perceived as a creative dance that produced something new in 1930s in Korea. It was, in other words, used as a term similar to new-work dance, creative dance, or creative artistic dance with artistry and creativity on the basis of European modern dance.

6,600원

3

전통춤의 창조적 계승과 무형문화재 제도의 양립 가능성 연구

황희정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무용역사기록학 제46호 2017.09 pp.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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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통춤의 창조적 계승과 무형문화재 제도라는 충돌하는 두 개념이 양립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데 목적을 둔다.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는 2016년 법개정을 통해 ‘원형’에서 ‘전형’으로 용어 가 바뀌고, 실질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인간문화재’를 법제화하였다. 전형은 무형문화재 개념과 예술 개념과의 간극을 좁힌 진일보한 개념이고 인간문화재는 춤과 사람간의 불가분적 용해성을 인정한 개 념이다. 기본적으로 무형문화재에 대해 예술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이를 침해하지 않고 창조적 계승을 도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40~50대 젊은 보유자를 적극 발굴하여 인정한다. 이는 춤에 활력을 주고 일찌감치 독자적인 직업군을 형성할 수 있다. 둘째, 인간문화재를 종목당 2명 이상 인정하여 폭넓고 다양한 창조적 계승을 수용한다. 이는 권력의 독점을 견제하고 서로간의 경쟁을 유 도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셋째, 전승 수업료를 문화재청에서 일원화하여 회계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방식은 무형문화재 제도 안에서 전통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데 기여할 것이라 생각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uggest a way to reconcile two conflicting concepts: the system of intangible cultural assets and creative succession of traditional dances. Among the terms for intangible cultural assets in Korea, ‘prototype’ was changed into ‘typifier’ because of the legal revision in 2016. In addition, the term, ‘human cultural assets’, which has been actually used was enacted. Typifier is an advanced concept which makes a bridge between intangible cultural assets and artistic notion, while human cultural assets are also a concept that acknowledges an indissolubility between dance and human being. In order to encourage creative succession, while maintaining and preserving the artistic view on intangible cultural assets, this study proposes the following suggestions. First, we should actively find and appreciate holders of human cultural asset in their 40s-50s. It would help activating the dances and forming an independent job field. Second, we should acknowledge more than two people as human cultural assets for an item, accepting various and creative successions. It leads to restraints power monopoly and to promote competition among them. Last, succession fees should be unified by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for securing transparency and fairness of accounts. These would contribute to creative successions of Korean traditional dances in the system of intangible cultural assets.

5,100원

논문

4

아카이브에 대한 안무적 접근 : <봄의 제전(2013)>을 중심으로

김재리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무용역사기록학 제46호 2017.09 pp.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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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아카이브를 활용한 안무의 사례를 중심으로 아카이브와 무용 실천의 관계를 살펴보고 아카 이브 경향의 컨템퍼러리 댄스의 창작과 담론에 대해 논의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자는 안무가 이민경과 조아오 도스 산토스 마틴스(João dos Santos Martins)의 작품 <봄의 제전(2013)>의 작업 현장에 참여하여 안무를 통해 아카이브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실천적인 논의를 구성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100년간 바슬라브 니진스키(Vaslav Nijinsky, 1889-1950)의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을 재작업한 안무가의 작품들을 발굴, 수집하고 새롭게 맥락화하는 아카이브 방법론을 적용 하여 안무를 발전시켰다. 이는 기존의 작품을 창작의 재료로 삼는 안무의 방식일 뿐 아니라 과거의 것으 로부터 현재의 유효성을 찾는 컨템퍼러리 안무가의 역사적 태도로서 고정된 역사와 지식에 수행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본 연구의 방법은 창작 현장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연습실에 기반한 연구(Studio-Based Research)를 적용했다. 본 연구자는 <봄의 제전(2013)>에서 해설의 역할을 하는 출연자로서 리허설, 개념에 관한 토론, 안무 구성, 해석과 성찰 등 안무의 각 단계에 참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관찰, 면담, 분석, 해석의 절차를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이는 현장에서 창작과 연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연습실에 기반한 연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론과 실천의 통합적 관점에서 무용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 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아카이브에 접근하는 안무 수행에서 중요한 요소를 발견했다. 첫째, 예술작품의 저자와 재연자(reenactor)의 관계이다. 과거의 자료를 다루는 아카이브 방식의 공연에서는 원본을 현재 에 번역하고 전달하는 재연 행위가 중요하다. 안무의 관점에서 아카이브는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에 재연되는 것이다. 둘째, 원본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통한 창조이다. 니진스키의 작업을 재연한 10개의 작품들은 원본과의 차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와 맥락을 생산하며 <봄의 제전 (2013)>의 한 무대에 배치됨으로써 서로 다른 미학적 충돌을 발생시킨다. 셋째, 역사의 신체화이다. 아카이브에 대해 안무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현존하는 신체와 춤을 통해 과거를 현재화하는 것을 의 미한다. 아카이브 기반의 안무는 남겨진 자료들을 춤과 공연의 매커니즘으로 조직하고 이를 현재의 관 객들과 나눈다. 따라서 아카이브에 대한 안무 행위는 역사에 대해 수행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아카이브와 안무와의 관계에 대한 탐색을 시도하고자 했으며 연구의 결과를 통해 컨 템퍼러리 무용의 새로운 작품 창작의 방식 및 담론의 생산의 방법과 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This study looks into the relationship of archive and dance practices by examining a case of archive applied choreography and I discussed the creation and discourses of contemporary dance which tends to archive. For this, I took a part in work of by Min Kyung Lee and João dos Santos Martins and I discussed the choreography which archive was applied. This work was developed into choreography by collecting and newly contextualizing many reworked versions of Vaslave Nijinsky(1889-1950)’s through archive methodology. For this research, I applied Studio-Based Research in order to investigate in the field of work. I found elements that deal with the choreographic approach to archive in . First, the relationship of author and reenactor. A certain arts piece guaranteed authorship and this as the original guaranteed status in the past. However through a choreographer’s translation it seemed like a resistance against power and hierarchy given by history. Secondly, the relationship between mimesis and creation. Through many repetetion of the original piece, differences are made with it, and in the translated works exists ‘singularities’. Thirdly, the embodiment of history. A choreographical approach to archive is to actualize the past through bodies and dance. Choreography which is based on archive organizes remaining documentation by a mechanism of dance and performance and to share with the audience. Through this study, as I tried to explore the relationship of archive and choreography in a practical sense, I would suggest a perspective on the production of creations and discourses in contemporary dance using the archive.

6,700원

5

일본 <료오(陵王)> 재고

박태규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무용역사기록학 제46호 2017.09 pp.8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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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궁중악무 중 <료오(陵王)>는 중국 난릉왕(蘭陵王) 고사에서 유래한 1인 독무이다. 본고에서 는 일본 문헌에 기록된 <료오>에 관해 살핀 후 그것의 전래 양상 및 이미지 등에 관해 재고해 보았다. 중국에서 <난릉왕>은 가곡, 놀이, 악무, 가무희(歌舞戱) 등의 과정을 거치며 궁중 연향악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중 일본에 전래된 것은 가무희의 형태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의 <료오>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특히 그것의 유래 및 전래 등에 관해서는 가면을 중심으로 중국 이외의 인도설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훈초 등의 기록을 통해 볼 때 <료오>는 중국에서 유래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본고에서는 <료오>의 이미지 등을 고찰하기 위해 무악요록(舞楽要錄)의 공연기록을 분석하 였다. <료오>는 무악요록에 기록된 대법회와 팔강(八講), 조근행행(朝覲行幸), 온가(御賀), 그리고 스 마이세치(相撲節)의 5대 행사 중 스마이세치에를 제외한 모든 행사에서 가장 높은 공연 빈도수를 나타 내었다. 더불어 행사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만자이라쿠(万歲楽)>, <산주(散手)>, <다이헤이라 쿠(太平楽)>, <소고코(蘇合香)>, <슌노텐(春鶯囀)> 등이 그 뒤를 이어 공연 빈도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 났다. 여기서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이들 악곡은 공통적으로 황제나 혹은 왕의 선정을 칭송하거나 축수 할 뿐만 아니라 황실의 위엄 내지는 존엄성 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료오> 의 이미지는 과연 어떨까? <료오> 또한 상기의 악곡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판단된다. <료오>의 발생 모티브는 용장 난릉왕이다. 그렇기 때문에 <료오>는 <다이헤이라쿠>는 물론 이사가와묘진(率川明神)을 모티브로 하는 <산주> 등과 일맥상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덧붙여서 <료오>에는 용이 관계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용은 국가나 조정, 황실, 왕족 등을 상징한다. 용을 국가나 혹은 조정 등과 연관시켜 이해할 경우, <료오>는 다시 황실에 대한 칭송과 축수 등을 함의한 <만자이라쿠>, <슌노텐> 등과 이미지 상 중첩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료오>는 난세영웅의 모티브에 용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황실의 위엄 및 축사, 축수, 현왕의 치세 등을 복합적으로 상징하는 악곡으로써 인식되었다고 판단된다.
Various studies have been undertaken about Ryouou. Some, who focus on mask, argue that Ryouou was originated India. However, the existing view of its introduction from China is found to be more compelling when examining Kyoukunshou(敎訓抄) and other literature records. Meanwhile, performance records in Bugakuyouroku(舞楽要錄) was analyzed to study the image of Ryouou. Among the five main events recorded in Bugakuryoroku including the grand Buddhist meeting, Hakkou(八講), Tyoukingyoukou(朝覲行幸), Onga(御賀), and Sumaisechie(相撲節), it was found that Ryouou was performed most frequently in the first four events excluding Sumaisechie. In addition, it was found that Ryouou was most frequently performed followed by other music pieces such as Manzairaku(万歲楽), Sanju(散手), Daiheiraku(太平楽), Sokou(蘇合香) and Shunnoten(春鶯囀) followed Ryouou in performance frequency. What is noteworthy is that these music commonly praised, prayed and celebrated the exemplary rule of the emperor or the king and symbolically expressed the authority and dignity of the imperial family. Then, how was Ryouou perceived in Japan? Ryouou was not so different from the aforementioned music. As the motif of a hero in an turbulent era was added with the image of a dragon, it is concluded that Ryouou was perceived in Japan as a music that represent a combination of the dignity the congratulatory message, prayer for the imperial family, and the peaceful regime of the king.

6,700원

6

예술교육 전문가로서 핵심역량과 미래 무용교육의 실천적 방안

송혜순, 황명자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무용역사기록학 제46호 2017.09 pp.11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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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무용인이 예술교육자로서 지녀야할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핵심역량을 알아보고 이를 수반하는 무용교육 전문인 양성을 목표로 실천적 방안을 제시하는데 있다. 연구과정은 문헌 및 해외 유명 예술교육자의 강좌, 좌담, 인터뷰, 사례자료를 참고하여 각국의 예술교육 현황을 살펴보았 으며 구체적인 연구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술연구정보서비스를 통해 예술교육 관련 교수자 역량에 대 한 키워드로 검색 된 자료 중, 30여 편을 중심으로 무용교육자적 역량 6가지를 발췌하였고 타 분야 예술교육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예술체험 교육역량 2가지를 보완, 총 8가지 예술교육자 역량을 도출 하였다. 이를 근거로 예술교육전문가로서 역량수반을 위한 무용계의 변화와 수용 등을 토대로 다가올 미래 예술교육에 따른 무용교육자의 실천적 방안을 유추하였다. 연구결과, 예술교육자는 핵심역량을 필요로 하며 이는 감정공유적 역량, 창의융합적 역량, 문제해결적 역량, 인문학적 역량, 디지털매체활 용 역량, 문화교육적 역량, 예술기능적 역량, 치유적 역량으로 나타났다. 이 핵심역량은 무용인의 예술 활동, 교육활동, 연구 활동 역량 함양에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무용인의 실천적 방안은 다음과 같다. 먼저 무용계 내부의 반성적 성찰을 갖고 무용예술교육 표준 지정 및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여 타 예술 교육자 간 공유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교육콘텐츠 활성화와 전통융복합문화의 글로벌화가 요구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dentify the core capabilities necessary for a dancer to have an expertise in, art education and to incorporate the capabilities along with a practical plan in order to educate professional dance educators. The results have shown that the arts educators need core competencies in the fields of emotional cognitive, creative convergence, problem solving, humanistic, cultural educational, artistic, and healing competencies. These core skills are necessary in order to develop competence necessary for the artistic, educational and research activities of a dancer. For this purpose, a practical plan in which dancers can follow comprises steps of reflecting on the dancers who are already in the dancing world, vitalizing a sharing system amongst art educators. It also requires dance art education standard specification. and guidelines setting as well as activation of educational content and globalization of traditional fusion culture.

5,800원

7

20세기 소비에트 발레 동향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 연구

이희나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무용역사기록학 제46호 2017.09 pp.135-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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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전반기부터 소련 사회를 지배했던 소비에트 발레의 작품 경향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예술 창작론과의 관계 아래에서 분석하고 현대의 시각에서 재평가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격변의 시대 속에서 소비에트 발레가 어떠한 환경 하에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했었는지를 조명하였다. 또한 당시 행해졌던 다양한 안무 시도들을 알아보며 그 과정에서 소비에트 시대의 문화예 술을 지배했던 특수한 문예사조였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소련의 대표적 발레 작품들에 어떻게 드러나 고 있는지 그 실체를 규명하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1934년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래로 20세기 문화예술 창작론의 한 경향이자 문 예사조였다. 이 방법론이 반영하고자 했던 것은 현실 자체의 문제점이 아니라 그것이 나아가고자 하는 이상향, 즉 행복하고 낙관적인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마르크스-레닌 미학으 로 불리는 소비에트 미학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핵심 개념은 인민성, 계급성, 당파성이다. 혁명 이후 1920년대 초창기의 예술은 오히려 훨씬 자유롭고 급진적이었다. 고르스키, 로푸호프, 골 레이조프스키 등은 당시의 대표적 안무가들로서 그들의 작업은 서구의 형식주의적 모더니즘 경향에 대응할 만큼 실험적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작업은 오늘날 그 가치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에서는 대표적인 네 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발레를 분석하였다. 작품 분석의 틀을 고안하여 작품 속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적 경향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사상적 경향을 배제하고 작품 자체의 가치를 밝히고자 하였다. 분석 대상 작품 중 <로미오와 줄리엣>과 <스파르타쿠 스>는 사상적으로도 충만하지만 작품 자체의 미적, 예술적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소비에트 사회가 해체 된 현재까지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된 후 무수한 소비에트 발레 작품이 무대 뒤로 사라졌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의 시각과 감각으로 각색되는 등, 다시금 무대 위로 소환되고 있다. 이제 관객들은 더 이상 사상적 선동을 위해 작품을 감상하지 않으며 발레 미적 가치를 그 자체로 즐긴다. 본 연구는 학문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비에트 초기의 발레 동향을 재조명하였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 발레가 오늘날 갖는 의미를 역사적, 미학적 지평에서 해명하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examine the Soviet ballet in the 20th century in terms of socialist realism and to reappraise them. First, I focused on the conditions of ballet in the Soviet era after the October Revolution; how the classical ballet managed to survive; what kinds of works attempted by young choreographers like Goleizovsky and Lopukhov. Then, I investigated that how the Soviet ballet works represented socialist realism. Socialist realism had been the principle of creation during Soviet regime since 1934. It was not only an artistic style but also a propagandistic ideology that promoted the view of Soviet life. Socialist realism tried to show ought to be, such as an optimistic Socialist utopia not the real social problems. This trend was is based on Marxist-Leninist aesthetics.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this aesthetics consisted of “nationality(narodnosti’)”, “class system(klassovosti’)” and “partizanship(partinosti’)”. I analyzed four Soviet ballets: The Red Poppy (by Glière and Tikhomirov), The Flames of Paris (by Asafiev and Vainonen), Romeo and Juliet (by Prokofiev and Lavrovsky) and Spartacus (by Khachaturian and Grigorovich). The Red Poppy was considered as the first Soviet ballet because it dealt with the theme of soviet “contemporary” life. The Flames of Paris was full of energetic and vivid character dances which symbolized “nationality (narodnosti’)” of soviet aesthetics. “Drambalet” in 1930s’ was the alternative name of the socialist realism ballet, and Romeo and Juliet was called as the genuine drambalet. Also, Spartacus was provided as the model of Soviet ballet. In conclusion, this study examined the way how socialist realism was reflected in the Soviet ballets. The aesthetic values other than the ideology were also interpreted. Finally, the further steps of study about the Soviet ballet in the 20th century can be developed on the ground of history and aesthetics.

6,700원

8

CIS 고려인의 전통춤 계승의 무용사적 의미

홍세희, 조기숙

무용역사기록학회(구 한국무용사학회) 무용역사기록학 제46호 2017.09 pp.16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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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최근 10여 년간 연구된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독립국가연합)지역 고려인들의 한민족 전통문화 활동을 연구 조사한 논문과 서적 그리고 온라인 보도자료를 통해 한민족 인 그들이 거주국에서 지켜온 한국 전통춤 활동이 어떤 의미를 형성해 왔는가를 무용사적 관점으로 연구했다. 즉 본 연구는 그들의 전통춤문화 활동이 한민족의 무용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연구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재외한인들의 디아스포라 문화와 그들의 전통춤 활동에 관한 연구는 한국무용사에서 드물게 이루어 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지역적으로는 가깝지만 외교문제로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던 중앙아시아 CIS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 관한 춤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고려인은 1860년대 초 북부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이며, 1937년 척박한 땅인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뼈아픈 역사 를 지닌 한민족이다. 이들에 대한 관심과 전통문화 계승에 대한 연구는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한국 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 고려대학교 한민족 공동체 연구센터, 디아스포라 문화연구 그리고 재 외한인연구회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무용학계에서는 거의 연구되지 않고 있다. 현재는 과거 활동했던 소인예술단 전통이 일부 부활하여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춤 활동은 그들에게 한민족으로서의 유대감을 심어주고 정체감을 공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CIS에는 몇 개의 고려인 가무단이 젊은 무용수들을 양성하며 드물지만 한국과의 교류 속에서 전통춤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이 내한 공연과 워크숍 등 한국과의 지속적인 교류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무용계 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품어야 할 것이다. 고려인들은 150년 이민역사 속에서 제정 러시아, 소련, 독립국가연합으로의 역사의 격변을 겪었다. 생존을 위해 소련정책을 따랐고 우리민족의 정체성(identity) 또한 잊지 않는 이중적 특징을 견지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그만큼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활동은 우리 문화예술의 영역 을 넓혀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들과의 교류는 한민족 전통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초국가적으로 유라시아 전역에 펼쳐있는 고려인들을 통해 한국과 교류가 없는 지역에도 한국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한국무용의 범위가 확대되는 결과를 나을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한국무용사에서는 고려인들 디아스포라의 한민족 춤 활동을 품고 동시에 한국의 춤문화가 세계에 뻗어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This paper examines the meaning of the traditional dance culture that Korean people, particularly focusing on the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have preserved in other countries through the tradition of Korean traditional culture. Furthermore, using online press release and publications, the authors Xaim to study its meaning within the Korean dance history. The research on Korean diaspora culture and their traditional dance activities is being done rarely by the Korean Dance Department. It could be said that research about the Goryeo people living in the CIS is practically nonexistent. Currently, the tradition of the former Soviet art group has been revived and continues its tradition. The succession of traditional dance culture plays an important role in instilling a sense of bond and shared identity with Korean people the same. In CIS, several Goryeo delegates cultivate young dancers, but they are inheriting traditional dances through cultural exchanges through culture with Korea. Korean dancers should be interested in them because CIS dancers Goreyo dancers are thirsty for continuous exchange with Korea, such as performances and workshops. The CIS Goryeo people underwent a catastrophic change of history in the past 150-year history of immigration to Russia, the Soviet Union, and the CIS. They have followed the Soviet policy for survival but lived with dual characteristics that does not forget the tradition of their origin. They are forming a distinctive culture. Their activities indicate the possibility of expanding the area of Korean culture and arts. The exchange with them will go beyond sharing the tradition of Korean people, and will form a traditional network that can promote Korean culture even in regions where there is no exchange with Korea through the Goryeo people spreading across Eurasia in transnational countries. I think that this will contribute to expansion of Korean dance. In the future, Korean dancers will have to embrace Korean diaspora dance culture, and at the same time, I hope that Korean dance culture will spread to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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