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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학 [THE EASTERN CLASSIC STUDIES]

간행물 정보
  • 자료유형
    학술지
  • 발행기관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INSTITUTE FOR EASTERN CLASSIC STUDIES]
  • ISSN
    1598-1452
  • 간기
    계간
  • 수록기간
    1995~2019
  • 등재여부
    KCI 등재
  • 주제분류
    인문학 > 기타인문학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제22집 (15건)
No

문학

1

『老松堂日本行錄』에 보이는 당대 日本認識

박종훈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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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松堂日本行錄>은 宋希璟(1376~1446)이 1420년 일본에 回禮使로 왕래하면서 견문한 것을 기록한 시집이 다. 이 시집에는 序跋文을 포함 총 202題 230首의 詩가 수록되어 있다. 사행 기록은 날짜별로 이동거리나 그날 의 특이한 사항을 일기체로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노송당은 이러한 것들을 특이하게도 모두 시로 기록했 다. 또한 詩序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작품의 배경 및 내용, 일본의 독특한 풍습 등을 보충해 소개했다. 노송당은 회례사의 신분으로 일본을 왕래했는데, 1419년 대마도 정벌이 감행된 이듬해였기에 양국 간의 정치 적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하에서 회례사로 가게 되었기에 일본에 대한 노송당의 인 식은 출발자체부터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대마도의 해적들은 지속적으로 조선의 해안을 침범해 노 략질을 하고 있었기에, 대마도에 대한 노송당의 인식은 고울 리가 없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대마도를 해적 의 소굴로 받아들이면서 대마도 정벌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또한 조선에 귀속되기를 바라는 대마도 島主 의 의도에 대해서도 자신들을 위한 임시방편의 술수로 규정하면서 극단적인 배타의식을 드러냈다. 노송당은 일본 사행 길에 수많은 절을 경유하면서 본 일본 불교의 이단적인 모습을 상세히 기록했다. 백성의 절반이 중이라서, 농사일이나 관가의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불교를 지나치게 숭상하는 폐단을 지적했 다. 好衣好食하며 無爲徒食하는 일본 불교의 실상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는데, 특히 절에서 행해지고 있는 중과 여승 사이의 음란한 실태에 대해서는 비판의 수위를 한 층 높였다. 노송당 역시 성리학적 가치관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불교를 극단적으로 숭상하는 일본 불교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지만, 당대 실제 일본 불교의 이단적 모습에 대해서는 질타를 서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불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학식이 뛰어난 중에 대해서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의 삼모작이나 祭禮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선을 두었다. 水利와 기후로 인해 삼모작이 가능하지만, 불교 의 극단적 숭상으로 인해 풍요롭게 살아가지 못하는 농촌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또한 부모의 제례를 받들 듯 前王의 제례에 삼가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묘사했으며, 토지의 조세를 사사롭게 쓰면서 자식에게 대물림하 는 조세 제도에 대해서는 희롱하는 뜻을 비쳤다. 특히 당대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淫風을 비판적인 시선으 로 보았다. 도처에 있는 윤락녀와 그들의 작태 및 궁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男色의 음풍을 그대로 시편에 담았 다.
is poetical works that records observation about Japan who Songheekyung (1376~1446) is a man who a return visit through come and go to Japan since 1420. This poetical works put total 202subjects and 230poems including a preface and an epilog on record. Ordinary a private trip record usually describes diaries like movement by the number of days or a peculiar matter the day. But, Nosongdang was record a peculiar of this sort by poems. Also, through a positive practical use a poem and a letter, he introduced a background and a substance of a work, a inimitable manners of Japan, etc. Nosongdang is come and go at Japan by a man returning a courtesy. This is Daemado conquest was taken decisive action, at 1419 after. Because, between administrative tension two countries were get into high spirits. At such a political background, He went Japan by a man returning a courtesy. So, Nosongdang`s recognition about Japan was cannot help doing negative from departure. Moreover, pirates of Daemado continuously plunder that infringement the seashore of Choson. Therefore, Nosongdang about Daemado would fine that. By the reason, He was assent to Daemado by a haunt of pirates. and than He allowed justness about Daemado conquest. Also, he exposed that hope be restored to in Choson about an intent the master of a Daemado. and he prescribed by an artifice stopgap measure and than he disclosed extremes consciousness of exclusion. Nosongdang passed through many Buddhist temple at Japanese private trip. Besides, He saw heathenism of Japanese Buddhism, and he wrote out. He said that a half of the people is a buddhist. so, he said that there was nobody which a farm work and a government work. and than, he pointed out an abuse like worship too much. He exhibited negative recognition about the actual circumstances of the Japanese Buddhism that living in clover(好衣好食) and eat idle bread(無爲徒食). however, specially he commented far harder about gaudy the actual state at a Buddhist temple between a Buddhist priest and a Buddhist nun at a Buddhist temple. Nosongdang also has a value of Sung Confucianism. because, he has no option but to negative about Japanese buddhism that extremely respected a buddhism. but, the present age, he was given a scolding about heathenism of Japanese buddhism. For all that, He I was not generally negating Japanese Buddhism. He was not miserly applause about scholarship was excellent. He considered positive one’s gaze about raised three crops a year of Japan or ancestor memorial ceremonies. Owing to Utilization of water and climate, Japan is possible to raise three crops a year. but, Owing to an extreme respect of the buddhism, He was anxious about didn`t abundant actuality of a farm He judged to poor a farm actuality that didn`t an affluent society because of an extreme respect of buddhism. Also, He positively delineated a eschewed state at ancestor memorial ceremonies of the last period King like have ancestor memorial ceremonies of parents. And He appeared that privately used taxes of the land and teased about succeed taxes. Specially, He saw critical one’s gaze a lewd manners at Japan. He put into poems just as he saw and listened that a lewd manner like a fallen woman at all over, and pederasty at a palace.

7,300원

2

동학가사의 ‘꿈’ 모티프 차용 양상과 의미

최은숙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3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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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동학가사 가운데 ‘꿈’을 모티프로 한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의 존재양상과 ‘꿈’의 역할을 살피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작품의 존재 양상을 내용과 형식, 그리고 특성을 중심으로 살핀 후 동학가사의 꿈 모 티프 차용양상과 그 역할을 두 가지로 나누어 논의하였다. 동학가사에서 꿈 모티프를 활용한 작품은 <夢中老少問答歌>, <夢中問答歌>, <夢中歌>, <夢中運動歌>, <春 夢歌>, <夢覺銘心歌>, <夢警歌>, <雲山夢中書>, <夢覺虛中有實歌>, <夢警時和歌>등이다. 이들은 동학의 가르침을 설파하거나 이상세계를 예언하는 내용을 비유와 나열로 표현하거나 몽유구조를 통해 나타내었다. 그리고 꿈 모티프 관련 어구들은 작품의 사설형성 및 향유를 용이하게 하는 관용어구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동학가사에서 꿈은 무의식 상태를 비유하여 이를 경계함으로써 동학에서 말하는 이상세계인 선천(先天) 에의 준비를 촉구하거나, 몽유구조를 통하여 유사경험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선천에 대한 계시의 역할을 하 고 있다. 이를 통해 동학가사에서 꿈 모티프는 창생을 설득하고 종교적 믿음을 연장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기 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고의 논의는 동학가사 자체가 지닌 문학적 특성에 대한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제시하였다는 점 과 몽유 모티프를 수용하고 있는 동학가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통해 몽유가사의 전체적 조망에 진전을 가 져왔다는 의의를 지닐 수 있다.
Donghak's lyrics is about songs of religion. It was created for the purpose of religious propaganda. Exceptionally many works on motive of dream have been created.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focus on the work patterns, the presence of 'dream' role and its meaning. Dream is a metaphor of the ideal world or shows the ideal world itself. Meanwhile, the dream in Donghak-Lyrics assimilate the state of consciousness or is written in the analogy form of similar experiences. The dream requires more than ready for the ideal world and shows the ideal world at least indirectly to the people. This kinds of dream motif in the Donghak-Lyrics have a role to contribute effectively to persuade people and prolong their religious beliefs. This discussion suggests a new research methodology of the literary characteristics of the Donghak lyrics. and broadened horizons on the reaserch of the dream motif lyrics.

6,100원

3

『金玉緣』연구

손병국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6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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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소설의 여러 장르 중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신문연재소설과 신소설이다. 이 시기의 이르러서 전대(前代) 소설은 새로운 출판물로서 새로운 각광을 받았으며 구소설이든 신소설이든 상 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출판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였다. 이렇게 되다보니 전대소설 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전대소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했던 신소설은 기존의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전대소설이 지니고 있던 흥미로운 구조가 신소설에 의해 전승 되었으며 이는 전대부터 있어온 사회적 통념을 지니는 동시에, 새 시대의 사회적 통념까지 나타내면서 흥미로 운 사건으로 전개되었다. 본고는 <소양정>이나 <금옥연> 등과 같이 신문연재소설이나 신소설 등에서 꾸준히 명대백화단편소설인 <삼언이박>의 번안이 이루어진 사실을 주목하였다. 그 결과 『금옥연』이 여주인공의 적극적 행동을 통해 결혼을 하고 억울하게 도적으로 몰려 옥에 갖힌 남편을 구해내는 적극적 행동의 여인상을 그림으로써 비록 사건 전개의 장애를 일으키지 않는 부플롯이 첨가되면서 윤리소설로의 변개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유세명언> 권2와 <금고기관> 권26에 실린 <陳御史巧勘金釵鈿>와 비교하여 볼 때 주풀롯이 일치하 고 등장인물의 변개가 일어나지 않은 번안작이며,우리의 전형적인 윤리소설의 틀을 유지한 작품임을 밝혔다.
In the formation of Korean novel literature, when the characterristic to the acceptance of the Chinese novels greatry influencing it’s literature are assorated and classified by each era, the problem to make a creative development brought on. In the intermediary study, I have cast a glance at the Chinesenovel works shown in documents in order to examine the transmission of the Sanyan(三言) and Erpai(二拍). The things obtained from the said, even though the themes of Sanyan and Erpai are not found out in such documents, can be looked into from the standpoints of the records in the documents, the transmission of the selection, an adaption and the translated works. the things capable of joining the transmission of such selections is the JinguQiguan(今 古奇觀), and it can be said that the above thing is just a favorable material capable of making the transmisssion of the Sanyan and Erpai cleared up. The patterns accepted from the novels in the civillized age can classfied to the serial story for a newspaper and a new-style novel. As for the serial stories foe a newspaper Soyangjung(昭陽亭) can be referred to. As new-style novels, the works which the striking relationship to the Sanyan and Erpai is seen are Kumokyun(金玉緣) and the last part, is a work adapted from the Jinyersagyogamkumchejun(陣御使巧 勘金釵鈿).

6,300원

4

북한의 민속전통 계승의 실제와 의미

김종군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8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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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북한에서 우리의 민속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 실제 모습을 살피고, 그 의미를 밝히 는 데 있다. 북한은 민속전통을 시대나 정권에 따라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할 때는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도 하였고, 통치 논리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될 때는 고루한 것으로 폄하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민속전통 의 가치에 대한 시각이 곧 북한의 정치논리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민속전통에 대한 관심은 남북한이 같은 맥락에서 이어졌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보편성과 민 족의 특수성을 강조하던 북한에서는 민속전통에 대한 관심을 남한보다 우선하였다. 1960년대말까지 전국적인 민속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구전문학에 대한 학문적 체계 수립도 남한에 앞선다. 그러나 1970년 이후 주체사상 이 수립되면서 민속전통은 봉건적 유물정도로 홀대를 받는다.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은 1989년에 들어 김정일 에 의해 변혁을 맞게 되고, 이후 점점 긍정적인 산물로 평가를 받게 된다. 2000년 이후 남한에서는 ‘글로벌화’와 ‘다문화’가 문화정책의 키워드로 부상하면서 민속전통에 대한 관심이 희 석된 데 비하여, 북한의 경우는 ‘조선민족제일주의’를 표방하면서 조선의 민속전통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민속예술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민속명절, 의복생 활, 식생활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적 분위기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의미는 북한 주체사상이론의 기반이 ‘조선민족제일주의’로 강화되는 징표이며, 남한의 ‘세계화’ , ‘다문화’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통해 민족의 정통성을 북한에 두고자하는 의도로 파악된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n North Korea how to succeeded our folk tradition is to check the appearance of substance, is to reveal its meaning. When North and South Korea depending on the time or regime make use of folk tradition as a means of controlling the people, often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it. on the contrary, when Judge of folk tradition by becoming an obstacle to the rule logic, often undermined as stick-in-the-mud. Therefore, the vision for the value of folk tradition can be a measure that can be read the change of the logic behind politics. Since 2000, North and South Korea differ on the approach about folk tradition. In the case of South Korea, while 'globalization' and 'multiculturalism' have emerged as a keyword , interest in folk tradition was diluted. In contrast, in the case of North Korea, while advocating ‘the thought that Koreans are the best’, the folk tradition of korean has been highlighted. These trends as well as the area of folk art are requiring strongly a change in everyday life, In folk Festival, clothing lifestyle, dietary life, seems reactive atmosphere that go back to the traditional way. The significance of these changes is a sign that the foundation of theory is based on North Korea's the juche ideology been strengthened as ‘the thought that Koreans are the best’, through strong criticism of South Korea's 'globalization', 'multicultural', is identified as a Intent put the legitimacy of the nation to North.

7,000원

5

『燕京歲時記』에 나타난 청대 세시풍속 고찰

상기숙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119-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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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세시기>는 청대 북경의 세시풍속을 음력 정월부터 12월까지 기록한 것으로 주요 내용은 풍속⋅유람⋅물 산⋅기예로 총 145조이며 해를 마감하고 시작하는 12월(23조)과 정월(21조)에 집중되어 있다. 본고는 세시풍속 제 양상을 전통절일(18조), 종교절일(36조), 월내잡사(30여 조)로 나누어 고찰한 것으로 종교절일이 우세하며 도교적 성격이 강하다. 일자는 월일의 중복, 삭망일과 기수일이 대부분이며 한 해의 상반기에 치중된다. 청대 상업경제의 발달을 반영한 묘시는 불교 사찰, 특히 도교 묘우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열린다. 일자는 주로 정월 과 숭배신의 탄신일에 집중되며 신을 경배하여 기복피사⋅치병⋅구자하는 한편 다양한 일용품⋅기호품을 구매 하고 연희⋅잡기⋅놀이를 즐기며 유람한다. 기타 월내잡사는 10월 이후 후반기에 풍성함을 보인다. 계층별로는 대부분 관민이 함께 거행하며 절기와 관련 깊다. 사상별로는 민간신앙을 바탕으로 유불도가 종합되었고, 내용 별로는 진경벽사⋅경축이 근간을 이룬다. 절식은 제철 음식으로 먼저 제사에 올리고 몸을 보양하는 한편 사기를 물리치며 놀이 역시 자연환경인 절기를 반영한다. 특히 폭죽을 터뜨려 사귀를 쫓는데 후대로 오면 점차 경축과 오락적 성격이 강해진다. 그 외 중국어 의 특징인 해음관계를 반영하고, 전통적 종이공예인 전지와 붉은 색을 많이 사용한다. 󰡔연경세시기󰡕에 나타 난 세시풍속 제 양상은 모두 해당 절기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세시행사는 주로 부녀자와 아이들이 주체가 되며 추구하는 바는 진경벽사⋅초복제액⋅무병장수로 빈부귀천 모두 기복하고 액막이함에 목적을 둔다. 이는 모두 고금동서를 통해 인간이 염원하는 이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변화발전 과정에서 점차 지역적 민족적 유대 감을 형성하며 오락적 축제의 성격이 강조되는 한편 숭배신의 공능 또한 단일에서 만능으로 확대된다.
Yanjingsuishiji, is historical records compiled by Fuchadunchong in 1900, in which a wide description of seasonal rituals was made from January to December in Beijing during the period of Qing Dynasty from time immemorial to 1900. The records, consisted of 145 items, cover among others, customs, touristic places, product distribution, arts. The major activities are concentrated on the final month of a year, December(23 items), and the month to start a new year, January(21 items). This records quoted as many as a total of 32 reference books, among which "Rixiajiuwenkao" was the most frequently cited with 33 references. As for the festive day events, religious folk beliefs based on Buddhist and Taoist practices were prevailed in lieu of traditional festivities and also the book covered in general historical events and stories of personalities. The markets, opened on religious festive days in reflection of the commerce and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Qing society, are celebrated on the first day and 15th day of each month at the Buddhist and Taoist Temples. All sorts of folk customs & beliefs, flowers & birds, decorations, clothes & foods, ordinary games etc. appeared in the records always have to do deeply with the seasonal divisions. At the regular annual events women and children are the main figures and their prayer is for welcoming the celebration and elimination of bad omen or receiving the luck and warding off evil, and the longevity without illness etc. In the course of development of seasonal rites, however, the regional and national solidarity is gradually formed and the seasonal rites are apt to become a sort of recreational festival. At the same time, the deity to whom the people adore no longer is limited to only one capacity, but is extended to an omnipotent being.

6,600원

철학

6

詩文에 나타난 李穀의 세계관

정성식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14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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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시와 문에 내재되어 있는 이곡의 세계관을 규명하여 유학자로서의 발자취를 거시적으로 재 조명하고 오늘날 시사하는 바 의미를 고찰하는데 있다. 이곡이 살았던 시대는 원나라의 각종 간섭과 압력으로 국내정치가 혼란스러웠던 때이다. 이제현의 문인이며 이색의 부친이었던 이곡의 학문기조는 경전중시사상이 기본바탕으로 흐르고 있으며, 이는 바로 유학의 이념을 현실화하는 것을 방향으로 삼아 당시 직면한 사회적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능동적 기능을 일정하게 수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실천 위주의 학문 경향을 특성으로 하는 원대 성리학은 원에서 일정한 기간을 지내며 원나라의 학인들과 교류 하며 지내온 이곡의 학문기조와 그 성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이곡은 유교의 경전을 두루 익힘에 따 라 이러한 유교의 본령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그 단적인 예가 충효(忠孝) 윤리에 대한 강조이다. 이곡은 인재등용의 문제가 바로 정치의 근본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재물과 권세가 아니라 덕성 과 재능을 지닌 군자같은 유형의 사람을 과감하게 등용하는 것이야말로 급선무로 해결해야 할 정치적 과제라 고 보았다. 이곡은 군자는 자기의 인을 극진히 할 따름이니, 참으로 자기의 인을 극진히 하면서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기만 한다면, 비록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크게 잘못되지는 않을 것 이라고 생각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embedded in the door of the city and identify two of the world as a Confucian scholar in the footsteps macroscopic means refocusing the discussion today is to suggest a bar. Lived two days of the Yuan Dynasty, the various interference and pressure by domestic political turmoil is when His father was a mysterious and exotic Yijehyeon the study of two keynote emphasis on the scriptures, ideas flow into the foundation and the right to study in the direction of realizing the ideals of Sanya was active against a number of problems facing the social functions performed regularly one that can be evaluated. Practice-oriented study of the tendency to attribute Neo-Confucianism won the round for a period of time to count the Yuan Dynasty were living, and you've been interacting with two keynote of the study and its impact was considerable in nature. Two throughout the seasoning according to the scriptures of Confucianism Essence this was to stick to. The obvious example of loyalty and filial piety (忠孝) is the emphasis on ethics. The problem, is the talent of two lamps is the cause of political problems and think that was directly connected. His wealth and power over virtue and talents, with a battering ram, but the people of the same type of lamp than by paying a pressing matter boldly as he saw the need to address political issues. Two of the prince-in self-initiators according to dearly, dearly indeed the seal of his people's hearts and the minds of his samgiman, if fully fit, although not the fault does not even think it was significant.

6,600원

7

김원행의 학문과 석실서원에서의 강학활동

김인규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17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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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후기 서울⋅경기지역의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서원인 석실서원(石室書院)의 건립과 추배(追配) 과정, 그리고 석실서원에서의 김창협(金昌協)과 김창협(金昌協)의 강학 활동에 대해 간략히 고찰하고, 신임사 화(辛壬士禍)로 인한 가화(家禍)의 충격으로 벼슬을 단념하고 청주(淸酒)에 은거하면서 학문에만 전념하던 김 원행(金元行)이 1745년을 전후로 경기도 양주의 미음(渼陰)으로 이거하여 석실서원을 왕래하면서 강학을 재 개한 그의 강학 활동과 실심(實心)으로 대표되는 그의 학문관을 고찰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김원행의 가문은 영남인 안동(安東)이 본거지이지만, 16세기 중반 경기도 양주 석실(石室)로 이 거한 뒤 그의 후손들은 재경(在京) 사족(士族)들과 혼인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다졌으며,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벌(門閥)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인조(仁祖) 대 서인(西人)의 중신(重臣)으로 활동하다가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강화도에서 자결한 김상용(金尙容)과 주화론(主和論)을 배척하고 척화신(斥和臣)으로 활동한 김상헌(金 尙憲)대부터이다. 김상용과 김상헌을 배향(配享)한 석실서원이, 그 뒤 김수항⋅민정중⋅이단상을 추배(追配)하고, 이어 김창협⋅김 창흡⋅김원행⋅김이안⋅김창집⋅김조순을 추가 배향함으로써 안동김씨 일문(一門)의 사당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였으나, 김상용과 김상헌의 충절(忠節)을 기리는 데 있어서는 당색(黨色)을 초월하여 이견이 없었으며, 양 주를 비롯한 경기 일원의 유림(儒林) 근거지로서 선현(先賢)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던 경기지역 의 대표적인 서원으로, 또 낙론(洛論)의 이념적 공간으로 그 기능을 했다고 하겠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process of the establishment and paying respect to ancient sages of Seoksil Seowon that was a representative seowon of Seoin Noron faction in Seoul and Gyeonggi area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and examine the learning and academic view of Kim Won Haeng. It was around 1745 that he moved to Miseum village in Yangju, Gyeonggi-do began meeting people and learning in Seoksil Seowon after a period of retirement focusing on studying in Chungju giving up a government position after the massacre of scholars in Sinim (Sinimsahwa). As people know, his family was originated from Andong in Yeongnam area and moved to Seoksil in Yangju in the middle of the 16th century. His descendants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the clan through marriages with economic and political powers. The clan began to grow as one of representative families in the late of Joseon Dynasty from the period when Kim Sang Yong who served as a serious statesman in the period of King Injo and committed suicide in Ganghwa Island during Byeongjahoran (the Manchurian Invasion of Korea in 1636) and Kim Sang Heon who suggested to reject making peace with Qing Dynasty. There was a time that Seoksil Seowon was criticized as a family shrine of Andong Kim clan because the seowon in which the mortuary tablets of Kim Sang Yong and Kim Sang Heon had been enshrined also preserved the mortuary tablets of other member of the clan including Kim Su Hang, Min Jeong Jung, Lee Dan Sang, Kim Chang Hyeop, Kim Chang Heup, Kim Won Haeng, Kim I An, Kim Chang Jip and Kim Jo Soon. However, no one denied the significance of paying a tribute to the royalty of Kim Sang Yong and Kim Sang Heon regardless of factional differences. There is no doubt that Seocksik Seowon was one of the most famous seowons in Gyeonggi-do that played an important role in paying respect to the achievement of ancestors, teaching local students and providing a space where philosophical debates took place.

7,000원

8

李匡呂의 老子觀 - 「讀老子五則」을 중심으로 -

김학목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20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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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노자> 주석은 주자성리학이 절정에 오름에 따라 그 형이상학적인 기반을 가지고 치열하게 정쟁을 벌 이는 것에 대한 반성 곧 율곡 이이의 <순언>에서 시작된다. 이후 <노자> 주석은 서계 박세당의 혹독한 성리 학 비판인 <신주도덕경>을 거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보만재 서명응의 <도덕지귀>는 내단사상⋅ 상수학 등으로, 연천 홍석주의 <정로>는 주자성리학에서 성리학을 제외하고 주자학만으로, 초원 이충익의 < 초원담로>는 유가가 아닌 도가의 시각으로 <도덕경>을 주석하였다. 이충익이 독존유술의 시대에 <노자> 주석에 유가가 아닌 도가의 시각으로 통치이데올로기를 부정했다는 것 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바탕이 되는 이광려의 선행작업 곧 <독노자오칙>이 있다. 이광려는 <노자> 1장⋅2장⋅39(9)장에서 필요한 구절들과 󰡔논어󰡕에서 공자의 미생고 비판 구절을 가지고 도가의 시각 으로 유학의 ‘이름’[名:文]을 비판하는 동시에 무위 등을 압축하여 설명했다. 이충익이 <노자> 전체를 도가의 시각으로 주석할 수 있던 것은 <독노자오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在朝鮮時代, 對於<老子>的註釋, 隨着朱子性理學的最高潮發展, 進一步展開了. 特別從栗谷李珥的<醇言>, 開 始涉及形而上學的基盤問題. 由是以後, 對於<老子>的註釋, 經過對性理學堅持極烈批判的態度之朴世堂的<新 注道德經>, 表現了多樣狀態. 例如, 保晩齋徐命膺的<道德指歸>, 用以內丹思想⋅象數學註釋了<道德經>; 淵泉 洪奭周的<訂老>, 只用以朱子學註釋了<道德經>; 椒園李忠翊的<椒園談老>, 用以道家的觀點註釋了<道德經 >. 其中, 在性理學獨尊的時代思潮下, 李忠翊的『椒園談老』, 旣以道家的觀點註釋『道德經』, 又用他批判了當時 的國家統治理念. 此乃是可謂特別驚異之事. 然而, 在李忠翊的『椒園談老󰡕以前, 旣又有『椒園談老』思想的基 盤的著述, 此就是李匡呂的「讀老子五則」. 李匡呂在道家的觀點, 用『老子』1章⋅2章⋅39(9)章等諸句與『論語』中孔子批評判微生高的句來, 批判儒家的名 分論, 而且與此同時强調的說明了道家的無爲槪念. 由此觀之, 李忠翊的『椒園談老』, 用以道家的觀點註釋『道 德經』的可能根底, 蓋以旣有李匡呂的「讀老子五則」.

6,700원

9

순자의 도덕철학에서 天의 의미와 역할

정재현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23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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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순자의 도덕철학에 있어서의 天의 의미와 역할을 보이려고 한다. 순자는 性爲, 天人을 분리함으로 써 유가의 도덕철학에 자연천의 개념을 끌어들였고, 도덕적 가치는 그런 자연이 아니라 인위에 속해 있다고 말하여져 왔다. 이런 점에서 禮는 도덕적 가치의 전형의 역할을 한다. 남경희는 여기서 세계와 사유에 대한 언 어의 존재론적 우선성을 이끌어낸다. 그는 언어를 원규범으로 인지한다. 남경희의 관점에서 자연은 순자의 도 덕철학에서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 몇 몇 반례를 제기함으로써 이런 입장의 극단성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자 연과 인위에 대한 순자의 입장에 대한 체계적 대안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로버트 이노처럼 문제 가 되는 다양한 측면을 단지 열거하는 것으로는 체계적 이해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체계적 이해는 다양 한 충돌 요소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임으로써 가능하다. 나의 대안적 해석은 충돌적 요소들을 유지하면 서도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 지를 보여주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자연적 천의 개념이 기본적이기에, 순자의 자연 개념이 가지는 규범적 힘은 그것을 무시하지 않는 방향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규범성은 천인의 구분을 없애는 데서 나오지 않고, 그 구분을 분명히 하는 노력으로부터 나온다. 달리 말하면, 규범적 차원은 메타적 차원에 속한다. 우리가 대상적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는 한, 우리는 규범성을 발견할 수 없다. 규범성은 우리가 그것이 사실이다 혹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평가적 단계에서 출현한다. 순자의 규범적 지식을 설명하기 위해 메타적 지식이외에, 방법적 지식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show the meaning and role of nature (tian, 天) in Xunzi's moral philosophy. It has been said that Xunzi introduced the conception of nature as Nature in Confucian moral philosophy by distinguishing inborn nature (xing, 性) from human effort (wei, 爲) or nature (tian, 天) from human being (ren, 人) and claimed that inborn nature did not contain any moral worth for which only human effort accounted. Li (禮, rituals), in this perspective, plays the role of epitome of such moral value. From this, Nam Kyung Hee draws the ontological priority of language over world or thought. So Nam conceives language as ultra norms. In Nam’s perspective, inborn nature has no place in Xunzi’s moral philosophy. Although it is easy to criticize the extremity of Nam’s position by showing some counter examples, it is not easy to suggest another systematic alternative reading of Xunzi’s position over inborn nature and over human effort. This is because just enumeration of diverse aspects of something at issue, as Robert Eno does, does not naturally lead us into the systematic understanding of it. Systematic reading is made by showing how diverse or conflicting aspects are interrelated. My alternative interpretations go in the way of showing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the conflicting aspects while maintaining them. Since the conception of inborn nature (descriptive meaning) is a basic one, any normative force that Xunzi’s inborn nature is supposed to have should be explained without neglecting it. Normativity comes out of such effort of keeping the distinction, not out of that of blurring it. In other words, the normative dimension belongs to meta-level. As long as we pay attention to the objective-level, that is, facts, we can’t find any normativity in them. Normativity appears as soon as we evaluate by saying that it is a fact or it is not. Besides this meta-knowledge, we can introduce knowing-how to explain Xunzi's normative knowledge (zhitian, 知天).

6,100원

10

『近思錄』과 유학의 공부론- 도덕교육적 함의 -

고대혁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257-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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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근사록』을 중심으로 유학의 공부론을 검토해 보고, 이 공부론의 도덕교육적 함의를 탐색하는데 목적이 있다.『근사록』 은 12세기 후반 이후 동아시아 지성사에서 중국과 한국, 일본의 많은 유학자들에게 읽혀졌던 대표적인 성리학의 입문서이다. 『근사록』 은 유학 공부론의 기본 이념과 목적을 제시한다. 성인( 聖人)은 유학의 교육적 인간상이다. 송대 유학 이전에 성인(聖人) 개념이 제왕이나 제후의 통치 권력 문제나 그 지도적 인격의 문제와 주로 관계 되었다면, 송대 유학자들은 교육을 통한 인간의 내적 성장, 인격 완성의 교육적 인간상으로서 성인을 강조하고 있다. 『근사록』은 공부의 방법적 원리로써 하학상달(下學上達)을 강조한다. 이 공부 방법은 유학사상의 성격을 특 징짓는 개념이다. 하학상달의 공부는 주로 존양(存養)과 격물궁리(格物窮理)의 방법을 통하여 수행된다. 공부 의 과정에서 유학 경전(經典)의 독서와 일상생활에서 도덕적 지식의 탐구(격물 궁리)와 실천은 공부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된다. 독서를 통한 공부에서 『근사록』은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의심(문제 제기)하는 능력” 과 “질문”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학에서 스승과 제자는 교육적 담론을 구성하고 심화시키는 주된 상대이다. 이들 사이의 대화는 주로 경전 내용의 암기보다 문제 상황에서 도덕적 개념(인, 예, 효 등)들에 대한 이해와 합리적인 실천이 중심이 되며, 교 육의 장에서 함께 중시된다. 유학의 교육 사상을 통하여 오늘날 도덕교육의 경향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근사 록』의 공부론은 현대 도덕교육이 성학(聖學)보다는 속학(俗學)에 몰입하고 있고, 일상생활에서 도덕 실천보 다는 시험 성적을 강조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성하게 하고, 미래사회에서 올바른 도덕교육의 성격과 방향을 정립하는데 매우 가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onfucian Gongfu(工夫) theory and the implications of contemporary moral education in Chin-ssu Lu (『近思錄』 ; Reflections on Things at Hand). This book is a Neo-Confucian introduction after 12th century in the East Asians(China, Japan and Korea). Chin-ssu Lu makes clear us a sage as a basic idea and an aim of Confucian education. Therefore the sage is a view of educational human being. The meaning of the sage used to interpret as a leader who has political power and the king in the Pre-Song(宋) period, but Neo-confucian scholars of the Song Period explains a meaning of the sage as criteria for a personality perfection and an internal mature of human being through the personal cultivation. Chin-ssu Lu emphasize the principle of "Beneath I Learn, Above I Penetrate"(下學上達) as a method of confucian gongfu theory. The methods of preserving the mind and nurturing nature(Ts'un Yang 存養), and investigation of things and exhaustive study of their principles(格物 窮理) are two ways of the learning of "beneath I learn, above I penetrate" in the Neo- Confucian educational theory. and also this book emphasize the important of "an activity of problem posing" and " a self-questioning" in the process of a confucian learning of a daily life. The gongfu theory of the Chin-ssu Lu plays an important parts in the correct on snobby moral education as a learning for sage and reflects on the latest fads of the contemporary moral education.

7,500원

문화

11

향가 <제망매가>의 실체와 현대변용의 면모

하경숙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29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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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가>는 신라 제 35대 경덕왕(景德王)때에 승려인 월명사가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빌면서 지었다는 10구 체 향가이다. <제망매가>는 일찍이 불교적 측면에서 망자(亡者)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가이며, 현존하는 향가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성을 보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에 까지 재창조되어서 소 통하고 있다. 현대소설로 재창조한 <제망매>는 종교적인 신념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입각, 격동의 70~80 년대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려내면서 처한 현실과 모습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제망매 가>를 재창조한 현대 시인들은 죽은 누이에 대한 슬픔을 불교적 귀의(歸依)로 초월한다는 종교적인 의미와 육 친에 대한 애틋한 정을 설명하는 전범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작가들의 인간과 현실에 대한 따뜻한 성찰과 관심 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제망매가>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창작자들은 신라향가를 자신의 시대적 현실에서 규 정화하고, 지향적인 세계를 희구하고 있다. 그들은 그 처한 현실에만 기반을 두면서 외부적인 상황에는 관심 을 표명(表明)하지 않는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역사의 현실 속에서 그 방법을 제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일상의 현실에 기반을 두면서 생활상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무관심과 방치로 일관했던 사실들에 대 해서 여러 정황과 관련을 시켜서 넓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또한 그들은 고전을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 라 문화적인 창조의 원천으로 삶고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재해석하려는 참신한 발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라 향가 <제망매가>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들을 점검하면서 알 수 있듯이 고전물의 현대적인 변 용은 대중들에게 친근감과 흥미를 유발하지만 무엇보다 원작이 지니고 있는 작품 특유의 고유성을 배제한 채 지나친 현대적인 변용만을 강조하지 않아야 한다.
is a 7 phrased Hyang ga made by a buddhist monk Wal meong sah, in praying for his deceased sister's peaceful rest, at Shilla in the time of the 35th king, king Gyung duk. is a ritual song that prays for the peace and the rebirth of the dead and shows the best lyrics in the existing Hyang ga. Based on such informations, it is recreated and continued in the modern days. , a recreation into a modern novel, completely excluded the religious beliefs and tried to actively solve the reality and situation we are facing by drawing the aspect of our society in the great shift in the 70s to 80s. The modern poets who have recreated have escaped from the religious meaning, that sees that the writer is trying to overcome the sadness the death of the sister brings through religious belief, and the overall interpretation, that explains the love for the blood relative, and explains the warm introspect and interest in human and reality of the writer. Also the originators that have changed to the modern taste, have regulated the Hyang ga of the Shilla ages to the periodical reality of their time and desire for a active world. Also they only place their base on the reality they are facing and show no interest in the situation of the outside world. They tried to show a way in a historical reality that is passed down from the past. They observed life phase in detail based on the reality they are facing and tried to assign great meaning to the truths they have neglected by relating it with various situations. Also they showed fresh ideas by not seeing the classics as just classics, but also as a source of cultural creation and try to reinterpret it to meet the modern taste. with Recently few researchers does not see the classic literature as a petrified product and finds out that it holds gravity and meaning and spare nothing to find out the primitive meaning or reinterpret the literature. Beneath all those works, the classic literature can be seen as a source that shows new horizon to the creativity of Korean literature and acts as a stimulant. As it can be seen in the case of the Hyang ga of Shilla the , the modern transformation of the Classics are friendly to the eyes of the mass and provokes their interest but one must be careful not to focus so much on the modern change so that the originality the work holds, does not perish.

7,200원

12

蘇東坡의 貶謫時期 삶을 통해 본 「東坡笠屐圖」의 함의

강경희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32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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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후기 崇蘇熱에 의해 파생된 문화 현상 중의 하나인「東坡笠屐圖」의 제작에 주목하여 이 그림이 조선 문인들에게 환영받았던 이유를 탐색해보고자 하였다.「東坡笠屐圖」는 소동파가 바다 건너 海南島 儋州 유배시절에 있었던 일화를 빌어 어려움 속에서도 초연한 태도로 삶을 즐길 줄 알았던 동파의 모습을 회화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黃州, 惠州, 儋州로 유배되었던 시기의 삶과 글에 초점을 맞추어 이 그림에 내재된 함의를 찾아보았다. 유배시기 동파가 보여준 삶의 태도는 고통에 직면하였을 때 물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自足할 줄 알았으며, 그 상황을 어떠한 好惡美醜의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삶을 즐길 줄 아는 것이었다. 「東坡笠屐圖」는 바로 이러한 동파의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東坡笠屐圖」는 특히 실의한 문인들에게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길을 제시해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마침내는 삿갓과 나막신이 동파의 인품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 초상화 주인공의 인품을 은유하는 방식으로 쓰이게 되었다.
蘇軾是一位人见人爱的人,历来一直受到很多文人的追捧。翁方纲崇拜他,在书斋墙上挂着东坡像,当每年东坡的生日,举办悼念东坡的聚会,称为拜坡会。这种风尚促进了创作东坡像,而且传到朝鲜广为流传。东坡像当中,<東坡笠屐圖>为最流行于世. <東坡笠屐圖>是東坡在儋州貶謫時,雨中戴笠穿屐的肖像. 本文注目这种崇蘇熱和<東坡笠屐圖>流行的现象,而爲了探讨<東坡笠屐圖>里所內含的象徵,探究東坡的貶謫時期思想與作品,并且比較分析明代朱之蕃和朝鮮許鍊與池雲英的<東坡笠屐圖>。通過这次探究得知東坡以超然曠達的態度對待痛苦, 虽然他长期过非常艱難的生活,也能够自由自在。崇拜东坡的人都在这一点得到安慰自己悲痛和傷心。于是<東坡笠屐圖>就是投影蘇東坡的这种人生态度,通过欣赏这副画,人们得到安慰与希望而再往前走一步。

7,900원

13

『律呂新書摘解』를 통해서 본 柳僖의 악률론 연구

김수현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359-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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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려신서적해(律呂新書摘解)>는 저자 유희(柳僖: 1773~1837)가 1802년에 지은 악률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유희의 호를 딴 문집 <방편자유고(方便子遺稿)>에 <악률관견변(樂律管見辨)>과 함께 남아 있는 글로써 송대 (宋代)의 악률학자 채원정(蔡元定)의 <율려신서(律呂新書)>를 요점을 골라내어서 자신의 해석을 달고 있는 저서이다. 이 논문은 유희의 <율려신서적해>의 내용을 분석하여 조선후기 유학자들의 악률에 관한 견해를 서술한 사람 들 중 한 사람인 유희의 악률론은 무엇이고 그의 위치가 무엇인지 가늠해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 논문은 <율려신서적해>의 내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하나는 12율론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調)에 관한 논의이다. 12율에 관한 부분은 다시 황종(黃鐘)의 율관의 공위(空圍)문제, 삼분손익(三 分損益) 과정에서 12율의 상생(上生)과 하생(下生)에 따른 음양(陰陽)의 위치 문제, 실(實), 법(法), 소분(小分) 등의 개념문제가 거론되었던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조에 관한 논의는 84聲圖와 60調圖를 읽는 문제, 변율 (變律)과 用28聲의 문제를 거론하였던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 논문을 통해 유희의 <율려신서적해>가 채원정의 <율려신서>를 해석한 것이지만 단순히 번역이나 해석만 이 아니라 <율려신서>의 내용 중에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부분을 적출해 내고 유희만의 독특한 설명방식을 보였음을 알 수 있었으며 부연한 설명이나 <율려신서>에서 잘못된 수치나 용어, 개념, 어구 해석 등을 적나라 하게 지적한 점, 잘못된 관점이나 견해를 비판한 점 등을 볼 때 당시의 비슷한 류의 조선후기 다른 악률관계 저서들과 비교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YulRyeoShinSeoJukHae” is the book by Yu-Hee(柳僖 :1773-1837) in 1802, which is left in his collection of works, “Bangpyunjayugo(方便子遺稿)” together with “AkYulGwanGyeonByeon(樂律管見辯)” In “YulRyeoShinSeoJukHae”, YuHee extracts the main idea of “YulRyeoShinSeo” by Chawonjung(蔡元定) and adds his translation. This dissertation aims to analyze the contents of “YulRyeoShinSeoJukHae”, to explore YuHee's temperament theory and his place in his time. I divide the content of “YulRyeoShinSeoJukHae”, one is about 12 variation, the other, the theory of scales, focusing on the perimeter and diameter of the 12 pitch pipes, the loss and gain of three dividing, the location of Yin and Yang in 12 variation and other ideas in the theory. I explore the tables of 84 tones and 60 scales, their reading and the use of the variation and 28tones. “YulRyeoShinSeoJukHae” explains “YulRyeoShinSeo” by Chawonjung(蔡元定), clarifies controversial parts of the book and YuHee's unique explanation, points out wrong numerical values, wrong terms and ideas and criticizes wrong view points, which is distinctive, compared with other books.

8,500원

14

추나(推拿)와 안마(按摩)에 대한 고찰

함주현, 정한석, 최진옥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동방학 제22집 2012.02 pp.399-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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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안마와 추나의 차이점과 추나학의 문학적, 의학적 의미를 통해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한 부분의 의료방법을 고찰하였다. 추나는 2700여 년 전부터 의료행위로 활용되었으며, 한의학 경전인 󰡔황제내경(皇帝內經)󰡕 <소문(素問)>편에 보인 도인안법(導引按法)의 “도인”이란 근골을 돌려주고 사지 관간이 흘러감에 따라 도인행기법의 기공으로 발전하고 안교나 교마의 안병마를 거쳐 “추나(推拿)”로 발전되어 왔으며, 모두 음양론에 입각한 한의학의 기본 원리를 근간으로 하였다. 추나는 고대에 안마(按摩) 또는 안교(按蹺)라 했다. 이와 같이 추나학(推拿學)은 중의학의 중요한 조성 부분이다. 추나학은 중의학 이론체계의 형성에 대량의 의료실적과 당시 철학사상을 기본으로 하여 체계화 되었다. 운동, 압박 또는 지압을 통하여 통증을 감소시킬 목적으로 행하는 행위를 추나요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임상에서 근골격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존적인 치료법 중의 하나로 비교적 안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나 요법은 오랜 기간 임상에 의한 발전되어 만들어진 것이며, 상황과 병인의 상태에 따라 추나 요법을 적용하는 방법 또한 체계화 되었다.
This thesis aims to study one of the oldest medical treatment in human history by considering difference between massage and Chuna, and literary and medical meaning of Chuna manual medicine. Chuna is one of the oldest medical practice. It has been used as a medical treatment since about 2,700 years ago, and according to Su-wen (素問) of Hwangje-Naegyeong (黃帝內經), thus Taoist massage (導引按法) has been developed. "Taoist" of Taoist massage means that bones and sinews are turned, and it developed into Taoist Yoga with the lapse of time and then "Chuna (推拿)" after Angyo or Anbyeongma, which are based on fundamentals of oriental medicine from yin and yang. Chuna was called ancient massage or Angyo. Chuna manual medicine is the major component of Chinese medicine. Chuna manual medicine was systematized with large medical records of Chinese medicine and comtemporary philosophical ideas. It can be defined as the act to reduce pain through exercise, pressure or acupressure, and it is known in the clinical area that the therapy is one of the conservative treatments to resolve musculoskeletal disorders and relatively stable. These methods are formed through a long period of clinical experience, and how to apply Chuna therapy is also systematized according to conditions and causes of diseases. The correct meaning of Chuna should not be confused by studying Chuna manual medicine which was systematized and developed as one of the oldest treatment in various man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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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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